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경행 (9/57)

북경행

건은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현수와의 대결에서 자신이 완벽하게 이기지 못한 것이 자극이 되었다.

"어떻게 무공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해. 그 움직임과 빠른 검이라니! 미처 보지도 못했어."

건은 역시 자신의 적수는 현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승천도법의 마지막, 승천도를 완성해야 현수를 이길 수 있다."

건이 사냥을 하러 간 곳은 고비사막이었다.

사막의 중간에는 츄엔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유저들은 이 마을을 오아시스라 불렀다.

고비사막에는 레벨 50에서 55 사이의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 중 가장 위험한 몬스터는 대막 혈랑이라는 야수형 몬스터로, 레벨은 52였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기에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대막 혈랑의 우두머리는 흑혈랑이라는 60대 몬스터였다.

건 외에도 몇몇 유저들이 눈에 띄었다.

'빠르구나! 저들 역시 랭커에 들어가는 유저들이겠지.'

건은 이런 생각을 하고는 의원에 들러 사냥에 필요한 고급체력 회복제와 고급 기력 회복제를 산 후, 사냥을 하기 위해 나섰다.

"저기!"

건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예쁘게 생긴 여자 유저였다.

"안녕하세요. 전 수아라고 해요."

"네. 그런데 왜……?"

건은 자신을 불러 세운 이유를 물었다.

"사실은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근데 상대 몬스터가 흑혈랑이라 혼자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할 수 있는지 해서요. 지금 대막 혈랑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이 3명 있습니다. 혹시 대막 혈랑 퀘스트를 하시면……."

건은 퀘스트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사냥으로 레벨을 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간혹 사냥터에서 파티를 미끼로 죽인 후 아이템을 강탈해 가는 유저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쪽에 가시면 일행이 있습니다."

건은 수아를 따라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수아가 건을 데리고 오자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었다.

한 인물을 보자 건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베타 시절에 알던 인물이었다.

"어! 너는 건?"

"오랜만이네."

건의 모습을 보자 조금은 당황한 그였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악령아. 난 현수가 아니다."

"어머! 두 분, 아는 사이세요?"

수아가 나서자 둘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건을 모르면 간첩이나 다름이 없는걸요. 베타 시절에는……."

건은 중간에서 말을 막았다.

"그럼 출발하기로 합시다."

유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앞장섰다. 그 뒤를 악령이라는 사람이 서고 건은 일행의 맨 마지막에 서서 그들을 따라갔다.

수아가 건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고비사막에는 처음이세요?"

"지금은 처음이지만 베타 시절에는 많이 와 본 곳입니다."

수아는 건이 베타 시절의 일황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베타 시절을 겪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다만 그때 조금 유명한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앞에서 자욱한 먼지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유수는 대막 혈랑이라 생각하고는 일행을 세웠다.

"몬스터가 옵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건은 그 누구보다 대막 혈랑에 대해서 잘 알았다. 만일 베타와 같다면, 대막 혈랑이 아무리 많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악령이 검을 빼 들어 달려오는 대막 혈랑들을 향해 무공을 사용했다.

현실을 강조해서인지, 사부를 모신 사람들은 사파 쪽이 정파 쪽보다는 빨리 출도를 했다. 몇몇 사파 무공을 배우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출도를 한 상황이었다.

캐애앵!

건은 날카로운 이빨을 무기로 달려드는 혈랑들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다른 유저들은 저마다 가진 무공을 사용하며 대막 혈랑을 공격했지만 건은 그러지 않았다. 무공을 사용하면 죽음의 길로 빠르게 다가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무리를 상대하기에는 가진 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기에, 건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대막 혈랑을 상대했다.

"헉헉!"

유수는 숨이 찬 듯 급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젠장!"

끝이 없는 대막 혈랑의 무리를 보고 투덜거리며 기력 회복제를 복용했다.

"그렇게 싸우면 끝내는 지쳐서 놈들에게 당합니다."

캐애앵!

도를 움직여 날아오르는 대막 혈랑의 배를 가르는 건이었다.

"뜨거운 사막은 사람의 몸을 빨리 지치게 합니다. 그러니 적은 움직임으로 놈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건의 말은 당연했지만, 실제로 행하기에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파티원들 중에 유일한 여자인 수아는 이미 지쳤는지 숨을 힘들게 쉬고 있었다.

"악!"

"승천도법 출룡!"

대막 혈랑이 수아를 육중한 몸으로 누르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막 혈랑은 건의 무공으로 인해 회색빛으로 물들며 사라졌다. 하나 전혀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넘어져 있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대막 혈랑을 보자, 수아는 눈을 감았다.

"승천도법 파멸검!"

캐애앵!

건은 모래사막을 향해 무공을 사용해 수아를 향해 달려드는 대막 혈랑들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이번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유수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대막 혈랑을 보고 말했다.

"건! 어떻게 할 거야?"

"돌아가. 난 사냥이 목적이었으니 이들을 다 때려잡고 가야지."

건의 말에 모두가 놀라서 그를 보았다. 저 많은 무리들을 다 잡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게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악령은 이번이 퀘스트를 마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 되었다.

"저들을 다 죽일 수 있단 말인가요?"

"혼자면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이상했다. 한 손이 두 손을 못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많으면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두였다.

"그럼 우리가 있으면 저들을 다 죽일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수아는 악령을 보았다. 그래도 이들 중에서 건이라는 사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악령이라, 방금 말한 것에 대한 답을 악령에게서 구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번 사냥이 퀘스트를 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건은 한발 앞서서 달려드는 대막 혈랑들을 상대했다. 그냥 보기에는 너무나 쉽게 상대하고 있는 듯했다. 달려드는 대막 혈랑을 향해 도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쉽게 사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예요?"

