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호 아가씨 (4/57)

미호 아가씨

현수는 백마사를 향해 이동했다.

백마사는 여우들이 모여 있는 사냥터였다. 그래서 현수는 가는 도중에 여우를 사냥해 레벨 업을 했다.

-띠링! 레벨 업을 했습니다.

"상태 창 오픈!"

이름 : 이현수 레벨 : 10

직업 : 무 체력 : 235

기력 : 145 공격력 : 10

방어력 : 10 순발력 : 10(+2)

민첩성 : 28 NPC와의 호감도 : 35%

경험치 : 12/100

생활 스킬 : 도축-가죽과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당연히 이번에도 스탯 포인트는 전부 민첩성에 투자했다. 그러자 공격과 방어에 새로운 설명이 추가되며 이번에는 다른 멘트가 울렸다.

-띠링! 직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느새 현수의 레벨이 10이 된 것이다. 현수는 일단 구미호를 사냥한 후 마을로 가 직업을 구하기로 하고 여우를 계속 사냥했다.

"대체 언제 나타나는 거야!"

한참 동안 여우를 사냥했지만 구미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현수는 화풀이로 죽어라 여우를 사냥했다.

"저기!"

그렇게 사냥하던 현수는 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누구지?"

현수는 서둘러 사냥을 마치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엄청난 미인이 있었다.

"헉!"

'예쁘다. NPC들은 모두 예쁘구나. 하지만 저런 미인은 처음 본다.'

현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몸이 조금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를 불렀나요?"

"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다쳐서 그러는데……."

여인은 채 말도 못 끝내고 힘이 들었는지 쓰러졌다.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달려가 그런 그녀를 부축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이봐요. 눈 좀 떠 봐요."

이런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수는 어쩔 줄 몰랐다. 여인의 상태를 보니 그냥 마을로 데려가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일단 쉴 곳을 찾자."

현수는 그녀를 안고 쉴 만한 물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맷자락을 찢어 물에 적셨다.

지금 현수는 서두르고 있었다. 물에 젖은 소맷자락을 여인의 이마에 올리며 현수는 가만히 여인을 바라보았다.

꿀꺽.

"예쁘다! 정말 우리 엄마보다 더 예쁘다."

현수는 정신없이 그녀에게 빠져 들었다.

태어나서 스물아홉 살이 되도록 여자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한 현수였다. 힘든 집안 사정에 도움이 되고자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지금까지 게임만 했다.

당연히 현수의 인생에서 여자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런 현수였기에 비록 NPC였지만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나도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상현실에서라도."

현실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자신의 형편을 먼저 생각한 현수였다.

"으으음."

잠시 시간이 지나자 여인은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요? 갑자기 쓰러져서 일단 이리로 모셔 왔어요."

여인은 주위를 살피다 현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흠뻑 빠져 버린 현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한참 동안, 현수는 여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현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움직일 수 있으면 함께 마을로 가서 치료를 해요."

현수는 그녀를 부축해서 일어나려고 했다.

이미 현수의 눈은 풀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아."

일어나던 그녀는 균형을 잃은 듯 현수의 손을 잡아당겼다.

"어어!"

힘에 못 이긴 현수는 그녀에게 안기고 말았다.

겹쳐지는 두 사람의 입술.

달콤한 것을 느낀 현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곧 비명이 되었다.

"커억!"

현수의 심장 쪽으로 그녀의 손이 파고들어 왔다.

"호호호, 감히 나의 아이들을 죽이고 네놈이 살 줄 알았더냐."

"왜? 내가 언제 당신의 아이를……?"

현수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호호호."

여인은 천천히 현수의 심장 쪽에서 손을 빼냈다. 어느새 여인의 손에는 현수의 심장이 잡혀 있었다.

"크악!"

동시에 현수는 두 눈이 검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띠링! 사망하셨습니다. 사망 페널티에 의해 레벨이 다운되었습니다. 안전지대에서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연이어 멘트가 머리에 울렸다.

현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가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다시 시야가 밝아지며 눈에 익숙한 풍경, 낙양성이 보였다.

"저런! 어쩌다 이렇게 많이 다쳤나? 자, 이제 다 나았으니 움직여도 괜찮네."

현수는 부활한 자신을 보며 야의 말을 떠올렸다.

