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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 진압 (22/57)

반란 진압

감옥으로 다시 돌아온 현수는 손에 들려 있는 용천검을 보고 조금 씁쓸해졌다.

자신이 생각한 것대로 용천검을 얻었으나, 그 결과 황제의 눈에 제대로 박혔기에 자칫하면 황궁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용천검을 얻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앞으로가 문제네."

용천검을 살펴본 현수는 결국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용천검의 옵션을 확인했다.

"아이템 확인!"

아이템 : 용천검 등급 : 유니크-최상급

공격력 : 30 (추가 공격력 : 사용자의 공격력 +30)

옵션 : 순발력 +25와 모든 스탯 +10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한 번 선택하면 이후로 바꿀 수 없다.

체력의 최대치 20% 증가

무공 사용 시 기력 소모 -20

설명 : 전설적인 장인인 왕치석옹翁이 만든 검으로, 그가 황제에게 진상했다. 황제는 검의 이름을 용천검이라 짓고 왕치석옹에게 많은 상금을 내렸다. 훗날 황제는 황권을 수호하는 자에게 멸친어린천룡군이라는 직책과 함께 용천검을 내려 위태한 황권의 안전을 지켰는데, 그 관례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용천검은 멸친어린천룡군이라는 직책을 나타내는 신물이기도 하다.

"음! 모든 스탯 플러스 10이라… 좋군!"

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든 스탯 포인트를 10씩 올려 주면 적어도 60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순발력만 올리면 스탯 포인트를 25밖에 올리지 못한다.

"고민이네. 모든 스탯을 올릴까 아니면 순발력만 올릴까?"

결국 현수는 순발력 플러스 25를 택했다. 현수의 선택은 누가 봐도 분명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현수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모든 스탯을 10씩 올려 주면 캐릭터의 밸런스는 맞을지 모르겠지만, 공격력이 다소 약한 현수에게는 그리 큰 이익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순발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을 차고 있는 현수에게 순발력 플러스 25는 모든 스탯을 상회하고도 남을 만큼 큰 수치였다.

게다가 레벨 업을 하고 나서 얻는 스탯을 전부 민첩성에 투자한 현수는 운중비록을 믿고 있었다.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템 확인!"

아이템 : 용천검 등급 : 최상급-유니크

공격력 : 30 (추가 공격력 : 사용자의 공격력 +30)

옵션 : 순발력 +25

체력의 최대치 20% 증가

무공 사용 시 기력 소모 -20

설명 : 전설적인 장인인 왕치석옹翁이 만든 검으로, 그가 황제에게 진상했다. 황제는 검의 이름을 용천검이라 짓고 왕치석옹에게 많은 상금을 내렸다. 훗날 황제는 황권을 수호하는 자에게 멸친어린천룡군이라는 직책과 함께 용천검을 내려 위태한 황권의 안전을 지켰는데, 그 관례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용천검은 멸친어린천룡군이라는 직책을 나타내는 신물이기도 하다.

아이템 창을 본 현수는 용천검을 장착했다.

"상태 창 확인!"

이름 : 이현수 레벨 : 60

직업 : 멸친어린천룡군(전직을 할 수 없음)

체력 : 985(+197) 기력 : 1,200

공격력 : 10(+30)(+30) 방어력 : 10

순발력 : 10(+57) 민첩성 : 128

인내 : 63 맷집 : 70

NPC와 호감도 : 100% 황제의 신임도 : 100%

경험치 : 2/100

생활 스킬 도축-가죽과 고기를 얻을 수 있다.

현수는 자신의 상태 창에서 부쩍 올라간 공격력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괜히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의태감을 잡기 위한 준비는 다 끝났다. 현수는 지금까지 천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서생으로 전직한 후 그는 황궁에서 뜻밖의 기연을 얻었다.

* * *

현수는 날이 밝자 대신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서 황제에게 심문을 받았다.

"현수, 그대가 진무 장군을 죽였다고 들었다. 그것이 사실인가?"

마치 어젯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현수를 심문하는 황제였다.

"그렇습니다, 폐하."

"무엇 때문인가?"

"진무 장군이 저의 시비인 미랑을 납치해서 욕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웅성웅성!

모여 있는 대신들은 현수의 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고작 시비 하나를 위해 나라의 장수를 죽인다는 것은 대신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차라리 궁녀를 죽이고 노후를 편히 보내는 것이 더 이롭기 때문이었다.

그때 현의태감 왕평에게서 믿지 못할 말이 나왔다. 듣는 현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폐하! 이현수의 증언은 필시 거짓일 것입니다. 진무 장군은 동창의 출신으로, 어렸을 때 황궁으로 들어와 거세를 하였습니다. 그런 진무 장군이 시비를 욕보인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현의태감은 현수를 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넌 오늘 죽은 목숨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폐하, 신 역시 진무 장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진무 장군은 북방으로 가겠다고 스스로 지원을 해서 그곳의 국경을 지키고 있던 훌륭한 장수였습니다. 폐하의 은혜에 보답을 하기 위해 간 곳에서 그런 파렴치한 일을 할 인물이 아니옵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현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치고는 상당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대학사에게 붙어 있어 환관 출신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폐하, 하오나 소신의 말은 사실이옵니다. 진무 장군은 저의 시비인 미랑을 납치해서 자신을 따르는 장수들에게 욕을 보이라 했습니다."

현의태감은 현수의 말을 듣자 '너, 잘 걸렸다.'라는 얼굴로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말했다.

"폐하! 이현수의 말은 이상하옵니다. 조금 전에는 진무 장군이 욕을 보였다고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을 돌려 그를 따르는 장수들에게 욕을 보이라 했다고 하니, 그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이는 필시 이현수가 폐하를 기만하고 거짓으로 증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처사이옵니다. 폐하, 폐하를 기만하는 저 이현수를 능지처참으로 다루어 궁에 본보기를 보여 주시옵소서."

현의태감이 또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대학사가 이를 보조해 현수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폐하, 진무 장군을 따르는 장수 역시 이현수가 죽였사옵니다. 혹여 이현수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일개 궁녀 때문에 나라의 장수를 여럿 죽인 이현수를 살려 주면 앞으로 이 나라의 장수들이 들고 있어날 것입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것들이 작당을 했나?'

어차피 이들이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이 풀려나도록 황제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지만, 현수는 점점 불안해졌다.

"폐하, 궁녀 역시 폐하의 사람입니다. 폐하의 허락도 없이 궁녀를 욕보이려고 한 진무 장군이 폐하를 기만한 것이옵니다. 게다가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황궁의 질서가 문란해질 뿐만 아니라, 폐하의 위상에 손상이 갈 것이옵니다."

이에 또다시 현의태감 왕평이 끼어들었다.

"폐하, 이현수의 말이 맞사옵니다. 하오나 진무 장군과 그를 따르는 사람 역시 폐하의 사람이옵니다. 그런데 폐하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들을 죽였다 함은 이현수가 폐하를 기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이현수는 팔자영법이라는 무공을 폐하의 군대에 가르쳐야 하는 사명이 있는 자이옵니다. 그런데 진무 장군을 죽일 수 있는 무공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직까지도 팔자영법을 익히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옵니다. 이는 필시 이현수가 팔자영법을 다 익히고 있으면서도 폐하의 군대에 무공을 가르쳐 주기 싫어, 이런저런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이는 폐하를 몇 번이나 기만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현의태감의 말에 현수는 점점 궁지로 몰렸다. 대학사 역시 현의태감을 거들었다. 현수는 오늘따라 둘이 정말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폐하, 또 있사옵니다. 정말 이현수가 고작 궁녀를 위해 진무 장군을 비롯한 다른 장수들을 죽였다면, 이현수와 궁녀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궁녀를 위해 나라의 장수들을 죽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사옵니다."

"고작 궁녀라고 했소?"

현수는 대학사를 노려보았다. 대학사는 돌아가는 상황이 이미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현수를 보고 조소를 띠었다.

"궁녀 또한 폐하의 사람이오. 그런데 고작이라 했소?"

"흥! 자신이 불리하니 계속해서 허튼 변명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폐하, 이현수는 지금도 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저 간악무도한 이현수를 능지처참으로 다스리시옵소서."

'미치겠네. 이들이 이렇게 말을 잘하는 줄은 몰랐군. 분위기가 영 이상한데.'

황제 역시 흘러가는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음… 오늘 보니 현의태감과 대학사가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왜 진작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싸우기만 했단 말이냐?"

"송구하옵니다."

두 사람은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대신들의 생각이 모두 그렇단 말인가?"

모두는 이미 입을 맞춘 듯, 한목소리로 대전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음… 그대는 다른 이유를 말해 보라. 지금 모든 대신들이 그대를 벌하기를 원한다."

현수는 무엇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을 살려 주리라고 믿고 있을 뿐이었다.

