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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에서 생긴 일 (27/57)

금릉에서 생긴 일

현수는 기쁜 마음으로 황궁을 떠나 강소성 금릉으로 향했다. 남궁세가에 들를 생각이었다.

현수는 황궁에만 있어서 지금 무림의 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만사귀에게서 아직 몇몇 유저들을 빼고는 무림의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 비해 한 수 떨어진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을 뿐었다.

현수는 진시황릉에서 만난, 남궁세가로 찾아오라는 아레스라는 여자가 생각이 나 처음 목적지를 남궁세가로 정했다.

"아레스라 했던가? 그때 그 여자의 이름이."

산천을 유람하듯 걷는 현수의 앞을 막아선 사내들이 있었다. 반가운 이들이었다. 그 옛날 구미호에게 속옷을 선물하기 위해 약간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산적들이었다.

"어이, 이게 누구신가. 산적님들이 아니신가. 그간 잘 있었는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나 보군. 만나서 반가워!"

현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하지만 산적들은 결코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현수는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듯 모두의 손을 잡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여긴 어쩐 일로……?"

"남궁세가에 볼일이 조금 있어 그리 가는 길이네. 자네들은 이리로 자리를 옮겼나?"

산적들의 얼굴에서 서글픔이 묻어났다. 이들이 이리로 온 사정이 있는 듯했다.

"왜?"

"우리들이 비록 녹림단의 일원이라고 하나 무공을 모르는 자들인데, 무림인들이 공격해 단주가 죽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그곳을 떠나 이곳으로 도망 오게 되었다."

"어떤 놈이 그랬지?"

현수는 약간의 과장과 호들갑으로 그들의 슬픔을 달래 주었다.

"알 수 없다. 다만 가슴에 있는 월이라는 글자만 보았을 뿐이다."

베타 시절에 자신들의 문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옷이나 검에 문파의 문장이나 수실을 달아 게임을 즐기는 자들이 있었다. 현수는 정식 서비스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문파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월? 음……!"

이제 막 무림에 나온 현수가 알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미지 관리상 조금 생각을 하는 척했다.

"그래. 좋아. 내가 복수해 줄게. 그리고 너희들 산적질 말고 다른 거 할 생각 없어?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왜 하필 산적이야?"

"태생이 그렇다."

하긴 이들은 몬스터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었다.

현수는 말로 이들을 달래 줬다.

"그들을 보면 내가 복수해 줄게."

그러고는 약간의 금전을 꺼내어 그들에게 주었다.

"예전에 나에게 금전 털리고 너희들이 나를 향해 소금을 뿌린 것이 가슴에 한이 되어 그러는 것이니까 받아 둬!"

현수는 금전 10냥을 손에 쥐여 주고는 웃으며 그들을 지나쳐 나갔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고는 말해 주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꼭 복수를 해 줄 테니까."

그러고는 그들과 헤어졌다.

남궁세가가 있는 금릉에 도착한 현수는 일단 객점을 찾아 방을 얻고는 접속을 종료했다. 그러고서 야에게 남궁세가에 관해서 들었다.

남궁세가!

강소성 금릉에 위치한 남궁세가는 당당하게 오대세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제갈세가와 더불어 정도의 머리라 할 수 있는 가문. 또한 검법에도 뛰어나 무림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세가였다.

"야! 그러니까 남궁세가에는 뇌전을 이용한 무공이 많이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뇌전이라……. 현수 역시 뇌전류라는 쾌검을 가지고 있었다.

"뇌전류와 비교하면 어때?"

뇌전류가 그 어떤 무공보다 강한 무공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현수였다. 사실 야에게 물은 이유는 단순했다. '나 이렇게 강한 무공을 알고 있다.'라고 자랑을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익히는 사람의 차이로 고하를 따지겠지만 객관적인 관점에서는 뇌전류가 한 수 위에 있습니다.

당연한 답이었다. 그 어떤 무공이 있어 뇌전류를 능가할 수 있을까?

"좋군!"

-하지만 현수 님께서 십분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NPC라 할지라도 완벽한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 섣불리 행동하시면 크게 곤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행동을 하실 때는 최소한 세 번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소리장도라 했습니다. 무림이라는 곳은 그만큼 위험합니다. 웃으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곳이 곧 무림입니다. 가진 것을 모두 드러내어 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숨길 수 있으면 최대한 실력을 숨기는 것이 좋습니다.

