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오밀문을 얻다 (29/57)

하오밀문을 얻다

역발산과 수아가 천연장을 봉쇄하고 있던 하오밀문의 잔당을 처리했는지, 천연장의 주위에는 하오밀문의 문도들이 보이지 않았다. 현수는 만약을 대비해서 운중무영보를 사용해 천연장으로 숨어 들어갔다. 천연장의 주위에는 없지만, 그래도 하오밀문에서 천연장을 감시할 것이라 생각했다.

천연장 안에서 모습을 보인 현수를 제일 먼저 반긴 사람은 천연회의 인물이 아닌 미령이었다.

"나리, 이제 오십니까?"

"그래, 미령이구나. 이곳은 살 만하느냐?"

"네, 나리. 다른 나리들께서도 너무 잘해 주십니다."

현수는 미령의 인도를 받아 그녀의 가족들을 소개받았다.

"어르신, 그냥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다 아들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래야 저희들도 편합니다."

"아이구!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나리! 나리 덕에 저희가 지금 호강을 하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요. 그러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현수는 미령의 동생들을 보았다. 모두 총명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래, 넌 커서 뭐가 될 것이냐?"

"소인은 아무런 바람이 없습니다. 그냥 어버이와 누이 그리고 동생과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인의 소원입니다."

"사내로 태어나 꿈이 없는 것보다 더 비참한 삶은 없는 것이다. 내 너에게 한 가지 명을 내리마!"

미령의 동생은 긴장한 듯 현수를 보았다.

"내일까지 뭐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서 나에게 말해라."

그러고는 미령의 여동생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넌 뭐가 되고 싶으냐?"

미령의 여동생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힘들게 말했다.

"전 수아 아가씨처럼 멋진 무인이 되고 싶어요, 나리!"

"미샤오!"

아버지가 미샤오를 나무라듯 불렀다. 이렇게까지 살게 해 준 것도 고마운 일이기에, 무인이 되겠다는 아이의 말에 아버지인 그는 꼭 현수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미샤오라고 했느냐?"

"네, 나리!"

"여자의 몸으로 무인의 길을 가는 것은 험난하다."

"네, 소녀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 문으로 과거를 보지 못해 비상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무인으로 세상에 나가 많은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자신의 소신을 정확하게 말하는 소녀에게서 현수는 만족감을 얻었다.

"그래, 어떤 무공을 배우고 싶으냐?"

"수아 아가씨의 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당돌한 아이. 그렇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때 천연회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 마침 저기에서 사람들이 오는구나. 수아에게 물어보고 그렇게 하게 해 주겠다. 하지만 수아가 싫다고 하면 다른 무공을 배워야 한다."

"감사합니다, 나리."

"미령이는 행복하겠구나. 이렇게 좋은 가족들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나리.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천연장의 한쪽에 마련된 접견실에 모산으로 간 만사귀와 행방불명 중인 화화공자를 제외한 모두가 모였다. 수아와 이화 역시 함께 있었다.

"이제 하오밀문만 처리하면 되는 건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현수는 필사검과 환상검을 보았다. 하오밀문의 본 단의 위치를 찾았는지 묻는 것이었다.

"못 찾았다. 이놈들은 마치 본 단이 없는 것 같아. 하오밀문의 문주가 있는 곳이 본 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 건이는 어때?"

"우리 쪽이야 그냥 치고 빠지니까 그런 것을 알아볼 사이도 없지."

"너희는?"

현수는 수금인을 보고 물었다.

"일단 죽이고 보는 거지. 놓치면 큰일이다 싶어서 말이야."

현수는 모두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다.

"그럼 무식하게 밑에서부터 하나하나 올라가야 되겠네."

"할 수 없지."

현수는 황궁에서 조사한 것을 이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럼 하오밀문을 꼭 얻을 필요가 있을까? 황궁의 금의위만 동원해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말이야."

카오스는 황궁에서 조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하오밀문을 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 다르지. 만사귀와 같은 경우야."

"왜? 만사귀는 혼자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분석했잖아. 그리고 하오밀문을 얻으려고 한 이유는 보다 광범위한 정보가 필요해서였고."

건의 말에 조금 의구심이 생긴 수금인 역시 카오스의 말에 동조했다. 건은 수금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흔들었다.

"만사귀의 문제는 정보의 한계성이지만, 황궁의 정보는 전문성이 부족해."

"전문성?"

"그래, 만일 하남성에서 무림인 둘이 싸웠어. 그럼 황궁의 정보 분석은 누가 누구와 싸워 누가 이겼다, 대충 이 정도야. 하지만 무림인의 정보기관은 아니야.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일이 계기가 되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이 무엇이었으며, 또 몇 수만에 누가 어떤 무공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보통 이렇게 분석을 하지."

"음!"

모두는 하오밀문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문제는 하오밀문을 얻는 것이 아니야. 다른 문파에서 정보기관을 만들어 천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렇기에 만사귀가 없는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하오밀문을 얻어야 돼.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 다른 문파들이 하오밀문을 노릴 수도 있어. 특히 천마회나 천지회는 지금 충분히 하오밀문을 상대할 힘을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야."

