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 1
현수는 미랑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운중비록과 현천파열권이라는 무공이었다.
현천파열권은 현수가 구파일방에서 훔쳐 온 권법을 합쳐서 만든 무공이었다. 이것은 현수 역시 아직 대성하지 않았기에 익히면서 동시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미랑 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을 뻗을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속도가 줄어듭니다. 이것은 검, 도, 창 등의 무기를 쓸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점에서 순간 힘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팡!
현수의 주먹이 앞으로 나가자 권풍이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미랑은 힘든 무공 수련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운중비록과 현천파열권을 다 익히시고 나면 검법을 익히셔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미랑 님께서 성장하실 때까지 배우려면 더욱 정진하셔야 할 것입니다."
현수는 이 말을 남겨 두고 자신의 방을 나섰다.
미랑은 현수의 방 안에서 현수가 가르쳐 준 것을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무섭게 익히고 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성장 속도가 빠르다.'
현수는 미랑을 가르치면서 엄청난 수련 속도에 흠칫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늦게 밖으로 나온 현수는 지밀원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은 비어 있었다. 현수는 밤을 이용해 지밀원의 연무장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황궁의 경비를 책임지는 지밀원 측에서도 현수가 밤늦게 연무장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명이 있어 현수를 제재하지 못했다.
'운중비록의 운중무영보를 사용해 신형을 늘여, 그 위에 팔검수화진검류를 사용하면 궁합이 딱 맞아떨어진다.'
팔검수화진검류!
현수가 팔자영법에 구파일방의 무공을 합쳐 만든 일초식의 검법이었다. 뇌전류가 쾌검이라면 팔검수화진검류는 변검이었다.
현수의 신형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두 8개의 신형이 나타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을 수련하던 현수의 신형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음! 기력은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팔검수화진검류의 성취가 부족하기에 오랫동안 시전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구파일방의 무공을 합쳐 새로이 만든 무공들 모두가 마찬가지다.'
현수는 다른 무공들을 빨리 완성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뚜벅뚜벅!
조용한 밤이라 그런지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현수는 발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
"그대가 이번 어전시에서 장원을 한 이현수인가?"
"그렇습니다."
"난 진설이라고 한다."
현수는 진설이라는 말을 듣고 흠칫했다. 국토를 수호하는 황룡군의 수장이 바로 진설 대장군이었다. 황룡군은 중원의 서쪽 국경 지역을 수비하는 군대였다.
그가 왜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현수가 진설 대장군을 뵙습니다."
"내 그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폐하께서 그대에게 팔자영법이라는 무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명하셨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아직 부족하여 이렇게 밤을 이용해 수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진설 대장군은 현수의 눈을 보았다. 밤의 어두움은 두 사람에게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좋군! 그대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내, 충고 하나 하지.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쓰지 마라. 그대는 폐하의 사람이다. 이것을 잊지 마라. 섣불리 판단하여 행동하면 내가 그냥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 역시 다른 세력의 사람인가? 내가 낮에 3황자를 만난 것을 알고서 나에게 이리 말을 하는 것인가?'
돌아가는 진설 대장군을 본 현수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진설 대장군은 황제만을 추종하는 충신이었다. 그 역시 황궁에서 일고 있는 분란의 조짐을 알고 있었다.
군대를 가르칠 자가 특정한 곳과 연을 맺는다면 그 뒤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진설 대장군은 그것을 주의시키기 위해 온 것이었다.
'황궁 곳곳에 감시의 눈이 깔려 있다는 말이다. 황궁에 들어온 모든 인원이 감시 대상이 되는 것 같군.'
현수는 자신의 행동을 자제할 필요성을 느꼈다. 안 그래도 신원 불명이라는 이유로 관직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더 이상 관심을 끌어 봐야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팔자영법을 익히는 것처럼 시늉을 하며 팔검수화진검류를 빨리 익혀야겠다.'
현수는 생각을 바꾸었다.
다음 날, 현수는 황제의 부름으로 황제의 앞에 섰다.
현수 외에도 오매불망과 슈우엔 역시 함께하고 있었다.
"황궁의 생활은 어떤가?"
"아무 불편함이 없사옵니다, 폐하! 다만 폐하를 위해 일을 하고자 하나, 아직 정식으로 관직을 받지 못해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현수는 말하면서 현의태감 왕평의 눈치를 살폈다.
"현의태감! 이유를 말해라."
장원급제한 현수에게 왜 아직도 관직을 주지 않고 있느냐는 뜻이었다.
