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성 연합
천금뇌옥!
황실의 중죄인만을 가두는 뇌옥이었다.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사용해 천연의 요새로 바꾸어 버린 천금뇌옥은, 생긴 이래 100년 전의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탈옥에 성공한 이가 없었다.
단 한 번의 탈출에 성공한 이는 무림을 종횡무진 누볐던 100년 전의 3황자인, 천화 황자였다.
그는 황후가 낳은 황자가 아니었다.
그 당시의 황제는 사냥을 나가던 중, 황제의 암살을 시도한 자객들에 의해 부상을 입고 한 민가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민가에는 노부부와 어린 딸이 살고 있었는데, 황제는 어린 딸의 정성스러운 간호로 인해 완쾌될 수 있었다.
그녀의 정성에 감복한 황제는 그녀를 취해 버렸다. 황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처리하고 그녀를 데리러 온다는 말과 함께 증표로 그 당시 끼고 있던 반지를 그녀에게 주었다.
한 번의 동침으로 그녀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그 아이가 당시의 3황자인 천화였다. 그녀는 천화를 낳다 죽었고, 노부부는 홀로 남겨진 천화를 키웠다.
황궁의 난이 정리가 되고 나서 황제는 그녀를 찾았으나, 그녀는 어린 천화만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 후였다.
황제는 천화를 황궁으로 데리고 가 3황자라는 지위를 주고 그에게 무엇이든 해 주어, 이제껏 못 다 준 자식과 부모의 정을 나누고자 했다.
하지만 천화가 오기 전에 이미 두 황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천화를 시기했기에 황제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두 황자 때문에 천하를 그에게 줄 수는 없었지만, 또 다른 천하인 무림을 그에게 주려고 마음먹고는, 천화를 황궁 무고에 들여보내었다.
천화는 황궁 무고에서 제황경을 터득하고 또한 얘기치 못한 기연을 얻을 수 있었다. 황제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준 반지로 인해 금황신공이라는 절학을 익힐 수가 있었던 것이다.
10년의 수련을 마치고 황궁 무고에서 나온 천화에게 기다리는 것은 천금뇌옥이었다. 수련 기간 동안 황제가 바뀌어 1황자가 황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화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순순히 천금뇌옥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다시 전 황제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낸 후에, 천금뇌옥에서 탈출해 신분을 숨기고 무림으로 나갔다.
그때 천화가 얻은 칭호가 무황이었다. 황궁 무공의 방대한 무학에 정통한 천화!
그는 가히 무적신공이라고 세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금황신공을 발판으로 다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자, 무림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천화는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은거해 버렸다. 그런 천화 황자를 제외하고는 천금뇌옥에서 탈출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천금뇌옥에 수감된 영민 3황자는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생활이었다. 천금뇌옥은 힘이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윽!"
3황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환관들에 의해 이곳에 수감된 죄수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3황자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호호!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귀하신 3황자께서 오늘도 입술을 깨무는군요."
요사스럽게 웃음을 흘리는 사람은 충빈이었다. 충빈은 황제의 사랑을 단 한 번밖에 받아 보지 못한 빈이었다. 그녀는 정난 희비의 시기에 의해 천금뇌옥에 갇혔다.
언젠가 다시 황제가 자신을 불러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곳에서의 강자존의 흐름에 의해 결국 그녀는, 천금뇌옥 죄수들의 수장인 천륭 장군의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로 인해 얻은 것은 바로 삶이요, 힘이었다.
그녀는 3황자가 온다는 말을 듣고 천륭 장군에게 자신의 노예로 줄 것을 원했고, 천륭 장군 역시 충빈이 어떤 일로 이곳에 왔는지를 알고 있어 두말없이 3황자를 충빈에게 주었다.
"호호! 그런 눈이 마음에 들어."
3황자는 충빈을 죽일 듯 노려보았으나, 충빈은 오히려 그런 것을 즐기는 듯했다.
"이리 와서 나의 발에 입을 맞추어라."
3황자는 또 한 번 입술을 깨물고는 기어서 충빈에게 다가가 발에 입을 맞추었다.
"호호호! 그렇지. 정난 희비 그년이 지금 너의 모습을 보면 구천에서 통곡을 할 것이다. 호호호!"
퍽!
충빈은 발을 들어 3황자의 면상을 그대로 차 버렸다.
3황자는 이곳 천금뇌옥에서 충빈의 색노色勞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호호! 오늘 나의 기분을 달래 주면 내일은 쉬게 해 주마."
3황자는 꼭 살아야 된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복수할 것을 다짐했다. 황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목표가 되어 버렸다.
"으응!"
3황자는 익숙하게 충빈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다.
그의 모습에서 이미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구차하게라도 삶을 살겠다. 그리고 꼭 복수를 할 것이다.'
3황자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이현수였다.
하지만 그 누가 알고 있을까?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지옥이요, 고통의 나날인 곳에서 3황자는 오늘도 충빈의 변덕에 신음을 흘려야 했다.
