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연회 대 하오밀문 (24/57)

천연회 대 하오밀문

화화공자는 혼자 사냥터에서 사냥을 했다. 죽고 난 후에 사라져 버린 무공이나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지금 자신의 등급에 맞는 아이템을 구하기에는 조금 힘이 들었다.

아무리 베타 시절에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과 게임의 센스를 가졌다고는 하나, 지금 레벨이 60대인 그가 무공 없이 60레벨 대의 사냥터에서 사냥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자연적으로 무공이 없이 사냥을 할 수 있는 몬스터를 찾으려다 보니 고작 40레벨의 몬스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60레벨이 40레벨의 몬스터를 잡아 얻는 경험치는 경험치라고 할 수도 없었다.

또한 레벨 페널티가 적용이 되는 천에서는, 5레벨 차이 이하의 몬스터를 잡을 경우 아이템이나 동전의 드롭율이 뚝 떨어졌다.

"미치겠네."

화화공자는 사냥을 하면서도 답답함을 느꼈다. 경험치는 둘째 치고 아이템이 문제였다.

무공서야 지금 시중에 하나 둘 나오고 있으니 이류의 무공서라도 사서 배우고 익히면 그만이다. 또한 자신이 익히고 있는 이류의 무공서도 있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아이템은 달랐다.

바뀐 옵션 적용으로 인해 아이템이 잘 나오지 않았고 또 나온 아이템의 가격은 100만 원이 넘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아이템들이 지금 화화공자에게 필요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사냥을 해도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템 사이트를 뒤지거나, 각 성에서 거래되고 있는 아이템을 알아보는 것이 화화공자의 생활이 되어 버렸다.

"휴!"

한숨을 몰아쉬며, 화화공자는 팔색조를 사냥했다.

"다른 건 안 바란다. 그냥 공격력 플러스 10짜리의 아이템이나 하나 주라."

사냥을 하는 화화공자는 지금 고옵션에 해당하는 플러스 10짜리의 아이템을 생각하며 사냥을 하고 있었다.

순간 주위의 날씨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 씨!"

화화공자는 왜 날씨가 변하는지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한번 이런 경험이 있었다. 바로 200대 보스 몬스터인 주작이 등장할 때 이런 날씨였다.

화화공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주작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더욱이 지금 죽으면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왜 지금 나타나는데, 이 빌어먹을 놈아!"

하늘을 사뿐히 날아와 화화공자의 앞을 막은 주작은 화화공자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 넌 왜 나의 아이들을 죽이지?"

"……!"

"예전의 교훈이 부족했나 보구나?"

"젠장! 그래, 죽여라, 이 빌어먹을 새 대가리야."

화화공자는 주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단지 생각뿐이었다. 주작의 무형의 기운이 화화공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번엔 왜 혼자지?"

"몰라. 그냥 죽여 줘. 안 그래도 갈 길이 먼 사람인데 너랑 말싸움하기 싫어."

화화공자는 그저 빨리 죽여 주기를 바랐다. 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주작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괜한 말싸움으로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그냥 빨리 죽는 쪽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왜 내가 널 죽여야 하는데?"

"몰라, 빨리 죽… 뭐? 그럼 안 죽일 거야?"

"생각해 보고."

"놀리지 말고 그냥 죽여. 어차피 무공 잃고 아이템 잃고 가진 건 개털이니까."

주작은 화화공자에게 흥미를 느꼈는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화화공자는 주작의 말을 듣고 있자니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였다.

"나랑 계약하지 않겠나? 그럼 살려 줄 수도 있는데."

"계약?"

"그래, 솔직히 이제 애들 죽이는 놈 찾아 다니기도 귀찮고 해서 말이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화화공자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베타 시절에도 단지 힘만으로 랭커 10위 안에 든 것은 아니었다.

"팔색조를 비롯해서 날아다니는 새 대가리들을 보호하라는 조건인가?"

"크크! 네놈은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한 모양이군."

주작의 날갯짓에 화화공자는 날아가 나무에 부딪쳤다.

"윽!"

"어떤가?"

"나에게 뭘 해 줄 수 있지?"

"넌 그런 조건을 나에게 걸 수 없다. 나 대신 애들을 보살필 것인가 아닌가만 결정하면 된다."

화화공자는 일어나서 가슴을 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솔직히 살고 싶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힘이 없어서 그러지 못해. 그냥 한 번에 여기를 노려서 날 죽여."

"힘이 없다고? 무공을 잃었단 말이냐?"

"그래. 병신이 되어 버린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 다른 놈으로 찾아봐."

화화공자는 한 걸음 한 걸음 주작을 향해 걸어갔다.

미련을 버리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무공을 잃었다? 그럼 무공을 다시 배우면 지킬 수 있단 말이지?"

"솔직히 무공을 배우더라도 지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난 할 일이 많아. 여기서 너의 아이들을 보살펴 주지는 못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주작은 화화공자를 보았다.

"그래? 그럼 죽어."

주작이 움직였다. 화화공자는 주작의 움직임을 본 것과 동시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작은 쓰러진 화화공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최소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놈인 것만은 확실하니까."

주작은 화화공자를 발로 움켜잡고는 날아올랐다.

"그런데 이놈이 휘령의 후계자보다 좀 나을까?"

적룡과 사신수는 다음 구미호의 어머니가 될 미랑이 수면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휘령의 제자가 세상에 등장한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적룡을 제외한 사신수들 역시 자신들의 제자를 찾기 위해 세상에 나온 상태였다.

이들은 처음 가상현실 천을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에게서 애초에 수명이라는 것을 받았다. 적룡은 수명이 없이 천에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사신수와 구미호는 그렇지 못했다.

사신수들 역시 이제 그 수명으로 인해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주작은 그 대상으로 화화공자를 선택했다.