"베타 시절에 최강이라고 불렸던 일황 최건이라는 사람입니다."

수아는 건을 보았다. 조금 멋있게 보이기도 했다.

"결정을 해야 되겠지요?"

"전 돌아가겠습니다. 퀘스트도 중요하지만 지금 죽으면 페널티가 너무 심해 더 이상 사냥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 도전해야겠습니다."

애초에 건은 이들이 퀘스트를 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자신의 레벨을 올려야 할 때였다.

"승천도법 출룡!"

캐애앵!

몰아치듯 움직이는 건의 도에 의해 대막 혈랑들이 쓰러져 갔다.

수아는 건을 보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려들어 공격하거나 무공을 자주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한자리에 서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들만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공을 사용하고 나서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뒤에 달려들어 공격을 하거나 한 번 더 무공을 사용하면 더 많은 놈들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그냥 서 있기만 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남겠어요. 다른 분들은요?"

"전 돌아가겠습니다."

유수와 악령은 아깝지만 귀환 부적을 사용해 마을로 돌아갔다.

수아는 검을 들고 건의 옆에 섰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퀘스트를 끝내게."

건은 말없이 자신의 일만 할 뿐이었다. 간혹 수아가 위험하면 무공을 사용해 도와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자리에 서서 오는 놈들만 사냥했다.

수아도 점점 느끼고 있었다.

먼저 체력적인 소비가 적었다. 그리고 무공을 사용해 대막 혈랑과 거리를 조금 벌리면, 아주 잠깐이지만 쉬는 시간도 생겼다.

그때서야 수아는 건을 다시 보았다.

"왜?"

"고마워요."

"수아 씨가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아는 대화를 멈추고 다시 오는 대막 혈랑들을 때려잡았다.

끝이 보여 갔다. 점점 숫자가 줄어들더니 끝내는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난 건가요?"

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아무도 없는 고비사막에는 '이제부터 진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바람의 불어오는 것을 느끼자 시원하다고 생각을 한 수아였다. 하지만 바람이 점점 더 세게 불어왔다.

"혹시!"

"대막 혈랑 중에서도 사납기로 유명한 놈이 하나 있습니다. 흑혈랑이라고 하는 놈인데, 그놈이 나타날 때는 이렇게 바람이 붑니다. 수아 씨의 퀘스트 역시 이놈이 종착역입니다."

대막 혈랑과는 달리 천천히 다가오는 검은색 늑대가 1마리 보였다. 대막 혈랑보다는 덩치가 작아 보였다.

"귀여운데요?"

"하지만 무서운 놈입니다."

"건 씨는 원래 그렇게 딱딱하세요?"

"……."

수아는 고개를 돌려 흑혈랑을 보고 있었다. 건은 자신이 왜 수아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되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다가오는 흑혈랑을 보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보기보단 사나운 놈이니까요."

수아가 먼저 검을 들고 흑혈랑에게 달려들었다.

"수지천율, 수류검!"

물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검을 움직이며 흑혈랑을 공격해 들어갔다. 흑혈랑은 가볍게 수아의 검을 피하고는 으르렁거렸다.

수아는 흑혈량이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는 것을 보고 약이 올랐다.

"그래도 흑혈랑이란 말이지. 좋아. 이것도 피하나 보자. 수지천율 동지!"

수아의 검이 땅을 향해 움직였다. 흑혈랑의 주위에 있는 모래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흑혈랑은 놀라서 허공으로 몸을 피했다.

"호호! 너 역시 다른 이들과 똑같구나. 수지천율, 은하유성탄!"

허공에서는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노린 수아가 가한 회심의 일격이었다.

하나 수아의 예상과는 달리 흑혈랑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수아의 공격을 흘려 버렸다.

"이, 이 똥개가!"

건은 수아의 입에서 말이 조금 거칠게 나오자 실소를 흘렸다.

"그 똥개는 보통 똥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격하다가는 놈에게 당합니다. 그냥 공격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수아는 건의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나를 천박하게 보지 않았을까?'

"수아 씨라고 했습니까? 잠시 비켜 주세요. 제가 처리할 테니. 그리고 마무리를 해서 퀘스트를 끝내세요."

건이 수아의 앞으로 나섰다.

"랑아! 오랜만이다."

흑혈랑에게 마치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건을 본 수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 아는 사이예요?"

"사부나 다름없는 놈이지요."

그때 흑혈랑이 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건의 바로 앞으로 와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었다.

건은 도를 들어 흑혈랑의 공격을 막아 내고는 다시 휘둘렀다.

"성격이 급한 것은 여전하구나."

크아앙!

자신의 공격이 먹혀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흑혈랑은 소리를 내며 크게 울었다.

"수아 씨는 조금 뒤에 올 대막 혈랑들을 맡아 주세요."

"네! 네에? 대막 혈랑들이 다시 와요?"

"네! 저기 오고 있네요."

수아는 멀리서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서야 왜 다른 두 사람이 그냥 돌아갔는지 알 수 있었다.

"큰일 났군요. 그럼 우리는 죽는 건가요?"

"아니요. 수아 씨가 대막 혈랑들을 맡아 주면 살 수 있어요."

아무렇지 않는 듯 이야기하는 건을 본 수아는 조금은 황당했다.

'뭔가 믿는 게 있으니 여유가 있는 거야. 그래, 끝까지 해보자.'

건은 벌써 흑혈랑과 어울리고 있었다. 수아는 달려오는 대막 혈랑들을 보고는 검을 들었다.

