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궁
대자보의 제일 위에 현수의 이름이 있었다.
장원 이현수
합격 슈우엔
오매불망
3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한 현수는, 오매불망 역시 NPC가 아니라 유저라는 느낌이 들었다.
베타와는 다르게 정식 서비스에서는 구파일방을 비롯해 오대세가, 사도의 사왕천 등이 던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로, 유저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현수 또한 던전의 형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중 황궁은 BS 그룹에서 꿈의 던전이라 칭하고 있었다. BS 그룹에서는 황궁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에피소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이 유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에피소드 2와 연계할 생각으로 진행 중이었다.
잘하면 대박이지만 못하면 쪽박을 차는데, 황궁에 들어간 유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되어 있었다.
모집 인원이 정해져 있기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또한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바로 황궁이었다.
현수는 단지 미랑을 보호하기 위해 들어갔지만, 황궁이 자신의 앞에 어떤 형식으로 다가올지 모르고 있었다.
현수는 입궐을 위해 옷과 기타 준비를 하고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황궁에 입궐할 수 있었다.
현수와 함께 입궐한 2명 중 1명은 NPC였으며, 또 1명은 현수와 같은 유저였다.
황궁으로 입궐하자 좌우로 늘어선 대신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뭐야! 역시 황궁이라 이거야? 괜히 사람 기죽이고 있어.'
과거에 급제한 세 사람은 긴장한 채 황제의 앞에 이르렀다. 무릎을 꿇어 부복하고는 황제에게 최대한의 예를 표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하하하! 어서들 오라. 짐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들은 이 나라의 기둥이 되어 나를 보필토록 하라."
단상 위의 용좌에 앉아 세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NPC가 황제였다.
현수가 황제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바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후덕한 모습이었다.
'음! 생각보다 쉽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군. 일단 미랑을 찾는 것이 급선무인데……. 제조상궁이 누구인지 알아봐야겠다.'
제조상궁은 황궁 궁녀들의 책임지는 직책을 수행하는 정5품의 관리였다. 정5품이라고는 하나, 그녀가 가진 권력은 그 누구 못지않게 강했다.
황제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현수의 귀에는 그저 쓸데없는 말로만 들렸다.
현수의 진짜 목적은 고리타분한 궁의 생활이 아닌 미랑의 보호였기에, 자신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현수의 귀를 자극하는 황제의 소리가 들렸다.
"그대들에게 짐이 상을 내릴 것이다. 장원을 한 이현수는 원하는 것을 말하라. 짐은 장원을 한 그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것이다."
현수는 무공을 합칠 수 있는 무서인 ≪만자무서≫를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좌우로 늘어선 대신들을 보니 입이 절로 닫혔다.
꼭 무엇을 달라고 말하면 화를 낼 것 같은 인상들이었다.
'인상 펴고 웃는 모습으로 서 있으면 어디가 덧나나.'
"폐하! 상이라니,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신, 이현수는 장원을 한 것만으로도 광영이옵니다. 그저 폐하를 보필할 수 있다면 족하옵니다."
현수의 대답에 황제는 마음이 흡족했는지,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하하! 그대는 욕심이 없나 보구나? 다른 이들은 말을 하여라. 오매불망 역시 원하는 것이 없는가?"
현수는 한 번 거절했다고 그냥 넘어가는 황제를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아 씨, 예의상 발언이라는 것도 있는데.'
"신! 오매불망은 감히 황제 폐하께 청하옵건대, 불충한 저를 용서하시고 저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십시오."
"말하라."
"다름이 아니오라, 황궁 서고에 하루만 들어갈 수 있게 허락을 하여 주십시오."
황궁 서고라는 말에 현수는 오매불망을 보았다. 현수 역시 황궁 무고에서 ≪만자무서≫를 찾아야 했다.
'황궁 서고라… 들어줄까? 들어주면 나 역시 황궁 무고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해야지.'
만일 황제가 오매불망의 말을 들어주면 현수 역시 황궁 무고에 들어가서 ≪만자무서≫를 찾을 생각이었다.