주작은 처음에 천연회의 인물들을 만났을 때부터 그들 중 하나를 제자로 삼겠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기에 화화공자를 찾았던 것이다.

화화공자를 움켜쥔 주작은 자신의 레어로 방향을 잡았다.

* * *

천연회의 사람들은 모두 용화 객잔이라는 곳에 모여 있었다.

"어찌 된 거야?"

"몰라. 행방불명이다."

천연회의 사람들은 사라진 화화공자를 찾았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접속은 하고 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에피소드 2의 시작으로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해. 일단 화화는 빼고 우리끼리 하오밀문을 치자."

만사귀는 정보 수집을 위해 하오밀문을 장악하는 것이 필수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오밀문을 장악하기 위해 천연회의 식구들을 모았지만 화화공자가 오지 않았다. 벌써 연락한 지 3일이 지났지만 오지 않자 더 이상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 모인 이들만으로 하오밀문을 치기로 결정을 했다.

"그놈, 혹시 죽어서 일부러 우리를 피하는 것 아닐까?"

역발산은 화화공자와 자주 다퉜지만, 그래서 이들 중에서 화화공자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왜? 무공이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가 구박할까 봐?"

"아니. 그놈이 자존심은 또 엄청 강한 놈이거든. 그러니까 어느 정도 다시 무공을 배워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역발산, 그놈이 그런 생각을 했다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연락을 했을 거야. 알잖아. 현수라면 다른 무공서를 더욱 빨리 구해 줄 수도 있어. 또 이번 황궁에서의 일도 있고. 느낌에 뭔가 일이 생긴 것 같다."

"일?"

카오스는 천마회의 방각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방각이가 나 보고 천마회에 들어오래. 대우는 당주 급으로 해 주고 1달에 금전 500냥과 아이템 우선권을 준다고 말이야."

만사귀가 우려했던 일이었다.

건은 옆에서 듣고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방각뿐만이 아니지. 무기 녀석도 벌써 손을 쓰기 시작했다."

"무기가 너에게 천지회에 들어오래?"

"그래. 황궁에서 일어난 일이 동영상으로 판매되고 나서부터 부쩍 연락이 온다."

천마회의 방각과 천지회의 혁무기는 황궁의 난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고 소리 없이 처리할 인물들을 생각했다. 그게 천연회라는 결론을 낸 그들은 이들에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만사귀가 모두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문제부터 처리하려고 했다.

"야, 그런 걸 왜 묻냐? 내가 고작 1달에 금전 500냥에 움직일 것 같으냐? 흑사파에서 들어오는 돈보다 적은데."

"그렇지. 그리고 솔직히 현수가 알면 게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놈이 동영상에서 보여 준 무공 봤잖아. 겁난다. 지금은 많이 순화가 되어 그렇지만, 만일 이번 일로 빠져나가면 그놈이 미쳐 날뛸지도 몰라. 난 겁나서 안 가."

"후후! 그러고 보니 현수가 겁나긴 겁나나 보다, 너희들?"

건은 웃으며 말했지만 정작 현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자신이기에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야, 건이 넌 현수랑 싸워서 유일하게 안 졌으니 모르겠지만, 현수에게 한번 당한 놈들은 치를 떤다."

역발산은 몸으로 보여 주듯 큰 덩치를 부르르 떨었다.

"화화 역시 현수를 잘 알고 있는 놈인데……."

역발산은 화화공자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다른 일이 생겼겠지."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 먼저 하오밀문을 장악하고, 하오밀문을 통해 화화를 찾으면 되겠지. 역발산, 준비는 됐지?"

만사귀는 더 이상 화화의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하오밀문의 이야기로 접어들었다.

"어, 흑사파 애들을 시켜서 준비해 놓았어."

"좋아, 건이가 제일 많이 움직여야 하니까 우리는 건이를 보호하는 데 집중하며 하오밀문을 상대한다."

다다다다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이 있는 용화 객잔으로 달려왔다.

"형님!"

흑사파의 인물이었다.

"왜? 알아봤냐?"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애들이 형님이 있는 곳을 불었습니다."

역발산은 그의 말을 듣자 얼굴이 붉어졌다.

만사귀는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 당황하고 있었다.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나간 놈들이 전부 하오밀문의 각 분파에다 형님이 있는 곳을 불었습니다."

"만사귀, 지금 대책 없지?"

만사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비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수금인은 지금 자신들의 계획이 들킨 것보다 수입원의 하나인 흑사파를 하오밀문에 빼앗겼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아, 1달에 고정적으로 금전 1만 냥이 들어오는데, 조금 아깝다."

건은 그래도 가진 무공에 자신이 있어서인지 조금 여유가 있는 듯했다.

"어떻게 하긴, 튀어야지. 역발산, 그놈은 네가 보호해라. 목숨 걸고 온 놈이니 그래도 신의는 있는 녀석 같다."

건은 말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건이 나가자 수아가 옆에서 조용히 따라 일어났다.

"오빠들은 빨리 자리를 피하세요. 건 오빠가 잠시 막고 있을 동안요."

"수아야! 네가 아무리 건을 따라다니며 배웠다고 해도 아직은 우리에겐 안 돼. 그러니 넌 쓸데없이 건이를 도운다고 옆에 서지 말고 자리를 피해."

만사귀가 수아의 생각을 읽었는지 수아에게 말했다.

"맞다. 우리가 레벨이 조금 낮고 무공이 별 볼일 없다고는 해도 그리 약하지는 않다. 또 네가 건이 옆에 있으면 건이가 움직이는 데 불편하다. 넌 역발산과 함께 여기서 빠져나가 천연장으로 돌아가 있어."

필살검이 말하고 나서야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작전을 세워야지. 일단 역발산은 저놈과 함께 수아를 보호하며 천연장으로 돌아가."

