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장에서 생긴 일 (32/57)

서장에서 생긴 일

역발산과 필살검 그리고 화령검객은 세외에서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한편, 대학사의 행적을 좇기 시작했다.

세외의 정보란 몬스터의 경험치와 아이템의 드롭율 그리고 세외의 문파의 수준 등등이었다. 대학사의 일행이 중원인이라 찾기 쉬울 줄 알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들의 행적을 알 수 없었다. 남만이나 묘강 쪽으로 가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들은 시간이 나는 대로 대학사의 일행을 찾으면서 또한 레벨 업을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레벨 업이 조금 빠른 것 같지 않아?"

"그러게. 경험치에 비해 몬스터들이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하! 이게 다 나의 무적 신공 때문이 아니겠냐."

역발산은 자신의 가슴을 치며 본전도 못 찾을 소리를 했다.

"야! 그게 무슨 무적신공이야? 무식한 무공이지. 이름도 광란의 분노가 뭐야. 좀 세련된 무공을 찾지."

필살검이 한 소리 하면 역발산은 눈을 치켜떴다. 이것이 싸움의 전주곡이라는 것을 화령검객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가자! 이런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다."

"그래. 그런데 몬스터의 레벨에 비해서 아이템은 한 단계 떨어지는 것 같은데. 단지 경험치 맵으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유가 있겠지. 그나저나 대학사는 어디로 숨어 버린 거야."

대학사의 행방을 아직 찾지 못한 이들은 계속 수소문을 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우리가 찾고 있다는 것이 대학사의 귀에 들어갔을 수도 있어. 그럼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내겠지. 우리는 소문을 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 시간에 레벨 업이나 하자."

필살검과 화령검객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역발산을 올려다보았다.

"야! 너 역발산이 맞아?"

마치 지금까지 알고 지낸 역발산이 아닌 것 같아 물어보는 필살검이었다. 역발산은 두 눈을 치켜뜨며 주먹을 머리 위로 올렸다.

"이게!"

그 모습에 무섭다는 듯 행동하는 필살검을 보며 화령검객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래. 우리는 레벨 업을 하며 기다리자. 일단 현수에게 전서구를 보내고 이번 기회에 100레벨까지 올려 보자. 환골해서 스탯을 다시 분배해야겠어. 어중간하게 올린 스탯이 몇 개 있어."

화령검객의 말은 들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발산 역시 아무리 모든 스탯을 방어력에 투자를 했다지만, 그건 영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방어력이 높아 안 죽어서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격력이 없으니 혼자서 사냥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화령검객은 전서구를 현수에게 보내고 다시 레벨 업을 위한 사냥에 나섰다.

* * *

"황자님!"

"후후! 할아버지, 전 이제 황자가 아닙니다. 그저 도망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1황자는 황궁에서 도망쳐 나와 소뇌음사에 몸을 의탁했다.

서장에서 가장 세가 큰 두 무림 문파 중 하나인 소뇌음사는, 불교의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환희불을 믿는 이단의 종교였다.

"서장에 ≪악마록≫이 있다면 바로 이곳, 소뇌음사에 있을 것입니다. 이곳이 아니라면 만사신군의 ≪악마록≫은 서장에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할아버님, 전 괜찮습니다. 다만 어머니가 걱정이 됩니다. 이곳 소뇌음사 주지의 수청을 드니 말입니다."

처음 이들이 소뇌음사에 몸을 의탁했을 때 이곳의 주인은 쉽게 승낙을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정빈에게 있었다. 오랜 시달림을 받은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그래도 황제의 비가 될 수 있었던 그 미모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정빈은 아무 소리 없이 소뇌음사 주지의 수청을 들었다. 그녀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아들을 살리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소뇌음사의 권세를 보고 최소한 자신의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이미 그녀는 황제의 비가 아닌 한 사람의 어머니였다.

"황자님! 그런 말 마십시오. 정빈 마마께서는 황자님만을 생각하십니다."

"휴!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님. 하지만 소자는……!"

"황자님! 앞날만 생각하십시오. 만사신군의 ≪악마록≫을 찾아 익히시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이곳 소뇌음사와 중원의 문파들을 발아래 두시어, 황궁으로 들어가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시면 모든 게 끝납니다. 마마께서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시고 인내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약한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대학사의 말을 듣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는 자신을 추슬렀다.

1황자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자신을 찾는 무림인들이 서장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이곳 승려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우리를 찾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셨습니까?"

"알아보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황궁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할아버님,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황궁을 빠져나왔다면 황궁에서 추격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황궁인이 아닌 사람들이 우리의 행방을 좇는다는 것 또한 이상합니다."

대학사는 차마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현수에게 부탁을 한 것을 말할 수가 없었다. 1황자는 현수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현수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인 정빈이 황제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웃음을 흘리고 옷을 벗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대학사는 가급적이면 1황자에게 현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자세히는 모르나 소뇌음사의 주인인 막라탑이 그들을 잡아 왜 우리를 찾는지 알아볼 것이라 했으니 우리는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황자님께서는 소뇌음사의 경장각에서 ≪악마록≫에 관한 단서를 하루 빨리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아버지."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레벨 업에 열중하는 천연회의 세 사람은 신이 나 있었다. 이곳에 와 벌써 3레벨을 올렸다.

"빠른데?"

"사사혈천이 있는 탑리목 분지의 몬스터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치를 주는지 모르지만 결코 이곳보다 빠르지 않을 거야. 안 그래?"

필살검과 화령검객은 몸으로 막고 있는 역발산 주위의 몬스터를 잡으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갑자기 유저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사혈천에서 사냥을 하는 고수들이 서장과 동영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경험치에 비해 사냥하기 쉽다고 소문이 나자, 거대 문파에 밀려 사사혈천으로 진입하지 못한 중소 문파의 유저들이 대거 몰려와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템이 한 단계 낮은 것이니 결국 사사혈천으로 다시 돌아가겠지."

"아 씨! 말 그만 하고 빨리 잡아. 다른 놈들이 우리 몹 다 잡잖아."

다른 유저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 것을 본 역발산은 짜증이 났는지 대화를 이어 가는 두 사람을 독촉했다.

"염병!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어때? 또 리젠이 되잖아."

"안 돼! 저것들 다 잡아야 돼. 생각해 봐라. 저놈들은 레벨 업해서 우리에게 검을 겨눌 놈들이잖아. 그러니 안 돼. 우아아아아아!"

갑자기 역발산이 소리를 치자 몬스터들이 역발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몬스터를 잡고 있다 주위에 있는 몬스터들이 다른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본 유저들은, 몬스터를 따라 달려왔다가 역발산을 한번 보고는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4명의 유저들이 더 달라붙자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역발산은 이 모습을 보자 눈이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뭐야, 시팔! 내가 몸으로 막고 있는 것이 안 보이냐?"

역발산이 화를 못 이겨 소리를 치자 4명의 유저들이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데 시팔이라니. 우리가 사냥하는 몬스터였는데 그런 식으로 사냥하면 안 되지. 안 그래? 그리고 너 말 곱게 해라."

"뭐? 시팔,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역발산이 움직이려고 하자 필살검이 막아섰다.

"가만히 있어. 괜히 싸움 걸지 말고."

필살검이 말리자 역발산은 필살검을 밀치고 나가려 했다.

"이 씨! 저놈 말하는 싹수 봐! 내가 참겠냐?"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몬스터는 또 생긴다. 많고 많은 몬스터를 가지고 싸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아 씨! 그래도 난 못 참아."

말려도 소용없었다. 화령검객이 현수의 이름을 팔았다.

"역발산! 가만히 있어라.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고. 현수가 뭐라고 했어. 시비 걸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역발산을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현수였다. 건이나 만사귀는 아예 죽여 버리는 성격이지만 현수는 신 나게 두들겨 패는 성격이라 역발산은 현수라는 이름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베타 시절, 현수에게 맞은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가만히 있어."

필살검이 다시 4명의 유저들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니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필살검을 보자, 4명의 유저는 이들을 비웃었다.

"소리치면 다 이기는 것인지 알고 있는 모양인데,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맞아. 우리나라는 이게 잘못이야. 목소리 크면 다 이기는 줄 알고 있단 말이야."

저마다 한 소리씩 하는 유저들의 말을 듣자 필살검 역시 인상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저리 가서 사냥해. 우리 사냥하는 데 방해가 되니 말이야."

필살검은 화는 났지만 일단 참았다. 원인 제공을 자신들이 했으니 될 수 있으면 말로 끝내려고 생각 중이었다.

"이곳은 우리가 처음부터 사냥을 하던 곳이라……."

"아 씨! 그냥 이것들 다 죽이자."

역발산은 듣고 있다 배알이 뒤틀렸는지 소리쳤다. 역발산의 소리를 들은 이들 역시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너, 가만히 안 있을래?"

"시팔! 내가 아무리 현수의 말에 고분고분하다지만 난 이렇게까지 무시당하는 것 싫다."

역발산은 참을 수가 없는지 유저들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화령검객이 역발산의 옷자락을 잡았다. 유저들은 자신들의 수를 믿었는지 역발산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미친 놈! 덩치만 크면 다 이기는 것으로 아나 본데. 뭐? 우리를 죽여? 우리가 몇 레벨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이 시팔아?"

"그래! 레벨이 깡패다. 그런데 가끔 레벨이 안 통하는 인간들이 있거든!"

역발산과 4명의 유저들은 일촉즉발의 팽팽한 상황까지 갔다.

다다다다다다!

싸운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4명의 유저들이 속한 문파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왜? 왜 그래?"

늦게 도착한 자신들의 문파원들이 웅성거리자, 상황을 오직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설명을 하는 것을 본 필살검이 이를 다시 정정하려 했다.

"어이! 넌 가만히 있지? 지금 우리 애들한테 이야기를 듣고 있거든."

'어이!'라는 말에 필살검은 몸을 돌렸다. 화를 참고 있는 모습을 본 화령검객은 이번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2 대 3이라…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

나지막하게 말하는 화령검객의 말에 반색을 하는 역발산이었다.

"그렇지. 일단 저 시팔 것들은 나에게 맡겨."

처음에 시비가 붙은 4명의 유저를 지명하는 역발산이었다. 이들 역시 이야기를 다 들었는지 모두 천연회의 일행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야! 너 이리 와 봐!"

역발산을 보고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놈을 보자 필살검이 검을 움직였다.

슈우우!

"악!"

"시팔! 어디서 손가락을 까닥거려! 웬만하면 참고 넘어 가려고 했는데 더 이상 못 참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말로 이야기를 하면 꼭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있다니까."

순간 필살검과 화령검객 그리고 역발산이 움직였다. 가장 가까운 놈들부터 처리하고 각자의 공간을 만들려고 했는데, 3명은 빠르게 포위를 헤치며 자리를 잡았다.

"으으! 저것들, 죽여 버려."

손가락이 잘린 유저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레벨이 깡패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의 레벨은 그냥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레벨을 올리는 동안 많은 몬스터를 사냥을 해서 그런지 제법 고수의 티가 났다.

"어딜!"

역발산은 소림의 금강부동심결을 바탕으로 맞아 가며 6명의 유저를 상대했다. 역발산은 화령검객과 필살검이 조금 더 쉬운 싸움을 하게 해 주기 위해 보다 많은 유저들을 자신이 상대를 했다.