* * *
현수는 능소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천루정을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능소에게 말을 막 하는 것으로 봐서는 무영신투가 틀림없었다.
'자자!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조용히 뒤를 따르는 현수는 그들이 과연 하남의 천연장으로 갈지 궁금해졌다.
한참을 뒤따라가는 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참 재미있어. 이곳은 또 어디지?'
무영신투가 간 곳은 폐찰이었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고 난 후, 현수는 폐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익.
부서질 듯한 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안의 모습을 외인에게 보여 주었다.
목이 잘려 나간 대불이 천년만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천장의 곳곳에는 거미줄이 너절하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하! 내가 당한 것인가?"
하오밀문에서 항시 꼬리를 잘라 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비상 통로였다. 만일을 대비해서 무영신투와 혈충소 그리고 능소는 이 통로를 사용해서 이곳을 벗어났다.
현수는 살황의 일기장을 사용해 그들의 흔적을 찾았다.
"하긴 곱게 보내 주었는데 미행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놈이 바보지."
현수는 목이 잘려 나간 대불에서 흔적을 찾아내었다.
대불의 왼 손바닥 위로 올라가 중지를 힘껏 밟았다.
그러자 좌선해 있던 대불의 몸이 한쪽으로 밀리며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오호!"
비밀 통로는 모두 세 곳이었다. 문제는 세 곳 다 사람이 지나친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쓰는군. 하긴 이 정도도 머리를 쓰지 못하면 하오밀문이 살아남을 수가 없었겠지."
현수는 다시 대불을 원상대로 돌려놓고는 폐찰을 벗어났다. 그들을 따라 들어가 찾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괜히 신중한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돌아선 것이었다.
현수는 만약 무영신투가 천연장으로 오지 않으면 다음의 공격 대상은 천루정으로 하리라고 이미 정해 놓았다.
현수는 그 길로 하남의 천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른 이들은 벌써 천연장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오냐?"
"그래! 다른 애들은?"
"놀면 뭐 하면서 사냥 갔다. 어찌 보면 참 태평하지."
건은 현수에게 웃으며 말했다.
"잘 생각했네. 혜련이는?"
"같이 사냥 갔어. 역발산이 마음에 있는지 아니면 빵 값을 아끼려고 하는 것인지 몰라도 데리고 나갔다."
"수아는?"
"미샤오하고 함께 있어. 무공을 가르쳐 주고 있을걸."
"그럼 최초로 유저가 NPC 제자를 거두는 일이네."
"그렇다고 봐야지. 하오밀문은?"
건은 경천 표국에서 국주를 잡는다며 사라진 현수의 일이 궁금했다.
"그런대로 해결했다. 일단 무영신투보고 이리로 찾아오라 말했다."
"온대?"
"모르지. 그 뒤를 밟아 하오밀문의 비밀 분타도 하나 찾아 놓았다. 안 오면 가서 또 부숴야지."
"그래? 하여간 이번 일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 나름대로 알아보았는데, 지금 사사혈천이 있는 탑리목 분지랑 세외 그리고 동영으로 들어간 유저와 NPC는 대충 1만여 명이 넘는다. 언제까지 하오밀문과 싸울 수는 없어."
현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사사혈천이나 대학사가 빠져나간 세외로 가고 싶었다.
"곧 연락이 오겠지. 안 오면 그때는 사정없이 부수고 들어가야지."
그때 미령이 찾아왔다.
"나리, 손님께서 나리를 뵙겠다며 찾아왔습니다."
"누구?"
"경천 표국의 국주라고 하옵니다."
현수와 건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마중을 할 터이니 미령이는 가서 차와 다과를 가져오너라."
"알겠습니다, 나리."
미령이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 가자, 건은 현수를 보았다.
"너, 생각보다 자연스러운데? 혹시 집이 선비 집안이냐?"
"그런 소리 마! 이 한 몸 죽도록 고생해서 황궁에서 배운 것들이니까. 가자. 무영신투가 기다리겠다."
건과 현수는 무영신투를 맞이하러 나갔다.
세 사람이 천연장 문 밖에 서 있었다. 현수는 능소를 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본 능소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시팔, 저놈은 웃으면서도 칼질 할 놈이야.'
"자, 안으로 드시지요."
건이 나서서 모두를 안으로 인도했다. 객청에 자리를 만들어 내어 주고는 건과 현수 역시 자리에 앉았다.
"나리, 미령이옵니다."
미령이 들어와 차와 다과를 놓고는 조용히 객청을 벗어났다.
"먼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소이다."
혈충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림인이 하오밀문을 찾는 이유는 하나뿐이지요."
"우리 하오밀문은 귀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치 못하오."
듣고 있던 건이 혈충소를 보고 입을 열었다.
"혈충소라 했나? 아직 협상을 하는 게 서툰 것 같은데 그냥 본론을 말하지? 난 말이야, 여기 계시는 장주님보다 못 배워서 조금 거칠거든."