"수지천율 경천!"

하늘도 놀란다는 이름의 초식은, 달려오는 대막 혈랑들의 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수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더운 사막이라 그런지 목이 타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경험한 것을 토대로 싸우면 지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뒤에서 들려오는 건의 말을 듣고는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건 씨는 여자 친구 있어요?"

"……."

"없으면 내가 건 씨의 여자 친구를 한번 해 보려고요."

"조심!"

건은 수아에게 주의를 주고는 몸을 돌려 흑혈랑을 상대했다.

수아는 달려드는 대막 혈랑만을 상대했다.

건의 주위를 돌던 흑혈랑은 빈틈을 노려 공격했다.

"후후! 역시나 단순하구나, 흑혈랑!"

베타 시절에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해 걸려드는지 실험을 한 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흑혈랑의 발놀림에 따라 건의 도가 움직였다.

크아앙!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흑혈랑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승천도법 출룡!"

건의 도가 흑혈랑을 향해 움직였다.

흑혈랑은 도약하면서 건의 도를 피하는 동시에 두 발을 들어 건을 누르려 했다.

"승천도법 파멸겁!"

크아앙!

건의 도가 흑혈랑의 배를 스치고 지나갔다. 수아보다는 다소 여유롭게 흑혈랑을 상대하던 건은 수아에게 달려드는 대막 혈랑을 도로 쳐 내었다.

"가서 마무리하고 퀘스트를 수행하세요. 전 이놈들을 막고 있을 테니까요."

건이 대막 혈랑을 막고 있는 사이에 수아는 흑혈랑에게 다가갔다.

건의 도에 의해 배가 갈라진 흑혈랑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부상을 입고 웅크리고 있었다.

수아는 빨리 흑혈랑을 죽이고 건을 도와주려 했는지 일체의 망설임 없이 검을 움직여 흑혈랑의 숨을 끊어 놓았다.

-대막 혈랑의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퀘스트를 준 이를 찾아 보상을 받으십시오.

기분 좋은 알림 메시지였다.

"어! 아이템!"

떨어진 아이템을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대막 혈랑을 상대하기 위해 건이 있는 곳을 보았으나, 대막 혈랑들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흑혈랑이 죽으면 이놈들은 원래 도망가게 되어 있어요. 축하해요, 퀘스트를 푼 것을!"

수아는 건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주워 든 아이템을 확인했다.

"아이템 확인!"

아이템 : 흑랑도 등급 : 최상급 레어

특성 : 사용자의 힘 +15

체력의 최대치 5% 증가

무공 사용 시 기력 소모 -5

설명 : 대막의 주인인 흑혈랑의 주인이었던 대막 혈사랑의 독문 무기.

수아는 아이템을 보고 잠시 갈등을 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도를 사용하는 데다, 자신의 퀘스트를 도와준 사람이다. 또 자세히 보니 잘생기기도 했다.

수아는 흑랑도를 건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거! 흑혈랑을 잡고 나온 거예요."

건은 왜 자신에게 주냐는 눈으로 수아를 보았다.

"글쎄요. 건 씨가 마음에 들어서요. 자세히 보니 잘생겼네요. 그래서 건 씨의 여자 친구가 한번 되어 보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여자 친구 있어요?"

"아니, 아직 없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우리 한번 사귀어 볼까요? 전 스물일곱 살인데 건 씨는요? 서른두 살?"

건은 약간 인상을 썼다. 자신의 나이는 이제 서른 살인데 두 살이나 많이 부르자 조금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에요."

건네주는 흑랑도를 받은 건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현실에서는 몰라도 천 안에서는 사귀기로 합의를 보았다.

둘은 마을로 돌아가는 동안 서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습니까, 현수 님."

미자는 현수가 과거를 보기 위해 구미호의 레어에 머무는 동안 현수의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고 있었다.

"그저 그래. 아가씨의 서재에 책이 많아서 다행이야."

"어머니께서는 항상 책을 읽으셨습니다."

현수는 보고 있던 책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래. 여기저기에서 아가씨의 손길이 느껴져."

현수는 이미 서재의 책을 모두 한 번씩 보았다. 모르는 것은 미자에게 도움을 구해 가며 보았다. 책을 다시 읽은 현수는 책들의 내용이 한 번 읽었을 때와 또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읽고 또 읽곤 했다.

"과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과거는 어전시이니 급제를 하면 황궁으로 바로 입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조금은 불안해. 과거를 보러 오는 선비들은 모두 책을 많이 읽었을 것 아니야."

미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현수에게 힘을 내라며 위로했다.

"아마 현수 님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림에는 혹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반 서생들은 아마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무림인들이 책을 많이 읽어?"

무림인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리는 미자에게서 처음 듣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무림인 전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세가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갈세가와 서문세가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세가의 여식들은 어릴 때부터 문을 익히며 자라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간혹 무공에 심취한 여식들도 있지만 그들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를 보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현수를 보며 미자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문과를 보지 않습니다. 무과를 볼 뿐입니다."

"무과?"

무과라는 말에 현수는 야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다.

"네. 무공의 높고 낮음을 따져 나라의 장수를 뽑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많은 무림인들이 그런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파일방의 속가 제자들이 관리에 뜻을 두고 시험을 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문과는 치르지 않는단 말이지? 미자야, 혹시 내가 무과 시험을 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미자는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답을 했다.

"어머니의 무공을 능가하는 무공은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수준의 무공만 있을 뿐입니다."

무과 정도는 우습다는 뜻이었다.