"고작 이따위 실력으로 소리쳤냐?"

역발산이 자신들의 검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조금씩 데미지를 입어 가는 것을 보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역발산의 체력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화령검객의 입가에는 조소가 생겼다.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조건 체력을 깎아 죽이려는 이들이 조금은 불쌍해졌다.

싸움이 끝난 역발산의 행동을 미리 짐작할 수 있기에 더욱 이들이 불쌍해 보였다.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화령검객이 배운 무공은 조금은 여성스러운 옥녀검법이었다. 화령검객은 남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부드러움은 검을 움직이지 못하는 각도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현수가 가져다 준 옥녀검법은 화령검객에게 딱 맞았다.

채애애앵- 챙!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도저히 피하지 못할 것 같은 방향에서 솟구치는 검을 힘들지 않게 피하는 화령검객을 보자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12명이 3명에게 진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검아!"

필살검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상대의 검을 보자, 역발산이 외치며 필살검에게 달려가려 했다.

"호들갑 떨지 마라. 고작 생채기가 났을 뿐이다."

상대는 무공을 사용하려고 하는지 필살검에게 검을 겨누었다. 검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악!"

"고작 그런 실력으로 우리에게 시비를 걸었냐? 무공을 사용할 때와 사용 안 할 때를 구분도 못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필살검이 아닌 상대 유저였다.

자신의 편이 당하자, 한 번에 공격해 들어와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는 뒤로 물러서며 말하는 필살검이었다.

"레벨로 깡패 짓을 하면서 고작 그 정도의 실력밖에 못 쌓았냐."

필살검은 다시 검을 뻗으며 치고 들어갔다.

채앵!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일어났다. 필살검은 빠른 쾌검을 앞세워 상대의 허점을 유도했고, 화령검객은 상대의 허점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옥녀검법의 무공을 사용했다.

"단심결!"

"큭!"

목과 심장을 노리고 무공을 사용했지만 상대 유저 역시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몸을 비틀어 타격점을 바꾸어 재차 공격해 들어왔다.

"어딜!"

채애앵!

"으라차차!"

"컥!"

그때 역발산이 외치는 소리와 상대 유저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역발산은 양 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힘을 주고 있었다. 허리가 꺾인 유저는 고통에 소리쳤지만 역발산은 고이 놓아주지 않았다.

"이 시팔 놈이!"

동료가 당하자 모두 역발산에게 검을 휘둘렀다.

"금강부동심결!"

"산아! 혼천강결!"

"풍산진천파황도!"

화령검객과 필살검이 자신이 공격할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을 선보이며 역발산에게 달라붙은 유저들을 공격했다.

콰과과과광!

"윽!"

"크악!"

역발산을 공격하다 또 1명의 유저가 사라졌다. 또한 역발산에게 허리가 잡힌 유저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괜찮아?"

"너희들, 나 죽이려고 그랬지?"

생각보다 강력한 공격이었다. 역발산은 엄살을 피우면서 벽곡단을 삼키며 체력을 보충하는 동시에, 화령검객과 필살검이 좌우에서 역발산을 도왔다.

벌써 4명의 동료를 잃은 유저들은 서로 믿지 못할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고작 3명에게 12명이 달려들어 죽이지 못하고 자신 편의 4명이 죽었다는 건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시팔 놈, 내 너희들을 못 죽이면 사람도 아니다."

몬스터로 인해 벌어진 싸움이 이제 몬스터의 구경거리가 되어 버린 듯했다. 그들이 일으키는 살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역발산은 다시 그들에게 염장을 질렀다.

"시팔 놈? 넌 주둥이로 싸우냐? 계집애도 아니고, 그 잘난 놈들이 고작 3명을 못 이겨 지금까지 지랄하고 있냐? 자신 있으면 와? 너 역시 허리를 꺾어 줄 테니 말이야."

두 손을 마주 쥐고 깍지를 끼는 역발산은 상대를 조롱하며 말을 던졌다.

"이이이……!"

쉽게 달려들지 못하는 이들을 보자 필살검과 화령검객이 재차 공격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안 오면 우리가 간다?"

필살검이 체력을 채운 역발산을 확인하고 다시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악!"

"그 정도의 기습은 대비를 해야 고수지, 이 병신들아."

기습에 이어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필살검이 재차 공격을 가했다. 처음보다 수적 불리함을 덜은 화령검객과 역발산은 필살검이 한 놈을 보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돕기 위해 적들이 방해하지 못 하도록 필살검의 주위에서 그에게 공격해 오는 검들을 차단했다. 필살검은 화령검객과 역발산의 도움으로 또 한 놈을 보낼 수가 있었다.

"크악!"

역발산이 으르렁거리자 한발 물러서는 유저들이었다. 왜 자신들이 물러서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자신도 죽을까 봐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화령검객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몸을 뒤로 빼 피하는 것을 보자 화령검객은 달려 들어갔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화령검객을 보자 상대는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화령검객은 그의 바람과는 달리 몸을 숙여 검을 피하고는 정확하게 상대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커억!"

"잘 가라. 이제 넌 무공이 사라질 테니 레벨 업을 하는 데 상당한 지장이 있겠다. 다음에 만나면 또 죽여 줄게."

회색빛으로 물드는 상대를 조롱하고는 다른 상대를 향해 눈을 돌리는 화령검객이었다.

12 : 3의 싸움은 이제 6 : 3으로 바뀌었다. 처음보다 많은 여유를 찾은 화령검객과 역발산 그리고 필살검은 천천히 유저들에게 다가갔다.

"뭐야? 레벨만 높은 놈들이잖아?"

"앙꼬 없는 찐빵들이지."

사태가 이렇게 흘러갈지는 유저들 중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설마하니 12명이 고작 3명에게 당할까 생각했지만 정말로 당했다.

남은 6명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도망갈 수도 없고 또 싸우자니 죽어 무공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어때? 이쯤에서 그만 하고 물러나지? 아니면 모두 죽든가. 12명이 이기지 못했는데 6명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이……!"

"어이! 주둥이, 또 입으로 싸울 건가? 그냥 검을 휘둘러."

역발산이 으르렁거리자 움찔하며 동료를 보는 유저였다.

"빨리 끝내자. 유저 죽여도 경험치 들어오네."

경험치라는 말에 역발산과 화령검객이 일제히 주춤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단심결!"

"크하하하! 이게 바로 천하무적 역발산 님의 권격이다."

무식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각도의 변화가 있게 움직이는 역발산의 주먹이었다.

"억!"

순간 일어난 일에 당황한 유저들은 다시 검을 추켜세웠지만 3명의 합공에 또 1명의 유저가 회색으로 물들며 사라졌다.

"짭짤하네."

경험치를 확인한 세 사람은 남은 5명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서로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뒤로 줄행랑을 치는 유저들을 뒤따라붙는 화령검객이지만 공격은 하지 않았다.

모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역발산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힘들다. 지치는 것은 보충이 되지 않으니, 조금 더 싸웠더라면 우리가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지치는 것은 서로 같으니 혹시 모르지."

"맞다. 이번 기회에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역발산 넌 함부로 시비를 걸지 말고."

"몰라! 조금 쉬고 리스 포인트로 가서 저놈들을 완전히 거덜 낼 생각이니까 말리지 마."

리스 포인트는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곳을 말한다. 보통은 각 성의 마을 의원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서장을 비롯한 세외와 동영은 그렇지 않았다.

리스 포인트를 지정해야 세외나 동영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만약 리스 포인트를 지정하지 않으면 중원의 각 성 의원에서 랜덤으로 부활하게 되어 있었다.

뿌리를 뽑을 생각을 하고 있는 역발산을 보자 두 사람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슈슈슈슈!

"윽!"

-마취 침에 중독이 되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방어력이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안내 메시지를 본 필살검은 어깨에 무엇인가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인상을 썼다.

"이런!"

역발산과 화령검객이 동시에 물체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두 사람 역시 똑같은 암기에 당했다.

"이게!"

-마취 침으로 인해 기절했습니다.

화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화령검객은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마취 침은 NPC들만이 사용하는 아이템이었다. 마취를 시켜서 그런지, 방어력이 무한정으로 올라가 마취 상태에서는 죽일 수가 없었다. 다만 어디로 끌고 갈 때 쓰는 아이템이었다.

모두가 쓰러지자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소뇌음사의 라마승들이었다.

"옮겨라."

나지막하게 말하는 인솔자의 명에 세 사람을 둘러업고는 어디론가 이동을 하는 소뇌음사의 라마승들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으으으!"

필살검은 신음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필살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그만 방에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이 다였다.

주위에는 함께 있어야 할 역발산과 화령검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따로 감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지? 누가 우리를 기습했지?"

필살검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들을 죽이지 않고 이렇게 감금만 시켜 놓은 이유를. 그리고 그 정점에 있을 대학사가 떠올랐다.

"대학사인가?"

필살검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보다는 다른 이들이 더 걱정이 되었다.

"그나저나 산이랑 화령이는 어디에 갇혀 있는 거지? 야, 역발산! 내 목소리 들리냐? 화령이는?"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일단 산이와 화령이를 찾는 게 급선무인데. 나 역시 이곳에서 빠져나갈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군. 참 게임 멋지게 만들어 놓았어. 만약 내가 이렇게 잡혀 있는데 접속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필살검은 생각이 끝나기 전에 접속을 해제해 버렸다.

역발산은 자신이 갇혔다는 것을 알고 철문을 강하게 때려 봤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다.

"헉헉! 도대체 누가 날 이렇게 가두었을까? 시팔 놈들, 자기끼리만 살겠다고 도망가고!"

역발산은 자신이 혼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필살검과 화령검객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다.

"뭐, 두 놈 다 도망갔다면 한 놈이라도 다른 녀석들에게 알리겠지."

마음 편하게 생각한 역발산은 그 자리에서 드러누워 이내 눈을 감았다.

화령검객은 두 사람보다 조금 나은 환경이었다.

두 사람이 갇힌 장소가 감옥 같은 곳이라면, 화령검객은 또 다른 곳이었다.

규방으로 보이는 곳에 자신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선계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눈에 넓은 정원이 들어왔다. 수많은 꽃이 계절을 잊은 듯 화원을 수놓았고 한쪽에는 정자가 있어 그 운치를 더했다. 화원과 정자 사이를 둘러 흐르는 조그만 물길이 신기해, 화령검객은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마취 침에 의해 쓰러졌다는 것이 생각났다.

화령검객은 왜 자신들을 납치해서 이런 곳에 가두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연락을 해 두어야겠다."

화령검객은 현수와 건에게 각각 전서구를 날렸다.

-전서구를 보낼 수가 없는 곳입니다.

알림 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화령검객이었다.

"전서구를 보낼 수 없는 곳도 있단 말이지. 그렇다고 연락을 못 하는 것도 아니지만, 뭐!"

화령검객은 즉시 접속을 끊었다.

유저와 NPC의 차이점이었다. 접속을 해제하고 일단 자신들이 어떠한 무리에 잡혔다는 것을 알리려고 생각한 화령검객이었다.

