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배포 사건
친구들을 기다리던 현수는 건과 수아가 천화 객잔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건은 현수를 이곳에 웬일이냐는 눈으로 보곤 웃음을 흘렸다.
아마 현수가 천연회에 도움을 요청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또 어려운 상황에서 현수가 무림에 나온 걸 보니 천군만마를 얻는 듯했다.
"황궁은 어떻게 하고 무림에 나왔냐?"
건은 수아와 함께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그냥 황제께 아부하고 나왔지. 단순한 인물이라 가능했다."
"혹시 우리에게 시킨 일이랑 상관이 있는 거였어?"
'눈치도 빠르지.'
"어! 조금."
현수는 자신의 퀘스트에 대해 말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말을 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먼저 말을 하면 손해다. 상황을 보아 가며 이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렇게 상황을 만드는 것이 현수의 특기 중 하나였다.
"그래! 그나저나, 만사귀가 무슨 사고를 쳤는데?"
현수는 만사귀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 궁금한지, 건에게 물었다. 자신이 아는 만사귀는 결코 힘들다고 연락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사귀가 아무리 무공이 약하다고 해도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현수도 알고 있었다. 부르주아 백수들의 특징은 죽어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아는 만사귀가 먼저 연락을 했다는 것은 손해를 보고서라도 지킬 것이 있다는 말이다.
건은 인상을 찡그렸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현수를 어이 없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하오밀문을 치다가 꼬투리가 잡혀 지금 모산파의 도사들에게 쫓기고 있단 말이지. 설마! 만사귀가 어떤 놈인데 고작 모산에 쫓긴다고 연락을 해?"
적어도 현수가 아는 만사귀는 모산파에 쫓긴다고 해서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 우리도 모를 정도로 완벽하게 부적을 팔아 치웠으니 말이야.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아마 이화 때문인 것 같다. 더 이상 이화를 보호할 수 없으니 우리에게 연락을 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사실 우리 역시 하오밀문과 싸우면서 힘들어한 건 마찬가지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왜? 난 그냥 구해 달라고 해서 구해 준 것뿐인데."
일명 만사귀의 '부적 배포 사건'이라고 전해지는 일은, 부르주아 백수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또한 각 문파에서 보호를 해 준다는 조건으로 만사귀를 잡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만사귀는 곧 돈이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었다. 문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장원을 사고 관리하는 비, 유지비 그리고 고수들에게 월급이라는 것을 주어야 했다. 게다가 고수들을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유저들이 세운 문파 중에서 가장 큰 문파는 천지회와 천마회다. 이 두 문파는 처음에 하나였지만 정파와 사파로 나뉘는 과정에서 둘로 분리되었다.
천에서 100위 안에 드는 랭커들이 모여 만든 문파가 둘로 갈라진다고 해도, 그들이 모두 따로 흩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쪽 문파에 속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문파들이 고수를 데리고 있을 수 있는 조건은 돈이었다. 사부에게 무공을 익히고 나오는 유저들을 문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수였다.
그런데 만사귀가 부적을 만들어 팔았다. 부적을 만든다! 이것이 중요했다. 천에서 지금까지 나온 고옵션 아이템은 최고 플러스 12만큼 추가 능력치가 상승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므로 플러스 10의 부적을 만들 수 있는 만사귀를 자신들의 문파로 끌어들이면 자금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기에 모든 문파에서는 만사귀를 잡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래서 정파와 사파에서도 만사귀를 데려가려고 서로 안달이다. 특히 천지회와 천마회에서는 이제 물러설 수 없는 감정까지 생겨 버렸다."
"좋은 소식이네. 만사귀는 역시 머리가 좋아. 둘이서 치고 박고 싸우라고 해. 그런데 부적을 팔아 얼마나 챙긴 거야?"
"잘은 모르지만 플러스 10짜리 부적이 현금으로 100만 원이다. 그럼 답이 나오지."
100만 원짜리가 최소한 100장만 팔려도 1억이 되는 것이다. 현수는 만일 자신이 그걸 익혀 만들어 팔았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속이 쓰려 왔다.
'아! 그냥 내가 익혀서 부적만 만들어 팔걸.'
현수와 건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한두 명씩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피곤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모두의 모습은 말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초췌한 모습을 한 만사귀와 이화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모두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기선 제압이 먼저다.'
"너, 어쩌자고 그렇게 대량으로 부적을 풀었어? 그 모든 일이 우리를 불리하게 만든다는 것을 몰라? 아직 우리 세력이 약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잖아? 한 번쯤은 생각을 해 보고 부적을 만들어서 판 거야?"
현수는 만사귀를 보고 먼저 소리쳤다. 그는 부르주아 백수들 사이에서 우선권을 따 내기 위해서는 몰아붙여야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만사귀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금은 무엇이라 말할 입장이 되지 못했기에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하다."
이화는 여전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만사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이 부적을 만들어 파는 일은 이들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더 힘든 싸움을 해야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만사귀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할 거야? 지금은 하오밀문을 상대해야 하잖아."
"할 말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보력에 있어 최고라는 하오밀문을 얕잡아 보았다."
만사귀 역시 설마 하오밀문이 모산파를 끌어들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 씨! 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뭐야? 뒷일도 생각지 않고 우리를 끌어들였단 말이야?"
환상검이 소리치자 만사귀는 고개를 숙였다. 당하는 만사귀가 안쓰러운지 이화가 만사귀 대신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저 때문이에요. 오빠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모두 저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는 이화를 보자 모두 조금은 미안한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수선한 장내가 잠깐의 침묵으로 정리가 되자, 현수가 다시 물었다.
"이야기해, 왜 그랬는지."
현수는 만사귀를 다그쳤다.
"할 말이 없다. 난 천연회를 탈퇴하겠다. 그리고 미안하다. 너희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꽝! 쿠다당! 탕!
"미친 놈! 고작 그런 일로 탈퇴할 생각을 해? 그러고도 네놈이 천하의 만사귀냐? 이 미친놈아, 만사귀라는 이름값 좀 해라."
역발산의 주먹이 만사귀의 얼굴을 강타했다. 부적을 팔았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고작 그런 일로 모임에서 빠지겠다고 한 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만사귀의 말을 들은 모두는 조금 실망했다. 현수는 다시 만사귀에게 물었다.
"수 쓰지 말고 앉아. 다시 한 번 묻겠다, 만사귀. 이유를 말해. 내가 옛날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라. 만약에 생각 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알아서 해."