"짐은 결정했다. 솔직히 짐은 이현수를 좋아한다. 하나 여러 대신들이 현수를 벌하기를 원해 참으로 답답하다. 3일 뒤에 다시 심문을 할 것이다. 그때도 모두가 원한다면 현수를 벌할 것이다."

현수는 황제의 말에 놀라 소리쳤다.

"폐하! 신 이현수는……!"

"그대의 말이 맞다 해도 진무 장군과 그를 따르는 장수들을 죽인 것은 변함이 없다. 궁녀는 짐의 사람이나 장수들 역시 짐의 사람이다. 누가 보아도 장수와 궁녀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대학사와 현의태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현수를 다시 가두어라. 그대들은 물러가라. 3일 뒤에 다시 현수를 문책하겠다."

현수는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 * *

현의태감의 방에는 여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제조상궁 역시 있었다.

"오늘은 기분이 참 좋군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놈이 너무 설치는 통에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르다 뿐입니까, 동창 제독."

"호호!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이현수라는 사내가 대단했나 봅니다. 전 아직 겪어 보지 못해 잘 모르겠습니다."

"제조상궁은 놈과 마주칠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할 것이네. 놈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소화궁에서 젊은 장수들을 사주해 2황자를 죽이려고 할 때 놈이 그걸 막았지. 완전히 보낼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생각하니 머리가 다 아프군. 그건 그렇고, 이제 거사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현의태감의 말에 희희낙락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무리 많은 준비를 했어도 역모라는 것이 주는 부담감은 적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거사일은 이현수의 목이 떨어지는 날 밤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의태감의 말에 모두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고개만 움직일 뿐이었다.

"동창과 금의위가 파악한 전대의 천밀위사들을 기습하는 것으로 시작해, 일시에 2황자를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의태감은 제조상궁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제조상궁의 일이 가장 큰일이었다.

"제조상궁은 궁녀들을 이용해 내각의 대신들을 모두 재워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뒤통수를 맞을 수 있으니 말이네. 내가 특별히 준비한 수면제가 있으니 궁녀들을 시켜 물에 섞어 두라 전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심려 놓으십시오."

"난 따로 준비한 무사들과 함께 천밀위와 황제를 치겠네."

현의태감은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 나갔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저기, 현의태감님. 혹시 멸친어린천룡군이라는 직책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멸친어린천룡군?"

"그렇습니다. 황권을 수호하는 비밀 무사입니다."

현의태감 왕평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천밀위가 황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닌가, 제조상궁?"

"아닙니다. 천밀위는 황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황족을 보호하는 일을 합니다. 황권을 수호하는 것은 멸친어린천룡군입니다. 전 황제 폐하의 상궁 시절에 들어 보았습니다."

새로운 사실에 왕평은 흥미를 가졌다.

"멸친어린천룡군이라……."

"하지만 우리가 거사를 하는 날은 모를 것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입니다. 멸친어린천룡군이 알았을 때 이미 황제는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제조상궁, 그들의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들었는가?"

제조상궁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만 그런 직책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군. 대비를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니 모두 각별히 신경을 써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의태감님."

"여러분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3황자께서 보좌에 앉는 날, 여러분은 모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잘될 것입니다. 심려 놓으소서."

"그럼 돌아가서 다들 준비를 해 주십시오. 놈이 죽는 시점에 거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제조상궁을 선두로 모두들 현의태감의 방을 벗어났다.

모두가 나가자 현의태감의 방에 일남일녀가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3황자 저하, 난화 군주 마마."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3황자는 거사를 앞두고 한층 긴장된 얼굴이었다. 난화 군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현수가 죽는 날 저녁에 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주요 인물들을 제거한 후 폐하와 2황자를 천금뇌옥에 가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천금뇌옥에 가둔다는 것은 왕평의 거짓말이었다. 모두 죽이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구태여 불안 요소를 안고 갈 필요가 없었다. 황제와 2황자, 대학사는 필히 죽여야 할 인물들이었다.

"잘하셨습니다. 그래도 나에게는 아버지요, 형님이니 말입니다."

"그렇지요. 문제는 1황자입니다. 그는 죽여야 합니다."

1황자를 죽인다는 말에 3황자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황자의 세력은 황궁의 밖에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으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들의 구심점이 되는 1황자를 죽여 모일 수 있는 명분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3황자께서 그들을 끌어 안으시면 나라는 순식간에 안정이 될 것입니다."

"음……."

3황자의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난화 군주가 현의태감의 말을 옹호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럼 할 수 없지요. 거사가 성공을 한다면 모든 것이 현의태감의 공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거사는 필히 성공을 할 것입니다."

3황자가 현의태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제조상궁은 대학사를 만나고 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말씀을 낮추세요. 누가 듣겠습니다."

제조상궁은 현의태감의 거사일을 대학사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내각의 대감들에게 주의를 주세요. 전 궁녀들에게 현의태감이 시킨 대로 전할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3일 후 거사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1황자님과 대학사 어른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시간이 없었다. 지금 밖에 있는 내각의 인원들을 불러들인다 해도 늦었다. 게다가 시간이 많다면 은밀히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상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급하다고 섣부르게 행동을 한다면 내각이 움직이는 것을 황궁에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의태감의 거사일을 늦출 수도 있었다. 현수를 죽이는 것을 뒤로 미루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이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난감했다.

생각에 잠겨 있는 대학사의 귀에 제조상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대학사 어른,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후일이라니요?"

"먼저 정빈 마마와 1황자님을 피신시킨 다음에 대학사 나리가 황궁을 빠져나가세요."

"음!"

그 방법이 가장 무난했다. 어디로 피신을 시키느냐가 문제였다.

"천유 서림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필히 사라진 정빈 마마와 1황자 저하를 찾으려 천유 서림을 뒤질 것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마냥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냥 당할 수는 없지요."

"세외는 어떠십니까? 세외에서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요?"

"전설을 얻는 겁니다. 10개의 전설 중 하나인 악마록이 세외에 있습니다."

"악, 악마록? 만사신군의 악마록을 말하는 것입니까?"

대학사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만사신군의 악마록이 세외에 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찾아도 단서를 얻기 힘들었던 10개의 전설 중 하나를 어떻게 제조상궁이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또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자신을 유인해서 죽이려고 하는 현의태감의 수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것을 어떻게 믿지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대학사 어른께서 저를 못 믿으시면 어쩔 수 없으나, 전 이미 대학사 어른과 몸 도장까지 찍은 사이입니다."

대학사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제조상궁의 말이 사실이라면 10년이 늦은들 어떠하겠는가?

"대학사 어른께서 이러고 계실 때에 현의태감은 계속에서 우리를 조여 올 것입니다."

대학사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죄를 지으면 자신만 죽으면 그만이지만 역모라는 것은 그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내,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조상궁."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전 이미 1황자님과 한 배를 탔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제조상궁이 나가자 대학사는 한참 동안 생각했다.

'상황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늦다. 먼저 정빈 마마와 1황자 저하를 피신시킨 다음에 세외에 악마록이 있는지를 확인하자.'

대학사는 정빈과 1황자를 먼저 피신시키기로 했다. 천유 서림이라면 두 사람을 현의태감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피신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자객에게 현의태감을 청부해서 거사의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리라 생각했다. 그러자 적당한 인물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연 그가 청부를 받을지 의문이었다.

그는 제조상궁이 말한 것처럼 내각의 대신들에게 조심하라고 전하기 위해 움직였다.

현수가 있는 감옥에 대학사가 찾아왔다.

"지낼 만한가?"

"대학사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겨 버렸네."

"하하! 곧 죽을 놈에게 도움이라니요. 대학사님께서 급하신 모양입니다. 그래, 어떤 도움을 원하십니까?"

현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학사가 몸소 찾아온 것을 보면 그냥 부탁은 아닌 것 같았다.

"현수, 자네가 풀려나도록 도와주겠네. 현의태감을 막아 주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현의태감이 자네를 벌하는 날 거사를 하려고 하네. 하나 알다시피 우리 내각은 황궁에서 힘이 없네."

현수는 놀란 척을 했다. 어차피 이들이 역모를 할 것이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였다.

사실 현수는 이미 3일 안에 환관들 쪽의 주요 인물들을 제거하려고 하고 있었다. 대학사가 부탁을 하지 않아도 역모를 저지할 생각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진짜 현의태감이……!"

"그렇다네."

"미쳤군요. 역모라니요. 그럼 폐하께 고해 현의태감을 벌하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쉽지가 않네. 환관들이 이미 폐하의 눈과 귀를 막았네."

현수는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십니까?"

"자네의 무공이라면 현의태감을 충분히 암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네."

"암살이라… 좋군요. 그럼 청부금이 있겠군요."

청부금이라는 말에 대학사는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놈은 처음이었다.

"허허! 그렇군. 자객에게 청부금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군. 청부금은 자네를 살려 주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나?"

"하하! 대학사님께서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대학사님께서 이렇게 찾아오신 것을 보면서, 제가 밖의 상황도 짐작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셨습니까? 제 자랑이긴 하지만, 전 그래도 장원급제한 놈입니다."