"알아! 황궁에서 이미 경험했어. 소리장도, 그거 좋은 말이지. 야, 그런데 극강이면 모든 것을 부술 수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강함의 정도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수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극강이라면 모든 것을 깨트려 버릴 수 있습니다. 천에서는 그런 존재가 딱 하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깨트려 버릴 수 있는 무공의 소유자가 1명이 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천의 지존이라는 뜻이었다.

현수는 그가 누구일까 생각했다. 딱히 생각이 나는 사람은 없었다. NPC까지 따지면 모르지만, 아무리 NPC라고 해도 야의 말에 부합되는 이는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

-적룡입니다. 적룡은 사신수나 구미호보다 한 수 위의 존재입니다. 그만이 현수 님께서 말한 극강에 부합되는 존재입니다.

현수는 적룡에게 고문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현수는 야가 하는 말이 단지 적룡이 강하다는 뜻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 속에 또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야에게 물었다.

"쉽게 말해 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어쭙잖은 무공으로 똥 폼 잡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무공이 설령 운중비록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현수는 침묵했다. 야는 현수가 못 알아들었는 줄 알고 다시 물었다.

-못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럼 더 쉽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쩌자고 고물상에서 야를 주워 왔는지 후회를 하고 있는 현수였다.

"아니, 그냥 남궁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줘!"

-알겠습니다. 남궁세가는 문과 무에서 일가를 이룬 곳으로, 무림에서는 그 누구도 남궁세가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또한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검법에 있어 어느 한 가지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질에 따라 다르게 발전시킨 곳입니다.

"예를 들면?"

-많은 검법이 있겠지만, 그중 섬전십삼검뇌라는 출중한 쾌검이 있고 창궁무애검법이라는 중검 또한 있습니다. 세상에는 창궁무애검법이 더 많이 알려져 있으나, 섬전십삼검뇌라는 무공 역시 무시하지 못합니다. 남궁세가의 가신들은 이 두 검법을 세가의 이대 검법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중검보다는 쾌검이 익히기 어렵지만, 남궁세가의 가신들 중에는 재질에 따라 섬전십삼검뇌라는 무공을 익히는 이들도 있습니다.

현수도 많이 들어 보았던 창궁무애검법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섬전십삼검뇌라는 검법은 야에게서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뇌전류보다는 느리겠지?"

-그리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야! 내가 BS 그룹에 이야기를 해 줄 테니, 너 혹시 취직하고 싶은 생각 없냐? 맞벌이가 유행인데, 너랑 나랑 같이 벌면 돈을 더 많이 벌지 않겠어?"

천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야를 보며, 현수는 가끔 야가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라고 착각할 때가 있었다.

-관심 없습니다.

"그래, 혹시 생각나면 말해. 내가 소개해 줄 테니까. 참! 아이템은 어떻게 되었어? 부적과 검은 구했으니, 방어구와 액세서리가 문제인데, 방어구는 일단 두고 액세서리부터 좀 알아봐."

-알겠습니다. 하나 현수 님, 이건 참고하시는 게 좋습니다. 지금 수많은 아이템들이 거래 사이트에 올라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거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수는 생소한 이야기를 하는 야를 보았다. 아이템을 거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한계라니?"

-바뀐 아이템의 옵션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아이템의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약해도, 붙은 옵션만 좋으면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냥 소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등급에서 차이가 나면 바꾸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냥 소지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니 당연하지."

-그래서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야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황궁에서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게임 머니로 돈을 버는 것이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아이템의 가격은 항상 오르락내리락해서 급하게 팔려고 하면 제 값을 다 못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순간적으로 큰돈을 벌려면 아이템을 파는 것이 가장 빨랐다.

"결론은?"

-현수 님께서는 될 수 있으면 한 지역이나 성을 얻는 것이 좋습니다. 들어오는 세금만으로도, 웬만한 아이템을 파는 것보다 이익입니다.