건을 제외한 모두는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 화살은 모두 만사귀에게 돌아갔다.
역발산과 필살검은 만사귀를 죽일 듯 몰아붙였다.
이것을 지켜보던 수아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단지 현수의 옛날로 돌아가겠다는 한마디에 모두가 고양이 앞의 쥐처럼 두려워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오밀문과의 싸움에서 건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수아는 자신이 그래도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이들에게는 조금 밀리는 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레벨이나 무공이 아닌 다른 무엇에서 오는 차이라는 것을 수아 역시 알고 있었다. 건은 이것을 경험이라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고작 현수의 한마디에 이전과는 다르게 만사귀를 몰아붙이는 것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다.
건은 그냥 현수가 나서서 해결하기만을 기다렸다. 이들 중 머리가 제일 좋은 사람은 만사귀였다. 그다음이 건이었다. 건은 만사귀의 속셈을 대충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만사귀를 보다 못한 이화가 말했다.
"미안해요, 오빠들. 사실 제 어머니께서 오빠에게 저와의 결혼을 승낙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오빠가 정해진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예요. 오빠는 1달 안에 1억을 모아 오면 저와 결혼을 시켜 준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와 같은 일을… 정말 미안합니다."
이화의 말을 들은 모두는 잠시 멍해졌다.
우리나라의 상위 1% 부자들의 1달 급료가 1,000만 원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 되지 않았다. 사업이나 장사를 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금액이었다. 아니 사업이나 장사를 해도, 고정적으로 수입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1억이라는 돈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화의 어머니는 1달에 1억이라는 금액을 걸어 이화와 헤어지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 사정이 있으면 이해를 해 줄 만도 한데 이들은 부르주아 백수였다.
만사귀가 필요한 돈은 1억이니 그 외 나머지 돈은 천연회가 만사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서 나누면 된다.
현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만사귀에게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벌었어?"
만사귀는 포기를 했는지 모두를 보고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 2억 6,000만 원. 나와 이화가 살 작은 집까지 포함해서."
"억!"
순간 저도 모르게 억이라는 소리가 나온 천연회의 사람들은 만사귀의 얼굴이 돈다발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놈은 걸어 다니는 은행이다.'라는 생각이 든 현수는 더욱 속이 쓰렸다.
"난 이것으로 만족한다. 모산파의 도사들에게 죽으면 무공은 사라지지만 이화를 얻을 수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다."
포기한 듯 말하는 만사귀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극에 불과할 뿐이었다. 자신을 비롯한 천연회의 인간들이 어떤지 알고 있는 만사귀가 보다 좋은 조건에서 협상을 하기 위해 세운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게 말이 돼? 네가 일을 벌여 놓고 손을 떼면 남은 우리는 그냥 굶어 죽으란 말이야?"
필살검이 반박하자, 만사귀는 인상을 썼다.
"넌 이화와 행복하게 살겠지만 우리는 아니다. 하오밀문과 싸움을 시작하고 나서 우리가 입은 손해가 얼만 줄 알아?"
돈 계산이 빠른 수금인이 필살검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이화는 상황을 보고 왜 만사귀가 이런 사람들이랑 함께 어울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친구면 친구의 어려움을 알고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데,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실망감이 컸다.
"그만두자! 그건 그렇고 건, 어떻게 생각해?"
현수는 모두의 의견을 물었다.
"알잖아. 저놈, 움직이는 돈 창고인데 포기 못 하지."
모두들 만사귀를 보고 사악하게 웃었다. 대박을 터뜨렸다는 얼굴이었다. 부르주와 백수들인 그들에게 지금의 만사귀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인물이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조건을 제시해."
"이화 씨의 부모님께 1억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되니, 1억 6,000은 나누지?"
수금인의 말에 만사귀의 인상이 변했다.
"싫어? 앞으로 가끔 부적을 만들어 팔면 너도 이익이잖아."
"한 사람당 1,000만으로 하자! 그 이상은 양보 못 해."
생각보다 많은 액수였다. 수금인이 높은 금액을 부르고 협상을 하려고 했는데, 만사귀가 이를 사전에 차단해 버렸다.
수금인은 조금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아와 이화는 모두의 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화는 이들의 이해도와는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1,000만이라. 다들 어때?"
"만사귀, 저놈. 수 쓴 거라니까. 일부러 가격을 후려 쳐서 협상을 안 할 생각이라고."
"싫으면 관두고 그냥 죽지, 뭐!"
수금인과 만사귀의 싸움에서 만사귀가 이겼다. 아직 수금인은 만사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만사귀는 이화를 모산의 추격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대가로 1인당 1,000만 원에 낙찰을 받았다.
"회비는 이제껏 해 왔던 것과 같이 1%로 하고 나머지는 모레까지 입금해. 그리고 모산파의 일은 우리가 해결한다. 넌 모산의 일이 끝날 때까지 이화 씨와 접속을 종료해라. 해결되면 따로 연락을 하겠다."
쾅!
만사귀와 이화가 접속을 종료하기도 전에 한 무리의 도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만사귀를 내놓아라!"
천연회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만사귀를 본 모산파의 도사들이 소리쳤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그냥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다. 현수는 무력을 보여 줌으로써 이들을 물러서게 만들려고 했다.
"모산파는 이번 일에서 손 떼기를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모산파는 이렇게 될 것입니다."
한 줄기의 빛!
꽝!
객점의 한쪽 벽이 날아가 버렸다.
현수의 무공은 객점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더욱 강해진 현수를 본 천연회의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다.
'저놈이 예전으로 돌아가면 난 천을 접을 거야.'
역발산은 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다.
모산파의 도사들 역시 당황했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나서는 사람들 역시 없었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있으면 장문인과 장로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모산파라는 이름에 힘을 주었다.
"감히 우리 모산파에 대항을 하는 것이냐?"
"난 그런 거 몰라."
모산파의 도사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다시 모산의 이름을 들먹이며 만사귀를 자신들에게 넘겨 달라고 말했다.
"현수야, 비켜서라. 뭐 하러 힘들게 말로 하냐? 그냥 조용히 보내면 되지. 애들 시킬까?"
천의 뒷골목 큰 형님 역발산이 나섰다. 소림의 금강부동심결을 익힌 그가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객점의 바닥이 움푹 파였다.
역발산의 기세에 모산파 도사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냥 물러서라. 너희들에게도 만사귀가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역발산의 말에 모산파 도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어?'