"황궁 서고라… 넌 황궁 서고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거냐?"
황제는 황궁 서고라는 말에 인상이 변하였다.
좌우로 늘어선 대신들 역시 인상이 조금 더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역시 가만히 있기를 잘했어.'
황궁에는 출입 금지 구역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중 황족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바로 황궁 무고와 황궁 서고였다.
"선비로서 보다 많은 책을 보는 것 외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황궁 서고에 있는 책들이 최고라 들었기에 책을 보고자 하는 욕심에 폐하께 불충을 하였습니다."
전형적인 학자의 냄새를 풍기는 오매불망이었다. 황제는 오매불망의 표정을 살펴보았으나 그의 표정에는 거짓이 섞여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황궁 무고가 아닌 황궁 서고라고 하니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락한다. 그대는 내일 황궁 서고에 들어가 7일 동안 그대가 보고 싶어 하는 책을 보라. 단 책을 가지고 나와서는 아니 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루가 7일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속으로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현수였다.
'젠장. 괜히 예의상의 발언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놓쳐 버렸잖아! 아깝다!'
"폐하! 신 슈우엔은 감히 작은 욕심으로 아뢰옵니다."
"말하라."
"저에게 작은 황금을 내리시어 고향에 있는 신의 가족들을 부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황제는 옆에 서 있는 신하를 보았다.
"신 현의태감 왕평이 폐하께 아룁니다. 슈우엔은 하남성의 가난한 선비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또한 그의 집은 가난하여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학문을 쌓아 폐하를 보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폐하께서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황제는 슈우엔을 보았다. 황제와 눈이 마주치자 슈우엔은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처럼 생각이 되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허락한다. 지금 슈우엔의 집에 황금과 곡식을 보내어 그의 가족을 보살펴라. 또한 하인 10명을 더하여 그의 집안에 두도록 하여라. 그리고 하남성주에게 이야기를 하여 슈우엔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폐하!"
"그대는 걱정 말라. 자고로 나랏일을 하려면 가정이 안정되어야 한다. 그대는 더욱 힘써 나를 보필하라."
황제는 간단하게 말을 했지만, 이로써 슈우엔의 가정은 하남성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저러니 기를 쓰고 국회의원인가 뭔가를 하려고 노력들을 하지.'
현수만이 황제의 상을 받지 못했다.
'설마 이대로 끝내고 내일부터 죽도록 일해라, 그런 말은 안 하겠지?'
현수의 바람대로 황제는 다시 한 번 현수에게 물었다.
"그대는 주저 없이 말하라."
"신, 이현수는 폐하께 청하옵……."
그때 현의태감 왕평이 현수의 말을 가로막았다.
"폐하! 이 선비의 정체가 조금 의심이 되옵니다. 오매불망과 슈우엔은 신원이 확실하지만 이 선비의 신원은 불확실합니다. 그를 조사하여 그의 뜻이 무엇인지 확인을 하셔야 되는 줄로 압니다."
이걸 자다가 벼락을 맞았다고 해야 한다. 현수는 ≪만자무서≫를 얻을 기회를 날려 버린 왕평이라는 대신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나라의 중책을 맡길 사람의 뒷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오냐! 그렇게 걸고넘어진다 이거지? 현의태감, 넌 나한테 찍혔어.'
현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자신이 변명을 해야 할 때였다. 팔자영법의 무공서를 주워 대충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황제라는 인물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그리 간단하게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황제는 흥미로운 듯 현수를 보았다. 사실 황제에게는 그가 무슨 목적으로 황궁에 들어왔는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에 급제를 했을 때부터 현수는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황궁에 입궐했는지 말하라."
