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랑의 납치
현수는 홀로 무공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미랑에게 실전 연습을 시키는 것과 자신의 레벨 업을 제외하고는 오직 무공 수련뿐이었다.
"무공 창 오픈!"
운중비록 : 10성
-보법 : 운중난화무, 운중무영보, 운중광속신형보
-경신법 : 운중탄영신, 운중무영신
살황의 일기장 : 10성
-지둔술, 추적술, 탐지술, 은신술, 잠입술(운중비록을 토대로 사용할 수 있음)
-뇌전류 :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한 줄기 빛과 같은 빠름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
민첩성+300%의 타격을 준다.
팔검수화진검류 : 10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검법만을 모아 ≪만자무서≫를 통해 합쳐 만든 무공으로, 일초식의 검법이지만 여덟 가지의 변화가 숨어 있다.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순발력+250%의 타격을 준다.
현천파열권 : 8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권법만을 모아 ≪만자무서≫를 통해 합쳐 만든 무공. 일초식의 권법으로, 총 여덟 번의 주먹을 빠르게 휘두를 수 있다.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순발력+180%의 타격을 준다.
호심발도술 : 10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초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도법과 살황의 일기장의 뇌전류를 합쳐 ≪만자무서≫를 통해 만든 도법.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민첩성+300%의 타격을 준다.
천밀밀 : 8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호신기공으로 만든 무공으로, 검으로
검막을 만들어 적의 공격을 방어한다.
기력을 사용해 방어한다.
방어력+180%
≪만자무서≫
등급 : 무
설명 : 두 가지 이상의 무공을 합쳐 새로운 무공으로 만들 수 있는 무서.
구파일방의 무공을 합쳐 만든 무공들 역시 많은 성과가 있었다. 호심발도술과 팔검수화진검류는 이미 10성에 이르렀다.
또한 현천파열권과 천밀밀은 8성에 이르고 있었다.
검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뻗어 나가는 듯하면서도 휘고, 휘는 듯하면서도 곧게 뻗어 나갔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검의 궤 역시 변했다.
현수는 한참 동안 검무를 추고는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중비록의 무공을 풀어 보고 있는 것이었다. 있는 듯하면서 없고, 없는 듯하면서 있고, 빠른 듯하면서 느리고, 느린 듯하면서 빠르며, 움직이는 듯하면서 멈추어 서 있고, 서 있는 듯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바로 운중비록의 요결이었다.
현수는 운중비록의 요결을 다시 새기면서 움직였다. 현수는 곧 무아지경에 빠져 들었다. 마치 자신은 가만히 서 있는데 주위의 환경이 변화하는 것처럼 느꼈다.
현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차가운 바람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또한 시야가 더욱 넓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공 수련은 할 수 없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있다. 인간의 뇌파를 조작해 만든 게임이라 노력만 하면 무협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경이니 진경이니 하는 것을, 천에서는 이룰 수가 있다.'
현수가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현수는 새로이 알아낸 사실에 즐거워했다. 또한 도전도 해 보고 싶었다.
'가능하면 게임을 그만두기 전까지 그 경지를 이루고 싶다.'
자신의 파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미령은 돌아오는 현수를 보고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왜 그러느냐?"
"미랑이와 함께 계시지 않으셨사옵니까?"
현수가 무공을 연습하러 간 후에 한 병사가, 현수가 찾는다 하며 미랑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그 병사가 누군지 알겠느냐?"
"모르옵니다. 미랑이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는 급히 가는 통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사옵니다."
이곳에서 병사가 미랑을 찾을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미령은 현수의 기세에 몸을 떨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미령이 현수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현수는 몸을 떨고 있는 미령을 보고, 자신이 흥분한 사실을 깨닫고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알겠다. 미령이 넌 너의 일을 하거라. 내가 찾아보겠다."
그때, 현수는 한 병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전령이었다.
"나리! 이것을……."
고개를 숙이고 서찰을 전하는 전령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돌아가려고 했다.
"이것을 누가 나에게 가져다주라 했느냐?"
"진무 장군님이십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 서찰 안에 적혀있다는 말도 함께 하셨습니다."
현수는 서찰을 읽어 보았다.