건은 창밖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현수 역시 고개가 창 쪽으로 돌아갔다. 모산파의 도사들 역시 고개가 창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다.
"오는군!"
창밖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다. 모산파의 도사들이었다.
수적 우세에 이들은 힘을 얻었다.
역발산의 기세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들이 재차 소리쳤다.
"비켜라. 우리는 만사귀만 데려가면 된다. 아니면 너희들 모두에게 죄를 묻겠다."
하지만 역발산은 모사파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이…이이이이……!"
막아선 역발산의 기세에 그들은 기를 펴지 못했다.
"오빠, 괜찮을까요?"
지켜보던 이화는 괜히 걱정이 되어 만사귀의 옷깃을 당기며 물어보았다. 만사귀가 거금을 포기하고 이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믿는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래도 무림의 중견 문파였다.
"저들이 나서면 우리는 더 이상 모산파에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 저들은 베타 시절에 모두 랭킹 10위 안에 든 사람들이라, 그만큼 실전 경험이나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월등하다. 또한 결코 자신들의 이익을 남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할 테니,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단지 현수가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현수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만사귀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현수 오빠가 왜요?"
"만일 모산파가 천연회에 득이다 싶으면 그는 우리를 모산파에 넘길 수도 있어. 그리고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은 잊어버려. 저들은 부르주아 백수들이야. 게임에서 번 돈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친구가 어려운데 돈타령만 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이해해라. 나 역시 저들에게 그냥 1,000만 원을 주는 것은 아니니까. 너도 저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면 이해를 할 거야."
1,000만 원이라는 돈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말이 쉬워 1,000만 원이지, 이화는 이런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장소가 좁으니 밖으로 나가자."
건의 제안으로 모두 밖으로 나갔다. 수십 명에게 둘러싸인 천연회의 사람들은 약간 긴장을 했다. 약간의 긴장이야말로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앗!"
모산파 도사들의 공격이 먼저 시작되었다.
모산단혼검법! 모산파의 도사들이 사용하는 검법으로, 귀신이나 원혼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한 검법임에는 틀림없었다.
"죽이지 말고 일단 쓰러뜨려!"
"광란의 분노!"
역발산의 외침으로, 현수를 선두로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발산이 광란의 분노로 시선을 끌고 금강부동심결로 공격을 막으면, 다른 이들이 연수 합격으로 모산파의 도사들을 해치웠다. 모두 죽이지는 않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
현수와 건만이 혼자 모산파의 도사들을 상대했다. 그들 역시 죽이지는 않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상만을 입혔다.
소란으로 인해 관에서 관병들이 출동을 했으나, 무림인들의 싸움이라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다치면 자신들만 손해라는 것을 천의 NPC들 역시 알고 있었다. 카오스는 만사귀와 이화의 옆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한편, 활을 사용해 그들의 다리를 노려 화살들을 날리고 있었다.
모산파 장문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저들이 문도들을 죽이지 않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많은 문도들이 고작 10명 남짓한 사람들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모산파의 수치라 생각했다.
보다 못한 장문인은 급히 명을 내렸다.
"멈추어라!"
자 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장문인이 나서서 천연회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왜 만사귀를 보호하는 것인가! 그는 본 파의 무공을 훔쳐 배웠다."
"지키지도 못하고 탈취당한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필살검이 그들에게 면박을 주었다. 모산파의 도사들은 모두 얼굴을 붉혔다. 다시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관군들이 나서는 바람에 일단은 진정이 되었다.
관군들은 서둘러 이들의 중앙을 가로질러 갈라놓았다.
"모두 물러서라. 그러지 않으면 모두 체포하겠다."
무림과 관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처럼 백성의 재산 손실이 있으면 관에서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모산파와 천연회는 서로 거리를 두고 노려보았다.
관군의 책임자가 큰 소리로 모두에게 알렸다.
"살인을 자제해 준 그대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나, 객점의 기물들이 파손되었다. 기물을 파손한 손해를 변상하면 그냥 물러갈 것이나, 그러지 않으면 모두 관가로 연행하겠다."
현수는 관군들의 수장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용천검의 손잡이를 땅에 강하게 찍었다.
그러자 멸친어린천룡군의 인장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용천검을 본 관군은 놀라 무릎을 꿇어 부복했다.
"헉! 신 마평이 군을 뵈옵니다."
용천검은 황제의 현신과도 같은 효과를 내었다. 모두가 이 상황을 기이하게 여겼다. 모산파의 장문인은 마평의 입에서 나오는 군이라는 말에, 현수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했다. 현수는 발로 땅에 새겨진 인장을 흔적 없이 지웠다.
관의 개입으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모산파의 장문인은 만사귀를 처단하고 비급을 회수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 직감했다.
'군이라니… 저분이 황손이라도 된단 말인가.'
속으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대는 물러가라. 이곳의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신 마평, 군의 명을 받습니다."
그는 데리고 온 관병들을 이끌고 모두 돌아갔다.
모산파의 도사들은 어찌할 줄을 몰라 장문인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평의 입에서 나온 군이라는 말이 주는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자칫 잘못하면 모산파는 오늘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싸울 분위기가 아니란 것을 느낀 현수는 모산파의 장문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장문인! 저와 이야기를 조금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력으로 상대할 수 없는 자들 그리고 관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 장문인은 현수와의 대화를 승낙했다. 이것을 본 만사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우려했던 일이……."
이화와 수아는 알 수 없었으나, 모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내일 입금해라."
이미 끝났다는 듯 수금인은 만사귀의 어깨를 치고는 웃었다. 건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음!"
"왜?"
"하오밀문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현수가 왔으니 빠른 시간 안에 하오밀문을 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만사귀를 모산에 넘길 것 같지 않아?"
카오스의 말을 들은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현수는 만사귀를 모산에 넘기고 부족한 정보를 하오밀문을 통해 메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이미 황궁에서 나왔을 때 모든 계산을 끝낸 것 같다."
"하여간 저놈은 평소에는 모르겠는데 게임에서는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 그렇지?"
"그러니까 일마 이현수지. 무식하게 힘으로만 처리하면 그게 현수냐? 역발산이지."
조금 떨어져 있는 역발산은 귀가 가려운지 귀를 만졌다.
천연회와 모산파의 분위기는 서로 달랐다. 천연회는 마치 일이 해결된 분위기였지만 모산파의 도사들은 아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현수와 장문인은 모두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장문인, 그가 비록 모산파의 무공을 훔쳐 배웠다고 하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모산파에 득이 되는 일입니다."