현수는 하루라도 빨리 하오밀문을 얻기를 원했다. 하오밀문이라면 대학사의 일행을 세외에서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이곳, 하남부터 시작하지. 하남의 하오밀문 조직을 부수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자."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역발산은 흑사파의 그놈에게 모든 조직을 넘겨."

"왜?"

"하오밀문의 일을 해결하면 어디로든 사냥을 가야 할 거야. 우리는 사람이 적으니 말이야. 그곳에서 최대한 정보를 모아 정리를 해야지. 그리고 이미 에피소드 2는 시작되었다."

현수는 모산파에서 장로파의 인물들을 제거하다 들은 이야기를 모두에게 해 주었다.

"정말?"

"어! 만사귀 일로 모산파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확인했어."

"하긴 이 주일의 시간이라면 그 정도를 조작하기엔 충분하겠지."

"뭐야? 그럼 사사혈천의 동영상처럼 그들이 중원으로 쳐들어오고 또 막게 되는, 그런 스토리인가 보네."

카오스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사혈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천연회는 무엇보다 빨리 정보를 모으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마 그럴 것 같다. 정보가 한정되어 있어 앞으로는 몸으로 부딪쳐야 하니 말이야."

"그럼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네. 하루라도 빨리 하오밀문을 어떻게 해야겠네."

역발산은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놈들 잡으러 빨리 가자."

모두는 역발산의 단순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앉아 봐라. 다른 문제도 있으니까."

"그냥 잡아 족치자. 어차피 본 단도 못 찾았고, 여기서 시간 끌어 봐야 놈들에게 생각할 시간만 주는 것이라 우리가 불리하다."

모두는 역발산의 말을 듣고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넌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옛날의 역발산이 아니다.

건이 현수에게 전음으로 말해 주었다.

-음! 우리한테는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저놈은 조금 무식해야 되는데.

현수는 역발산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알겠다."

역발산은 현수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 자리에 다시 앉았다.

"좋아! 다음 문제는 우리 천연회의 구성 인원이야. 파티 사냥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의원인데, 우리 중에는 없어."

"그렇다고 함부로 가입을 시킬 수도 없잖아."

"오빠, 의원은 내가 알아볼게. 친한 사람이 의원인데 물어보고 데리고 올게."

수아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돌렸다.

"수아야, 천연회는 보통 문파와 성격이 달라. 그렇기에 가입을 시킬 때도 신중해야 된다."

"의원이라면 저도 아는 분이 있어요."

이화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했다.

"대장금이라는 분인데, 레벨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을 싫어해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분이라면……."

대장금이라는 아이디를 듣는 순간 모두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겼다.

"찾아도 안 보이더니, 앞에 두고 헤매고 있었어."

"그러게."

건과 현수의 대화에서 이화는 이들 역시 대장금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저기, 제수씨. 장금이에게 우리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장금이는 우리에게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니거든요."

대장금은 천에서 현수와 건에게 전속 주의치와 같았다. 두 사람은 베타 시절에 다친 상처를 대장금 외에는 보여 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 어떡해요?"

"그냥 가서 친목 문파라고만 하세요. 일단 데리고만 오면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네!"

"수아도 일단 데리고 와. 단, 신원은 확실해야 한다."

"응, 오빠. 내 친구는 신원이 확실해. 레벨도 60대고."

"그럼 의원 문제는 해결이 된 것 같고……."

현수는 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모두에게 해 주었다. 다른 문파들과 친해지는 것으로 공성의 준비까지 끝내려고 했다.

"내 생각에 유저들이 만든 문파보다는 NPC들의 문파와 손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화령검객은 이왕이면 유저들이 만든 문파와 손을 잡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렇게도 생각해 보았는데, 조금 불안한 감이 있어. 아무리 천이 현실을 강조했다지만 그래도 게임이야. NPC가 만든 문파는 뼛속까지 무인의 집단이란 말이지. 유저들이 만든 문파보다 뒤통수를 칠 확률이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하긴 이익에 따라 순간순간 변하는 유저들보다는 조금 덜하겠지."

"만사귀를 팔아넘긴 것도 이것을 생각하고 한 일이야?"

"그래, 만사귀 역시 같은 맥락이야?"

이화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필살검이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만사귀라면 모산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너답다. 그럼 모산은 일단 뒤로 두고, 몇 군데를 생각해?"

"당가와 남궁세가 그리고 패도적인 성격의 문파 하나쯤이면 될 것 같아. 당가와 남궁세가는 이미 내가 연을 이어 놓았으니 이어 가면 되지만, 패도적인 성격을 가진 문파는 어떤 곳인지 잘 몰라서 연을 만들지 못했다."

"당가와 남궁세가면 정파 아니야? 그들을 끌어들여도 중립인 우리를 도울 수는 없을 텐데?"

