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절도 (10/57)

무공 절도

화검지에 도착한 현수는 자신의 검을 찾아 화산을 떠났다.

현수의 레벨은 15. 스탯 역시 민첩성만 올렸기에 조금 무리해서 자신의 레벨보다 조금 높은 몬스터를 잡기로 했다. 시간은 다소 걸리더라도 레벨 업을 하기에는 그 편이 더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화산에서 훔친 무공들을 이번 기회에 익히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방궁!

진시황이 건설을 시작해 다음 대에 완성한 황제들의 놀이터. 아방궁의 몬스터는 아방궁을 짓기 위해 동원된 죄수들의 원혼과 황제들의 유희의 대상이 되었던 궁녀들의 원혼들이었다. 몬스터 레벨은 20에서 25 사이였다.

"호호호호! 이리 와요!"

아방궁의 입구에서 들리는 유혹적인 소리가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였다.

"역시나 아방궁은 남자 유저들로 가득하구나."

입을 벌리고 앉아서 궁녀 원혼들을 구경하고 있는 남자 유저들의 입에는 침이 가득 고여 있었다. 레벨의 높고 낮음을 떠나 아방궁은 남자 유저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짜식들!"

현수가 사냥하려고 하는 몬스터들은 궁녀 원혼이 아닌,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죄수들의 원혼이었다. 아이템과 많은 동전을 얻을 수 있기에, 현수는 달라붙는 궁녀들의 원혼령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낯익은 모습들이 보였다.

"여기들 있군!"

베타 시절에 아방궁을 겪어 본 유저들은 이미 안으로 들어와 사냥을 하고 있었다. 죄수 원혼은 23에서 25레벨이었지만 혼자 사냥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경험치를 많이 주었다.

현수의 눈에 보이는 유저들은 천연회의 최건을 뺀 나머지들이었다. 현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만사귀의 어깨를 쳤다.

"좋아 보이는군. 아이템은 다 구했냐?"

현수를 보고 반기는 이들이었다.

"어, 현수야!"

"벌써 여기까지 왔냐?"

나타난 현수를 본 이들은 파티를 제안했지만 현수는 사양했다.

"싫다. 혼자서 경험치 먹기도 힘든데 이렇게 업해서 언제 올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번 천에서는 파티를 해서 사냥을 하면 가경험치가 부가되어서 빠른 시간에 레벨 업을 할 수 있어."

"그래?"

"같이하자."

만사귀는 다시 현수에게 파티를 권했지만 현수는 사양을 했다. 그래도 혼자 먹는 경험치가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니들끼리 해라. 난 이곳에서 20레벨만 올리고 다른 지역으로 떠날 거다. 참! 그리고 사냥하다가 혹시나 사부에게 무공을 배운 사람들을 만나면 시비 붙지 마라. 그들을 겪어 보니, 이곳에서는 진짜 무인이다. 너희들과 같이 막무가내로 몬스터를 잡는 그런 유저들이 아니니, 기회가 되면 한번 그들의 무공을 견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그래도 다구리에 장사 없다."

"무식한 놈!"

역발산은 부斧를 들어 올려 앞에 보이는 죄수 원혼령을 향해 공격했다. 용감히 달려 나가는 그를 보고 있자니 진짜 아무 생각 없는 놈처럼 느껴졌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더니."

역발산이 선두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면 다른 이들이 가서 함께 공격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봤냐. 우리는 무공을 배운 사람들도 이렇게 끝낸다. 크하하하하!"

"근데 무공을 배운 사람들은 이렇게 끝내! 이십사수매화검법!"

슈애액!

"크아아아아아!"

한 방! 깔끔하게 들어간 매화검법 한 방에 죄수 원혼이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봤냐. 이게 무공을 배운 사람들의 실력이다."

순간 만사귀의 눈이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번쩍였다.

"너희들은 무공을 배운 사람에게 가기도 전에 당해."

"근데 너 화산의 무공은 어떻게 배웠어?"

역시 만사귀의 눈은 피하지 못했다.