모산파의 장문인은 현수가 자신을 감언이설로 속이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모산에 득이 되다니요. 그는 모산의 무공을 훔쳤습니다. 또한 모산의 비전으로 수많은 부적을 만들어서 시중에 뿌려, 혼란을 야기한 인물입니다."
현수의 신분을 짐작하지 못한 장문인의 입에서 존댓말이 나왔다.
"모산파를 무시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니 오해 말고 들어 주십시오."
"……."
"지금껏 비급만 가지고 혼자 수련을 해서 만사귀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습니까?"
없다. 옆에 데려다 놓고 갖은 영약을 먹여 가며 가르쳐도 만사귀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 없었다.
"만일 만사귀가 모산파의 사람이라고 하면 장문인께서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할 수 없다. 엎고 다녀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 만큼 지금 모산에는 인재가 부족했다.
"하나 그는 모산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수의 말을 듣자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림의 문파에서는 제자를 고수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한다. 설령 이류 문파든 삼류 문파든 그것은 다 똑같다. 또한 한 사람의 고수로 인해 문파가 부흥을 할 수 있는 것이 무림이었다.
모산파의 무공은 이류라고는 하나, 그들에게는 다른 문파가 가지지 못한 부록술이 있었다. 만사귀 같은 인재라면 충분히 무림에서 모산의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 지금부터 모산의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생각의 시간은 길었다. 모산파에서 보면 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장로들과 문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림은 방계에 무척 냉정하기 때문이었다.
"만사귀가 모산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수는 장문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제가 가능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모산파에서 만사귀를 거부하는 자들을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만사귀를 모산의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그에게 내려진 추격령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를 비롯해 만사귀의 친우들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린 그렇게 호락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산을 도울 것입니다. 만사귀로 인해 모산은 무림에서 비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문인의 인상이 변했다. 욕심이었다. 아니 소원이었다. 모산이 당당하게 무림에서 소리 내어 외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만사귀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가능했다. 천연회의 도움이라면 천하 제패는 힘들겠지만 그 누구도 모산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모산파는 중립을 고수하려는 장문인파와 정도에 들어가 활동하기를 원하는 제일장로파로 나뉘어 있었다.
모산파의 무공은 정도에 비해 한 수 떨어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다른 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기묘한 부적술과 강시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문인은 중립을 고수하는 쪽이다. 정도에 들어가서 그들의 뒷감당을 하는 것보다 중도가 낫기 때문이었다. 사두용미라 했던가.
거절할 수 없는 현수의 제의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만사귀는 모산이 다시 무림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이번 기회에 모산파에서 정도의 무림맹을 지지하는 자들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생각은 길었지만 답은 벌써 나와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의 제의를 수락하겠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장문인의 말을 들은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만사귀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저에게 넘겨주십시오. 죽음을 원하면 그들을 죽일 것이요, 회유를 원하면 회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이에 전음이 오고 갔다.
현수의 말을 들은 모산 장문인의 표정은 수시로 변했다.
"명심하시길. 그럼 모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몇 명만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모산파의 장문인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물들을 가르쳐 주었다. 모산파의 분열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현수와 장문인은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다정하게 돌아오는 두 사람을 본 만사귀는 결코 좋은 얼굴이 아니었다.
"만사귀, 이리 나와!"
"젠장, 팔아넘겼냐? 계약 위반이다, 이건!"
"위험에서 구한 것은 맞잖아. 내가 모산에 널 밀어 넣은 뜻은 잘 알겠지. 잘할 것이라 믿는다. 이화는 걱정 마라. 우리가 책임을 지고 모산에서 나올 때까지 지킨다."
"젠장!"
만사귀는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라. 이제부터 하오밀문의 일은 내가 맡는다. 넌 그냥 모산에 들어가 수련에 전념해라. 하오밀문을 장악하면 1달에 한 번, 모든 정보를 모산으로 보낼게. 분석하면서 모산파와 함께 준비해."
현수의 말을 듣고 난 만사귀는 인상을 썼다. 모산에 있어도 부려 먹을 것은 다 부려 먹겠다는 말이었다.
만사귀는 이화를 보았다. 조금 걱정을 하고 있는 듯한 이화의 모습을 본 만사귀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현수의 말을 이해했지만, 수아와 이화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빠 왜?"
"응? 아! 현수가 만사귀를 모산파에 넘겼어. 그렇게 해서 우리는 모산과 싸우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팔아넘겼다고?"
"보면 알 거야. 저게 현수의 특기 중 하나니까."
모산파의 장문인은 만사귀에게 모산파의 제자라는 표식을 건네주었다.
"지금부터 만사귀를 모산의 아들로 선언한다."
모산파의 도사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오늘부터 그에게 내린 수배령은 모두 풀릴 것이다. 만사귀는 1년간 모산의 모든 것을 배워 모산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라."
"젠장!"
그제야 팔아넘겼다는 말을 이해한 수아는, 어떻게 보면 지금 현수가 처리한 방법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적응이 안 돼. 그래도 재미는 있어.'
지금까지 천연회와 함께 있으면서 수아가 느낀 것이었다.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을 팔아넘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계약 위반인 듯한데, 일단 안전해졌으니 그런 게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수아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이들의 기행을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자, 만사귀! 돈은 내일까지 입금시켜라. 그리고 이화 씨와 꼭 결혼해."
만사귀는 현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았지만 현수는 애써 외면했다.
모산파의 장문인은 현수에게 인사를 하고는 만사귀를 데리고 모산의 도사들과 함께 돌아갔다.
그 후 천연회의 사람들은 모두 객잔으로 들어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을 계획한 만사귀가 빠지자 건이 나서서 대화를 진행했다.
"지금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하오밀문과의 일이야. 만사귀는 부적 사건으로 하오밀문에 이미 노출이 됐어. 그러니 다른 사람들 역시 안심할 수 없어."
현수는 건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고 있었다. 에피소드 2에서 무공을 탈취한 문파를 조심해야 된다는 말을 이미 야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무공 비급 탈취 사건과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하오밀문에서 알면, 그들은 틀림없이 관련된 문파를 끌어들여 우리를 괴롭힐 거야. 그럼 우리가 더욱 힘들어지겠지."
"그렇게 되는구나. 결국 내가 벌인 일이 발목을 잡는다, 이 말이지."
