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혈천으로
천연장으로 돌아온 모두는 하오밀문에서 조사한 사사혈천과 세외 그리고 동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했다.
"현수의 말은 일단 인원을 나누자는 뜻이지."
"그래, 하오밀문에서 알려 온 정보로는 아직 부족한 감이 조금 있다. 동영과 세외의 정보가 너무 밋밋해. 그렇다고 하오밀문에서 중요한 것을 일부러 빼고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동영이나 세외에도 무엇인가가 있을 거야."
"그래, 주된 이야기는 사사혈천이고 동영과 세외에는 BS의 또 다른 안배가 있을 거다, 그거야?"
"맞아. 그렇지 않고는 동영과 세외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모두는 현수의 말을 다시 나름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만사귀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건 그놈이 전문이라 솔직히 머리가 아프다."
건이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하자. 일단 나와 현수 그리고 수아가 사사혈천으로 간다."
"다른 사람들은?"
"역발산하고 살검이, 화령이는 세외로 가서 일단 서장을 중심으로 한번 돌아다녀 봐. 뭐가 이상한지."
"서장?"
"그래, 무협에서는 서장과 중원의 관계가 물과 불의 관계이니, 아마 서장을 중심으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음!"
현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역사서에서도 서장, 지금의 인도와 중국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동영으로 가서 한번 돌아다녀 봐."
"혜련이 데리고 가면 안 될까?"
역발산이 또다시 혜련을 말하자 모두는 역발산을 노려보았다.
"둘이 사귀는 거야?"
"아니, 빵 값 아끼잖아."
단지 그 이유뿐일까? 이것은 오직 역발산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안 돼. 아직 세외에 가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혜련이와 이화 그리고 장금이는 일단 천연장에 남아. 아니면 셋이서 함께 이곳에서 사냥을 해."
"그래. 난 여기가 좋아."
대장금은 천연장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못을 박았다.
건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냥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자세히 알아봐!"
"이유는?"
"주 에피소드가 끝나고 에피소드 3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봤어."
건의 말을 듣자 모두의 머리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공성?"
"그래, 공성이야. 그런데 단지 그 공성이라는 걸 우리끼리 하면 동영이나 세외가 벌써 나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겠지. 에피소드 3을 하면서 에피소드 4를 준비하면 되니까."
"그래! 카오스의 말이 맞아. 그래서 공성이라는 것을 조금 확대해 봤어."
"확대?"
수아와 이화 그리고 혜련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지 그냥 듣고만 있었다.
대장금은 그런 여자 셋을 보고는, 앞으로 이들도 참 불쌍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공성을 해서 한 지역을 먹고 한 성을 차지했어. 그런데 그때 세외나 동영의 세력이 끼어들면 어떨까?"
"음!"
건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지금 NPC들 사이에서 무림을 두고 난세라는 말을 많이 한다. 유저들이 공성을 위해서 혹은 정파와 사파 간의 싸움으로 인해 힘이 소진되었는데, 그 기회를 틈타 세외나 동영에서 중원을 노릴 거라 생각하자 모두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에피소드 3은 중원 천하를 놓고 싸우는 것이란 말이지."
"내 생각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에피소드 4는 서버 통합이고 5는 천의 모든 대륙을 놓고 싸운다? 재미있겠는데.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린다."
수금인의 조금 과장된 몸짓은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다.
"정말! 금인이 말이 맞을 수도 있겠는데."
"하하! 걱정 마라. 이 역발산 님께서 있는 이상 천은 우리 천연회의 것이다."
좋았던 분위기가 역발산의 말에 의해 썰렁해져 버렸다.
역발산은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고개를 숙였다.
"이제 분위기 파악까지 하네. 많이 발전했다."
필살검이 핀잔을 주자 역발산이 한번 노려보고는 곁눈질로 혜련을 보았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지만 웃고 있는 혜련을 보자 역발산은 고개를 숙이며 혼자 미소 짓고 있었다.
"언제 출발할까?"
"오늘은 쉬고 내일 출발하자. 그리고 살검이하고 화령이는 세외를 돌아다니면서 대학사가 어디로 숨었는지 한번 알아봐. 사실 내가 황궁에서 나온 이유도 대학사 때문이거든."
"알았다. 그런데 그런 일이라면 하오밀문이 더 빨리 찾아내지 않을까?"
"따로 부탁은 했는데, 하오밀문의 고수들은 아마 세외의 거대 방파들을 상대로 알아보기는 힘들 거야. 흔적은 좇겠지."
"그럼 나랑 바꿀까? 내가 사사혈천으로 가고 현수 네가 세외로 가."
"살검이가 현수 실력만 되도 괜찮은데 조금 부족하지. 하오밀문에서 알려 온 것을 토대로 하면 아직 탑리목 분지에서만 유저들이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니, 가능하면 이번에 나와 현수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거든."
"수아는?"
"난 미샤오를 가르쳐 주는 대가로 따라가는 것이니까요. 능력이 안 되면 나와서 여기로 합류할 거예요."
필살검은 조금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서운해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알아봐. 그리고 모은 정보로 기초를 세우면 우리는 사사혈천을 집중 공략할 것이니까."
"오케이!"
모두는 내일을 위해서 접속을 해제하고는 현실로 돌아갔다.
* * *
현수는 하오밀문의 일이 생각보다 쉽게 끝이 나자 기분이 좋았다.
-대박이라도 하나 건졌습니까?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응! 대박이지. 하오밀문을 얻었으니까."
-그럼 돈은 안 되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잖아."
-그렇기는 하겠습니다만 다른 문파에서 그냥 둘지 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악령이랑 윤석이에게 맡겼어. 우리는 정보만 얻으면 돼. 고생은 악령이랑 윤석이가 하는 거지, 뭐!"
현수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지 옷을 갈아입었다.
-나가려고 하십니까?
"그래. 필요한 것 있어?"
-없습니다. 다녀오십시오.
현수가 간 곳은 솔미가 장사를 하는 커피숍이었다.
"누나!"
마침 솔미도 접속을 해제하고 커피숍에 있었다.
"왔어?"
"장사가 잘되나 봐요?"
"잘되긴, 그냥 현상 유지 하는 거지."
장사하는 사람은 결코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현상 유지를 한다면 그만큼 벌이가 된다는 소리다.
"커피 마실래?"
"아니, 다른 거. 쥬스 종류로요."
"그래, 기다려."
현수는 커피숍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밝은 색의 전체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진 내부는 각 칸마다 커튼이 쳐져 있어 안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해 보였다.
현수가 앉은 자리 역시 커튼이 쳐져 있고 테이블 한쪽 끝에는 작은 티브이 수신기가 있었다.
현수는 손을 움직여 티브이를 켜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어?"
현수는 유심히 티브이에서 하는 방송을 보았다.
"아!"
가상현실 천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천상지애였다.
솔미가 두 잔의 음료수를 가져와 한 잔은 현수에게 주고 한 잔은 맞은편에 놓았다.
잠시 후 솔미가 현수의 맞은편에 앉아 티브이를 보았다.
"천상지애네."
"그런 것 같아요."
두 사람은 티브이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는 솔악문과 진중파 그리고 하오밀문이 연합해서 강소성을 영향권 안에 넣었으면 하는 이야기였다.
"그래, 가능하면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한동안 천에서 소식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놀랐어."
천의 베타를 했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것이 바로 현수의 행방이었다.
"황궁에 있었어요.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이제 재미도 없고 또 황궁에 있으니까 뒷돈이 장난 아니게 들어와서 그냥 호의호식하며 있었어요."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로 순간을 넘기는 현수였다.
"누나, 사실 나, 누나한테 하나 물어보기 위해서 왔어요."
"뭐?"
현수는 솔미가 하는 커피숍을 하려면 얼마 정도 필요한가를 물었다.
"많이 들어. 한 4억? 건물이 있으면 조금 적게 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최소한 4∼5억은 들어."
현수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자신이 4∼5억 정도를 벌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왜? 현수 너, 이런 장사 하게?"
"그냥 한번 물어봤어요. 그런데 수입이 얼마나 돼요? 1달에 500만 원 이상은 돼요?"