"이거? 그냥 가서 훔쳐 배웠어. 아직 터득한 것은 아니지만 운 좋게 제대로 들어가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현수를 본 만사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현수야, 너 우리를 위해 희생 한 번 해라."

"무슨 소리야?"

"일단 자리를 옮기자. 여긴 듣는 사람들이 많다."

만사귀는 모두를 데리고 아방궁을 나왔다. 그러고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현수에게 말했다.

"네가 무공을 훔쳐 배웠다면 우리도 훔친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러니 다른 문파의 무공을 훔쳐 우리에게 넘겨주면 우리 역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만사귀의 계획! 각파의 진산 절예를 훔쳐 배운다. 이미 현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부탁한 것이었다.

"헛소리하지 마! 난 과거를 보러 북경에 가야 해. 그럴 시간이 없어."

"1년치 생활비!"

만사귀가 제안하는 1년치 생활비라는 말에 현수는 혹했다.

부르주아 백수들이 1달에 쓰는 돈은 약 45만 원 정도다.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대충 비슷하다. 그리고 각종 세금을 포함하면 1달에 약 75만 원 정도가 든다. 이들은 천의 이용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르주아 백수들보다 조금은 적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음! 그러니까 너희들 9명이서 나의 1년치 생활비를 준다, 이거냐?"

"그래."

현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무공서 하나에 못 잡아도 400∼500만 원은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개의 무공서를 구해 주고 받는 돈치고는 적었다. 게다가 잘못해서 BS에 덜미가 잡히면 골치 아파진다.

"너무 싼 거 아니야? 그래 봐야 900만 원이야. 만약에 소림의 ≪달마삼검≫ 무공서가 시중에 팔리면 얼마나 받겠냐?"

'독한 놈!'

만사귀 역시 이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한 2년치 생활비는 줘야 마무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정도 손해는 네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편이잖아."

"2년치로 하자! 그래 봐야 1,800만 원이야. 8명이서 1,800만 원이면 크게 부담이 될 것 같지 않은데?"

"그렇게 하지. 모두 어때?"

만사귀는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자 미소를 짓고는 모두에게 현수의 제안에 대해 물었다.

"두 말 하면 잔소리요, 세 말 하면 딱 맞아 죽기 좋지. 그리고 참고로 난 방어 중점으로 배울 수 있는 무공이면 좋겠다. 난 전부 방어이니까."

'무식한 놈! 스탯도 무식하게 올린다.'

현수는 역발산의 무식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 자신들의 입에 맞는 무공의 특징을 현수에게 말해 주었다.

"알았어. 그럼 내일까지 내 통장에 입금해. 에피소드 2가 시작하기 전에 구해 주지. 그리고 구파일방의 무공은 조금 난해하다. 나 역시 무공을 배워서 알지만, 개인의 능력이 못 미치면 무공서를 가져도 배우기가 힘들다. 따라서 그쪽을 빼고 다른 문파의 무공서를 훔쳐 내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다만 저 무식한 역발산은 소림의 금강부동심결이 어울릴 것 같으니 저놈만 소림의 무공으로 하고."

역발산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자신에게만 명문의 무공서를 구해 준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는 역발산이었다.

"크하하하하! 역시 넌 나의 마음을 아는구나."

"알았다. 우리는 장원을 하나 알아보지. 그리고 베타 때 모은 회비로 장원을 하나 장만하겠다. 다행히 떨어져 나간 이들이 회비를 모두 우리에게 넘겨주었으니 조그만 장원을 구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무공서를 입수하는 대로 장원에서 무공을 익혀야겠다."

"그래? 초기화되면서 없어지지 않았어?"

현수는 초기화되면서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우리의 회비는 현금으로 바꾸어 저금하고 있었으니 게임 머니로 환전하면 돼."

돈을 관리하는 수금원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했지만 모두는 돈에 관한 그의 철저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알았어. 그렇게 해. 난 20레벨까지 올린 다음 너희들의 무공 비급을 구해 줄게. 그리고 과거를 보러 간다. 내가 너희들을 찾기 전까지는 알아서 해라. 혹여 장원을 구하면 야에게 전해 줘!"