"그렇다고 봐야지."
모두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하오밀문의 첩자가 이곳에 있다 사라졌어. 아마 보고가 되는 대로 일을 꾸미지 않을까 생각해."
"급하네. 모산파에서 해결해야 할 일도 있는데."
현수는 모산파 장문인과의 약속을 모두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음!"
"역시 만사귀의 빈자리를 곧바로 느끼는데."
이화는 만사귀의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섭섭했는지, 이들을 보는 눈이 그렇게 곱지 않았다.
"저 봐, 이화 눈이 도끼눈이 되었다. 일단 이화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게 좋겠지? 그리고 수아도 알아야 될 일이고."
현수는 두 사람을 보았다.
"아직 이해를 못 하겠어요. 같은 문파원이잖아요. 그런데 오빠를 왜 모산에 넘겨준 거죠?"
"그건 만사귀도 짐작한 일이었어. 사실 우리의 목적이 조금 애매하기는 해. 우리는 한 문파의 문파원이지만 게임으로 번 돈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손해를 보면 그것을 서로의 부담으로 조금씩 채워 줘야 해."
"하지만 게임을 해서 항상 돈을 버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항상 돈을 버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손익분기점이라는 것이 있어."
수금인이 수아와 이화에게 돈에 대한 문제를 이해시키기 위해 말했다.
"우리가 1달 동안 벌 수 있는 돈이 300만 원이라고 하자. 당연히 매달 그렇게 벌 수는 없지. 하지만 대충 기간을 따져 보면 평균적으로 그 정도는 벌 수 있지. 아이템의 희소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이템 하나로 그렇게 벌 수도 있고, 또 여러 개의 아이템을 사고파는 방법으로 조금씩 이익을 남겨 그렇게 버는 때도 있고 그래. 이번 경우, 우리는 하오밀문과 싸우는 동안 손해만 봤지."
"하지만 모두가 잘되기 위해서잖아요."
"물론 결과만 놓고 보면 그래. 그런데 중간에 모산파가 끼어들어서 하오밀문은 고사하고 모산파의 일도 해결하지 못했지. 만사귀가 모산에 쫓기고 있어서 이번 계획을 세운 만사귀가 해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로 인해 우리의 손해가 더욱 심해졌지. 만사귀는 이 손해를 메워야 할 의무를 가졌어. 그래서 우리에게 모산파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연락했고, 그 대가로 우리는 이제껏 입은 손해를 메운 거야."
그래도 수아와 이화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조금 더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야. 현수가 모산파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똑같은 일이 일어날 테니 말이야."
"그럼 돈에 움직이는 문파예요, 천연회는?"
수아가 말하자 건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니야. 천의 어느 문파보다 우리 천연회가 결속력이 강해. 사람이 적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일이야. 서로를 믿으니까 계획을 해서 함께 실행하는 거야. 계속해서 만사귀의 예를 들어 말할게. 이화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해해."
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어떤 문파에서 누군가가 하오밀문을 치자고 했을 때, '그래, 치자.' 이렇게 선뜻 결정할 문파가 있을까? 없다. 비록 방각이나 무기의 문파가 가장 크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 역시 쉬운 결정이 아니야. 그런데 우리는 10명이잖아. 그런데도 하오밀문과의 싸움을 시작했어. 이유가 뭘까?"
"글쎄요?"
"그건 만사귀를 믿기 때문이야. 그리고 만사귀가 우리에게 1,000만 원이라는 액수를 제시한 데는 다른 이유가 없어. 그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한 거야. 자신이 모산에 가고 나서 지켜 주지 못할 이화를, 돌아올 때까지 우리보고 보호해 달라는 뜻이야. 현수를 잘 아는 만사귀니까."
이화는 그런 만사귀가 참 바보스러웠다.
"너, 지금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사실 그래요. 1,000만 원. 그것도 한 사람당 1,000만 원이니 오빠와 나를 제외하면 1억이잖아요. 1억이라는 돈을 누가 안 아까워하겠어요. 오빠가 번 돈인데."
이화는 솔직했다.
"그래, 그렇지. 하지만 만사귀는 그걸 발판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잖아. 만일 죽으면 어떻게 되었겠어? 이건 일종의 투자야. 지금 만사귀가 만들 수 있는 부적의 옵션은 플러스 15가 최고지만, 모산에서 나올 때는 플러스 20까지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럼 더 많이 벌겠지. 이게 기본적인 부르주아 백수의 생각 방식이야."
"알겠어요."
이화는 조금 아쉬운 듯했지만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자, 그만 하고, 일단 하오밀문의 본 단이 어딘지는 파악했어?"
"아니, 하지만 현수 네가 왔으니 족치면서 찾으면 돼. 사실 싸우는 것은 만사귀보다 현수가 뛰어나니,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좋아. 지금부터 하오밀문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먼저 역발산하고 수아 그리고 이화는 천연장을 봉쇄하고 있는 놈들을 잡아. 그리고 그들을 다 죽여야 해. 만약 역발산의 무공이 금강부동심결이라는 걸 하오밀문에서 아는 날에는 우리는 게임을 접어야 하니 말이야."
어떻게 보면 이번 싸움의 최대 변수는, 하오밀문에 천연회의 사람들이 쓰는 무공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필살검이랑 환상검은 본 단을 찾는 데 주력해. 하오밀문 전체와 싸우면 괜히 소문만 난다. 그리고 이런 소문이 나면 거대 문파들이 눈독을 들일 테니 소리 없이 처리해야 해. 황궁처럼!"
"그럴게."
"건이랑 수금인은 하오밀문의 이곳저곳을 찔러 봐!"
"알았다. 그렇게 하지."
"나는?"
카오스는 자신이 할 일이 없는지를 물었다.
"너와 화령이는 건이 일행과 필살검 일행의 손에서 벗어나는 놈들을 잡아. 너희 둘이 제일 중요하다. 혹시 놓치기라도 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현수는 모두에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모산파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따로 알아볼 것이 있으니 모두 일이 끝나면 천연장으로 와. 각자 맡은 일에 실수 없도록 해."
"혼자서 되겠냐?"
조금은 불안한 듯 화령검객이 물었다.
"걱정 마라. 모산에서 무공 비급을 가지고 나올 때도 그놈들은 날 찾지 못했다. 그때가 레벨 20대였다. 지금은 레벨이 60대다. 그놈들이 날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게다가 몰래 들어가서 몇 놈만 잡고 나오면 되니까 크게 걱정할 것 없어."
