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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판장 (15/57)

연판장

건은 수아와 함께 밀소림의 안으로 들어갔다.

"수아야, 이곳에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밀소림은 소림의 무공과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어, 패도적인 무공을 사용하는 고수들이 많다. 따라서 맞서 상대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피해 가며 공격을 해야 한다."

"네, 오빠."

수아는 건을 또 다르게 보고 있었다.

처음에 건을 만났을 때는 그냥 인상이 좋아 보였다. 맘이 편하고 함께 있으면 좋았다. 특히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그런 점이 좋았다. 결국 그것이 사랑이 되어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지만 걱정이 컸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신랑감 제일 순위는 검사, 판사였다. 수아는 거짓말로 건이 사법 고시를 준비한다고 부모님께 말을 했고, 부모님은 건을 한번 보고 싶어 했다.

걱정이 앞서 건에게 말했지만 건은 오히려 자신을 위로했다.

더욱 놀란 것은 건이 정말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벌써 2차 합격까지 했다. 왜 마지막 3차는 아직 치고 있지 않은지 몰라도, 그것으로 최소한 부모님께 거짓을 말하지는 않은 게 되어 좋아했다.

또한 건의 집안 역시 그렇게 못사는 것은 아니었다.

수아는 아직도 건이 부모님께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할 나이는 지났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아 하나만큼은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수아를 주십시오.

당시 말을 듣고 있던 진 회장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껏 고이 키워 온 딸을 날강도 같은 놈이 그냥 달라고 하니 화도 났다.

-그래?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니 달라고?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 것이냐?

-최소한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팔게 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오빠!

수아는 잠시 놀라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당당하게 말하는 건을 본 수아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귀한 물건을 보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수아는 그 모습이 화가 난 표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난 생선 장수다. 딸이 아비를 따라 생선 장수를 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

-장사는 소질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과 같은 소질이 없는 수아가 생선 장사를 하면 고양이들이 들끓을 것입니다. 그럼 생선 가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이놈이!

-아빠!

-아버님! 그냥 수아를 주십시오.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것이 생선 가게를 하는 것보다 수아에게 더 어울릴 것입니다.

지지 않고 말하는 건을 본 진 회장은 웃었다.

-하하! 그렇군. 비린내가 나는 생선 가게보다는 구멍가게가 더 어울리겠구나. 좋아. 하지만 나와 약속을 하게. 미루고 있던 사법고시를 다시 보게.

-알겠습니다.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보겠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알았네. 오랜만에 괜찮은 청년을 본 것 같구먼. 역시 나의 딸이라 보는 눈이 있구먼. 딸을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수아야?"

"어, 왜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예요. 오빠, 근데 왜 저한테 사법 고시를 본 데다 집에서 백화점을 운영한다는 말을 안 했어요?"

"안 물어봤잖아. 그건 수아도 마찬가지니 그만 하자."

두 사람은 밀소림 안으로 들어가며 앞날을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밀소림에 도착한 두 사람을 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스님이었다. 소림의 황색 가사가 아닌 붉은색의 가사를 입은 스님이었다.

"조심해!"

말없이 봉을 휘두르는 스님의 공격을, 두 사람은 좌우로 피했다. 하나 언제 나타났는지, 다른 스님들이 피하는 이들을 다시 공격해 왔다.

"수아야, 그냥 피해!"

내려쳐 오는 봉을 검으로 막으려던 수아는 건의 외침을 듣고 몸을 돌려 봉을 피했다. 하나 조금 늦었는지 봉이 수아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악!"

고통으로 주저앉은 수아를 향해 다가가던 건은 다시금 수아를 공격하려는 스님을 향해 도를 움직였다.

파앙!

"괜찮아?"

"네! 괜찮아요."

체력 회복제를 먹고 일어난 수아는 다시금 밀소림의 승려들을 노려보았다.

"검을 들어서 막으면 그 충격에 조금씩 밀려 끝내는 당하고 말아. 그러니 될 수 있으면 막으려 하지 말고 피하려고 해."

건은 이들의 공격 패턴을 잘 알고 있었다. 베타 시절에 오기를 부리다 이들에 의해 무려 여섯 번이나 죽었던 경험이 있었다.

"잘 봐! 오빠가 하는 것을!"

건은 내려쳐 오는 봉을 피하고는 스님의 빈틈을 공격했다. 빠르고 정확하게 공격하는 건이었다.

"큭!"

밀소림의 스님들은 건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봉을 움직였다.

하나 건은 이미 봉의 궤도를 알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봉을 피해 다니며 스님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크악!"

스님 1명이 회색으로 물들어 사라졌다.

수아는 일어나 다시금 밀소림의 스님들에게 다가갔다.

피하고, 찌르고, 피하고, 찌르고. 내력의 사용을 자제하는 건을 본 수아는 따라서 움직였다.