야에게 당한 기분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벌써 서생으로 전직을 했고, 한 번 전직을 하면 물릴 수가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혹시 모르니 제가 황궁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황궁?"

"그렇습니다. 현수 님께서 입궁하신 후 조심해야 할 것들입니다."

미자는 무림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 주었다.

"먼저 무림을 알아야 합니다. 현수 님께서는 무림이란 어떤 곳이라 생각하고 계십니까?"

"나? 음… 약육강식의 세계? 의와 협으로 이루어진 사내들의 진정한 세계 정도?"

미자는 현수의 말에 조금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현수 님께서도 무림으로 가시면 이 점을 충분히 숙지하셔야 합니다. 황궁 역시 무림이 존재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황궁 무림의 탄생은 중원 무림의 탄생과 무관치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는 현수였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의 바탕에는 무력이라는 것이 필수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니, 당연히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겠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니까."

"황궁 무림의 정점에는 황제가 있습니다. 황제를 보호하는 기관들이 있고 또한 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이 있습니다."

동창과 군부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현수였다.

"지금 황궁은 조금 어수선한 상태입니다."

"황궁이 시끄러워?"

미자는 지금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수에게 알려 주었다.

"지금의 황제는 늙었습니다. 현명한 황제라 그를 몰아내려는 대신들은 없지만, 그 밑에 황자들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어 서로가 견제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수는 점점 미자의 말에 빠져 들고 있었다. 천연회에서도 말했지만, 자신이 하기에 따라 진짜 황궁을 등에 업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황자는 순하지만 결단력이 조금 부족합니다. 황제의 재목으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황제는 2황자에게 다음 황제의 자리를 넘겨주려 하고 있습니다."

"미자의 말은 그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1황자의 세력과 3황자의 세력입니다. 누구의 세력이 큰지는 구분을 할 수가 없습니다. 3황자의 세력이 조금 유리한 편이기는 합니다만, 권력을 위해서 배를 바꾸어 타는 것이 일상적인 황궁이기에 무엇이라고 딱 잘라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현수 님께서는 선택을 잘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 열심히 하면 되겠지. 난 지금 북경을 향해 출발할 생각이야. 책에 자연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적혀 있으니까 천천히 북경으로 올라가려고 해."

미자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현수 님, 오늘은 쉬시고 내일 떠나십시오. 여행에 필요한 것들은 제가 구해 놓겠습니다."

"아니, 더 이상 미자에게 신세 지기 싫어. 지금 떠날게. 그리고 다시 올 때 선물 하나 사 올게. 예쁜 걸로."

현수는 미자를 뒤로하고 구미호의 레어에서 나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래. 미랑이 성장할 때까지만이다. 그 기간 안에 황궁의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얻는다. 그때부터 나의 복수는 시작될 것이다."

현수는 낙양성에서 북경까지 가는 데 시간을 충분히 잡고, 중간 중간에 여러 곳을 다니며 레벨 업을 함과 동시에 정보를 알아보기로 했다.

"서안부터 시작해서 북경으로 올라가자. 조금은 돌아가는 것이 되겠지만 레벨 업도 해야 하니까."

서안은 화산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몬스터 레벨이 10∼40까지 다양하게 나오는 지역이었다.

"누가 화산의 매화를 이었을까."

화산의 무공을 배운 유저를 궁금해하며 서안에 도착한 현수는 옛날에 자신이 사냥을 하던 사냥터로 이동을 했다.

"건이 말이 맞군. 기본 토대는 그대로야. 몬스터의 수나 지형이 같군."

현수가 간 장소는 화청지란 곳으로, 양귀비와 현종의 로맨스로 유명한 곳이었다.

화청지의 외각을 돌아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래. 있구나."

화산 검객! 몬스터 레벨 11.

화산 검객은 화산에서 파문당한 놈들이었다.

이들은 화산의 이름을 팔며 오가는 여행객들이나 화청지를 관광하기 위해 오는 이들을 죽여 제물을 탐하는 자들이었다.

"손님이 오는군!"

"어디?"

현수를 보자 4명이 모여 마중을 하기 위해서 다가왔다. 그러고는 검을 빼 들고 현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검들의 사이를 피해 가던 현수는 대장장이에게서 보상으로 받은 검을 꺼내어 들어 횡으로 그었다.

채애앵.

발에 보호대를 했는지 발을 올려 검을 막은 놈을 본 현수는, 발을 사용해 허리를 가격하고 회전하여, 뒤에서 공격해 오는 놈을 향해 검을 뻗었다.

"큭!"

몸을 움직여 다른 사내의 검을 피하고는, 허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검을 움직였다.

"으악!"

사 대 일의 싸움은 순식간에 막을 내렸다. 운중비록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보너스 스탯을 민첩성에 전부 투자한 현수의 신형을 그들이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대장간에서 받은 검 역시 한몫했다.

"검이 좋으니까 사냥하기가 편하네. 아이템 확인!"

아이템 : 청강검 등급 : 매직

특성 : 공격력 +5

순발력 +2

기력 소모 -2

설명 : 대장장이의 퀘스트 보상 물품. 명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대장장이가 노력해서 만든 검.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이 10성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몸에 익지 않아 조금은 부자연스럽다. 일단 몸에 먼저 익히는 것이 급선무다."

현수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화산 검객이 리젠되기를 기다렸다. 조금 기다리자 다시 화산 검객들이 리젠되었다. 먼저 죽은 자부터 한 놈씩 리젠되는 것을 본 현수는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1명의 화산 검객만 상대하면 되어서 그런지,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대를 다시 만나면……."

"크악!"

노래의 추임새치고는 조금 이상했지만 현수는 개의치 않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싸!"