"신 왕평이 폐하께 아뢰옵니다. 이현수는 팔자영법을 익혀 폐하의 군대에 그 무공을 전해 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관직을 허락하면 폐하의 명을 지키지 못할까 싶어, 장원급제를 했음에도 아직 관직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오나 이현수가 팔자영법을 다 익혀 폐하의 군대에 무공을 가르쳐 줄 때에 내릴 천군 교두라는 관직이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폐하, 그보단 슈우엔을 하남성주로 임명해 하남의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시옵소서. 그동안 지켜본 결과, 그는 어질고 현명해 폐하의 뜻을 백성들에게 잘 전할 것이옵니다."
"그래?"
"폐하! 지방의 관리를 임명하는 것은 내각의 일이옵니다."
"대학사! 그대의 말이 맞다. 그것은 내각의 일이다. 대학사는 슈우엔이 하남성주로 못마땅하다 여기는가?"
"아니옵니다. 다만 내각에서 따로 정해 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오매불망이옵니다. 슈우엔 역시 어질고 현명하나, 오매불망이 하남성주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지켜본 결과, 그는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소한 시비와 무림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하남성의 성주로는 슈우엔보다는 오매불망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 내각의 뜻이 옵니다."
'오호! 그러니까 슈우엔은 환관들의 편이고 오매불망은 내각의 편이란 말이지.'
두 사람 역시 황궁에서 일고 있는 기운을 느꼈는지 벌써 배를 집어타고 있었다. 들려오는 대학사와 왕평 간의 언쟁은 끝이 나지 않을 듯 보였다.
"그만 하라. 그대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만나면 싸우기만 하는가!"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이현수는 들어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수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 주저 없이 말했다.
"신 이현수가 폐하께 아뢰옵니다. 하남의 민심을 들어 보고 지금의 하남성주를 평가하시어,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있으면 현 성주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폐하의 뜻을 잘 전하고 있는 성주를 굳이 새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황제는 현수의 대답이 흡족했다. 하지만 대학사와 현의태감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하하! 그렇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잘하고 있는 사람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대학사와 현의태감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명한 방법인 줄 아뢰옵니다."
"좋은 처사라 생각되옵니다."
"그럼 그렇게 하라. 슈우엔과 오매불망은 조금 더 기다려라. 현의태감!"
"네! 폐하."
"금의위와 동창을 이용해 하남성과 각 지방의 민심을 알아보라."
황제의 명에 대학사의 인상이 조금 바뀌었다.
그와 반대로 왕평의 얼굴은 밝아졌다. 금의위과 동창 역시 환관들의 세력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내각의 입지가 좁아질 것 같아서였다.
"폐하! 금의위와 동창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하남성으로 보내어 폐하의 눈과 귀가 되게 하시옵소서."
"새로운 인물을 보내어 나의 눈과 귀가 되게 한다? 대학사, 그대는 금의위와 동창을 믿지 못한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옵니다. 신이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금의위와 동창은 너무 알려져 있기에 각 지방에 나타나면 현감들이 잘 보이기 위해서 민심을 조작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인물로 하여금 암행으로 민심을 살피게 하시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대학사의 말을 들은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평의 얼굴은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음! 그것 또한 좋겠군. 그대는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 있는가?"
"저기 있는 오매불망으로 하여금……."
"신 왕평, 폐하께……."
또 한 번의 설전이 시작되었다.
현수는 지루했다. 서로가 자신의 세력을 이용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만들 하라. 그대들은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하는가? 천밀위의 령은 모습을 드러내어라."
령이 소리 없이 등장했다.
"그대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누가 좋겠는가?"
"신의 생각으로는 이현수에게 이 일을 맡겼으면 합니다. 슈우엔이나 오매불망 역시 좋은 재목이오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장원을 한 이현수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황제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명을 내렸다.
"그대 이현수는 하남으로 내려가 민심을 알아보라."
"폐하!"
"신……!"
"그만들 하라. 그대들은 조용히 하라. 이번 일을 맡은 이현수에게는 임시로 포정사사라는 직책을 내린다. 그대를 보호할 4명의 천밀위 위사를 주겠다. 이현수는 1달 동안 하남의 민심을 알아보고 보고하라."
황제의 명으로 대학사와 현의태감의 설전이 끝났다.
-퀘스트 '하남의 민심을 알아보라!'를 진행합니다. 하남의 민심을 알아보고 황제에게 알려야 합니다.
너무도 쉬운 퀘스트였다. 현수는 오랜만에 거저먹는 퀘스트에 즐거워했다.
"령은 천밀위 위사 4명을 이현수와 동행케 하라."
"네! 폐하!"
"모두 물러가라. 1달 뒤에 하남성주의 자리를 결정하겠다."
모두는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고 대전을 빠져나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현수는 퀘스트 창을 열어 퀘스트의 보상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퀘스트 창 오픈!"