"그렇게 하지."

"그리고 이화는 나와 함께 가고, 나머지는 각개격파로 이곳을 뚫고 나간다. 모이는 장소는 천연장! 시간은 3일 뒤 정오로 하자. 천연장에서 모두 모이면 그때 다시 한 번 하오밀문을 친다."

만사귀의 말이 끝나자 모두 빠르게 움직였다.

만사귀는 밖으로 나와 건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 주고는 객잔을 벗어났다.

건은 수아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윙크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오빠, 조심해."

이 장면을 본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건은 여유가 있어 보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인정하기는 싫지만 솔직히 저놈과 현수는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일단 우리는 자리를 떠나자. 괜히 있어 봐야 거치적거린다."

모두가 떠나고, 객잔 앞에는 건이 홀로 남아 하오밀문의 문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군."

건의 목적은 시간을 끄는 데 있었다. 하오밀문이 가진 정보력이라면 모두 무사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유를 가지게 할 수 있었다.

수많은 무인들이 용화 객잔 앞으로 몰려왔다.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에 객잔 안에서 나오기를 꺼려했다.

"후후, 아무리 철부지라고는 하지만, 감히 우리 하오밀문을 상대로 검을 뽑을 생각을 하다니."

건은 허리에서 흑랑도를 빼 들었다.

"한계를 느껴 보는 것도 괜찮겠지. 부탁한다."

건은 흑랑도에 말하고는 하오밀문의 문도들을 향해 겨누었다.

"난 비객 혈충소다."

비객 혈충소는 하오밀문에서 비천당을 맡고 있는 당주였다.

"난 건!"

성의 없이 말하는 건을 보자 혈충소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누가 사주했나?"

"그런 건 알 것 없잖아?"

"신흥 문파가 겁나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어리석을 줄이야."

에피소드 2를 시작하고 나서 창설된 문파들은 창설한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하오밀문 역시 이들 문파 모두를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사도의 천마회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잡아서 물어보는 게 더 빠르겠지."

혈충소는 손짓으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건을 향해 달려드는 무인들의 무공 수위는 그리 높은 것 같지 않았다.

'고작 40레벨 대 정도군.'

건의 레벨이 현재 80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파앗!

허리를 향해 공격해 오는 것을 시작으로, 목과 다리를 함께 공격하는 하오밀문의 무사들이었다.

"흥!"

건은 빠르게 자리를 이동하며 그들의 공세를 피했다. 뒤로 물러났기에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을 본 혈충소의 입가에는 조소가 생겼다. 하지만 그 조소는 금방 변했다.

건은 객점의 계단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공격해 오는 그들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뒤로 피하고는 흑랑도를 휘둘렀다.

"커억!"

3명의 하오밀문 무사들이 건의 검에 상처를 입고 잠시 주춤할 때 건의 검에서 빛이 쏘아져 나갔다.

"승천도법, 파멸겁!"

쿠아아앙!

그들은 파멸겁에 의해 날아가 용화 객잔의 문을 박살 내고 튕겨져 나갔다. 건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돌려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공격했다.

"승천도법, 낙뢰도!"

파아지지직!

건은 떨어진 낙뢰에 의해 흐트러진 그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크악!"

"잡아라!"

건은 낙뢰도에 충격을 받은 2명의 무사들을 쓰러트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혈충소는 순간 일어난 일에 당황하여 명을 내렸지만, 이미 건은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고 있었다.

하오밀문의 무사들은 건의 뒤를 쫓아 이동했다.

밖이 조용해졌다고 느꼈는지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건은 쫓아오는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역시 다 조금씩은 개인차가 있단 말이지."

건은 앞서서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승천도법, 출룡!"

흑랑도에서 또 한 번의 빛줄기가 쏟아져 쫓아오는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건은 또다시 뒤를 보지 않고 달아났다.

"이 쥐새끼 같은 놈!"

혈충소는 건이 하는 짓을 보고 화가 났는지, 더욱 자신의 수하를 몰아붙였다.

"잡아라! 놈을 놓칠 시에는 너희들이 대신해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혈충소의 외침에 수하들은 더욱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코 천라지망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혈충소는 하오밀문에서 동원한 천라지망을 믿었다. 그리고 천연회의 사람들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란의 분노!"

역발산 역시 천연장으로 향하고 나서 얼마 가지 못해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만났다.

"수지천율, 경천!"

수아는 광란의 분노로 인해 역발산에게 달려드는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빠르게 처리하며 전진했다.

역발산의 성격으로 그들을 피하고 돌아서서 천연장으로 가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흑사파의 수하 역시 역발산의 주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오빠, 너무 많아. 견딜 수 있어?"

"걱정 마라. 난 역발산이다. 천하제일의 신력을 가진 역발산! 금강부동심결!"

레벨 60대의 역발산이 금강부동심결을 시전했을 때, 레벨 40대의 하오밀문 무사들이 역발산에게 입히는 데미지는 실로 미비했다.

수아는 그와 같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역발산을 향해 공격하는 하오밀문 무사들의 수를 줄여 나갔다.

"수지천율, 은하유성탄!"

"헉!"

역발산은 수아의 무공에 놀라 급히 몸을 뒤로 뺐다.

수아는 역발산을 공격하는 무사들을 향해 공격했지만, 은하유성탄이라는 무공은 주위에 있는 것을 모두 날려 버릴 만큼의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은하유성탄은 수아가 가진 무공인 수지천율의 최고 무공이기도 했다.

"수아야, 내가 아니고 저들이다."

수아는 피하는 역발산을 보고 놀라 당황했지만 이내 검을 고쳐 잡고는 다시 하오밀문 무사들의 수를 줄여 나갔다.

"미안해. 마음이 급해서 그런가 봐."