졸지에 천연장의 장주가 되어 버린 현수는 건을 보았다. 잔머리라면 현수가 나을지 모르지만, 이런 협상에서는 자신보다 건이 나을 것이라 판단하고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장주님과 하오밀문의 문주님이 대화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나? 그대나 나 같은 졸때기는 빠지는 것이 좋지. 아님 우리 졸때기끼리 마무리를 하든가. 우리 장주님께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쪽에서는 졸때기가 이야기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무영신투는 건의 말에 노기를 띠었다.
-문주님, 저놈이 이기어도를 사용하는 놈입니다.
혈충소는 무영신투에게 전음을 보내고는 현수와 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요. 하지만……!"
듣고 있던 현수가 능소를 보며 물었다.
"아직 내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군. 아무리 내가 나에 대해서 함구하라 했지만 최소한 문주에게는 이야기한 줄로 알았는데. 능소, 그대가 생각하기에 내가 그대의 문주보다 못하다고 판단했는가?"
능소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듣고 있던 건은 만사귀의 일을 처리하면서 관군이 현수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떠올리며, 그가 황궁에서의 지위를 말했나 하고 생각했다.
'녀석! 쉽게 일을 끝내기 위해서 황궁을 끌어들였구나.'
"아, 아닙니다. 다만 문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호법님에게 넘겼습니다. 호법님의 말이 곧 문주님의 말입니다. 사실 저희 문주님께서는 말을 잘하지……."
"크험!"
무영신투는 능소가 자신이 말주변이 없다는 것을 말할까 싶어, 일부러 능소의 말을 헛기침으로 가로막았다.
사실 무영신투 역시 많이 배우지를 못해서인지 말주변은 별로 없는 편이었다. 말의 70%가 비속어였고 또한 비속어가 섞이지 않으면 대화 자체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무영신투는 혈충소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물론 사전에 어디까지 양보하고 무엇을 얻을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다 되어 있는 상태였다.
"좋습니다. 그럼 하오밀문 호법님의 말씀은 문주님의 말씀과 동일하다는 뜻이시지요."
"그렇습니다."
무영신투는 현수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현수는 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여기 계시는 혈충소 대협과 우리와 하오밀문의 관계에 대해서 뜻을 잘 조율해서 서로가 이익이 되게 하게. 난 무영신투 대협과 나가서 술을 한잔해야겠네."
건은 현수의 말이 조금 어이가 없었는지 고개를 숙였다.
"장주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자자! 대협, 우리는 이런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 두고 나가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무영신투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혹시 데리고 나가서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능소를 보았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 역시 이곳에 있으면 부담스러울 것이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함께……."
"그렇게 하시지요. 둘이 마시는 술보다는 셋이 마시는 술이 좋고, 셋이 마시는 술보다는 가인의 가무가 곁들여져야 더욱 술맛이 나는 법이지요."
'킁! 현수 저놈의 머리는 도대체…….'
"그렇게 하십시오. 저 역시 혈충소 대협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현수와 무영신투 그리고 능소는 객청을 나가 조그마하게 지어 놓은 정자 위로 올라갔다. 미령이 술상을 봐 왔다. 정자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수아와 미샤오가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드시지요, 가인의 노랫소리는 없지만 무림의 의와 협을 안주 삼아, 자! 일 배!"
현수가 잔을 들자 두 사람은 잔을 들고는 한 번에 받아 마셨다.
능소는 수련을 하고 있는 수아와 미샤오에게 눈길이 갔다. 수아를 보자 능소는 조금 침울해졌다.
-문주님, 저기서 무공을 가르치는 여자를 보십시오.
현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능소는 무영신투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예쁘냐?
-킁! 그게 아니라, 저 여자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습니까?
능소는 다시 전음을 보내었다. 그때서야 무영신투는 수아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현수 역시 이것을 보고 수아를 보았다.
"하하! 수아라 합니다. 이곳에서 무공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무영신투는 수아의 무공 수위를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과 비교했을 때 수아가 반 수 위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별호에서 말해 주듯 무영신투다. 이기지 못할 상대라면 도망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영신투였기에, 얼마든지 수아에게서 도망갈 자신이 있었다.
무영신투와 능소는 현수가 할 말이 있어 따로 데리고 왔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저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현수 오빠!"
대장금이 정자에서 NPC와 술을 먹고 있는 현수를 발견하고는 정자 위로 올라왔다.
"어서 오너라, 장금아. 참, 인사드려라. 이분은 하오밀문의 문주님이시다. 그리고 이분은 대협객 능소 대인이시다."
베타 시절에 현수와 건 사이를 오가며 배운 것이라곤 눈치와 협상하는 법 그리고 배짱뿐인 대장금은 현수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숙여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장금이라고 합니다. 두 분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능소라고 합니다."
"무영신투라는 미명을 얻고 있습니다."
대장금은 현수의 옆자리에 앉아 술을 따르고는, 무림에 대해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자연스러운 질문이라 두 사람은 무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비밀스러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무림세가라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범위가 워낙 방대해 듣는 현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베타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오라버니, 술이 있으니 피리 한번 불어 주세요, 네? 음주가무라 했는데, 술이 있음에도 음악과 노래가 없으니 흥이 안 나네요. 오라버니가 피리를 한번 불어 주세요."