-현수 님은 헤벌쭉하고 웃으며 맞아 죽을 확률이 70% 이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크크. 그게 구미호였단 말이지? 좋았는데. 여자란 다 요물이라더니 여기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군."

현수는 구미호와의 입맞춤을 생각했다.

비록 가상현실이라지만 자신의 첫 키스가 사람도 아닌 구미호였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는 믿지 못할 것이 몇몇 있는데, 그것에 여자도 들어간다고 했던 친구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놈은 장가를 갔겠지."

현수는 자신의 인벤토리와 상태 창을 체크하고는 다시 백마사로 향했다.

"상태 창 오픈!"

이름 : 이현수 레벨 : 9

직업 : 무 체력 : 220

기력 : 140 공격력 : 10

방어력 : 10 순발력 : 10(+2)

민첩성 : 26 NPC와의 호감도 : 35%

경험치 : 80/100

생활 스킬 : 도축-가죽과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떨어진 레벨을 보았다. 피와 땀을 흘려 올린 레벨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자, 두 눈에서 독기가 흘렀다.

"오냐. 모두 죽여 주마. 너희들의 엄마가 나타날 때까지."

현수는 눈에 보이는 여우들을 죄다 죽이고 다녔다.

한참이 지나자 이번에도 역시 그녀가 나타났다.

"나타났군!"

현수는 구미호를 보고 곧장 공격했다.

"이놈아, 지금 뭐 하는 짓이냐!"

호통을 치는 사람은 그녀가 아닌 현수의 어머니였다.

"엄마?"

"일은 하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냐."

현수는 어떻게 엄마가 이곳에 접속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왜 여기에……?"

"집에 갔더니 이곳에 있다고 하더구나. 너, 일하러 가지 않았더냐?"

현수는 조금 이상한 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약간의 화상이 있었다. 현수가 어릴 때 집에 불이 났는데, 그때 어머니가 그를 구하느라 생긴 화상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상현실 천이라는 게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관심사는 오직 이웃 아주머니들과 치는 10원짜리 고스톱이 전부였다.

"…집에 가서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리고 이게 직장이에요."

"그러냐? 난 또."

현수는 엄마에게 다가가 웃으며 물었다.

"엄마! 근데 아버지는 여전하시죠?"

"네 아빠야 그렇지, 뭐."

현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단검으로 엄마의 가슴을 찔렀다.

"큭! 이게……."

"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없거든! 차라리 예쁜 아낙의 모습이었으면 내가 당했을지도 모르지."

현수의 말이 끝났을 때, 어머니의 모습이 변했다.

여우의 얼굴에 꼬리가 9개나 달려 있는 요괴의 모습이었다.

"호호호. 그렇구나."

"근데 너, 가슴에 꽂혀 있는 단검이 무지 아프지?"

구미호는 자신의 가슴에 꽂혀 있는 단검을 뽑았다.

"이거? 별로!"

"우와, 말로만 듣던 절벽이네."

갈라진 구미호의 옷자락을 본 현수가 소리쳤다.

그러자 구미호의 고개가 숙여졌다.

"찬스!"

현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검을 또 한 번 찔러 갔다.

"악!"

틈을 줄 시간이 없었다.

분명 지금의 구미호는 자신보다 강했다.

"에잇!"

단검을 던진 현수는 옆으로 이동을 했다.

구미호가 피하는 반경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생각한 것과 반대쪽으로 움직여 피하자 현수는 급해졌다.

현수는 쉬지 않고 다시 단검을 던졌다.

이번에도 구미호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피했다. 현수는 때맞춰 구미호의 품으로 파고들며 얼굴을 냅다 차 버렸다.

휘청.

구미호의 허리가 꺾이며 뒤로 넘어갔다.

현수는 구미호의 동선을 좇으며 그대로 심장에 다시 단검을 꽂았다.

"아악!"

구미호의 비명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현수는 방심하지 않고 이번에는 구미호의 꼬리를 잡아 던졌다.

쿵!

나무에 부딪쳐 쓰러지는 구미호를 보고 다시 단검을 던졌다.

"악!"

현수는 쉬지 않고 다시 달려들어 구미호의 정수리에 단검을 박아 버렸다.

"디 엔드!"

그제야 현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런 상대에게 당했다니."