평상심을 찾은 수아를 본 역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을 따라다니더니 녀석도 괴물이 되어 가고 있구나.'

누구나 당황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회복하는 것을 보고, 역발산은 수아를 다시 평가했다.

수아의 레벨 역시 70대이기에 40대의 무사들을 잡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 빠르게 수를 줄여 나갔다.

역발산은 수아가 빠르게 수를 줄여 나가는 것을 보자, 파티를 걸었다.

-역발산 님의 '못 먹어도 경험치' 파티에 동참하시겠습니까?

"네!"

파티를 맺은 수아는 웃음이 나왔다.

"자자! 수아야, 오늘 한번 죽어 보자. 광란의 분노!"

역발산은 비록 적은 경험치를 주긴 하지만 한 놈도 놓치지 않고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끌어당겼다.

"크악!"

수아 역시 역발산이 힘들까 봐 빠르게 잡아냈기에 아주 적은 경험치라고 해도 조금씩 쌓여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아는 역발산과 함께 사냥을 하면 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몬스터들이 몰려드니 이래저래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고, 그냥 곁에 서서 붙는 몬스터만 잡으면 되어, 다음에는 역발산과 함께 사냥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세 사람은 몰려드는 하오밀문의 무사들을 모두 쓰러뜨린 후 잠시 쉬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그래. 이 정도는 애들 장난 수준이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그놈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나중에 너에게 흑사파를 맡기겠다."

"헉! 저, 정말 이십니까?"

"왜? 싫어?"

"아, 아닙니다. 이 망치가 형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망치는 감격에 몸을 떨었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지."

수아 역시 쉬는 동안 기력 회복제를 사용해 기력을 채웠다.

"오빠, 다른 오빠들은 괜찮을까?"

"신경 쓰지 마라. 하오밀문의 무사들이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들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다만 가진 무공이 약한 만사귀와 함께 간 이화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만사귀라면 충분히 몸을 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수아는 건이 걱정되었다.

"얼굴을 보니 건을 걱정하나 본데, 쓸데없는 짓이다. 너도 함께 다녀 보아서 알겠지만 건을 쓰러트릴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면 현수 정도겠지."

수아 역시 현수에 대해서 건에게 많이 들었다.

"정말 현수 오빠가 그렇게 강해?"

"대답하면 입 아프지."

현수가 건보다 더 강하다는 소리에 입술을 조금 내민 수아를 본 역발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찬가지다. 현수를 쓰러트릴 사람은 건밖에 없다. 그만큼 두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상대는 다수잖아."

"다수도 다수 나름이다. 고작 이런 놈들에게 당할 건이라면 그는 일황 건이 아니다."

역발산의 입에서 남자 친구의 자랑을 듣자 수아는 기분이 좋아졌다.

"가자. 이러고 있으면 저들이 포위망을 더욱 좁혀 올 거다. 아무리 허접스러운 놈들이라고 해도 수가 워낙 많은 문파라서 끝내는 우리가 지칠 거다."

역발산이 움직이자 수아와 망치가 뒤따라 움직였다.

* * *

수천 명을 동원한 하오밀문의 천라지망이 뚫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하오밀문의 무영신투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고수가 부족한 문파라고 하지만, 수십만의 정식 무인과 수백만의 문도로 이루어진 문파가 바로 자신의 하오밀문이었다. 그런데 고작 10명을 아직 잡지 못하고 있어,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었다.

"허, 아무리 신흥 방파들이 많이 생겨났고 또한 많은 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하오밀문에서 고작 10명을 아직까지 잡지 못하고 있다고? 그리고 몇 명은 벌써 포위망을 빠져나갔다고?"

무영신투는 답답함에 소리를 쳐 봤지만, 눈앞에서 고개를 숙인 이들은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않고 침묵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말을 해 보라."

"저기, 우리의 일반 고수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보고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어검술을 쓰는 고수까지 있다고 합니다."

"헛!"

변명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웃기지도 않았다.

"그래, 어검술을 쓰는 놈이 있어서 잡지 못하고 있단 말이지?"

"그것이 그러니까……."

"이 식충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어검술이 누구 집 개 이름이야?"

수십 년을 함께해 온 동료이자 또한 절친한 친구이며 자신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을 수하이기도 한 혈충소를 보자, 무영신투는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문주님!"

"그래, 사실이라고 치자. 그들을 잡을 수 있겠냐, 없겠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소재는 이미 파악되어 있습니다. 전에 우리에게 무공 비급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산의 무공 비급 또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1명이 모산의 비술을 사용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 많은 부적이 시중에 나돌아다고 있는데, 그 역시 연관이 있다고 비영각에서 판단했습니다."

무영신투는 생각에 잠겼다.

'모산의 부적을 쓰는 놈이라…….'

무공 비급 탈취 사건이 일어난 후 무림에서 제일 피해를 많이 본 사람이 바로 무영신투였다. 누가 있어 각 파의 절기를 빼돌릴 실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에 비급을 도난당한 문파의 수장들이 무영신투를 찾아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후후! 그놈이란 말이지. 나에게 누명을 씌운 놈과 연관이 되었단 뜻이렸다? 좋아. 넌 모산의 도사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라."

"예!"

혈충소가 나가자 무영신투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무림에 풍운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풍운이……."

* * *

현수는 황궁 생활에 조금씩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피소드 2가 시작한 지 벌써 1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까지 무림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제에게 여러 번 무림으로 나가 달아난 1황자와 대학사의 행적을 좇아야 한다고 주청했지만 황제는 현수를 무림으로 보내지 않았다.

"휴!"

"나리, 우 시랑님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어라."

현수가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고 또한 이번 역모를 해결한 장본인이라는 것이 황궁의 주요 관리 대신들에게 알려지자, 현수와 연을 맺기 위해 하루에도 많은 대신들이 현수를 방문했다.