이번 스탯 역시 민첩성에 투자하고는 그곳에서 12레벨까지 올린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역시 레벨 업! 아이템은 던전이 최고야."

현수는 진시황릉의 던전으로 향했다.

현수는 시황릉의 던전으로 가는 길에 요기를 하기 위해 객점에 들렀다.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분비는 장소라 그런지 객점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현수는 안으로 들어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으로 드릴까요?"

"간단하게 만두 50개와 죽엽청 두 병만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만두는 체력 회복을 위해, 죽엽청은 기력 회복을 위해 주문했다. 의원에서 파는 것은 고급이라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객점에서 파는 것은 별 부담이 없었다. 현수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비사막의 흑혈랑 퀘스트를 푼 사람이 있다고 하네."

"뭐? 정말이야? 고레벨의 유저들도 포기한 퀘스트를 푼 사람이 있다고?"

"그래, 수아라는 유저가 풀었다고 하더군. 천에서는 수아라는 유저를 녹봉이라 부른대. 항상 녹색 경장을 입고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하더라."

조금은 우습게 들리기도 했다. 베타 시절, 현수는 흑혈랑을 수없이 잡아 보았다. 사냥하는 법만 알면 흑혈랑처럼 쉬운 놈도 없기 때문이었다.

"와! 그 녹봉이라는 유저 대단하다. 듣기로는 대막 혈랑들의 레벨도 50대가 넘는다고 하던데."

"건이라는 사내가 있어 가능했나 봐!"

현수는 건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건? 그 사람이 누군데?"

"몰라! 유명한 사람인가 봐. 그리고 흑혈랑에게서 흑랑도가 나왔대. 최상급 레어 아이템이라고 하더라. 부럽지?"

현수는 건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수아라는 사람이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건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건이 역시 흑혈랑을 사냥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건이는 좋겠네. 무기를 구했으니.'

배가 아파 오는 이유는 왜일까? 또다시 현수의 귀를 자극하는 대화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주작에게 당했다면서?"

"그래! 하여간 웃기는 놈들이라니까."

현수는 주작이라는 몬스터에 대해 야에게서 들었다. 사신수 중 하나인 주작은 레벨 230의 보스 몬스터로, 천에서 최강이라고 불리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럼 사신수들을 다 만났다는 소리네, 그 유저들?"

"그렇다고 봐야지. 이번에는 팔색조를 사냥하다 만났대."

현수는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유저들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히 사신수와 싸우려고 하는 유저들이라니!

"그중에 만사귀라는 유저가 있었다며. 베타 시절에는 상당히 강했던 유저라고 하던데."

'풋!'

현수는 만사귀라는 말을 듣자 웃음이 나왔다.

"베타 시절에는 강했지만 지금은 별로인가 봐. 랭킹에도 들지 못하고 변변한 무공조차 익히지 못했다고 하니. 그래서 무리수를 두고 레이드를 하는가 봐! 아직 레벨이 30대라고 하는 것 같은데."

현수는 한편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보 같은 놈들! 준보스를 사냥하라고 했더니 무지막지한 놈들을 노리고 있었나 보네. 역발산이 우긴 건가?'

현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손님, 조금 오래 기다렸습니다. 여기 주문하신 만두와 죽엽청입니다. 은전 2냥입니다."

현수는 은전을 지불하고는 만두와 죽엽청을 챙겨 들었다.

진시황릉의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분비고 있었다. 객점까지 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몇몇 유저들이 체력 회복제와 기력 회복제에 조금의 이윤을 보태어 팔고 있었다. 간혹 진시황릉에서 나오는 아이템들과 재료를 파는 이들도 보였다.

'순발력 플러스 3의 반지라… 당장은 도움이 되어도 나중에는 가치가 없는 반지다.'

이렇게 생각한 현수는 주저 없이 진시황릉 안으로 들어갔다.

현실에서의 진시황릉은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지만, 가상현실 천에서는 던전 그 이상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종류는 네 가지로, 모두 진시황제와 함께 묻혀 있었다는 병마용을 모티브로 만든 것들이었다.

창병, 궁수, 기마병 그리고 장군. 이들의 몬스터 레벨은 14에서 20이었다.

던전은 어느 게임이든 다 그렇겠지만 유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몬스터보다 유저가 더 많아 보였다.

"역시나 많군! 하지만 나의 자리는 아무도 모르지."

현수는 던전의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광장을 지나칠 때 장군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유저를 보았다. 장군들이 휘두르는 검 사이를 피하며 공격하는 모습이, 마구잡이는 아닌 것 같았다.

"대단한데."

4명의 장군 몬스터들은 유저의 손에 의해 허물어지고 있었다. 싸움이 끝나자 땅에 떨어진 것을 주운 유저는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먼저 말을 걸어오는 유저였다.

"안녕하세요. 전 아레스라고 해요. 저를 보시는 것 같은데?"

"네, 안녕하세요. 전 이현수라고 합니다. 이제껏 본 유저들과 달라 저도 모르게 훔쳐보았습니다."

유저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네! 현수… 앗! 사신 낭객이라는 그 미친……!"

사람을 앞에 두고 미친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이기에, 아레스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을 막으려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현수의 소문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었다. 모두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현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지금 생각해 봐도 미친 짓이기는 했다.

"괜찮아요. 저 역시 듣고서 알고 있는 사실인걸요."

"미안해요. 근데 이곳은 왜? 아직도 죽기 위해 다니나요?"

"아닙니다. 이제는 죽이기 위해서 다닙니다. 제 명호 그대로 죽기 위해 다니는 사신 낭객이 아닌, 죽이기 위해 다니는 사신 낭객입니다."