* * *

내원의 구석에서 체력을 회복한 현수는 거와를 잡기 위해 나섰다. 낮에 건과의 사냥에서는 모든 실력을 보이지 않았기에 지금은 충분히 거와를 혼자 잡을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3배의 경험치를 독식하니 그 정도는 손해를 감수했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뇌전류!"

거와를 향해 일 검을 뻗었다. 거와는 현수의 무공에 힘없이 뒤로 물러나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거와의 입에서 기다란 혀가 현수를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늪이라는 것이 현수의 발목을 잡았다. 이에 약간의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서는 현수였다. 늪보다는 마른 땅을 찾아야 했다.

"저곳으로 움직이자."

조금 넓은 바위가 보여 달려가는 현수를 거와가 따라왔다. 바위 위에 올라서자 현수는 몸을 돌려 다시 거와를 공격했다.

"호심발도술!"

쿠엑!

소리만 요란했지 충격은 별로 입지 않은 듯한 거와는 현수를 향해 뛰어올랐다.

"뇌전류!"

충격에 의해 다시 밀려난 거와는 바위 위로 올라서려고 노력했다. 현수는 거와가 뛰어오를 때 공격을 해서 바위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혹시!"

현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단순이 혀로만 공격하거나 가끔 몸으로 공격하는 거와를 보고 만일 혀를 잘라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수가 있는 곳 역시 거와가 혀로 공격하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기에 거와가 필사적으로 바위 위로 오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거와를 1마리 잡은 현수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 또 다른 거와를 찾았다.

"뇌전류!"

스츄츄츄!

쿠에에엑! 쿠엑!

거와는 현수를 향해 혀로 공격을 했다.

순간의 타이밍을 잡아 날름거리는 거와의 혀를 잘라 버렸다. 공격의 수단을 잃어버린 거와는 그때부터 거와가 아니었다.

대왕 멧돼지와 같은 방법으로 저돌적이게 몸통으로만 공격을 해 왔다. 운중무영보는 거와가 따라잡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현수는 운중비록과 팔검수화진검류를 사용해 간단히 잡아 버렸다.

인간의 욕심은 한계가 없다. 현수 역시 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조금은 무리수를 두었다. 혀만 잘라 낸다면 두세 마리 정도는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위 위에 서서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쯤은 쉬울 것 같아 보였다. 결정하면 행동으로 옮겼기에 현수는 주저함이 없었다.

"뇌전류! 운중광속신형보!"

거와 1마리의 혀를 자르고 빠르게 다른 놈에게 이동을 해서 또다시 뇌전류를 사용해 놈의 혀를 잘라 버린 후, 현수는 바위 위로 이동했다.

전면에서 2마리의 거와가 뒤를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현수는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가 뛰어오르는 거와를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다.

"팔검수화진검류!"

2마리의 거와는 올라오려 애썼고, 현수는 그것을 막으려고 애썼다. 뇌전류나 호심발도술보다 파괴력이 약한 팔검수화진검류였지만 동시에 여럿을 상대하는 데는 유리한 무공이었다.

"하하하하!"

현수는 내원이 떠나갈 정도로 웃음을 흘렸다.

방법을 알고 나니 경험치를 올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장난이 아니군. 레벨 업은 금방 하겠다."

거와 1마리를 잡는 데 0.3%가 올랐다. 쉽게 말하면, 약 340마리만 잡으면 레벨 업이라는 말이었다.

"한 놈을 잡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훨씬 빨리 업을 할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거와를 사냥하며, 현수는 착실히 경험치를 쌓아 갔다. 그리고 간혹 나오는 아이템이 현수를 기쁘게 했다.

"호심발도술!"

역시나 날름거리는 혀를 향해 공격한 현수는 당연히 잘리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나 방심이 현수를 힘들게 만들었다. 한 번 충격을 받은 현수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악!"

타이밍을 놓친 현수는 거와의 혀에 공격을 당했다. 딱 한 방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었다. 방어구가 변변치 않은 현수는 급하게 몸을 뒹굴었다.

"젠장!"

체력의 3분의 2가 날아가 버렸다.

"타이밍이 문제다."

뇌전류보다 조금 느린 호심발도술을 사용한 것이 타이밍을 놓친 이유였다. 한 번의 실수는 죽음으로 연결되기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위 위로 올라와 거와를 사냥하면서 타이밍을 잡기 위해 꼼꼼히 생각하는 현수였다.

현수는 최대한 집중했다. 거와가 입을 벌리는 순간, 혀가 나왔다가 순식간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입을 벌릴 때다! 뇌전류!"

쿠에에엑! 쿠엑!

현수의 예상대로 거와의 혀가 잘려 나갔다. 1마리를 잡고 나서 현수는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쉬었다. 그때 다른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콰광!

"누구지?"

현수는 방각의 말을 듣고 아직까지 내원에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만 사냥하고 있는 줄 알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즐거워했다. 다른 유저가 있다는 것을 알자 바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다른 유저는 상당히 편하게 사냥을 하고 있었다. 거와가 다가오면 밀어내고 또 다가오면 밀어내고 하는 방식이었다. 현수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온 사람 중에 몬스터를 밀어내는 무공을 사용할 자는 최건뿐이었다.

"시팔 놈! 역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

승천룡 최건이었다. 그 역시 현수와 사냥을 할 때 자신의 모든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수는 웃으며 건에게 다가갔다. 건 역시 현수를 알아보았는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무공을 대성했냐?"

"그런 넌 레벨을 벌써 올렸냐?"

"하하하!"

둘은 신 나게 웃었다. 경험치 면에서는 현수가 손해였지만 함께 사냥을 했다. 레벨이 높은 사람과 함께 파티를 해서 그런지, 혼자 1마리를 잡으면 0.3%를 올리는데, 지금은 7마리를 잡아야 1%를 올렸다.

최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빨리 잡아서 레벨 업 속도도 빨랐다. 현수가 거와의 혀를 잘라 버리면 그 후 건이 거와를 잡았다.

현수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오대세가의 사냥법을 보고 몰이사냥이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눈에 보이는 거와의 혀를 잘라 내며 건의 주위를 돌았다. 1마리, 1마리 모이기 시작한 거와는 마치 유치원생들이 소풍을 가듯 현수의 뒤에서 뛰어다니며 따라왔다.

건은 그런 모습이 웃겨 사냥을 않고 구경만 할 뿐이었다.

"빨리 잡아!"

"야! 그런데 그놈들, 네가 엄마인 줄 아나 보다.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상당히 귀여운데? 죽이기 아깝다."

"야, 힘들어 죽겠다. 어서 잡아!"

현수의 투정에 더 이상 구경만 할 수가 없는지 건은 거와들을 공격했다.

한 줄로 늘어선 거와들은 건의 무공으로 인해 뒤로 물러났다.

"팔검수화진검류!"

뒤로 물러난 거와들을 공격하는 현수였다.

거와들은 충격을 받으면서도 현수와 건에게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가까이 오면 건이 파멸겁으로 뒤로 물러서게 만들고, 물러난 거와를 현수가 또다시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많은 거와를 한 번에 잡으니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손발이 잘 맞아 사냥하기가 편했다.

현수는 모두를 잡아내고는 숨을 고르고 건을 보았다.

"얼마나 했냐?"

"레벨 업 전이다. 넌?"

"나 역시!"

두 사람은 바위 위에서 쉬면서 지친 체력을 보충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봤는데, 방각이가 문파원들과 이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더라."

"그래?"

방각 역시 현수, 건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거와를 비롯해 독각혈망 등등을 보다 쉽게 사냥하는 법을 터득했다.

굳이 알고 있는데 사냥을 안 할 방각이 아니었다. 문파에서 최고수들을 모아 파티를 맺어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놈, 한 문파의 수장이 되니 머리가 빨리 돌아가네."

"그래! 천마 방각, 천마의 유전을 잇는 놈이야. 비록 대성은 못 했다고 하지만 그 던전에서 천마의 유전을 발견하고 이은 머리니까 어느 정도는 돌아가겠지."

"천마라… 내가 베타 시절에 일마였는데 이제는 방각한테 빼앗겼네. 아깝다."

현수는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천을 하면서 그래도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려 준 호칭을 이제 다른 사람이 쓴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혁무기 그놈이 검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일황이라는 타이틀은 무기에게 넘어갔다."

같은 처지가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했다.

"야! 그래도 넌 승천룡이라는 칭호를 얻었잖아?"

"승천룡?"

"그래!"

현수는 오대세가의 유저들에 대해 최건에게 이야기했다. 또한 건의 별호가 승천룡이라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건의 반응은 조금 냉소적이었다.

"십룡오봉? 웃기는군."

"뭐가?"

"생각해 봐라. 그럼 정도에서 15명이 제일 뛰어나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정도 NPC들 중에서 나보다 강한 놈들은 부지기수다. 그리고 말이 십룡오봉이지, 내가 그들과 같은 수준이냐?"

자화자찬을 하는 경우도 지랄 같다.

"야! 사신 낭객이라는 미친놈보다는 낫다. 그리고 그들은 몰이사냥을 한다. 오대세가는 레벨 업을 하는 건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

"그야 당연하겠지."

"그럼 중도를 걷는 우리와는 차이가 갈수록 벌어질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애들도 이곳으로 데리고 왔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건은 아직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직은 무리다. 그들의 레벨은 64다. 또 역발산 그놈은 이곳에 오면 정도나 사도에 시비를 걸 것이 뻔하다. 그럼 서로 피곤해진다."

어딜 가나 그런 놈이 있다. 많고 많은 것이 몬스터인데 꼭 그런 걸로 싸우는 놈들이. 그런 놈이 바로 역발산이다.

"그들이 스스로 이곳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너와 나에게는 좋다. 또한 우리는 이곳에서 나온 아이템으로 그들의 장비만 맞추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 역시 곧 이리 올 거야."

건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역발산이 보기에 조금은 똑똑해진 것 같아도 여전히 천연회의 불안 요소였다.

현수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 참, 너! 이번 기회에 십룡오봉인가 하는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냐?"

"왜?"

현수는 다른 세력들과 친분을 유지해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어떨까 이야기했다.

"각 문파에 소속된 유저들이라 그건 조금 힘들지 않을까?" 어차피 그들은 문파에서 결정을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잖아."

"그래도 개인적으로 도와줄 수도 있으니 모르지. 혹시 아냐? 그러다 진짜 세가 하나를 크게 물지."

"한번 노력해 볼게. 그리고 애들한테 연락 없지?"

"동영으로 간 놈들은 연락이 왔는데 서장으로 간 놈들에게는 연락이 없어."

"혹시 이것들, 사고 친 것 아닐까? 역발산이 말이야. 동영에서 연락 온 것은 나도 받았어. 비록 아이템은 한 단계 낮아도 경험치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던데."

"글쎄, 역발산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하지만 화령이랑 살검이가 함께 있잖아."

건이 이번 기회에 서장으로 가서 레벨 업을 하자는 제의를 했지만 현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냥법을 알고 있는데 굳이 서장이나 동영으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아이템 역시 한 단계 낮은 수준이라 현수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세외로 도망간 대학사 일행은 하오밀문과 애들이 알아봐 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소재만 파악되면 현수는 세외에 가서 복수할 생각이었다.