이렇게 변방에서 생활하시는 데 불편함이 없는지 모르겠소이다. 이렇게 서찰을 보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대의 시비를 내가 데리고 있기 때문이오. 그대의 시비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내가 잠시 실례를 했소이다. 아시다시피 이곳은 여자라고 해 봐야 군인들뿐이니. 그대의 시비를 보는 순간 내가 잠시 실수를…….
현수는 서찰을 읽는 동안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당장 진무 장군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냐! 죽고 싶단 말이지. 죽여 주마.'
현수의 살기에 미령은 숨이 막히는 듯 땅에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현수는 살기를 거두고는 서찰에 적혀 있는 장소로 가려고 했다.
"나리!"
미령은 힘겨운 듯 현수를 불렀다. 현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몸을 숙였다.
"소녀는 괜찮습니다, 나리. 미랑이를 꼭 구해 주십시오."
미령 역시 현수의 살기를 느끼고는 미랑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겠다. 넌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들어가 쉬어라."
현수는 몸을 돌렸다. 미령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보았다.
'나리가 보았을까?'
현수의 살기에 그만 옷에 실례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 보았으면 안 되는데.'
미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파오를 향해 달렸다.
현수는 진무 장군이 기다리고 있는 야생마의 서식지로 향했다. 가는 동안 매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모른 척 그냥 지나간 현수는 야생마의 서식지 앞에서 몸을 숨겼다.
"컥!"
"나를 너무 쉽게 본 너희들의 잘못을 탓해라."
현수는 다시 돌아와 매복을 하고 있는 자들을 죽여 나갔다. 그들은 자신이 죽는 것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현수의 신형은 빨랐다. 진무 장군이 이미 자신이 온다는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는, 시간상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 운중비록을 최대한 펼치고 있었다.
매복하고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인 현수가 다시 나타난 곳은 야생마의 서식지 앞이었다. 야생마의 서식지에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것은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들이었다.
현수는 야생마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서식지에도 매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들은 죽일 수가 없었다. 그들을 죽인다면 곧 그 사실이 진무 장군의 귀에 들어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야생마의 서식지 중간에 작은 통나무집이 보였다. 오가는 사람들이 휴식처로 사용하는 곳으로, 유저들이 그곳에서 쉬면 빠른 속도로 체력을 채울 수 있다. 천에는 이런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현수는 통나무집 근처까지 가서야 나무에 묶여 있는 미랑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진무 장군이 차를 마시고 있는 것 또한 보았다.
현수는 미랑과 진무 장군을 보자 참고 있던 살기를 뿜어내었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땅에 발목까지 파고 들어갔다.
"하하! 어서 오시오, 순찰사님!"
"무엇 때문에 미랑이를 잡고 있는가?"
현수의 음성은 높낮이가 없었다. 그만큼 화가 났다는 것을 진무 장군에게 보여 주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학사께서 순찰사의 목을 원하고 있으니 내 어찌하겠소."
진무 장군은 현수를 죽이기 직전처럼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럼 이제껏 사마 장군을 노린 것은 네놈의 짓이군."
"뭐,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대만 없어지면 말이오."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묶여 있는 미랑의 몸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본 현수는 걱정이 되었다.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미안하오. 하지만 아직 손은 대지 않았소. 난 여자에게는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 말이오. 다만 조용히 일을 끝내고 돌려 보내려 수혈을 짚었을 뿐이오."
현수는 수혈을 짚었다는 말에 안심을 했다.
"고맙다. 그 대가로 너에게 깨끗한 죽음을 주겠다."
"하하, 순찰사 나리! 무엇인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구려. 그대의 무공이 높다고는 하나, 나 역시 장수요. 그대가 나에게 올 시간 동안 나의 검이 시비의 목을 떨어트리는 것은 일도 아니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 보겠느냐? 내가 빠른지, 너의 검이 빠른지."
자신 있게 말하는 현수를 보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현수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하하!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진무 장군은 검을 빼어 미랑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마치 움직이면 자신의 검 역시 움직인다는 것을 보이는 듯했다.
'빌어먹을! 그냥 보자마자 죽였어야 하는데.'
현수는 살황의 일기장 첫머리에 적혀 있는 말을 실행치 못한 것을 후회했다.
"순찰사 나리! 그만 검을 버리는 것이 어떻소?"