모두는 당가와 남궁세가가 정파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천을 하는 모두가 정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정파에 가까운 문파지. 만일 무림맹에 들어간다면 정파가 되지만, 아직 무림맹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정파는 아니야. 아마 사사혈천의 중원 침공이 시작되면 무림맹이 만들어지겠지."

"그럼 그전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이네."

"그래, 시간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아."

"알겠다. 패도적인 문파는 내가 알아서 연을 만들어 볼게."

건은 사냥 중에 한 번 도움을 준 적이 있는 철사파를 생각했다.

"그럼 그 문제는 건이 알아서 하고… 참! 수아는 나와 잠시 이야기 좀 하자."

건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현수를 보았다. '감히 나의 여자에게 손을 뻗냐!'라는 눈이었다.

"그런 거 아니야. 아 씨! 난 순둥이라 여자한테 어떻게 작업 거는지 몰라. 너희들도 다 알고 있잖아."

"누가 뭐라 했냐? 너 진짜 작업 걸려고 하는 거 아니야? 수상하네."

"아 씨! 다른 게 아니고, 미령의 여동생이 수아의 무공을 배우고 싶대. 그래서 물어보려고 한 거야."

"미샤오가?"

"응! 들어오면서 앞으로 뭐가 될 것이냐고 물어봤는데, 미샤오는 무인이 되고 싶대. 싫으면 말해. 내가 가르쳐도 상관없으니 말이야."

"아니에요. 제가 가르칠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뭐?"

수아의 조건은 간단했다. 사냥할 때 함께하는 것이었다.

"뭐, 어려운 것도 아니네. 그렇게 할게. 그리고 악비 형님이나 짭새, 잔소리만땅, 이들의 소재도 빨리 파악해서 끌어들이는 것이 좋겠다. 내 생각에 이들을 끌어들이면, 우리 천연회는 천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천연회는 이화가 대장금을 데리고 오기까지 천연장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모두들 무공을 연습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천연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이화는 대장금을 데리고 왔다.

"이화야, 조그만 친목 문파라고 했으면서 이런 장원을 소유하고 있어?"

대장금은 이화가 입이 닳도록 자랑하던 천연회라는 문파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그래!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라 이런 것을 장만하는 건 문제도 아니야."

"이야! 넌 이런 문파를 어떻게 알았어?"

"일단 들어가자. 오빠들이 기다린다."

"그래!"

대장금과 이화가 천연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역발산, 문 걸어 잠가."

후다다다닥!

끼이익! 끼익- 쿵! 철컥!

외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그러고서 역발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빠들은……!"

대장금은 순간 얼굴빛이 변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화에게 고개가 돌아갔다.

이화는 모른 척하며 대장금에게 말했다.

"오빠들이야. 인사해."

"계집애, 여기가 친목 문파라고?"

"그래. 오빠들이 다 잘해 줘."

마치 남 이야기를 하듯 말하는 이화를 본 대장금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사람들은 절대 이득이 없이 잘해 줄 인간들이 아니었다. 베타 시절 때 저 눈앞에 있는 사람에 의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오랜만이네, 장금이."

"헉! 건 오빠까지?"

대장금은 건을 보자 마치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화는 모른 척하며 놀라는 대장금을 보고는 '왜?'라는 의문을 표시했다. 대장금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어서 와라, 장금아!"

"싫어! 아니, 안 돼. 난 그냥 갈 거야!"

밑도 끝도 없이 그냥 간다는 말과 함께 몸을 돌리는 대장금이었다. 하지만 역발산이 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산이 오빠, 비켜!"

"그랬다간 현수한테 맞아 죽는다. 장금아, 힘없는 오빠를 이해해 주라."

역발산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 방법으로 자신의 처지를 말했다.

장금은 다시 몸을 돌려 현수를 노려보았다.

"아 씨! 현수 오빠, 이건 납치야, 납치!"

"왜 그래? 너, 오빠들을 알고 있어?"

이 정도면 이화의 연기도 수준급이었다. 대장금은 이화를 노려보았다.

"너, 정말 오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니?"

"응! 나 역시 민수 오빠와 함께 왔는데."

대장금은 만사귀를 알고 있었지만, 만사귀의 본명이 민수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아마 만사귀의 본명을 알았다면 이화와 친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자 치밀한 계획하에 자신을 납치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킁! 계획적이었구나."

"무슨 말이야, 오빠들이 어떤 사람인 줄 아냐니?"

천연회의 모두는 이화의 연기에 혀를 내둘렀다. 저런 능청은 한두 번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을 말자. 하여간 나 그냥 갈 거야."

"장금아, 오빠들이 그렇게 싫어?"

"응! 현수 오빠와 건 오빠는 보기도 싫어. 내가 베타 시절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오빠도 잘 알고 있으면서 나에게 물어봐? 아, 몰라. 배 째."

이 정도면 대장금의 말투도 수준급이었다.

"베타 때와는 다르다. 너 역시 느끼고 있잖아."

"몰라! 그리고 다르기는 뭐가 달라? 오빠들은 툭하면 싸우잖아."

"이제 안 싸운다. 같은 편이잖아."