현수는 품속에서 피리를 빼어 입에 대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빌리리 빌리릴 빌리리!
능소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소호강호를 부르고 있었다. 수아와 미샤오 역시 현수의 피리 소리를 듣고 무공 수련을 멈추었다. 대장금은 현수가 피리를 부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악성이라고 해도 대인의 피리 연주를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현수는 이들을 데리고 나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제가 어느 날 천루정이라는 기루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경고다.'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금전 1,000냥이 없으면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지요. 하하! 고작 기루인데 말입니다. 저는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미라 1,000냥을 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더니 무공을 알고 있거나 학문이 뛰어나면 들어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 혹시 두 분께서는 천루정이라는 곳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능소는 자신을 바라보는 현수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문주님,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호법께서도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우리도 따로 이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살황입니다. 어설픈 거짓은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났는지, 무영신투가 입을 열었다.
"사실 그곳은 저희가 운영을 하는 곳입니다."
"그래요? 그럼 하나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장사는 잘되는 편입니까? 금전을 1,000냥씩이나 주고 술을 마실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현수의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무영신투의 귓전에 또다시 능소의 전음이 들려왔다.
-문주님, 뜻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아마 옆에 계신 여자 분은 자신의 오라버니가 살황인지 모르는 듯합니다. 장사가 잘되냐는 말은 사람들을 많이 모았느냐는 의미고 또 금전을 1,000냥이나 주고 술을 마실 사람이 많이 있냐는 질문의 의미는 모은 사람 중에 실속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인 듯합니다.
전음으로 빠르게 나름대로의 뜻을 풀이해서 알려 주는 능소였다.
"하하! 장사라고 해 봐야 그리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돈을 못 써 안달한 관리나 무림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1달에 손님을 한 번만 받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지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전 장사가 잘되어 다른 곳에 그런 주루를 또 세우면 저 역시 하나 부탁하려 했습니다. 하하."
능소는 태어나서 지금처럼 머리를 많이 써 본 일이 없었다.
-문주님, 저 말은 사람을 많이 모아 힘이 생기면 다른 곳을 노릴 생각이 아니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 부탁한다는 말은 그 힘으로 자신을 도울 생각이 없느냐는 뜻일 것입니다. 이에 살황 역시 목표는 천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확대 해석 하는 능소였다. 또한 무영신투 역시 능소의 말이 맞다고 생각을 했다.
"하하! 이를 뿐이겠습니까. 장주께서 잘되시어 우리를 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하하하!"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장금은 두 사람의 대화의 깊이는 알 수 없으나, 무엇인가 방금 오가는 것을 느꼈다.
사냥을 갔던 천연회의 사람들이 하나 둘 천연장으로 돌아와, 술자리를 벌이고 있는 정자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늘어나 더 이상 대화는 나눌 수 없었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건과 혈충소가 정자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린 반면에 혈충소의 얼굴은 그렇게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밤이 깊어 가자 현수가 세 사람에게 하루 동안 쉬고 내일 떠나라는 말을 함으로써 술자리가 끝났다.
천연회의 사람들은 객청에 모두 모여 건의 협상 내용에 대해 들었다.
"어떻게 됐어?"
"잘되었다. 하오밀문과 우리는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하오밀문에 모인 정보는 보름에 한 번 이곳으로 인편을 통해 전해 주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고, 그 일을 혈충소가 직접 하기로 했다."
"우리가 하오밀문에 줄 것은?"
"하오밀문은 강소성에서 뿌리 내리기를 원해. 우리는 그것을 도와준다는 조건이다."
모두가 이해타산이 빠른 사람들이라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해득실을 따져 보았다. 건의 협상 조건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강소성 문파의 수는?"
"조금 많아."
"설마 그들과 싸운다는 말은 아니겠지?"
필살검이 조금 걱정이 되는지 건에게 물었다.
"그렇지는 않아. 하오밀문이 정식 개파를 할 때 방해되는 문파만 손보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유저들이 만든 문파가 아니라 NPC들인데……."
건 역시 NPC들이 만든 문파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강소성에는 구파일방에 속하는 문파가 없지만, 강소성 회음현의 구산이라는 곳에 만수문, 강소성 진강 서북에 금산정사 그리고 강소성 서남쪽에 봉황산정, 이렇게 세 곳의 대표적인 NPC의 문파가 있었다.
구산의 만수문은 조련시킨 맹수들을 이용해 세를 넓히고 있는 문파로, 그들의 문주는 만수신군이며 그의 성명절학은 만수진경이었다.
금산정사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절이었다. 하지만 그 세가 갑자기 불어나 강소성을 대표할 만큼 성장했다. 누군가 금산정사의 뒤를 밀어 준다는 소문이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봉황산정은 봉황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인 집단이다. 무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낭인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돈만 주면 전쟁이라도 대신 치러 주는 곳이기도 했다.