무엇보다 황제가 은연중에 현수를 영취 군주의 부마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역시 많은 대신들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권력의 중심에 선 현수는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다.

우 시랑은 현수를 보자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관리의 서열로 따지면 시랑이라는 자리는 정삼품에 해당하는 고위 관료였다. 그것에 비해 현수의 관직은 천군교두라는 품이 없는 관직이었다.

서열이 높은 관직에 있는 우 시랑이 현수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 자체가 권력은 서열이 아닌 힘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었다.

"제가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인께서 저를 찾다니요.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맡은 일이 많아 그러지 못했습니다."

현수는 예의상 한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허허! 실은 저희 안 사람이 이것을……."

우 시랑 이 대인이 현수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하수오였다.

붉은빛을 띤 갈색의 덩이뿌리를 한방에서 하수오라고 하는데, 현수에게 내민 것은 갈색은 없고 오직 붉은빛만 띠고 있었다.

"이건 하수오가 아닙니까? 그것도 족히 100년은 넘어 보입니다."

"허허! 천군교두께서 지밀원의 무사들을 가르치신다는 말을 듣고 주책 맞게 저희 안사람이 이것을 준비했지 뭡니까? 성의니까 받아 주십시오."

대개 현수를 찾아와 뇌물을 주는 이들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그렇다고 현수가 주는 것을 마다할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뇌물을 주는 사람과 주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차별이 없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사실 요즘 피로가 많이 쌓여 알아보고 있던 차였는데……."

"그렇습니까? 하하하!"

미령이 차를 내와 가져다주고 나가려 하자, 현수가 미령을 불렀다.

"미령아."

"네, 나리."

"나의 집무실에 가서 금고 안에 있는 오른쪽, 세 번째 물건을 가지고 오거라."

"네, 알겠습니다."

미령이 나가자 이 대인이 조심스럽게 현수에게 물었다.

"시비에게 금고의 비밀 번호를 가르쳐 주셨습니까? 위험할 텐데."

"아닙니다. 미령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그리고 나를 수발해 주는 시비를 믿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믿겠습니까? 자고로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믿으라고 옛 성인들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현수의 말은 순 거짓이었다. 금고라 해 보았자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크게 값나가는 게 없었다.

현수는 유저이기에 값나가는 것들은 이미 거래 사이트에 올려놓아 처분하거나 아니면 금전으로 바꾸어 오매불망에게 팔고는 했다.

잠시 후 미랑이 상자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나리,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이 대인에게 드려라."

미령은 상자를 이 대인에게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 대인은 상자 안에 있는 것이 궁금한지 현수를 보았지만, 현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자를 열어 본 이 대인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상자 안에는 여자들이 쓰는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값비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족히 금전 몇백 냥은 나갈 장신구였다.

"곧 대부인의 생신이라 들었습니다."

"헛! 이거, 감사합니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인의 생일을 챙겨 주는 현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이 대인께서 조정에 계시니 폐하께서 걱정이 없으실 것입니다."

사실 현수는 관리들에게 줄 선물을 한 가지씩 다 준비하고 있었다. 현수가 받은 뇌물의 등급에 따라 그 선물들이 바뀔 뿐이었다.

참고로 현수가 가장 좋아하는 뇌물의 종류는 세 가지였다. 그 첫째가 바로 하수오 같은 영약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기력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팔아도 상당한 금전을 벌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이템이었다. 시중에 나오는 아이템들의 옵션이 좋지 않기에 좋은 아이템들은 뇌물로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만, 그래도 간혹 현수가 쓸 만한 아이템들이 들어오곤 했다.

마지막은 금전이었다. 금전은 곧 돈이라는 공식에 의해 현수는 이 세 가지를 뇌물로 받는 것을 좋아했다.

"싫지만 않으시다면 제가 대부인의 생신 때 가도 될는지요."

"싫다니요. 오히려 영광이지요. 허허!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볼일을 다 마친 우 시랑은 현수에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현수는 하수오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한 입에 삼켜 버렸다.

-기력이 상승합니다. 심법을 통해 하수오를 완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흡수할 수 있는 하수오의 기력의 양은 80이 남았습니다.

현수는 자신의 상태 창을 보고 기력이 20 올라간 것을 확인했다.

"100년짜리라 기력이 100이 올라가는 건가?"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어떻게 해서든 무림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 왔다.

"빌어먹을 영감, 왜 무림으로 안 보내 주는데!"

현수는 전서구를 통해 하오밀문과 한판 붙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연장 역시 하오밀문에 포위당해 모두 흩어져 싸우고 있었다.

"하오밀문을 장악한다는 생각은 좋았는데 조금 성급한 감이 있었다."

하오밀문을 치는 것은 좋은 생각이었지만, 그 시기가 조금 빠르다고 여겼다.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어. 흑사파의 내실을 좀 더 다져야 했는데. 그나저나 화화 이놈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전서구에는 화화공자의 행불 소식도 함께 있었다.

"바보 같은 놈, 혼자 사냥한다고 궁상떨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냥 말하면 황궁 무고의 무공서 하나 정도는 나의 재량으로 줄 수 있는데."

이제 황궁에 있는 현수가 무림의 정보를 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황궁 역시 항시 무림을 주시하고 있고 무림에서 일어나는 정보들을 어느 정도 모으고 있기에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전체적인 일들은 알 수 있었다.

"아! 이놈들을 또 어떻게 굴려야 하지."

현수는 지밀원의 무사들을 굴릴 생각을 하며 방을 벗어났다.

* * *

만사귀와 이화는 도사들의 무리로부터 급히 달아나고 있었다.

"풍력부!"

허공으로 솟아오른 부적은 이내 불이 붙으며 타 버렸다.

휘이잉- 휘잉!