건은 현수의 어깨에 손을 올려 친함을 표시했다. 그러고서 대장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장금아, 생각해 봐라. 너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오잖아. 그리고 네 실력이 알려져 봐라. 방각이나 무기가 가만히 있겠냐? 차라리 그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우리가 낫지 않을까?"

"낫기는! 차라리 무기 오빠가 있는 천지회로 갈래."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내가 무기에게 전서구를 보낼게."

대장금은 건을 향해 눈을 흘겼다.

"왜?"

"아 씨! 오빠들 정말 이러기야? 내가 누군지 알지? 의원 계열에서 1위였던 대장금이야. 내가 그런 협박에 넘어갈 것 같아?"

사실 대장금 역시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대장금은 그동안 현수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천을 접었는지, 현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장금은 현수가 황궁에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조금 더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협상이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얻는 게 적어진다는 것을 이들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좋아! 원하는 것을 말해."

"내가 왜?"

"그럼 진짜 무기에게 전서구 날린다."

보다 못한 현수가 한마디 하자 대장금은 흠칫했다. 자신이 아는 현수는 건과 달리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고, 두 번 묻지 않았다.

"좋아, 난 사냥터에는 안 가. 이곳에서 그냥 죽치고 있을 거야. 이곳에 살아서만 오면 내가 언제든지 치료해 주지."

"알았어. 그럼 사냥을 떠날 때 체력 회복제와 기력 회복제를 각각 20개씩 만들어 줘. 약값은 매달 금전 100냥!"

"난 침을 사용하는 의원이야."

부드득!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그러고서 현수는 몸을 돌렸다.

"오빠, 알았어! 그렇게 할게."

전서구를 본 대장금은 금세 꼬리를 내렸다.

"처음부터 좋게 끝냈으면 좋잖아."

그때까지 이화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모두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계집애야, 그런 표정 짓지 마. 너도 다 알고 있었잖아."

"미안!"

혀를 살짝 내민 이화는 대장금의 곁을 벗어나 수아에게 뛰어갔다.

"휴! 내 팔자야."

"나리!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고마워. 미령이도 인사하렴. 우리 천연장의 식구가 된 대장금이라는 의원이시다."

미령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장금 아가씨를 뵙습니다."

대장금은 미령에게 아가씨라는 소리를 듣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미령 님."

현수와 건은 미소를 지었다. 사냥터에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 지나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들은 결코 조급해하지 않았다.

수아의 친구 역시 천연장으로 왔다. 대장금은 수아의 친구 역시 같은 계열의 유저라 알고 있는 듯했다. 속으로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가서 살갑게 대해 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천연회의 사람들은 하나하나 준비가 되자 천연장을 떠났다.

* * *

현수를 비롯한 천연회의 사람들은 하오밀문의 하남 분타를 찾아 공격을 감행했다.

콰앙!

건의 도에 의해 하오밀문의 하남 분타인 경천 표국의 문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부서져 버렸다. 표국은 물건을 수송하거나 안전하게 지키는 일을 하는 곳이라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어, 하오밀문에서는 표국이나 기루를 분타로 사용했다.

"역발산, 입구를 장악해."

역발산은 앞으로 달려 나가 경천 표국의 부서진 문 앞에 버티고 서서는 광란의 분노를 사용했다.

몰려든 경천 표국의 무사들이 역발산을 향해 공격하는 틈을 타, 현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경천 표국의 담을 넘어 역발산에게 몰려 있는 무사들의 뒤를 노렸다.

천연회에서 원하는 것은 이들의 정보력이라, 될 수 있으면 살인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난 이들의 머리를 잡으러 간다. 빨리 끝내고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철저하게 봉쇄해."

"알았다. 수고해라."

건은 떨어져 나가는 현수를 향해 대답하고는 역발산에게 몰려드는 이들을 계속해서 처리해 나갔다.

현수는 살황의 일기장의 추적술을 사용해 경천 표국주를 찾았다.

'빠르게 이동을 하는 기척이…….'

현수는 감지되는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운중비록, 운중탄영신!"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아오른 현수의 신형은 방향을 틀어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뇌전류!"

츄츄츄츄!

뒤에서 느껴진 섬뜩한 기운에 무의식적으로 땅을 굴러 피한 두 사람은 다시 일어나서 달아나려고 했으나,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서 달아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허리에 찬 검을 빼 들었다.

"누구냐? 누구기에 우리를 공격하느냐?"

"알고 있잖아, 우리가 누군지. 이제껏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잖아."

현수는 이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감시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천연회가 경천 표국을 치려고 했을 때도 이미 상당수의 무사들이 표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공격하는지는 몰라도, 너희들은 함정에 빠졌다. 곧 수많은 우리 하오문의 고수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현수는 함정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는 수고를 덜어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 그거 잘되었군. 너희들의 문주도 이곳으로 오나?"

"흥! 죽어라."

사내는 검을 휘둘러 현수와의 거리를 좁혔다.

현수 역시 사내의 검을 피하지 않고 검으로 막았다. 현수가 검을 들어 막자 다른 사람의 손이 움직였다. 두 자루의 비검이 현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 왔다.