현수의 물음에 솔미는 크게 웃었다. 진짜 현수가 이런 장사를 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정도 벌면 하게?"
"그냥!"
그냥이라는 말로 시종일관 답하는 현수였지만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벌지. 커피숍이 재료비는 다른 장사에 비해 조금 싸거든. 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못 벌어. 장사라는 것이 매달 고정적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거든. 어떤 달은 300만 원 벌고 또 어떤 달은 600만 원 벌고 이래. 그래도 평균을 잡으면 그 정도는 벌어."
현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무기네."
솔미의 말에 현수는 시선이 티브이로 향했다. 연기를 하는 혁무기의 모습이 그런대로 배우의 티가 조금 나는 듯했다.
"요즘 무기, 인기 좋은 거 모르지?"
"네에? 그렇게 좋아요?"
"응! 난리야. 이제 3회 방영했는데 벌써 팬클럽이 생길 정도야. 무기가 한 인물 하잖아."
현수는 말없이 티브이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찼다.
"손님 왔다. 잠시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솔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이했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손님이 들락거리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엄마 약값 하고 생활비 하면 딱 떨어지는 돈이네. 저축은 힘들겠다.'
진짜 현수는 커피숍을 할 생각이었는지 혼자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내가 따로 일을 해서 벌면 저축은 가능한데 가게를 볼 사람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솔미가 다시 왔다.
"왜? 뭐라도 하고 싶은 거야? 게임 말고?"
"실은 그래요. 몸이 견디기 힘들어요. 천에서 한 가지 일만 끝내고 나도 누나처럼 가끔 접속할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장사를 한번 해 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렇구나. 힘들어. 장사라는 게,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면 말아먹기 딱 좋아. 장사를 하려면 일단 공부를 해야 돼. 만약 네가 커피숍을 한다고 쳐. 그럼 커피에 대해서 알아야지. 물의 온도가 어느 정도일 때 커피가 가장 맛있는지와 커피의 종류를 알아야 해. 또 커피 말고 다른 음료 역시 마찬가지야."
"그건 상관없어요. 저에게는 야가 있으니까요. 야가 그런 것은 많이 알고 있거든요. 전 그냥 재료를 사고 손님을 받으면 나머지는 야가 알아서 할 것 같아요."
솔미는 현수를 보았다. 나이는 서른 살이 넘었는데 아직 생각은 어리다.
"쯧쯧! 넌 장사의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장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시작할 생각을 해."
솔미는 장사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었다. 솔미가 커피숍을 하고 있어, 커피숍을 예로 들어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현수는 장사 역시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솔미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야겠어요. 나중에 시간 나면 자주 올게요."
"그래! 혹시 장사로 커피숍을 할 생각이거든 말해. 나 역시 잘은 모르지만 도와줄게."
"네. 고마워요, 누나."
현수는 계산을 하려고 돈을 꺼내었지만 솔미는 받지 않았다.
"그냥 넣어 둬!"
"그래도……."
"괜찮아. 그 돈으로 야 그놈 샤워나 한번 시켜 줘라. 그래도 너에게는 그놈밖에 없으니까."
현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솔미의 가게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가상현실 게임의 룸 넷이 보였다.
"저것은 많이 벌까? 기계가 비싸니까 돈도 많이 들어가겠지. 그리고 장소도 넓어야 하니까 건물 대여비도 많이 들어가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현수는 수진이 야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상을 썼다.
"어! 이제 오세요?"
"네! 그런데 사람이 없는데……."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와서 무엇 하냐는 뜻이었다.
"아저씨를 보러 왔는데 없어서요. 야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방금 들어왔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수진 씨에게 할 말이 있었습니다.
"미안해요."
현수는 수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야, 오늘 아저씨가 조금 이상하지?"
-그런 것 같습니다. 가을이 다가오니 고독해지는 것 같습니다.
"호호! 너 정말 사람 같다. 응!"
현수는 방문에 기대어 야와 수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가끔 들리는 말을 들어 보면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휴!'
현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밖에서는 수진이 뭐가 그리 웃긴지 연신 호호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나 자자."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야와 함께 장사를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고려해 봐야 할 문제라 여긴 현수였다.
수진을 돌려보내기 위해서 현수는 방을 나갔다.
"아저씨, 정말 나 좋아하세요?"
'대뜸 이게 무슨 소리?'
현수는 야를 보았다.
"야가 그러는데 아저씨가 날 마음에 두고 있다면서요."
"휴!"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나 갈게요. 아저씨가 나 좋아한다니까 한번 생각해 볼게요."
수진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지는 현수였다.
수진이 내려가자 현수를 야를 조용히 불렀다.
"뭐라고 했어?"
-아무 말 안 했습니다. 저도 당황했습니다. 혹시 수진 씨가 현수 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정말이야? 너 진짜 수진 씨에게 아무 말 안 했어?"
현수가 조금은 화가 난 듯 물었다.
-그냥 현수 님과 참 잘 어울리겠다는 소리밖에…….
"야!"
-귀 안 먹었습니다.
소리치는 현수에게 무덤덤하게 말하는 야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현수는 야를 보았다.
현수는 문을 걸어 잠그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편히 주무십시오.
"그래, 너도 잘 자라."
힘이 빠진 현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현수의 심정으로는 컴퓨터를 반품하고 싶었다.
"젠장, 그래서 물건은 정품을 사야 돼."
자리에 누워 투정을 하던 현수는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난 현수는 아침을 먹고는 천에 접속을 했다.
현수가 접속을 하자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 둘 접속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모이자, 어제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현수와 건은 수아와 함께 사사혈천이 있는 탑리목 분지로 떠나고, 역발산과 필살검 그리고 화령검객은 서장으로 떠났다. 이화와 대장금 그리고 혜련을 제외한 수금인, 카오스, 환상검은 동영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일단 연락이 되지 않는 화화공자는 기다리기로 결정을 했다.
현수는 사사혈천이 있는 탑리목 분지 입구에서 멈추었다.
"잠시만, 령!"
허공에 대고 천밀위 령을 부르는 현수였다. 허공에서 나타나는 령을 보고 수아는 조금 당황했다. 대장금에게 협박을 하기 위해서 날린 전서구는 바로 령을 부르는 전서구였다.
"가서 폐하께 전하라. 세외와 동영의 움직임을 주시하시라고!"
천밀위 령은 다시 허공으로 사라졌다.
현수는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싶어 황궁의 금의위까지 동원해 세외와 동영의 정보를 모으려 했다.
령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본 건은 도대체 현수가 황궁에서 어떤 신분인지 궁금했다. 황자들의 암투를 해결한 현수의 지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너, 도대체 황궁에서 어떤 신분이냐? 전에 관에서 너에게 껌뻑 죽은 것을 보면 보통 신분은 아닌 것 같은데."
"황제 다음. 그것만 알아 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멸친어린천룡군의 신분이니 현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사사혈천이 있는 탑리목 분지의 근처로 들어서자 몇몇의 유저들이 보였다.
"이곳에 온 유저들인가?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저들은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에 불과하다. 나 역시 이곳에 와 보았지만 쓸데없이 시비를 걸기 싫어 그냥 돌아간 적이 있다."
건이 탑리목 분지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유저들을 보며 말했다.
탑리목 분지로 들어가는 입구는 총 다섯 군데가 있었다. 하나 지금 그 다섯 군데의 길은 모두 거대 문파가 점령한 지 오래였다. 다가서는 현수와 건을 보고는 입구를 지키는 이들이 소리를 쳤다.
"이곳은 우리 천마회에서 관리한다. 너희들은 돌아가든지 다른 길로 들어가라."
천마회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일반 유저들의 문파와는 전혀 달랐다. 유저들이 만든 천마회는 이미 일반 NPC들의 문파와 그 힘이 비슷했다.
"사냥터를 독점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안 그래요, 현수 오빠?"
수아는 현수의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실력이었다. 사람들이 현수라는 사람을 무슨 괴물 보듯 하기에 과연 그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그 상대로 지금 막고 있는 이들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다시 말한다. 다른 곳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그냥 돌아가라."
다소 거만하게 보이는 이들을 보며 혀를 차는 현수였다. 아마 그들의 임무는 이곳을 통해 탑리목 분지의 외곽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막는 것 같았다.