"알았어. 그렇게 하지."

말을 마친 현수는 다시 아방궁으로 돌아갔다. 현수가 움직이는 모습에 모두가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현수는 빠르게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익숙해진 화산의 무공은 어느새 많은 진전을 보였다. 현수가 유독 무공에서 빠른 진전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구미호의 내단과 화룡의 영약이 절대적으로 작용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현수는 속성으로나마 두 무공의 극을 얻었기 때문에 다른 무공을 배우는 데 남들 조금보다 빨랐던 것이다. 현수를 보면 만류귀종이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것도 아닌 듯했다.

"저놈, 뭘 해도 빠르지 않아?"

현수를 본 천연회의 사람들은 현수의 빠른 발전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맞아!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 저놈과 최건이라는 놈과 쌓은 인연이……. 그들로 인해 우리의 재산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처음에 저놈과 싸웠던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린다."

"그건 맞아. 나 역발산이 고개를 흔들 정도였으니. 지금은 독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베타 시절에는 진짜 전율이 흐를 정도였으니까."

최건과 이현수! 인공지능 컴퓨터 천조차 인정할 정도로 한국에서 최고의 게임 센스를 가지고 있는 둘은, 베타 시절에 천연회의 식구들을 거의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 이들이 천연회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바로 최건과 현수 때문이었다. 물론 랭킹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저놈의 무공이 탐나는군. 저런 움직임이 말이야."

"알잖아. 저놈은 다른 것은 다 줘도 자기 것은 남에게 안 준다는 것을."

* * *

며칠의 시간이 흐르자 현수는 아방궁에서 20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이제 모산으로 이동을 할 차례인가?"

현수는 모산에서 강시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가냐?"

"그래, 모산으로 갈 생각이다. 그곳에는 모산파라는 문파가 있으니 그 문파의 비급이 필요한 사람은 말해라."

만사귀가 모산파의 무공을 원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 같아. 난 몸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머리를 주로 쓰니 말이야. 모산은 술법을 위주로 한 문파니까 나에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모산의 단혼검법 또한 필요하고."

"알았어. 그럼 모산파의 무공은 만사귀에게 넘기지. 이왕이면 모산의 비전을 익혀 모두에게 부적을 만들어 주면 좋겠군. 이것은 무공을 구해 주는 대신에 붙는 옵션이다. 특히 난 순발력 플러스 15이상으로."

"노력해 보지."

현수는 그대로 아방궁을 떠나 모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모산으로 가는 길에 주위에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구름으로 반쯤 가린 모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술법이라… 어떤 것들이 있지? 야에게 물어봐야겠구나."

모산파에 침입하기 위해서는 모산파에 관해서 알아야 했다. 현수는 접속 해제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모산의 주위에서 강시들을 사냥했다.

하급 강시! 레벨 25∼26의 몬스터로, 모산의 도사들이 술법으로 만들어 낸 강시들의 실패작들이었다.

캬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폴짝폴짝 뛰어오는 강시들을 본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살황의 일기장, 뇌전류!"

강시는 종잇장처럼 분리되었다. 너무 쉽게 죽어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야?"

현수는 자신의 검을 보았다.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또 한 번 뇌전류를 사용해 하급 강시를 공격해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왜 이리 성능이 좋은지 생각해 봐도 답을 구하지 못하자, 현수는 그냥 사냥을 계속했다. 아이템이 잘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전은 그런대로 조금씩 나왔다.

그러다가 접속 해제 시간이 되자, 현수는 접속을 종료하고 야를 불렀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야! 뇌전류가 아무리 강해도 하급 강시를 한 방에 보낼 수는 없잖아. 그런데 한 방에 쓰러졌어."

-당연합니다. 현실감을 살린 천에서 강시는 뇌전의 기운을 받은 무기들에 저항력이 약합니다.

"그러니까 뇌전의 기운 때문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불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 물의 기운을 가진 무공에 약하고, 물의 속성을 가졌다면 토의 기운을 가진 무공에 약합니다.