"어딜!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현수는 현란한 몸동작으로 비검을 피하고는 검을 든 사내와 떨어졌다.

"죽어라."

한 사람은 거리를 좁히며 공격해 오고 또 한 사람은 비검을 사용해 공격해 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흥! 고작 이 정도로 날 어찌하지는 못한다."

현수는 두 자루의 비검과 상대의 검을 보고는 검을 휘둘렀다.

"팔검수화진검류!"

채애애애앵!

날아오는 두 자루의 비검을 쳐 내고는, 앞에 있는 사내의 검을 피해 비검을 던지는 놈을 향해 움직였다.

"운중비록, 운중광속신형보!"

순간 거리를 좁히는 현수의 보법을 보고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선 사내는 다가오는 현수를 향해 짧은 비검을 내질렀지만, 현수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랐다.

퍽!

"윽!"

뒤로 돌아간 현수는 용천검의 손잡이를 사용해 사내의 목을 강하게 내려쳤다. 비검을 던지던 사내는 기절한 듯 신형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다소 위험 부담이 줄어들었군."

"국주님!"

현수는 국주라는 말에 쓰러진 자를 보았다.

"이놈이 국주였나?"

그때 여러 명의 신형이 나타나 현수를 포위했다. 이들이 하오밀문의 고수들이라 생각한 현수는 내심 조금 긴장했다.

"당주님! 국주님이……!"

나타난 사내 중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상황을 설명하는 사내였다.

"죽이지 않은 점은 고마우나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파검 능소! 그대는?"

"사신 낭객 이현수!"

사신 낭객이라는 말에 이들은 놀라 잠시 주춤했다.

"네놈이 사신 낭객이라는 말이 정말이냐?"

"그렇다. 하오밀문을 얻고자 왔다."

소문이라는 게 다 믿을 것은 못 되지만, 그동안 사신 낭객이라는 이름이 무림에 주는 영향은 대단했다.

특히 남궁세가에서 보여 준 무공은 이미 절정을 넘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하오밀문에서는 이미 현수의 무공에 대해 남궁세가의 사람들로 인해 알고 있었다.

능소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사신 낭객이다. 죽음을 찾아다니는 사람!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 죽음을 찾아다니는 사람! 비록 기연을 얻어 무공을 익혔다고 하나, 죽이는 것보다 죽는 것에 더 익숙한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자신들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후후! 곧 죽어서 그대들의 친구를 만날 것이다. 쳐라."

능소의 말이 떨어지자 하오밀문의 고수들이 일제히 현수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40∼50대의 고수들이라… 하오밀문의 정예 무사들이다.'

현수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상대는 20명! 능소까지 치면 21명이었다. 현수의 레벨이 이들보다 높다고 해서 쉽게 생각할 상대는 아니었다. 수적 우위는 레벨의 높고 낮음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하하! 우리 하오밀문을 얻겠다는 그 호기는 다 어디로 가고 피하기만 하는 것이냐! 천하의 신비 이객 중 1명인 사신 낭객은 이름뿐이구나."

능소는 피하기만 하는 현수를 조롱했다. 하지만 현수를 얕보지는 않았다. 능소의 격장지계였다. 흥분이야말로 싸움의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흥! 고작 그 정도의 격장지계에 넘어갈 것 같았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순간 현수의 신형이 사라지듯 움직이며 포위망을 벗어났다.

"헛! 조심하라."

현수가 사라지듯 움직이는 것을 보고 능소가 소리쳤다.

"뇌전류!"

"헉!"

현수는 능소가 이들의 우두머리라 생각하고는, 능소만을 잡아 다른 무사들에게 항복을 받아 내려 했다.

능소 역시 고수라 그런지 현수의 공격을 피하고는, 거리를 벌려 다시 나타난 현수를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다.

'죽일까, 말까?'

현수는 순간 고민에 사로잡혔다. 죽이는 것이라면 쉽다. 현수에게는 살황의 일기장이 있기에! 하지만 제압만 하려면 힘이 들었다. 한두 명이라면 어떻게 제압이 가능할 것 같았지만 여러 명은 아무래도 조금 힘들 것 같았다.

"이런!"

잠깐 생각하는 틈을 타 공격해 오는 하오밀문의 고수들을 보고 놀라 자리에서 벗어났다.

슈슈슈슈!

"이런!"

현수의 두 팔이 날아오는 쇠사슬에 감겨 봉쇄가 되었다.

"하하하!"

능소는 두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현수를 보고는 천천히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이이……!"

현수는 움직이려고 힘을 써 봤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현수에게 다가온 능소는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는 현수에게 물었다.

"누가 사주했지?"

"흥! 나에게 사주할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오호! 사신 낭객이라 자부심도 강한 모양이군그래."

"욱!"

현수는 배에 무엇인가가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능소의 주먹이었다.

"역시 죽음을 찾아다니는 분이라 그런지 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아니군."