"미치겠네. 이봐!"
건이 나섰다. 한 자루의 도를 땅에 질질 끌며 그들에게 다가서는 건의 기세에 이들 역시 잠시 주춤했다.
"죽고 잡냐? 비켜! 천의 족보에 이름도 못 올린 것들이. 어디서 이름을 들먹이며 깐죽거려."
노려보는 건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다. 하나 자신들은 사도 최고의 문파인 천마회의 사람들이었다. 천마회의 이름은 어디에서나 통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천마회에 들기 위해 금전 500냥을 가입비로 내고 들어왔다. 금전 500냥의 값은 톡톡히 했다. 어디 가서 천마회의 이름을 들먹이면 거의 해결되었다.
"우리는 천마회의 일원이다. 물러가지 않으면 천마회의 이름으로 너희들에게 척살령을 내리겠다."
건의 도가 천천히 올라갔다. 건이 이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천마회? 미친놈이군. 우리에게 척살령? 웃기는군. 방각이도 우리에게 함부로 못하는데 고작 너희가? 좋아. 내가 너희 수장인 천마 방각에게 지금 너희들의 무례함을 묻겠다. 가서 불러라. 설마 이곳에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
입구를 지키는 자들은 건의 말에 긴가민가했다. 자신들의 회주인 방각은 지금 천의 랭킹 1위이다. 천의 최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저였다. 그런데 생판 처음 보는 것들이 와서 회주에게 죄를 묻는다 하니 참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군. 꺼져라! 돌아가지 않으면 후회한다. 별 미친놈들이 와서 기분 잡치게 하네."
건의 도가 움직였다. 이렇게 되면 한 번쯤은 실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싸우더라도 기세에서 먹고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이었다. 현수는 가만히 건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수아는 지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건을 보고 있었다. 현수의 실력을 보고자 한 것이지, 건의 실력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1마리의 용이 하늘로 비상하듯 건의 신형이 비상했다. 그러고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콰과과광!
"컥!"
입구를 지키던 두 사람은 심한 부상을 입었다. 전투 불능에 가까운 상처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 방각이를 불러라. 그러지 않으면 오늘 이곳에 온 모든 천마회의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지금 농담처럼 들리지? 그럼 한번 개개 봐!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게."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보자, 건의 협박은 그들에게는 더 이상 협박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채애앵 챙! 푸드드득!
"어쭈? 검 빼 들면? 진짜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승천도법, 출룡!"
파아아아앗 팟!
"막아!"
"콰아앙!"
건이 손에 사정을 두어서인지 아니면 지키는 이들이 강해서인지, 건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재차 공격을 하려 했다.
"뇌전류!"
츄츄츄츄!
"헉!"
"가만히 있어. 그냥 방각이나 불러."
어느새 목에 걸려 있는 용천검을 본 천마회의 유저는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수아 역시 현수가 검을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놀라는 한편 수아 역시 검을 꺼내어 들었다.
가급적이면 피해야 할 싸움이었다. 수아는 당당하게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힘을 얻었다.
입구를 지키는 천마회의 유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해 안으로 전서구를 날려 보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입구로 몰려드는 천마회의 문파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현수와 건을 보고는 다짜고짜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누구냐? 어디에 와서 행패를 부리냐! 시팔 것들, 죽고 싶냐?"
현수는 어이가 없어 그들을 보았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나 싶어 자세히 보았지만 이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천마회에 인간들이 이렇게 없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방각이 혼자 아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이렇게 되면 일단 이것들을 다 죽이고 방각이를 만나야 되는 것 아니야?"
걱정 된다는 말로 검을 거두고 건의 옆에 서는 현수였다.
"일마와 일황……."
조금 뒤에 나타난 인물이 현수와 건을 알아보았다. 베타 시절에 함께 모임에 있던 유저였다.
현수와 건 역시 그를 알아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현수는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이! 이게 누구야? 샌님 홍춘이잖아."
인상을 쓰는 그였지만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베타 시절 최강이라는 두 사람이다. 또한 비록 사부를 모시지 못해 처음 랭킹에서 밀렸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인간들이었다. 더구나 사냥을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을 보면 조심할 필요가 있는 인간들이었다.
"왜 우리 문파원을 공격했지?"
그의 질문 역시 조심스러웠다.
"들어가려고 하는데 막잖아. 또 그냥 안 가면 천마회의 이름으로 척살령을 내린다고 하네. 너희 문파가 그렇게 타락했냐? 함부로 문파 이름을 들먹일 정도로?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의 피앙세에게 년이라는 그 심한 욕을 했어. 홍춘아, 생각해 봐라. 내가 누구냐? 내가 힘이 없냐? 능력이 없냐? 너도 생각을 해 봐라."
건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한 홍춘은 얼굴을 붉혔다. 문파원이 다쳤으면 마땅히 보호하고 복수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홍춘은 이들과는 솔직하게 대화로 끝내고 싶었다.
"옛 정을 생각해서 그냥 물러나라. 다른 길도 있다. 그 곳을 통해 들어가라."
옛 정이라는 말에 현수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수아는 현수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홍춘은 현수를 보자 몸이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똑같았다. 지금 현수의 얼굴은 절대 잊히지 않는 얼굴이었다.
마치 분을 바른 것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옛 정? 그것 좋지. 홍춘아, 너 착각 하고 있나 본데, 내가 일마 이현수고 저놈이 일황 최건이야. 그리고 비록 사부를 못 모셨다고 해도 우리 둘은 한때 천의 최고수였다. 너도 알잖아. 그리고 무공을 얻어 이곳까지 왔으면 아무리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도 감이 잡히는 것이 없냐? 그리고 방각이는 어디 갔어? 좋게 말할 때 방각이 불러라. 방각이가 안 나오면 뒷일은 책임 못 진다. 경험했으니 알겠지?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방각이 불러. 아니면 너희들을 비롯해서 저 안에 있는 천마회 사람들 모두 죽일 거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너희 천마회는 에피소드 2와 함께 사라진다."
홍춘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저들이 분명 강하게 나오는 데는 무엇인가가 있다. 최건이 사부도 없이 랭커에 든 인간임을 감안할 때, 갈등이 생겼다. 지금은 이현수라는 괴물까지 함께 있었다.
홍춘이 갈등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현수의 얼굴 때문이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본능이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회는 천에서 가장 강한 문파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이곳에 있는 천마회의 인원은 약 40여 명, 하나 저들의 자신감을 보면 예측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일마와 일황이다. 여기서 싸움이 끝나고 나서, 그 뒤가 문제였다. 저들의 집요함은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오랜 생각 끝에 방각을 부르기로 결정을 했다.
"기다려라."
전서구가 안으로 날아 들어가고 나서 10분쯤 기다리자, 탑리목 분지의 외곽에서 천천히 나오는 걸어 나오는 유저가 있었다. 그가 현 천마회의 회주, 유저들이 천마라는 별호를 준 방각이었다.
현수는 방각을 보자 본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후후! 왔군. 왜 안 오나 싶었다."
"잘 있었냐?"
방각은 현수와 최건을 보며 오랜 지기를 만난 듯 즐거워했다.
"시팔 놈들! 뭘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이리 와서 행패냐?"
"그러게 그냥 조용히 보내 주면 좋잖아."
수아는 속으로 떨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인원만 해도 20여 명은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의 승패를 떠나 앞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천마회와의 지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으니. 속으로는 그냥 다른 데로 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들어가자. 애들이랑 놀아 봐야 재미없다. 내가 사냥하는 곳에서 사냥하고 다음에는 다른 길로 다녀라."
방각은 그들을 데리고 탑리목 분지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문파원이……."
슈우우우욱!
순간 현수의 검이 움직였다. 검은 홍춘의 목젖에 닿아 있었다.
"이봐! 홍춘이 넌 그렇게 방각이의 마음을 모르겠냐. 나와 건과 싸워서 너희들이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잘하면 오늘은 이기겠지. 하지만 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지. 지금이야 사람들이 많으니 이길 수도 있겠지. 하나 1달만 나와 건이 너희와 싸우면, 너희들의 천마회는 피지도 못하고 지는 꽃처럼 사라져. 마치 화무십일홍처럼. 우리는 자신 있거든. 너희들은 무공이 중요하지만 건과 나는 그렇지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한 번 죽으면 무공이 없어지는 것 알지?"