현수는 강소성의 문파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단지 강소성에서 뿌리만 내리면 된다 이거지."
"그래? 현수 너, 좋은 생각이 있어?"
현수는 강소성 성주에게서 들은 그곳의 문파의 사정을 대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소성에는 총 23개의 문파가 있어. NPC들의 문파는 건이가 말한 3개의 문파 외에 6개의 문파가 더 있고, 나머지는 유저들이 만든 문파야. 그리고 강소성에서 가장 큰 문파는 유저들이 만든 곳으로, 윤석이가 만든 진중파지. 그다음이 악령이와 솔미 누나가 만든 솔악파. 나머지는 다 비슷해. 진중파가 크다고는 하나 앞서 말을 한 3개의 NPC 문파보다는 힘이 약하지. 물론 솔미 누나와 악령이 만든 솔악파 역시 NPC들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고."
모두들 현수의 말을 듣고는 놀랐다. 언제 그런 것을 다 알았냐는 듯한 눈치였다.
"기본이잖아. 일을 하기 위해서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은."
하지만 아무도 현수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현수 네가 그런 것도 조사해?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고? 정식 서비스에서 현수가 안 하던 짓을 하는 것을 보니 조금 이상하다."
화령검객은 현수에 장난처럼 말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해 보자. 일단 우리가 하오밀문에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게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NPC들의 문파가 강하다고는 하나 유저들의 문파 두세 개 정도가 손을 잡으면 어찌할 수 있지 않을까?"
"그야 그렇겠지."
"내가 강소성에서 솔미 누나를 만났어."
"그래? 뭐래?"
"악령이와 결혼한다고 하더라."
"컥!"
전혀 예상치 못한 현수의 대답에 모두는 어이가 없었는지 현수를 노려보았다.
"진짜야. 솔미 누나랑 악령이가 내년에 결혼한다고 해서, 내가 선물로 윤석이에게 협박성 전서구를 날려 주고 왔어. 그리고 이왕이면 강소성을 솔악문의 영향 아래 두었으면 한다는 말도 함께 말이야."
모두는 현수의 말을 듣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솔악문이 강소성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23개나 되는 문파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솔악문 역시 그 힘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합해서 덤비는 문파들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서 부숴. 우리가 손봐주고 오면 되잖아. 아니면 하오밀문에 이야기해서 솔악문이랑 손잡고 다른 놈들 다 족치라고 하든지."
역발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역발산에게 돌아갔다.
'옛날의 역발산이 아니야. 저놈이 똑똑해지면 골치 아픈데.'
모두의 생각이었다.
역발산이 말하고 있는 것을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솔악문과 하오밀문이 손을 잡고 강소성을 손에 넣으면, 하오밀문이 천연회를 배신하고 정보를 다른 곳에 주지 않을까였다.
"그냥 밀어붙이자. 생각해서 답이 안 나오면 가서 뭉개면 되는 거야."
답이 안 나오는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역발산의 말대로 부딪치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것이 더 이로울 때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그럼 현수 네가 무영신투에게 이야기할 거야?"
건이 역발산의 말에 찬성을 하고 나섰다. 하루라도 빨리 하오밀문의 일을 마무지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야겠지. 약간의 경고와 함께 황궁의 힘을 빌려야지. 정보를 파는 놈들이라 이해타산이 빠르거든."
"그럼 그렇게 하자."
"혜련이도 같이 가는 거지?"
역발산은 혜련이 진짜 마음에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혜련을 먼저 찾았다.
"그래. 빵 값이라도 아끼려면 그렇게 해야지."
모두는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역발산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티를 내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에.
"일이 해결되면 우리 역시 다른 지역으로 사냥터를 옮겨야 돼. 그래서 각자 사냥을 하되 사사혈천과 세외 그리고 동영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봐! 그리고 우리가 모은 정보와 하오밀문의 정보를 비교해 보게 말이야."
"그렇게 하지. 다들 수고해라. 접속 해제 하고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카오스가 먼저 접속을 해제한 후에 모두 뒤따라 접속을 해제했다.
* * *
천연장에서 머물고 있던 무영신투와 혈충소 그리고 능소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곳은 용담호혈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구파일방과 비교해 보면 아직 천하를 노리기에는 부족하다."
혈충소가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들 개개인의 무력은 구파일방의 장로들과 비교하면 반 수 아래 정도입니다. 하지만 호법님께서도 보고 느꼈겠지만, 살황과 협상을 한 놈은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하물며 살황이 만약 살수를 쓴다면 그들은 살황의 손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누가 있어 살황의 살수를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10개 전설 중 하나를 이은 자라고 해도 살황의 살수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10개의 전설 중에서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또한 살황이 가장 약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살황은 일반 무인이 아닌 살수 무인이다. 그런 자의 무공을 일반인의 무공과 같이 생각하는 게 잘못된 것이었다.
"맞아. 살황이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암습한 후 그 시팔 것들이 기습하면, 아무리 쪽수 많고 개지랄을 떨어도 피를 보는 것은 이쪽이 아닌 구파일방 쪽이야."