완료한 퀘스트 : 2
-대장간 주인의 부탁
-만 번 죽기
진행 중인 퀘스트 : 2
미랑의 보호
내용 : 여우들의 차기 어머니로 내정된 미랑이 성장할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 수많은 인간 군상이 모여 사는 황궁에서 1년간 무사히 미랑을 보호하면 퀘스트를 성공할 수 있다.
등급 : 무급
보상 : ?
진행 : 73일/365일
하남의 민심을 알아보기
내용 : 황제는 하남성의 성주를 누구로 보낼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하남성으로 가서 민심을 알아보고 황제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등급 : 일반
보상 : 황제의 신임도 10(황제의 신임도는 향후 황궁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신임도라… 황궁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지."
호감도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호감도는 천의 모든 NPC들에게 통용되지만 황제의 신임도는 오직 황궁에서만 통용되었다.
현수는 미랑에게 이번에 맡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후 하남으로 갈 차비를 꾸렸다.
"나리! 현의태감이신 왕평 대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현수는 대학사나 현의태감이 황제의 앞에서 싸울 때부터, 자신이 하남으로 떠나기 전에 한 번쯤 찾아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안으로 모시어라."
들어오는 현의태감 왕평을 본 현수는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찾아오셨는지요."
"그대가 이번 암행을 위해 하남으로 내려가기 전에, 내 부탁이 할 것이 있어 이리 왔네."
"네? 부탁이라니요?"
그때 미령이 차를 가지고 들어와 내려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대는 지금 황궁의 상황을 어찌 생각하는가?"
현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왕평에게서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지금 황궁은 조금 복잡한 상황이네. 그대는 내각이……."
이렇게 시작한 현의태감 왕평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현수는 왕평의 화술에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음! 대단한 화술이다.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면 그의 편이 되었을 것이다.'
"그저 폐하께서 주신 사명을 무사히 완수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대학사의 내각과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현의태감님!"
"알고 있네. 하남의 민심을 자세히 알아봐 주게나."
현수는 왕평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후후! 하지만 넌 처음부터 인상이 안 좋았어.'
왕평은 작은 비단 주머니를 현수에게 주었다.
"내가 자네를 탐탁지 않게 여겨 관직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네. 자네는 무엇보다도 폐하의 군대를 가르칠 사부가 아닌가. 섭섭하게 생각 말고 우리 한번 잘해 보세나."
비단 주머니를 챙긴 현수는 고개를 숙였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현수는 이 정도에서 자신의 뜻을 왕평에게 전했다.
"그래. 우리 모두는 폐하의 사람이지."
왕평이 돌아가자 현수는 왕평에게서 들은 내용을 정리했다. 이것 역시 야에게 조언을 구해 처리하려고 했다.
"마치 진짜 고대 중국의 황실에 있는 기분이군. 그나저나 무엇이 들었나?"
비단 주머니 안을 살펴보던 현수는 입을 벌렸다.
"역시 권력이 좋긴 좋은가 보군. 금전 1,000냥은 족히 되겠다."
그 후 대학사 역시 찾아와 현수에게 왕평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떠나갔다. 현수는 대학사가 주는 주머니 역시 챙겼다. 주는 것을 사양할 현수가 아니었다.
다음 날, 현수는 4명의 천밀위 위사와 함께 하남으로 향했다.
하남으로 가는 내내, 천밀위의 위사들은 모습을 감춘 채 현수의 뒤를 따랐다.
하남으로 들어선 현수는 객잔을 먼저 찾았다. 하남 객잔이라는, 조금 오래된 객잔으로 간 현수는 방을 하나 잡았다.
"모두 모습을 드러내!"
천밀위의 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수는 그들에게 한 가지씩 임무를 주었다.
"넌 성주의 가족들에 관해서 알아봐라."
"알겠습니다."
"넌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지금의 하남성주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아라."
"알겠습니다."
"넌 무림과 하남성주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아라. 하지만 무림과의 충돌은 피해라."
"알겠습니다."
"넌 나와 함께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 일들을 모두 알려 준 현수는 잠을 자겠다 말하고는 접속을 해제한 후 야를 불렀다.
"야!"
-이제 나오십니까?
"그래. 나, 밥 하나 시켜 줘. 그리고 물어볼 것이 있어."
-식사는 국밥으로 하시겠습니까?
"콩나물 해장국으로 시켜 줘. 콩나물을 많이 넣어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물어볼 것이 무엇입니까?
현수는 지금의 황궁 상황을 야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현수는 조금 심각한 세력 다툼이 걱정되었다. 황제의 세력이라고 해야 2황자의 세력뿐이었다. 하나 알아본 결과 2황자의 세력은 극히 미미했다.
-생각보다 재미있게 돌아가는군요.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1황자나 3황자의 세력을 줄이는 것이겠군요. 그리고 2황자의 세력을 키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아! 그래서 물어보고 있는 것이잖아."