현수의 말은 자신들은 한 번만 죽으면 된다는 말이었다. 이 자리에서!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는 것이다. 싸우는 동안 현수와 건에게 계속 죽어 나갈 천마회의 문파원들이 무공을 잃어버리고 과연 그곳에 있을까? 또 무공을 잃어버린 그들을 보고 다른 문파에서 그냥 둘까 하는 말이었다.
"언제……."
홍춘은 현수의 검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다는 것만 생각했지 현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하하! 현수 너답다. 너, 무공 배웠냐? 서생 한다고 하더니? 베타 시절에 맞은 것을 복수하려고 했는데 물 건너갔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방각이었다.
사실 방각은 현수와 건을 자신의 적수로 생각지 않았다.
다만 피곤한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그냥 20킬로그램짜리 주머니 차고 발검 연습만 했지. 그러니 이런 쾌검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하냐? 무공? 사부? 그거 별거 있냐. 난 이렇게 해서 나만의 무공을 만들었는데."
현수의 거짓말로 인해 천마회에서는 모래주머니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방각과 함께 들어간 곳은 탑리목 분지의 외곽이었다.
아직 사사혈천의 내원으로는 아무도 가지 못했다는 방각의 말이었다.
많은 고수들과 유저들이 내원에 도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참패뿐이었다. 무모한 싸움을 하다 죽으면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결국 내원에서 얼마 사냥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쫓겨나야 했다.
모두는 외곽에서 사냥을 하며 내원으로 들어갈 실력을 키우고 있었다. 내원에서 떨어지는 아이템은 지금까지 나온 아이템들보다 한 단계 위의 것들이라, 먼저 들어가기 위해 거대 문파들이 입구를 막고 장악한 다음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수와 건은 내원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얼마나 강하기에!
"여기서 사냥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 지금도 강하다고 자부하지만 아직 이 이상 들어가지 못해. 저 안에는 파티형 몬스터들이 있어. 새로 나온 몬스터인데, 체력은 일반 몬스터의 3배이고 데미지는 2배야. 또한 그들은 선공을 비롯해 함께 공격하기 때문에 혼자서 잡는 건 무리다. 물론 사냥은 가능하지만 몇 마리 잡지 못해. 이곳에서 사냥하는 것이 이득이지. 아마 천에서는 고레벨의 유저들이 파티 사냥을 해서 레벨 업을 하기를 유도하는 것 같다."
야와 나누었던 대화대로 풀려 나가고 있었다.
"3배의 체력이면 경험치도 3배겠군?"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저런 놈 1마리를 잡는 것보다야 여기 있는 놈 5마리를 잡는 것이 더 이익이다."
"잠깐. 지금 너 혼자 몇 마리를 잡는다고 했어?"
"그래! 처음 들어가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빵과 물을 가득 들고 들어가면 한 10마리 정도는 사냥을 할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사냥을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
현수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마디로 미개척지인 땅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원을 바라보는 현수의 귀에 건의 말이 들렸다.
"우리 파티를 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어때?"
건의 제안이었다. 방각 역시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천마회의 인원을 동원해 안으로 들어가 본 적도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9명의 파티로 먹는 경험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람 수를 줄여 보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레벨과는 무관했다. 사냥하는 방법이 자신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들이라면 다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베타 시절에 현수에게 맞아 가며 배운 것이 사냥법이었다. 마음 역시 잘 맞는 이들이었다.
지금은 현수뿐만 아니라 건이라는 괴물 역시 함께 있다는 것이 방각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티라… 사냥 시간은?"
"하루! 그러니까 현실로 6시간?"
그렇게 파티가 이루어졌다. 수아를 포함한 4명은 사사혈천의 내원의 주변으로 했다.
"늪이군. 다소 행동에 제약을 받겠는데."
내원은 사사혈천의 본거지 주변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는 늪지대였다.
"저들이 사사혈천의 주변을 지키는 몬스터들인가?"
원혼령을 비롯해 거와, 혈사투망 같은 몬스터들이 늪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오빠, 저기 보세요."
수아가 가리키는 곳은 사사혈천의 본거지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다리였다. 다리 위에 경비를 서고 있는 무리들이 보였다.
"80레벨 대군. 경비병이 80레벨이라… 생각보다 위험하겠는데. 체력이나 데미지 면에서 힘들겠지? 저 안은 황금의 땅이나 마찬가지잖아."
"쓸데없는 욕심은 버리고 일단 자리를 잡자. 아직 경비병은 무리겠다. 거와를 중점으로 사냥을 해 보자. 그래도 가장 낮은 레벨이니."
거와의 레벨은 65였다.
"내가 선두에 서지. 내 체력으로는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하니 최대한 빨리 잡아라."
방각은 한발 앞으로 나서서 거와를 노려보며 말했다.
"알았다. 걱정 마라. 순식간에 녹게 만들어 줄 테니까."
자리를 잡은 그들은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거와 5마리가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었다.
방각은 거와에게 다가서서 자신의 무공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외쳤다.
"천마호신갑!"
방각의 체력은 무지막지했다.
순간적으로 체력을 대폭 올려 주는 호신갑은 방어력도 크게 상승시켰다. 다만 움직이면 사라진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움직이지만 않으면 최고의 방어 무공이 되는 셈이었다.
'저것은!'
현수는 방각의 무공이 눈에 많이 익었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무공과 비슷했다.
'설마…….'
그때 건이 무공을 사용해 거와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 역시 이에 생각을 접고 거와를 공격했다.
"승천도법, 출룡!"
"뇌전류!"
"수지천율, 은하유성탄!"
3명의 합공이 이어졌다.
팟팟팟!
거와의 체력도 체력이지만 세 사람의 공격은 엄청났다. 앞으로 나선 방각 역시 세 사람의 공격에 흠칫했다. 놀라서 움직일 뻔했다. 이들 3명이 빨리 잡으라는 말에 있는 힘껏 공격을 한 결과였다.
하지만 현수의 말대로 거와는 녹지 않았고, 입을 벌리며 방각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야, 돌아!"
현수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방각은 거와를 뒤로하고 달렸다.
"뇌전류!"
"출룡!"
"은하유성탄!"
퍼어어엉!
"야! 빨리 좀 잡아."
방각은 자체적인 체력도 높은지, 몇 개의 벽곡단을 먹어 가며 체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느꼈냐?"
"그래. 방각이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두말하면 잔소리지. 일단 처리하고 생각을 정리하자."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아였지만, 힘든 방각이 불쌍한지 혼자서 열심히 무공을 사용해 거와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쿠에에엑!
"헉헉! 너희도 별수 없구나, 이놈한테는!"
"무식한 체력이네."
방각은 잠시 쉬면서 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방각아."
"왜?"
"너, 우리한테 숨기는 거 있지."
현수가 말을 꺼내자, 방각은 조금 흠칫했다.
"뭘?"
"그 무공, 분명 천마의 무공이야. 숨겨진 10개의 던전에 있다는 천마의 무공. 안 그래?"
'아차!'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방각도 천마신공의 방어 무공인 천마호신갑을 현수가 알아보리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방각은 우연한 계기로 천마의 던전을 찾아 들어갈 수가 있었다. 말 그대로 기연이었다. 방각은 낭떠러지나 절벽의 동굴 같은 곳에 기연이 잘 숨어 있다는 것을 이용해 기연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찾아낸 기연이 바로 천에서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천마의 던전이었다.
방각의 눈빛이 변했다.
"머리 안 굴리는 것이 좋아."
건은 방각의 마음을 읽었는지 방각에게 선수를 치고 나섰다.
"아무리 천마의 무공이라고 해도 너 혼자 우리 셋을 감당하기는 힘들 거야."
사실이었다. 천마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직 건과 현수를 상대로는 자신이 있지 않았다. 기습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미 알고 있다면 승산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 뻔했다.
더구나 수아라는 여자도 상당한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자신에게 더욱 불리했다.
"그래, 천마의 무공이다. 운 좋게 얻을 수 있었지만 아직 성취가 부족해 7성까지밖에 익히지 못했다."