"신, 이현수! 폐하께 아뢰옵니다. 신은 과거를 보기 전까지 산속에서 글을 익혔습니다. 또한 사부님의 유지를 받아 과거를 보았습니다. 비록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지만 서찰로 스승님의 전진을 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팔자영법이라는 무공 비급을 넘겨주셨습니다. 선비의 가문에서 태어나 폐하를 보필해야 할 자신이 무림인들 때문에 멸문지화를 당하자, 복수를 위해 검을 들었습니다. 하오나 사부님은 폐하를 보필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서신으로나마 저에게 10년간 폐하를 보필하라 하셨습니다. 그 대가로 사부님의 팔자영법과 그분이 익힌 지혜를 물려주었습니다."
황제와 신하들은 현수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요즘 들어 황궁에 자객들이 활보하기에 더욱 그러했다.
"폐하! 이현수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나……."
황제는 왕평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그래, 그럼 그 팔자영법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히 폐하의 앞이라 검을 잡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대신하는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현수는 미자에게서 배운 대로 황궁의 예법을 철저하게 실행했다. 천천히 일어나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팔자영법의 서체를 떠올리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빠른 보법을 사용해 보는 이들을 속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구파일방의 무공들을 대성하지 못해 팔자영법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무공을 대성해서일까. 아니면 배움이 많아서일까? 현수는 영 자로 시작하는 팔법의 서예법을 진짜 무공같이 펼쳐 내고 있었다.
"휴! 미천한 실력으로 폐하의 눈을 어지럽혔사옵니다."
현수는 모든 것을 다 보이고는 황제의 앞에 부복을 했다.
황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도 그럴 듯하게 보였다. 너무도 빨리 움직이는 바람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대가 본 소감은 어떠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황제의 앞에 한 사내가 부복했다. 검은 무복을 입은 그에게서 고수의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고수다.'
현수는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혹시 자신이 펼친 무공이 엉터리라는 것이 들키지 않을까 해서 가슴 졸이고 있었다.
"헉!"
"천밀위!"
좌우로 늘어선 대신들은 나타난 사내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천밀위는 황족의 비밀 경호 무인들로, 약 50여 명의 적은 수에 불과했지만, 그들 모두가 절정의 고수들로 이루어진 단체였다. 특히 지금 황제의 앞에 나타난 복면인은 상당한 고수인 것 같았다.
현수는 그와의 승부를 점쳐 보았으나 내심 고개를 흔들었다.
'느낌상 레벨이 100은 넘은 것 같다. 게다가 일반 몬스터와는 또 다르다.'
일반적으로 천의 몬스터는 야수형 몬스터와 인간형 몬스터로 나뉘어 있다.
야수형 몬스터는 체력이 강한 반면에 공격력은 조금 떨어지고, 인간형 몬스터는 체력이 약한 반면에 공격력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현수의 눈앞에 있는 천밀위는 이 둘과는 괘를 달리하는 몬스터 NPC로, 적이 될 수도 있고 아군이 될 수도 있는 몬스터였다.
몬스터 NPC의 단점은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리젠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현수는 천밀위와 같은 몬스터에 대해서 조금 알아 둘 필요를 느꼈다.
"신! 천밀위의 령이 폐하께 아룁니다. 그의 무공은 팔자영법이 확실합니다. 다만 아직 많은 것이 엉성해 보입니다. 무엇인가 빠진 느낌입니다. 부족한 것을 빠른 보법으로 메우고 있습니다."
한눈에 현수의 성취를 파악하고 황제에게 말하는 령이었다. 황제는 천밀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수는 입술을 물었다. 설마 저런 고수가 붙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예 기척을 느낄 수도 없었다.
"신. 이현수, 재질이 부족하여 아직 3성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평생을 걸쳐 붓과 살아온 사부님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오나 사부가 말하기를, 저의 부족한 것을 메울 수 있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황제는 현수에게 흥미가 생겼다. 이것에는 현수가 NPC와의 호감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그게 무엇이냐? 너의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는 것이?"
