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보다
현수는 패치를 하는 시간을 이용해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라고 하지만,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이사를 다 하고 나서야 현수는 이번 패치에 관해서 야와 대화를 나누었다. 무공 패치라고는 하지만 전반적인 패치가 될 것이고, 또 이것은 간간이 선전을 하던 에피소드 2의 전반부 패치와 함께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넌 어떻게 생각해?"
-잘 모르겠으나 이번 패치는 어떻게 보면 현수 님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무공서가 없어진 곳에는 항상 현수 님께서 계셨다는 것이 모니터링되었을 경우, BS 그룹에서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사건의 조사차 말입니다.
"난 모니터링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알겠어?"
-현수 님을 직접 모니터링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주위를 통해서는 가능합니다.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똑똑똑!
"헉!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현수는 누가 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그만 열쇠 구멍으로 밖을 보았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에요. 이사를 왔다고 해서 인사를 하려고요."
그때서야 안심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네, 어서 오세요. 남자 혼자 사는 곳이라 누추해요."
"진짜 그러네요."
한 번 본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주인집 딸은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곳저곳을 한번 훑어보고는 가상현실 천의 접속기를 발견했다.
"어! 가상현실 천을 하세요?"
"네, 조금."
"저도 그거 하는데. 전 운이 좋아 사부를 모셨는데, 아저씨도 사부를 모셨나요?"
아저씨라는 소리가 조금 섭섭한지, 주인집 딸을 본 현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이제 29레벨입니다. 하지만 전 서생이라……."
서생이라는 말에 인상을 약간 쓰는 그녀였다.
"고리타분하게 서생이라니……. 아이템 같은 거 필요하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이사 온 기념으로 하나 구해 드릴게요. 물론 너무 좋은 것은 안 되지만."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빨리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갈 생각이 없는지, 계속해서 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소문 들었어요? 호면객이 천 최고의 스틸 맨이어서 사람들이 잡으러 다닌다는 말이오. 하지만 저에게는 안 되죠. 눈앞에 호면객이 나타나야 될 텐데. 그렇죠!"
다 현수의 이야기였다. 무공 비급 탈취 사건을 비롯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현수 앞에서 미주알고주알하는 주인집 딸이, 현수는 참 보기가 싫었다.
'어디서 한 번 본 기억이 나는데,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네.'
"저기, 전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 과거를 보고 궁에서 관리를 할 생각이거든요. 옛부터 무림과 관은 상관을 하지 않잖아요."
현수는 빨리 주인집 딸을 보내고 싶어 말했지만, 그녀는 가려는 생각이 없는지 야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렇구나. 재미없게. 어! 이게 인공지능 컴퓨터인가요? 와! 아저씨 되게 부자인가 보네요."
-안녕하세요.
"어! 아저씨, 방금 저 컴퓨터가 제게 말한 거 맞죠. 와! 신기하네. 안녕!"
-이사를 해서 그런지 집이 누추합니다.
"화아! 넌 이름이 뭐야?"
-야입니다. 주인 님의 작명 센스가 영 아니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녀는 야의 이름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풋! 야? 재미있는 이름이네. 난 명월이야! 천에서 명월이라면 다 알아."
-아! 그렇군요. 유명하신 천수 명월 님과 한 집에서 살게 되어 영광입니다.
명월은 야가 자신을 알자 입이 벌어졌다.
"어! 너, 나 알아?"
-천수 명월 님의 소문은 천에서 널리 알려져 있으니 저 역시 아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다. 천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믿을 게 못 되나 봅니다. 이런 미인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지?"
현수는 속이 끓고 있었다. 야와 명월은 어느새 죽이 맞았는지 신 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늦었는데 이렇게 오래 있어도 되나요?"
현수는 명월이 빨리 돌아갔으면 하고 바랐다. 어떻게 같은 여자인데 구미호와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궁금한 현수였다.
하지만 현수의 바람을 저버린 명월은 야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이제 생각났다. 그때, 적룡의 레어에 갔을 때 본 그 여자였구나.'
현수는 포기를 하고는 커피를 가지고 나왔다.
"저기, 커피라도 드시면서 야와 이야기를 나누세요."
"아! 미안해요. 인공지능 컴퓨터가 저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건네주는 커피를 마시는 명월이었다.