앞으로 있을 공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야였다. 현수 역시 생각하고 있었지만, 천연회의 인원으로는 조금 벅찬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직 끌어들일 사람이 몇 명 더 있지만 어느 세월에 그들을 찾아낼지 알 수 없고, 또 그들이 다른 문파에 가입이 되어 있으면 천연회는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나 지금 현수 님의 천연회를 보면 가능성이 조금 희박합니다. 아무리 천연회의 사람들이 상식을 벗어났다고 해도 수적 공세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무림의 문파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괜찮으시면 그들을 위해 한 번쯤 죽어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제는 유저들만 강해서는 한 지역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지역의 민심을 얻어야 하고 또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현수는 야의 말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민심? 명분?"

-그렇습니다. 민심이나 명분을 잃으면 한 지역에서 세금이나 기타 등등을 징수하기도 어렵고 또한 반란이 일어날 것이기에 한 지역을 차지했다고 해도 유지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쉬운 말로 해 줘!"

이해는 되는데 조금 어려웠다. 현수는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부탁했다.

-천연회는 강가의 많은 돌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문파에 빌붙어야 합니다. 먼저 제일 쉬운 방법으로 가까이 있는 당가를 끌어들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가끔 수진 씨와 밖에 나가 차도 한 잔 하고 그러십시오.

"그 방법밖에 없어?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의 감정을 그렇게 이용하면 못 써!"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아닙니까! 그러다 진짜 수진 씨와 눈 맞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일석이조!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겁니다.

"그만 해. 내가 알아서 알게. 남궁세가와 친분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또한 현수 님께서 어느 정도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 남궁세가가 어려울 때 도와주겠다는 기색을 살짝 내비치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리고 아이템들 좀 알아봐!"

-알겠습니다.

현수는 다시 접속을 하고는 객점의 문 앞에 섰다.

"문파 가입 원해요!"

"직장인 연합 문파에서 서른 살 이상의 직장이 있으신 분을 문파 가입받습니다."

유저들은 문파에 가입하게 위해 또는 문파원을 구하기 위해 외치고 있었다.

"저기!"

현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 말씀입니까?"

"네! 혹시 문파에 가입하지 않을래요?"

"저는 이미 문파에 가입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어떤 문파예요?"

대답은 하지 않았다. 현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객잔의 주위를 벗어났다.

그는 남궁세가로 가면서 야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독불장군은 없단 말이지? 과연 천연회의 힘만으로 한 성을 먹을 수 있을까? 힘들겠지.'

게임 센스를 따지자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천연회였지만 그래도 힘들 것 같았다.

'황궁을 끌어들이면 간단하지만 그렇게 되면 퀘스트 실패로 내가 황궁에서 얻었던 것을 모두 잃게 된다.'

"오늘도 헛방이야? 분명히 말했잖아. 가입할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

남궁세가로 가는 길의 골목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미안합니다. 문파 가입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요."

"야! 그게 말이 돼? 넌 찍은 사람들 모두 문파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은 잘도 데리고 오는데 넌 도대체 어떻게 된 년이야?"

듣기에도 민망한 말이었다. 사내는 괘의치 않은 듯 계속해서 말로 몰아붙였다.

"죄송해요."

여자는 눈물을 글썽였다.

현수는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몰라도, 문파원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고 해서 저렇게 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못 데리고 왔으니 은전 20냥이다."

"하지만… 악!"

"시팔! 네가 돈내기 싫으면 문파원을 데리고 와! 그럼 너도 돈을 벌잖아."

현수는 직감했다. 문파원에게 가입비로 돈을 요구하여 받아 낸 다음, 문파원이 된 사람이 또 다른 문파원을 데리고 오면 또 가입비를 요구하는, 피라미드 영업 형태의 문파라는 것을!

"듣고 있으니 너무하네."

"뭐야?"

현수는 보다 못해 참견을 하게 되었다. 베타 시절에는 생각도 못 할 일이었지만 현수는 당연한 듯 그에게 다가갔다.

"어떤 문파인데 가입비를 받고 문파에 넣어?"

"당신은……?"

그녀는 현수를 보고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시팔! 넌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야? 그냥 가던 길 가라, 시팔아."

"거참! 입 더럽게 굴리네."

현수는 말에 앞서 주먹부터 날렸다.

"다시 말해 봐."

"이 개새끼가? 억!"

현수는 사정없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고통을 호소했으나 현수는 봐줄 생각이 없는지 황궁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천마회의 이름으로 척살령을 내릴 거야."