현수는 야의 말을 듣고 오행의 상극과 상생을 생각했다. 구미호의 서재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천에서는 오행의 상극과 상생의 관계가 연계되어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벌하기도 한단 말이지."

-오! 현수 님! 장족의 발전이십니다. 어디서 오행이라는 말을 주워들으신 모양입니다.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야의 딴죽이었다.

"야! 내가 책을 좀 많이 봤어. 그러니 옛날의 나로 생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해!"

-알겠습니다. 현수 님의 말씀대로 천에는 상극과 생성이 존재합니다. 혹시 음양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어! 알아."

-천은 음양을 토대로 그 위에 오행을 놓고 또 그 위에 팔괘를 구성해 만들었습니다.

현수는 조금 철학적인 말이 나오자 말을 돌렸다.

"야! 모산에 침입해서 무공서를 탈취할 생각인데, 내가 술법은 잘 모르니 그것부터 이야기해 줘!"

-어째 잘 나간다 했습니다.

현수는 야의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야! 그러지 말고 그냥 빨리 말해 줘!"

야는 모산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산파는 상청파라고도 합니다. 이는 그들의 기본 경전인 ≪상청경≫이라는 경전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천에서는 그냥 도교의 한 문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술법은 두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는 부술이라 하여 부적을 사용하는 술법이고, 또 하나는 녹술이라 하여 약초를 이용한 술법입니다. 모산파는 전체가 이 녹술이라는 것을 사용한 일종의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만약 현수 님께서 진법서를 읽은 적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없다면 그냥 포기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현수는 구미호의 서적 중에 귀진자의 진법서를 본 적이 있었다. 또한 진법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완전히 외우고 있었다.

"야! 나 귀진자의 진법서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진법서로는 힘들어?"

야는 현수의 말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정말이십니까? 천에서 귀진자의 진법서를 보았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가씨의 서재에 있어서 그 내용을 완전히 외웠지."

-믿지 못할 말입니다, 현수 님께서 진법서를 외우신다는 것은! 만일 현수 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모산의 진 정도는 가볍게 통과하실 것입니다. 귀진자의 진법서는 진법서 중 세 번째에 들어가지만, 가지고 있는 살상력은 최고입니다.

현수는 야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귀진자의 진법서의 가치를 알자 놀랐다.

"그래? 그럼 모산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줘! 아까 부술이라는 것부터 말이야."

-알겠습니다. 부술은 부적을 날려 사용하는 술법을 말합니다. 부술과 녹술을 합쳐 보통 부녹술이라고 합니다. 부술의 종류는 많이 있지만 소환술과 강신술만은 조심해야 합니다.

"소환술과 강신술? 그럼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으로도 힘들어?"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으로도 잡기 힘든 몬스터는 없습니다. 다만 익힌 사람의 재질에 따라 다르기는 합니다.

"그럼 염려할 것은 없네?"

-그래도 십분 조심해야 합니다.

"알았어. 나 밥 먹고 접속할게. 참, 그리고 그들을 빨리 찾아봐!"

현수는 식사를 마치고 재접속을 했다.

"모산의 도사들이 어떤 술법으로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현수는 호면을 착용했다. 호면을 보자 또 구미호 생각이 났다.

"아가씨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요. 다시 만나면 제가 모든 것을 해 드릴게요."

왜 미호를 생각하면 눈이 젖는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현수는 자신의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야의 말대로 모산파의 안에는 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상윤회진이다.'

현수는 그 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모산의 도사들은 진의 위력을 믿었는지, 경내의 경비가 조금 소홀했다.

'후후! 귀진자의 진법서에는 사상윤회진의 생문이 적혀 있었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현수는 어느새 사상윤회진을 벗어나고 있었다. 모산파에 소리 없이 들어간 현수는 장문인의 서재로 들어갔다.

"살황의 일기장, 탐지술!"

무공서를 찾기 위해 한참을 둘러보던 현수는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

"있군."

서재에 있는 꽃병을 들자 벽이 한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현수는 안으로 들어가 만사귀가 원하는 ≪모산요록≫과 ≪모산 단혼검법≫ 그리고 부적을 제작해 사용할 수 있는 ≪팔괘 부적술≫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쉽군."