"아니에요. 야는 시중에 나온 컴퓨터와는 조금 달라서 그래요."
"그래요? 미안해요. 저기, 아이디를 말씀해 주세요. 지나가다 보면 인사나 하게."
"휴! 게임에서 볼 일이 없을걸요?"
"그래도요. 전 사천당가 사람이에요. 아이디는 명월, 호는 천수에요."
"전 이……."
현수는 자신의 아이디를 말하면 조금 시끄러워질 것 같아 디시 말을 했다.
"미호랑객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어요."
미호 아가씨를 찾아다닌다는 뜻으로, 현수는 즉석에서 이름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 봐요."
주인집 딸이 가자 문을 닫은 현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시끄러운 여자구나. 야, 너는 천수 명월이라는 유저를 알아?"
-천수 명월! 사천당가에서는 강하다고 할 수 없으나 그녀의 이름은 무림에 꽤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특유의 사냥법으로 유명합니다.
"사냥법?"
-그녀는 몰이사냥을 하는데, 몬스터를 최소한 10여 마리씩 한 번에 잡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천화우라는 사천당가의 비전이 그녀에게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만, 가끔 몬스터가 없는 곳에서 그런 사냥을 해서 욕을 먹기도 합니다.
야는 천에 관해서 정말 모르는 것이 없었다. 현수에게는 든든한 조력자요, 참모와 같았다.
"그래? 앞으로 조심해야겠네."
-이왕이면 그녀와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베타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어렵습니다. 특히 현수 님의 천연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세력을 넓힐지는 모르겠지만.
야의 말이 맞다. 독불장군은 없다. 정파와 사파가 확연히 구별된 데다 또한 중립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기댈 수 없으니 당연했다. 중립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세력을 키우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당문은 정파잖아."
-아닙니다. 사파가 아닐 뿐입니다. 오대세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정파라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정파에 많이 기울어져 있을 뿐입니다. 특히 당문은 지금 중립의 입장입니다.
"그래? 하지만 어떻게 친해져?"
-가끔 내려가서 밥도 사 주고 혹은 아이템이라도 주고, 또 힘드시겠지만 데이트라는 것도 한 번씩 하시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문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구해 주는 것은 필수입니다.
현수는 야의 말에 조금은 역정을 내었다.
"야! 사람의 감정을 한낱 게임과 결부시키지 마! 그건 아니야."
-사귀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천당문은 천연회에서 필수로 힘을 얻어야 하는 곳이라고 봅니다.
"왜?"
야는 천연회가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했다.
-아무리 베타 시절의 상위 랭커라도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아무리 게임의 센스가 좋다고 해도 베타와 달리 일대다의 싸움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싸움에서는 세력을 비슷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천연회에서 필요한 문파 중 하나가 당문인 이유는, 천연회의 사람들 중 독을 사용하는 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림에서는 보이는 칼보다 보이지 않는 칼이 더 무섭습니다.
"그건 알지만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니 야, 너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
-알겠습니다. 구미호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 있어 그런 것 같지만, 곧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현수 역시 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생각나는 이가 바로 구미호였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넌 놈들을 찾기나 해."
-알겠습니다. 참, 현수 님께서 배운 무공들이 이번 패치로 사라지게 되면 구파일방에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 전에 모습을 감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수는 천연회에서 필요한 무공 비급을 훔쳐 내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다 구파일방에서도 필요한 무공들을 챙겼다. 한마디로 현수는 걸어 다니는 무공 보고였다.
"흔적은 남기지 않았는데."
-하나 패치가 되고 나면 그 무공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그 무공들을 사용하실 경우 들킬 확률이 높으며, 무림의 공적으로 몰릴 확률도 높습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현수는 아니었지만, 무림 공적이 된다면 상당히 피곤할 것이다.
"방법이 없어?"
-있기는 합니다만…….
있다는 말에 반색을 하는 현수였다. 자신의 믿음을 한 번도 저버리지 않는 야였다.
"뭔데?"
-현수 님께서 배우신 무공들을 합치는 방법입니다. 이번에 황궁에 들어가실 때, 황궁 무고의 무공서 중 ≪만자무서≫를 찾아 다른 무공들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만자무서≫?"