현수는 령을 보았다. 그 역시 고수이니 ≪만자무서≫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자무서≫라는 무서입니다. 그 무서는 만 자의 요결로 이루어진 무공서로, 세상 어디엔가 존재한다고 들었사옵니다. 하오나 확실치 않는 무공서 때문에 세상을 돌아다니기보다는, 폐하를 모시고 10년간 보필하면서 사부님의 유지를 받드는 동시에 황궁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면 후에 무공서를 찾기가 조금 수월할 것 같아서 과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천밀위를 보았다. ≪만자무서≫가 어떤 무공서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만자무서≫는 일반 무서가 아닙니다. 무공을 두 가지 이상 합칠 수 있는 요결이 적혀 있는 무서입니다. 또한 그 자체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 자로 세상의 이치를 말하고 있기에 글을 읽는 선비들 역시 ≪만자무서≫를 탐하고 있는 줄 아옵니다, 폐하!"
현수는 천밀위가 ≪만자무서≫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 조금 염려스러웠다.
황제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수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령, 그대는 팔자영법이 어느 정도 수준의 무공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류에 드는 무공입니다. 다만 무인들이 익히기에는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비록 길 영 자라는 한자의 필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공이지만, 글씨에 익숙지 않은 무인들에게는 대성하기가 힘든 무공입니다."
"그래? 짐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대는 ≪만자무서≫를 읽고 팔자영법을 완전히 익히는 데 얼마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가?"
엉뚱한 질문에 잠시 당황한 현수였다.
'설마 황제가 ≪만자무서≫가 황궁 서고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현수가 생각하는 동안 황제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짐이 그대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현수는 황제의 다그침에 입을 열었다.
"신 이현수, 장담은 하지 못하나 2년 정도면 될 것이옵니다."
≪만자무서≫를 저장함으로써 모든 것을 터득할 수 있었지만 현수는 일부러 시간을 길게 잡았다. 그 시간 안에 구파일방의 무공을 합쳐 모두 익힐 생각이었다.
"좋다. 그대에게 ≪만자무서≫를 허락한다. 천밀위의 령은 들어라."
"신, 령이 폐하의 명을 받습니다."
"그대는 이현수에게 황궁 무고에 있는 ≪만자무서≫를 가져다주어라. 그리고 이현수는 2년 안에 팔자영법을 익혀 짐의 군대에 전하라. 기한은 10년. 그대가 사부의 유지를 받드는 기간까지이다. 만약 그 기간 안에 짐의 군대가 팔자영법을 익히지 못할 시에는 그대가 짐을 기만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대와 관련된 사람들을 반역죄로 다스려 벌하겠다."
어차피 미랑이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궁에 있을 생각이었지만 괜히 10년이라는 말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말로 인해 현수는 황궁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현수는 자신의 방을 배정받고 나서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왜 내가 10년이라고 했을까! 왜! 이런 미련퉁이! 그냥 3년이라고 할걸."
현실로 3년하고 4개월. 다시 말해 또 한 번의 군 생활과 같았다. 그것도 장기 근무자로! 현수는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굴려 보았다. 하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덤을 판 것이라 누구에게 하소연도 할 수가 없었다.
황제 역시 이미 자신의 사람이 되어 버린 현수를, 10년이 지나도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미랑은 어디 소속 궁녀지? 제조상궁에게 이야기를 해서 미랑을 시녀로 배정받아야 하는데."
스르르르-.
궁녀 2명이 들어와 현수에게 인사를 했다. 현수는 미랑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인벤토리에는 미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화선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현수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앗! 너는……."
현수는 순간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뒷짐을 지고 뒤로 돌아서 버렸다.
현수가 찾고 있던 미랑이 시중을 들 궁녀 중 1명으로 선택되어 들어온 것이었다.
"미랑이라고 하옵니다."
"미령이라고 하옵니다."
"미령?"
"그러하옵니다."
미랑과 비슷한 이름이라 그녀 역시 구미호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지스러웠다.
"그래, 알았다. 미랑은 남고 미령은 할 일을 하고 있어라."
"알겠사옵니다."
현수는 미령이 나가자 주위를 살펴보고는 호면을 빼 들어 미랑에게 보였다.
미랑의 눈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현수가 먼저 고개를 숙여 미랑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황궁에 들어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아가씨에게 미랑 님을 부탁받았습니다. 완전히 성장하실 때까지 제가 미랑 님을 보호하기로……."