현수는 검을 버려야만 했다. 진무 장군의 검에 의해 미랑의 목에서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턱!
"하하! 과연 장원급제한 실력만큼 빠른 판단이오."
찰나의 시간만 있으면 놈을 미랑에게서 떼어 놓을 수 있는데, 자신이 그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만 것이었다. 현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젠장!'
현수가 검을 버리자 다른 장수 하나가 현수에게 다가왔다. 서둘러 몸 수색을 해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진무 장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 장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옆에 있는 장수의 주먹이 현수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윽!"
이어 발길질에 의해 땅에 뒹굴어야 했다.
'젠장!'
"하하! 순찰사께서 땅에 뒹구는 모습이 아주 능숙하게 보입니다그려."
"이제 여자는 보내 주지."
현수에게는 미랑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지금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적룡의 고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자신이 마음 놓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먼저 미랑을 돌려보내어야만 했다.
"하하! 순찰사 나리도, 이렇게 궁벽한 북방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그냥 보내 주라는 말은 조금 박정한 것 같지 않소? 내 비록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나의 수하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넓은 초원에서 남녀가 눈이 맞아 도망가는 일은 비일비재하오."
현수는 자신을 공격하는 장수의 얼굴에서 기이한 욕망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화가 나는 것을 억눌렀다.
"장담하건대 너희들을 그냥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대학사를 비롯해 연판장에 서명을 한 모든 이들 역시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현수의 말에 흠칫하는 진무 장군이었다.
연판장은 그 누구도 몰라야 할 사실이었다. 혹시나 연판장이 황제의 손에 들어가는 날에는, 자신은 물론 구족이 멸족 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진무 장군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현수에게 다가갔다.
"연판장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지?"
"알려 주면 내가 바보지, 안 그래? 그리고 내게서 3일간 연락이 없으면 연판장은 폐하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진무 장군은 현수의 말을 듣고 그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후후! 하지만 고통은 배가될 것이다. 연판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라."
"알겠습니다."
현수를 무작위로 구타하는 장수는 흥에 겨웠다.
"윽! 악! 컥!"
시간이 지나도 현수가 입을 열지 않자 답답해진 진무 장군은 미랑을 보았다.
"멈추어라."
구타를 하고 있던 장수가 멈추었다. 현수는 맞으면서 진무 장군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혔다. 진무 장군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후후! 좋아,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도 방법이 있지."
찌이이익. 찌익!
미랑의 옷이 찢겨 나갔다.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랑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안 돼!"
진무 장군의 손이 미랑의 가슴에 놓였다.
"흐흐! 속살이 뽀얀 것이……."
현수의 전신에서 살기에 폭사되었다. 진무 장군은 현수의 살기를 받으면서 흠칫했다.
"그것으로 너의 죽음은 더욱 당겨졌다. 운중비록, 운중광속신형보! 현천파열권!"
순간 현수의 주먹이 거리를 좁히며 진무 장군의 얼굴로 향했다. 진무 장군은 흠칫하면서 검을 들었지만, 현수의 신형이 조금 더 빨랐다.
빠악!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무 장군은 현수의 주먹에 안면이 함몰되어 뒤로 날아갔다.
쿵!
통나무집의 벽에 부딪치며 쓰러지는 진무 장군의 모습을 본 장수는 경악했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자리에서 사라진 현수를 본 장수는 서둘러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현수의 손과 발을 피할 수가 없었다.
"현천파열권!"
-현천파열권이 10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림 메시지가 현수에게 보일 리 없었다.
"상관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동참하는 것 또한 크나큰 죄에 속한다."
"크악!"
현수는 떨어진 검을 잡아 먼저 장수의 목을 베고 연달아 쓰러진 진무 장군에게 던졌다.
"커억! 내가……."
진무 장군의 마지막 말이었다. 현수는 수혈을 짚인 미랑에게 다가가서 줄을 풀어 주고는 자신의 웃옷을 벗어 입혔다.
수혈을 다시 짚어 미랑을 깨운 현수는, 미랑이 눈을 뜨는 것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미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저의 잘못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현수는 미랑을 부축하고는 군막으로 돌아갔다.
진무 장군이 죽었다는 소문은 금방 백천군 전체에 퍼졌다.
"어쩌자고 그렇게 경솔한 짓을 할 수가 있는가?"