-어떻게 보면 별 소용이 없는 무서이지만, 그 무서에만 두 가지 이상의 무공을 합쳐 새로운 무공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쓰여 있습니다. 가끔은 노력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두 가지 이상을 합치는 건 힘듭니다. 현수 님께서 안전하게 무공을 사용하시려면 ≪만자무서≫가 꼭 필요합니다.
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는 야가 신기했다.
"야! 너 진짜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와 관계없어? 넌 어떻게 보면 꼭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 같아."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 컴퓨터는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현수 님을 도우려 하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현수 님께서 잘되어야 제게도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내가 잘돼야 하지. 고마워!"
-별말씀을. 이번 패치 때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어머니께 한 번 다녀오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안 그래도 내일 내려가려고 했어. 야! 난 잔다. 수고해라."
현수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 *
예상대로 무공 패치와 에피소드 2의 일부가 설치되었다. 시간이 남은 현수는 시골 어머니께 다녀왔다. 하지만 현수의 얼굴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다녀오셨습니까?
"응! 야, 너 의학에 대해서 조금 아냐?"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져 가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고였다.
-필요하시면 공부를 하면 됩니다. 저의 메모리는 아직 엄청난 공간이 비어 있기에 가능합니다.
인공지능 컴퓨터 야. 그의 메모리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유는 현수가 컴맹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엄마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유전성 타이로신혈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알아보았으나 그 병은 아직 치료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약들만 개발되어 있습니다.
야가 말한 것은 현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 알아. 혹시 네가 공부해서 치료법을 개발할 수는 없을까?"
-제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아직까지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을 개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그것이 가능하리라 보기도 힘듭니다. 만약 제가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미 세상에 그 치료법이 나와 있었을 것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너보다 똑똑한 컴퓨터들이 많으니까."
지금 현수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벌어 엄청난 약값을 대 주는 것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해 왔던 일이었다. 현수는 항상 자신이 어머니께 그것밖에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 속상했다.
-힘내십시오.
"그래, 고마워! 그럼 과거를 보기 위해 가 보자."
-현수 님! 이번 과거는 어전시입니다. 장원을 하면 현수 님께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수는 천의 접속기를 착용하고는 가상현실 속으로 빠져 들었다.
* * *
"우와! 사람들 많네. 이들이 다 NPC들이야?"
과거를 치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현수는 과연 이들의 틈에서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다. 떨어지면 바로 무과를 보아서라도 아가씨께서 부탁하신 미랑을 지켜 준다.'
"모두 착석해서 시험을 준비하라."
한 시험관의 말 한마디에 시험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번 시험은 황제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문제로, 주제는 '사랑'으로 하겠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황제가 직접 내린 문제라면, 만약 급제를 할 경우 황제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랑이라……."
현수는 앞에 펼쳐진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적어 나갔다. 자신이 구미호를 사랑하는 마음과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또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미호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을 생각하니 하나의 글이 떠올랐다. 글을 적어 가는 동안 현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당신의 사랑으로 내가 태어나
당신의 사랑으로 내가 자랐습니다.
당신이 주시는 사랑으로 내가 다른 이를 사랑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주시는 사랑은 이렇게 클진대
당신의 사랑에 보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에게서 받은 사랑을
당신에게 돌려주려고 했을 때
당신은 이미 나의 곁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주었지만
당신은 나에게 그리움이라는 것도 주었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며
나는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살아갑니다.
당신을 오늘 만날까. 오늘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은 만나겠지.
당신은 이런 마음을 오늘도 저버립니다.
당신을 찾아 많은 곳을 헤매어 봐도
당신을 잊으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아도
당신은 그럴수록 더욱더 나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못다 준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의 앞에 있다면, 아니 없어도 좋습니다.
당신에게 줄 사랑을 고이고이 아껴서
당신을 만나는 날 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이 세상에서 만나지 못해 드릴 사랑을 드리지 못한다면, 다음 세상에서 만나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다음 세상에서 스쳐 지나가도 알아볼 수 있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현수는 모두 다 적고는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내가 이런 글을 적을 수도 있었나.'
어머니!
불치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어머니를 생각한 현수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현수의 행동이 이상한지 감독관들은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지나갔다.
'오래 사세요, 어머니.'
시험지를 감독관에게 제출한 현수는 시험장을 벗어났다.
현수는 그길로 사냥을 하고자 북경의 운거사를 찾아갔다.