강한 바람이 불어 뒤에서 쫓아오는 무리들을 막았다. 도사들은 바람으로 인해 잠시 당황했다.

"이런!"

"훔쳐 배운 무공치고는 상당한 성취를 이룬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산파의 도사들이었다. 현수는 모산파의 무공을 만사귀에게 넘겨주었고, 만사귀는 모산의 무공을 사용하다 하오밀문에 들켰다. 그리고 하오밀문은 모산파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시중에 모산파의 비술로 만든 부적들이 나돌고 있어도 누가 그랬는지 몰랐던 모산파의 도사들은, 하오밀문의 도움으로 만사귀와 이화를 쫓고 있었다. 그들은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배운 만사귀의 무공 성취에 놀라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빠!"

"괜찮아. 견딜 수 있어."

도망을 다니는 만사귀와 이화는 편히 쉴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은 도사들의 집요함에 치를 떨었다. 그나마 만사귀의 부적술로 모산파의 도사들을 따돌리며 숨어 다녔다.

만사귀는 하오밀문의 정보력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 시중에 부적을 팔아 온 것이 하오밀문에 덜미에 잡힐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결국 만사귀는 하오밀문을 상대로 싸운 것이 아니라 모산파와 싸운 꼴이 되었다.

만사귀는 이화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기력이 다해 가던 만사귀는 기력 회복제를 복용하고는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팟팟팟!

"이런!"

만사귀와 이화의 앞에 부적들이 떨어져 땅에 꽂혔다. 순간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다. 부적들에 의해 진이 형성되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지만 여전히 이화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쫓겨 본 적이 있었던가? 만사귀는 베타 시절에 이런 경험이 많아서 별 상관이 없었지만 이화는 아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 업을 하는 것이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화였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쫓겨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것은 이화에게 아직까지는 무리였다.

만사귀가 이화를 불렀다.

"이화야, 오빠 뒤에 붙어."

그는 이화를 보호하며 진을 살폈다. 진으로 인해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는 동안 모산파의 도사들이 주위를 포위했다.

"음! 이번에는 환영진 같다. 이화야, 눈을 감고 오빠의 옷을 잡아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눈을 떠서는 안 된다."

긴장을 하며 말하는 만사귀를 보니, 눈앞에 펼쳐진 진은 보통 진이 아닌 듯했다. 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었다. 자신이 진을 파훼하고 나갈 시간이!

만사귀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무엇인가를 결정한 듯 품에서 일곱 장의 부적을 꺼내었다. 그는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고는 부적들에 묻혔다.

'제길, 또 1레벨이 다운되는 건가?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진 속에 갇힌 만사귀는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한 평 정도의 넓이로 부적을 떨어뜨린 만사귀는 주문을 나지막하게 외웠다. 자칫 주문을 외는 소리 때문에 위치가 들킬 수도 있었기에 옆에 있는 이화 역시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주문이 끝나자 만사귀와 이화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허무환영진이 발동합니다. 페널티로 1레벨이 다운됩니다.

-레벨이 49가 되었습니다. 50레벨이 되기 전에는 허무환영진을 비롯해서 강신술과 소환술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허무환영진!

부적술로 펼치는 일종의 은신법이었다. 움직이지만 않으면 그 누구도 찾을 수가 없는 부적술이었다.

단점은 가장 완벽한 은신술을 자랑하는 대신 1레벨 다운이라는 페널티가 있고 또한 한 발이라도 움직이면 해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공격을 할 수 없고 또한 수비도 할 수 없었다.

만사귀와 이화는 주저앉았다. 이화는 눈을 감고 있었다.

만사귀는 허무환영진 안에서 밖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모산파의 도사들이 천천히 범위를 좁히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도 제발 그냥 지나가라.'

만사귀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화가 잡고 있는 자신의 옷자락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만사귀의 마음을 느꼈는지 이화 역시 옷자락을 잡고 있는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휴! 미안하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만사귀는 그런 이화를 보고 속으로 말했다.

만사귀 역시 돈이 필요했다. 하오밀문의 정보력을 얻으면 보다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천연회에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만사귀에게는 더욱 필요했다. 그래서 하오밀문을 장악한다는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자신의 여자 친구라서 그런지 지금 이화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만사귀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이화의 입술로 가져갔다.

천에서 가벼운 키스 정도는 허용이 되었다.

이화는 놀라서 눈을 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주위에 모산파의 도사들이 보였다.

'오빠가 또 허무환영진을 사용했구나.'

만사귀가 지금껏 여러 번 허무환영진을 사용한 것을 알고 있었다.

'미안해, 오빠. 나 때문에 게임도 즐기지 못하고 이렇게 쫓겨 다니게 되어서 말이야. 나중에 내가 다 갚아 줄게.'

이화의 손이 만사귀의 목을 감았다. 눈을 감은 이화는 그냥 이렇게 시간이 멈추기를 원했다.

모산파의 도사들은 만사귀를 찾을 수가 없자, 진을 해제했다. 행동에 다소 제약을 받는 진을 해제함으로써 더욱 더 세밀하게 주위를 살폈다.

찾을 수가 없자 모산의 도사들은 당황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장문인!"

"그러게 말입니다. 허무환영진이 아니면 이렇게 빨리 모습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는 만사귀가 허무환영진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문파가 어수선한데 놈으로 인해 더욱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놈은 우리 모산의 비급을 훔쳐 배운 놈입니다. 모산의 이름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장문인은 만사귀를 죽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모산은 지금 두 파로 갈라져 있었다. 에피소드 2의 시작으로 정파의 편에 서자는 제일장로파와 이제껏 중립을 고수해왔으니 당연히 중립을 지켜야 된다는 장문인파로 나뉘어 있었다.

"혹시 모르니 검으로 주위를 찔러 가며 찾아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놈이 허무환영진을 익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문인의 말을 들은 모산의 도사들은 검을 휘두르며 만사귀와 이화가 숨은 곳을 찾았다.