현수는 조금 전에 당한 것이 몹시 억울했다.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오히려 대왕 멧돼지가 상대하기 더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병신! 아주 꼴값하네."

"헉!"

등 뒤에 첫 키스 상대였던 그녀가 서 있었다. 현수는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허수아비랑 노니 재미있더냐?"

그 말에 현수는 밑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구미호가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가 쓰러져 있었다.

이제껏 혼자 쇼를 한 셈이었다.

"하하."

어이가 없다 못해 허탈했다.

현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단검을 들었다.

"젠장!"

구미호는 천천히 현수를 향해 걸어왔다.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현수는 자꾸만 조금 전의 일이 생각나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 못 하는 녀석이네. 호호호."

현수는 구미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검을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달려 들어갔다.

'왼쪽!'

현수는 구미호가 자신의 단검을 피해 움직이는 방향을 기억했다. 현수는 다시 구미호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또 왼쪽!'

계속된 구미호의 회피를 통해 그녀가 왼쪽으로 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구미호와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현수는 다시 단검을 뿌렸다.

'이번에도!'

현수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 예상대로 구미호는 왼쪽으로 회피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현수는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구미호는 그런 현수의 공격마저 쉽게 피했다.

"젠장!"

현수는 다시 단검을 날렸다.

"호호호!"

이번에는 현수의 예상을 비웃으며 구미호가 공중제비를 넘었다.

"봤다!"

현수의 두 눈이 풀렸다.

"이, 이……!"

봤다는 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잘 아는 구미호는 그대로 현수의 머리를 밟았다.

"악! 분홍색!"

"이, 이……!"

흥분한 구미호는 현수의 배 위로 올라가 사정없이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

앞이 희미해져 오는 것을 느낀 현수는 벽곡단을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깐!"

구미호는 급한 마음에 소리치는 현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현수는 곧바로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저기, 곧 죽을 것 같은데, 벽곡단을 먹고 또 맞으면 안 될까요?"

구미호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현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제가 죽었다가 혹시 또 살아나면 마을에 구미호 아가씨의 그것의 색깔이……."

구미호의 손바닥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악!"

분에 못 이긴 구미호는 현수를 또다시 구타했다.

"잠깐! 정말로 죽는단 말이에요."

"호호호. 좋아! 어서 벽곡단을 먹어."

구미호는 배 위에서 내려와 현수가 벽곡단을 먹는 것을 보았다.

"그럼!"

체력을 채운 현수는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호호호. 어딜 가려고. 아직!"

구미호는 현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수였다. 멀리까지 도망가지 못한 현수는 구미호에게 잡혔다.

무수히 구타를 당한 현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쓰러졌다.

"호호호호. 넌 평생 나의 노예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호호호!"

구미호는 쓰러진 현수를 들쳐 메고는 사라졌다.

눈을 뜬 현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낙양의 의원이 아니었다.

"어디지?"

"호호호! 이제 깨어났나 보구나."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군지 잘 알고 있는 현수였다.

"헉! 구미호!"

얼굴이 험악해지는 구미호를 본 현수는 비굴한 태도로 물었다.

"아가씨, 여기가……?"

"내 집이야. 넌 이제 내 종이다. 호호호!"

현수는 앞이 깜깜해졌다.

이건 아니었다.

세상에 종이라니, 이게 무슨 봉변인가!

일마 이현수의 체면이 있지, 고작 구미호의 종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날 이길 수 있어?"

노려보는 구미호를 보니 저절로 눈에서 힘이 풀렸다.

"없으면 시키는 대로 해."

그날부터 현수와 구미호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 * *

"젠장! 접속 해제."

현수는 접속을 해제하고 야를 불렀다.

"야! 너, 구미호는 내가 잡을 수 있는 준보스 급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구미호에게 잡혀서……!"

차마 노예가 되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현수 님, 저의 실수였습니다. 물론 구미호는 현수 님께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맞습니다. 하나 지금 현수 님을 잡은 구미호는 만 년을 산 구미호인 것 같습니다. 설마 모든 여우의 어머니가 초보들이 노는 곳에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1,000년이고 만 년이고……."

-보다 사실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BS 그룹에서 정한 것 같습니다. 만 년을 산 구미호는 모든 여우들의 어머니로, 레벨이 200인 몬스터입니다. 그래서 대왕 멧돼지만 잡으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200레벨의 보스 몬스터!