현수는 이 말을 남기고 모산으로 향했다. 장문인이 가르쳐 준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저놈은 뭘 해도 쉽게 하는 것 같지 않냐?"
"그러게."
"재밌잖아. 우리는 꿩 대신 닭을 얻은 것이 아니라, 봉을 얻었으니 말이야. 게다가 하오밀문까지 얻으면 만사귀의 정보력보다 더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그나저나 화화 이놈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 나중에 연락이 오겠지."
"자자! 우리도 일을 하러 가자."
모두 각자 맡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객잔에서 벗어났다.
* * *
현수는 운중비록과 귀환 부적을 사용해 먼저 출발한 모산의 일행보다 더 빠르게 모산파의 입구에 당도할 수 있었다.
모산의 일행들 역시 현수가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 도착하기 위해 천천히 이동하는 중이었다.
"밤에 시작하자."
현수는 밤이 되기를 기다리며 모산파 본당의 지붕에서 쉬었다.
밤이 되자 모산파의 주변에 기이한 안개들이 내려앉았다.
그 진이 모산에 펼쳐진 사망윤회진이라는 것은 예전에 모산파에 잠입했을 때 알게 되었다.
현수는 호면을 쓰고 운중무영보와 함께 ≪살황의 일기장≫에 적혀 있는 은신술과 잠입술을 함께 사용했다.
현수가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바로 제일장로파의 우두머리인 제일장로였다. 자신의 방에서 명상을 하는 제일장로의 표정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세상에 욕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모산파의 제일장로! 도사임에도 가진 야망으로 인해 오늘 그 운명을 다할 것이다."
제일장로의 방문을 여는 순간 현수는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에 검을 날렸다.
"컥!"
명상을 하고 있는 제일장로의 가슴에 검이 꽂혔다.
등을 보이고 돌아가는 인물이 보였다.
"언제……."
자신의 죽음을 생각지 못했을까? 아니면 곧 얻을 야망의 부산물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제일장로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현수의 신형이 바쁘게 움직였다. 처치할 인물들은 총 8명! 이 밤이 가기 전에 모두 해치우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산파의 장문인이 도착하는 날, 모든 정리가 끝나야 했다. 그래야 최소한 모산파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슈슈슈!
"누구냐?"
모산파의 무공광인 영환 도인이었다.
그는 기습을 하는 현수의 검을 피하고 상대를 확인했다. 현수는 그가 자신의 공격을 피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지, 행동에 여유가 있었다.
"호면객!"
"신비 이객 중 1명인 호면객? 무슨 이유로 날 찾아왔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펼쳐진 뇌전류는 영환 도인의 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허억! 이런 쾌검이……."
영환 도인은 자신이 방심을 해서 당했다고 생각지 않았다. 호면객이 자신을 향해 사용한 한 수의 검을, 자신의 실력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은 화를 부를 뿐이다."
"그래도 난 행복한 놈이군. 고수의 검에 죽을 수 있으니."
그는 죽는 순간에도 무공을 생각하는 진짜 무공광이었다. 영환 도인은 자신의 무공보다 더 강한 무공에 죽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 생각했는지, 죽은 모습이 진정 즐거워 보였다.
현수는 진무 장군을 죽일 때 느낀 것을 교훈으로 삼아, 죽일 인물에게는 가차 없이 살수를 사용했다.
그는 죽일 자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산파의 전체를 다 뒤져도 1명만은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를 간 거지?"
현수는 마지막 남은 인물을 찾아 다시 모산파를 뒤졌다.
"뭐야? 저곳에……!"
마지막 1명을 찾아낸 곳은 모산의 식량 창고였다.
"흐흐. 조금 이따가 극락으로 보내 주마."
그는 모산파의 신묘한 술법으로 아낙을 꼬여 욕정을 풀려고 하는 중이었다. 현수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급해진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도사였다. 현수는 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사사혈천을 떠나 이곳에 잠입한 것도 다 이것 때문이지. 흐흐."
사사혈천이라는 말을 들은 현수의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한 채, 환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낙의 옷을 하나 둘 벗기기 시작했다.
"흐흐, 참지 못하겠군."
아낙을 향해 몸을 움직이려는 그의 눈에 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컥!"
그는 환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인의 몸 위로 쓰러졌다.
"사사혈천이 중원에 간세를 심었단 말이지."
현수는 동영상에서 들은 광소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재미있군. 그나저나 사사혈천의 대지인 탑리목 분지에 간 사람들이 정보를 풀었는지 모르겠군."
다음 날, 모산파에서는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장문인은 만사귀를 데리고 모산파로 돌아와 그에게 모산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중립인 모산에 사사혈천의 간세가 있었다는 것을 안 현수는, 각 파에도 간세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로 인해 조금이라도 빨리 하오밀문을 손에 넣어야 했다. 현수는 령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혹시 황궁에도 사사혈천의 간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현수는 밤을 이용해서 강소성의 성주를 만나기로 했다. 모산파가 강소성 구룡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지라, 강소성에서 구미호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을 찾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군께서 알아보시라 한 인물에 대해 강소성에서 올라온 정보들입니다."
강소성의 성주는 현수에게 얇은 책자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성주님."
"그런 말 마십시오."
현수는 얇은 책을 보며 내용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다 본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책에는 8명의 신상 정보가 적혀 있었다. 모두 지난날에 현수가 건네준 구미호의 그림과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저기……."
강소성의 성주는 현수를 보고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강소성의 성주는 요즘 많은 문파들이 생겨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이 입는 피해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지금은 미비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늘어난다면 백성들이 불안해할 것입니다."
"음! 혹시 강소성에서 무림인들이나 문파에 대해서 조사한 것들이 있습니까?"
"미흡하지만 조금 조사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현수는 성주에게 정보 문서들을 제공받아 읽어 보았다. 문파를 세우기 위해서는 각 성 성주의 허가증이 있어야 했기에, 성주들은 자신의 지역에 어떤 문파들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없었지만 어떤 문파가 생겨났는지, 또 문파의 위치와 어떤 사람이 문파의 문주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현수의 관심을 끄는 문파가 있었다.
"후후! 알겠습니다. 성주님께서는 일반 백성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는 강소성의 성주에게 인사를 하고는 성주관을 벗어났다. 그러고 나서 간 곳은 강소성주가 건네준 문서에 나온 문파들 중 하나였다.