휘이익! 휘이익!

검이 바람을 가르며 주변을 쓸어 나갔다.

모산의 도사들이 검을 휘두르자 만사귀는 긴장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움직이지 못한다는 제한으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저들이 휘두르는 검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화를 안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윽!'

눈먼 검 하나에 만사귀의 팔을 찔렀다. 고통이 밀려 왔지만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다. 검이 팔을 빠져나가자 만사귀는 옷자락으로 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화는 소리를 칠 뻔했지만, 만사귀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이화의 입을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화의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결국 만사귀를 찾지 못한 모산파의 일행은 서둘러서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이화는 급히 자신이 입고 있던 치마를 찢어 만사귀의 팔에 감아 주었다.

-아이템이 회손되었습니다. 방어력이 하락합니다.

이화에게 알림 메시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만사귀의 다친 팔이 걱정되는 이화였다.

만사귀는 그런 이화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여자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을 참으로 잘했다고 느꼈다.

"괜찮아?"

"그래. 괜찮다. 오빠가 너를 만난 것은 일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너 하나만큼은 꼭 지켜 줄게."

"그런 말 마."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 이화는 딴청을 피웠다.

이화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만사귀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연회에 연락을 해서 하오밀문보다 모산을 먼저 처리하려 했다. 그만큼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허무환영진을 사용할 수 없는 만사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가자! 애들에게 연락을 해서 뒤처리를 맡기고 우리는 어머니께 다시 인사를 드리자."

만사귀는 다친 팔을 부여잡고 일어났다. 한 발 움직이자 허무환영진이 사라져 버렸다.

팟!

"악!"

"이화야!"

부적이었다. 이화의 다리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만사귀는 나타나는 6명의 인물들을 보고 살기를 뿜었다.

"흐흐! 대단해. 설마 허무환영진을 익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알았지?"

만사귀의 음성이 건조해졌다. 이것은 만사귀가 그만큼 분노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화의 다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크! 그 짧은 시간 안에 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는 솜씨는 칭찬할 만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닦아 내지 못했더군."

"……!"

"기름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름기를 닦아 내지 못했단 말이야."

힘을 주어 검을 닦으면 느낌이 달라서 알아차릴까 싶어 슬쩍 문지른 것이 실수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보이는 사람이 모두 6명이었다.

"그런데 왜 너희들뿐이지?"

"흐흐! 곧 죽을 녀석이니 가르쳐 주지. 지금 모산은 두 파로 나뉘어 있거든. 장문인은 네놈이 죽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몰라야 된다."

제일장로파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만사귀를 죽여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장문인으로 하여금 만사귀를 찾아다니게 한 후 그사이에 모산을 장악하려고 했다.

"후후! 고맙군. 그런데 고작 이 인원으로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군."

"당연하지. 훔쳐 배운 놈이 얼마나 배웠을까? 하긴 허무환영진을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나 네놈이 죽는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 될 것이다. 또한 저년 역시 우리가 즐긴 후 너의 곁으로 보내 주지. 미인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얼굴이야."

이들은 만사귀의 역린을 건드렸다.

베타 랭킹 3위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던 만사귀였다.

만사귀가 무서운 이유는 싸움을 잘해서도 아니고 무공이 강해서도 아니었다. 만사귀의 무서움은 눈과 머리였다.

또한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 또한 만사귀가 베타 시절에 랭킹 3위에 해당하는 위치로 올라가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베타 시절에 만사귀는 정보통 만사귀 또는 신안 만사귀라 불렸다.

만사귀는 검을 뽑아 들었다. 상처를 입은 팔의 고통은 느끼지도 못했다. 분노가 고통을 삼켜 버린 것같이 보였다.

"넌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했다. 내 여자를 흉보는 놈은 설령 현수나 건이라 할지도 용서치 않는다. 왜 사람들이 나를 정보통 혹은 신안이라 부르는지를 가르쳐 주마."

"흥! 공격해라."

모산파의 도사들은 모산의 단혼도법으로 공격을 해 왔다. 만사귀 역시 잘 아는 도법이었다.

"흥! 단혼참은 그렇게 펼치는 것이 아니다. 단혼참!"

찔러 오는 검을 본 만사귀는 몸을 회전시키며 옆으로 이동해서 상대의 허리를 찔렀다.

무공 창에 저장하지 않아 기력이 사용되지 않는 단혼참이었지만, 상대의 허리에 검을 찔러 넣는 것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크악!"

"멸혼참!"

만사귀는 순간 역수검으로 검을 바꾸어 잡고는 상대의 등을 찔러 버렸다. 순식간에 1명을 보내 버렸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검을, 고개를 숙여 피하고는 발을 교차해서 힘을 얻어 허공으로 몸을 띄었다. 다시 횡으로 그어 오는 상대의 검을, 회전력을 얻어 몸을 돌려 피하고는, 정면의 적을 향해 힘껏 검을 내리쳤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동작일지 몰라도 천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채애앵!

검과 검이 부딪쳐 불꽃이 일어났다. 힘에서 밀린 모산의 도사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만사귀는 삼재검법의 횡소군천의 수법으로 적의 허리를 쓸어 갔다.

부우웅!

검은 소리를 내며 적의 허리를 두 동강 내어 버렸다.

순식간에 2명이 당하자 적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만사귀의 몸과 검은 쉬지 않았다. 계속해서 움직이며 적을 상대해 나갔다. 자신이 부지런히 움직이면 이화가 그만큼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윽!"

적의 검이 만사귀의 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듯 곧 검을 휘두르는 만사귀였다.

"폭열부!"

적의 부적이 허공에서 타오르자 만사귀가 있던 자리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크악!"