야는 지방의 권력을 세력으로 하는 내각의 힘을 먼저 줄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궁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환관들의 힘을 줄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2황자의 세력이라고 해 봐야 그를 따르는 젊은 인재들뿐이야. 다시 말하면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이지. 작은 도시도 아닌 하남이라는 거대한 땅을 다스리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지 않아? 아무리 NPC라고 해도 나이 든 사람들이 세월을 살면서 얻은 지혜가 많을 테니,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2황자의 세력에는 마땅한 인물이 없어."
-그렇기는 합니다. 그들은 젊은 혈기로 인해 2황자를 따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누가 황제가 되든 현수 님과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게임입니다. 어차피 보다 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야의 말이 맞다. 게임이니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즐기는 것보다는 혼자만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낫다.
구미호의 복수도, 환생한 구미호를 찾는 것도, 모두 베타 때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띠고 있었다.
사실 이왕 하는 것이라면 황궁의 힘을 얻고, 한 지역을 갖고, 가능하다면 한 성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현수였기에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맞아. 어쨌든 2황자의 문제는 세력이 약하다는 거야?"
-저기, 현수 님께서 착각을 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착각?"
-2황자는 황제가 밀어주는 사람입니다. 황제의 권력은 절대 적입니다. 그런 권력자가 뒤를 밀어주는데 아무런 세력이 없다니,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는 모든 것을 계산한 후 이러한 점들을 게임의 요소에 적용한 것뿐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그냥 있어도 다음 황제는 2황자가 될 것입니다. 다만 유저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즐기라고 서비스 차원에서 준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이러한 상황을 놓고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하고 유저에게 묻는 것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그럼 유저의 선택이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현수 님께서 처음에 구미호를 만나 어떻게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만일 처음에 현수 님께서 구미호에게서 도망쳐 나왔다면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과는 거리가 멀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 황궁의 상황도 별개의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유저와 마찬가지로 몬스터를 잡고 노동을 하며 그렇게 마지못해 하는 게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수 님께서는 구미호를 선택했고 그 결과, 구미호의 유물을 얻어 그와 연결되어 지금 황궁에까지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알아본 결과, 천의 프로그램은 한계 설정만 있을 뿐이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NPC든 유저든, 모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천에서 한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라는 뜻이야?"
-그렇습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전략과 전술 그리고 무공과 인맥, 이 모든 것이 맞물리게 되어 있습니다.
"어렵다. 쉽게 설명해 줘."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쉽게만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현수 님은 참 좋겠습니다. 저 같은 컴퓨터가 있으니 말입니다.
"야!"
소리를 질러 봤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 야였다.
현수는 야의 말에 한참을 고민했다. 황제의 편에 서서 2황자의 세력을 밀어준다…….
황궁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10년이라는 시간을 황궁에서 보내야 하니, 또 하나의 무림인 황궁 무림에서 일인자의 위치에까지 올라가는 것 또한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현수는 야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황궁에서 나의 세력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혈연, 지연을 중시하는 황궁에서 세력을 만들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황궁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소외된 자들이 있을 거 아냐?"
-그렇기는 합니다. 만일 현수 님께서 세력을 만들어 황제의 편에 서면,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게 다르게 변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르게 변하다니?"
-그게 바로 천의 장점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완벽한 현실을 구현한 천은 그 상황에 맞게 환경이 변합니다. 예를 들어 현수 님께서 황제의 편에 서려고 한다면, 그러지 못하도록 양쪽에서 현수 님을 공격할 것입니다. 힘을 쓰든 머리를 쓰든요.
"그래? 지금 그들의 공격을 받으면 혼자서 이기는 건 무리겠지?"
-아마 힘들 것입니다. 세력을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양 세력을 줄이는 게 더 쉬울 것입니다. 세력 균형을 맞추면서 하나씩 줄여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야의 말을 믿고 실행해서 손해 본 적이 없는 현수였다. 구미호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안 좋았던 것 같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고마워!"
-아닙니다. 저 역시 천의 새로운 시스템을 배우고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대충 잘 넘어가잖아."
현수는 야와의 대화를 마치고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배달 온 밥을 먹은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운동하고 올게."
-다녀오십시오.
집 밖으로 나온 현수는 학교로 향했다.
그러고는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집 앞에서 명월을 만났다.
"어? 운동하고 오시나 봐요?"
"네. 어디 다녀오세요?"
"요 앞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식사하셨어요?"
"네! 전 먹었습니다."
"네. 그런데 엄마가 그러시는데요,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별로 안 좋대요."
말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명월을 본 현수는 실소를 흘렸다. 좋아서 식당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할 줄 몰라서 시켜 먹는 것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을 먹어 본 지 참 오래 되었네. 엄마…….'