대학사는 현수에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좋아! 금전 만 냥은 어떻겠나?"

이게 얼마 만에 찾아온 대박의 건수인가. 현수는 청부금을 후려치기로 마음먹었다.

"현의태감이라는 이름이 무슨 강아지 이름인 줄 아십니까? 고작 금전 만 냥으로 청부를 하게?"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현수를 보니, 대학사는 현수에 대해서 이제껏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자네에 대해 잘못 생각했나 보군. 아쉬워! 자네와 좀 더 친해졌으면 천군만마를 얻었을 텐데 말이야. 5만 냥은 어떤가?"

현수는 이쯤에서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부수입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래 황궁에 들어온 목적은 미랑을 지키는 것이었고, 용천검이라는 존재를 알았을 때 그것까지 황궁에서 얻으리라고 목적을 추가한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황궁에서 관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뒷돈이 많이 들어와 생계를 유지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듯했다. 왜 오매불망이 관리가 되었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그럼 선불로 하시지요."

현수의 능글맞음에 대학사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허 참! 자네는 어떻게 생겨 먹은 건가?"

"삶을 피곤하게 살았을 뿐입니다. 혹시 압니까? 나중에 모른 척하고 절 제거하실지."

대학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진짜 아쉬웠다.

"좋네. 내일 준비해 주지."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역모를 꾸미고 있는 두 세력의 수장 중 1명인 대학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입지를 굳히기 위해 현의태감을 암살하려 합니다. 현의태감을 암살하는 것이 이번 퀘스트의 목적입니다. 이 퀘스트는 단발성 퀘스트로, 한번 진행되면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종료됩니다. 보상으로는 금전 5만 냥과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실패 시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페널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레벨이 떨어지고,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 가장 좋은 것이 현의태감의 전리품으로 들어갑니다. 만일 현의태감이 역모를 성공시키면 천을 이용하는 기간 동안 황궁의 쫓김을 받습니다.

보상은 상당했지만, 페널티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현수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인 용천검이었다.

현수가 알림 메시지를 보는 동안 대학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을 알게. 이곳에서 빠져나가 현의태감을 죽이는 것은 자네의 실력이네. 다시 말하면, 내가 이곳에서 빼내 줄 수는 없다는 말이네. 그리고 현의태감이 제거되면 난 필히 자네를 제거하려고 할 것이네. 자네를 그냥 두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너무도 솔직했다. 대학사는 당당하게 말하는 현수가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 할 인물이라 여겨졌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저 역시 알려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미 대학사님의 내각에 동조하는 이들의 연판장이 폐하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연판장이라는 소리를 듣자 대학사는 순간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내일까지 청부비를 주십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대학사님께서 피신을 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대학사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떻게 연판장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는 듯한 행동이었다.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행히 전 하남성주에게 연판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후후! 그랬군.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겠네."

"말씀하십시오."

"황궁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이 자네의 안배였나?"

"안배라기보다는 저를 먼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전 저를 건드리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용서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저 이현수의 법입니다."

어깨가 처진 상태로 대학사는 감옥을 빠져나갔다. 현수의 말을 듣고 나자, 이제껏 준비한 것이 헛된 일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정빈과 1황자를 빨리 피신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후후! 내일이면 시작이군. 애들에게 연락을 해 두어야지."

현수는 전서구를 천연회의 멤버들에게 보내었다.

* * *

BS 그룹의 형욱은 천의 보고로, 또 한 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천에 존재하는 100개의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 중 하나가 벌써 풀려 버렸다는 것이 이번 대화의 주제였다.

각 유니크 아이템은 특징이 있었다.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은 순발력 플러스 25의 수치와 스탯을 전부 10씩 올려 주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상급의 유니크 아이템은 순발력 플러스 20의 수치와 스탯을 전부 7씩 올려 주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일반 유니크 아이템은 순발력 플러스 15의 수치와 스탯을 전부 5씩 올려 주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들 중 상급의 아이템도 아닌 최상급의 유니크 아이템이 벌써 풀리는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에피소드 2가 시작되고 난 후 사사혈천에서 중원을 침공하는 시점에서 최상급 아이템들이 풀려야 했다. 무구의 힘을 빌려 사사혈천의 침공을 막을 계획을 세우고 있던 BS 그룹에는 조금은 황당한 상황이었다.

천에 존재하는 아이템들 중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은 모두 100개! 무기 10종, 방어구 40종, 액세서리 30종, 부적 20종이었다.

그중에는 용천검처럼 하나인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이 존재하는가 하면,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 그리고 부적이 세트로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세트 아이템은 모두 착용했을 때 부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 중 세트 아이템은 총 여덟 가지였다.

용천검이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이라고는 하나, 세트 아이템의 부가 효과를 생각한다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형욱은 천에게 물었다.

"어디서 풀렸나요, 천?"

-황궁입니다.

"누구의 손으로 갔는지 알 수 있나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정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일마 이현수가 얻은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또 그 문제의 유저들 중 하나군요. 서생으로 황궁에 들어간 그에게 왜 용천검이 내려졌는지 알 수가 없군요."

-저 역시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완벽하게 모니터링이 되지 않는 10명의 인물 중에 황궁과 관련된 인물은 일마 이현수뿐입니다. 그리고 이현수는 무공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가 무공을요?"

베타 시절의 최고 고수가 서생이라는 것도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가 무공까지 익혔다고 하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욱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는 과거를 보아 황궁 무고에서 무공을 익혔고 또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의 단서를 얻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형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말이 되지 않는 억지 같았기 때문이었다.

"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공교롭군요."

-그렇다고 이미 알고서 접근했다고 보기에도 힘듭니다. 황궁에 있는 유니크 아이템인 용천검은 황제가 직접 내리는 것 외에는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하게 운이 좋은 사내라고 해야 하나? 형욱은 이현수라는 유저에게 더욱 관심을 가졌다.

"취득할 수 있는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황권에 위기가 왔을 때 NPC와의 호감도가 100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황제의 신임도 역시 100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황제의 신임을 얻으려면 황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설령 호감도가 100이라 할지라도 황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얻기 힘들 것입니다. 또한 문과 무가 일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음… 과거를 보아 궁에 들어갈 정도면 문은 어느 정도 익혔다고 보아야겠고, 그럼 무공은? 일마에게 전해진 팔자영법으로 가능한가요?"

-일류는 될 수 있지만 초일류는 되기 힘듭니다. 또한 초일류를 넘어서지 않고는 황제의 신임을 100까지 얻기 힘듭니다. 하지만 지금 황궁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기에 용천검이 등장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것이 일마의 손에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2황자에게 내려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형욱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일어난 무공 탈취 사건. 그리고 에피소드 2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구파일방의 진산 비급 중 몇 개도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이 모든 사건에 일마가 끼어 있다면…….

"저기, 천! 만약 무공 탈취 사건이 일마의 짓이라면 가능한가요?"

-가능할 수도 있지만 조금 힘듭니다. 초일류를 넘기는 무공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설정으로, 다른 무공으로 극을 이루면 깨달음이 초일류를 넘어서게끔 만들었지만, 내공을 수련할 수 없기에 깨달음을 얻기 힘듭니다.

진짜 현실처럼 만들어진 천에서도 내공 수련은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영약 같은 것을 녹이기 위해 심법을 수련하거나 레벨 업을 해서 기력에 스탯을 투자하면 내공의 수위를 올릴 수 있었다.

"왜 내공 수련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인간의 뇌파를 이용해 환경을 만들고, 그 위에 유저를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내공 수련을 상상 속에서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나 깨달음을 얻는 건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천, 방금 하나의 가설을 세워 보았습니다. 한번 들어 보고 판단을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형욱은 자신이 세운 가설을 천에게 이야기했다.

"일마 이현수가 과거를 보아 황궁에 들어갔을 때부터 황궁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무공 탈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구미호의 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나열해 연관성을 찾아가는 형욱이었다. 그러고 보면 형욱의 머리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럼 가설을 세워 보겠습니다. 먼저 구미호의 유물을 일마 이현수가 얻었습니다. 유물이라는 것은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입니다. 그 무공들이라면 타 문파의 무공을 탈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탈취한 무공들을 익히기 위해 조용한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일마 이현수는 황궁을 택해서 과거를 보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일마라는 명호를 보아, 자신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요. 더구나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황궁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역사를 연구해 나름대로의 각본을 정해 놓고 움직여,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뜻밖에 용천검을 얻을 수 있었고 말입니다."

-일말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형욱 님께서 말한 것을 다 이루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문파의 무공을 탈취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무공서를 팔기 위해서 훔쳤다면 벌써 무공서들이 시중에 나와야 했습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앞으로 재미있어지겠어요. 이제 황궁의 난이 시작되는 것입니까?"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조금 전 황궁의 대학사가 현의태감의 암살 청부 퀘스트를 진행했습니다. 만약 청부가 성공하면 황궁의 난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NPC들이 참 별짓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형욱이었다.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천의 NPC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부라……. 누구에게 했는지 모르겠지요?"