신수를 제외하고, 천 최고 레벨에 속하는 최상급 보스 몬스터 중 하나라니. 현수는 이 암담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야, 네 말대로면 최상급 몬스터라는 것인데, 어떻게 저레벨 사냥터에 나타날 수 있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혹시 만 년 된 구미호가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식들을 돌보러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봐주기는 개뿔이 돌봐줘! 아 씨, 몰라. 책임져. 돈도 벌어야지, 레벨 업도 해야지. 난 갈 길이 멀어. 그런데 대체 이게 뭐야!"

-현수 님께서 하시기 나름입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야! 네가 내 대신해! 다 너 때문이잖아!"

-참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안부 전화를 하셨습니다만.

현수는 어머니라는 말에 바로 반응했다.

"돈은 부쳤어?"

-예! 저의 생각입니다만,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날려 주시는 것이…….

"아 씨. 날려 주긴 뭘 날려 줘! 너 바른말 고운 말을 사용하라고 했잖아. 계속 삐딱하게 나오면 고물상에 던져 버린다."

-알겠습니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현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야를 뒤로하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잘 있지? 어, 나도 잘 있어. 응! 밥 잘 먹고 직장 잘 다니고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뭐? 선을 보라고? 에이, 싫어. 이제 스물아홉 살인데, 뭐. 조금 더 있다가. 알았어. 응.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 줄게. 그러니까 오래 살아야 돼. 결혼하는 것이 호강시켜 주는 거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말이야, 돈 많이 벌어 예쁜 색시 얻어서 엄마랑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야. 조금만 기다려. 그래. 엄마, 약은 챙겨 먹고 있지? 응. 그래. 알았어."

한참을 통화한 현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젠장! 왜 이렇게 꼬였냐. 야! 내가 구미호에게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지금 상태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구미호를 꼬여 같이 사시는 것이…….

"야! 바른말, 고운 말! 아 씨."

현수는 야에게 화풀이하고는 다시 접속을 했다.

"휴… 내 팔자야."

"어디 갔다 와! 너, 어디 갈 때는 말하고 가!"

현수는 속으로 한숨을 쉰 후 겉으로는 상냥하게 웃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미호美狐 아가씨."

"미호?"

"네, 아름다우시니까 아름다울 미 자와 여우 호 자를 사용해서 미호.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현수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 구미호였다.

여자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름답다는 말에 약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호호호. 오랜만에 목욕을 해야겠구나. 목욕물 좀 준비해 다오. 물은 조금 따뜻하게!"

"네!"

목욕물을 준비하며 현수는 신세 한탄을 했다.

"캬아악, 퉤! 목욕할 때 튀어야겠다."

현수는 내심을 숨기고 구미호에게 목욕 준비가 끝났다고 말했다.

"어디 보자. 온도가 딱 좋네."

구미호는 뒤돌아서 옷을 벗었다.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완벽한 몸매였다.

꿀꺽!

현수는 목이 타는 것 같았다.

"침 넘어가는 소리 다 들린다. 넌 나가서 기다려라. 행여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현수는 뜨끔했지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절 살려 주신 것만 해도 감사히 여기고 있는걸요."

"이제 나가 봐라."

현수는 뒤돌아 욕실을 나왔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구미호의 모습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한 현수는 도망치기 위해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리고 입구가 보이자 달릴 준비를 했다.

"지금이다!"

하지만 곧 도망치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했다. 이미 밖에는 수많은 여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망했다!'

현수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졌다.

"젠장!"

게다가 겨우 게임일 뿐인데도 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자꾸만 눈이 돌아갔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일단 이곳을 살펴보자."

현수는 약한 마음을 다잡으며 호화스러운 구미호의 거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심 뭔가 챙길 만한 것은 없나 기대가 되었다.

구미호의 거처는 그런 현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건!"

그것은 구미호의 서가에 있던 책이었다.

"≪운중비록≫! ≪살황의 일기장≫!"

두근두근.

현수는 두 권의 책을 보고 온몸을 떨었다.

'심봤다!'

진정한 대박이었다.

운중비록

등급 : 최절정

설명 : 무림 십대고수 중 하나인 휘령의 독문 무공.