7성이라 해도 대단한 경지였다. 지금 천의 최고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 보아도 그 경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 좋아. 그럼 숨기지 말고 능력 발휘해. 어설프게 보여 주는 것보다 확실히 보여 주고 기어오르지 못하게 만들면 되니까."
현수는 자신들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건과 자신이 천마의 무공을 보고 고개를 흔들 정도로 확실히 보여 달라는 말이었다.
"좋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지. 하지만 약속 하나 해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렇게 하지. 대신 선두는 여전히 너야."
이렇게 다시 시작되는 사냥은 또 달랐다. 이미 건과 현수가 거와의 약점을 찾았는지 사냥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천마호신갑!"
"파멸겁!"
건의 무공이 방각에게 붙은 거와를 밀어 버렸다. 거와는 힘에 밀린 것이 억울한지 공중으로 뛰어올라 방각을 깔아 뭉개 버리려고 했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호심발도술!"
뛰어오른 거와의 밑으로 접근해서 배 밑을 공격하는 현수의 무공에 거와는 뒤집혀 날아갔다.
"은하유성탄!"
쿠에엑!
순간 현수의 말대로 거와가 녹아 버렸다.
"뭐야, 금방 죽잖아. 방각이 너, 거짓말 했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는 거와를 보고 현수는 방각을 노려보았다.
"아니다. 경험치를 확인해 보면 알잖아."
경험치를 확인해 보니 그것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일반 몬스터에게서 들어오는 경험치의 1.5배였다.
현수와 건이 찾아낸 거와의 약점은 바로 배 밑에 있었다. 등은 두꺼운 껍질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방어력이 강한 반면에, 배 밑은 그렇지가 않았다.
몬스터마다 이렇게 약한 곳이 존재했다. 현수와 건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 공격을 몇 번 해 보고 약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과 심장은 검이 관통을 할 수 있는 힘만 가지고 있으면 고레벨의 유저든 저레벨의 유저든 상관없이 한 방에 죽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고레벨의 유저는 스탯을 포함해서 다소 유리한 점이 많이 있어, 차이가 많이 나는 저레벨의 유저들에게는 잘 죽지 않는다.
특히나 저레벨의 유저들이 체력을 중시하는 고레벨 유저들의 목이나 심장을 관통시키기는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너무도 쉽게 사라지는 거와를 본 방각과 수아는 놀라고 있었다. 이것은 건과 현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출해 낸 것이라 배 밑이 약점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방각 역시 천의 최고수였다. 최고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눈치도 빨랐다. 사냥이 계속되는 동안 거와의 약점이 배 밑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방각은 이 사실을 알자 또 한 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지금 최고수의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건과 현수에 비하면 아직까지 많이 모자라는 것을.
경험치를 확인하는 건과 현수는 또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만약 혼자 잡을 수 있으면 대박인 셈이다.
방각 역시 빠르게 거와를 잡아내는 이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는지 아니면 천마신공의 위력인지, 앞뒤 가리지 않고 거와에게 뛰어들었다.
방각은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나 있었고 현수와 건은 거와를 상대로 혼자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실험하고 있었다. 둘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딱 6시간을 사냥한 그들은 아이템 분배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너희들은 3명이니 조금만 양보해라. 나 역시 한 단체의 수장이기에 아까 입구를 지키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은 해야 한다. 그리고 홍춘이 녀석은 조금 고지식해서 그렇지 착한 놈이니 너희가 이해해라."
"알지, 홍춘이가 착하다는 것은. 너무 착해서 문제지."
방각은 많은 아이템 중에서 딱 10개를 빼었다. 자신의 욕심으로 챙기는 것이 아니기에 현수와 건은 아무 말 없이 주었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다른 길로 다녀라. 그래야 나도 문파원에게 할 말이 있지."
방각 역시 한 단체의 수장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알았다. 그런대 무기 녀석도 이곳에서 사냥을 해?"
"요즘은 사냥을 하지 않고 드라마를 찍고 있는 것 같더라. 요즘 인기 폭발이다, 무기 녀석!"
"그래? 천상지애라는 그 드라마?"
"그래! 이제 무기 녀석은 뒤로 처질 거야."
사냥을 하지 않고 드라마로 시간을 다 보내면 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비록 레벨은 그대로라 할지라도 감은 많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 내가 알고 있는 무기는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을 거다. 그놈이 얼마나 근성이 있는 놈인데."
"하긴. 무기라면 밤을 새서라도 감을 유지하려고 할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내가 천마의 던전을 찾았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그래! 좋겠다. 이제 '방각아!' 이렇게 부르지도 못하는 것 아니야?"
"싱겁긴. 나 간다."
방각은 챙길 것을 다 챙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현수는 떠나는 방각을 보고는 가슴 한쪽에서 뿌듯함이 밀려왔다. 건은 그런 현수의 마음을 읽었는지 현수의 옆구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네 밑에 있던 놈이 저렇게 성장했네. 부하들도 챙길 줄 알고."
"그러게. 이제는 한 단체의 수장이니까 당연하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할 거야?"
건에게 물어본 현수는 건의 입가에 걸린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훗훗! 역시."
"수아는 이제 돌아가. 여기 있는 아이템을 다 들고, 쓸 것만 빼고 나머지는 장원에 가져다 놓아."
"오빠는?"
"현수와 이곳을 조금 살펴보고 곧 따라 들어갈게. 천연회 역시 조금 있다 이곳에 와서 사냥을 하려면 자리를 찾아 놓아야 한다."
수아는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귀환 부적을 사용해 마을로 돌아갔다.
"자! 이제 보는 사람들도 없으니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해 볼까."
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와를 보았다. 건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현수 역시 거와를 보며 웃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선공을 날리고 돌게. 대신 최대한 빨리 잡아야 한다. 아직 몸으로 저놈을 겪어 보지 못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알았다. 승천도법의 파괴력은 엄청난 것이니까."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뇌전류!"
현수는 거와를 공격하고 건을 중심점으로 잡아 그 주위를 돌았다. 비대한 몸을 이끌고 현수를 따라다니는 거와였지만, 현수의 민첩성 스탯과 운중비록의 무공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출룡!"
현수를 따라가던 거와는 건의 무공에 의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러고는 방향을 바꾸어 건을 향해 공중으로 뛰어오를 때 현수의 용천검에서 빛이 발했다.
"호심발도술!"
쿠에에엑!
순발력의 스탯이 높은 현수의 공격에 크리티컬 히트가 터졌다. 거와는 순간 배가 뒤집혀 또 한 번 날아갔다.
"팔검수화진검류!"
"파멸겁!"
쿠에에엑!
거와는 듣기에도 힘든 비명을 지르며 다시 일어나 현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건과 현수의 공격에 현수에게 다가오기 전에 회색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경험치가 2배군."
"그래? 난 왜 1.5배지?"
현수에게 들어오는 경험치는 1.5배였다. 현수의 레벨이 몬스터에 비해 아직 낮아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경험치 면에서는 거와가 많이 주었다. 문제는 잡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이다. 밖에서 사냥을 하면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다.
"조금 빨리 잡으면 좋겠는데."
조금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아니면 굳이 힘들게 이곳에서 사냥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아이템은 상급이지만 그러다 죽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공을 사용한 후 딜레이 시간은 그렇게 긴 것은 아니었지만 한두 번에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그 시간도 무시하지 못했다.
"함께 공격해 볼까?"
"체력이 문제지."
건이나 현수의 체력은 거와에게 맞아 가며 잡기에는 조금 위험 수위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체력 회복약을 먹을 수도 없는 것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었다.
"한번 해보자.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귀환을 하고. 그리고 무공 딜레이 시간에 검으로 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건이 선공을 하는 걸로 결정을 하고는 방법을 바꾸어 거와를 사냥했다.
"파멸겁!"
"뇌전류!"
거와는 건과의 거리를 유지하고는 긴 혀를 날름거리며 건을 몰아붙였다.
"야! 생각보다 데미지가 세게 들어온다."
건의 투정이 벌써부터 들려왔다. 현수는 건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정말 무식한 체력이었다.