"그렇습니다. 더구나 살황은 아직 살수들을 감추고 있습니다. 만약 신비의 살수 집단인 은자림마저 살황을 종주로 인정하면, 천하는 이미 살황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세 사람은 능소가 말한 은자림이라는 말을 듣자 조용해졌다.
생각보다 긴 침묵이 흐르자 무영신투가 입을 열었다.
"방각이나 혁무기보다는 낫겠지?"
"아마!"
혈충소와 능소는 동시에 대답했다. 밤은 계속 깊어 가는데 잠이 오지 않아, 잡생각만 잔뜩 하고 있는 세 사람이었다.
* * *
모두는 강소성으로 이동을 했다. 현수는 솔악문과 하오밀문을 연결시켜 주고 있는 중이었다.
강소성에 도착한 천연회와 무영신투를 비롯한 하오밀문의 혈충소와 능소는 솔악문으로 곧장 향했다.
솔악문의 문도들이 조금은 어수선해 보이자, 현수는 그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진중파의 문파원들이 솔악문의 문도들이 사냥하는 곳에 와서 뒤치기를 해 모두를 죽이고 나서 떨어진 아이템을 먹고 도망간 일이 일어나, 진중파와 솔악문의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악령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뜻을 진중파의 윤석에게 밝혔다. 하지만 윤석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면 발을 뺀 것이었다.
화가 난 악령이 진중파의 문파들이 사냥하는 곳을 덮쳐 모두 죽여 버리자 윤석이 솔악문과 전쟁을 선포해 버렸다.
아직 문파 간의 전쟁은 천에서 허용치 않고 있었지만 이들 두 문파는 상관이 없다는 듯 전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야! 너 경고문을 보내었다며? 윤석이가 너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말이네?"
"모르지. 문파원이 많으니 진짜 윤석이가 몰랐을 수도 있어. 또 베타는 베타일 뿐이라고 생각했겠지."
서둘러 솔악문으로 들어간 천연회의 사람들은 부문주인 악령을 만났다.
"어서 와!"
"축하해!"
모두들 먼저 솔미와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고마워! 그런데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지."
"아니! 좋은데? 참, 인사해. 이쪽은 하오밀문의 문주님이셔. 이번에 강소성에 자리를 잡기를 원하고 있어 너희에게 소개해 주려고 왔어."
악령은 무영신투를 보고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악령이라 합니다. 이곳 솔악문의 부문주 직을 맡고 있습니다."
"무영신투라 합니다. 그런데 문주님께서는?"
순간 아직 접속하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잠시 당황했다.
"이분의 부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사실상 부문주님께서 이곳 솔악문의 문주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그런데 왜 우리를 찾아왔어?"
현수는 하오밀문이 강소성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도와 달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해 주면 진중파의 사건은 천연회에서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고맙지만 이건 우리 문파의 일이야."
"알아!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럼 너희 역시 이곳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그래, 악령! 윤석이는 우리가 해결해 줄게. 윤석이도 정말 모를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야. 사람의 마음은 모르는 것이잖아."
악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령 역시 전쟁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좋아. 일단 진중파에 가서 윤석이를 만나 보고 어떻게 할지 이야기해 줄게."
천연회가 모두 나가고 무영신투와 혈충소, 능소만이 남자, 그들은 악령과 앞으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저기 저분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현수가 살황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진 무영신투가 물었다.
"그들은……."
순간 말이 막혔다. 그렇다고 베타 시절의 일황이니 일마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했다. 그러고는 결론을 내린 한마디가 바로!
"알려지지 않은 10대 고수입니다."
쿵!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들을 알고 있는 무인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아마 저들이 전면에 나섰다면 뜻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냥 지어내서 말하는 악령이었지만 듣는 세 사람은 그게 아니었다.
-역시 결정을 잘한 것 같지?
-그렇습니다. 우리 하오밀문이 양지에서 일어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주님! 앞에 있는 부문주 역시 상당한 고수입니다. 그런 고수가 서슴없이 10대 고수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번엔 우리가 제대로 줄을 선 것 같습니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세 사람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악령은 앞날을 생각했다.
한편 진중파를 찾은 천연회의 일행은 솔악문과 같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솔악문과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문주님을 찾아왔는데, 지금 자리에 계십니까?"
"그렇기는 한데 누구십니까?"
같은 유저로 보이는 사람이 문파의 수장을 만나러 왔다는 말에 의심스러운 눈으로 누구인지 물었다.
"친구입니다. 베타 시절을 함께한."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안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필살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이상한데? 문파의 수하가 저 정도의 예의를 지킬 줄 안다면 뒤치기를 해서 아이템을 먹고 도망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게. 우리가 악령이에게 속은 거 아니야?"
카오스 역시 필살검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르지. 일단 만나 보고 이야기를 들어 봐야지."
"윤석이가 자존심이 세서 그렇지, 뒤치기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놈이지. 그건 나, 역발산이 보장할 수 있다."