형욱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뭘요.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그나저나 머리가 아파 오는군요. 수빈 양이 또 입에 거품을 물 거라 생각하니. 그런데요, 천."

-말씀하십시오, 형욱 님.

형욱은 예전에 수빈이 착용했다는 말도 안 되는 아이템들이 궁금했다.

"수빈 양이 사용했다던 말도 안 된다는 아이템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모든 스탯을 25씩 올려 주는 아이템으로, 무기 1종, 방어구 4종, 액세서리 3종, 부적 2종의 세트 아이템입니다. 모두 착용을 하면 방어력 플러스 100의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정말 사기 같은 스탯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그것만 있으면 천의 최고 고수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런 아이템을 가지고도 수빈이 현수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아직도 그 아이템이 있나요?"

-수빈 님의 인벤토리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아이템들은 죽어도 드롭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수빈 님의 인벤토리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저도 그런 아이템을 한번 주면 안 될까요? 월급이 적어서 생활하기 힘든데, 돈이 될 아이템 하나만 만들어 주면 안 돼요?"

-형욱 님께서 원하신다면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형욱 님께서는 곧 퇴사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겠죠? 월급을 조금 올려 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텐데. 참! 천, 이번에 진행하고 있는 현거래 사이트의 개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능할까요?"

-이미 정부에서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인정을 했는데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의 침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다만 공식적인 사이트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또한 사이트를 제외하고도 시중에 천의 아이템 거래점이 생겨날 것입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만약을 대비해서 황궁의 난에 대해서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만 일마를 비롯해 모니터링 방호벽이 쳐 있는 10명의 근황이 문제가 될 뿐이었다.

"알겠어요. 계속해서 수고해 주세요. 전 최상급 유니크 아이템인 용천검이 일마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고하고 올게요."

-수고하십시오.

형욱은 천과의 대화를 마치고 수빈의 사무실로 향했다.

* * *

황궁의 밤은 조용했다.

샤샤샤샤!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팟팟팟!

"헉!"

땅을 뒹굴어 뒤에서 공격해 오는 물체를 피한 그는 빠르게 중심을 잡고 일어났다. 이미 도망가는 것을 포기했는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움켜쥐었다.

"미안해! 네 실력을 정확하게 몰라서 내가 잠시 실수를 했어.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강한 줄은 몰랐거든."

"누군데 나를……?"

"그건 알 필요 없잖아? 넌 여기서 죽어 주면 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젠장! 어떻게 알았을까?'

도망을 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필살검이었다. 필살검은 내일 금의위 부장인 송악을 죽이기로 되어 있었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템을 손질하다 기습을 받아 이곳까지 도망치게 되었다.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상대는 너무 강했다. 필살검은 제대로 공격 한 번 하지 못하고 몰리기만 하다가 건을 찾아 도망쳤고, 결국 괴한에게 덜미를 잡혔다.

"그대들이 무슨 목적으로 황궁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뜻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대들이라고? 그럼……!"

"후후! 황궁이라는 곳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았던 모양이군. 너희 8명이 황궁에 들어올 때부터 감시하고 있었다."

"젠장! 그럼 빨리 이야기를 해 주지. 그럼 그냥 돌아갔을 것 아니야.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넌 어느 쪽이야?"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뭐 하게? 넌 그냥 죽어 주기만 하면 된다."

파앗!

한 번의 도약으로 필살검과의 거리를 좁혀 검을 수직으로 내리치는 괴한이었다.

필살검은 그 기세를 느꼈는지 검을 들어 올려 막기보다는 몸을 피했다.

'제길! 검에서 느껴지는 기세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도대체 현수는 이런 놈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어떻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필살검을 공격하는 괴인은 추밀원의 사람이었다. 군천령이 발동되고 난 후부터 추밀원에서는 황궁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수에게 용천검이 내려지자,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을 모두 제거해서 현수를 돕기 위해 추밀원에서 나선 것이었다.

필살검을 비롯한 천연회의 식구들과 현수의 관계를 모르는 추밀원에서는, 천연회의 식구들 역시 제거 대상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것을 모르는 필살검은 앞의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 중이었다. 무공만으로 따지면 분명 필살검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피하는 재주는 일품이구나."

"그래, 네 똥 굵다."

"어리석은 놈! 그냥 단칼에 죽었으면 고통이라도 덜했을 것을."

필살검은 내심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괴한의 검에서 일어나는 검기는 자신의 수준과는 다른 것이었다.

"시팔! 싸움을 하면 건이나 현수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다."

"천사밀전 은형세!"

괴인의 검이 움직이자 검은 4개의 잔영을 만들며 필살검에게 몰아쳐 갔다.

"사령검결 사령천하!"

사령문의 독문 검법으로, 현수가 필살검에게 탈취해 준 무공이었다. 무공 자체는 일류이나 성취하는 사람이 없어 사령문은 이류 문파로 전락했다. 필살검은 사령검결을 7성까지 익히고 있었다.

퍼어엉!

필살검의 사령검은 괴인이 일으킨 4개의 검세를 모두 막지 못했고, 결국 하나의 검기가 그의 얼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필살검의 뺨에서 한 줄기 혈흔이 묻어 나왔다.

"젠장! 잘생긴 얼굴에 훈장을 다니 기분이 별로군."

"능히 막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고통이 오래가는 법이거든."

"지랄! 지금 기회가 있을 때 나를 죽여. 그러지 않으면 넌 필히 죽는다."

"웃기는군. 고작 그 실력으로?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 보아라. 천사밀전 교립세!"

"헉!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야?"

두 발을 땅에 고정을 시키고 검을 내리긋는 괴한이었다. 필살검이 놀란 것은 그 뒤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검강이었다. 반달 모양의 검강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모두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있었다.

'막을 성질의 공격이 아니다.'

필살검은 땅을 굴러 피했다. 하지만 다리에 검강이 스쳐 지나갔는지, 필살검은 다리를 잡고 고통에 신음했다.

"윽! 무식한 놈!"

"멋진 철판교의 수법이었다. 그런데 다리를 다쳤나 보군. 이제 천하일절의 철판교를 사용하지 못하겠군. 자자! 그럼 이건 어떻게 피할지 궁금하군!"

비꼬며 말한 괴인은 다시 검을 움직였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 와 검을 필살검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큭!"

"윽!"

괴인의 검이 필살검의 복부를 관통했다. 하지만 필살검 역시 마주 오는 괴인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키가 조금 컸던 것이 운이었는지, 필살검의 검은 괴인의 심장을 관통하고 등으로 나와 있었다.

"큭큭! 내가 조금 전에 그랬지? 난 건이와 현수 외에는 져 본 적이 없다고."

"어떻게……!"

"살을 주고 뼈를 얻는 방법이지. 비밀을 하나 말해 줄까?"

"……!"

"난 너희와 다른 존재거든."

하지만 괴인은 필살검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필살검은 계속해서 내려가는 체력을 보고는 벽곡단을 입 안으로 넣었다. 하나로는 떨어지는 체력을 멈출 수가 없자, 일단 체력 게이지가 멈출 때까지 벽곡단을 입 안으로 넣었다.

6개의 벽곡단이 입으로 들어가자 체력 게이지가 떨어지는 게 멈추었다.

인벤토리에서 붕대가 있는지 확인한 필살검은 지체 없이 복부를 관통한 괴인의 검을 빼었다.

"컥!"

-출혈로 인해 체력이 떨어집니다.

그는 붕대를 꺼내 상처 부위에 동여매었다. 그러자 떨어지던 체력이 멈추었다. 필살검은 고통에 조금 인상을 쓰고는 벽곡단으로 체력을 모두 채웠다.

"다른 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건은 문제가 없는데… 만사귀가 제일 문제다. 다소 무력이 떨어지니."

필살검은 만사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모산의 부적술을 이은 만사귀는 사실 천연회에서 가장 약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바람의 술!"

"놈! 사술을 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겨루자!"

만사귀는 필살검의 걱정과는 달리 여유롭게 싸우고 있었다.

"귀령포박술!"

"이노옴!"

만사귀를 공격하던 괴인은 노성을 질렀다. 하지만 만사귀는 아랑곳하지 않고 괴인과 거리를 벌리며 침착하게 싸우고 있었다.

괴인은 미칠 지경이었다. 가까이 가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좀처럼 거리를 허용치 않아 애를 먹었다.

"단혼참!"

부적의 힘을 내공으로 뚫고 들어가면 이렇게 검을 들어 공격해 잠시 발을 멈추게 하고는 뒤로 달아나는 만사귀를 본 괴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있듯 이렇게 입은 작은 데미지들이, 괴인 자신도 모르게 상당히 쌓여 있었다.

"강신술!"