둘은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이번 사냥의 성과로, 현수는 레벨 업을 하면서 장비를 모두 맞출 수가 있었다. 또한 건 역시 장비를 모두 교체했다.

순발력 플러스 10의 아이템을 갖춘 현수는 보다 편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의 게임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잠시 후 다시 접속을 해 주십시오. 강제 종료 시간 30분이 남았습니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분을 섭취하고 다시 게임을 하라는 메시지였다.

"너 다른 스탯은 제외하고 오직 민첩성에 투자한 데다, 아이템 스탯이 순발력이야?"

"응! 남자는 한 방이야. 민첩성이 좋아서 회피를 잘하지, 순발력이 높아 치명타가 잘 들어가지. 사냥하는 것과 PK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체력과 힘이 부족해 많은 것을 들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앞으로도 죽 이렇게 간다."

건은 환골하면 실수로 무공을 얻기 전에 분배한 스탯을 바꿀 생각이었다.

"그럼 이제 얼마 남았는데?"

"16레벨만 업 하면 2차 전직을 할 수 있다. 도를 전문적으로 해서 2차 전직 무공서를 얻을 생각이야."

현수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2차 전직을 하면 무공서를 얻는다니!

"뭐야? 전직하면 무공서도 얻어?"

"그래. 지금은 무사지만 도객으로 전직을 할 거야. 그럼 도에 관한 전직 무공서를 얻을 수 있어. 그런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 일단 도객이 되어 봐야 알겠지."

현수는 건이 조금 부러웠다. 현수는 멸친어린청룡군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전직을 할 수 없었다.

하긴 무공서가 그리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문 무공서이기에 팔아도 약간의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강제 종료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건을 비롯해서 천연회의 일행 모두가 같은 시간에 접속을 하기에 건 역시 알림 메시지를 보았다.

"난 가야겠다. 수아와 저녁 약속이 있다. 어디 함께 갈 때가 있다고 하네. 또 부모님도 한번 만나 봐야 하고."

"너도 결혼하냐?"

"그래. 올 가을쯤에."

"다 가는구나."

건이 떠나고 나자, 혼자 남은 현수는 거와를 보았다. 그러고는 접속을 해제했다. 만사귀와 건이 결혼을 한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은 심란했다.

"결혼이라… 좋겠다. 건이야 잘 사는 데다 사법고시를 2차까지 합격했으니 걱정이 없겠지."

손자를 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자신의 형편을 생각해 보았다. 현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괜히 데리고 와서 고생을 시키는 것보다 지금처럼 혼자가 낫겠지."

구미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휴… 어디에 있을까. 현실에서는 못 하지만 가상현실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한다."

호감도가 100이 되면 NPC와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천의 시스템에 희망을 걸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야는 현수에게 잔소리를 했다.

-현수 님께서도 주책이십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NPC와 결혼하는 것이 뭐 어때?"

-아닙니다. 다만 어머니께서 현수 님을 걱정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추천하는 여자가 있는데,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현수는 야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봤다. 집에만 있는 야가 알고 있는 여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누구? 그리고 네가 아는 여자가 어디 있어? 나 놀리려고 하는 거지?"

-아닙니다, 현수 님.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믿을 건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와 말장난을 하고 있던 현수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좋아! 그럼 누구?"

-아래층 수진 씨라면 현수 님과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통통하지만 그만한 여자는 찾기 힘듭니다. 현수 님께서 천을 하실 때 가끔 올라와서 저의 대화 상대를 해 주는 것을 보면, 마음까지 착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외동딸이니 이 집 역시……. 그러고 보면…….

현수는 쉴 새 없이 떠드는 수진이 떠올랐다.

"야! 너 그렇게 계산하는 것 아니다. 사랑이 돈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야. 또 왜 함부로 문을 열어 주는 거야?"

-심심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현수 님께서 아래층에 인공지능 컴퓨터 한 대만 사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말이 사실이지, 세상에 수진 씨 같은 여자도 찾기 힘듭니다. 구미호에 대한 환상을 접고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그만 하자, 야! 나, 나갔다 올게."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도 생각은 해 보십시오.

현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대문 앞에서 수진과 마주쳤다.

"아저씨, 어디 나가세요?"

"네, 답답해서 밖에 나가요."

"또 술 마시러 가세요?"

현수는 순간 당황했다. 전에 수빈을 만났을 때 기분이 상해 술을 마시고 집 앞에서 추태를 부린 별로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게 아니고……."

"그럼 잘됐네요. 저도 나가는 길인데 함께 가요. 제가 좋은 데 데려갈게요."

다짜고짜 팔짱을 끼는 그녀의 힘에 의해 밖으로 나섰다. 현수는 수진이 힘까지 좋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녀의 차에 올라타서 간 곳은 다름 아닌 오페라 하우스였다.

"어! 여기는……."

"여기 잘 아세요? 저는 처음 오는 곳인데. 오늘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모두가 짝이 있어요. 저만 빼고."

현수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야의 말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고개를 흔드는 현수였다.

"휴!"

안으로 들어서자 종업원들이 인사를 했다.

수진은 공손이 인사를 하는 종업원들을 보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현수는 이곳에 자주 다녀서 그런지 자연스레 마주 인사를 했다.

"그런데 무슨 모임인가요. 동창회?"

"아니요. 십룡오봉의 모임이에요. 아저씨도 알고 있죠, 우리 십룡오봉? 그런데 오늘 승천룡하고 녹봉이 온다고 해서요. 녹봉은 가끔 보지만 승천룡은 오늘 처음이거든요. 사실 녹봉이 만날 때마다 남자친구가 없다고 놀려서 아저씨를 데리고 온 거예요.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알았죠?"

현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천룡이 온다는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승천룡은 건이다. 건은 수아와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녹봉이라는 사람이 수아인가 하고 생각한 현수였다.

"저기들 모여 있네요."

몇몇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눈에 익은 사람도 보였다. 아마 아레스인 것 같았다. 모두가 천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짝으로 함께 앉아 있는 이들도 있었고, 아레스처럼 혼자 앉아 있는 사람도 몇 있었다.

"언니!"

수진은 현수를 붙잡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왔니? 누구야? 우리 수진이가 남자를 다 데려오고?"

"멋있지? 인사해! 언니도 자세히 보면 알 거야. 미호랑객, 전에 이야기했지? 우리 집 2층에 사는 아저씨라고."

아레스는 현수를 자세히 보더니 이제야 알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아! 그렇구나. 실물이 더 나아 보이네요. 앉으세요."

현수는 수진의 옆에 앉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파와 시비가 붙었는데 별것 아니라는 둥 하는 약간은 시시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역시 이들은 우리와 조금 다르네.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도 건전한 것 같고.'

현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들의 관심사는 재미였다. 물론 돈을 버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주로 그런 말들이었다.

천연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천연회의 사람들은 돈이 목적인, 일반적인 용돈 벌이가 아니라 실제로 게임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부르주아 백수들이었다.

현수는 이 자리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건이 수아와 함께 들어왔다.

"어서 와!"

다들 알고 있다. 그럼 수아가 이들이 말하는 녹봉이 맞다는 뜻이라 현수는 수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 현수 오빠, 여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냐, 이곳에?"

"잡혀 왔다. 넌 수아랑 약속 있다면서?"

"나 역시 수아에게 이곳으로 잡혀 왔다."

수진은 현수의 옆구리를 찌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저씨, 녹봉과 승천룡하고 아는 사이였어요?"

"네."

"햐! 그럼 아저씨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천마 방각도 알고 승천룡도 알고. 그럼 혹시 검황 아저씨도 아세요?"

검황은 현 천지회의 회주 혁무기를 말한다. 건에게 맞아 가며 배운 실력으로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네요."

이들은 모임은 그저 만나서 밥을 먹고 그간 천에서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게 다였다.

"저기, 그런데 현수 씨는……?"

"서생이야. 그렇다고 무시하지 마. 과거에 급제를 해서 지금은 황궁에 있으니까."

수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혹시나 이들이 현수를 무시해서 현수가 무안할까 봐 배려를 하는 것이었다.

현수는 수진을 보았다. 일상생활에서 남을 배려할 줄 안다는 것은 그냥 알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세요."

현수를 아는 아레스와 수아를 제외하고는 조금 표정들이 바뀌었다. 십룡오봉이 모이는데 감히 서생 나부랭이가 왜 이곳에 왔냐 하는, 조금 신경을 거슬리는 표정들이었다.

수아가 조금 당황한 나머지 난색을 띠며 말했다.

"현수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구나, 다들?"

수아는 현수를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다. 이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다.

"현수 오빠가 베타 시절에 일마였어. 일마 이현수, 몰라?"

"수아야, 그건 다 지나간 이야기다. 그리고 난 서생이 맞아."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어색한 자리였는데 기회다 싶어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했다.

"저 가야겠어요. 마음도 울적한데 황궁에 연락해서 황군을 동원해 무림을 한번 쓸어버리라고 폐하께 이야기해 봐야겠어요. 제가 황궁에서는 지위가 조금 높거든요."

현수는 성격상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모두 믿기지 않는지 조소를 띠었지만, 수진의 인상은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다.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현수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했다. 물론 그 대상이 야에게만 국한된 것이지만 비교적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현수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도 솔미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수진이었다. 수진은 자존심이 강한 현수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저씨!"

"농담이에요. 저 갈게요.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건 역시 현수가 일어나는 것을 보자 함께 일어났다. 이들은 아직 천연회에 비하면 애들이었다. 건은 이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아직 우리와 레벨이 다르다. 알량한 명성을 믿고 있는 이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그러고는 수아를 보고 다독였다.

"수아야, 나중에 어머니께 인사하러 가자. 오빠는 현수와 나가서 소주나 마셔야겠다."

현수는 건과 함께 오페라하우스를 나갔다. 현수와 건이 나가자 수진의 표정은 울 것만 같아 보였다.

"도대체 왜 그래? 왜 그런 표정들을 지어? 아저씨가 서생이라고 하니까 그런 표정들을 짓는 거야? 그런 거야?"

수진이 역정을 내며 말했다.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이 무안을 당해 나갔다고 생각하자 미안하기도 했다.

수진은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이곳은 십룡오봉이 모이는 자리이지, 서생이 올 자리가 아니다."

"그래? 그럼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무인이라 괜찮고 아저씨는 서생이라 안 되는 거야? 다들 그런 생각이야?"

수진은 그들과 함께 있는 짝들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이미 나가 버린 현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진은 현수를 찾아 밖으로 나가려 했다.

"수진아."

"언니, 나 괜찮아. 그냥 이 모임에서 빠지면 돼. 솔직히 내가 십룡오봉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당가 때문이지, 실력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잖아. 미안해, 언니."

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아레스는 변해 버린 분위기에 한숨을 쉬었다. 아레스는 현수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이들에게 가르쳐 주어 혹시나 일어날 불상사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휴… 오늘의 모임은 별로구나. 그리고 다들 이것은 알아 두었으면 해. 오늘 본 서생은 그냥 서생이 아니야. 과거의 일마 이현수이고, 현재의 그 역시 보통 서생이 아니야.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난 조금 알아. 난 그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아레스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말하자 모두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아레스를 보았다. 그리고 수아 역시 아레스를 보았다.