문지기를 보면 그 집안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모두들 한쪽으로만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고 윤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날 찾아와… 너희들은?"
"잘 있었냐?"
건이 먼저 윤석에게 말을 걸었다. 이들을 본 윤석의 표정은 결코 좋은 게 아니었다.
지난날 윤석은 현수의 전서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이 이곳에 온 이유가 솔악문과 관계가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수의 적수는 건이었다. 솔악문에 현수가 있다면 자신은 건을 끌어들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을 수소문하던 중이었다. 현수와 함께 건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번 싸움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 친구가 왔는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도 안 하냐?"
역발산의 목소리가 윤석의 생각을 깨웠다.
"그냥 돌아가. 솔악문과 관계가 있다면 그냥 돌아가."
"그게 무슨 말이야? 널 보기 위해서 먼 길을 왔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 보자. 알다시피 우리도 꽉 막힌 인간들이 아니니까."
화령검객이 말하자 윤석은 할 수 없이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문파의 객청에 모두 모인 이들은 간단하게 차를 내오는 윤석을 보고 사실에 대해 물었다.
윤석 역시 답답한 마음을 이들에게 호소했다.
"나도 미치겠다. 사실 그놈들이 누군지도 몰라. 문파원들이 많으니 나 혼자 관리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4명의 당주를 두어 그들에게 문파원을 가입시킬 수 있는 권한을 주었어."
"그래서 문파원을 일일이 다 확인하지 못한다는 말이지?"
"그래, 내가 왜 솔미 누나가 있는 곳에 시비를 걸겠어. 현수 너도 알잖아. 솔미 누나가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 내가 이곳에 문파를 만든 이유가 솔미 누나 때문인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그래서?"
"애들에게 다른 문파에 사소한 시비를 걸지 말고 또 솔악문은 무조건 피하라고 했는데… 나도 이번에 알았어. 너에게 전서구를 받고 왜 나에게 이런 전서구를 보내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 알았어. 애들 몇 명이 악령이에게 죽고 나서 아이템을 빼앗긴 후에 말이야. 일이 커지자 더 이상 나에게 숨길 수 없었는지 모두 이야기를 해 주더라.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문주라는 놈이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도 모르고 레벨 업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그놈들은?"
"이미 문파를 탈퇴하고 강소성을 벗어난 후였어. 감숙성의 파한이 역시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하던데 아마 그놈들, 전문적으로 그런 짓을 하는 놈인 것 같아."
천연회의 모두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왜 솔악문과 전쟁을 하려고 해?"
"난 한 문파의 수장이야. 우리 쪽의 잘못으로 인해 일이 일어났지만, 한 문파의 수장이 한 말을 믿지 못하고 악령이 우리 애들 7명을 죽이고 떨어진 아이템을 먹었어. 난 애들을 위해서라도 솔악문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
모두는 윤석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래서 한 문파의 수장이란 고달픈 것이다.
"알았어. 그럼 그냥 이야기로 끝내. 서로의 오해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까."
윤석은 현수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악령이 우리 애들에게 아이템을 돌려주어야 해. 무공이나 떨어진 레벨은 다시 어떻게 한다고 해도 아이템은 힘들어. 요즘 시중에 나오는 것도 죽은 애들의 레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까."
"좋아! 악령이에게 말해 볼게. 그리고 이왕이면 사이좋게 지내라. 그리고 이번에 악령이가 하오밀문을 끌어들였어."
순간 윤석의 표정이 바뀌었다. 인간이 많기로 소문난 하오밀문이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이번에 오해를 풀고 하오밀문을 통해 그놈들을 찾아봐."
"도와주면 그렇게 해야지."
"듣고 있으니 윤석이가 한 문파의 수장답다. 언제 그렇게 성장했냐?"
건은 윤석이 한 문파의 수장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나도 이번에 느꼈다. 베타 시절이라면 아직도 몰랐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게 현실이라는 것이 피부에 그냥 와 닿는다. 우리 애들뿐만 아니라, 강소성 주위의 문파와 NPC들이 모두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현수는 말하는 윤석을 보고 되물었다.
"그 이유를 알아? 왜 주위에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인지?"
"몰라."
"윤석이 네가 말했잖아. 현실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고. 현실이기 때문이지. 너희 둘의 싸움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너희 둘만이 아니야. 그중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이 바로 일반 NPC들이야."
윤석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건과 현수를 보았다. 아직 이 둘에게는 멀었다는 생각을 가졌다.
"아직 멀었군."
"뭐가?"
"너희 둘을 따라가려면 말이야."
윤석의 말을 들은 건과 현수를 제외한 모두는 윤석의 머리를 한 번씩 쥐어박았다.
"아야! 왜?"
"야! 그게 말이 돼? 너 인간이고 싶지 않아? 네 눈에는 저 둘이 인간으로 보이니?"
역발산이 건과 현수를 보며 말했다. 갑자기 공격 대상이 되어 버린 건과 현수는 조금 황당했다.