"사파라고 해서 다 나쁜 놈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
그 문파는 바로 악령과 솔미가 함께 만든 솔악문이었다.
솔악문의 장원을 보며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누구냐!"
"문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입구를 지키는 사람은 유저가 아닌 NPC였다.
"문주님의 손님이십니까? 손님이 오신다는 전갈은 받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이곳에 들를 일이 있어 왔다가 생각이 나서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에 전갈을 넣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현수입니다. 이현수."
"알겠습니다."
현수는 문지기 NPC의 행동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유저가 만든 문파의 문지기는 유저들이 돌아가면서 서곤 했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딱딱한 편이었는데, NPC는 그와는 다르게 친절했다.
"천연장도 문파로 인증을 받을 때 문지기를 NPC로 세워야겠네."
현수는 문지기가 문파의 얼굴이라 생각하는 사람 중 1명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현수를, 문지기가 나와서 안으로 안내했다.
"어서 와."
현수를 반갑게 맞이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솔미였다.
"누나."
"때를 잘 맞추어서 왔네. 내가 접속할 때 들어왔으니 말이야. 들어가자. 슈엔 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문주님,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솔미는 슈엔이라는 NPC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접객실로 향했다. 현수는 솔미의 뒤를 따라갔다.
현수를 접객실로 안내한 솔미는 그를 잠시 앉혀 놓고 차를 가지고 왔다.
"어떻게 왔어?"
"그냥."
솔미는 현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냥'이라고 말했어도, 결코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올 현수가 아니었다.
"너, 혹시 진희엄마 님 때문에 왔어?"
"아니. 참, 그분 어때? 아톰한테 걸려서 당하고 있는 걸 빼내서 이리 보냈는데."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몰랐는데 아줌마 특유의 붙임성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것 같고. 처음엔 놀랐다. 현수가 추천장을 써서 이리 보낼 거라고 생각도 못 했거든."
"다행이네. 그냥 조금 불쌍한 것 같아서. 악령이는?"
"그이는 사냥 갔어."
현수는 솔미의 말을 듣고 그녀를 빤히 보았다.
"왜? 아! 사실 나 악령이랑 사귄다. 곧 결혼도 할 거야."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야? 왜, 진작 말하지."
"오래 됐어. 베타 시절 때 만났으니까. 사실 내가 나이가 조금 많잖아.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고 뭐, 그래서 그냥."
솔미의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아! 이제 악령이에게 말 함부로 못 하겠네. 아니지, 누나가 제수씨가 되는 거잖아. 하하!"
솔미는 현수를 노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내가 현수에게 제수씨가 되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불렀다간 나에게 죽는 거 알지?"
"……."
그때 진희엄마가 솔미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
"문주님, 저 진희엄마예요."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솔미는 현수를 보았다.
"들어오세요."
스르륵.
진희엄마는 문을 열고 들어와 현수를 보더니, 당황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진희엄마가 한 이야기의 요점은, 사냥터에서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물러났단 말이에요?"
"네, 사실 우리는 7명이고 상대는 12명이었어요. 또 유저들과 싸우지 말라고 하셔서……."
현수는 가만히 듣고 있다 입을 열었다.
"사냥터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모양이네."
"게임이 다 그렇지. 고수들이야 레벨이 높은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니 몬스터가 부족하지 않겠지만, 중간 정도의 레벨인 유저들은 사정이 달라."
"진희엄마 님!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세요. 알고 있죠, 이분?"
"네, 저에게 이곳을 소개해 주신 분인걸요."
솔미는 다시 차를 내왔다.
"누나는 레벨이 얼마야?"
"나? 1레벨이야. 가게 장사도 해야 되고, 또 낭군이 잘하니 내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어. 그리고 사실, 악령이가 조금 막힌 구석이 있어. 사냥하지 말고 그냥 이곳에서 머리를 식히며 쉬라고 하더라."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현수는 이곳에 온 목적의 운을 띄웠다.
"뭘 어떻게 해?"
"계속해서 문파원들에게 다른 유저들과의 싸움을 피하라고만 하면 문파원들의 반발이 심해지잖아."
"우리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솔미였다.
"악령이가?"
"저기, 문주님. 사실 조금은 억울한 일도 있어요. 분명 우리가 먼저 자리를 잡고 사냥을 했어도 싸우지 않고 계속해서 비켜 주니까, 우리 자리를 노리는 문파들이 많이 있어요."
진희엄마는 그간의 불만들을 이야기했다.
"그래요? 그럼 정리를 해야겠네요."
솔미의 말을 들은 진희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식적으로는 솔미가 문주, 악령이 부문주였다. 그리고 솔미가 악령과 결혼할 것이라 알고 있었기에, 문파원들은 그녀가 문주 자리에 있어도 불만이 없었다.
모두 그녀가 1레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 말해서, 진희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 사실 나, 그것 때문에 왔어."
"그것이라니?"
솔미에게 강소성 성주의 이야기를 해 준 현수는, 솔악문이 강소성을 장악해 주기를 원했다.
"너, 황궁에 들어갔다고 하더니 한자리 차지했나 보구나."
"그렇게 됐어."
"지원은?"
솔미 역시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없지. 관과 무림은 서로 상관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도와줄 수 있어."
"알겠다. 진희엄마 님, 우리 문파원이 사냥을 하는 곳에서 방해한 문파 중 대표적인 문파가 어디에요?"
"진중파요."
진희엄마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바로 말했다.
"진중파라… 문주가 누구지?"
"윤석이가 진중파의 문주야."
현수의 말을 들은 솔미는 눈을 조금 치켜떴다.
"윤석이야? 그놈이 나에게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맞아. 진중파의 문주는 윤석이고, 윤석이 밑에는 50명의 문파원이 있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니 아마 애들 단속이 어렵겠지."
솔미는 현수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예전에 이런 식으로 얼마나 당했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너, 그거 나쁜 버릇이다. 남의 손을 빌려서 상대와 싸우려는 거."
"편하잖아. 그리고 누나네도 이익이고."
진희엄마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두 사람이 상당히 친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전 가 볼게요."
"그래요. 문파원들에게 앞으로는 피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문주님."
진희엄마가 나가자, 솔미는 현수에게 진중파의 문주인 윤석에게 전서구를 날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가 왜?"
"내가 보내는 거랑 네가 보내는 것은 무게가 다르잖아."
노려보는 솔미가 무서워, 현수는 윤석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약간의 협박과 또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만한 사건의 내용을 담아!