건은 수아를 곁눈으로 보고는 안심이 되었는지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수아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게 좋은지 점점 전투에 빠져 들고 있었다.

한참을 싸웠을까. 어느새 밀소림의 스님들은 모두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어때?"

"재미있어요. 그냥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맞게 싸우는 것이. 근데 오빠는 이런 것들을 다 어떻게 알았어요?"

"현수 덕분이지."

"현수 오빠?"

"응! 현수와 싸우면서 많은 것을 느꼈지. 사실 밀소림의 스님을 상대하는 방법은 현수에게서 배웠어. 그때가 베타 시절, 처음 현수를 만났을 때였지."

이렇게 시작되는 건의 이야기는 전설이었다. 수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핏! 누가 그런 거짓말을 믿어요."

"진짜야. 왜 현수를 일마라고 부르고 나를 일황이라고 부르겠니?"

"그건……."

수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마는 사실 적수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 싸움도 피하지 않았지. 그 수가 얼마가 되었든 상관이 없었고, 모든 싸움에서 이겼지. 당시 유저들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어. 죽음을 원하는 자는 일마에게 도전해라. 그것이 가장 빨리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일마에게 도전해라. 천 역사상 가장 찬란한 명예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핏! 그럼 오빠도 현수 오빠보다 약했단 말이에요?"

"아니, 약한 것은 아니지. 다만 현수를 이길 수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쨌든 지금은 오빠가 현수 오빠보다 강하잖아요."

수아는 남자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밀린다는 것이 조금 억울했는지 얼굴이 부어 있었다.

"모르지. 사실 지금의 오빠는 표면상으로는 천마회의 방각이나 천지회의 혁무기보다도 약하지. 그들이 랭킹 1∼2위를 다투고 있으니."

"좋아! 제가 오빠를 천에서 최고로 만들어 줄게요. 아이템을 최고로 구해 천에서 누구도 오빠를 내려다보지 못하게 해 줄게요."

"하하!"

건은 웃고 말았다. 아이템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한계가 지나면 그렇게 위력을 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건으로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

"수아야, 지금도 오빠를 무시하는 이들은 없다. 설령 방각과 혁무기가 함께 덤벼도, 그들에게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너, 마천루 사건 알고 있지?"

"네! 천연회 오빠들이 장악했잖아요."

비록 중급 던전이지만 같은 문파원들이 장악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럼 왜 천지회나 천마회에서 가만히 있을까?"

"음! 오빠들이 강해서 그렇지요."

"강해도 중급 정도의 던전인데? 그 정도면 천마회나 천지회에서 최고수 몇 명만 파견해도 장악할 수 있는 곳인데 왜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까?"

"그건……!"

그게 조금 이상했다. 천지회와 천마회의 유저들 역시 마천루에서 다 깨지고 사냥터에서 쫓겨났다. 그 누구도 12층에 올라가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천마회나 천지회에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방각이나 혁무기 역시 그들을 상대하는 건 조금 어려워! 물론 힘으로 제압을 하면, 피해는 조금 보겠지만 어려운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만사귀나 역발산을 포함한 그 외의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잘 알기 때문이야. 그리고 레벨을 올리면 그곳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냥 있는 거야."

"정말 오빠들이 그렇게 대단해요?"

"응! 거의 괴물에 가깝다고 보면 돼. 그런 인간들도 한 수 접어주는 인간이 바로 현수야. 어떻게 보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이 현수지."

"그런데 왜 현수 오빠 이야기가 여기서 나와요?"

"방각이나 혁무기 역시 만사귀나 역발산의 뒤에 현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지금 현수를 알고 있는 랭커들 중에서 현수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어떻게 생각해 보면 자신이 좋아하고 있는 눈앞의 사내는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자랑을 해도 시원찮을 것인데 남 자랑만 하고 있으니.

하지만 이런 사내가 더 좋아지는 이유를 모르겠는 수아였다.

"자! 이제 나올 시간이 되었다. 일단 이곳에서 적응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1마리씩 나오는 적마 스님을 상대해 봐!"

"네!"

다시 리젠되는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은 봉을 크게 움직이며 수아를 공격해 왔다. 수아는 피하면서 검을 앞으로 찔러 넣었다가 다시 피하는 걸 반복했다.

* * *

현수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한 흑아가 돌아오지 않는 게 마음에 걸린 하남성주는 답답했다. 혹시 이현수라는 관리에게 역으로 붙잡혔는지 걱정이 되었다.

서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었다. 아무런 불평 없이 자신의 그림자 역할을 해 온 아들이었다. 아들의 무공을 믿고는 있지만,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없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혹시 당했단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답답해할 때 이왕수가 들어왔다.

"대인!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요. 앉으시오! 그래, 지금 황궁의 상황은 어떠하오?"

질문을 하는 하남성주의 얼굴이 그리 편해 보이지 않자 다시 묻는 이왕수였다.