7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부근에 당, 요 대의 탑이 모여 있는데, 그중에서 요나라 시대에 지어진 남북 2개의 탑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만 4,278개의 돌에 새겨진 경전인 ≪방산석경≫도 유명했다. 당나라 시대의 고승 삼장법사도 경본을 가지고 찾았다고 알려진 곳으로, 파계승이라는 몬스터가 있었다.
파계승의 레벨은 30대로, 각종 무예의 고수들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오는 곳이다."
베타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눈앞에 보이는 파계승들의 인자한 모습 속에 감추어진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면을 현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미타불!"
"아마타불은 개뿔."
현수는 합장을 하는 파계승을 검으로 찔렀다. 파계승 역시 만만치 않았다.
"허허! 험악한 중생이로고. 내 오늘 살계를 열어 너에게 교훈을 내리겠다."
파계승의 무기는 봉이었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봉의 모습을 감상하다 죽어 본 기억이 있는 현수였다.
휘리링!
몸을 숙여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봉을 본 현수는 검으로 파계승의 손을 찔렀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화려한 보법을 밟아 가며 몰아붙이는 현수의 모습에 파계승은 혼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생각을 했는지 경내로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꼭 불리하면 부르지."
"허허! 당연하지. 이길 수 있는데 사람들을 부르는 자도 있나."
그 말이 맞다. 혼자서도 이길 수 있는데 동료를 부를 필요는 없다. 어느새 5명의 파계승이 현수를 포위했다.
"뇌전류!"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함께 시전한 현수의 모습에서 고수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오늘 다 죽여서 너희들의 악행에 종지부를 찍어 주겠다."
"미친놈!"
5개의 봉이 현수를 가두었다. 아니, 하늘을 가두었다고 해야 맞았다.
"수미봉법!"
슈슈슈슛!
현수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파계승의 봉을 밟고는 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검이 번쩍거렸다.
"크악!"
"이놈!"
현수의 검에 파계승 한 놈이 쓰러지자, 분노한 그들은 다시 현수를 향해 봉을 움직였다.
부우우웅!
"나에게 운중비록이 있는 이상 어림없지!"
현수는 발을 이상하게 꼬아 자리에 앉으며 피하고는 다시 일어났다. 현수가 일어나며 본 쪽은 뒤쪽이었다.
슈캉!
"헉!"
봉이 반으로 갈라져 버린 파계승은 잠깐 당황했다. 그 잠깐을 놓칠 현수가 아니었다.
"크악!"
"역시 30대의 레벨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인가."
20대와 30대의 차이는, 무림에선 한 단계를 넘는 차이였다. 20대가 삼류라면 30대는 이류였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현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봉은 애꿎은 땅만파헤쳤다.
"이런!"
그러나 현수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피는 파계승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슈에엑!
현수의 검이 땅속에서 솟아올라, 파계승을 사타구니부터 머리까지 반으로 갈랐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진 파계승은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는지 눈을 감지 않았다. 2명 남은 파계승을 보고 조소를 띤 현수는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
허리를 숙여 횡으로 그어지는 봉을 피한 후 손바닥으로 그의 복부를 가격하고는, 돌려차기로 얼굴을 때렸다.
"컥!"
넘어지는 파계승을 뒤로한 현수는 다리를 최대한 벌려 땅에 앉고는 검을 앞으로 뻗었다.
부우웅!
봉이 현수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봉을 피한 것이었다.
"윽!"
검은 파계승의 가슴에 꽂혀 있었다. 쓰러진 파계승을 본 현수는 천천히 다가가서는 마무리를 하고는 운거사의 안으로 들어갔다.
운거 장로승!
운거사의 장로들로, 몬스터 레벨은 50이었다.
"그대로군!"
현수는 빠르게 달려 들어가 검을 앞으로 뻗어 그들이 모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하나의 진법으로 적을 상대하기에, 현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들이 진을 형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현수는 베타 시절에 이 진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하고 나서야, 진이 형성이 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이 형성되지 못하면 너희들은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운중비록, 운중광속형신보!"
≪운중비록≫에는 세 가지 보법과 두 가지 경신법이 적혀 있었다. 운중광속신형보는 보법의 마지막인 세 번째인 무공으로, 시전하면 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여러 개의 잔상을 일으키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른 보법과 다른 점은 그 잔상 역시 진짜라는 것이었다. 순간, 장로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현수의 신형이 멈추었다.