현수는 언제 어머니께서 해 주신 밥을 먹어 보았는지 생각을 해 보았다.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현수는 집으로 들어가 다시 샤워를 하고는 천에 접속했다.
객잔에서 간단한 차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현수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면서?"
"그렇다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지. 마천루를 최단 시간에 돌파했다고 하더군. 그것도 9명이서."
마천루는 하남성에 던전의 형태로 만들어진 12층 탑이었다. 베타 시절의 마천루는 총 50층까지 있었지만, 정식 서비스에서는 12층까지만 존재했다. 향후 업데이트할 때 층수를 조금씩 높여 간다는 것이 BS 그룹의 방침이었다.
'누구지? 마천루는 중급 던전이지만 나름대로 난이도가 있어서 12층까지 한 번에 돌파하기는 어려운데.'
"들어 보니 던전의 12층을 장악했던 천마회를 박살 내고 12층을 접수했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고 하더군. 천마회를 비롯해 천지회까지 박살 났다고 하더군.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이 다 베타 시절에 상위 랭커였다는 거야. 그래서인지 천마회나 천지회에서 쉬쉬하고 있다고 하더군."
두 사람의 대화에서 현수는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만사귀 일행이구나. 치고 올라올 수 있다고 하더니. 하긴 한 번 간 길을 다시 가는 것이니 그렇게 어려움은 없겠지.'
만사귀를 비롯한 천연회의 인물들은 마천루의 던전을 장악했다. 고작 9명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보여 준 무위는 엄청났다. 특히 역발산의 금강부동심결을 깨뜨릴 유저들은 얼마 없었다.
'그럼 대충 밑그림이 그려지는구나. 건과 내가 얼마나 활약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현수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것을 실행해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천밀위의 전음이 들려왔다.
-포정사사님!
-말하라.
-하남의 성주가 화산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알아내었습니다.
관이 무림과 긴밀한 관계다?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이한 것은 성주의 아들이 화산의 속가 제자라는 겁니다. 또한 매달 막대한 금전을 화산에 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하남의 백성들은 성주에 대해 그렇게 나쁘게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알겠다. 더욱 자세히 알아보라. 그리고 화산과 하남에 있는 모든 문파들과 성주의 관계를 파악하라.
-알겠습니다.
현수는 혹시 하는 생각에, 모든 것을 알아보라 명을 내렸다. 황궁의 내분에 무림이 끼어들어 봐야 그렇게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무림과 관계가 깊다. 재미있군.'
현수는 야가 이야기한 선택의 변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객점에서 쉬면서 천밀위의 위사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 * *
"어서 오시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시었소."
"하남성을 맡고 계시는 이 대인께 인사를 드립니다."
"자! 안으로 듭시다. 내 대학사께 미리 언질을 받았소. 이왕수라 했소?"
"그렇습니다. 대학사님의 서동입니다."
두 사람은 이 대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대학사께서는 잘 계시오?"
"그렇습니다. 요즘 들어 고민이 조금 늘었지만 건강에 그리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대학사님께서는 이번에 무림과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일에 성주님께서 총책임을 맡아 주길 바라십니다."
"해야지요. 이게 다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겠소. 그래, 내 후임은 누구요?"
"그것이……."
이왕수는 황궁에서 일어난 일을 하남성주에게 모두 이야기해 주며 각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래요? 이현수라는 관리가 우리 하남성의 민심을 알아보고 있다고 그랬소?"
"그렇습니다. 환관들이 우리의 힘을 줄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황궁에서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한 우리는 지방의 힘이라도 잘 지켜야 환관들이 밀고 있는 3황자 저하를 저지할 수 있습니다."
"허허! 엄연히 장자 계승 원칙이 있는데 굳이 2황자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는 황제 폐하의 뜻을 모르겠소. 그래, 이현수라는 관리는 어떤 사람이오?"
하남성주는 현수에 대해서 물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그의 취향, 습관 등등을 알아야 그를 구워 먹든 삶아 먹든 할 수 있기에 최대한 자세하게 물었다.
"그는 사부의 유지로 과거를 본 인물입니다. 또한 높은 학식도 학식이지만 무공 역시 익힌 관리입니다. 아직 행적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아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는 잘 모릅니다."
"음! 학식과 무공이라…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하오? 그냥 사고로 위장하여 그를 죽여 버리면 되겠소? 어차피 민심을 알기 위해서는 암행을 할 것이고 이 하남은 무림 구파일방의 세력권 안에 있으니 조그만 사고를 위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오."
하남성주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황제가 보낸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이왕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결론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현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들의 힘을 보여 주어야 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나쁜 방법이기도 했다. 자존심이 강한 선비는 어설픈 협박으로 굴복시킬 수 없는 고집쟁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그랬다가 황제 폐하의 노여움을 사면 어떻게 합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오. 그냥 강호 무림에서 흔하디흔한 시비로 인해 죽는 것이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선비 하나를 죽인다고 해서 황제 폐하께서 노여워하시다니 말이 되지 않소."