아무 말 없이 현수에게서 호면을 받아 든 미랑은 무릎을 꿇고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현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미랑이 나오지 않자, 미령은 청소를 하는 척하며 현수와 미랑이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어?"
안에서 들려오는 미랑의 흐느끼는 소리에, 궁금한 미령은 문틈으로 안을 훔쳐보았다.
"헉!"
미령은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미령의 눈에 보이는 방안의 장면은 실로 음란했다. 미랑이 무릎을 꿇고 현수의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손으로 잡고 흐느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현수 역시 천장을 쳐다보며 무엇인가 감정에 휩싸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령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수와 미랑을 오해했다. 미령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자리를 피했다.
"미랑 님께서 완전히 성장을 하시면 전 아가씨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자 힘없이 일어나 절을 하는 미랑이었다.
"감사합니다. 꼭 다음 생을 살고 계실 어머니를 찾으시길……."
호면을 현수에게 돌려준 미랑은, 일어나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미령이 눈물로 얼굴이 붉어진 미랑을 안고 위로를 했다.
"괜찮아. 너도 알잖아. 황궁은 원래 다 이래. 그래도 나이 든 영감이 아니니 다행이잖니. 그만 울어. 그래도 그렇지, 첫날부터… 휴!"
미령의 이상한 말을 듣던 미랑이 미령을 보았다.
"알아. 난 너의 친구잖아. 말하지 마.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지 않을게. 저 관리가 잘되어 너를 잊지 않기를 기도할게."
그 소리를 들은 미랑은 얼굴이 빨개져서 자신의 방으로 달렸다. 그 모습을 본 미령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여자 후리는 데 선수인가 보구나. 계집애! 좋긴 좋았나 보네. 같이 가!"
* * *
현수는 전해 받은 ≪만자무서≫를 통해 구파일방의 무공을 팔자영법에 합치고 있었다.
-성공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하루 동안 ≪만자무서≫를 통해 무공을 합칠 수가 없습니다.
"젠장!"
현수는 실패할 때마다 하루라는 시간이 소비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현수는 ≪만자무서≫를 통해 무공을 합치는 일과 팔자영법을 익히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현수에게는 아직 관직이 내려지지 않았기에 황궁에서 따로 할 일은 없었다. 더구나 미랑이 자신의 시비로 들어왔기에 굳이 찾아서 보호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의 성취를 위해 노력 중이었다.
현수는 ≪만자무서≫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빌어먹을!"
네 가지의 무공을 합치는 데는 아무런 페널티가 없지만, 다섯 가지의 무공을 합칠 때는 만약 실패하면 모든 무공이 사라지거나 운이 좋아도 처음부터 다시 합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따로 합쳐야 하는 것 아니야?"
검법은 검법, 도법은 도법, 권번은 권법, 지법은 지법대로따로 합쳐야 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다시 합쳐야 하는 무공들이 몇 개 있었다.
"좋아. 그럼 일단 묶어서 한 번에 합치는 방향으로 생각하자."
샤샤샤샤샤!
현수는 갑자기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바람 부는 소리와는 달랐다. 분명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누굴까, 이 밤에?"
현수는 호면을 쓰고는 밖으로 나가 미약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갔다.
"운중비록, 운중탄영신!"
얼마 가지 못해 소리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복면을 쓴 자객들의 선두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쥐는 게 보였다. 따라오던 자객들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황궁 자객!
레벨 50의 몬스터로 황궁의 궂은일을 맡아 처리하는 인물들이었다.
손짓으로 이리저리 방향을 지시한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머지 자객들은 따로 흩어져 움직였다.
"모두 네 방향이네? 한 곳을 포위해 들어간다는 말인가? 무료하던 참에 잘되었네."
현수는 선두를 은밀히 뒤따라갔다.
"대장을 따라가면 다 모이겠지."
영취궁!
황제의 장녀인 영취 군주가 기거하는 궁으로, 황궁 안의 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객들은 군주의 궁을 포위하고는 주위를 살피며 들어갔다.