사마장준은 백천군의 수장으로서, 고작 시비를 구하기 위해서 진무 장군을 죽인 현수를 문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을 해 보게. 난 자네가 정말 시비를 구하기 위해서 진무 장군을 죽였다고는 생각지 않으니!"
현수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있었다.
"이번 일은 황궁에 보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 그러니 각오하고 있게. 여봐라. 이 순찰사를 가두어라."
"제 시비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리!"
현수는 이 말을 남기고 순순히 군막 한쪽에 만들어 놓은 감옥으로 들어갔다.
미랑과 미령이 감옥에 들어와 음식을 넣어 주었다. 사마장준은 음식을 주는 것까지는 관여하지 않았다.
"난 괜찮다. 미령아!"
"네, 나리!"
"미랑이를 부탁하마."
미랑은 눈물만 글썽이고 있을 뿐이었다. 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나가 보아라. 이곳은 아녀자들이 오래 있을 곳이 못 된다."
현수는 돌아앉았다. 미랑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야 했다.
현수는 잠을 청하는 중 약간의 기척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복면을 쓴 자가 나타났다. 야행복에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현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야행복 위로 드러나는 곡선이 여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아버님!"
"미랑 님, 그냥 돌아가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돌아가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이곳을 빠져나가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잊히면 다시 세상에 나오시면 됩니다."
미랑은 구미호의 레어로 함께 도망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현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현수는 그러지 않았다.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냥 돌아가십시오. 전 아가씨와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미랑 님은 아무 걱정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전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현수가 다시 고개를 젓자 미랑은 체념을 하고는 돌아갔다.
현수는 감옥에서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수가 감옥에 갇힌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황궁에서 사신단이 왔다.
현수는 포박을 당한 채 사신단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진무 장군을 살해했는가?"
현수는 사신단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천밀위의 산이었다. 또한 오매불망과 슈우엔 역시 함께하고 있었다.
현수는 산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산, 그대는 폐하의 사람인가? 아니면 대학사의 사람인가? 아니면 현의태감의 사람인가?
천밀위 위사는 현수의 전음에 잠시 당황했지만 전음으로 답을 해 주었다.
-전 폐하의 사람입니다. 그것이 제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포정사사님과 목숨을 함께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는 현수를 사사라 불렀다.
-밤에 아무도 모르게 나를 찾아오라.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
현수의 전음을 들은 그는 흠칫 놀랐지만 아무도 그의 변화를 알아본 사람은 없었다.
"내가 진무라는 장수를 죽인 이유는 하나뿐이었소. 그는 관직을 이용해 나의 시비를 겁탈하려 했기 때문이오."
"뭣이!"
사신단은 현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눈엣가시인 현수를 이번에 처리하려고 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참수하려는 생각이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듯이, 환관과 내각이 입을 모아 현수를 처리하려 했다.
"고작 시비 때문에 나라의 장수를 죽인단 말입니까?"
현수의 몸에서 일어나는 기세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흠칫했다.
"고작 시비라고 했소? 슈우엔! 그대는 어느새 황궁의 생활에 물들어 버렸군. 시비 역시 폐하의 사람이다. 폐하의 사람을 욕보이는 사람은 곧 폐하를 욕보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모르는가?"
현수의 호통에 슈우엔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시비는 폐하의 사람이니 진무 장군은 대죄를 지었군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오매불망은 슈우엔의 말에 정색을 하며 반박했다.
"이 순찰님께서는 시비를 욕보인 진무 장군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찌 저자의 말만을 듣고 그렇게 믿는단 말인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냥 계십시오, 오매불망 공! 이 순찰님의 말씀대로 시비 역시 폐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진무 장군 역시 폐하의 사람입니다. 폐하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폐하뿐이십니다. 한데 이 순찰사께서 진무 장군을 죽였습니다. 이는 곧 폐하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돌려 말하는 슈우엔에게 현수는 당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말 역시 함정이 있었다.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사마 장군님! 저 역시 폐하의 사람인데 황명이 있을 때까지 저를 어찌하시겠습니까?"