만사귀의 부적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타올랐다. 순간 만사귀의 눈에서 붉은 적광이 흘러나왔다. 괴인은 만사귀가 요사한 술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느끼고는 경계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파혼참!"

"크악!"

만사귀는 순간 이동을 하듯 거리를 좁혀 괴인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괴인은 두 눈을 뜨고 만사귀를 보았다.

"젠장, 1레벨 다운이네."

만사귀는 별것 아닌 투로 말하고는 괴인을 보며 웃었다.

부적술의 강신술은 혼령을 불러 자신의 몸에 들이는 것과 10분 동안 자신의 능력을 2배로 끌어올리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사용하면 막대한 능력을 얻지만 페널티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1레벨 다운이었다.

강신술은 레벨이 50대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부적술이기에, 50레벨 이상의 유저가 1레벨 다운을 각오하고 쓰기에는 엄청난 페널티였다.

"걱정 안 해도 될 걸 그랬네."

건이었다. 건이 제일 먼저 만사귀에게 달려왔다. 건 역시 습격을 받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오기 위해서 조금 늦었을 뿐이다. 건을 선두로 천연회의 멤버들이 모두 만사귀에게 달려왔다.

만사귀는 이 장면을 보고 강신술을 쓴 것을 아까워했다. 시간만 벌었으면 1레벨 다운이 되지 않았을 것을! 이미 지난 일로 후회를 하는 만사귀를 보고 모두는 대충 짐작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기다리기보다 곧바로 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 만사귀의 말대로 지금 놈들을 치고 사라지자. 현수는 내일이라고 했지만, 내가 다시 전서구를 보낼 테니 너희들은 그냥 지금 목표물을 잡고 사라져."

"좋아. 상대해 보니 이놈들, 장난이 아닌 것 같다. 모두 긴장하고 실수 없이 행동해. 혹여 실수한 사람은 차라리 사신수나 적룡에게 가서 죽어라. 현수가 눈 뒤집히면 골치 아프니까."

카오스는 먼저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화화공자 역시 자신이 맡은 인물을 처리하기 위해서 자리를 떴다. 모두가 사라지고 나자 건은 전서구를 보내고 역시 목표물을 찾아 사라졌다.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현수는 전서구를 보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감옥에서 일어나 몸을 풀던 현수는 허공을 보고 외쳤다.

"령을 명을 받으라."

"신, 천밀위의 수장인 령이 군의 명을 받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현수의 앞에 령이 부복했다.

"지금부터 군천령을 발동한다. 추밀원의 모든 무사를 동원해 금의위와 동창의 연합을 막아라. 또한 지밀원을 동원해 금의위를 습격하여 움직임을 차단하는 동시에 그들의 눈과 귀를 막아라."

"군의 명을 받습니다."

"천밀위사들은 3황자의 궁을 포위하고, 3황자와 난화 군주의 신병을 확보하라. 이는 시간 싸움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신 령! 군의 명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하겠습니다."

령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폭풍의 시작이었다.

현수는 현의태감의 거처로 숨어 들어갔다.

원래는 오늘 접속을 해제해서 명월에게 약간의 방어구를 지원받고 내일 일을 벌이려고 했지만, 건의 전서구를 보고 일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곧바로 현의태감을 치기로 했다.

팟!

"크어억!"

현수는 침대에서 자고 있는 현의태감을 향해 지체 없이 용천검을 찔러 넣었다.

"쉬운데?"

생각보다 쉽게 끝나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현수는 이불을 걷어 현의태감인지를 확인했다.

현의태감이라는 것을 확인한 현수는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고 했다.

"이제 3황자의 궁으로 가서 그의 신병을 확보하면 끝나는 건가?"

생각보다 쉽게 돈을 벌었다.

대학사의 청부 금액을 생각하자 미소가 절로 나왔다.

현수는 그냥 나가기가 조금 아쉬워, 살황의 일기장의 탐지술을 사용해 현의태감의 거처를 훑어보았다.

"후후!"

현수가 찾은 것은 현의태감의 금고였다. 용천검으로 금고를 내리치자 종잇장처럼 금고가 갈라졌다.

"엥? 뭐야!"

생각보다 작은 금전에 실망한 현수는, 일단 그것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또 다른 금고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때 살황의 탐지술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

현의태감의 얼굴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쩌어억 쩌억!

"이런!"

인피면구였다. 현의태감을 가장하고 누워 있던 사람은 현의태감의 수족이었다.

"어쩐지 쉽다 했어. 그나저나 자다가 날벼락 맞은 거네. 죄송합니다."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가짜를 두고 방을 빠져나갔다면, 문을 통해서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현수는 현의태감의 방에서 비밀 통로 2개를 발견했다. 그때 령이 명령을 다 전달했는지 현수를 찾아왔다.

"비밀 통로군요?"

"둘 중 한 군데를 통해 다른 곳으로 갔단 말이지."

"이쪽 같습니다."

현수는 령의 말을 무시하고 살황의 일기장을 사용했다.

"살황의 일기장, 추적술!"

령이 말한 곳과 일치했다. 이에 현수가 령을 보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고는 앞장을 섰다.

"그냥 때려 맞춰 본 것입니다."

"그래? 령, 너는 모습을 감추고 나를 따라와라.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말도록!"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비밀 통로로 들어서자, 살황의 일기장의 은신술과 추적술을 함께 사용해 현의태감의 행적을 좇았다.

비밀 통로에 별다른 위험이 없어, 현수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금쯤 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현의태감이 달아날 수도 있다."

비밀 통로의 끝은 벽이었다.

"살황의 일기장, 탐지술!"

현수는 벽에서 기관 장치를 찾아내었다. 기관 장치를 작동하는 것보다 먼저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현수는 벽 너머에서 두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고른 숨소리로 봤을 때 두 사람은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현수는 지체 없이 기관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벽이 한쪽으로 밀리면서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게 꾸며진 규방이었다. 현수는 방으로 들어서서 자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여긴……!'

정난 희비의 방이었다.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바로 3황자의 어머니인 정난 희비였다.

이불을 덮고 고이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현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자고 있는 정난 희비의 옆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현의태감이었다. 현의태감은 현수의 말을 듣고 깼는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네놈이 어떻게……?"

현의태감은 현수를 발견하자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을 찾았다.

'정난 희비와 현의태감이라…….'

"후후! 권력의 맛을 보더니 간이 무지하게 커졌나 보군요. 감히 폐하의 여자를 넘보다니 말입니다, 현의태감 나리."

"캭!"

정난 희비가 일어나서 현수를 보고 소리쳤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금방 파악을 했는지 두려운 눈으로 현의태감의 뒤에 숨어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이들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이런 관계였다는 느낌이 들자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대는 폐하의 여인으로서 뭐가 부족해서 이와 같은 짓을 저질렀는가?"

현수의 호통에 정난 희비는 이불을 당겨 자신의 몸을 가리는 한편 현의태감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어떻게……!"

현의태감은 현수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후후! 너의 거처에 있는 놈은 벌써 저세상으로 갔지. 하마터면 나도 속을 뻔했어."

현의태감은 음모가 판을 치는 황궁에서 최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답게 마음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현수 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나 때문에 애꿎은 사람만 죽었구나. 하지만 넌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다."

자신의 옷에서 혁대를 잡아당긴 현의태감은 현수를 향해 바로 공격을 했다.

현의태감의 혁대는 연검이었다. 뱀이 초지를 거침없이 헤쳐 나가듯 검이 현수를 향해 움직였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캭!"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눈앞의 상황이 무서워 소리치는 정난 희비였다.

현의태감은 정난 희비의 소리에 당황해, 순간 현수를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는 정난 희비에게 다시 다가갔다.

"잠시 잠을 자 두세요. 눈을 뜨면 모든 일이 끝나 있을 것입니다."

현의태감은 정난 희비의 수혈을 짚어 재웠다. 현수는 그런 현의태감을 향해 공격을 했다.

"이런 비겁한……!"

"후후! 내가 왜 너의 사정을 봐줘야 되지? 나를 가르치신 분께서 그러시더군. 기회가 있을 때 빨리 적의 숨을 멈추게 하라고 말이야."

현의태감은 고수였다. 그는 현수의 검을 막아 내고는 거리를 벌렸다.

현수는 계속해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기회를 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 바로 현수가 베타 시절에 일마라는 명성을 얻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현의태감은 한 번의 밀림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수세에 몰렸다. 그는 현수의 무공이 이렇게 강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헉!"

"과연 한 세력의 수장답게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군. 언제 부터였지, 현의태감?"

"흥! 내가 잠시 방심하여 수세에 몰렸지만 넌 나를 이길 수 없다. 내가 바로 황궁 제일인이다."

"하하! 그대가 황궁 제일인이라고? 아니지. 그대는 황궁 제일의 미치광이에 불과하다. 뇌전류!"

빛살과 같은 빠른 검이 현의태감을 향해 쇄도했다.

채앵 챙!

"팔검수화진검류!"

