외전-천상지애
천을 무대로 만든 드라마 천상지애는 유저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시청률이 50%대까지 올라갔다.
중국의 무림을 배경으로 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고 또한 화려한 무공과 액션은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국민 배우라고 불리는 설영이 여자 주인공을 맡아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서 몰려들었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개봉의 한 장원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천이라는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촬영이라 그런지, 배우들이 각각의 대본을 다 외워 천 안에서 전달하는 방식이기에, 순간적인 애드립에 많이 의존을 했다.
천지회의 회주인 혁무기는 천에서 국민 배우 설영의 상대역을 맡아 남자 주인공의 역을 잘해 나가고 있었다.
높은 시청률로 인해 혁무기 역시 정식 티브이 드라마 배우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 알겠지?"
"네!"
이렇게 시작된 촬영에 동원되는 인원만 족히 40명이 넘었다. 모두 각자의 동영상을 찍어 편집을 하기에 일반 촬영 카메라로 찍는 것보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장원 안에는 설영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가 대청에 서 있었고, 설영은 그의 옆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혁무기를 보고 있었다.
"네놈이 끝내 물러서지 못하겠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전 설 소저를 사랑합니다."
"흥! 떠돌이 낭인 주제에 감히 나의 딸을……!"
"아버지!"
설영의 간절한 목소리에 아버지의 마음이 녹을 법도 하건만, 그녀의 아버지는 더욱 호통을 쳤다.
팟!
그때 장원으로 날아 들어온 화살이 설영의 아버지가 서 있는 곳의 왼쪽에 꽂혔다.
"헉!"
설영의 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날아온 화살을 보았다. 화살에는 편지가 묶여 있었다.
혁무기는 화살이 날아온 쪽을 보고 몸을 날렸으나 빈손으로 다시 장원으로 돌아왔다.
"이이……!"
설영의 아버지는 편지를 보자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갔다. 편지를 들고 있던 손이 점점 떨렸다.
편지에는 단 한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死
설영은 아버지가 들고 있던 편지를 보고는 휘청거렸다. 혁무기는 신법을 사용해서 설영에게 다가가서 휘청거리는 그녀의 몸을 부축했다.
그러고는 편지의 내용을 보았다. 아니 설영의 손에서 땅에 떨어진 편지의 내용이 혁무기의 눈에 들어왔다고 해야 했다.
설영은 혁무기의 부축에서 벗어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 아버지."
설영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캇!"
"수고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한 장면이 끝나자 혁무기는 먼저 감독과 배우에게 인사를 하고 스텝들에게 인사했다.
"좋았어. 자네, 생각보다 연기를 잘하는데."
감독의 칭찬을 들어서인지 혁무기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자자! 다들 모여 주세요."
감독은 다른 배우들을 모으고는 다음 장면을 설명했다.
설영의 아버지가 자객에게 암살을 당하는 장면과 설영이 보타산으로 떠나는 장면 그리고 혁무기가 설영의 아버지를 죽인 자를 찾아 나서는 장면을 찍을 차례였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 준 감독은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 버렸다. 자객 역을 맡은 배우가 나름대로 열심히 해도 현실감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었다.
자객은 남 몰래 들어와 대상을 죽이고 또 몰래 빠져나가야 하는데, 자객 역을 맡은 배우는 그런 걸 전혀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무공을 배우지를 못했다.
또한 아버지 역을 맡은 사람 역시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연기를 한다고 해도 전혀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다시 의논을 한 결과, 전문 자객에게 청부를 넣는 방법을 생각했다. 동영상을 찍어 준다는 조건으로, 유저들을 상대로 모집을 한 것이다.
하지만 모집된 사람들 역시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대로 살수의 무예를 배운 사람들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정말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타나는 그런 무공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결국 감독은 청부금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조건을 걸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죽이고 바람처럼 사라져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 주기로 하고, 금전 5만 냥을 청부금으로 걸었다.
"후후! 그렇게 살수 무공을 배운 사람들이 없나?"
-배운 사람들은 많지만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져야 하는데, 그만한 무공을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내가 해 볼까?"