아레스는 현수가 '죽이기 위해서'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원한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다시 리젠된 창병이 아레스를 뒤에서 공격하려 했다.

"뇌전류!"

순간 현수의 검이 움직였다. 아레스는 현수의 검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 번의 발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갑자기 행동을 한 현수가 의심스러웠다.

"뒤의 몬스터가 아레스 님을 공격하려고 하기에……."

아레스는 현수의 말을 확인하자, 눈을 크게 뜨고 현수를 보다가 다시 뒤의 몬스터 창병을 보았다. 창병은 반으로 갈라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언제……."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음에 또 인연이 있으면……."

"잠깐만요. 정말 사신 낭객이신가요? 사신 낭객이 무공을 배웠다는 말은……."

아레스는 다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남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를 업신여기는 말이었기에.

현수의 얼굴이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레스 역시 그런 현수를 보고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럼!"

현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뒤돌아, 자신만의 사냥터로 가기 위해 던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전 남궁세가의 무공을 배웠어요. 오늘 도움, 감사합니다."

하나 현수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는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말한 대로 주의를 해야 할 인물이네. 빛과 같은 빠름이라… 남편에게 물어봐야지.'

현수는 자신의 길만 묵묵히 갔다. 그러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 멈추었다.

"던전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현수는 자신의 사냥터를 찾지 못하고 벌써 2시간째 헤매고 있었다.

"이쯤에서 좌측으로 돌면 들어가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따라 들어가면 막혀 있고."

현수는 벽에 손을 대었다.

"살황의 일기장, 추종술!"

≪살황의 일기장≫에 살수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어서인지, 어지간해서는 살황의 무공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벽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진짜 지형이 변형되었나?"

이렇게 되면 현수의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긴다. 황궁에 과거를 보러 가기 전까지 30레벨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사냥터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많은 유저들과 부딪치며 사냥을 하면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없지. 스틸을 해서라도 이곳에서 빨리 15레벨을 올려야 한다. 일단 밥을 먹고 시작하자."

현수는 접속을 해제하고는 장비를 벗어 놓고 야를 불렀다.

"야! 밥 먹자. 국밥으로 하나 시켜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수 님, 집을 구했습니다. 원룸으로 구하는 것보다는 작은 2층집이 나을 것 같아 그곳으로 구했습니다.

"그래? 환경은 어때?"

-사람이 사는 게 다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주인집에 딸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혹시 어린애는 아니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집주인이 노부부인 걸로 봐서 어린아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사는 다음 주에 하기로 했으며 집은 이미 팔렸습니다. 집을 비우는 날 잔금이 현수 님의 통장으로 입금되기로 했습니다.

아쉬웠다. 이 집과 함께해 온 날이 벌써 4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어머니께는 내가 전화를 할게. 그리고 이사 말고 또 알아야 할 것이 있어?"

-특별히 없습니다만 굳이 말한다면, 잔금이 입금되면 일단 현수 님의 신용 등급을 올리기 위해 대출받은 돈을 모두 갚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현수 님께서 예전처럼 게임으로 돈을 버시거나 아니면 직장을 찾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생각으로는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직장을 가지는 것이 더 좋겠지만 현수 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니…….

일반 직장에서 주는 월급으로는 엄마의 약값을 드리기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현수였다.

"야! 나도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너무 걱정 마. 대박 한 번 치고 접자. 알겠지?"

-방금 하신 말씀은 절 고물상에서 사 오신 날부터 지금까지 늘 하시던 겁니다. 이때쯤이면 레퍼토리를 한번 바꾸어 보시는 것도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 씨! 꼭 그렇게 말을 해야겠냐? 밥은 왜 안 와! 참, 과거 문제는……?"

-저는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아니기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전의 사례를 살펴보니, 충이라는 것과 효라는 것을 주제로 작문을 하는 문제가 많이 나왔습니다.

충과 효.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난 밥 먹고 나서 사냥을 할 때 스틸할 생각이거든. 네 생각은 어때?"

-욕먹기 딱 좋은 생각입니다.

"근데 안 들키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신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그런 욕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 인간을 속일 수 있다면 신도 속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맞아. 세상 참 삭막하지? 사람이 사람을 못 믿어서야 원!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이면 얼마나 좋아?"

듣고 있던 야는 어이가 없는 듯했다. 야가 알고 있는 현수는 사랑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사랑을 알고나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어. 알지. 내가 구미호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야! 나를 너무 무시하지 마라."

-밥 왔습니다. 밥 먹고 게임이나 하십시오, 현수 님.

"씨팔! 아니면 말지! 너 자꾸 나를 무시하는데, 그러는 거 아니다. 너 고물상에서 비 맞고 있을 때 내가 사 와서 드라이기로 하루 동안 꼬박 말렸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돼."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제가 현수 님을 사랑해서 잔소리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염병. 헛소리하지 마. 밥이나 먹으련다. 야! 그리고 아이템 빨리 알아봐. 무기와 방어구는 일단 제외하고 액세서리와 부적부터."

-알겠습니다. 그리고 구미호의 레이드를 주선한 사람이 유저가 아닌 NPC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다만 아직 어떤 NPC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순간 현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래? 알아봐 줘."

현수는 끼니를 해결하고는 밖으로 나가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천에 접속을 했다.

"운중비록, 운중난화무! 뇌전류! 운중무영보!"

현수의 스틸 경지는 잠깐 동안 신의 경지에까지 올라갔다. 소리 없이 다가가서 빛의 속도로 몬스터를 베고 사라지는 현수의 신형은 거의 환상이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던전 안에 있는 유저들이 현수가 스틸을 하는 것을 알아챘다.