"대인!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얼굴에 근심이 서려 있습니다."

하남성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은 하남성에서 민심을 알아보고 있는 자를 살펴보라 사람을 보냈소.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 연락이 없어 조금 답답한 심정이오."

"사람을 보냈단 말씀이십니까?"

이왕수는 사람을 보냈다는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하남성주는 이왕수의 표정에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과장된 표정이었다.

"잘못된 것이라도 있소? 그냥 사람을 보내어 민심을 알아보고 있는 자들을 한번 살펴보라 한 것이오. 마치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하남성주이나 내심으로는 누구보다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과 관련이 되어 있기에.

"아닙니다. 다만 불필요한 충돌이 있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하하! 걱정 마시오. 그냥 살펴보고 오라고 한 것인데 충돌까지 있겠소?"

"대인께서는 하남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보면 하남을 지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를 자극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소. 명심하고 자중을 하겠소. 그나저나 황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소? 1황자 저하께서는 어떠시오?"

1황자의 뒤에는 내각이 버티고 있다. 다음 대 황제의 자리는 1황자가 넘겨받아야 했다. 내각의 대학사를 비롯해 내각의 인재들은 1황자를 추종했다. 곧 그가 황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나 황제는 2황자에게 황제의 자리를 주려고 했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3황자가 환관들을 등에 업고 황권 쟁탈전에 뛰어든 것이었다.

"황궁에서는 환관들의 힘에 의해 입지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의 군소 도시를 우리가 장악하고 있으니, 1황자 저하께서 세력을 일으키면 아무리 황궁을 장악하고 있는 환관들이라 할지라도 우리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수는 천밀위 위사들이 가지고 온 정보를 종합하고 있었다.

"그래! 세금은 다소 많지만 치안이 안정되고 수입이 더 많아졌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남성주에 관해서 나쁜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공격한 것을 잊지 않고 있는 현수는 하남성주를 바꿀 생각이었다.

"받은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지. 돌아간다."

하남성주를 바꾸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 이상 하남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가기 전에 하남성주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괜찮겠지. 알려 줄 것도 있고 말이야."

"사사님! 하남성주를 만나실 생각입니까?"

"그래, 그리고 너희들, 돌아가면 내 친히 폐하께 고해 무공 수련을 다시 하게 만들 것이다. 고작 호위 무사 하나 이기지 못하다니, 그러고도 황족의 수신 무사들이냐?"

천밀위의 위사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자신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남성주관으로 간다."

현수는 천밀위의 위사들과 함께 하남성주관을 찾아갔다.

포정사사가 왔다는 소리를 들은 하남성주는 총관을 시켜 마중을 하게 했다. 현수는 하남성주가 직접 오지 않고 총관이 대신 나온 것에 또 한 번 인상을 썼다.

총관의 뒤를 따라 접빈관에서 기다리던 현수는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그래!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좋아! 한번 두고 보지.'

"위사들은 들어라. 나의 주위에서 나를 철저하게 보호하라."

갑자기 내리는 명에 위사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현수의 주위를 둘러쌌다.

'시작해 볼까?'

"총관! 지금 하남성주가 나를 무시해서 오지 않는 것이오?"

갑작스러운 호통에 총관은 말을 더듬었다.

"그게,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새파란 애송이가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왔으니 무시를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남성의 총관은 죽을 맛이었다.

"그게 아니면 왜 이제껏 오지 않소. 내가 못 올 곳에 왔소?"

"아닙니다, 포정사사님! 그게 아니오라 지금 성주님께서는 바쁜 업무로 인해……!"

"흥! 바쁜 업무가 도대체 무엇이오? 황제 폐하의 사신을 만나는 것보다 더 바쁜 업무가 있단 말이오? 알겠소. 내 폐하께 잘 보고해 드리리다."

"아이고 나리!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성주님께서 나오실 것입니다."

총관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이윽고 하남성주가 접빈관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직접 마중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하남성주를 본 현수는 매몰차게 말했다.

"흥! 그 바쁜 일이라는 것이 뒤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오? 아니면 무림의 문파에 돈을 주는 일이오?"

하남성주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흥! 내가 모를 줄 알았소? 흑아라고 했던가? 그놈을 시켜 나를 죽이라 하지 않았소? 그렇게 하남성주의 자리가 탐이 났던 것이오?"

"헛! 도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흑아라는 인물을 시켜 포정사사님을 살해하라 했단 말씀입니까? 제가 왜, 무슨 이유로 포정사사님을 해하라 명하겠습니까?"

눈 한 번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는 하남성주였다.

'후후! 그래? 그럼 이러면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자.'

"정말 아니요? 흑아라는 놈을 죽여 버렸는데, 그 과정에서 하남성주가 보내었다고 하기에 말이오. 이거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소. 놈의 말만 믿고 섣불리 말했으니 나의 잘못이오. 너그러이 용서하시오, 하남성주!"