불길에 직격당한 만사귀는 몸을 굴려 옷에 붙은 불을 껐다. 이화는 이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지켜보던 이화는 허리에서 검을 빼 들었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보기 싫어서일까?

"혼천지도!"

이화의 검이 움직였다.

"크악!"

비명이 들리자 만사귀는 이화를 보았다. 이화는 그 자리에 몸이 굳은 듯 서 있었다. 이화는 야수형 몬스터밖에 잡아 본 적이 없었다. 만사귀는 이화에게 될 수 있으면 인간형 몬스터를 잡지 못하게 했다. 만사귀가 다른 천연회의 사람들보다 레벨이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화야! 이 개자식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만사귀가 이화에게 인간형 몬스터를 잡지 못하게 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들 역시 천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야수형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만사귀는 알고 있었다.

화가 난 만사귀는 또다시 적을 1명 쓰러뜨렸다.

가만히 서 있는 이화를 공격하는 적을 향해 만사귀가 몸을 움직였다.

"크어억!"

만사귀는 이화를 안고 쓰러졌다. 검이 만사귀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만사귀와 이화는 땅에 뒹굴 수밖에 없었다.

이화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만사귀는 그런 이화를 보며 다시 일어났다.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멍하니 있는 이화를 보자 만사귀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부적을 꺼내 든 만사귀는 허공을 향해 날렸다.

"귀령포박술!"

"엇!"

"파혼참!"

만사귀의 검이 귀령포박술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는 도사의 목을 관통해 들어갔다.

"크억!"

만사귀의 몸이 비틀렸다.

또 한 번 허리에 적의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만사귀는 검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다.

"대단하군. 훔쳐 배운 실력인데 말이야."

"오죽 못 났으면 훔쳐 배운 놈보다 못할까, 이 병신들아."

"후후! 저년을 먼저 죽이고 널 처리해 주지. 귀령포박술!"

도사의 손을 떠난 부적은 만사귀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평상시라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만사귀의 몸은 그것조차 허용치 않았다.

"흐흐! 멍청한 계집이군. 고작 사람 하나 죽였다고 저렇게 멍하니 서 있다니 말이야."

도사는 이화를 향해 걸어갔다.

"안 돼! 이화를 그냥 둬!"

"후후!"

도사는 이화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가만히 있는 상대라 그런지 내려치는 검에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의 날카로움만으로도 충분히 이화를 죽일 수 있었다.

"안 돼!"

만사귀의 소리를 들어서일까? 이화가 검을 들어 올려 적의 검을 막았다.

순간 도사는 흠칫했다. 이화의 눈을 보았던 것이다.

이화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 오빠를 지키는 거야. 아니 이제 오빠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거야.'

"참마멸혼도!"

이화의 검이 힘차게 내려왔다. 도사는 검을 들어 올렸지만 이화의 다음 공격을 막지 못했다. 그 역시 참마멸혼도가 어떤 초식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화의 검에 상처를 입었다.

"커억!"

"멸혼참!"

채애앵! 챙!

이화는 공격이 막히자 돌며 자리에 앉았다. 검이 회전력에 의해 또 한 번 적을 공격해 나갔다.

"아악!"

순간 이화의 낮은 공격에 적의 두 다리가 사라져 버렸다. 이화는 고통을 토해 내는 적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크아아아악!"

이화에게 음담패설을 던진 모산의 도사만이 남았다.

부적술을 사용한 자가 죽어서인지 만사귀는 움직일 수 있었다.

스르링 스르링!

검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만사귀는 남은 적에게 다가갔다. 마치 혼령에 씌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적은 검이 땅과 마찰되어 나는 소리에 서서히 공포감에 사로잡혀 갔다.

"오, 오지 마라."

"내가 말했지?"

채애앵!

만사귀의 검을 막은 적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온 힘을 다해 내리치는 만사귀의 검을 막으려 뒤로 물러난 적은 이미 만사귀의 기세에 눌려 공격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팔! 너희가 뭔데 이화를 힘들게 해? 고작 이류 무공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놈들이 왜 우리를 힘들게 하냐고?"

초식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만사귀는 무작정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치기 시작했다. 결국 내려치는 힘에 의해 적은 손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시팔 것들아. 내가 이제껏 공들인 것들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사, 살려 줘!"

이화는 만사귀가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오빠!"

이화의 소리가 들리자 만사귀는 진정이 되었다.

"나 괜찮아. 그러니 됐어."

만사귀는 이화를 보았다. 적은 그 틈을 타 부적을 꺼내 들었다.

"윽!"

하지만 만사귀의 검이 적의 목을 뚫고 들어갔다.

"내가 신안이라고 말했지? 그 이유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야."

만사귀는 이화의 다리를 보았다.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보자 이번에는 자신의 옷을 찢어 이화의 상처를 동여매었다. 그러고는 이화에게 등을 보였다.

"업혀라. 다리를 다쳤으니 걷기가 불편할 거야."

"하지만 오빠가 더 많이 다쳤잖아."

"괜찮다. 이 정도 상처는 베타 시절에 달고 다녔다."

이화는 만사귀의 등에 업혔다. 만사귀의 등이 오늘따라 참으로 넓게 느끼지는 이화였다.

"이화야."

"응!"

"이 천이라는 게임, 정말 잘 만든 것 같지 않아."

"응! 정말 잘 만들었어. 마치 현실과 똑같은 느낌이야. 아까 사람을 처음 죽였을 때 몸이 떨려 왔어. 두려움이 느껴져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만사귀는 이화가 끝까지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비록 게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잊어버려."

"그래. 그런데 오빠, 오늘 참 멋지게 보이는 것 있지. 카리스마가 넘쳐흘렀어. 순둥이 같이 보였는데, 오빠를 다시 봐야겠다."

두 사람은 모산파의 눈을 피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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