"천마회? 거기 방각이가 대장으로 있는 곳 아니야?"

천마회라는 이름은 천의 어디에서나 통했다. 하지만 간혹 예외라는 것이 존재했다.

"맹주님의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구나. 시팔 놈아, 조금만 기다려라. 애들 데려온다."

사내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여성 유저는 현수를 보고 몸을 떨었다. 자신이 조금 전에 현수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마회가 그런 문파면 그곳에 들어가지 마세요. 작아도 정말 서로를 아껴 주는 문파도 많이 있어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전……."

"혹시 사파세요? 이름이 뭐죠?"

"네, 진희엄마에요."

"사파 쪽에 아는 문파가 있는데 제가 이야기해 드릴까요? 천마회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사파에서는 알아주는 문파일 거예요."

진희엄마라는 아이디를 가진 여성 유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구미호를 만나고 나서부터 자신이 조금 변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게 싫은 건 아니었다.

"이제까지 얼마나 빼앗겼어요?"

"아니에요. 그냥 전……."

"괜찮아요. 얼마에요?"

진희엄마는 그에게 이제까지 은전 50냥을 빼앗겼다. 문파에서 사냥터를 제공해 주니 그래도 손해 보지는 않았지만 남는 것도 없었다.

"알았어요. 저기에서 오네요."

진희엄마는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겁을 먹었다. 현수의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 베타 시절에 자신이 교육을 시킨 유저였다.

"누구야? 누가 우리 애를 이러… 헉!"

"너였어? 네가 애들을 시켜 가입비로 돈을 갈취하고 있었어?"

"현수야……."

"오랜만이지? 넌 어째 베타 시절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냐?"

사내는 현수를 보자 꼬리 내린 개와 같았다. 현수라는 이름은 베타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넘지 못할 벽으로 인식되어있었다.

"아톰! 나 저놈에게 금전 300냥이나 빼앗겼어. 한 번이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또 달라고 하네? 아직 문파에도 넣어 주지 않으면서 말이야."

아톰은 현수에게 맞은 사내를 보았다. 하지만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내가 현수에게 받은 것이라고는 주먹 세례뿐이었다.

진희엄마의 눈이 커졌다.

"내가 언제 너에게 돈을 받았어, 시팔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군. 수가 많으니 자신이 있나 보네?"

담담하게 말하는 현수를 보고 이를 무는 아톰이었다.

"아톰, 나 급하거든? 줄래, 말래? 아니면 내가 지금 방각이를 찾아갈까?"

'시팔! 건드려도 어떻게 이딴 놈을 건드리냐. 방각이가 알면 인생 종 치는데 어떻게 하지? 가만, 현수가 랭킹 안에 들었다는 말은 없었잖아.'

아톰은 현수를 보았다. 웃으며 자신을 보는 현수의 눈은 마치 자신의 생각을 모두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시팔 년아! 네가 설명 좀 해 줘! 내가 저놈한테 돈 안 받았다는 것 알고 있잖아. 크억!"

"입이 더럽네."

욕을 하며 말하는 사내의 팔이 잘려서 날아갔다. 아톰은 놀라서 현수를 보았다.

검을 뽑는 것도 보지 못했다. 아니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도 문파원의 팔이 날아간 것을 보니 베타 시절의 악몽이 떠올랐다.

"방각이를 불러올래 아니면 내 돈 금전 300냥하고 이분의 금전 100냥을 줄래?"

"씨발! 저년에게… 크아악!"

또 하나의 팔이 날아갔다. 아톰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눈 크게 뜨고 보아도 현수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에 누가 있나 둘러보아도 문파원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열을 셀게. 그 안에 결정해."

현수는 열을 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을 다 세어도 원하는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크아아아악!"

"죽고 싶나 보구나, 아톰!"

이번에는 사내의 두 다리가 날아가 버렸다. 진희엄마는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지만 현수가 말을 가로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톰, 다시 열을 센다. 만일 내 돈 300냥과 진희엄마의 돈 100냥이 나오지 않으면 너는 물론 방각이에게까지 피해가 갈 것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어라."

아톰의 생각은 길게 가지 않았다. 현수라는 인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베타 시절에 그렇게 맞아 가며 교육을 받아 강해질 수 있었던 아톰이었다.