하남성주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현수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놈을 죽였단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소. 나를 죽이려 한 놈을 죽인 것이오. 걱정 마시오. 내 폐하께 잘 말씀드리겠소이다."

'흑아가 저놈에게 당했다고?'

"일단 안으로 드셔서 차라도 한 잔 하십시오. 여기 이렇게 서 계신 것이 저에게는 몹시 부담됩니다. 그러니 안으로 드시지요. 여봐라, 준비한 것을 가져오라."

현수는 하남성주를 따라 성주관 안으로 들어갔다. 하남성주는 현수에게 금전을 주었다. 3,000냥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죄송합니다. 가시는 길에 여비로 쓰시기를."

주는 것을 거절할 현수가 아니었다. 3,000냥이면 현금으로 계산을 해도 엄청난 액수였다.

"하하! 정 그리하시면 내 긴히 잘 쓰겠소이다."

현수는 주는 돈을 받고는 하남성주와 대화를 나눈 후 성주관을 떠났다.

떠나가는 현수의 일행을 본 하남성주의 눈에서 살기가 흘렀다.

"내, 놈을 죽이리라. 총관은 밖에 있느냐?"

"예! 성주님."

"넌 지금 흑밀사에 연락을 해서 저놈들을 모두 죽이라 전해라. 놈의 수중에 있는 금전 3,000냥이면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라 일러라."

총관은 하남성주의 명에 잠시 흠칫했다. 황제가 보낸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반역에 가까운 짓이었다.

"하오나 그는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상관없다. 놈들의 수중에는 금전 3,000냥이라는 거금이 있다. 그것을 노리는 산적의 소행이라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럼 이왕수 대인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그도 모르게 처리하라. 그는 곧 대학사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것이다."

조금은 꺼림칙하지만 성주의 명을 전하기 위해 총관은 자리에서 벗어났다.

'흑아!'

하남성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현수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하게 객잔에서 쉬고 있었다.

"모두 모여 봐!"

현수는 하남성주에게서 받은 3,000냥의 금액에서 250냥씩을 떼어 천밀위 위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늘은 저곳에서 묵고 내일 오후에나 북경으로 향할 것이니 그동안 시간을 보내고 오너라."

"사사님을 보호하는 것이 저희 임무입니다."

"호위 무사 하나도 이기지 못하면서 보호는 무슨! 상관치 마라. 그동안 황궁에 있으면서 여자를 많이 굶었을 것이 아니냐? 피 끓는 청춘을 혼자 달래기도 이제 지쳤을 것이니, 기루에 가서 묵은 것을 풀고 오너라."

"킥킥!"

현수의 말에 실소를 흘리는 천밀위의 위사들이었다.

객점에서 짐을 푼 현수는 빠르게 움직였다.

현수가 간 곳은 마천루였다. 그곳에서 만사귀의 일행을 만나 지금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듣기 위해서였다. 황궁에 있는 현수는 무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마천루에 도착한 현수는 바로 12층으로 올라갔다. 1층부터 6층까지는 일반 유저들이 사냥을 하고 있었지만, 7층부터 11층까지는 천지회나 천마회에 속한 유저들과 또 다른 문파의 사람들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현수는 이들을 무시하고 곧바로 12층으로 올라갔다.

천연회의 만사귀를 비롯해 역발산 등등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어이, 바보들!"

현수는 사신수에게 죽은 그들을 바보라고 불렀다.

그들은 현수를 보고 웃었다. 그동안 모두 무공에 진전이 있었는지, 그런대로 몬스터를 가볍게 잡고 있었다.

"현수야, 너 황궁에서 어떻게 나왔어?"

"암행! 시간이 없다. 나 다시 황궁으로 들어가야 되니까 만사귀 넌 빨리 무림의 정보를 나에게 말해."

"야! 숨은 돌리고 말해라. 너희들은 몬스터를 잡고 있어."

"야! 그냥 파티해서 사냥하면서 들어."

"그래! 그게 좋겠다. 파티를 걸어."

역발산이 현수에게 파티를 걸었다.

-역발산 님의 '경험치로 죽어 보자' 파티에 함께하시겠습니까?

파티 이름도 참 무식하게 짓는다고 생각한 현수였다.

"네!"

파티가 맺어지자 현수의 한쪽 옆에 파티원들의 체력 게이지가 떴다.

"파티 상태 창 해제!"

현수의 외침에 옆에 보였던 파티원들의 체력 게이지가 사라졌다.

"역발산! 현수도 왔는데 오랜만에 베타 시절 사냥법으로 사냥하자."

"좋지. 나 역발산의 위대함을 보여 준다."

"좋아! 금전 100냥 내기."

"현수가 유리하잖아. 50냥으로 해."