비록 여유롭게 잡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잡아낼 수가 있었다. 문제는 건이 몸으로 맞으며 1마리를 잡아내는 데 많은 벽곡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까보다 빨리 잡네."
"문제는 일반 몬스터에 비해 힘들게 버틴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빵과 물이 장난이 아니게 들어간다. 이렇게 사냥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한 번 타이밍을 놓치면 바로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 말이야."
현수는 거와를 보았다. 자신이 민첩성이 높다는 것을 내세워 다시 시도했다.
"내가 한번 해 볼게. 난 민첩성 캐릭터라 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다 한 방에 골로 갈 수가 있다. 저놈의 날름거리는 혀의 사정거리는 생각보다 조금 길다."
"괜찮아. 아무리 민첩성에 투자했다고 하지만 한 방 정도는 견디겠지. 해 보자."
현수가 이번에 회피를 무기로 거와의 앞에 섰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거와의 기다란 혀를 피하고는 안으로 거와에게 최대한 붙었다. 이제껏 혀로 공격하는 것밖에 보지 못한 현수의 얄팍한 계산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거와는 순간 엄청난 점프력을 이용해 파고드는 현수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그대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악!"
"현수야! 승천도!"
츄츄츄츄츄!
"이기어도술!"
건은 아직 불안전한 마지막 초식을 사용했다. 하나 승천도는 거와를 그 자리에서 밀어내어 버렸다.
쿠에엑!
거와는 건의 무공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져 버렸다. 현수의 외침이 들려 온 것은 그때와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현천파열권!"
현수의 주먹이 거와의 배를 관통해 버렸다.
"괜찮냐?"
조금 충격은 있었지만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어, 현수는 건에게 웃으며 말했다.
"응. 다행히 늪이 쿠션 작용을 해서 별로 충격을 입지 않았다. 그런데 너 방금 그거 어도술이었어?"
"그래. 마지막 초식인데 아직 완전하지가 못해서 한 번 사용하면 기력이 바닥을 친다. 하나 완성되면 한 세 번 정도는 사용할 수 있지. 그나저나 행동의 장애가 되는 늪이 이번엔 널 살렸어."
"그래! 운이 좋다고 봐야지. 어? 아이템이다!"
건이 다가가서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확인을 했다.
"아이템 확인!"
아이템 : 순백의 목걸이 등급 : 상급-레어
옵션 : 순발력 +15, 체력의 회복 속도 2% 상승
설명 : 코끼리의 상아로 만든 목걸이. 정교한 세공으로 인해 그 가치가 더욱 뛰어나다.
건이 소유하고 있는 흑랑도와 같은 수치의 아이템이었지만 옵션의 수가 하나 적었다.
건은 아이템을 확인하고는 현수에게 던졌다. 건 역시 현수의 스탯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아무런 말없이 넘겨주었다.
"짜식! 다음에 좋은 거 나오면 너 다 가져라."
말이 씨가 되었는지, 건은 현수와 함께 사냥을 해서 자신의 아이템을 4개나 챙겼다. 반면에 현수는 순백의 목걸이 하나뿐이었다.
"그런 플러스 15짜리는 보통 중급 준보스 몬스터에서 드롭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게 아닌가?"
"그렇지. 운이 좋다고 봐야지. 내가 주운 것들은 플러스 10이 최고니까. 그리고 여기는 상급의 레벨 사냥터이니 가끔 나온다고 봐야지. 저 안에서는 최고 플러스 20까지 나올 확률이 높다."
건이 가리킨 손가락의 끝을 보자 현수는 욕심이 생겼다.
잠시 쉬고 나서 다시 사냥을 하기 위해 나섰다. 건도 현수도 몸으로 맞서 가면서 잡기에는 조금 버거운 상대였다. 여기서 현수의 잔머리가 빛을 발했다.
"너, 무공의 사정거리가 얼마나 돼?"
"……."
"봐! 이곳에는 거와나 혈사투망이 많이 몰려 있지는 않으니 서로 사정거리를 계산하고 양쪽에서 같이 공격을 하면 어떨까? 혹시 아냐. 저놈, 어디로 공격하러 갈지 몰라서 헤맬지. 아까 보니까 데미지가 세게 들어가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일단 말이 나오면 실험을 해 보는 인간들이라 주저 없이 사정거리의 한계점에 서서 현수가 먼저 공격을 가했다.
"팔검수화진검류!"
거와는 현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출룡!"
쿠에에엑!
예상대로 거와는 방향을 바꾸었다.
"뇌전류!"
현수의 예상대로 잠깐 주춤하는 거와였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여기서는 현수와 건에게 도움이 되었다. 잠깐의 틈에 한 번의 무공을 더 사용할 수 있었고, 둘 중 1명을 공격하기 위해서 움직일 때 또 한 번의 공격을 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거와를 보았다.
서로는 마주 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6마리를 사냥하면 5분 정도 쉬고 다시 사냥을 하곤 했다.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현수는 구미호의 내단과 적룡의 영약으로 인해 건보다는 덜 했지만 이렇게 쉬어 주어야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 사냥을 하기 위해 일어서는 두 사람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몬스터 2마리가 함께 붙어 있는 것이었다.
"저기, 옆에 있는 놈을 공격하자."
"알았어."
그러나 아뿔싸! 서로의 무공이 다른 놈들에게 날아갔다.
둘은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몬스터를 뒤로하고 내원을 지나 외곽으로 도망가는 그들은 뒤를 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몬스터를 뒤로하고 도망치는 이들이었다.
"정말 재미있다."
"그러게. 얼마만이지? 이렇게 몬스터를 뒤로하고 뛰어다니는 것이."
"그때가 좋았는데, 지금은 방각에게도 밀리게 생겼으니. 아! 방각이는 좋겠다."
"노력해야지. 아직 숨겨진 던전이 9개나 남았다. 혹시 그것을 찾는다면 상황은 또 달라지겠지. 그나저나 레벨 업은 했냐?"
"그래. 확실히 빠르다."
현수가 레벨 업을 할 때 건은 레벨 업을 하지 못했다. 현수와 건의 레벨 차이는 17레벨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80대의 레벨 업은 힘들었다.
"레벨 업을 하려면 경험치가 얼마나 남았어?"
"40% 정도. 하지만 속도가 엄청 빠르다. 이곳에서 벌써 5%를 했다."
현수는 건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레벨 업이 그만큼 늦다는 증거였다.
"무공은 승천도법 말고 배운 것 없어?"
"그래. 이것 하나도 아직 마스터 못했다. 만약 마스터할 경우, 거와는 혼자 잡을 수 있다."
혼자 잡을 수 있다는 건의 말에서 승천도법을 익히고 있다는 자부심이 흘러나왔다.
"좋겠다."
현수 역시 거와는 혼자 잡을 수 있었다. 다만 아직 거와를 잡을 레벨이 되지 않아 그렇지, 뇌전류를 제외하고도 현수가 가지고 있는 무공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너 역시 잡을 수 있다는 거 알고 있다. 단지 레벨이 낮다는 것이 문제이지."
"알고 있었냐?"
"너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그 정도도 모르고 지나갈까."
현수를 잘 아는 건이었다. 현수 역시 건을 잘 알고 있었다. 건은 화제를 돌렸다.
"천연회가 많은 문파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알고 있냐?"
"아니, 왜?"
천연회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각 문파의 수장들과 그 밑의 비중이 큰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베타 시절 함께 있었던 사람들도 있고 또 베타를 함께 경험해 본 사람들이었다.
"서로 자기의 문파로 오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모두 천연회를 떠나지 않겠지만 조금은 피곤한 상황이지. 나 역시 천지회에서 수시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대 난 왜 불러 주는 사람이 없어?"
"넌 서생으로 전직했다는 소문이 거의 다 알려졌다. 하지만 사신 낭객이 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서생이라고 해서 찾지도 않는다는 이야기에 발끈하는 현수였다.
"이것들이! 서생은 사람도 아니야? 이참에 확 버릇을 고쳐 주어야겠는데."