"군주를 납치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 궁금한데? 저들은 이번에 새로 생긴 레벨 50인 황궁 자객이란 몬스터지? 자객이라……. 살황의 살수를 한번 견식시켜 주는 것도 좋겠지. 살황의 일기장, 은신술!"
달그림자에 신형이 스며든 현수는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일절 기척도 없이 군주가 자고 있는 방문 앞까지 도착한 살수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삐이걱- 끼익!
문이 열리자 살수 대장이 안으로 들어갔다.
쾅!
어느새 모여든 자객들이 군주의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침대의 이불을 거두며 검을 겨누었다.
"아니!"
군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베개만이 놓여 있는 것을 본 그들은 주위를 경계했다.
번쩍!
일절 소리도 없이 황궁 자객 1명이 쓰러졌다. 그는 언제 자신이 베였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이었다.
"독한 놈이네. 일절 소리를 내지 않다니."
획!
7명의 자객이 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보았다. 호면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누가 시켰느냐?"
서로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현수를 향해 검을 들었다.
"비밀을 지킨다. 음! 고객과의 신의를 지킨다. 좋아. 나 역시 살수이니……. 살수는 살수로 말을 하는 것이라 누군가 그러더군."
현수의 신형이 다시 사라졌다. 순간 방 안에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이들은 현수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모두는 그 자리에서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조심하라. 놈 역시 살수다."
낮게 말하는 이가 있었다. 살수 무예를 잘 알고 있는 그들 은 감각을 개방해 현수의 기척을 찾았다.
"음!"
자객들의 대장이 신음을 흘렸다. 그만큼 살황의 살수 무예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운중비록과 합쳐진 현수의 살인 미학은 더욱 빛을 발했다.
스거엉! 뚝!
너무도 조용한 가운데 무엇인가 베이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또 1명의 수하가 죽었다. 하지만 현수의 기척은커녕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군주를 암살하는 것은 실패했다. 이곳에 있으면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현수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대체 누구이기에……."
"컥!"
또 1명의 수하가 죽었다. 살수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낀 자객들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 여기 있는데!"
현수는 한 자객의 뒤에 나타나서 말하고는 목을 꺾어 버린 후 다시 사라졌다.
"누구냐! 나와라!"
공포에 질린 자객이 소리쳤다. 허공을 격한 차가운 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후후. 살수가 공포를 느끼다니, 아직 수양이 덜 되었군. 살수는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이미 살수가 아닌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만났을 때 모습을 감추어야 했다."
현수는 가장 기본적인 살수들의 계명을 말하고 있었다. 자객들은 현수의 질책을 들었지만 그 누구도 모습을 감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습을 감춘다고 해도 죽음을 비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 너희들은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자객들의 대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자들을 떠올려 보았으나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천밀위의 수장인 령은 아니다. 그 역시 살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은신하지는 못한다. 놈은 가장 완벽한 살수!"
가장 완벽한 살수라는 생각이 들자 이들의 머리에서는 하나의 공통된 인물이 떠올랐다. 그들은 급히 두 무릎을 꿇어 오른손을 심장에 가져다 대고는 바닥에 엎드렸다. 이들이 하는 행동은 살수들이 살황을 봤을 때에 예를 갖추면서 하는 것이었다.
현수 역시 알고 있었다. 살황의 일기장에 이런 것들도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누구냐? 군주를 죽이라고 시킨 놈이?"
"종주시여, 그것을 말씀드리지는 못하옵니다. 다만 저희들의 죄를 물으시어 자결을 허락하시옵소서!"
"음!"
살수가 의뢰자를 발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수가 아무리 살황의 전인이라고는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배후를 물을 수는 없었다.
현수가 이들에게 자결을 허락하려고 할 때, 지밀원의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현수는 순간 모습을 감추었다.
"감히……! 쳐라!"
지밀원의 무공!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황궁의 무공은 쾌속함 속에 질서가 있었다. 반항하지 않는 이들은 지밀원의 무사들에게 순식간에 도륙당했다.