베타 시절의 사냥법은 단순했다. 선두에 서는 유저! 즉 탱커 역할을 하는 이를 제외하고 몬스터를 누가 많이 잡느냐 하는 단순한 내기였다. 하지만 파티였기에 경험치는 모두 나누어 먹었다.

"야! 100냥으로 해. 나, 황궁에서 사냥도 못 해 돈을 못 벌어서 거지야. 오랜만에 밥값 좀 벌어 보자. 내가 20마리 손해 보고 시작하면 되잖아."

20마리라는 말에 반색을 한 모두는 현수에게 후회하지 말란 말과 함께 시합을 시작했다.

"좋아! 시작한다. 3, 2, 1, 고!"

만사귀의 고라는 말과 동시에 천연회의 사람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크하하하! 광란의 분노!"

순간 12층에 있는 몬스터들이 역발산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광란의 분노라 이름 지은 삼류 음공 무공이었다.

역발산은 무공서를 구입해서 이것을 익혔다. 현수가 구해 준 금강부동심결과 함께! 그 덕에 어디에 가서도 몬스터가 없어서 사냥을 못 한 적은 없었다.

광란의 분노라는 무공은 몬스터에게 비호감을 사는 무공이었다. 일단 외치고 나면 몬스터들은 광란의 분노를 사용한 사람을 먼저 공격하게 되어 있었다.

"금강부동심결!"

선두에 선 역발산은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듯 20여 마리의 몬스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었다.

나머지는 몬스터를 공격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각자의 무공을 사용해 몬스터를 쓰러트린 이들은 몬스터가 죽어 갈 때마다 숫자를 외치고 있었다.

"씨팔! 이건 사기다. 아무리 강한 무공이라고 해도 그렇지 한 방에 죽이는 법이 어디 있냐?"

몬스터들은 현수의 뇌전류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만사귀를 비롯한 몇몇이 투정을 했지만 다들 웃고 있었다. 사냥의 속도가 엄청 빨라진 것이었다.

"12층의 몬스터만으로는 적다. 내가 11층까지 쓸어 올게."

역발산이 11층으로 달려가 광란의 분노를 외치자 11층의 몬스터들이 역발산을 향해 달려왔다. 역발산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르게 12층으로 달려와서는 다시 한 번 광란의 분노를 사용했다.

"뇌전류! 팔검수화진검류!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팔검수화진검류!"

현수는 11층에서 12층으로 올라오는 길목에서 몬스터를 도륙했다. 12층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천연회의 사람들은 12층의 몬스터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현수를 보고 있었다.

"아 씨! 이것들 빨리 잡아."

선두에 서 있는 역발산의 외침을 듣자 그제야 몬스터를 향해 공격을 했다.

11층의 몬스터를 다 잡은 현수는 만사귀에게서 무림의 상황에 대해 들었다.

"그래? 기존의 NPC들을 제외하고는 방각하고 혁무기의 세력이 제일 크다는 말이지."

"그래! 그 외 악령과 솔미 누나가 함께 만든 문파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방각이나 혁무기보다는 한참 떨어진다."

만사귀에게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하면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었다.

"NPC들은 어때?"

"잘 모르겠어. 구파일방이 강하기는 하지만 사왕천 역시 무시 못 하는 수준이야. 객관적인 전력으로 봤을 때 사왕천의 한 문파가 방각의 마도련이나 혁무기의 천지회의 힘과 맞먹는 수준이라 볼 수 있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역시 마찬가지야."

"음! 아직 유저가 NPC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구나."

천에서 유저들이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 그만큼 NPC들의 문파가 강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는 점점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문파를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개인으로 따지면 이미 일류 고수의 수준을 뛰어넘은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어. 대표적인 것이 방각이랑 혁무기야. 아마 랭커들은 거의 다 NPC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봐도 무관할 거야. 그런데 황궁은 어떻게 돌아가? 내가 알아본 결과, 결코 조용한 것 같지 않던데."

만사귀를 본 현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왔다. 너희들은 무림을 자세히 살펴봐. 특히 천유 서림이라는 곳을! 혹시 모르니 레벨 업보다는 무공을 집중해서 익혀. 잘하면 황궁을 얻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급소를 조심해. 한 방이면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

만사귀는 자신의 정보대로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하지. 보수는?"

"없지. 내가 천연회를 위해 희생한 것처럼 너희들 역시 천연회를 위해 희생해야지. 안 그래? 혹시 알아? 황궁 무고를 구경할지. 애들한테 잘 말해. 혼자 힘으로 황궁의 일을 처리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듯하다."

"그렇게 하지."

현수는 건에게 따로 시킬 일이 있어 건의 행방을 물었다.

"그런데 건이는 지금 뭐 해?"

"건이야 똑같이 사냥하고 레벨 업하고 있지. 계속해서 경험치를 얻으면 스탯 포인트가 나오니 죽도록 업을 하는 것이지. 어떻게 보면 그놈만큼 독한 놈도 없다."