"유저들이 그에게 사신 낭객이라는 별호를 붙여 주었어. 그는 신비 이객 중 1명이야. 그저 죽음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우리보다 더 강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기도 해. 이건 내가 직접 봤으니까. 다시 말하면 그는 기인이야. 우리보다 먼저 천의 한쪽에 이름을 올려놓고 게임을 하는 인물이야. 그것만은 알아 둬! 그리고 그와 쓸데없이 싸우려고 하지 마. 백 번을 싸우면 백 번 다 질 테니까."

모두 아레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보았으나, 수아가 그들의 표정에 못을 박았다.

"맞아. 언니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현수 오빠는 상당히 강해. 아침에 20명의 천마회의 인물들에게 에워싸였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을 몰아붙였어. 또한 천마 방각도 현수 오빠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 물론 과거에 일마이니까 다 아는 사이라서 그렇다고 생각을 하겠지.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난 어제 아침에 탑리목 분지의 내원으로 들어가 사냥을 했어. 천마 방각과 건 오빠와 현수 오빠와 같이. 그리고 천마 방각은 돌아갔고, 나 역시 돌아왔지만 건 오빠와 현수 오빠는 둘이서 내원에서 사냥을 했어. 현수 오빠는 그 정도로 강해. 현수 오빠의 성격으로, 오늘 자신이 받았다고 생각한 수모는 그냥 지나가지 않을 거야. 어떻게 보면 이건 일마 이현수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해도 될 거야. 나 역시 십룡오봉에서 빠지겠어. 오늘 그 말을 전하러 온 거야."

수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빠져나왔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이들의 모임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오페라 하우스를 나갔다.

* * *

건과 현수는 단골집에 가서 소주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이해해라."

"뭐?"

"오늘 일."

많은 대화가 필요 없다. 현수는 건이 이래서 좋았다. 짧은 단문의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수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있었네."

뒤를 돌아보니 수진이 서 있었다. 성큼 다가와서는 현수의 곁에 앉는 수진이었다. 뜻밖에 나타난 수진을 보고 현수는 이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집에 전화를 하니까 야가 말해 주던데요? 갈 만한 곳을 정해서, 차에 있는 GPS로 약도를 보내 줬어요. 그 컴퓨터 참 신기해요. 알아서 다 하니 말이에요."

인공지능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집들은 많다. 하나 야와 같은 컴퓨터는 현수가 생각했을 때는 아마 없을 것 같았다.

"수아도 이리 올 거예요. 성격상 오래 앉아 있지 못할 것이니."

역시나 조금 있다 수아 역시 찾아왔다.

"여기 있었네, 오빠들. 어? 명월이는 어떻게 알고 여기에 왔어? 내가 전화하려고 했는데."

수아는 수진이라는 이름보다는 명월이라는 아이디가 더 입에 익숙한지 그냥 명월이라 불렀다.

"어떻게 하다 보니. 앉아."

말없이 소주잔만이 왔다 갔다 했다. 주위에서 가끔 천의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이들과는 상관이 없었다.

"저기, 아저씨. 미안해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닌데."

수진은 현수에게 미안한 감정뿐이었다. 괜히 함께 갔다가 무안만 당하고 그냥 나온 현수를 보며 미안해서 말하는 수진이었다.

"아저씨, 내가 무공을 가르쳐 드릴까요? 당가의 무공도 괜찮은 것이 많은데."

수아의 뒷이야기를 듣지 못한 수진은 현수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생각으로 물었다.

"풋!"

"하하하하!"

건과 수아는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수진은 왜 이들이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냥, 천하의 명월이가 현수 오빠에게 꼼짝을 못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해서."

"그런 말 마! 오늘 얼마나 미안했는데. 그 사람들 표정 봤지? 꼭……."

벌레가 지나가는 것을 본 듯한 표정을 짓는 수진이었다.

"현수야, 명월 씨가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배워라."

"아 씨! 장난하지 마."

현수는 건의 장난스러운 말에 역정을 내었다. 수진은 그런 현수가 조금 섭섭했다.

"왜요? 당가의 무공이면 다른 사람들한테……."

수아가 수진이에게 현수가 무공을 익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명월아, 현수 오빠는 지금 무공을 익히고 있어. 그것도 상당한 무공을."

서생으로만 알고 있던 수진은 현수를 보았다. '진짜?' 하는 표정이었다.

"미안해요. 속이려는 마음은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수진은 현수를 보고만 있었다. 왜 말을 안 했냐는 그런 눈이었다. 건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말했다.

"자! 그만 일어나자. 난 수아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실 의무가 있으니. 내일 천에서 보자."

건과 수아는 자신들의 길을 가고, 현수와 명월은 집으로 향했다. 차를 근처 주차장에 넣어 놓고는 천천히 걸어서 가는 두 사람이었다.

"아저씨."

팔짱을 낀 수진은 현수를 바라보았다.

"왜요?"

"혹시 애인 있으세요?"

현수는 구미호가 떠올랐다.

"네, 있어요."

"핏, 재미없다. 야는 없다고 했는데. 숨겨 둔 애인이에요?"

도대체 야 이놈이 수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짐작이 안 가는 현수였다.

"오늘은 정말 미안했어요. 다음에 우리 당가에 놀러 오세요."

"그렇게 할게요."

집에 도착한 현수는 씻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난 현수는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는 빵과 우유로 식사를 해결했다.

-화령 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야는 지금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잡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대학사 쪽이 아닐까 합니다. 굳이 무엇인가 알아볼 것이 없으면 가둘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역발산 님을 비롯한 이들이 대학사의 일행을 찾고 있다는 것이 대학사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대학사와 1황자의 실력으로는 3명 다 못 잡을 것 같은데?"

현수는 무공을 알지 못하는 대학사가 그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아마 서장의 어느 무림 단체에 몸을 의탁했을 것입니다.

"어디?"

-제가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아닌 이상 알기는 힘들지만, 역발산 님을 비롯해 화령 님이나 필살검 님을 잡을 수 있는 문파는 몇 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확히 그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서는 다음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지 못하고 덤비는 현수가 아니었다.

"그렇게 할게. 또 내가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이 있어?"

-특별하게는 없습니다. 다만 수진 씨와 자주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하지 마!"

-알겠습니다. 수진 씨께서 아침에 일어나면 드시라고 꿀물을 타 왔습니다. 식탁 위에 있습니다.

현수는 그제야 노란 컵에 담겨 있는 꿀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 함부로 문 열어 주지 마."

-참 좋을 때입니다. 그러고 보면 수진 씨가 딱 조강지처감 아니겠습니까? 숙취에 좋은 꿀물까지 타 오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아, 부럽습니다.

"야!"

-오늘도 수고하십시오.

그 뒤로 야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현수는 번번이 당하면서도 한 번은 이겨 봐야지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언젠가 복수하고 만다.'

현수는 천에 접속해서 건을 만나 사사혈천의 내원으로 향했다.

현수와 건은 레벨을 최대한 빨리 올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상태라, 둘은 눈빛만으로 자신의 맡은 책임을 다했다.

가끔은 옥신각신했지만, 이것은 보다 나은 사냥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휴… 지겨운 노가다군. 이제 레벨 업을 하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가장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둘의 목표는 사사혈천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현수와 건이 힘을 합쳐 입구를 지키는 사사혈천의 경비 무사들을 사냥해 보았지만, 아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상태였다.

어떤 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둘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레벨을 올리고는 보너스 스탯을 자신들이 원하는 능력치에 투자한 후, 가운데 있는 사사혈천의 본전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하면 들어갈 수 있겠다."

현수와 건은 빠르게 레벨 업을 하며 사사혈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 본 후 알아낸 가장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현수의 민첩성을 이용해 몬스터들을 몰아서 넓은 바위까지 유인한 후 올라오려고 하는 몬스터를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사냥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실험 결과, 최대 4마리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면서 공격과 수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자, 사냥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사사혈천의 내원에서 사냥하는 무리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특히 천마회의 방각을 비롯한 고수들이 9명의 풀 파티를 짜고 사냥을 했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천지회의 혁무기 역시 내원으로 들어와 사냥을 시작했다. 천지회는 현수나 건, 방각처럼 빠른 속도로 사냥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파 제일의 문파에 걸맞게 빠른 시간에 탑리목 분지의 내원을 잠식해 들어왔다.

"자식들,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데."

"그러게. 무기 녀석은 드라마 찍느라 바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건과 현수는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천지회의 회주 혁무기를 보며 감탄을 자아내었다.

"건아, 그런데 무기 녀석의 무공이 심상치 않은 것 같지?"

"그러게. 조금 센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저놈도 하나 찾은 것 아니야?"

혁무기 역시 10개의 던전 중 하나인 검황의 무상결검을 찾아 익혔다. 아니 찾아 익혔다기보다 무상결검의 단서를 쥐고 있는 스승을 만나 그에게 무상검결이 있는 곳을 들어 알 수 있었다. 또한 천양신과라는 영약을 복용해 기력을 높일 수 있었다. 기력이 높아진 혁무기는 검황의 무상검결을 익히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럼 2개가 등장했단 말이지."

현수는 내심 자신의 무공도 10개의 던전 안에 속하는 무공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그런 정보를 알려 줄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고 해도 건은 현수가 인정하는 유일한 적수였다. 아마 건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넌 구미호에게 배운 것 없어? 구미호가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잖아?"

"아니. 내가 퀘스트를 해서 찾아갔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탄 후였어. 그나마 아가씨에게 조금 배운 것이 다야."

건은 현수가 구미호와 함께 지냈다는 사실을 야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곧이곧대로 믿을 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부러 자신의 무공이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이란 것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악!"

둘은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5명의 사람들이 혈사투망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 3명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엇!"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난리군."

오대세가의 사람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십룡오봉의 다섯 사람들이 내원으로 사냥을 하기 위해 들어왔다가 늪에 숨어 있는 혈사투망에게 당하고 있었다.

명월은 혈사투망의 몸에 감겨 있었고 아레스는 부상을 입었는지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다른 세가의 사람들은 혈사투망의 위협에 한발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명월은 이들과의 함께 사냥하기 싫었지만, 아레스의 부탁으로 함께 사냥에 나선 것이었다.

"동료가 죽게 생겼는데 뒤로 물러나 구경을 해? 그리고 죽으면 아마 저것들은 도망가겠지."

건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는 혀를 찼다.

혈사투망이 명월을 감아 몸을 조이고 있는지, 명월의 입에서는 사사혈천의 내원이 떠날갈 것 같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가자. 주인집 딸이다."

"아레스라는 분도 부상이 심한 것 갔다."

현수와 건은 혈사투망에게 달려들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현수의 신형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운중비록, 운중탄영신!"

현수의 신형이 화살이 날아가듯 곡선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날았다. 건은 그 모습을 보고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명월아!"

아레스는 부상당한 몸으로 힘들게 일어나서는 다시 혈사투망을 노려보고는 검을 내리쳤다.

"청풍검법!"

츄츄츄츄!

아레스의 검이 혈사투망을 향해 뻗어 나갔지만, 부상으로 인해 힘이 많이 빠졌는지 혈사투망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악!"

혈사투망의 꼬리가 아레스를 날려 버리고는 더욱 명월을 조이기 시작했다. 명월은 비명을 지를 힘도 없는지, 피가 안 통하는 얼굴이 붉게 물들어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악!"