능소는 현수의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조금 불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두 팔이 봉쇄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

"후후! 옛날에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난 사신 낭객, 죽이기 위해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살황의 일기장, 축골공!'

순간 현수의 모습이 작아지더니 양팔을 잡고 있던 쇠사슬에서 양팔이 빠졌다. 현수는 검으로 능소의 목을 겨누었다.

"이러면 상황이 바뀌는 건가?"

순식간에 바뀐 상황에 능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지금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무영신투는 어디 있지?"

현수는 무영신투와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능소는 현수의 대답에 고개를 흔들었다.

"나를 죽여도 문주님이 계신 곳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럼 죽어야지."

"후후! 네 친구들 역시 죽을 것이다. 너 또한! 우리 하오밀문을 우습게 여기지 마라."

호기로 외치는 능소를 본 현수의 얼굴에는 미소가 생겼다.

"그래? 그런데 나의 친구들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놈들이거든."

현수는 능소의 목에 겨누고 있던 검을 거두었다.

"다시 해볼까? 나를 기준으로 나의 친구들의 실력을 눈으로 보고 판단해라."

능소는 돌발적인 현수의 행동에 당황했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살황의 일기장, 은신술!"

눈앞에서 사라지는 현수를 보자 능소는 재빨리 자리를 피하며 모두에게 현수를 찾으라고 명했다.

하지만 현수의 기척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수는 능소의 말을 듣고 친구들이 걱정되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풋! 걱정할 걸 걱정해야지."

현수의 눈에 역발산을 비롯해서 모두 신 나게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쓰러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만 기절시키는 것이 어려웠는지 그들을 죽이고 있었다.

"야! 빨리 잡아라. 경험치가 장난 아니다."

"너, 조용히 안 할래?"

역발산과 필살검이 아옹다옹 다투는 모습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현수는 다시 이동해 능소를 찾았다.

그는 또 한 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현수의 기척을 찾기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속았다. 놈은 입구로 이동했다."

능소는 현수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간 줄 알고 이동하려고 했다.

"크악!"

순간 빛과 함께 하오밀문 무사의 허리가 베였다.

"헉!"

모두는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주위에 있다. 모두 조심하라!"

능소는 다시 외치고는 주위를 살펴봤지만 여전히 주위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숨어 있지 말고 나와!"

"나가면 무영신투의 위치를 가르쳐 줄 거냐?"

허공에서 울리는 현수의 목소리를 들은 능소는 고개를 흔들었다.

"천천히 한 발씩 이동한다."

"누구 마음대로?"

또 한 번 빛과 함께 무사 하나가 쓰러졌다.

능소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능소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설, 설마 살황의……."

-더 이상 입을 열면 너의 목과 몸통을 분리해 주지.

현수의 전음을 들은 능소는 열리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의 눈에 공포라는 것이 물들었다. 사고가 정지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무림 사가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살인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 바로 살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막고 있는 사내가 살황의 후예라니…….

능소는 하오밀문의 앞날을 걱정했다.

"정말 그대가……."

현수는 능소의 뒤에 나타나 검을 목에 겨누었다.

"조용히 하는 것이 좋아.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진, 진짜!"

소리 없이 자신의 뒤에 나타나 검을 겨누고 있는 현수를 느낀 능소의 다리가 점점 떨려 왔다. 하오밀문의 무사들은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무영신투를 못 찾아서 너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야. 단지 시간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지. 가서 무영신투에게 하남의 천연장으로 와서 고개를 숙이라 전해라. 선택은 너희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책임 역시 너희가 지는 것이다."

능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상대는 살황의 후예다. 능소는 지금 하오밀문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구미호와 함께 비급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후후!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마라. 그리고 무림에서 나의 소문이 돌면 그때 하오밀문은 사라진다. 명심해라. 이것이 나, 살황의 법이라는 것을.

능소는 상대가 살황의 후예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예가 아니라 살황이라고 하는 현수의 말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어찌! 살황은 이미 오래전에……!

-믿어라. 믿는 것이 너희에게 이로울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무영신투에게 전해라. 천연장에 와서 고개를 숙이라고! 가라.

목에 겨누어졌던 검이 사라졌다는 것을 안 능소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돌아간다."

능소와 살아남은 하오밀문의 무사들은 자리에서 벗어났다.

'후후! 단순하군. 이제 뒤따라가서 무영신투만 족치면 되는 것인가.'

현수 역시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살황의 일기장의 은신술과 추적술 그리고 운중비록의 운중무영보를 사용해 능소의 뒤를 쫓았다.

건을 비롯한 천연회의 식구들은 표국의 무사들을 비롯해서 하오밀문의 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100여 명의 무사들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고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건은 처음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특히 역발산은 몸으로 막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수고했다. 현수가 무영신투가 있는 곳을 알아내었는지 모르겠네."

"헉헉! 힘들다. 경험치가 높기는 한데 거지들만 모여서 그런지 빵 값도 안 나온다."

역발산은 체력 회복제의 남은 양을 확인하고는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이렇게 경험치를 많이 주는데, 앞으로 몬스터 보다 이런 놈들을 잡으러 다닐까 보다."