그때 일단의 무리가 마천루의 12층에 들이닥쳤다.

"누구지? 유저는 아니고 NPC 같은데? 새로 생긴 몬스터NPC인가?"

현수는 그들을 보자 입가에 미소가 생겨났다. 하남성주가 자신을 죽이려고 보낸 인물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 죽이려고 온 모양이야. 저놈들, 자리를 잘못 찾아왔군."

"고수들로 보이는데."

"어디! 고수가 따로 있냐? 나의 신공 앞에서는 조족지혈에 불과할 뿐이다. 광란의 분노!"

순간 현수를 죽이러 온 이들이 역발산을 노려보았다.

츄츄!

"야! 역발산! 너 이번에는 잘못 고른 것 같다."

무리의 검에서 엷은 검기가 보였다. 순간 역발산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엿 됐다. 어디서 뭐 저런 놈들이 나타난 것이지?'

역발산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 체력 회복제를 확인했다. 많이 남아 있는 체력 회복제를 보자 힘이 났는지 크게 외쳤다.

"크하하! 남자는 깡이다. 덤벼라! 금강부동심결!"

역발산을 향해 검이 날아들었다.

두 눈을 감고 이를 악무는 역발산을 본 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팔검수화진검류!"

채애애앵 챙!

"막아! 필살이와 화령이는 놈들의 우측을 맡아. 검이와 화화는 좌측! 나머지는 역발산을 보호해. 나와 현수는 놈들의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간다."

만사귀의 말이 떨어지자, 움직이는 천연회의 사람들과 흑밀사의 무사 50인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비검유수행!"

환상검의 손을 떠난 비검은 흑밀사의 무사들을 향해 쇄도해 나갔다.

"틈, 뇌전류!"

"크윽!"

환상검의 비검을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린 흑밀사 무사의 허리를 베어 가는 현수의 검이었다.

만사귀의 손에서 모산검법이 흘러나왔다. 비록 무공 창에 저장은 되지 않았지만, 부상을 당한 흑밀사의 무사를 쓰러트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역발산은 광란의 분노를 계속 사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수금인을 비롯한 3명이 역발산에게 다가오는 흑밀사의 무사들을 막아 주는 한편, 현수와 만사귀를 비롯한 4명은 그들을 공격해 차근차근 수를 줄여 나갔다. 마치 파티 사냥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보여 주는 듯했다.

"팔검수화진검류!"

"크억!"

현수가 가지고 있는 무기의 한계가 나타났다. 그렇게 좋은 무기가 아니었기에 한 번에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활약을 하는 현수였다.

"야! 경험치 봐라. 장난이 아니다."

보호를 받고 있는 역발산은 다소 여유가 있어서인지 경험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즐거워서 소리쳤지만, 흑밀사 무사들의 공격을 막고 있는 이들은 죽을 맛이었다.

"씨팔! 보호고 뭐고 확 때려치운다? 조용히 해. 윽!"

검이 수금인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허벅지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고작 저런 놈들에게 칼침을 맞다니."

"크하하하! 넌 그동안 놀고먹은 것이 표가 나는구나."

"저놈 입 좀 다물게 해! 시끄러워서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역발산은 수금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진짜 남자 역발산 님의 고금 제일의 무공인 광란의 분노다. 광란의 분노!"

역발산을 보호하고 있던 수금인을 비롯한 2명은 도망을 가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나마 현수와 만사귀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빠르게 수를 줄여 주니 버틸 수 있었다.

채애앵!

"이것들이! 수비만 한다고 호구로 알고 있나 본데? 살검이, 나랑 바꾸자."

"싫다. 역발산의 소리에 정신이 멍하다. 아마 난 그리 가면 미쳐 버릴 거야. 너희들이 존경스럽다."

장난처럼 이야기한 필살검은 다시 흑밀사 무사들을 공격했다.

"조용히 해! 최대한 빠르게 잡고 있으니 조금만 참아!"

만사귀는 투덜거리는 수금인을 달래었다.

현수는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떻게 인간들이 나이를 먹어도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여간 이놈들이랑 있으면 재미있다니까.'

"뇌전류!"

"큭!"

"비검유수행!"

"커억!"

만사귀가 모산도법을 흉내 내어 두 사람이 공격한 흑밀사의 몬스터 NPC를 마무리했다.

"잘한다, 우리 편! 이겨라, 우리 편!"

신이 난 것은 역발산밖에 없었다.

"아 씨! 나 안 해."

수금인이 자리를 이탈하자 역발산은 순식간에 세 번의 칼침을 맞아야 했다.

"윽! 아 씨, 그렇다고 그냥 자리를 떠나면 어떻게 해!"

"그럼 조용히 하든지."

"알았다. 조용히 할게."