채애앵 챙 채애앵!

현의태감은 현수의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수세에 몰리기는 했지만 거침없는 공격을 막아 내는 현의태감 역시 대단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제황경! 제황지로!"

"헉! 천밀밀!"

쾅!

현수는 놀라서 현의태감을 보았다. 제황경이라니……!

제황경은 황족만이 익힐 수 있는 황족의 호신 무공이었다. 현수 역시 황궁의 무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황족만이 익힐 수 있는 제황경을 현의태감이 익히고 있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번에는 현수가 현의태감에게 물었다. 현의태감은 현수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정난이 가져다주었지."

정난이라는 이름을 들은 현수는 수혈을 짚여 자고 있는 정난 희비를 보았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난 희비와 현의태감의 관계. 그 생각이 3황자에게 미치자 다시 물었다.

"그럼 3황자는 그대의 아들인가?"

"그렇다. 그게 아니면 왜 내가 3황자의 편에 섰겠나."

"물어보는 김에 하나 더 물어보자. 난화 군주 역시 그런가?"

"아니, 그 아이는 황제의 딸이지. 이제 죽어 주어야겠다. 오늘이 지나면 황제가 바뀌어 있을 것이다."

현수는 현의태감에게 용천검을 겨누었다. 그 모습에 현의태감은 흠칫했다. 이제까지 보였던 기세와는 천지 차이였다.

"나, 멸친어린천룡군 이현수는 그대에게서 현의태감의 직위를 박탈하고 참수형을 내린다. 또한 폐하의 여인으로서 외간 남자와 간통을 한 정난 희비에게서 비라는 직위를 박탈하고, 평민으로 강등하여 참수형을 내린다. 또한 3황자는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는 하나, 수십 년간 폐하를 속여 온 그 죄를 물어 천금뇌옥에 종신토록 수감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난화 군주에게는 역도들에게 동조한 죄를 물어, 10년간 난화궁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명한다."

현의태감은 멸친어린천룡군이라는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제 역시 바보가 아닌 이상은 황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설마 현수를 사주해서 자신을 견제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제조상궁에게 들은 멸친어린천룡군이라는 놈이 현수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군. 늙은 황제가 이제껏 우리를 가지고 논 것이었군. 그랬어. 그대가 황궁에 입궁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꼬였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황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게 나의 실수였다."

현의태감은 이 모든 것이 황제가 꾸민 일이라 생각했다.

"령은 지금 당장 폐하를 속이고 천하 만민을 속인 대역죄인인 3황자를 잡아 대전으로 압송하라. 또한 천밀위사들과 지밀원의 무사들을 동원해 동창과 금의위의 장악하라."

"알겠습니다, 군!"

허공에서 령이 나타나는 것을 본 현의태감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손에 들려 있는 연검을 고쳐 잡았다.

그 보습을 본 령은 괜한 호승심이 일어났다.

"현의태감은 순순히 검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나 봅니다."

"넌 가서 3황자를 잡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반항이 심하면 추밀원의 고수들을 이용하라."

"예!"

령이 사라졌다. 현의태감은 령을 붙잡고 싶었지만 눈앞에 있는 현수라는 인간 역시 자신이 전력을 다해야 이길 수 있는 상대라 판단하고, 령이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는 잠들어 있는 정난 희비를 보았다.

"미안하다, 정난."

현의태감의 검이 정난 희비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수혈이 짚여 있어서인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현수는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오라! 내 모든 것이 끝났다 하여도 너만은 꼭 데리고 가겠다."

현의태감은 현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반란을 일으키려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넌 잘못된 사랑에 눈이 어두워 그런 짓을 꾸민 것이로구나."

"후후! 잘못된 사랑을 위한 반란이라… 난 그런 건 모른다. 난 정난을 사랑했고 또한 나의 아들을 사랑했다. 만일 황제가 1황자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다면 난 가만히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제가 2황자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자 난 기대를 했다. 나의 아들이 황제가 되면 난 더 이상 정난과 숨어서 만날 필요가 없으니까. 그게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황제였다."

현수는 용천검을 들어 올렸다. 자신 또한 구미호를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현수는 현의태감의 눈을 보는 순간 그가 정말 정난 희비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이고 역모는 역모였다.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행복하기를 바라오, 현의태감 왕평 대인!"

"내,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채애앵!

무공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두 사람의 공방은 어지럽게 계속되었다. 이미 방은 두 사람의 싸움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와장창!

"이런!"

현의태감이 몸을 날려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갔다. 현수는 현의태감이 도망가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서둘러 뒤를 쫓았다.

샤샤샤샤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달렸다. 정난 희비의 궁은 상당히 넓었다.

"이얏!"

달리다가 먼저 공격한 것은 현의태감 왕평이었다. 현수는 텀블링을 하듯 몸을 옆으로 회전시키면서 횡으로 그어지는 검을 피하고는 현의태감과 거리를 벌렸다.

현의태감은 거리가 벌어지자 지체 없이 또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런!"

현의태감은 동창과 금의위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려 했다. 비록 역모는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것만이 자신이 죽어도 3황자가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비록 천금뇌옥이라는 감옥에 후송될지라도 살아만 있으면 기회는 온다고 생각한 현의태감은, 혼신의 힘을 다해 현수에게서 달아나려고 했다.

"뇌전류!"

어두운 밤하늘에 한 줄기의 빛이 쏘아져 나갔다.

뒤에서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한 현의태감은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제황경, 제황지도!"

쿠앙!

"헉헉!"

"여기까지인 것 같소이다, 현의태감."

서로 대치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막이 흘렀다.

둘은 눈싸움이라도 하듯 서로 마주 보고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그대로 정지되어 버린 듯했다.

휘이잉!

바람만이 두 사람의 옷깃을 스치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타앗!"

"이얏!"

서로의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일어났다. 계속되는 칼부림에 둘 다 조금씩 지쳐 갔다.

"헉! 이렇게 강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현의태감, 당신 역시!"

현의태감은 현수의 무공에 내심 많이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익힌 제황경은 초일류의 무공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비록 10개의 전설이 있다고는 하지만 제황경 역시 그에 못지않은 무공이라고,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난 무공이라고 생각했다.

현의태감은 황제를 떠올렸다.

"역시 황제는 황제였어. 모두가 안심을 할 때 폭풍같이 몰아쳐 반란을 진압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언제였나?"

현의태감은 황제가 현수에게 모든 일을 지시한 줄로 알고 있었다.

"영취궁에 자객의 습격이 있었을 때부터다."

"그렇군. 영취는 황제가 가장 아끼는 아이지. 건들지 말아야 할 아이를 건드린 것이 실수였군."

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끝을 내야지."

두 사람은 다시 격돌했다. 방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싸울 때보다 많은 무공들이 부딪쳤다. 현의태감은 현수의 목을 가져가기 위해서 다소 무리하게 기력을 사용했다.

현수는 운중비록과 스탯을 전부 민첩성에 투자했다는 이점 그리고 용천검이라는 최상급의 아이템을 앞세워 현의태감을 상대했다.

"천밀밀!"

콰앙!

"호심발도술!"

"컥!"

호심발도술!

검법이 정확하고 섬세한 동작을 생명으로 한다면, 도법은 저돌적인 빠름과 정확함이 생명이기에, 현수가 구파일방의 도법들을 합쳐 만들어 낸 일초식이 호심발도술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구미호를 생각하는 현수의 마음이 담긴 도법으로, 뇌전류의 빠르기에는 못 미치지만 파괴력만큼은 현수가 익힌 그 어느 무공보다 강했다.

현의태감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간 용천검은 다시 검갑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렇게 끝나는가. 그러고 보면 나의 삶도 결코 후회스럽지는 않군."

현의태감은 자신의 허리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보고 현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현수는 방심을 했다.

"타앗! 제황경, 제황천력!"

현의태감의 손바닥이 번개와 같이 움직였다. 마치 이번 한 수에 모든 것을 건 듯 제황천력의 장세는 강했다.

"이런……! 천밀밀!"

용천검을 움직여서 검막을 형성해 현의태감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크억!"

쿠웅!

현의태감의 제황천력은 급하게 시전한 방어 무공인 천밀밀을 뚫고 현수의 복부에 직격했다. 현수는 그 충격으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쳤고, 곧 땅으로 떨어졌다.

"쿨럭!"

현수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체력 게이지는 이미 하강하기 시작했다. 현수는 입 안에 벽곡단 2개를 넣고는 씹었다.

"젠장! 쿨럭!"

피와 함께 입을 통해 토해 낸 것은 내장의 부산물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현의태감은 많은 기력을 소모했는지 비틀거리며 현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검을 앞으로 내밀어 현수의 심장을 향해 찔러 갔다.

"크악!"

현수는 나무에 기댄 채로 몸을 움직였으나,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게 복이 되었을까? 현의태감의 검이 현수의 어깨를 뚫고 나무에 깊이 박혀 버렸다.