"호면객이 스틸을 하고 다닌다!"

호면객! 천에서 현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현수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호면을 사용했다. 처음에 이상하게 생각한 유저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현수가 다가왔다 사라지면 몬스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고 나서는 현수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나 모두 헛수고였다.

"씨팔 것들! 그냥 사냥이나 하지. 역시 눈을 속이기는 어려워! 운중비록, 운중광속신형보!"

현수는 유저들을 피해 다니며 운중비록을 완전히 몸에 익힐 수가 있었다. 더구나 이미 스틸을 하는 것을 들킨 상황이라 눈치 볼 것도 없이 스틸을 하고 다녔다.

유저들은 현수의 무공에 혀를 내둘렀다. 수십 명이 에워싸도 소용이 없었다.

"헉헉! 개새끼! 저런 무공을 가지고도 스틸을 하고 지랄이야. 야! 씨팔! 너, 거기 안 서!"

유저들은 현수를 향해 욕을 했지만 현수는 여전히 스틸을 계속하면서 도망 다녔다.

"하하하. 그럼 난 간다. 모두 수고!"

생각한 것보다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었던 현수는 일찍 던전을 빠져나왔다.

"쉽네. 처음부터 이렇게 할걸."

현수는 다시 객잔으로 향했다. 그리고 죽엽청 몇 병을 더 산 후 매화의 숨결이 있는 화산파로 향했다.

현수는 될 수 있으면 많은 무공을 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아레스라는 유저의 무공을 보고 느낀 것이었다.

"사부에게서 배운 유저들은 진짜 막무가내로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이 천에서는 진짜 무림인이었다."

현수는 화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화산파!

구파일방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곳으로, 검으로는 무당과 수위를 다투는 문파였다.

화검지!

화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무기를 풀어 놓는 곳이다. 현수는 검을 화검지에 올려놓았다.

-화검지에 검을 풀어 놓았습니다. 검은 화산을 떠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음… 도난 방지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인가? 좋군."

현수는 화산의 입구를 향해 올라갔다. 2명의 화산 제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화산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화산의 무공을 견식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입구를 지키는 사내들의 인상이 조금 변했다.

현수의 말은 잘못 들으면 화산에 비무를 청하는 것같이 들리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십시오. 화산의 무공은 남에게 보여 줄 정도로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러지 말고 일단 안에 이야기나 전해 주십시오. 사신 낭객이 화산의 무공을 견식하고자 찾아왔다고."

사신 낭객이라는 말에 입구를 지키는 이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심한 표정까지 지었다. 미쳐서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화산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젊은이의 뜻은 알겠으나 그냥 돌아가시오. 화산은 쓸데없이 살인을 하는 문파가 아니오."

그냥 담을 넘어갈 수도 없어 현수는 답답했다. 그냥 무공을 한번 보고 싶다는데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는 이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가능할까? 운중비록의 절기로 이들을 속일 수 있을까?'

-어머니의 무공은 무림 최강입니다.

미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아가씨의 무공은 최고다. 운중무영보와 살황의 일기장의 잠입술과 은신술이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힘들게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안에 기별이라도 한번 넣어 주십시오."

현수는 부탁을 했지만 여전히 저지당했다.

"하는 수 없군요.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살황의 일기장, 은신술!"

마치 구름이 현수의 모습을 감추듯 주위가 자욱해지며 현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헉! 이게 어떻게……. 사신 낭객이 이 정도로 고수였단 말인가! 안으로 기별을 넣어라. 어서!"

입구를 지키던 사내는 사라진 현수를 보며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게 그냥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할 때 들여보내 주지. 그나저나 모습을 드러내 놓고 행동할 수가 없겠네. 어쩌면 잘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현수는 화산의 연무장을 찾아 움직였다. 아무래도 무공을 견식하기에는 연무장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 현수였다.

꽤 넓은 장소인 연무장은 정사각형으로, 바닥에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현수는 한쪽 나무의 꼭대기 위에서 무예 연습을 하는 화산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햐! 빠르군. 절도도 있어 보이고. 저 사람이 이들을 가르치는 사형인가 보구나. 유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네."

연무장에 화산의 무공을 배우는 유저들이 꽤 많이 있는 것을 본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1,000명의 사부라는 것이 저렇게 한데 묶여 있는 것은 아니겠지."

현수가 모르는 게 있었다.

사부와 유니크 아이템에서 제외된 선착순 1만 명에게 이렇게 정파의 구파일방, 사파의 무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저렇게 사부를 모신다면 어느 세월에 무림에 출도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무공을 가르치는 사내에게 다가와서는 귀에 대고 무엇이라 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 사신 낭객이 화산에 들어왔다고 말을 했을 것이다.

"모두 그만!"

척!

한 번의 외침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동작을 멈추었다.

"햐! 무림의 한 축을 담당해서 그런지 한 번에 멈추네. 고문관 같은 놈들도 있던데, 화산에는 그런 놈이 없나."

너무나 깔끔한 동작으로 모두 정지하는 것을 본 현수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지금 사신 낭객이라는 자가 우리 화산의 무공을 보기 위해 잠입했다."

자신의 귀에도 들리는 말에, 현수는 조금 섭섭했다.

"니기미, 그럴수록 계속 보여 주어야지. '화산의 무공이 이 정도니 넌 그냥 돌아가라.'라는 뜻으로 말이야. 쫀쫀하게……. 대화산이 이렇게 속이 좁았나?"

"아마 이곳에 있을 수도 있으니 오늘 연습은 그만 하고 내일 한다."