역발산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의 칼침이라고는 하지만 전부 방어력에 투자한 체력과 방어 무공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금강부동심결이 있음에도 체력의 3분의 1이 날아가 버렸다.

역발산이 조용해지자 흑밀사의 공격 대상이 역발산에게서 현수로 바뀌었다.

"아 씨! 그렇다고 진짜 조용히 있으면 어떻게 해, 이 곰퉁이!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현수는 가만히 서 있는 역발산을 보고 소리쳤다. 다행히 흑밀사 무사들의 공격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피하는 것만으로는 힘들었다.

"아 씨!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남자는 뭐야?"

"남자는 깡이지."

"그래, 깡이 있으면 깡으로 밀어붙여야지."

현수는 피하면서 역발산이 빨리 광란의 분노를 사용해 주기를 원했다.

"하하! 역시 현수다. 네가 진정한 남자들의 로망을 알고 있구나. 남자는 깡이다. 광란의 분노!"

역발산이 다시 광란의 분노를 사용하자 흑밀사 무사들의 공격 대상이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광란의 분노라는 음공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크하하하! 나의 위력을 보았느냐!"

"아 씨! 넌 광란의 분노를 사용할 때만 입을 열어."

짜증이 나는지 역발산을 보호하고 있던 3명이 동시에 외쳤다.

"얘들은 무슨 말을 못 하게 해."

역발산은 두 눈에 힘을 주고는 흑밀사의 무사들을 노려보았다.

'휴! 하남성주가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데. 이놈들이 하남성주의 비밀 무사들인가?'

어느새 50명이나 되던 흑밀사의 무사들이 1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끝이 보이는데! 1명씩 잡고 싸워 봐!"

"좋지."

방어만 하던 수금인이 가장 먼저 달려 나와 흑밀사의 무사들을 공격했다. 그동안 역발산의 소리에 짜증이 난 것을 한 번에 풀어 버리려고 하는 것인지, 수금인의 공격은 실로 매서웠다.

그와 반대로 역발산은 죽을 맛이었다. 제대로 된 공격 무공이 없는 역발산은 몸으로 때워 가며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씨팔! 너희들, 그러는 것 아니다. 한 번 맡았으면 끝까지 해야지."

"조용히 해!"

모두는 싸움을 끝내고 역발산과 흑밀사 무사의 대결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놈 잡는 데 날 새겠다."

그새 핀잔을 주는 수금인이었다.

현수와 만사귀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역발산과 1명 남은 흑밀사 무사와의 대결이 시시했는지 12층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아직도 안 끝났냐?"

"조용히 해! 힘들어 죽겠는데."

"야! 그냥 때리다 지칠 때까지 기다려라. 그게 더 빠르겠다."

수금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역발산은 조용히 맞는 것만 반복하고 있었다. 흑밀사 무사가 드디어 지쳤는지 행동이 조금씩 둔해진 것을 느낀 역발산은, 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놈아! 이게 천하제일 신력을 가진 역발산 님의 힘이다."

양팔에 힘을 준 역발산의 괴력은 실로 놀라웠다.

우드득!

"크악!"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역발산은 두 손을 풀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헉헉! 씨팔! 공격 무공을 하나 사야겠다. 삼류 무공이라고 해도 말이지.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역발산은 처음으로 자신의 스탯에 후회를 하는 중이었다.

"야! 역발산. 너, 그 힘 뒀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냐? 방어만 하다 순식간에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꺾어 버리면 되잖아. 천하제일의 신력을 가진 역발산이 약한 소리를 하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정말 단순한 역발산이었다. 마치 천하제일 신공을 얻은 듯 큰 소리로 웃는 역발산을 보며, 모두는 그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졌다.

"만사귀, 하나 더 부탁하자."

"뭐?"

"무림의 세력과 황궁의 세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아니야?"

"뭐,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우리는 한편이잖아."

현수는 만사귀에게서 들을 내용을 다 듣고는 마천루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그길로 곧장 하남성주의 집을 찾아 들어갔다.

밤이 되자 현수는 살황의 일기장의 은신술을 사용해 하남성주의 집에 숨어 들어가 이것저것을 뒤지기 시작했다.

'감히 나의 뒤통수를 쳐? 후후! 역시 성주라 그런지 꽤 많은 재물을 모았군.'

현수는 하남성주의 비밀 금고에서 상당량의 재물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하나 발견했다.

'이건!'

연판장이었다. 1황자를 지지하는 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연판장의 내용을 확인한 현수는 생각보다 많은 세력을 가진 내각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뜻밖의 소득을 올린 현수는 연판장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뜻밖의 소득을 올리는구나. 그럼 3황자의 세력 역시 연판장이 있겠군.'

현수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천밀위의 무사들과 만나기로 한 객점으로 향했다.

다음 날, 하남성주는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연판장을 도난당한 것을 알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사실이 대학사의 귀에 들어가면 난 살아남지 못한다. 도대체 누가……!'