현수는 게시판에 올라온 청부 건을 보고 야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금전 5만 냥이면 꽤 좋은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얼굴이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이왕이면 호면을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담을 넘어가 죽이는 것보다 환상적으로 연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냥 죽이고 나오면 금전 5만 냥이다.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이면 천상지애의 감독이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지?"
-다음을 위해서입니다. 그런 연출을 한 번 함으로써 감독은 살수가 필요할 때마다 현수 님을 찾을 것입니다. 한두 번 더 그런 일을 해 주고 나서 청부금을 올려도 아마 현수 님에게 청부를 할 것입니다. 공돈이지 않습니까?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야! 넌 사람이 아니잖아?"
-전 현수 님의 동생입니다.
현수는 야를 보고 웃었다. 맞다. 야는 컴퓨터가 아니다. 야는 사람과 같았다.
"그럼 돈은 어떻게 받지? 나인 줄 모르게 하려면 말이야."
-현수 님의 거래 사이트를 통해서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처분하시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수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천에 접속했다.
현수는 개봉으로 이동해서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도전을 하려는지 몇몇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입구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문 앞에서 천지회의 부회주가 지키고 있었다.
현수는 그를 보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혁준이네!"
누구인지 확인을 한 현수는 호면을 쓰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달은 전장을 비치고 있었다. 현수는 다시 전장의 문 앞에 나타나서 운중탄영신을 사용해 허공으로 솟아올라 또다시 은신술을 사용해서 사라졌다.
그 모습이 마치 달에 흡수가 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순간 혁준의 고개가 현수가 사라진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잠시 후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현수가 나타난 곳은 전장의 기와 위였다.
"후후! 자고 있는 모양이군."
안을 살핀 현수는 기와 밑으로 흡수되듯 또 한 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고는 설영의 아버지 역을 맡는 사람이 자고 있는 방에 나타났다.
현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심장을 향해 검을 밀어 넣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를 죽인 현수는 다시 기와 위에 조용히 앉았다. 그냥 빠져나가려고 하니 조금 섭섭했는지, 현수는 일부러 기척을 흘렸다.
혁준은 기척을 감지하고 현수가 있는 곳을 보았다. 현수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목표물을 죽였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혁준은 경공술을 사용해 기와 위로 올라갔다.
"누구냐?"
현수는 말이 없었다.
"장주님이 죽었다!"
외치는 소리 역시 한 장면이라 생각한 현수였다.
그때 혁준의 검이 현수를 향해 움직였다. 빠르고 간결한 동작으로 일체 군더더기가 없는 검법이었다.
현수는 몸을 뒤로 이동하며 혁준의 검을 막았다. 혁준은 한번으로 끝나는 검법을 쓰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몰아쳤다.
또한 초 수가 늘어남에 따라 손에 받는 충격이 늘어나는 것을 느낀 현수는, 운중탄영신을 사용해 혁준과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나 혁준의 경신술 역시 운중탄영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밑에서 많은 무사들이 나와 현수와 혁준을 쫓는 모습이 보였다.
"훗훗!"
호면객의 웃음소리가 누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는 혁준이었다.
순간 현수의 검이 움직였다.
챙챙!
"윽!"
"후후!"
현수의 검이 혁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혁준은 자신이 호면객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 노려보았다.
현수는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냥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밑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현수는 모든 일을 끝내고 자신이 저장한 동영상과 입금을 할 자신의 거래 사이트의 주소, 아이디를 방송국으로 보냈다.
동영상을 확인한 천상지애의 감독은 현수의 무공에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예술을 보는 것과 같았다.
뒤의 촬영이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어 드디어 티브이 브라운관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된 천상지애는, 또 한 번 천을 하는 유저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갔다.
천의 신비 이객 중 1명인 호면객의 무공을 보고 난 시청자들로 인해 방송국의 홈페이지는 마비가 되었다.
연일 호면객의 정체에 대해서 묻는 유저들뿐이었다.
천상지애는 이번의 방송으로 인해 최고의 시청률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현수는 받은 청부금을 오매불망을 통해 바로 현금화시키고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출연해서 그런지 오늘은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치? 그러고 보면 나도 연기에 소질이 있나 봐."
-현수 님께서는 한마디도 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굴도 가린 상태입니다. 그건 연기라기보다는…….
"보다는?"
-아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명배우 호면객 님!
현수는 공돈에 즐거워하며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