"어차피 그렇게 갈 것 같다. 이미 너 방각이한테 찍혔잖아. 그리고 천연회가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결국 한바탕 싸워야 할 것 같다. 아까 입구에서 지키는 것 보았지? 5군데의 입구는 아마 다른 문파에서 막고 있을 것 같다. 오늘 사냥해 봐서 알겠지만, 이곳은 노다지 땅이나 마찬가지야. 다른 문파들 역시 고수들을 영입하고 힘을 얻으면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 뻔해."
천연회 역시 결국은 이곳에서 사냥을 해야 한다. 사사혈천을 노리는 문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결국 싸워서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
단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훗날 공성을 생각하면 아직 천연회는 힘을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수와 건의 생각이었다.
"나중에 생각하지 뭐. 난 레벨 업을 해야 돼. 언제 황궁으로 불려 올라갈지 모르니까."
"알았다. 난 돌아가야겠다. 넌?"
"외곽으로 가서 사냥을 해야지. 어떤 문파에서 왔는지 알아볼 겸."
건은 마을로 돌아가고 현수는 외곽으로 이동을 했다. 간혹 사람들이 모여서 사냥하는 것이 보였다.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
'아레스라고 했던가? 남궁세가에 가서는 만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만나는군.'
아레스의 일행이 사냥을 하고 있는 곳으로 향한 현수는 그들의 무공을 보고 새삼 놀라고 있었다.
"오대세가의 무공인가? 대단하다."
5명이 함께 사냥을 하는 그들은 광혈마라는 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광혈마는 사사혈천에서 외곽을 경비하는 몬스터들이었다. 몬스터 레벨은 60이었다. 외곽 경비인 광혈마들의 무공 또한 패도적이었다.
광혈마는 거와와는 달리 체력에서 현저히 떨어졌다. 파티형 몬스터가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오대세가의 유저들은 손쉽게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음, 거와와 비교하면 크게 문제 될 몬스터는 아닌 것 같군."
아레스 역시 다가오는 현수를 보았다.
"조심하세요."
찰칵!
아레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현수는 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광혈마가 현수를 공격하려는 순간, 신형이 멈추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또 뵙네요."
현수의 말이 끝이 났을 때 광혈마의 신형은 무너져 내렸다. 아레스는 현수가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으세요?"
"뭐가요? 아! 몬스터요? 괜찮아요."
아레스의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중에 또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 주인집 딸인 수진, 아닌 천 안에서는 천수 명월이었다.
"어! 아저씨?"
"알아?"
아레스는 명월을 보며 물었다. 천에서 성격 좋기로 유명한 명월이기에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응! 언니. 우리 집의 2층에 사는 아저씨야."
명월의 말이 현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곳에서도 아저씨라니…….
"안녕하세요? 모두 고레벨인가 봐요. 이곳에서 사냥을 하는 것을 보면."
아레스와 명월을 제외한 세 사람은 현수를 경계했다.
"인사해요, 언니. 이분은 미호랑객이라는 서생이에요."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가워서 그런지 몰라도, 명월은 웃고 있었다.
"미호랑객?"
"응!"
아레스는 현수의 별호를 알고 있다. 미호랑객이 아닌 사신 낭객이라는 것을! 이에 아레스는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 사연이 조금 있어요."
명월은 현수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서 기분이 좋은지 현수의 옆에 붙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서생이 이곳에 왜 왔어요? 무공이 약하면 이곳은 위험한데. 게다가 밖에서 지키는 사람들이 고이 들여보내 주던가요?"
명월은 현수가 서생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는지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천에서 서생으로 전직한 사람들은 게임을 접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공과는 담을 쌓은 직업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서생으로 전직을 했지만, 서생으로 전직을 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유저들은 100명 정도였다.
초반에 캐릭터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많은 항의가 있었지만 BS 그룹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런 후에 점점 서생의 수가 줄어들었고 지금은 서생으로 전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네. 천마회 쪽으로 들어왔어요. 방각이 저의 친구라 그냥 들여보내 주던데요."
천마 방각. 현재 천의 최고수인 그가 현수의 친구라는 말에 잠시 모두가 긴장을 했다.
"그래요? 이쪽에 있을 것이 아니라 저리로 자리를 옮겨요. 이쪽은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으니까요."
아레스는 현수를 데리고 구석으로 피했다. 여전히 세 남자는 약간의 경계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명월은 자신의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듯 아레스에게 말하고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언니, 나 한 바퀴 돌고 올게."
"살살해. 조심하고."
"응!"
명월이 몬스터를 향해 암기를 던진다. 그러고는 뒤를 보지 않고 달려 다른 몬스터에게 암기를 던졌다. 이렇게 5마리의 몬스터를 몰아 현수가 있는 일행 쪽으로 달려왔다.
"청풍검법!"
"소리비도!"
"오호단문도!"
"벽력신장!"
"만천화우!"
몬스터들이 녹아내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광혈마들은 오대세가의 무공의 힘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와우! 굉장해요."
현수는 모른 척 그들의 무공을 칭찬했다. 자고로 단순할수록 칭찬에 즐거워하는 법이다.
"당연하지! 아저씨는 모르나 본데, 지금 천에서 우리를 십룡오봉이라 불러요. 우리가 얼마나 강한데요."
십룡오봉.
천의 정도에서 뛰어난 15명의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중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최건이었다. 아직 천연회는 정파와 사파 그리고 중립의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기에 사람들은 베타 시절 일황인 건을 당연히 정도의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전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사사혈천에 귀한 서책이 많다고 해서 한번 와 봤는데, 저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이렇게 외곽을 배회하고 있어요."
아레스는 현수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시황릉에서 보여 준 무공은 자신들의 무공보다 분명 한 수 위였다. 또한 세가에서 전서구로 알려 온 정보에 의하면 사신 낭객은 이미 절정을 넘어선 고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현수의 앞에서 자신의 무공을 자랑하고 있는 명월을 보자 아레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명월이는 사신 낭객이 누군지 알지?"
"응! 천의 신비 이객인 호면객이랑 사신 낭객을 모를 리가 없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명월이었다.
"그럼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니?"
"응, 미호랑객! 우리 집 2층에 사는 아저씨, 과거를 보기 위해 황궁에서 시험을 친다는 서생이야. 아, 맞다. 아저씨, 과거는 어떻게 됐어요. 합격했어요?"
참 빨리도 물어본다. 벌써 1년이 지나 버린 이야기를 이제야 묻는 명월을 보고는 현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명월은 궁금한 눈으로 현수를 보고 있었다.
"네, 다행히."
다른 세가의 사람들은 현수와 명월이 대화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나 보다.
"너 같은 서생이 들어와서는 안 될 곳이다. 이곳에서 나가라."
제갈세가의 인물인 제갈현이었다. 묘하게 아이디가 제갈 세가의 성을 이어, 그는 차기 가주 위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유저였다.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세요."
명월이 발끈해 제갈현을 쏘아 붙였다.
"아니, 내, 내 말은 저 선비의 안전이 걱정되어 하는 소리다. 생각해 보아라. 여기는 몬스터 레벨이 60대 이상이다. 선비는 무공을 배우지 않고 군사학이나 진법을 배웠을 테니 당연히 위험하지 않겠느냐."
제갈현이 말을 더듬는 것을 본 현수는 생각했다.
'저게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이참에 콱 죽여 버려?'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레스가 현수의 팔을 당겼다.
"내가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주고 올게. 너희들끼리 사냥하고 있어."
"언니, 나도 갈게."
명월까지 나서자 다른 사람들의 인상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레스 역시 분위기를 느꼈는지 명월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란 말을 하고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레스와 현수는 일행에게서 벗어나 입구로 향했다. 아레스는 왜 현수가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왜 숨기세요?"
"뭘요?"
"사신 낭객이라는 것을."
현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숨긴 것이 아니라 피곤해질까 봐 그런 것이라 변명했지만, 그런 현수를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아레스였다.
현수 역시 그리 강하지 않은 몬스터를 왜 5명이서 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함께 사냥을 하면 경험치가 줄지 않나요? 5명이라면 외곽이 아닌 안쪽에서 거와나 혈사투망을 잡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레스는 외곽이 아닌 내원 쪽에 대해 말하는 현수를 보았다. 아직 아무도 그곳에서 사냥하는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현수의 무공을 알고 있는 아레스는 혹시 내원에서 사냥을 하고 나왔는지 궁금해서 다시 현수에게 물었다.