다른 세가의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움직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의협심에 뛰쳐나가 혈사투망과 싸우다 죽기가 두려웠다.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공이 사라지기에 그들은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현수는 혈사투망의 공격으로 날아가는 아레스를 공중에서 낚아채고는 땅에 착지를 했다.

"괜찮으세요?"

현수는 부상이 심한 아레스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하지만 아레스는 자신의 부상보다는 명월의 상태가 더 걱정스러운지 명월을 걱정했다.

"명월이가, 명월이가……."

아레스는 자신의 부상은 잊은 듯 명월을 걱정했다.

현수는 응급 약재인 청심환을 아레스에게 먹였다. 청심환은 기력을 보충해 주고 출혈을 막아 주는 비상 응급 약재였다.

하나 충격이 심했는지 이내 말을 잇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다행히 죽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내상이라는 것을 입어 이대로 두면 체력의 고갈되어 죽을 것이 뻔했다. 일단 시간을 벌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는 혈사투망을 보았다. 아니 명월을 보았다. 곧 죽을 것 같아 보였다.

"급하군. 승천도!"

건의 도가 하늘로 비상해 혈사투망의 배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어느새 건은 승천도법의 최고 초식인 승천도를 다 익혔는지, 승천도를 사용해 혈사투망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현수 역시 혈사투망의 머리를 향해 공격했다.

"호심발도술!"

혈사투망은 데미지에 몸부림을 쳤다.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명월은 혈사투망의 몸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날고 있었다.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야! 받아."

현수는 명월이 날아가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젠장! 난 왜 이런 일만 하는지… 운중탄영신!"

현수의 신형이 또 한 번 명월을 받아 아레스가 있는 곳으로 착지를 하고는 함께 눕혔다.

아레스와 달리 명월의 몸무게는 현수의 근력으로는 조금 버거운 상태였다. 잠시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건의 외침이 들려왔다.

"현수야! 이놈이 먼저다."

현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날아올랐는지 혈사투망의 눈을 향해 검과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세가의 사람들은 아레스와 명월이 있는 곳으로 와 현수와 건의 무공을 감상하고 있었다. 무공이라면 자신들 또한 부러울 게 없지만 현수와 건의 합격술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연 일마와 일황이다."

"일반 서생이 아니었어. 아레스 누님과 녹봉의 말이 사실이야."

"서생이 저 정도의 무공을 가질 수 있을까?"

세가의 세 사람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현수와 건의 합공은 환상 그 자체였다.

혈사투망은 조금씩 데미지가 누적이 되었는지, 꼬리를 말고 다시 늪으로 숨으려고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하나 이것을 가만히 두고 볼 두 사람이 아니었다.

"노력의 대가는 얻어야지."

현수는 늪으로 들어가는 놈의 머리를 공격했고, 건은 늪을 때려 최대한 혈사투망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았다.

쿠에에엑! 쿠엑!

혈사투망이 항복을 하는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멈추었다. 그러고는 오대세가의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아직 이곳은 무리인 것 같네요. 그러니 외곽으로 가서 사냥하는 것이 좋겠어요."

현수는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아레스와 명월의 친분으로 좋게 이야기했다. 하나 그들은 오대세가라는 자존심이 있었는지 현수의 권유를 거부했다.

"흥! 놈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해서 당했을 뿐이다."

듣고 있던 건은 웃기지도 않는지 소리쳤다.

"그래? 야! 저런 놈들한테 뭐 하러 곱게 말하냐? 그냥 사냥 하다 죽으라고 해. 문제는 이쪽이다."

현수와 건은 부상자들을 살펴보았다. 아레스와 명월은 부상 정도가 심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체력 회복제나 기력 회복제로는 이들을 살릴 수가 없었다. 의원이 있어야 했다. 그것도 상당한 실력의 의원이.

"가자! 방각이 쪽에 의원이 있을 거야. 빨리 가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레스의 부상 정도는 괜찮았지만 문제는 명월이었다. 건은 두 사람을 한 번 보더니 아레스를 안았다. 현수는 건을 보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명월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휴……."

세가의 사람들은 아레스와 명월을 천마 방각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는 현수와 건을 막아섰다. 아마 오늘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이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딜 데리고 가느냐?"

"비켜! 너희들하고 말싸움할 시간 없어. 만약 이들이 죽으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비켜!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십룡오봉이네 하고 깝죽거리기는. 콱! 안 비켜?"

건은 그들과 상대하기가 싫어 강압적으로 말하고는 지나쳐 가려고 했다.

"멈춰! 우리 세가에서 치료한다."

피슝!

"이봐! 제갈현이라고 했어? 비켜. 너희들하고 말싸움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분명히 말해 두는데, 난 내가 받은 것을 철저하게 돌려주는 성격이야. 몬스터에게 죽든지 아니면 그냥 외곽으로 나가서 사냥해. 억울하면 지금 죽여 줄 수도 있고."

현수의 검이 제갈현의 목에 걸려 있었다.

"언제……."

제갈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지난날 자신들이 오페라 하우스에서 현수를 무시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 생각했다.

"야! 시간 없다. 그냥 죽이고 가자. 이것들과 노닥거려 봐야 도움 안 된다."

현수와 건은 그들을 밀치고 방각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노려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자신들은 두 번 다시 아레스와 명월과 함께 사냥을 못 하리라 생각했다.

"의원 불러와! 어서!"

자신을 보자마자 소리치는 현수를 본 방각은 한숨을 쉬었다.

"시팔 놈! 꼭 한창 분위기 좋을 때 초를 치고 지랄이야. 확 죽여 버려?"

방각은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어느새 몸을 돌려 의원을 부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시팔! 언제 저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날지. 천마신공을 빨리 익혀야지."

방각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천마신공을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천에서 최고수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곧 있으면 다 익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살려 줘! 오대세가 사람인데, 곧 죽을 것 같다. 꼭 살려야 돼. 이 애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주인집의 딸이거든. 상당히 시끄러운 애니까 꼭 살려 줘."

'꼭 살려 달라.'라는 말에 힘을 주는 현수를 보며 고개를 돌리는 방각이었다.

의원을 부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으리라.

현수는 건을 보았다. 건은 인벤토리에서 4개의 아이템을 꺼내어 방각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치료비다."

아이템을 받아 든 방각의 얼굴은 순간 부처와 같았다.

"살려! 너, 이 사람들 못 살리면 문파에서 잘라 버릴 거니까 꼭 살려!"

잘라 버린다는 말에 힘을 준 방각은 의원에게 아이템 2개를 내밀었다. 건에게 받은 아이템들 중 의원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건 수고비. 너에게 필요한 것이니까 가지고 싶으면 꼭 살려."

건이 준 아이템들은 플러스 7∼9짜리들로, 내원에서는 조금 드물게 나오는 아이템이었다. 건과 현수는 운이 좋아 높은 수치의 아이템을 몇 개 주웠지만, 그것 이후로 그런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다. 보통 5∼7의 수치 아이템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템 자체에 방어력이나 공격력이 추가 옵션으로 달려 있었다.

아이템에 눈이 먼 의원은 최선을 다해 그들을 살렸다.

"음! 방각이 너, 진짜 한 문파의 수장답다. 이제 보는 눈도 많이 늘었네. 앞으로 천마회는 많은 발전을 할 거야."

건은 방각이 한 필요한 것을 구별하는 행동과 아이템을 문파원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보고는 칭찬했다.

"고맙다!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한 번은 도와줄게."

현수의 말을 듣는 방각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이런 부탁은 계속해도 상관없다. 단 아이템은 확실해야 된다."

아이템의 위력이었다. 세상이 돈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면, 게임은 아이템으로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내원으로 들어온 현수와 건은 아레스와 명월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진짜 잘 만든 것 같지 않냐, 이 게임?"

"가끔 놀랄 때가 있지."

"으으……."

아레스가 눈을 뜨고 나서 조금 있다가 명월이 눈을 떴다. 눈을 뜬 명월은 울기부터 했다. 아마 자신이 죽어 무공을 잃어버린 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울지 마요. 안 죽었으니까 무공은 그대로 있을 거예요."

현수는 명월을 달래기 위해서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명월은 언제 울었느냐는 듯 현수를 봤다.

"정말? 무공 창 오픈!"

-심법

도반삼양귀원공 : 10성 등급 : 일류

설명 : 사천당가의 입문 심법으로, 사천당가의 일반적인 무공을 사용할 때 함께 사용하는 심법

만류귀원신공 : 6성 등급 : 절정

설명: 사천당가의 비전신법으로 사천당가의 절정 무공을 사용할 때 함께 사용하는 심법.

-암기술

추혼비접 : 10성 등급 : 일류

설명 : 사천당가의 비전 중 하나인 암기 수법. 마치 나비가 춤을 추듯 날아가 적에게 타격을 준다.

민첩성 +210%의 타격을 준다.

구독갈미 : 10성 등급 : 일류

설명 : 사천당가의 비전 중 하나인 암기 수법. 암기에 독을 사용해 적에게 지속적인 타격을 준다. 적의 체력을 10초당 10씩 5분간 지속적으로 줄여 준다.

공격력 +100%의 타격을 준다.

만천화우 : 6성 등급 : 초절정

설명 : 사천당가의 비전 중 하나인 암기 수법. 한 종류의 수많은 암기 날려 다수의 적들에게 충격을 준다. 암기가 가벼울수록 적에게 많은 암기를 날릴 수 있다.

사용 제한 : 기력 200 이상.

민첩성 +200%의 타격을 준다.

만류귀종

등급 : 초절정

설명 : 사천당가의 비전 중 하나인 만천화우를 사용하고 그 암기들을 회수할 수 있는 무공.

사용 제한 : 기력 200 이상

-지법

삼양지 : 10성 등급 : 일류

설명 : 사천당가의 비전 중 하나인 지법. 도반삼양귀원공을 바탕으로 사용하는 지법.

도반삼양귀원공이 5성 이상일 때 사용할 수 있다.

순발력 +200%의 타격을 준다.

-장법

삼양신장 : 10성 등급 : 일류

설명 : 사천당가의 비전 중 하나인 장법. 도반삼양귀원공을 바탕으로 사용하는 장법.

도반삼양귀원공이 5성 이상일 때 사용할 수 있었다.

공격 +200%의 타격을 준다.

-금나수

삼양수 : 10성

설명 : 사천당가의 비전 중 하나인 금나수법. 도반삼양귀원공을 바탕으로 사용하는 금나수법.

도반삼양귀원공이 8성 이상일 때 사용할 수 있다.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명월은 자신의 무공 창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레스를 보다가 현수를 보았다.

"아저씨가 날 살려 주셨어요?"

"아니요. 여기 있는 승천룡이오. 전 무공이 강하지 못하거든요."

말 많은 명월을 생각하니 앞으로 피곤할 것 같아, 현수는 모두 건에게 미루었다.

"약은 놈!"

현수의 의도를 알아챈 건은 그를 노려보았다. 애써 건의 시선을 외면하는 현수였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생겼지만 앞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건 아저씨."

"컥!"

명월이 건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아레스 역시 자신의 상태 창과 무공 창을 확인했는지 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도움으로 크게 잃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레스는 전구서를 날렸다. 모두는 남궁세가에 전구서를 보내는 줄로 생각했다.