현수는 솔미에게 될 수 있으면 황궁과 인연을 맺지 말라는 부탁을 하며 솔악문을 빠져나왔다.
현수는 지금 몹시 흥분해 있었다. 구미호와 닮은 사람이 8명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다시 만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구나."
현수가 찾아간 곳은 단양현이라는 마을이었다. 현수는 한 포목점의 주인에게 연화라는 여자에 대해서 물었다.
"젊은이, 혹시 연화와 아는 사이인가?"
"아닙니다. 친구의 서찰을 전해 주려고 합니다. 친구가 전해 주어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고 제가 대신 가져왔습니다."
"그런가? 연화는 청루에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네."
현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청루라는 곳을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혹시 유저?"
현수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NPC가 아닌 유저였다.
"네! 자자, 이리로 오세요."
점소이 유저는 빠른 행동으로 현수를 빈자리로 안내했다.
"뭘 드릴까요? 우리 집은 일반 객점보다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회복제가 모두 고급입니다."
현수는 몇 가지를 주문하고는 점소이 유저가 회복제를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회복제를 가지고 나오는 점소이에게 연화에 대해서 물었다.
"연화 아가씨는 이곳에서 금을 타고 있습니다. 곧 금을 타는 시간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될 것입니다."
현수는 점소이의 말을 듣고 자리에 앉아 연화를 기다렸다.
잠시 후, 금을 들고 나오는 여인이 있었다. 대략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음!"
현수는 그 여인이 연화라는 것을 느꼈다. 구미호와 너무나도 많이 닮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단지 닮았다.
'아니구나. 그래도 정말 많이 닮았다.'
어떻게 보면 구미호라는 착각이 들 만도 한데, 느낌이 달랐다.
연화가 금을 연주했다. 듣기에도 좋은 소리가 청루를 가득 메웠다. 현수는 금의 소리에 천천히 젖어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연화는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멋진 곡이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곡 더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현수는 예전에 구미호에게 피리를 배울 때 알게 된 소호강호라는 노래를 부탁했다.
"소호강호라… 무림인이시군요. 저 역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협의 성함을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대협이라니요, 무명소졸에 불과할 뿐입니다. 금을 듣고 있으니 옛 추억이 떠올라 실례를 했습니다. 전 이현수라 합니다."
연화는 현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눈을 감고 다시 금을 타기 시작했다. 곧이어 연화의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푸른 파도에 한바탕 웃는다
파도는 해안을 따라 물결을 만들고
물결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네
푸른 하늘을 보며 세상사를 잊는다네
이긴 자는 누구이며 진 자는 누구인가?
인생은 늙어 가니 세상 시름 모두 잊네
맑은 바람에 속세의 찌든 먼지 날려 보내니
호걸의 마음에 노을이 머무는구나
만물은 웃기를 좋아하고 속세의 명예를 싫어하니
영웅호걸이 다 무엇인가?
하하하! 웃으면 그만인 것을!
연화는 노래가 끝나자 감았던 눈을 떠 자신에게 소호강호를 부탁한 사내를 보았다. 하지만 현수는 이미 자리를 떠난 후였고, 그 식탁 위에는 금전 1냥이 놓여 있었다.
한편 현수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강소성을 둘러보는 동안 현수는 지금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느낄 수가 있었다.
"음! 유저들은 아직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않고 레벨 업에만 집중하고 있군."
또한 천지회나 천마회 같은 거대 문파들은 각각 정보부를 만들어 천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빨리 하오밀문을 정리해야겠구나."
현수는 하오밀문을 장악하고 나서 한발 빠르게 정보를 얻어야 앞으로의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가 마지막인가?"
7명의 사람을 보았다. 모두 구미호와 닮았지만, 왠지 구미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구미호의 환생을 만나면 무엇인가 느낌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머니, 이제 들어가세요."
고운 아낙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그 아낙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굴은 닮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구미호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괜찮다. 시간이 늦었는데 아범이 돌아오지 않는구나."
"네, 오늘이 장날이라 아범이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당과를 사서 오느라 늦는가 봐요.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방에 들어가세요."
아낙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현수는 몸을 돌렸다.
'어디에 있나요.'
하늘을 보고 구미호를 생각하는 현수였다.
그때 한 남자가 비틀거리면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누군가에게 맞았는지 조금 부어 있었다. 현수는 그 남자를 지나쳐 하남성의 천연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흑흑!"
그때 현수의 귀에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보니 남자가 담에 기대어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아낙의 남편인가 보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현수는 그 남자에게로 향했다.
"여보세요."
그는 고개를 돌려 현수를 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다. 사내는 손으로 눈을 비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수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저를 불렀습니까?"
"사연이 있는 듯해서요. 지나가는 길에 집 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는데."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께서 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네에."
현수는 사내의 말을 듣자 어머니가 생각났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항상 절 기다렸지요.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마음은 다 같은 모양입니다."
사내는 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 많이 맞은 것 같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제가 도와 드리고 싶군요."
"아닙니다."
사내는 현수의 옆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어머니께서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보면 많이 슬퍼하실 겁니다. 또 부인이 되시는 분도."
사내는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발길을 멈추어 세웠다. 그러고는 현수를 보았다.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실은……."
사내는 자신이 당한 일을 현수에게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사내는 현수가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대는 마을의 현감이었다.
"그랬군요."
-군!
그때 령이 현수를 불렀다. 현수가 사사혈천의 간세가 황궁에 심어져 있는지 알아보라 전서구를 보냈기에, 그것에 대해 현수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직접 온 것이다.
또한 황제는 부마로 생각하고 있는 현수가 혹시 무림에서 무림인에게 당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령으로 하여금 현수를 도우라는 명을 함께 내렸다.
-말하라.
-사사혈천이라는 세력의 간세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단체여서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역시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금의위가 계속해서 조사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군에게 조심하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음!"
-령! 넌 가서 이 마을의 현감에 대해서 알아보아라. 그리고 나쁜 놈이면 알아서 족쳐라.
-군께서는?
-난 이 길로 하남성의 천연장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령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현수는 사내에게 말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현수는 금전 1냥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사내에게 주었다.
"이걸 왜 주시는 겁니까?"
사내는 눈앞에 있는 현수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그대의 어머니에게서 제 어머니의 모습을 느꼈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당과를 좋아하셨습니다."
현수는 그 길로 몸을 돌려 하남성의 천연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