"컥!"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4명의 장로들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아직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들의 허리에서 천천히 핏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몸이 반으로 갈라져 땅에 떨어졌다.
"언제……."
"헉헉! 아직은 내공의 소모가 심해서 힘들군."
구미호의 내단은 완전히 용해되었지만, 화룡의 영약들은 완전히 몸속에서 용해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몸속에서 아직 흡수되지 않은 영약들의 기운을 먼저 흡수해야겠다."
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이라 그런지, 현수는 빠른 속도로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운거사를 쑥대밭으로 만든 현수는 30레벨을 달성했을 때 땅에 떨어진 아이템을 보았다.
"아싸! 아이템이다. 무공 비급!"
현수는 무공 비급을 주워 들어 확인을 했다.
"아이템 확인!"
팔자영법(무공서)
등급 : 무
설명 : '영' 자로 운필의 팔법을 설명한다. 팔법이란 측側·늑勒·노努·적遭·책策·약掠·탁啄·책珊을 말한다. 오랜 기간 동안 붓으로 단련되어 있던 손놀림으로 검을 사용해 멸문지화의 원수를 갚았다는 선비의 무공이다. 무림에서 영법검이라는 외호로 이름을 떨치다가 복수를 다 하자 검을 꺾고 은거했다고 전해진다.
"필요한 무공이다."
현수는 많은 무공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황궁에 들어가면 자신의 신분을 대신해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무공 창 오픈!"
수십 개의 무공을 저장하는 칸은 이미 많은 무공으로 채워져 빈 곳이 세 곳밖에 없었다.
-≪팔자영법≫을 저장했습니다.
-아직 대성하지 못한 무공으로 인해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만약 사용하시려면 다른 무공을 먼저 익히신 후에 사용하셔야 합니다.
현수는 알림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알아. 하지만 곧 사용하게 될 거야. 팔자영법 안에서 모든 무공이 합쳐질 것이니까."
현수는 그대로 북경의 시내로 내려갔다.
"먼저 심법을 운용해 영약을 녹이는 것이 급선무다."
현수는 객점에 방을 하나 얻어 심법을 운기해, 몸속에서 아직 녹지 않은 영약들을 녹이려 했다.
"그럼 난……."
현수는 심법을 운용하고는 접속을 해제했다.
베타 시절부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심법을 운용하여 접속을 해제하고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오페라 하우스!
천연회의 모임을 가지는 장소로, 이들은 오페라 하우스의 특급 손님들이었다. 베타 시절부터 사용하는 장소인 데다 주인 역시 천을 하고 있고, 이들에게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왔냐."
"일찍 와 있네. 근데……."
현수는 최건의 옆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았다.
"천연회에 가입을 원하는 사람이야. 이름과 자세한 것은 다들 오면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앉아라."
현수는 자리에 앉아 건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느껴 보니 어때?"
최건은 지금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는 현수에게 새로운 점을 물어보고 있었다.
"글쎄. 뭐, 특별한 점은 없어. 다만 몬스터 역시 레벨의 차이로 인해 일류, 이류로 나뉘고 있다는 정도? 또… 맞다. 무공을 사부들에게 배운 사람들은 진짜 무림인이라는 것도 달라. 적어도 천 안에서는. 참! 너, 흑랑도를 얻었다며?"
"응! 사람을 잘 만나 그런 거지."
건은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앉아 있는 수아를 보았다.
수아도 건에게 미소로 대답을 해 주는 것을 보니, 현수는 자리에 있기가 조금 어색했다. 건이 말을 계속 이었다.
"역시 같은 것을 느끼고 있구나. 맞아. 무림인들이지, 그들은. 나 역시 혼자 배운 것이라 그들과 붙으면 조금은 힘들어. 다만 너와 난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니 그나마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는 것이고."
현수와 건이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은 천부적인 게임 센스를 떠나 실전 경험이었다. 둘 은 베타 시절, 엄청난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의 싸움인 PVP 로 유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메워진다. 그럼 우리는 더 힘들겠지."