"조금 쉬세요. 지금 움직이는 것은 조금 무리예요. 치료를 했다고 하나 회복 페널티를 받아 아직 그대로 있는 것이 좋겠어요."

뚜벅뚜벅!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엇!"

현수와 건은 다가오는 사람이 가까이 올수록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베타 시절에 현수와 건이 정과 사를 대표했다면 지금 다가오는 사람은 중립을 대표했던 사람이다. 물론 당시 레벨은 조금 뒤처졌지만 현수와 건이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형님!"

"악비 형님!"

무림 판관 악비! 베타 시절 랭킹 20위. 하나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수와 건 역시 존경했던 사람이 악비였다. 그는 시비의 잘잘못을 가려 주는 판관이나 다름이 없었다.

"잘 있었냐?"

악비는 마치 현수와 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말했다. 아마 아레스가 전서구에 현수와 건의 이야기까지 한 것 같았다.

"형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연락을 여러 번 했는데."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남궁세가의 말지기로 취직한 상태였다."

"말지기요?"

악비는 아레스에게 다가가서는 다정히 물었다.

"조심하지 그랬어. 상처는 치료했고?"

"네, 다행히 현수 씨와 건 씨 덕에……."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악비는 그런 이들에게 쇄기를 박는 말을 했다.

"고맙다. 아내를 도와주어서."

할 말이 없어졌다. 현대판, 아니 무림판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을 보고 있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방각이에게 왔군. 너희들은 의원이 아니라 직접 치료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저쪽의 무기한테는 가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야."

"네, 다행히 방각의 천마회에서 의원을 항시 이곳에 상주를 시키고 있어 늦지 않게 치료를 할 수 있었어요."

"고맙군. 몇 개나 줬냐?"

현수와 건이 악비를 잘 알듯이 악비 역시 방각을 잘 알고 있었다.

"4개요.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명월은 이들의 대화가 궁금했는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가 4개예요?"

"현수와 건이 아내와 너를 치료하기 위해 방각에게 준 아이템의 수가 4개라는 말이다."

"아저씨, 그게 정말이세요?"

명월은 자신의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을 생각하자 방각이 부러웠다. 이곳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모두 상급의 것이라 한 단계 낮은 아이템을 차고 있는 명월은 내심 자신에게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살려 준 것도 고마운데 아이템까지 달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또 한 번 피곤해지겠다는 것을 느낀 현수는 얼른 건에게 바통을 넘겨 버렸다.

"여기서 나온 아이템을 치료비로 준 것뿐이에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사냥하는 시간을 방해했다면 보답으로 약간 주어야 하거든요."

"미안해요. 저 때문에……."

"아니에요. 참, 명월 씨는 아이템을 뭐로 맞추고 있어요? 아까 잠깐 보니 다른 이들보다 데미지를 더 입는 것 같던데."

명월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심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염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명주예요. 아이템 복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 명월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명주는 레벨 30∼40대 사이에 입는 것으로, 옵션이 좋으면 크게 상관이 없지만 70대가 입기는 한창 낮은 아이템 세트였다.

"명월이는 아이템부터 맞추어 주어야겠네."

"아니야, 언니. 괜찮아. 이곳에서는 아이템이 다 상급이니까 나오면 하나씩 맞추면 돼."

"휴……."

현수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러고는 건을 보았다. 건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현수가 한 번 더 인상을 썼다.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그 둘을 보고만 있었다.

"알았다, 인마!"

건의 인벤토리에서 6개의 아이템이 나왔다. 그러고는 명월에게 건네주었다.

"왜……?"

"받으세요. 현수가 주는 선물이에요."

건은 수아에게 주려고 모아 둔 아이템들을 수아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려니 조금 속이 쓰려 왔다.

"하하."

악비가 웃은 이유를 모르는 아레스와 명월은 악비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악비는 현수와 건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저놈들은 일단 자기와 인연이 있는 사람한테는 잘해. 일종의 투자지. 그러고는 투자의 배를 건져 내는 그런 놈들이야. 명월이에게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저놈의 친구들은 두 손을 다 들어. 그런 인간들이 천에서는 한 1,000여 명 정도 돼. 전문적으로 게임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더 많이 있겠지만 1달을 평균으로 잡아 일반 월급쟁이들보다 더 많이 버는 이들이 있지. 특히 저놈들을 비롯해 10명의 인간들은 도가 조금 지나치지. 예전에 만사귀의 부적 배포 사건 알지?"

아레스와 명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에서 단시간에 벌어들인 금액으로는 지금까지도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놈 역시 여기 있는 현수와 같은 인간이야."

명월의 눈에는 현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그런 현수가 서생을 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명월이 현수에게 물었다.

"근데 왜 서생을 했어요?"

"휴… 괜히 형님은. 그냥 아이템 받아요. 제가 2층에 살면서 제대로 인사 한번 못 했잖아요. 야가 명월 씨가 잘해 준다고 칭찬을 많이 했어요."

고개를 흔드는 명월이었다.

"아니에요. 저의 장비가 다 명주 아이템이지만 옵션이 좋아서 이곳은 조금 무리지만 외곽은 견딜 수 있어요."

"수아가 명월 씨의 아이템 이야기를 하루에 한 번씩 해요. 그냥 받아요. 그리고 여자한테는 본전 뽑을 생각이 없으니 그냥 받아요."

건은 수아의 이름을 팔아 아이템을 명월에게 넘겨주었다.

아이템을 확인한 명월은 현수와 건을 번갈아 보았다.

"왜?"

"언니, 나 이거 못 받아."

비단 세트인 아이템 총 세 가지와 동급의 액세서리 세 종류였다. 아이템 옵션은 모두 플러스 10이었다.

현금으로 족히 수백 만 원에 가까운 금액의 아이템들이었다. 명월은 아직 아이템이 현금으로 얼마에 거래되는지 자세히 몰라도, 받은 아이템이 비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받아 둬요. 수아에게 들었는데 십룡오봉에서도 빠지겠다고 했다면서요. 아마 이곳에도 곧 피바람이 불 거예요. 지금은 이곳에서 사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이 되어 어느 정도의 자리를 보존하고 있지만, 천마회나 천지회에서는 그렇게 두지 않을 거예요. 사람이 늘수록 자신들의 자리를 확장시켜야 하니까요. 그들은 같은 정도에 있는 오대세가라 해도 그냥 보고는 있지 않을 거예요. 무림은 힘이 있는 자가 최고니까요."

현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모두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커질 대로 커진 천마회나 천지회가 지금도 조금씩 자리를 넓혀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명월은 아이템을 받아 들고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입어 봐요. 명주 세트는 아이템 거래를 하는 사이트에 올려 경매가를 적어 놓으면 기간 안에 경매를 통해 팔릴 거예요."

처음이었다.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이것이 또 한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현수야, 명월 씨도 천연회에 데리고 와라. 다음 모임에 형님도 오세요. 애들 다 있어요."

"난 지금 만족하고 있다. 비록 말지기이지만 아내와 함께 있잖아."

악비는 지금 상태에 만족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보세요!"

명주에서 비단으로 바꾼 명월의 모습에서 한층 빛이 났다.

"잘 어울리네요."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 하자."

모두 사사혈천의 내원에서 나와 헤어졌다. 명월은 현수를 따라갔고 아레스는 악비와 함께 데이트를 하러 갔다. 건 혼자 접속을 해제하고는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저씨."

"네?"

"저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명월은 현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모두 꺼내었다.

"휴……. 네, 전 서생이에요. 서생은 알고 있는 것처럼 무공이 강하지 못해요. 하지만 전 황궁에서 서생의 무공서 중 ≪팔자영법≫을 사사받았어요. 제가 황궁에 간 목적은 따로 있지만… 그래요. 전 미호랑객이 아니라 사실은 사신 낭객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어요."

현수는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 그리고 그 밖의 무공들을 빼고 이야기를 했다.

현수가 사신 낭객이라는 말을 듣자, 명월의 얼굴은 잠깐 놀랐다는 빛으로 물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저의 레벨이 낮아서 그렇지, 천에서는 랭킹 100위 안에 들 거예요."

"레벨이 낮아요? 얼마나 되는데요?"

"이제 68레벨이에요. 다행히 무공에 빠른 성취가 있어 혼자서 내원에서 사냥을 할 수 있었어요."

"와! 68레벨인데도요?"

70레벨의 명월은 68레벨의 현수가 내원에서 사냥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그거 아세요?"

"……."

"천에는 많은 시스템이 있어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저와 건은 지금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가는 것뿐이에요. 물론 악비 형님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건과 저는 조금 달라요. 사람들은 베타 시절에 1, 2 위를 다투던 사람들이라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에요. 건과 저는 그렇게 올라가기까지 수 없이 죽어 봤고 또 몬스터 1마리를 대상으로 수많은 실험을 하면서 베타 시절에 그런 위치까지 올라갔어요."

명월은 그저 폐인이라 그렇게 올라간 줄 알고 있었다. 천연회를 비롯해 몇몇 이들을 아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방각이 지금 천의 최고수지만 이들에게 한발 뒤로 물러난 것은, 이들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냥 남들처럼 하면 남들과 똑같이 될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더욱 그렇지요."

"왜요?"

"사부라는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노력을 하지 않아요. 사부를 모신 이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명월 역시 당가의 무공을 얻고 부지런히 수련을 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고.

"그러나 절 보세요. 사부를 얻지 못했고 유니크 아이템을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전 누구보다 강한 사부를 모셨고 그 어떤 무공보다 강한 무공을 얻었어요. 그것은 바로 경험과 노력이에요."

일리가 있는 현수의 말에, 어느새 명월은 푹 빠져 들고 있었다.

"무공은 대성이라는 말이 없어요. 수치상의 표현만 있을 뿐이죠."

"풋! 아저씨, 그런데 왜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해 주는 거예요? 아저씨, 혹시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에요?"

"……."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다 왔네요."

어느새 내원에서 나와 외곽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 오늘 아저씨랑 그냥 함께 있으면 안 되나요? 갈수록 오대세가나 십룡오봉들에게 실망을 느껴요. 아레스 언니만 빼고는."

"휴……."

그때 현수의 앞에 령이 나타났다.

"앗!"

긴장을 하는 명월을 본 현수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가하신 모양이십니다, 군."

"헛소리 말고 용무나 말해."

"폐하께서 군에게 드리라는 서찰입니다."

현수는 서찰을 받아 들고는 읽어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물었다.

"황궁의 상황은?"

"모두 파악했습니다. 뜻밖에 평무 장군의 자제인 평설중이 연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무 장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수는 서찰을 보면서 황궁의 상황을 천밀위의 령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명월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요점은 알 수 없었지만 현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전 황궁에서 지위가 제법 높거든요.

예전에 십룡오봉의 모임에서 한 현수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군이라는 말은 천에서 황족이나 왕족에게만 쓰는 그런 칭호였다.

"평 씨가? 오호! 일단 지켜보아라. 평무 장군의 공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라. 그럼 평무 장군은 더욱 폐하께 충성할 것이다. 또 평설중 역시 자신을 도와주는 사사혈천이 무너지면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현수는 서찰에 적힌 내용을 검토해 다시 자신의 의견을 적어 천밀위 령에게 주었다.