수금인은 이곳에서 레벨 업을 해서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무림 공적이 되면 너 게임 접어야 된다."

필살검은 지쳤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

"하긴 그렇겠지."

"오빠들, 잠시만 있어 봐요. 제가 치료해 줄게요."

새로 천연회에 가입한 의원 혜련이 모두에게 침을 한 번씩 날려 줌으로써 체력의 회복을 도왔다.

"이제 어떻게 할까?"

"현수가 연락을 할 때까지 천연장에서 기다리기로 하지."

모두는 현수를 믿고 있는지 천연장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경천 표국은 문을 닫았다.

경천 표국을 이용하는 상단이나 무림의 문파들은 왜 문을 닫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무림의 분쟁으로 인해 잠시 문을 닫았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수많은 문파들이 생기면서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기에 무림인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천 표국이 하오밀문의 분타인 것을 아는 몇몇 문파만이 관심을 가졌다.

* * *

능소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문주인 무영신투에게 살황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는 현수가 자신의 뒤를 쫓아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능소가 간 곳은 천루정이라는 기루였다. 능소가 천루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하늘의 눈물이라… 운치는 있는 곳이군."

현수는 천루정으로 들어가려다 입구에서 점소이에게 저지당했다.

"이곳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입니다."

현수는 태연하게 점소이에게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돈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이곳은 금전 1,000냥 이상이 있는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헛, 그런 기루가 어디 있단 말이오?"

현수는 놀라서 다시 반문을 했다. 말이 금전 1,000냥이지, 현금으로 계산하면 10만 원이라는 거금이다.

"없으면 돌아가시오. 치도곤을 당하기 전에."

"꼭 금전이 있어야 되는 것이오?"

금전 1,000냥짜리 기루를 한번 구경하고 싶었다. 만일 자신이 나중에 이런 기루를 하나 차리면 돈을 버는 것은 장난이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험을 봐야 하오."

"시험?"

현수는 시험이라는 말을 듣고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무슨 시험이오?"

"당신 같은 사람은 시험을 볼 수 없소. 학식이 높은 학자나 아니면 무공이 강한 무인들만 볼 수 있는 시험이오. 당신 같은 사람이 호기로 시험을 치르다 죽은 수만 벌써 백이 넘소. 그러니 괜히 객기 부리지 말고 돌아가시오."

현수는 백이 죽었다는 말에 시험이라는 것을 한번 보고 싶었다. 또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곳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과거를 준비하는 서생이오. 학문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으니 한번 그 잘난 시험이라는 것을 보게 해 주시오."

현수는 입구에서 소리치고는 점소이를 보았다.

"거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군."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

기루 안에서 소리가 들리자, 현수는 안을 살펴보았다.

"총관님! 글쎄 이 선비가 시험을 보겠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 그럼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라 전해라."

"예에?"

"그놈 참! 안으로 모시라고 하지 않느냐?"

현수는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기루 안으로 들어갔다.

40대의 중년 남자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음! 안에서는 여러 명의 기척이 느껴지는데 눈에 보이는 사람은 1명뿐이다? 재미있군.'

현수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총관이라는 사람의 앞에 앉았다. 총관을 자세히 살핀 현수는 총관에게서 특별한 기운을 찾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사람인가? 아니면 고수인가?'

현수는 처음으로 긴장을 했다. 만일 눈앞에 있는 총관이라는 사람이 무인이라면 현수는 이길 자신이 없었다.

'분명 능소가 이리로 들어갔다. 무영신투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다. 그럼 이곳은 하오밀문과 연관이 있다는 소리다. 만약 눈앞에 있는 사람이 무인이라면……!'

혹시 무영신투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무영신투가 고수이기는 하나 자신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 이곳의 총관을 맡고 있는 일관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전 과거를 준비하고 있는 이현수라고 합니다. 솔직히 답답한 마음에 술이나 한잔하러 찾아왔다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들어 호기로 시험을 보고자 했습니다."

"하하! 보통은 다 그렇지요. 하지만 선비님께서 시험을 보시고 통과하면 모르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시에는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십시오."

"정말이오? 백이 넘게 죽었다는 말이?"

"조금은 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명은 실제로 죽었습니다. 특히 무공을 시험하는 곳은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해 죽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총관은 현수를 구슬려 보내려고 했다.

"학문은 다르지 않소?"

"그렇습니다. 진에 갇혀 굶어 죽는 이들을 제외하면 죽는 사람이 없지요."

현수는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 당황한 척을 하고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돌아가시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입니다."

현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곳도 비밀이 있는 곳이군. 무영신투를 만나면 확실히 해 두는 편이 좋겠군.'

현수는 천루정이 마주 보이는 객잔에 방을 하나 잡고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 * *

능소는 무영신투를 만나고 있었다. 혈충소 역시 무영신투와 함께 있었다.

"그래서 표국 하나를 말아먹고 왔단 말이냐!"

무영신투는 경천 표국이 문을 닫은 것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능소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에 화가 나 있었다.