다음 날, 모산파에서는 난리가 났다. 누군가 모산의 진산 비급을 훔쳐 달아났다는 소식이 경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누가 감히……! 찾아라, 모산의 비급을 훔쳐 달아난 놈을!"

도사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왔다. 그만큼 모산파의 장문인은 화가 나 있었다.

"나의 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조상님들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볼일을 끝낸 현수는 모산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 * *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형욱 씨?"

BS 그룹의 가상현실 천의 기획실에서도 난리가 났다. 비급 절도 사건으로 인해 비상이 걸려 있었다.

"사실 저 역시 생각지 못한 일입니다. 문파에서 무공 비급을 훔쳐 배우리라고는! 보다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컴퓨터 천의 보고로 형욱은 급히 회의를 열었다. 수빈 역시 그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

"누구의 짓인지 알 수 있습니까?"

형욱을 추궁하는 기획 실장이었다.

"모릅니다. 무공을 배우고 나와 봐야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는 이미 늦어 회수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짜 무림! 어떻게 보면 BS 그룹에서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천에 일어날 파장이 적지 않았다. 다수의 무리가 무공 비급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뭐가 문제인가요? 진짜 무림처럼 보이잖아요. 무공을 탈취하고 또 그 무공을 취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무림의 생리가 아닌가요."

모두는 수빈을 보았다. 형욱은 지금 말하고 있는 수빈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웠다.

"맞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이해가 안 간 수빈이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무공 비급을 익힌다 해도 다수의 사람들이 가하는 공격에 지쳐 버릴 것입니다. 또한 무공 비급을 잃어버리고 무공이 사라지면 너무 허무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사람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수빈이 생각하기에도 형욱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진짜 무림이지 사람들이 떠나가는 무림이 아니었다.

"그럼 한 번 배운 무공은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

"그것 또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럼 많은 무공 비급들이 강가의 돌멩이처럼 흔하디흔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없어지면 서로가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그렇군요. 누가 모산파에서 무공 비급을 훔쳐 갔을까요? 당시 모산파 근처에 있던 유저들 중에 좀 특별한 유저는 없었나요? 가령 예전에 일황이었던 최건이라든지 또 일마 이현수 같은."

형욱이 천에게서 받은 명단에는 2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 일마 이현수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마 이현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마 이현수요? 왜 그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수빈은 일마라는 말에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일단 그는 무공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무공을 배우지 않고서는 모산파에 몰래 들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지금 20레벨입니다. 그렇기에……."

"잠깐. 그가 지금 20레벨이라고 했나요?"

수빈은 20레벨이라는 소리에 조금 당황한 듯 형욱에게 물었다.

"네!"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일마 이현수가 지금 20레벨이라면 그는 일마가 아닙니다. 형욱 님은 그를 격어 보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일마 이현수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형욱은 수빈의 억지 같은 말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천에게 일마 이현수와 일황 최건은, 사생활보호법으로 취하고 있는 것을 해지하고 천에서의 모든 행동을 모니터링하라고 전하세요. 그리고 이건 제 직감입니다만, 이번 무공 탈취 사건은 분명 일마의 짓일 겁니다. 그의 게임적인 센스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분명 모산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고 천에게 지금 각 문파의 허점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완하라고 전해 주세요."

형욱은 수빈의 과민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지금은 쉬쉬하고 다음에 또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또 일어났을 때를 생각해서 서로의 의견을 정리해 보세요."

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수빈이 사라지는 것을 본 형욱은 천에게로 갔다. 수빈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천! 수빈 양이 왜 저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지 이유를 아세요?"

-그건 실장님께서 일마와 수빈 님의 관계를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나요?"

-베타 시절, 수빈 님은 일마에게 도전을 했습니다. 그 도전 횟수가 구십구 번이었는데 모두 졌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아이템으로 도배를 하시고도 일마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일마 역시 유니크 아이템으로 장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수빈 님의 아이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습니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 당시의 감정이 남아 있나 봅니다.