"음!"
'성주 역시 화산의 속가 제자 출신이라 그런지 너무 쉽게 생각을 하는 것 같구나. 하긴 대문파의 힘을 빌리면 가능하겠군.'
"그것보다 민심은 어떻습니까? 성주님을 향한 민심이 괜찮으면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하! 민심이라는 것이 크게 달라질 게 있겠소? 화산과 하남의 군소 문파들이 하남의 치안을 관과 함께 담당해 주고 있어, 그나마 백성들이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긴 하겠지만, 아직 나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를 들어 보지 못해 잘 모르겠소."
하남의 백성들은 하남성주를 나쁜 관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세금을 조금 많이 내고는 있지만, 치안이 안정되었기에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았다.
"무림의 문파들에 들어가는 돈이 조금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학사께서는 그것이 조금 걱정이신가 봅니다."
"음! 하지만 그로 인해 치안이 안정되어 다른 지역의 성 보다 활발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하남이오. 또한 조금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긴 하지만 하남성의 백성들은 다른 지역보다 수입이 더 많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을 건 없다고 생각한 이왕수는 하남성주에게 주의를 주었다.
"황제 폐하께서 후계자를 정할 때까지만 자중해 주십시오. 대학사께서는 3년 안에 승부를 걸어 볼 생각인가 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조심해 주십시오. 하남성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전력이 되는 곳입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겠소. 먼 길 오느라 수고했는데 이만 쉬는 게 좋을 듯하오. 다른 이야기는 내일 나누는 것이 좋겠소."
이왕수가 나가자 하남성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창을 보았다.
"흑아!"
"부르셨습니까?"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하남성주의 뒤에 한 사람이 시립하고 있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저 대인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무미건조한 음성이었다. 하남성주는 흑아라 부른 사내를 보았다.
"넌 가서 민심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또한 이현수라는 자를 찾을 수 있으면 그에 관해서도 알아보아라."
"존명!"
흑아는 땅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지."
황실에 내분이 일어날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 * *
"어떻게 된 것이냐?"
현수는 잠시 당황했다. 성주의 가족들을 알아보러 간 천밀위 위사가 부상을 당해 돌아왔다.
"고수를 만났습니다. 성주의 가족들 중 그의 부인과 첩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던 중 그에게 발각되어 당했습니다. 아마 성주의 호위 무사인 것 같았습니다."
고작 호위 무사에게 당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호위 무사에게 당해? 천밀위가? 그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그는 강했습니다.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사실 정면으로 싸워도 이길 수 없을 만큼의 강자였습니다."
'음! 무림의 문파와 관계가 깊은 자이니 그 정도의 호위 무사를 데리고 있을 수도 있다.'
"알았다. 쉬어라."
현수는 이 말을 남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객잔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신형을 세웠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
현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의 뒤에 검은색의 무복을 입은 사내가 스르륵 나타났다. 현수는 그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일부러 천밀위를 살려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흑아였다.
"그대가 나의 부하를 저 꼴로 만들어 놓았나?"
"그대가 이현수인가? 하남의 민심을 조사하기 위해 온?"
"내각 측인가?"
현수가 하남의 민심을 조사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하남의 백성들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황궁의 세력 중 한 세력이 먼저 언질을 주었다는 뜻이었다. 현수는 지방의 관리들이 모두 내각의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상하군. 그대 같은 고수가 고작 관리의 호위 무사를 하다니 말이야. 그런데 그대는 화산의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문파의 사람인가?"
현수의 말을 들은 흑아는 잠시 흠칫했다.
"예부터 무림과 관은 상관치 않았다. 그대는 지금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현수는 옛날 황실과 무림의 약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 사실은 무림과 황실의 인물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별로 아는 것은 없어. 막대한 금전으로 무림 문파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과 뭐, 조금 잡다한 것들을 빼면."
흑아는 천천히 검을 빼 들었다.
"성주가 날 죽이라고 시켰는가? 그냥 알아보라 했을 것인데?"
"흥! 상관없다. 약간의 교훈을 주는 것 정도는 대인께서도 용납하실 것이다."
'음! 스스로 판단을 해서 실행에 옮긴단 말이지. 후후! 좋아. 그럼 나 역시 완벽하게 유저의 역할을 해 주지.'
"고작 너의 실력으로? 만약 네놈이 나를 이기지 못하면 성주에게 돌아갈 불행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인데?"
"후후!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흑아는 매화검법으로 현수에게 공격을 했다. 죽이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검에 내력이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검에서 느껴지는 예기만으로도 현수는 방심을 할 수가 없었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흑아의 공격을 피하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흑아는 무섭게 따라붙었다.