"여기! 현수야, 부탁이다. 방각이에게는 알리지 마라."

"또 순진한 애들 등쳐 먹으려고?"

아톰은 말이 없었다. 자그마치 금전 400냥이었다. 본전을 찾으려면 어느 정도는 계속해야 했다. 현수는 그 생각을 읽었는지 아톰을 보았다.

"본전을 찾을 때까지는 눈감아 주지. 생각 잘 해라. 계속하면 결국 방각이에게 들킨다. 너 알지? 방각이 눈 돌아가면 앞뒤 안 가리는 거!"

"알겠다. 본전만 뽑고 그만둘게."

현수는 아톰에게서 받은 금전 400냥 중 금전 100냥을 진희엄마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톰! 저놈 있잖아, 교육 좀 시켜야겠다. 아니면 문파에서 파문을 하든지. 욕하고 소리 크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역발산에게 안 걸린 것이 다행이지. 그렇지?"

현수는 진희엄마를 보았다.

"참! 이분도 파문시켜라. 내가 솔미 누나에게 데리고 갈 테니 혹여 다른 생각 하지 마라. 만사귀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말이야."

현수는 몸을 돌렸다. 진희엄마는 눈치를 보다 현수를 따라갔다.

"시팔! 사람을 좀 보고 골라! 재미가 좋았는데. 젠장!"

그 후 현수는 솔미에게 전서구를 보낸 후 진희엄마에게 악령과 솔미가 만든 문파에 추천서를 써 주었다.

진희엄마는 추천서에 적혀 있는 문파를 보고 놀랐다. 천마회보다는 작은 곳이지만 그래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문파였다.

"정말 여기에 들어갈 수 있어요?"

"잘은 모르겠는데 그래도 들고 가 보세요. 다 저랑 친한 사람들이라 문파에 넣어 줄 거예요. 그리고 들어가서 어떻게 할지는 다 진희엄마 님의 몫이구요."

"감사합니다."

"참! 아까 준 금전 100냥은, 혹시 그곳에서도 문파 가입비를 받으면 그것으로 주세요."

현수는 이 말을 남기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진희엄마는 현수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진희엄마와 헤어진 현수는 곧바로 남궁세가로 향했다. 남궁세가라고 적혀 있는 편액을 보자 그 웅장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현수가 남궁세가로 다가서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자들이 막았다.

"우리 세가에는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아레스라는 분을 만나 뵙기 위해 왔습니다."

남궁세가의 후기지수 중에 가장 뛰어난 그녀였다. 다만 남궁이라는 성을 사용하지 않아 그녀는 차기 가주의 후보에서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아레스를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레스 님께서는 지금 경험차 중원을 유람 중이십니다."

알아보지도 않고 온 자신의 실수라 생각했다.

"그래요? 할 수 없지요. 그럼 오늘 하루만 쉴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에 기별이라도 한번 넣어 주십시오."

문지기는 현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한번 훑어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에 나온 그는 현수를 인도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한 사내가 현수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남궁현입니다."

창궁검 남궁현!

남궁세가의 이대 검법 중 창궁무애검법을 대성한 그는 무림에서 창궁검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또한 그는 남궁세가의 현 가주였다.

"안녕하십니까? 전 사신 낭객 이현수라고 합니다."

사신 낭객이란 말에 그는 인상이 조금 변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죽음을 찾아다니는 미친 사람이라고 무림에 소문이 나 있는 현수를 본 남궁현은, 그가 세가에서 죽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하더니 또 나타났군.'

"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 아레스와……."

"시황제의 무덤에서 약간의 도움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일로 알게 되었습니다."

믿지 못할 말이었다. 남궁현이 알고 있는 아레스는 후기지수들 중에서 열 번째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그런 그녀가 고작 시황제의 요괴들에게 위협을 받았다니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남궁현은 현수가 이름을 들먹여 무엇인가를 얻어 가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궁현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무림이라는 곳이 넓고도 좁아, 신비 이객 중 1명인 사신 낭객을 소홀이 하면 그 소문이 무섭게 퍼져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참! 내 정신 좀 보게. 안으로 드시지요."