형욱은 그런 일로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황과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다만 일황은 일마와 싸워 유일하게 패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둘은 항상 무승부였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모난 놈 옆에서 벼락을 맞은 것과 같군요."

형욱은 천과 회의 때 나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생각해요, 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수빈 님께서는 충분히.

"그나저나 최건과 이현수를 모니터링해 달라고 하는데 가능한가요?"

-최건과 이현수는 모니터링이 불가능합니다. 방호벽이 쳐져 있습니다.

일반 유저에게 방호벽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 보면 참 많이 답답한 게임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최건과 이현수라는 유저에게 방호벽이 쳐져 있다는 말이."

-그것은 베타 시절 상위 랭커 10명에게 옵션으로 주어졌던 것으로, 한 번 설정하고 나면 저 역시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회장님께서 천의 광고용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이현수 씨를 비밀리에 만났을 때, 이현수 씨가 광고의 목적으로 제안해 옵션으로 달았으며, 지금 제작되고 있는 해외 수출용 광고의 모델료에 포함된 사항입니다.

형욱은 더욱 궁금해졌다. 그것은 일마 이현수와 같은 인물이 9명이나 더 있다는 말과 같았다. 최건은 이미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알고 계신 일마와 일황, 만사귀, 역발산, 화령검객, 환상검, 필살검, 카오스, 화화공자, 수금원 이렇게 10명입니다.

형욱은 나열된 아이디 중 알려진 인물은 일마와 일황, 2명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 유저들은 간혹 모니터링이 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아방궁의 사냥터에서 모여 사냥을 했습니다.

"함께 있다는 말인가요?"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광고에 참여한 이들이 모인 문파라……."

제한이 많은 천의 현실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총 아홉 번의 무공 탈취 사건이 일어났다.

"미치겠군. 누가 이런 일을……. 무공을 모두 익히면 지존은 따 놓은 당상이겠군."

형욱은 수빈의 히스테리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아닙니다. 서로의 속성이 다르기에 모두를 익힐 수는 없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혹시 시중에 나온 비급이 있나요?"

-없습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비급을 탈취했는지는 모르지만, 답답한 형욱이었다.

"회장님을 한번 뵈어야겠습니다. 유저들에게 쳐져 있는 방호벽을 어떻게 해야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일선에서 물러나셨습니다. 모든 업무는 수빈 님께서 대신하고 계십니다. 또한 회장님께서도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계시며 그냥 두고 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천은 BS 그룹의 실직적인 운영 체계가 수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 고집불통… 알았어요. 천은 계획한 대로 무공 패치를 서둘러 주세요. 배운 무공서는 사라지게 만들어 주세요."

불상사를 대비해서 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유저들이 배운 무공서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무공 쟁탈전이 없게 만든 것이다. 또한 무공 창에 대성한 무공이 없으면 다른 무공을 배울 수 없게 만들었다. 다른 무공을 배우려면, 사용하고 있는 무공을 완성해야 했다. 물론 조금 빨리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함께 패치가 되었다.

* * *

현수는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과거를 보러 갈 수가 있었다.

"이제 과거를 보러 북경으로 올라가 볼까."

현수는 3달이라는 시간 동안 레벨을 29까지 만들 수 있었다. 게임상으로는 9달이 지나간 것이다.

"이제 다들 구석에 처박혀서 무공을 익히겠지?"

그때 알림 메시지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천입니다. 지금 무공에 관해서 패치를 하려고 합니다. 패치의 내용은, 이미 배운 무공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 무공을 대성하지 못할 시에는 다른 무공을 배우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몇 가지의 무공을 대성한 사람은 제외되지만, 사용할 무공을 한 번 선택하시면 이미 배운 무공이라 해도 대성하지 않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보다 빠르게 무공을 대성할 수 있게 패치를 할 것이니 유저 분들께도 더 좋으리라 판단이 됩니다. 30분 후에 패치를 시작할 것이니 서둘러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 접속을 종료하여 주십시오. 이번 패치로 걸릴 시간은 3일입니다.

"BS에서 급했군."

현수는 그 자리에서 접속을 종료했다. 더 있어 봐야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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