"전하라."

"알겠습니다."

천밀위 령은 나타난 것과 같이 사라졌다. 명월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천밀위 령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참! 명월 씨는 지금 당가로 돌아가세요."

"네?"

"이번 에피소드는 아마 중원이 사사혈천의 중원 침공을 막는 것으로 전개될 것이에요. 동영상에서 보셨죠? 광소의 마지막 말."

"네, 그 원한이 맺힌 절규를 들었어요."

"맞아요, 지금 사사혈천의 간세들이 각 명문세가나 구파일방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들을 찾아내어서 당가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세요."

현수의 말은 또 한 번 명월의 입을 막았다.

"생각하면 진짜 잘 만들어진 게임이 아닌가요? 단순하게 레벨 업만 하는 노동 게임이 아니라 에피소드를 진행하면서,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 이빨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진짜예요, 간세가 심어졌다는 것이?"

"네. 인공지능 컴퓨터가 NPC들의 정보를 약간만 바꾸면 되는 것이니까요. 14일, 그러니까 이 주간의 시간이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시간이거든요."

"아저씨, 고마워요. 전 아저씨에게 해 드릴 것이 없는데."

"아니에요. 전 명월 씨에게 벌써 많은 것을 받고 있어요. 우리 집 컴퓨터가 그러는데, 명월 씨가 너무 잘해 주어……."

"참, 아저씨. 그 컴퓨터 얼마에 샀어요? 참 신기해요. 말을 꼭 코미디언 뺨치게 잘한다니까요."

"휴……."

날이 갈수록 기어오르는 야의 실태를 알고 있는 현수는 이제 포기 상태에 있었다.

"고물상에서 주웠어요. 아마 전 주인도 그런 것이 마음에 안 든 것 같아요."

"난 재미있던걸요. 엄마가 칭찬이 대단해요. 한번은 엄마가 '우리도 인공지능 컴퓨터 한 대 살까?' 하는 말을 했을 정도예요."

명월은 현수와 헤어지기가 싫은지 현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랑 같이 당가에 가지 않을래요?"

"나중에 한번 들를게요. 전 아직 일이 많이 남아 있어요. 전 무림인이 아니라 황궁인이거든요. 폐하께서 시킨 일도 있고 또 만나야 할 사람도 있어요."

명월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헤어졌다. 혼자 사냥을 하다 피곤함을 느꼈는지 외곽으로 나와 접속을 해제하고는 잠을 청했다.

* * *

다시 접속한 필살검은 NPC들에게 어디론가 끌려갔다. 필살검이 끌려간 곳은 바로 고문실이었다.

아마 자신들이 대학사의 행방을 수소문한 이유를 물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시팔 놈들아! 그냥 날 죽여라."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바로 역발산이 외치는 소리였다.

'역발산이 저렇게 소리를 칠 정도면 장난이 아닌 것 같은데.'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필살검의 인상이 변하는 것을 본 라마승들은 입가에 조소가 피어났다.

"묻겠다. 무엇 때문에 중원에서 온 손님의 행방을 찾고 있는가?"

"행방? 누구?"

모른 척 넘어가려는 필살검이었지만 라마승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생각이 날 때까지 패는 수밖에."

퍽!

필살검은 순간 복부에서 전해 오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자, 잠깐!"

"벌써 생각이 났나?"

"왜 나를 이곳에 잡아 가두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을 하라는 것이오?"

양쪽에 늘어선 라마승들은 필살검의 말을 듣고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그를 매달았다.

퍽퍽!

"악! 커억!"

'시팔! 장난이 아닌데.'

필살검은 고통을 참기보다 이들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하지만 라마승들이 들고 있는 몽둥이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퍽! 퍽! 퍽!

그 와중에서도 옆에서 들리는 역발산의 비명이 귀에 거슬렸다.

"커억!"

필살검은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약골이군. 이 정도의 매질을 이기지 못하다니 말이야. 정신을 차리게 하고 더욱 매질을 하여라."

"네!"

양쪽에서 필살검을 매질하던 라마승이 고개를 숙이며 기절을 한 필살검을 깨웠다.

그러고는 또다시 시작되는 매질에 필살검은 고통에 찬 비명 소리만 질러 댈 뿐이었다.

한편 화령검객은 역발산과 필살검에 비해 호화로운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호호! 나리, 이것 좀 드셔 보세요."

꿈에서나 볼 것 같은 미인이 하나도 아닌 둘이나 양쪽 옆에서 화령검객에게 술과 안주를 먹여 주고 있었다.

"하하! 좋구나!"

화령검객은 웃으면서 미인이 주는 안주를 입에 물었다.

'무엇 때문이지? 싫지는 않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인데 말이야.'

"나리, 이것도!"

"오냐오냐."

화령검객은 의문을 품으면서도 미인들이 주는 술과 안주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하하! 극락이 어디 있더냐. 바로 이곳이 극락이 아니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필시 우리를 납치한 이들은 대학사라는 놈이랑 연관이 되어 있다. 역발산이나 필살검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

속으로 이것저것을 계산하는 화령검객은 무엇인가 정보를 얻어야 했다. 하나를 주고 2개를 받는다. 이것은 현수가 가장 잘 사용하는 수법으로, 화령검객은 현수에게 이것만큼은 확실히 배운 적이 있었다.

화령검객은 슬슬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하하! 내 중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인을 이렇게 둘씩이나 만나다니 서장에 온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호호! 나리께서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중원이라 함은 천하의 미인들이 모여 산다는 곳이 아닙니까?"

"아니다. 중원에서 많은 미인을 만나 보았지만 내 그대를와 같은 미인은 처음 보는구나."

"아이!"

화령검객의 손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미인을 어떻게 했는지 몸을 꼬았다.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애타게 만드는 몸짓이었다.

"나리, 이것도 드셔 보세요."

'이들은 고수다.'

화령검객은 전문적으로 미염공을 연성한 고수라고 느꼈다.

"오냐오냐."

화령검객은 먹여 주는 과일을 입에 물며 즐거운 듯 미소를 흘렸다.

"근데 나리! 중원에서 이곳까지 왜 오셨는지요?"

'걸려들었구나.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

"왜 오긴. 그대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더냐."

"아이."

"하하! 내 사실은 중원에서 서장으로 쫓겨난 중원의 1황자를 찾아 이곳에 왔느니라."

화령검객의 말에 놀란 척 말을 받아넘기는 그녀들이었다.

"네? 1황자님을요?"

"그렇다. 내 만나 뵙고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이곳에 와서 찾고 있는데 찾을 수가 없구나."

"호호! 그러세요. 자! 그런 것은 잊어버리시고 한잔 받으세요."

"그래그래. 좋구나. 그런데 이곳이 어디더냐. 내 생전 이런 곳이 있다는 말은 처음이구나. 내 진작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다면 1황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눌러앉았을 것이야. 하하! 하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지. 안 그러냐?"

"호호! 나리의 말씀이 정답입니다."

"오호! 그래. 이곳이 어디더냐."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 그냥 쭉 들이켜세요."

그녀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화령검객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난색을 지었다.

"하하! 이렇게 좋은 곳을 내 어찌 모르고 그냥 지나간단 말이냐."

"궁주님께서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냥 나리를 편히 모시라 하였사옵니다."

"궁주님께서? 그럼 이곳에 주인이 따로 있단 말이냐?"

"아이! 그런 것 묻지 마시고, 자! 한잔 받으세요."

화령검객은 속이 탔다. 비록 현수에게 배운 것이지만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되었다. 그만 물러가거라. 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는 한 잔도 마실 수가 없다."

정색을 하는 화령검객을 보고 당황하는 그녀들이었다.

'음! 이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아이들인가 본데. 궁이라… 서장에 문파들 중에 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이 좀 많아야 알고 도움을 청하지.'

"물러가라 했다."

다시 말을 하는 화령검객의 호통에 그녀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엇하느냐. 어서들 물러가지 않고."

"나리, 저희가 그냥 돌아가면 궁주님께서 크게 경을 치실 것이옵니다. 그러니 제발 소녀들의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녀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곳이 어딘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음! 그럼 내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으마. 그래, 이곳이 어디더냐."

"나리! 그것 또한……."

쉽게 입을 열 것 같지 않자 화령검객은 다시 호통을 쳤다.

"그만 물러가라. 내 궁주를 만나 이야기를 하겠다."

"나리!"

화령검객이 다시 호통을 치자 그녀들은 그냥 말없이 물러났다. 화령검객은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녀들의 모습은 눈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제길, 이곳이 어딘지 말을 해 주고 가지."

혼자 남은 방에서 화령검객은 생각에 잠겼다.

역발산은 그냥 자리에 앉아 소리만 치고 있었다. 고문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고문실이라고 하지만 필살검이 있는 고문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역발산은 한 손으로 고기를 집어 입에 가져갔다.

"이 시팔아! 그냥 날 죽여라."

"흐흐! 그렇지. 그렇게만 하면 편하게 이곳에서 지낼 수가 있을 것이다."

"정말이우?"

"넌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알았수.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역발산은 다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크악! 으악! 이놈들 나의 입에서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커억!"

정말 생동감 있는 목소리였다.

"그래! 잘하는군. 협조를 해 주니 나의 마음도 기쁘구나."

"걱정 마쇼! 이런 건 나의 전문이니. 그나저나 이곳이 어디우."

"왜?"

"왜는?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이름이나 알려고 하는 것이지 뭐겠수? 괜히 1황자를 찾아 서장에서 돌아다닐 필요가 없잖수.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소리만 질러 주면 돈까지 주는데 뭐 하러 1황자를 도와 고생을 한단 말이우."

역발산의 이야기를 들은 라마승들은 미묘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중원에서 쫓겨난 1황자를 말하느냐?"

"그렇수! 엄연히 장자 계승이 원칙이지 않수. 혹시 아우? 1황자가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올라갈지. 그래서 1황자의 편에 서려고 찾았는데 이제는 필요 없수다. 그냥 이곳에 있게만 해 주시우. 크악! 윽! 으악!"

태연스럽게 연기를 하는 역발산을 보는 라마승들은 긴가민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세 곳에서 알아보고 있으니 곧 이들의 목적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은 소뇌음사다."

역발산은 흠칫했다. 이들이 이렇게 순순히 자신들이 어떤 무리들인지 가르쳐 줄지는 몰랐다.

"거짓말하지 마슈. 내가 아무리 무식해도 소뇌음사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수. 무엇이 부족해서 서장의 천하 제일 방파인 소뇌음사가 날 붙잡고 있겠수? 그냥 죽여 버리고 말지. 안 그렇수?"

능청스러운 역발산의 말에 라마승들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내일도 부탁하네. 우리는 바빠서 그만 가 보아야 하니 말이야."

"잘 가슈!"

간단하게 인사를 한 역발산은 나가는 라마승들을 보고 말했다.

"소뇌음사라… 일단 연락을 해야겠는데, 화령검객과 필살검은 도대체 어디로 튄 거야? 에라, 모르겠다. 그냥 접속 해제하고 현수에게 전화나 하자."

역발산은 자리에 벌렁 누워 버렸다. 그러고는 접속을 해제하고 현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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