"그래! 그렇게라도 생각을 해야지. 그리고 고맙다. 솔악문과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윤석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가자! 하오밀문의 문주 역시 그곳에 있으니 함께 이야기를 해 보면 대충 답이 나올 거야."
"그래."
건을 비롯한 천연회의 모두는 현수를 보았다.
무슨 일이든 쉽게 해결하는 것과 또 그 일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을 취하는 것!
이것들이 현수가 천에서 가장 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일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때는 무식할 정도, 아니 상대방이 치를 떨 정도의 무력을 동원하지만 말이다.
윤석은 솔악문으로 가는 것이 조금 껄끄러워 객잔을 선택해서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수는 악령과 무영신투가 있는 솔악문으로 향했다.
"누나."
"왔니? 자기가 말하던데, 윤석이에게 갔다며."
"응. 악령이는?"
"하오밀문의 문주인가 하는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현수 네가 데리고 왔어?"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일단 악령이 믿을지 몰라도 윤석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고는 기다리고 있는 객잔으로 함께 가기를 원했다.
"안 가. 윤석이가 먼저 우리 애들 아이템을 먹었어. 그리고 그들이 떨어트린 아이템들은 벌써 우리 애들에게 주었어."
솔미는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었다.
-문주님, 아마 그놈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 어떤 개 같은 놈들이야?
-호북성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도 놈들이 죽인 무사들의 무기와 옷을 강탈해 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살황이 말한 대로 문파 간의 싸움이 벌어질 뻔했습니다. 그 당시 다행히 목격자가 있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이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기회입니다. 이런 정보를 넘겨주면 우리가 더욱 강소성에 뿌리를 내리기 쉬울 것입니다. 진중파 역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야! 충소야, 네가 말해.
혈충소는 무영신투의 전음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령과 현수는 혈충소를 보았다. 현수는 대충 짐작이 가는 듯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본 능소가 무영신투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문주님, 혹시 살황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아닐까요? 왠지 저 미소가 기분이 나쁩니다.
-빌어먹을 놈! 하필 많고 많은 놈들 중에 살황이란 말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악령이 묻자 혈충소가 입을 열었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이 전에도 몇 번 있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 호북성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 감숙성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아마 동일범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음!"
듣고만 있던 솔미가 말했다.
"자기야, 그렇게 해. 일단 윤석이를 다시 만나 봐. 윤석이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아니다. 나도 같이 가자. 내가 해 준 것이 있는데 사람이라면 내 앞에서 거짓말을 못 할 거야."
"그, 그래."
악령은 솔직히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문주님께서 함께 가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수가 무영신투에게 말을 걸자 그는 경기를 일으켰다.
'저놈, 날 혼자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문주님, 그렇게 하십시오, 저희는 올라온 정보를 총동원해서 이번 일의 진상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빨리 알아봐야 한다. 늦으면 저놈이 날 어떻게 할지도 몰라.
-이미 한번 보고가 올라왔던 사건이라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볼일이 있다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현수는 나가는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무영신투에게 미소를 보냈다.
'헉! 시팔 놈! 제발 날 보고 웃지 마라.'
"가시지요.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모두 있습니다."
현수가 앞장서자 모두 현수의 뒤를 따랐다.
객잔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오밀문의 혈충소가 도착했고, 하오밀문에서 보관하고 있는 방문을 보여 주었다.
방문에는 똑같은 수법으로 당한 문파가 그 지역에서 의뢰 퀘스트를 내어 남의 아이템을 강탈하고 도망간 6명의 무사를 잡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로의 오해가 풀린 것은 좋지만 아이템이 문제였다.
아이템을 빼앗긴 문파원들을 위해서라도 찾아 주어야 했지만 이미 남의 손에 들어가 버린 아이템이라, 악령 역시 다시 문파원들에게 달라고 말하기가 조금 민망했다.
현수는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어차피 아이템은 돌려받기 조금 그러니, 너희 문파원 중에서 최고수만 뽑아서 사사혈천이나 동영, 세외로 사냥을 가서 그곳에서 나오는 아이템의 우선권을 윤석이가 가지는 것으로 하고, 윤석이는 그 아이템으로 그들에게 보상하는 것이 어때? 서로 도와주고, 너희 둘과 하오밀문의 정보력이라면, 공성전 때 너희들이 강소성을 차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두 문파의 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끝난 거야?"
솔미는 윤석에게 다가가서는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무영신투와 혈충소는 분위기 파악에 나섰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누나한테 이야기를 하지. 남자가 고작 그런 일로 서로 칼부림을 하려고 했어?"
"그게 아니라……."
말을 못 하고 중얼거리는 윤석을 본 하오밀문의 두 사람은 서로 전음을 주고받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저 무공도 모르는 미친 것이 분위기 좋아지려는데 초 치고 있는 거 아니냐?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분이 솔악문의 문주입니다. 무공은 몰라도 무엇인가 대단한 재주가 있을 것입니다.
-음! 요즘에는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왜 이리 많이 등장을 하냐?
-난세라 그런 겁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문주님.
-난세가 두 번이면 세상에 인간 같은 놈은 한 놈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