내력의 소모가 심해서인지 아니면 체력의 소모가 심해서인지, 현의태감은 검을 뽑지 못하고 현수가 떨어뜨린 용천검을 바라보았다.

"좋은 검이군."

현의태감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땅에 떨어진 용천검을 주워 놈을 찌르기만 하면 자신이 이기는 것이었다.

"내가 이긴 것 같구나."

"제길! 하지만 난 아직 살아 있어!"

소리쳐 봤지만 어깨를 관통해서 나무에 박힌 검으로 인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제 죽여 주지."

현수는 용천검으로 손이 가는 현의태감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지?'

용천검을 들어 올리는 현의태감을 본 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퀘스트였다. 만일 자신이 죽으면 용천검을 현의태감에게 빼앗겨 버린다. 게다가 현의태감을 죽이지 못하면 그는 결국 역모를 성공할 것이고 또한 자신을 비롯한 천연회의 모두가 황궁에 쫓겨야 했다.

현수는 두 눈을 감고는 어깨에 박혀 있는 검을 움켜쥐었다.

"으아아아악!"

고통으로 소리치며 검을 뽑으려는 현수의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현수가 고통을 느끼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워서인지, 현의태감은 용천검을 한 번에 내려치지는 않았다.

"악! 이……!"

용천검이 현수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체력은 계속해서 떨어져 이미 바닥을 보였다. 현수는 마지막 힘까지 내어 어깨에 박혀 있는 검을 뽑으려 했다.

"노력은 가상하다만 그게 쉽게 뽑힐까?"

현의태감은 또 한 번 현수의 다리를 향해 용천검을 내리그었다. 고통은 순간적인 힘을 낼 때 도움이 된다는 말처럼, 현수는 이를 악물고 어깨에 박혀 있는 검을 뽑으려 했다.

슈웅!

"아아아악!"

"컥!"

인간의 정신력은 가끔 불가능을 가능케 할 때가 있다. 현수는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에서 검이 빠져나오면서 현의태감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 현의태감은 검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헉헉!"

"내가… 내가……."

현의태감은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신형이 무너졌다.

숨을 몰아쉬는 현수를 보는 현의태감은 아쉬웠는지 두 눈을 끝내 감지 못했다.

-퀘스트를 마칩니다. 퀘스트 보상은 대학사에게 받으면 됩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많은 출혈로 인해 체력이 떨어집니다.

레벨 업을 해서 체력과 기력을 모두 채웠지만, 출혈은 의원에게 가거나 붕대를 감아 지혈을 해야 했다. 현수는 빠르게 떨어지는 체력을 보고서 인벤토리를 열었지만 붕대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급해졌다. 현수는 벽곡단을 복용했다.

"제길! 어깨와 다리에 생긴 상처가 너무 심해 출혈이 멈추지 않는군."

의원을 찾아가는 현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체력이 일정량까지 떨어지면 벽곡단을 먹어 체력을 채우면서 움직였다.

-체력이 떨어집니다.

"젠장!"

그렇게 벽곡단을 20개째 입에 넣고서야 의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서 지혈을……!"

의원은 놀라서 현수의 상처를 보았다. 어깨와 다리에서 계속해서 배어 나오는 피를 급히 지혈시킨 의원 덕분에 현수는 살 수 있었다.

'다행이다. 그런데 애들이 일을 잘 처리했는지 모르겠네.'

"당분간 치료를 받으셔야겠습니다."

현수는 의원의 말을 듣고 나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건은 동창 제독을 상대로 힘겹게 이길 수가 있었다. 동창 제독의 무공은 건이 생각한 것보다 강했다. 건은 승천도법의 승천도를 사용하고 나서야 간신히 그를 이길 수 있었다.

만약 동창 제독이 건을 얕보지 않았다면 그가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건은 그 길로 황궁을 나갔다.

다른 사람들 역시 힘겹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독 화화공자만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호호! 귀여운 분이 그런 무식한 것을 들고 있으니 소첩의 심장이 멈출 것 같습니다."

화화공자가 맡은 사람은 다름 아닌 제조상궁이었다.

"제길! 이 할망구가 어디서 요사스럽게 웃고 난리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작 화화공자는 제조상궁에게 살수를 펼칠 수가 없었다. 눈웃음을 보일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호호! 저를 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슈우웅!

"헉!"

순간 거리를 좁혀 와 손톱을 무기로 공격하는 제조상궁이었다.

"이 아줌마가!"

"캭!"

화화공자의 주먹이 제조상궁을 향해 뻗어 나가자 제조상궁이 비명을 질렀다. 화화공자의 주먹이 제조상궁의 가슴 앞에서 멈추었다. 화화공자는 왜 자신이 손을 멈추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호호! 귀여운 분이 엉큼하기도 하셔라."

"윽!"

제조상궁은 화화공자의 두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을 향해 당겼다. 난감해진 화화공자는 어찌할 줄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아이! 공자의 손은 무척 부드럽군요."

화화공자는 제조상궁에게 놀림을 받고 있는 것이 화가 났지만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제조상궁의 무공은 소녀궁의 무공이었다. 제조상궁은 황제의 상궁 시절, 황궁 무고에서 소녀궁의 무공을 찾아 황제 몰래 가지고 나와 익혔다.

주안술과 미염공이 주를 이루고 있는 소녀궁의 무공은 제조상궁의 손에서 완벽하게 재연되었다. 화화공자는 이미 제조상궁의 미염공에 당했다.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호호! 제가 나이가 많은 것이 싫지 않다면… 밤이 끝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답니다. 호호호!"

"이 할망구가! 난 아직 여자와 한 번도 자 보지 못한 총각인데 어디서 눈독을 들여?"

화화공자는 억울한 것처럼 말했다. 자신의 두 손이 아직 제조상궁의 가슴에 있는 것을 보자 빼려고 노력했지만, 제조상궁의 악력은 실로 대단했다.

"호호! 그럼 제가 잘 가르쳐 드릴게요."

순간 제조상궁이 손을 움직여 화화공자의 혈도를 짚어 버렸다.

"어!"

꼼짝하지 못하게 된 화화공자는 제조상궁에 의해 옷이 하나씩 벗겨져 그녀의 침대에 눕혔다.

"아이, 귀여워."

화화공자는 점점 무서워졌다. NPC에게 강간당한 자신을 보고 친구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가 먼저 생각났다. 자칭 선수라고 우기는 화화공자였지만 정작 여자에게는 말을 잘 걸지도 못하는 숙맥이었다.

"제발! 아줌마, 아니 누님! 제발!"

그는 빌고 또 빌었지만 제조상궁은 눈앞의 먹이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호!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친절하게 설명을 해 드리면서 잘 가르쳐 줄게요, 나의 귀여운 도련님!"

제조상궁은 자신의 침대 밑에서 상자를 하나 꺼냈다.

"뭐야? 이 미친 아줌마가……! 풀어 줘!"

"이제 즐거운 시간이에요."

상자를 열어 그 안에서 채찍을 꺼낸 제조상궁은 화화공자를 향해 휘둘렀다.

"악!"

"아픔은 순간이랍니다."

휘리릭!"

"커억!"

허공을 수놓은 채찍이 사정없이 화화공자의 온몸을 두들겼다.

"호호!"

제조상궁의 얼굴에서 기이한 열기가 묻어났다.

"악!"

"호호!"

제조상궁은 상자에서 다른 것을 꺼내었다. 몽둥이처럼 생긴 물건이었는데, 일반 몽둥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도깨비 방망이와 같다는 것이었다.

"헉!"

화화공자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저 방망이로 자신을 때리는 건 아닐 거라며 위안을 해 봤지만, 바람과는 달리 제조상궁은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크악!"

제조상궁의 방에서 점차 웃음소리와 비명 소리가 앙상블을 이루며 조화를 맞추어 가고 있었다.

-사망하셨습니다. 60레벨 대의 페널티를 적용합니다. 페널티는 다음과 같습니다. 1레벨이 다운됩니다. 익히신 무공 중 하나가 사라집니다. 착용하신 아이템 중 3개가 드롭됩니다. 마을에서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화화공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서 배우고 익힌 무공인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무공서야 현수에게 부탁을 하면 된다고 해도, 처음부터 다시 익히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또한 착용한 아이템이 1개도 아닌 3개나 드롭되어 앞이 깜깜해져 왔다.

'젠장!'

제조상궁은 화화공자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유희거리가 사라져 버린 게 조금 아쉬웠다. 그녀는 화화공자의 품에서 3개의 아이템을 벗겨 내고는 자신의 방 한쪽에 치워 놓았다.

"이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금 황궁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대학사를 만나야 된다."

제조상궁은 그 길로 대학사를 찾아갔다.

* * *

어느덧 바쁜 밤이 지나가고 황궁은 아침을 맞이했다.

황궁의 아침은 어느 때보다 바빴다.