순간 오매불망과 슈우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의태감과 대학사는 가는 대로 현수를 참수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슈우엔의 말대로 현수 역시 폐하의 사람이니 폐하의 명이 있을 때까지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음! 폐하의 명이 있을 때까지 다시 가두어라. 경계를 더욱 강화해 이 순찰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
"아니, 사마 장군! 놈은 대역 죄인이오. 그런데 놈을 가두다니! 지금 참수를 해도 시원찮을 것을……."
"그대들은 기다려라, 폐하의 명이 있을 때까지. 그리고 천밀위사는 내일 황궁으로 가서 이 모든 사실을 알리고 어명을 받아 오라."
사마장준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고개를 숙이는 천밀위사였다.
-그대는 밤을 틈타 아무도 모르게 나의 거처로 오라.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천밀위사는 또 한 번의 전음에 흠칫했다. 이번에는 사마장준이 그에게 보낸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밤이 되면 다 알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한 그는 사신단과 함께 정해 받은 파오에서 여독을 풀었다.
오매불망과 슈우엔은 여전히 언쟁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것이오."
"내가 뭘 어찌했단 말이오? 말은 맞지 않소?"
"거 들 조용히 좀 하시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 * *
천밀위사는 밤이 되자 먼저 현수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몰래 들어갔다.
천밀위사가 잠입해 들어오는 것을 느낀 현수는 하남성주의 집에서 가져온 연판장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었다.
-포정사사님!
전음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연판장을 한쪽에 놓았다.
그러고는 전음을 보내었다.
-이것을 폐하께 드려라. 내각이 역모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세력의 연판장이다. 넌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 내용을 보아서도 아니 된다. 폐하께 바로 전해 드려라.
-알겠습니다.
-그대의 두 손에 폐하의 안전과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폐하의 안전이니 나라의 흥망성쇠니 하는 것을 보니 보통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중요한 물건을, 자신을 믿고 맡긴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또한 나의 친구들이 황궁으로 갈 것이다. 연락을 받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황궁에 잠입시켜라.
-알겠습니다.
현수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산은 소리 없이 다시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 나가 사마장준에게 향했다.
"왔느냐?"
"옛, 장군님!"
사마장준의 앞에 부복한 산은 고개를 들었다.
"이것을 받아라."
"이것이……!"
또 하나의 두루마리였다. 현수가 구해 준, 현의태감이 타이오르족에게 중원 진출을 허락한다는 문서였다.
"알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보아서도 아니 된다. 황궁에 도착하는 즉시 폐하께 바로 가져다 드리면 되는 것이다. 폐하 외에는 그 누구 믿지 마라."
현수가 했던 말을 또 한 번 듣는 산이었다. 사마 장군 역시 나라를 생각하는 충신이라 생각했다.
"신, 산이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냐?"
산은 하남성의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함께했던 현수에 대해서 말했다. 또한 2황자를 구했던 이야기도 해 주었다.
"사사님은 절대 함부로 사람을 해칠 분이 아닙니다. 만약 살인을 했다면 그에 대한 이유가 필시 있을 것이옵니다."
"안다. 이 순찰이 진무 장군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가 그 이유를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것은, 더 큰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는 현명한 사람이다. 그의 문제는 그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니 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 보아라."
단지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말했던 산은 사마장준의 말을 듣고는, 역시 윗사람들의 속내는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옛!"
산은 몸을 돌려 다시 빠져나갔다. 산이 감옥과 사마장준의 처소에 다녀갔다는 사실은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날이 밝자 산은 말을 타고 다시 북경으로 향했다. 오매불망과 슈우엔 역시 현의태감과 대학사에게 한 통의 서찰을 부탁했다.
* * *
오매불망이 감옥에 있는 현수를 찾아왔다.
단둘이 대화를 하고 싶다며 주위를 물린 오매불망은, 감옥 안으로 들어가 현수의 맞은편에 앉아 현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사실 놀랐습니다. 장원을 한 사람이 유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말입니다."
"저 역시 사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황궁 서고에 들어가기 위해서 과거를 보았다고요?"
"핑계에 불과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죠. 관리를 하면 고정 수입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뒷돈 역시 엄청나거든요. 본의 아니게 제법 돈도 벌고 있는 중이죠."
"부르주아 백수?"
"넓은 의미로 보면 그렇습니다. 전 단지 게임 머니만 취급 합니다. 그런데 거래를 하는 중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저보다 게임 머니를 많이 판 사람이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
현수는 궁금하다는 눈으로 오매불망을 바라보았다.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저와 거래를 하지 않겠습니까?"