"혹시 그곳에서 사냥을 하시다 나오시는 건가요?"
"네! 천마 방각이와 베타 시절에 일황이라고 불렸던 최건이라는 친구와 함께."
"최건? 승천룡 최건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현수는 처음 듣는 최건의 별호였다.
"건이가 승천룡이에요?"
"네! 승천룡은 십룡오봉 중에 가장 강한 인물이에요. 아직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지만, 다들 객관적인 평가를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마 베타 시절 일황이라는 별호가 크게 작용했겠지만, 건 씨를 겪어 본 사람들은 다 건 씨가 십룡오봉 중에서 가장 강할 것이라 해요."
"승천룡이라… 좋네요. 친구가 그런 멋진 별호를 얻었다는 것이. 난 기껏 사신 낭객이라는 별호인데."
어느새 아레스와 함께 탑리목 분지의 입구까지 나와 버렸다.
"같이 레벨 업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왜 가시나요?"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은 저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더군요. 전 나중에 혼자 사냥을 하면 되니 신경 쓰지 마세요. 전 파티 체질이 아니라 솔로잉 체질이거든요."
아레스와 헤어지고 나서 현수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품안에서 호면을 꺼내어 쓰고는 사사혈천의 본거지로 향했다. 낮에 주운 플러스 15라는 아이템에 힘입어 다소 무리를 하는 현수였다. 대박을 꿈꾸며.
다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의 수는 3명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치고 들어간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현수의 생각보다 다리를 지키는 경비들은 더 고수였다. 연기처럼 사라져 접근하는 현수의 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파파팟!
"젠장!"
자신이 움직이는 곳을 공격하는 경비병들을 보고 현수는 뒤로 물러났다.
"뇌전류!"
"혈광무변!"
그들은 현수의 뇌전류를 막았다. 현수는 잠시 당황했다. 80대의 레벨의 몬스터는 그냥 체력만 무지막지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들은 고수였다. 현수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젠장! 잘못 건드렸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아야겠지만, 잘못하면 여기서 한 번쯤은 죽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다시 검을 고쳐 잡고는 신경을 집중시켰다. 천의 정식 서비스를 하고 나서 긴장해 보는 것은 이것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대왕 멧돼지를 잡을 때였다.
"괴물이잖아!"
"누구냐? 필시 야밤에 온 것을 보면 좋은 일은 아니구나. 혈광천하!"
3명의 경비병들이 현수가 있는 곳을 향해 무지막지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검강이었다. 현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3명의 경비병들은 교묘하게 현수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을 차단하며 재차 공격해 들어왔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어지러운 발걸음과 몸동작으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는 현수는 구파일방의 무공을 합쳐 만든 것들 중에 파괴력이 가장 강한 무공을 사용했다.
"호심발도술!"
"컥!"
충격을 받은 경비병에게 재차 공격하는 현수였다.
"뇌전류!"
"윽!"
마무리로 한 번 더 공격을 했을 때, 경비병 중 1명이 쓰러졌다.
"윽!"
다리를 지키는 경비를 하나 죽였지만 현수 역시 다른 2명의 경비들에 의해서 부상을 입었다.
"젠장. 방어구가 없다는 것이 너무 많은 체력의 손실을 가져온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
벽곡단을 씹으면서 체력을 채우는 동시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어라! 혈천천하!"
"시팔! 너 같으면 죽겠냐?"
현수는 급한 나머지 뇌려타곤의 수법으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거리를 두었다가 곧바로 대쉬해 들어갔다.
"호심발도술! 뇌전류!"
현수는 두 가지의 무공으로 막아서는 경비들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살황의 일기장, 은신술!"
현수는 신형을 감추었다.
정막! 경비들은 신경을 집중해 현수의 기척을 찾아내려고 했다. 현수 역시 방심하지 못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레벨 업을 조금 더 하는 것인데. 빼도 박도 못 하게 생겼다. 젠장!'
자신의 성급함이 화를 불렀지만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인내심의 싸움이었다. 누가 오래 버티느냐가 승패의 갈림이 되었다. 현수는 입은 부상으로 인해 체력의 손실을 계속해서 입고 있었다.
'독한 것들. 레벨만 비슷해도 암살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들을 보고 현수는 욕을 했다. 이렇게 가면 불리해지는 것은 현수이기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만일 죽은 경비병이 리젠이 된다면 현수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는 수 없다. 일단 움직인다."
팟팟팟팟!
현수가 움직이자 곧 기척을 느끼고 공격해 들어오는 그들이었다.
검이 그들에게 향했다. 현수는 살을 주고 뼈를 깎는 방법을 선택했다.
"윽! 호심발도술! 뇌전류! 팔검수화진검류!"
검이 정확하게 경비의 목을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현수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경비병의 검이 왼쪽 어깨를 관통하고 있었고 또 살아남은 경비병의 검이 현수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출혈로 체력이 떨어집니다.
현수는 급히 벽곡단을 입에 넣으며 다리에서 뒹굴 수밖에 없었다.
2명은 제거했지만 1명을 제거하지 못한 현수였다.
1명 남은 경비병이 천천히 현수를 향해 걸어왔다.
"젠장!"
"대단하군. 그대가 호면객이라는 인물인가?"
"칫! 경비도 처리하지 못한 주제에 뭐가 그리 대단할까?"
비꼬는 듯이 말한 경비병은 검을 들어 현수를 향해 천천히 현수를 내려쳤다.
"죽어라!"
움직이지 못하는 현수를 보고 방심했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현수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엉성하게 내려오는 검을 보고는 손을 움직였다.
"뇌전류!"
앉은 자세에서 용천검이 움직였다. 체력은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용천검의 예리함으로 경비병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컥!"
경비병 역시 현수의 검에 의해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자신과 키 높이를 맞춘 그를 현수는 이마로 들이박았다.
"악!"
"이게 바로 천하무적의 철두신공이다."
박치기의 유리한 점은 박는 놈이 박히는 놈보다 충격을 조금 덜 입는다는 것이다. 물론 석두나 철두면 금상첨화이다.
"윽!"
현수는 이마에서 피가 흘렀지만, 경비병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출혈로 인해 체력이 떨어집니다.
현수는 마지막 남은 벽곡단을 입에 털어 넣고는 인벤토리에서 붕대를 꺼내어 상처 부위를 감았다.
-출혈이 멈추었습니다.
현수는 체력 게이지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나 싶어, 쓰러진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내가 천에서 배운 두 가지 교훈은,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신속하게 그 기회를 살리라는 것과 죽일 상대가 있으면 뜸을 들이지 말고 가장 빠르게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요행으로 이번은 넘길 수 있었지만 다음에 또 이렇게 넘어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 했다.
"뭐지?"
현수는 떨어진 아이템을 주워 들고는 확인했다.
"아이템 확인!"
아이템 : 사사혈천의 호패
설명 : 사사혈천의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호패. 사사혈천의 인물이라면 모두 지니고 다닌다.
"뭐야. 그냥 잡아이템이란 말이잖아. 괜히 좋아했네. …아니지."
중원에 심어 둔 간세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되는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수는 리젠되는 경비병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다리를 벗어났다. 그러고서 외곽의 안전 지대로 나와 령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왜 이렇게 늦지."
한참을 기다린 현수는 조금은 초조했다. 령이 입구에서 다른 유저들에게 막혀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닙니다. 다만 경비가 삼엄해 몰래 들어오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령 역시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NPC들도 수련을 하면 더 강해질 수 있구나.'
현수는 이런 생각을 하고는 령에게 경비병에게서 얻은 사사혈천의 호패를 주었다.
"폐하께 전해라."
"이게 무엇입니까?"
현수는 사사혈천에 대해서 령에게 설명해 주었다.
"사사혈천이라는 무림의 단체에서 신분을 말해 주는 호패이다. 넌 이것을 가지고 가서 황궁에서 누가 사사혈천의 간세인지 알아보아라."
"알겠습니다, 군!"
령은 호패를 가지고 사라졌다.
현수는 사사혈천의 던전으로 통하는 다리를 보았다. 하지만 다시 그들과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휴! 거와를 잡아 레벨 업을 한 뒤에 한 번 더 도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