"깔끔한 동작이다. 군더더기가 없어. 게다가 무림의 무공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한데 조금 이상하군. 반항치 않는 이들을 죽이다니 말이야. 황궁 역시 무엇인가 있단 말이군."
현수는 이들의 배후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어 버린 것을 아쉬워하고는, 영취궁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헉!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현수의 방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랑이었다. 미랑은 현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현수는 미랑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 역시 자리에 앉았다.
"아가씨께서는 많은 무림인들에게 합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저에게 아가씨의 내단을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가씨께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모든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현수는 구미호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했다. 레벨 200의 보스 급 몬스터가 이제 레벨이 40∼50대인 유저들에게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베타 시절에 상위 랭커 1,000명이 적룡에게 도전했다가 몰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비록 적룡이 레벨 300대의 보스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당시 상위 랭커들의 레벨 역시 평균 150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에게 내단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구미호가 고작 300명의 인원에게 당할 리 없다고 여겼다.
내단을 넘겨주었다는 뜻밖의 말에 미랑은 흠칫했다.
"어머니께서 내단을 주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어머니께서……."
미랑은 일어나 현수에게 큰절을 했다. 현수에게 원한을 가져도 별로 이상치 않을 것을, 되레 이런 모습을 보이는 미랑의 행동에 현수는 당황했다.
"아니, 미랑 님께서 왜 저에게……. 일어나세요."
"몰라 뵈었습니다. 저희 구미호에게는 자신의 정인에게 내단을 주어 약속의 증표로 삼는 전통이 있습니다."
미랑의 말은 구미호 역시 현수를 정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할 말을 잃은 현수는 구미호를 생각했다.
'더 잘해 드릴 수 있었는데…….'
"1년만 더 있으면 전 구미호로 완전히 성장을 합니다. 물론 오랜 기간 동안 잠을 자야 하겠지만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미랑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년간 황궁에서 미랑이 무사히 성장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알려 오는 메시지에, 현수는 퀘스트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수가 황궁에 있어야 하는 시간은 1년이면 되었다.
'젠장! 괜히 10년이라고 해서 고생하게 생겼네. 그나저나 9년을 어떻게 때우지.'
자신의 손으로 판 무덤이었다.
현수는 미랑에게 아가씨의 무공을 전해 줄 생각이었다. 무공을 전해 주지 않아도 수면에서 깨어나면 레벨 200대 보스 몬스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미랑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를 원했다.
"저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또한 미랑 님께서는 저에게 운중비록과 약간의 무공을 배우셔야 합니다. 아가씨께서는 고수였지만 많은 무림인들의 합공으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미랑 님께서도 그리되신다면 저는 아가씨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아버님!"
현수는 미랑의 아버님이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아가씨의 종이지……."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내단을 드렸을 때부터 아버님께서는 모든 여우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어이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모든 여우들의 아버지. 이 말은,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여우들이 벌써 자신을 구미호의 남편으로 인정했다는 뜻과 똑같았다.
"휴… 일단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그리고 자정이 되면 저에게 오셔서 무공을 전수받도록 하세요. 혹독할 것입니다. 참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미랑 님을 가르칠 것입니다. 어머니는 강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약해서 자식들이 다른 강자들에게 치욕과 모욕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전 미랑 님을 최대한 강하게 훈련시킬 것입니다."
미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수의 방을 나갔다.
미랑이 돌아가자 방 안에 현수 혼자만이 남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에 구미호의 얼굴이 겹쳐서 떠올랐다.
"아가씨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1년이래요. 미랑 님이 성장하는 데 1년이 걸린대요. 그런데 이 멍청이가 황제에게 10년간 황궁에 있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아가씨! 그러니까 10년만 참고 기다려 주세요. 10년만 지나면 아가씨를 찾아갈게요."
혼자 달을 보고 중얼거리는 현수였다. 달에 떠오른 구미호의 얼굴은 마치 현수의 말에 대답을 하는 듯, 밝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