자신이 아는 능소는 최소한 전투가 일어나면 도망쳐 올 인물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하오나 상대가 나빴습니다. 그가 문주님께 하남의 천연장으로 오라 했습니다."

"뭐라! 아, 머리야. 그래서 넌 그 말을 나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왔단 말이냐? 넌 도대체 누구의 수하냐?"

"전 하오밀문의 156대 제자입니다. 하지만 문주님, 상대는 바로 살황입니다."

"그래, 상대가 살황이라 네놈이 그렇게… 뭐? 살황?"

"그렇습니다."

무영신투는 말이 없었다. 아니 어이가 없어서 능소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살황이라니, 언제의 살황이란 말인가?

설마하니 능소가 상대의 거짓말에 속을 인물인가 생각했다. 아니다. 그래도 고수가 부족한 하오밀문에서 고수라는 소리는 듣는 능소였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미련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살황이라는 말은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넌, 그 말을 내가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믿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그런 어이없는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문주님께서 더 잘 아실 것이옵니다."

"음!"

그렇다. 이제껏 능소는 허튼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또한 자기변명 같은 소리 역시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무영신투는 능소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이 더욱 복잡하게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오밀문에서 인재를 얻기 위해 천루정이라는 기루를 세워 학문과 무공을 시험한 이유는, 더 이상 음지에 숨어 있는 문파가 아니라 당당하게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연회라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떨거지들이 자신의 문파를 노린다고 할 때는 비웃었다. 아무리 고수가 적은 문파라고 해도 엄연히 무림에서 1,000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전통의 문파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능소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오밀문의 존재 자체를 의심할 만했다.

"살황의 후예가 나타났단 말이지."

"아닙니다. 살황의 후예가 아닌 살황이라고 했습니다."

"이놈아, 그게 그것이 아니냐?"

답답한 능소를 보고 소리를 치는 무영신투였다.

"살황의 후예와 살황은 엄연히 다릅니다. 문주님께서 일단 하남의 천연장으로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 씨, 도대체 저놈은 누구의 편이냐! 야, 충소야! 저놈을 내 눈앞에서 안 보이게 할 수 없냐?"

혹을 떼라 보낸 놈이 혹을 하나 더 달고 왔으니 무영신투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능소의 말이 맞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살황의 후예라고 말했다면 아직 살황의 비기를 모두 습득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살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익혔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무영신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무림에 알려 상대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는 살수들의 종주입니다. 그를 상대하려면 먼저 중원의 살수 문파 전부와 싸워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원이 많고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음!"

혈충소의 말을 들은 무영신투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정보력에 우선한 하오밀문과 살수들의 한판 승부는 생각을 해 볼 것도 없었다. 아무리 빨리 정보를 얻어 그들을 치거나 피해 다닌다 해도, 결코 살수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무영신투였다.

하나의 살수 문파를 상대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 문파를 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문제였다. 자치 잘못하면 전부와 싸워야 했다. 또한 하오밀문과 살수 문파와의 관계 역시 걸리는 점이 많았다. 살수 문파들은 자신들의 정보망을 통해 주로 정보를 얻지만, 자신들이 얻지 못하는 정보를 하오밀문에서 사기도 하므로 둘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였다.

"젠장!"

"문주님!"

"왜? 짜증 나는데 부르지 마라."

무영신투는 능소를 보자 짜증이 밀려왔다.

"거래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래?"

거래라는 말이 무영신투를 자극했다. 거래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하는 무영신투였다.

"그렇습니다. 천연회라는 모임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정보 때문입니다."

"그렇겠지. 우리 하오밀문의 정보력이 탐나니 그런 것이겠지."

"우리는 그들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대신 우리 하오밀문이 음지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양지로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능소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무영신투에게 말했다. 무영신투는 조용히 능소의 말을 듣고 있었다. 혈충소 역시 능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보를 주고 양지를 얻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이것이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기회?"

"그렇습니다."

무림에 수많은 문파들이 생겨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문파 간의 반목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웅크리고 있던 문파들이 서서히 태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역시 하오밀문은 알고 있었다.

"지금 무림은 난세로 치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 난세지. 난세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법이지."

"살황이라면 충분히 난세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황이라……."

10개의 전설 중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살황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전설들의 소식은 아직 들리는 것이 없나?"

"그렇습니다. 다만 천마회의 회주인 방각의 무공이 심상치 않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스로 천마라 칭할 정도로 무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역시 10개의 전설 중 하나를 차지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천마회의 방각이?"

"그렇습니다. 또한 천지회의 혁무기 역시 검으로는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고 들었습니다. 그 역시 하나를 이었을 것입니다."

"음!"

무영신투는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이미 자신을 노리는 살황이 있는 이상, 이제는 실력이 아닌 연줄이 문제였다. 고수가 없는 하오밀문으로서 연줄에 의해 존폐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좋아! 내가 만나 보고 결정을 하지."

무영신투는 일단 모두를 다 만나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소림을 위시한 구파일방에서는 하오밀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방이라는 거대한 문파가 존재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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