실전이라는 것은 게임 안에서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현수는 곧 메워진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만 번을 죽어 몸이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실력은 싸울수록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나 역시 자신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들이 그렇게 실전 횟수를 늘려 갈 때, 우리 역시 무공이 늘어 갈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건의 옆에 앉아 있는 수아는 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베타 시절의 일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회원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만사귀 역시 여자를 한 사람 데리고 들어왔다.
"어! 난 내가 처음인 줄 알았는데."
"앉아. 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해야지."
회의의 주관자는 현수였다.
"새로 오신 두 분께 소개를 부탁하기에 앞서, 여기에 계신 분들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내 소개를 하면 안 될까?"
"시끄러. 꼭 여자만 보면 헤벌쭉해 가지고는."
현수의 말을 모두가 웃음으로 넘기자, 현수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먼저 전 이현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기 저놈이 저의 평생 호적수인 최건. 저쪽, 예쁜 아가씨의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천의 최고 정보통인 만사귀, 저기 무식하게 보이는 놈이 역발산 그리고 애처럼 보이지만 나이는 먹을 만큼 먹은 화화공자. 그 옆에 앉아 있는 분이 우리 모임의 돈을 관리하는 수금원 또 저 사람이……."
현수의 설명이 끝났다.
천연회!
가상현실 천의 광고 모델 집단으로, 모두 인공지능 컴퓨터 천이 모니터링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현수가 제의를 해서 모델료의 옵션으로 받은 것으로, 천의 평생 무료권과 모니터링 불가권 그리고 약간의 광고비를 받았다.
처음에는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건과 함께 밀어붙인 상황에서 그렇게 계약을 한 게, 지금 그들에게 엄청난 이득이 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 이수아예요. 여기 건 오빠의 여자 친구예요. 천에서는 수아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 레벨은 60이에요."
"다음 분은?"
"안녕하세요. 전 이화라고 해요. 천에서는 여신강림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으며 레벨은 이제 34예요."
"왜 내 여자 친구라는 말은 안 해? 모두가 도둑놈들이라 조심해야 돼! 특히 저놈."
만사귀가 가리키는 사람은 화화공자였다. 그런 말을 들은 것이 조금은 억울한지 화화공자가 투덜거렸다.
"내가 왜! 난 여자만 보면 헤벌쭉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안목은 가지고 있다."
두 여자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만 하고, 두 분을 환영합니다. 저희 길드에 대해서 들어 알고 계시겠지만, 여타의 일반적인 길드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위 분들에게 충분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현수는 준비해 온 종이를 돌렸다.
"이제부터는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나누어 준 종이는 천의 내용 중 일부야. 만사귀는 그 내용을 토대로 알고 있는 것을 말해."
한참을 읽어 본 만사귀가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곳 천지회가 분리될 것이다. 지금 그들이 정도와 사도로 나뉘어 이름을 가져가기 위해 서로 싸우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천지회! 천의 지존들의 모임.
랭커 1,000위 안에 속한 사람들이 만든 길드로, 인원수만 해도 400명이 넘는, 사실상 천의 최강 단체였다.
하지만 에피소드 2를 통해 정도와 마도로 나뉘기에 지금은 천지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두 파로 나뉘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들의 분열로 또 몇몇이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노선을 만들 것이다.
"그렇지. 지금 우리의 수준은, 아직 확인은 되지 않고 있지만 천의 길드 중 200위 안에 간신히 들어간다. 그것도 건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남자 친구의 자랑은 자신의 자랑이기도 하니까.
"건, 넌 레벨이 어떻게 돼?"
"아직 2차 전직은 멀었다. 이제 68레벨이다."
모두 건의 지독함에 고개를 흔들었지만, 현수는 핀잔을 주었다.
"시간을 얼마나 주었는데 아직 68이야? 너, 많이 녹슬었나 보다."
"하지만 곧 2차 전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냥터가 몇 군데 바뀌어 처음에는 헤맸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을 간구했기에 곧 100레벨에 도달할 수 있다."
수아는 현수의 말이 조금은 섭섭했다.
"저기, 그런데 현수 씨의 레벨은 어떻게 되나요."
모두가 있는 곳에서 남자 친구에게 핀잔을 준 현수에게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물은 것이었다.
"네. 전 이제 30레벨입니다."
"벌써?"
수아의 반응과 달리 모두는 현수의 레벨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 곧 따라올 수 있겠구나."
"아니, 처음에도 말했지만 난 황궁과 끈을 맺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레벨 업보다는 그쪽에 신경을 더 써야지."