"거래라니요?"
"아직 게임 머니가 많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빵 값과 물약 값이 비싼 것도 있고, 또한 아이템 가격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게임 머니를 파십시오. 시세대로 사겠습니다."
"이상하군요. 아이템을 사기 위해서도 아니고, 게임 머니를 파는 사람이 저에게 시세대로 사는 것이!"
"풀리고 있는 게임 머니를 잠시 묶어 두고, 많은 금액을 한 번에 팔려고 합니다. 물론 저는 시세보다 조금 더 받고 팔려고 합니다."
현수는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자신이 목돈으로 팔면 얼마나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다 따져 보니 그렇게 남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이템을 사고파는 것이라면 현수 역시 일가견이 있지만 게임 머니는 조금 약했다.
"시세보다 10만당 1,000원 더 주시면 몰아 드리겠습니다."
"1,000원이라. 사실 저 역시 1,000원 이상 더 붙여 팔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500원으로 하죠."
"1,000원!"
500원과 1,000원의 싸움에서 결국 500원이 이겼다. 현수에게서 나오는 게임 머니를 전액 10만 원당 500원씩 더 쳐 주기로 하고 오매불망이 사기로 합의를 보았다.
"파실 때 전서구를 보내시면 하루가 넘어가지 않게 전액을 사겠습니다. 참고로 금전 10만 냥 이상을 팔려면 3일은 걸립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는 동업자를 살리기 위해 내각의 세력에서 빠지라는 충고까지 해 주었다. 오매불망 역시 오래 함께할 생각이 아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거래자를 만나 기쁩니다. 그럼 살아남기를 원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처지가 처지인지라 이렇게 배웅을 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일주일이나 흘렀다.
현수는 지금쯤 황제에게 전해졌을 연판장으로 인한 소란을 잠시 생각했다.
감옥에 있는 현수는 돌아가는 상황이 궁금했지만,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보게!"
"부르셨습니까?"
"밖의 소식을 좀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 자네는 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
감옥을 지키는 병사가 황궁에서 일어난 일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현수는 조금이라도 들어야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평온합니다."
"그래? 고맙네."
현수는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아직 황궁에서 일을 처리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산이 중간에서 연판장을……!'
이런 생각이 들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연판장이야 말로 현수가 아무런 피해 없이 이곳에서 황궁으로 돌아가게 해 줄 유일한 물건이었다.
'답답하네, 밤에 사마 장군을 만나 봐야겠다.'
현수는 밤이 되어 감옥을 빠져나갔다.
'살황의 일기장, 지둔술!'
현수의 신형이 땅으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사마장준의 거처였다.
사마장준은 순찰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헉! 자네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알아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곧 감옥으로 돌아갈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수는 사마장준에게 황궁의 일을 물었다. 하지만 사마장준 역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기다리고 있는 중이네. 자네가 구해 준 타이오르족과 왕평이 결탁한 서류를 보내었지만, 아직 황궁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듯하네."
"장군께서도?"
현수의 질문이 이상한지 사마장준이 현수를 보며 되물었다.
"자네 역시 황제 폐하께……?"
"그렇습니다. 전 내각의 대학사와 동조하고 있는 자들의 연판장을 우연히 입수한 적이 있습니다. 산을 통해서 연판장을 황제 폐하께 드리라 전해 주었습니다."
"음!"
둘은 같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황궁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알았네. 내 황궁에서 소식이 오면 곧바로 전해 주겠네. 자네는 돌아가 있게나."
"알겠습니다."
현수는 다시 지둔술을 사용해 감옥으로 돌아갔다.
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을 대비해서 경우의 수를 모두 생각했다. 현수는 요즘 야의 말대로 너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현수는 급히 전서구를 만사귀와 건에게 보냈다.
황궁으로 가서 만약을 대비하라는 내용이었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들까지 모두 적었다. 그리고 황궁에 들어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연락을 달라는 말도 함께 적었다.
'후후! 베타와는 전혀 다르군. 적응하기가 힘드네. 내가 언제 이렇게 머리 아프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
일주일 뒤 현수를 황궁으로 후송하라는 황명이 떨어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