지밀원의 무사들은 현의태감과 관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동창과 금의위는 순간 공황에 빠졌다. 두 수장이 역모에 가담을 한 것이 밝혀지자, 동창과 금의위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다. 새로운 동창 제독과 금의위 전주를 뽑을 때까지 천밀위와 지밀원에서 그들을 관리하기로 했다.

대학사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황제가 현의태감의 일을 마무리하는 대로 내각을 몰아붙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대학사는 정빈과 1황자를 황궁 밖으로 피신시켰다.

대학사는 죽은 현의태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현의태감이 거사를 일으키면 필시 1황자를 죽이려 할 것이라 느껴 두 사람을 피신시킨 일이 도움이 되었다. 이제 자신만 빠져나간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사는 자신이 황궁에서 빠져나는 것을 도와주고 또한 1황자와 정빈을 세외로 도망치게 해 줄 이를 생각했다. 그러자 1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대학사는 생각나는 1명의 인물을 찾아 자리를 떠났다.

3황자와 난화 군주는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황제와 령은 3황자가 황제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황자의 앞에서 차마 왕평의 자식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무엇이 부족했더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3황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황제는 그런 3황자를 보고 연민을 느꼈다.

"그래, 너의 가슴이 무엇을 시키더냐?"

황제가 3황자에게 물었다. 뭐라고 대답할지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사내로 태어나 천하를 논하는 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는 모르오나, 천하의 주인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라고 가슴이 시켰습니다."

"천하를 논한다……. 이미 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

"자신의 처지에 만족을 하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아바마마께서 1황자 형님께 천하를 물려주려 하였다면 소자는 그냥 현실에 만족을 했을 것이옵니다. 하나 1황자 형님이 아니라 2황자 형님에게 주려 한다면 저 역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제는 3황자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일 자신이 왕평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황제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이미 끝난 일이었다. 황제는 이 같은 사실을 끝까지 숨기기로 했다.

"역모의 주모자인 영민을 천금뇌옥에 가두어라. 오늘부터 영민은 황족이 아니라 평민이 될 것이다. 또한 천금뇌옥에서 종신토록 평민에 맞는 대우를 받게 하라."

"아바마마!"

2황자가 황제를 보고 외쳤지만, 황제는 2황자가 소리치는 모습을 외면했다.

"난화 군주는 10년간 난화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난화궁은 황궁의 금지로 정해 출입을 제한한다. 또한 난화궁에 소속된 모든 이들은 다른 곳으로 다시 배정을 할 것이다. 난화는 난화궁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난화 군주는 말이 없었다. 그저 3황자와 같이 천금뇌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오라버니! 힘드셔도 참으세요. 제가 황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정보를 오라버니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고맙다. 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난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저기 아바마마가 있는 저 자리에 당당히 앉을 것이다.

두 사람이 전음으로 대화를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현수는 자신의 거처에서 누워 있었다. 미랑과 미령은 북방에서 돌아와 현수를 간호하고 있었다.

미랑은 처음에 현수가 다쳐서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울컥했다. 그 뒤부터 미랑은 현수의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령은 그런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쳐 누워 있으니 미랑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고 생각해서였다. 미령은 그런 미랑의 모습에서 조금씩 사랑이라는 것을 배워 갔다.

미랑과 현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미령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대학사 어른께서 오셨습니다."

"드시라 해라."

대학사가 들어오는 것을 본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대학사가 미랑을 보았다.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미랑은 밖에 나가서 차를 가지고 오너라."

"네, 나리."

미랑이 나가자 대학사는 주머니에서 전표를 꺼내었다. 천화 상단의 전표로, 황궁에서 사용하는 전표가 아니었다. 천화 상단의 전표는 무림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좋아 보이는군."

현수는 전표에 적혀 있는 액수를 확인한 후 대학사를 보았다. 금전 5만 냥의 전표가 아니라 7만 냥의 전표였다. 현수가 왜 더 많은 액수의 전표를 주었는지 물었다.

"세외로 갈 것이네. 그동안 우리를 쫓지 않았으면 하네. 아마 세외로 가면 영원히 들어오지 않을 것이네."

"하나 그것은 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폐하의 뜻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우리가 세외로 갈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음!"

현수는 생각했다.

미랑이 차를 가지고 와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다시 나갔다. 그때까지 현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부탁이네. 난 처음부터 생각을 해 보았다네. 그래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네."

"……."

대학사는 현수가 황궁에 입궁한 시점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일을 짚어 보고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각에서 무림과 손을 잡고서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자네는 그 중심에 있는 전 하남성주를 죽였고 또한 천유 서림에서 추진하는 일을 분쇄하지 않았나?"

"……!"

"이미 모든 것을 잃었네.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말이야. 하지만 자네에게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 이유는 나의 딸아이와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이네. 그러니 부탁하네."

현수는 생각에 잠겼다. 대학사의 마음과 자신은 별개였다. 중요한 것은 구미호의 복수였다.

황제가 이들을 잡으면 죽이지 않고 천금뇌옥에 가둘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현수는 대학사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현수는 결코 이들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나 저와 약속을 하나 해 주십시오."

"무슨 약속?"

대학사는 내심 불안했다.

"무림과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무림과 황궁은 불가침의 약조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학사는 세외로 나가 만사신군의 악마록을 찾으려 했다. 만일 악마록을 얻어 1황자가 힘을 찾으면 다시 세력을 일으켜 역모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사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먼저 1황자와 정빈을 살려야 하니 현수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네. 그렇게 하겠네."

대학사는 현수의 방을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서둘러 피신할 준비를 했다. 이미 1황자와 정빈이 황궁을 빠져나갔으니,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몇 명만 더 빠져나가면 되었다.

그동안 현수는 상처가 나았어도 계속해서 방에 누워 있었다.

황궁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1황자의 내각은 이미 세외로 빠져나갔다.

황제는 1황자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나름대로 복안이 있는지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또한 그는 환관에게 맡겼던 권력을 찾아 직접 다스렸다.

제조상궁은 끝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는 목숨만큼은 지킬 수 있었다. 제조상궁은 난화궁에서 난화 군주와 생활했다.

천의 유저들이 느끼지도 못한 사이, 거대한 폭풍이 한차례 천을 강타하고 지나간 셈이었다.

* * *

"다행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끝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수빈과 형욱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고생했습니다."

"하하!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참! 천이 에피소드 2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에피소드 2부터가 천의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에피소드는 총 5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빈이나 형욱 역시 에피소드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오직 천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천에게 들은 내용을 서로 이야기했다.

"이제부터 시작이군요."

"그렇습니다. 아직 불안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잘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일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우연찮게 일마의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일마뿐만 아니라 모니터링이 불가능한 유저들 모두를 찍었습니다. 그들이 이번 황궁의 난의 주역들이더군요. 다만 아쉽게도 일마를 제외한 모두가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수빈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영상은 편집했겠죠?"

"네, 편집을 마쳤습니다. 러닝 타임이 2시간 45분입니다. 웬만한 영화 한 편보다 낫습니다."

"좋아요. 그럼 동영상을 판매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황궁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보여 주면 유저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유저들이 레벨과 사냥에 중점을 두었다면, 동영상이 판매되고 난 후에는 다른 것에도 눈을 돌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럼 동영상의 판매 수익에 대해서 그들과 이야기해 보아야겠군요."

"그래야 할 것입니다. 비록 동영상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사생활에 침해가 되는 일이니, 그들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 사람은 동영상을 판매해서 벌어들일 수익의 분배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합의점을 찾았다.

"그렇게 하세요. 수익의 7%를 그들에게 주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해서 우편으로 보내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문화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문화 방송국에서 왜요?"

수빈은 방송국에서 연락이 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동영상과 그 외의 다른 것들은 BS 그룹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영상의 제작, 판매는 방송사와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드라마 제작 때문입니다."

"드라마 제작이라니요?"

"방송국과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지만 천을 무대로 드라마를 제작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게임 영상을 편집해서 드라마를 만들 생각인가 보죠?"

그것 말고는 천 안에서 드라마를 찍을 방법이 없었다.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막대한 CG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판타지물을 만든다고 했을 때 어떻게 보면 싸게 먹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대본이나 상황을 만들어 준 후 배우들을 모두 천에 접속하게 해서 찍은 영상을 편집하는 방법으로 만들 것 같습니다."

수빈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그래도 방송에 대한 이득은 챙겨야겠지요. 참! 그리고 형욱 씨는 휴가를 다녀오세요. 업데이트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날 때까지 푹 쉬세요. 그러고 나서 일마 이현수의 일행이 에피소드 2에서 어떻게 우리의 피를 말릴 것인지 생각해 본 후 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하하! 그렇게 하지요. 천에 접속해서 일마 이현수를 한번 만나 봐야겠습니다. 가능하면 제발 사고 치지 말라고 빌고 싶습니다."

"호호! 그렇게 하세요. 저 역시 한번 만나 보아야겠습니다."

황궁의 난이 무사히 넘어갔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얼굴에는 모처럼 밝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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