철저하게 외인을 배척하는 화산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속가 제자들에게도 화산의 진산 무공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재질이 뛰어난 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무공을 가르쳐 주었지만, 매화검법, 그중에서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속가 제자들에게는 전하지 않았다.

"뭐 대단한 무공이라고."

현수는 나무 위에서 화산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화산의 무공을 보관하고 있는 자하각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기 위해 서였다.

"운중비록, 운중무영보!"

현수는 소리 없이 나무 위를 떠나 자하각을 찾아 들어갔다.

자하각 앞에는 6명의 매화검수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음! 몬스터로 치면 50대가 넘는 이들이다. 아가씨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하나 레벨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현수는 숨어서 자하각을 지키는 매화검수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어린 화산의 제자가 그들에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어린 화산의 제자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때 현수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중비록, 운중무영신! 살황의 일기장, 은신술!"

팟팟팟!

"누구냐?"

8개의 신형이 사방으로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팟팟팟!

매화검수들은 빠르게 쫓았다.

'후후! 화산의 어린 제자쯤이야.'

현수의 신형은 어린 화산 제자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매화검수가 그곳을 비우자 곧바로 자하각에 숨어 들어갔다.

현수가 자하각으로 들어간 뒤 매화검수들이 다시 돌아왔지만 현수가 자하각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운중비록은 뛰어난 무공이었다.

자하각으로 들어가자 책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음, 책 냄새. 젠장! 현실에서 이렇게 책 냄새가 반가우면 얼마나 좋아. 그럼 나도 지금쯤 나라에서 한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현실에서는 책만 보면 눈이 감기는 자신을 탓하는 현수였다.

구미호의 서재에서 책이 주는 지혜가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 현수는 자하각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보았다. 자하각에는 무공서뿐만 아니라 진법서와 일반 고서들까지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대단하다. 이것이 화산의 무공이라는 것이지?"

속 깊은 뜻은 알 수 없으나, 겉으로만 보아도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현수는 천천히 다시 보곤 했다.

검법

-육합검법, 육합신검법, 매화삼십육신검형, 옥녀소심검법, 옥녀금침십삼검, 백팔식광풍쾌검, 구궁검법, 낙영검법, 숙녀검, 양오검, 희이검, 이십사수매화검법, 탈명연환삼선검

도법

-반양의도법

권법

-복호권, 이형권, 비형권, 파옥권법, 벽석권법, 화형권

장법

-복호장법태을전진미리장법, 혼원장법명령장법, 옥수십이식육합신장법, 매화장법, 낙영장법

지법

-자하지

금나수

-점의십팔질, 칠십이초응사생사박, 난화불혈수

수법

-죽엽수

퇴법

-소엽퇴법, 표미각

신법

-청운신법, 십단금, 신행백변, 구궁보

진법

-칠앵검진, 목상진, 양의추월도법

이 모든 것을 대충 훑어본 현수는 구파일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화산은 그냥 생겨난 문파가 아니구나. 대단하다. 무공에 대한 자부심을 충분히 가질 자격이 있는 문파다."

그가 알고 있는 화산의 무공이라고 해 봐야 매화검법뿐이었다. 그것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익혀 볼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현수는 몇 가지의 무공을 골랐다.

"화산의 사람들이 알면 미치겠지."

일단 무공 창에 저장을 했다.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은 무공 창에 저장을 하는 것으로 대성할 수 있었지만, 다른 무공은 무공 연습을 해야 한다.

"음! 이제 나가는 것이 문제인데."

교대 시간에 나가기로 한 현수는 자신의 무공 창에 저장한 무공을 자하각 안에서 무공을 연습하며 교대 시간을 기다렸다.

* * *

만사귀를 비롯한 천연회의 다른 사람들은 풀이 죽은 채 객점에 앉아 있었다.

"젠장! 처음에는 잘나갔는데, 갈수록 이렇게 꼬이냐."

"그러게. 백호를 만나지 않나 주작, 현무 그리고 청룡까지……. 야! 만사귀! 할 말 있으면 해 봐!"

만사귀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미치겠네. 레이드한다고 레벨도 못 올렸지. 그리고 죽어서 레벨이 다운됐지. 이제 26레벨이면 말 다한 거 아니야?"

"야! 만사귀만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정보를 모으느라 고생했잖아."

이들은 처음에 준보스들을 노려 레이드를 해서 상당한 아이템을 갖출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만나는 몬스터마다 준보스 급이 아닌 보스 급이라 고생만 한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들 때문에 보스 급 몬스터의 정보가 많이 풀렸잖아. 정보를 팔아서 돈도 조금 모았으니, 그 돈으로 아이템을 못 갖춘 사람에게 아이템을 사 주고 이제 사냥에 집중하자."

수금원은 이렇게 말을 하고는 모두의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하자. 이제 죽는 것도 짜증 난다."

"야, 만사귀. 힘내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가 누구냐? 베타 시절 랭킹 10위 안에 들어갔던 놈들이다. 이제부터 치고 올라가면 된다. 각자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니 레벨을 올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만사귀는 그래도 힘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정보에 커다란 문제가 있을지 몰라 다시 검토해 보았지만,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게 아니야. 레벨이나 아이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분석하는 정보들이 조금씩 틀어진다는 점이다."

"야! 베타를 기준으로 했으니 당연하겠지. 조금 더 겪어 보면 답이 나올 것 같다. 일단 화령이 아이템만 갖추면 되니 아이템을 사서 사냥하고, 레벨 업에 신경 쓰자."

"그래!"

모두는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리기로 결정을 하고는 아방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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