현수는 모두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익히고 있는 무공들은 모두 어때?"
"무공?"
최건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 내가 구해 준 무공서들이야. 각파의 비전 절기들이지."
"앗! 그럼 이번 무공 탈취 사건의 주인공인가요?"
화를 비롯한 건과 수아는 이번 무공 패치에 공헌을 한 사람이 현수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천연회를 위해서였으니까. 화 씨는 무공서를 가지고 있나요?"
"네! 오빠가 모산의 단혼검법을 저에게 주어서 익히고 있어요."
현수는 만사귀를 보았다.
"난 이미 다 익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낸 것은, 저장을 하지 않아도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장하면 데미지가 조금 올라간다는 이득이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무공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줄 부적 또한 모두 만들었다. 현수의 옵션은 모두 순발력이다."
"벌써?"
"부적술을 먼저 익히려 노력했으니 당연하지. 그리고 부적은 재료만 있으면 그렇게 만들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놈아의 도움이 컸지만 말이야."
이놈아는 만사귀 집에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이름이었다.
"부적요? 부적을 만들 수 있나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수아야, 너도 같이 지내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수아는 건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적을 만드는 사람이라… 대박인데!'
수아는 다만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수아 씨 것은 다음에 만들어 드릴게요. 필요한 옵션을 말씀하세요."
"전 체력이 조금 부족해요."
"알겠어요. 그럼 체력 플러스 10으로 두 장을 만들어 드릴게요. 물론 약간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현수의 제의에 수아 씨는 포함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비용은 부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경비를 내시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오늘 처음 남자 친구를 따라 들어온 천연회에서 아이템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참! 그리고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알지?"
현수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현수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사귀는 아직 그들이 어디 있는지 파악 못 했어?"
"순돌이아빠와 앙드레김밥은 찾았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레벨도 있고 해서 그냥 두고 보고 있다. 악비 형님이랑 짭새 그리고 잔소리는 아직 행불이다."
"그래? 좋아! 레벨을 올리면서 계속 찾아봐!"
"그렇게 하지."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지. 건은 최대한 빠르게 전직하고, 모두 무공을 익혔으면 에피소드 2까지 최소한 60레벨로 치고 올라와. 나 역시 황궁에 연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레벨 업을 최대한 할 것이니까. 모두 수고했어. 그럼 천 안에서 보지."
현수는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남아 있는 사람들 역시 자리를 떠났다.
건과 수아만이 자리에 아직 남아 있었다.
"오늘 느낌이 어때?"
"잘 모르겠어요. 정리가 완전히 안 된 것 같은데 끝나 버리니……. 그렇다고 모여서 술을 먹는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오빠가 왜 저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30레벨이 뭐가 대단하다고."
"하하. 수아가 불만이 많나 보구나. 그래, 우리는 항상 이렇게 분명치 않게 끝나지. 하지만 모두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수아가 앞으로 적응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는데. 하하하."
"칫!"
"그리고 현수가 30레벨임에도 대단한 이유는, 30레벨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유저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너, 사신 낭객이라는 유저를 알지?"
사신 낭객! 천에서 두 번째로 유명하다고 하면 서러운 인물이다. 천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들 중 하나인 호면객과 쌍벽을 이루는 이름이었다.
호면객은 엄청난 무공으로 스틸을 해서 평이 안 좋은 유저라면, 사신 낭객은 죽음을 찾아다니는 미친 유저로 소문이 나 있었다.
"알죠, 그 미친 사람."
"그 미친놈이 바로 현수야."
"정말?"
사신 낭객이 현수라는 말에 수아는 또 한 번 이상한 모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강하다. 지금 나와 붙어도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물론 지지는 않지. 레벨의 차이가 있으니. 하지만 59레벨로 9레벨이었던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물론 죽음 직전까지는 몰고 갔지만 말이야."
수아는 또 다른 사실에, 점점 천연회에 빠져 들고 있었다. 알면 알수록 빠져 든다는 것을 느꼈다.
* * *
현수는 집으로 돌아와 천에 접속을 하고는, 합격자를 발표하는 방을 찾아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곳을 헤집고 들어가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있다, 내 이름!"
아! 이 기분인가!
티브이를 통해 가끔 나오는, 대학교의 정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