"윽!"
"후후! 검에만 신경을 쓰는 것을 보니 아직 애송이군."
현수는 흑아의 좌수에 일격을 허용하고 땅바닥에 굴러야 했다.
"아프네. 그렇지. 검을 들고 있다고 해서 꼭 검으로만 공격을 하는 것은 아니지."
현수는 신형을 세우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팔검수화진검류!"
현수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흑아의 사정을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채애애앵!
현수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흑아는 여유 있게 검을 이용해 막아 내고 있었다.
"큭!"
또 한 번 현수의 허리를 강타하는 흑아의 발이었다.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쇄도해 와 검을 내리긋는 흑아였다.
"이크!"
현수는 땅을 뒹굴어 피하고는 흑아를 노려보았다. 그보다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음! 강하다. 아가씨의 무공이 아니면 이기기 힘든 놈이다. 오랜만에 강한 놈을 만난 것 같군.'
현수는 눈앞에 있는 흑아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주제를 알았으면 그냥 황궁으로 돌아가라."
"흥! 강하다는 것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말이야, 넌 아직 나의 대해서 잘 몰라. 내가 누군지."
현수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베타 시절에 일마인 이현수였다. 천에서는 유저든 몬스터든 적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최강의 사나이가 바로 자신이었다.
"후후! 그동안 잊고 있었던 투지를 일깨워 주어 고맙다."
"어리석은 놈!"
다시 검을 움직인 흑아는 현수의 전신 요혈을 공격해 왔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뇌전류!"
공격을 피하며 반격하는 현수의 기세에 잠시 당황한 흑아였지만, 무리 없이 그의 공격을 피했다.
"놀랍군. 눈으로조차 따라갈 수 없는 쾌검이라니."
"흥! 넌 초특급 울트라 눈이야?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쾌검을 피하게."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니까."
알 수 없는 말을 한 흑아는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검을 추켜올려 막는 현수의 복부를 좌수로 가격하고는, 몸을 돌려 발로 현수의 얼굴을 후려 차 버리는 흑아였다.
"크악!"
'젠장! 오히려 검으로 공격한 것보다 권과 각의 공격이 더 강한 것 같으니… 가만!'
떨어지는 체력을 확인한 현수는 일어나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이제껏 흑아가 한 공격을 다시 짚어 보았다.
화산의 무공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검에는 그리 크게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권, 각은 달랐다.
'검은 위장용?'
이런 생각이 들자 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벽곡단을 씹은 현수가 흑아를 보았다.
"좋아! 이제 기대해도 좋아."
"후후! 뭐?"
"이것, 팔검수화진검류!"
여덟 방위를 점하며 공격해 들어간 현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매화검법!"
매화검법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는 흑아를 본 현수는 다시 움직였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뇌전류!"
펑!
하지만 흑아에게 충격을 줄 수는 없었다. 흑아는 마치 현수가 어떻게 공격을 할지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현수는 흑아를 괴물처럼 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꼭 눈으로 봐야 안다는 법은 없다고."
현수는 심안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힘들겠군."
"알았으면 좋게 돌아가라. 대인에 대해서 좋게 황궁에 보고하는 것이 너의 신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뭘 잘못 알아들은 모양인데?"
"무엇을?"
"살황의 일기장, 은신술!"
순간 현수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흑아는 그런 현수를 비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흑아의 인상이 변해 갔다.
'없다. 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흑아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비록 기척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의 주위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갈수록 흑아의 얼굴에 땀방울에 맺히기 시작했다.
"나와라!"
흑아의 외침에도 주변은 조용했다.
파아앗!
"이런!"
채앵!
공격은 막았지만 또다시 흔적을 놓쳤다.
'역시 놈은 심안을 익힌 것이 아니다. 그럼!'
만약 심안을 익혔다면 지금 현수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고 공격을 해야 정상이었다.
흑아는 처음으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무사라기보다는 살수라고 해야 옳았다. 그것도 최상급의 살수!
흑아는 전신의 기운을 퍼트리고는 최대한 방어에 신경을 썼다. 문득 뒤쪽에서 기운을 읽은 흑아는 뒤를 향해 검을 움직였다. 하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파앗!
"이런, 당했다."
흑아는 쇄도해 오는 검을 피할 수가 없었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현수의 검은 흑아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큭!"
흑아는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상대의 무공이 높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살수라서 더러운 암수에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놈!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미친놈! 넌 질 것을 뻔히 아는데 정정당당하게 싸우겠냐? 그리고 살수 또한 무공의 한 갈래야. 나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이 너의 실수지."
흑아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검을 던졌다.