떠올려 보아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무림의 공공신투라 할지라도 자신의 비밀 금고만큼은 손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찾아야 한다. 대학사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찾아야 한다. 한데 이놈들은 아직 놈을 처리하지 못했단 말인가. 왜 이리 늦는 것인지.'

하남성주는 흑밀사의 무사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았다고 해도 현수가 자신의 집에 침입해 연판장을 가지고 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 * *

황궁에 도착한 현수는 황제의 앞에서 부복을 하고 있었다.

"신 이현수, 폐하의 어명을 받들어 하남성의 민심을 알아보고 왔사옵니다."

좌우의 내각 대신들과 환관들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현수의 말 한마디에 세력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이라 모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하남의 백성들은 성주를 어떻게 생각하더냐?"

"폐하! 하남의 백성들은 현 하남성주에게 불만이 크게 없는 듯하였사옵니다."

순간 내각 대신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와 반대로, 환관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게 정말이냐? 그대는 숨기지 말고 나에게 모든 것을 고하라."

"폐하!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사옵니까? 정말 하남의 백성들은 현 하남성주에게 크게 불만이 없었사옵니다."

현의태감 왕평은 현수를 노려보았다.

"어찌 불만이 없단 말인가? 폐하! 하남의 백성들은 세금을 많이 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만이 없다니, 이현수가 필시 하남성주에게 뇌물을 받았을 것이옵니다."

현의태감 왕평이 나서서 말하자 내각의 대학사 역시 이에 지지 않고 말했다. 또다시 두 사람의 설전이 오고 갔다.

"그만 하라. 그대들은 무슨 원수가 졌기에 이렇게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가? 그러고도 그대들이 웃어른이라 할 수 있겠는가?"

황제의 호통에 잠시 조용히 하는 두 사람이었다. 황제의 눈에는 그들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쯧쯧! 나이를 헛먹은 것이 분명해. 내가 어떻게 저들을 저런 자리에 앉혔는지, 원! 그대는 사실대로 말하라. 현의태감의 말이 사실인가?"

황제는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습니다. 하남성주는 폐하께서 정하신 세금의 1할을 더 받고 있었사옵니다."

"그것 보십시오, 폐하. 저의 말이 맞지 않사옵니까?"

"조용하라. 아니 되겠다. 현의태감과 대학사는 물러가라."

"폐하!"

"물러가라 했다."

결국 대전에서 쫓겨난 두 사람은 나갈 때까지 서로 으르렁 거렸다.

"짐이 박복하여 주위에 사람이 없어 그런 것을! 그대는 계속하라."

"비록 세금을 1할이나 더 거두었지만 하남성주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남성의 치안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무림의 문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 결과 치안이 안정되었고 모든 백성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어, 다른 지방의 성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너는 현 하남성주를 그 자리에 두기를 바라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비록 현 하남성주가 치정을 잘하고 있다고는 하나, 무림의 문파와 손을 잡고 있사옵니다. 예로부터 황궁과 무림은 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황제는 현수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본시 무림의 족속들은 믿을 수가 없는 자들이옵니다. 지금은 하남성주가 주는 돈에 만족하며 관과 함께 치안을 담당하고는 있사오나, 만일 그들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면 하남성주는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하남의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황제는 현수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나 지금 하남성주를 바꾸어 무림의 문파에 이제까지 주던 돈을 주지 않으면, 치안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혜와 연륜을 고루 갖춘 관리로 하여금 새로운 하남성주의 자리에 앉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관병과 군사를 조금 더 늘리어 하남성의 치안을 담당하게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무림의 문파에 들어갔던 돈으로 늘어난 관병과 군사의 녹봉을 준다면, 많은 돈이 남을 것이옵니다. 그 돈으로 하남성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 생각되옵니다. 또한 이번 기회로 각 성과 지방의 관리들에게 알리시어 무림과 관의 관계를 끊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허허! 옳도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여봐라. 그대들은 돌아가 현의태감과 대학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하남성주의 자리에 맞는 인재를 추천하라 전해라. 슈우엔과 오매불망은 이번 하남성주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연륜과 지혜가 있는 자를 추천하라 전해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좌우의 내각 대신들과 환관들이 밀물 빠지듯 대전을 빠져나갔다.

"과연 장원을 한 인재로다. 그대는 앞으로 더욱 짐을 기쁘게 하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퀘스트 '하남성의 민심을 알아보라'를 수행했습니다. 보상으로 황제의 신임도가 10 상승했습니다.

현수는 황제의 신임도를 100까지 올려야 했다. 그래야 황제의 편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제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건수들을 만들어야 했다.

* * *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현수는 무공을 많이 진보시킬 수 있었다. 또한 미랑 역시 이제 어엿한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현수는 황제의 신임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황제의 신임도가 60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대학사와 현의태감은 현수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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