남궁현은 현수를 빈청으로 안내했다. 일단 들어온 손님을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남궁현과 현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궁에서 생활한 현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알려진 정보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더 많았다.

"하하!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 기행을 하면서 돌아다니신 거군요."

남궁현은 현수가 왜 죽음을 찾아다니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현수는 죽음에서 작은 기연을 얻을 수 있다는 어느 노인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했다고만 했다.

무림인들이 기연을 목숨 걸고 찾아다니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래서 기연은 얻었습니까?"

"약간의 기연이 있었습니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한 줄기 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 이거 축하해야 할 일이군요. 저도 한번 해 보아야겠습니다. 하하하하!"

현수는 자신은 그게 유저니까 가능하지만, NPC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칫 실수하면 진짜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일이지요."

"그렇군요. 목숨을 잃으면 이제껏 얻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테니까요."

이번 에피소드 2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죽음에 대한 페널티였다. 죽음에 대한 페널티에 유저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남궁현은 죽음의 끝자락에서 기연을 얻었다는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무공을 한번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죽음의 경계에서 얻은 깨달음이 궁금하여 염치없이 부탁을 드립니다."

"왜 아니 되겠습니까? 다만 저의 무공이 가주님의 눈을 어지럽힐까 두렵습니다."

현수 역시 야의 말대로 무엇인가 보여 주어야 했기에,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현수와 남궁현은 세가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많은 세가 사람들이 무공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대단합니다. 여기까지 세가의 기개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가주!"

인사 치례의 말이긴 했지만 남궁현은 기분이 좋았다.

"그만 멈추어라!"

사자후와 같은 외침에 세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하고 있던 동작을 멈추고 정렬을 했다.

"가주님을 뵈옵니다."

"오늘 너희들의 안목을 높이기 위해 귀한 분을 초청했다. 보고 많은 것을 느끼기 바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현의 속셈은 아레스와 안면이 있는 현수에게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죽음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보았다는 건 웃기는 소리다.

그저 아레스의 이름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빌붙을 생각으로 왔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럼!"

현수는 연무장의 중앙에서 벗어나 한쪽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보았다.

"가주님, 이 나무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현을 본 현수는 검에 손을 얹었다.

휘리리잉-.

조용한 연무장에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은 현수의 감각을 모두 깨우고 있었다. 순간!

찰깍!

검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모두에게 들렸다. 하나 현수의 검은 그대로 검갑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무 역시 그대로였다.

'그럼 그렇지. 죽음 직전에 얻은 한 줄기 빛? 웃기는군.'

휘리리리- 휘링!

그러나 또 한 번의 바람이 불다가 지나가자 나무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대각선으로 정확하게 반으로 갈린 나무는 땅에 쓰러졌다.

"헉! 언제……?"

모두의 눈에는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 중 그 누구도 현수가 검갑에서 검을 뽑아내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주인 남궁현 역시 검을 뽑는 것을 보지 못했다.

믿지 못할 만큼 빠른 쾌검이었다.

'어떻게 한 번의 소리만 들렸지? 그럼 혹시 한 줄기의 빛이라는 것이…….'

소리보다 빠른 쾌검! 그것만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세가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내 평생 이런 쾌검은 처음 봅니다. 이 대인의 무공을 보니 저 또한 이 대인이 한 수행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입니다.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가주님!"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합니다. 내심 우리 아레스가 무림으로 나가 사고나 치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기인이신 사신 낭객 님과의 친분도 가지다니.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가주님. 그저 허명일 뿐이지요."

그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현수는 다음 날 남궁세가를 떠났다. 아레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상투적인 말을 남기고.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현은 그 뒤로 3달이라는 시간 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현수는 앞으로 자신이 아레스와 남궁세가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힘을 얻느냐 못 얻느냐가 판가름 날 것이라 생각했다.

"엇?"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천연회에서 보낸 전서구였다.

"전서구 확인!"

만사귀가 사고를 쳤다. 현재 만사귀는 모산파를 피해 도주 중이며 이화 씨 역시 함께 도중이다. 모임 장소는 강소성 금릉의 천화 객잔.

간단하게 적혀 있는 내용이었지만 현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군. 천화 객잔이라……."

현수는 금릉의 천화 객잔으로 향했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라 먼저 도착한 현수는 다른 이들을 기다릴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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