"후후! 역시 나의 생각이 맞나 보군. 넌 검을 쓰는 놈 같지만 오히려 권, 각, 술을 쓰는 놈이었어. 그러니 검을 던질 수가 있지. 검은 애초에 미끼와 같은 것이었어."
현수의 말을 들은 흑아는 흠칫했다.
"후후! 내가 살수를 쓰는 것이나 네놈이 검을 미끼로 쓰는 것이나 같은 게 아니겠나? 팔과 다리 하나를 잘라 성주에게 보내 주지. 조용히 평가를 기다리라 전해라."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흑아는 피가 배어 나오는 허리를 한 손으로 지혈하고는 일어났다.
"오라!"
흑아는 내력을 온몸으로 퍼트렸다.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현수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파아앗!
"자하강기!"
화산의 최고 심법인 자하신공을 바탕으로 펼치는 호신강기가 흑아의 몸에서 실현되었다.
"큭!"
현수는 자하강기에 의해 뒤로 날아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쿨럭! 자하강기라니, 화산의 최고 신공이……."
현수는 흑아가 화산에서 보통의 신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이기에 화산의 신공을……? 화산이 딴마음을 먹고 있단 말이야?"
현수는 화산이라는 문파가 아무에게나 자하신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쿨럭!"
무리하게 펼친 자하강기에 의해 흑아는 한 움큼의 피를 토해 내었다.
"화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흑아는 화산에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무리 화산이 무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관군이었다. 아무리 강해도 800만 황군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흑아는 자신의 손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화산이 아무에게나 자하신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흑아는 현수를 죽여야만 했다. 아니면 자신이 죽어야 했다.
"낙영장법! 매화낙하수!"
"천밀밀!"
콰아앙!
현수는 구파일방의 방어 무공을 합쳐 만든 천밀밀을 사용해 흑아의 공격을 방어했다.
"크억!"
"뇌전류!"
"크아아아!"
흑아의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가 피를 뿌렸다.
"뇌전류!"
"크아!"
현수의 검이 흑아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흑아가 현수의 검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왜?"
"화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것은 진정이다. 관계가 있다면 내가 하남성주의 서자이기 때문이다. 정말 화산과는 관계가 없다."
흑아는 이 말을 남기고 회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을 알리는 소리 역시 현수의 신경을 끌지 못했다.
현수는 내각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각 지역 성주들의 지지 세력이 무림이라면, 반란을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무림을 움직일 수 있다면…….'
현수는 먼저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야의 말대로 먼저 내각의 힘을 줄여야 한다. 환관들보다는 내각이 더 위험하다. 그러고 나서 환관들의 세력을 줄여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자 현수는 자신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상태 창 오픈!"
이름 : 이현수 레벨 : 36
직업 : 서생 체력 : 640
기력 : 780 공격력 : 10(+5)
방어력 : 10 순발력 : 10(+34)
민첩성 : 68 인내 : 61
맷집 : 70 NPC와 호감도 : 80%
경험치 : 0/100
생활 스킬 : 도축-가죽과 고기를 얻을 수 있다.
현수는 스탯 포인트를 민첩성에 투자했다.
"무공 창 오픈!"
운중비록 : 10성
-보법 : 운중난화무, 운중무영보, 운중광속신형보
-경신법 : 운중탄영신, 운중무영신
살황의 일기장 : 10성
-지둔술, 추적술, 탐지술, 은신술, 잠입술(운중비록을 토대로 사용할 수 있음)
-뇌전류 :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한 줄기 빛과 같은 빠름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
민첩성+300%의 타격을 준다.
팔검수화진검류 : 4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검법만을 모아 ≪만자무서≫를 통해 합쳐 만든 무공으로, 일초식의 검법이지만 여덟 가지의 변화가 숨어 있다.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순발력+200%의 타격을 준다.
현천파열권 : 3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권법만을 모아 ≪만자무서≫를 통해 합쳐 만든 무공. 일초식의 권법으로, 총 여덟 번의 주먹을 빠르게 휘두를 수 있다.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순발력+130%의 타격을 준다.
호심발도술 : 4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초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도법과 살황의 일기장의 뇌전류를 합쳐 ≪만자무서≫를 통해 만든 도법.
기력을 사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민첩성+140%의 타격을 준다.
천밀밀 : 3성
제작자 : 이현수
등급 : 절정
설명 :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 호신기공으로 만든 무공으로, 검으로 검막을 만들어 적의 공격을 방어한다.
기력을 사용해 방어한다.
방어력+130%
≪만자무서≫
등급 : 무
설명 : 두 가지 이상의 무공을 합쳐 새로운 무공으로 만들 수 있는 무서.
자신의 무공 창을 보니, 아직 만족할 수가 없었다. 흑아라는 사내와 싸워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 무림의 NPC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그래!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수는 다시 객잔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