바람처럼 다가가 상대가 느끼기도 전에 사라진다.

살황의 일기장

등급 : 무

설명 : 무림 최고 살수의 일기장. 살황의 살인 기예가 숨겨져 있다.

"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현수는 당장이라도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에 야를 원망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비급에 대한 욕심으로 두 눈이 번들거렸다.

이제 비급을 익히는 일만 남았다.

현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비급을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구미호가 현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게 얌전히 있어도 시원찮을 것을, 감히 내 책을 훔쳐 가려고 해?"

현수는 맞아도 행복했다. 이 정도 수확이라면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권의 비급은 꼭 얻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놀리고 간 일황에게 복수를 해 주리라.

재빨리 계산을 마친 현수는 구미호의 구타를 피해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이게 다 아가씨 때문입니다. 미호 아가씨가 너무 아름답다 보니 참기 어려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안 그래도 예쁜데, 목욕까지 하고 계시니 이건 그야말로 고문이었습니다. 저, 사실 여자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이게 다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정말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책이라도 보면 조금 진정될까 싶어서……."

구미호의 손이 멈추었다.

"호호. 그래? 내가 정말 그렇게 아름다우냐?"

현수는 심호흡하며 대답했다. 잔뜩 긴장해서인지 게임인데도 목이 말랐다.

"네! 제가 비록 많은 여자를 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본 그 어느 여자보다도 미호 아가씨가 아름답습니다."

구미호는 현수의 두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확신에 가득 찬,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동자.

현수의 말은 진심이었다. 제대로 여자를 사귄 적이 없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앞으로는 내 물건을 함부로 건들지 마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흐흐흐, 두 권의 비급은 꼭 손에 넣고 만다.'

* * *

"그래서?"

한 사람을 5명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래서라니? 우리가 잡고 있는 몬스터를 스틸했잖아?"

"내가?"

"그래,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건은 자신을 에워싸고 시비를 거는 유저들을 노려보았다.

"야! 너 지금 사람 대가리 숫자 믿고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건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놈을 보고 다그쳤다.

"씨팔! 네가 스틸한 거 맞잖아?"

'이것들을 그냥 죽일 수도 없고 가만히 있으려니 쪽팔리고. 휴! 미치겠다.'

건은 생각하다 그냥 몸을 돌렸다.

"어쭈! 그냥 가려고 하네."

사내가 주먹으로 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퍽!

건은 도를 꺼내어 들었다.

"진짜, 이것들이! 아무리 사부도 없고 유니크도 없다고 하지만,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다 시비를 거네. 이것들아! 쪽수가 많으니 날 이길 수 있다고 설치나 본데, 내가 그렇다고 물러나면 최건이 아니다."

건은 빠르게 달려들어 도를 횡으로 그었다.

채애앵!

"씨팔! 이게 어디서 칼질이야."

뒤에서 지켜보던 4명의 사내들 역시 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건은 내리쳐 오는 검을 피해 몸을 옆으로 회전하며 놈의 뒤로 돌아가 칼자루로 뒤통수를 가격하고는, 도를 움직여 허리를 향해 들어오는 검을 비껴 막았다.

"윽!"

발을 올려 사내의 낭심을 후려 차 버린 건은 허리를 숙여 횡으로 그어지는 검을 피했다.

"컥!"

낭심에 충격을 받았는지, 움직이지 못하는 놈을 향해 도를 그어 등을 베었다.

"종수야! 이 씨팔!"

친구가 도에 의해 쓰러지자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상대를 보고 어이가 없어진 건은, 뒤로 물러나 틈을 노렸다.

"고작 이딴 실력으로 나에게 시비를 걸었냐?"

건은 내려오는 검을 피하고는 다시 도를 움직여 상대의 허리를 베었다.

"악!"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아! 내가 아무리 지금 랭킹에서 밀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베타 시절에 일황이라 불렸다. 안 그래도 갈 길이 먼데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다 엉겨 붙네. 내가 너희들은 볼 때마다 꼭 죽여 준다."

건은 이벤트에서도 떨어지고 아이템도 못 얻은 것을 이들에게 화풀이했다.

살아남은 세 사람 역시 어디서 일황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잠시 주춤했다.

"왜 안 덤벼? 내가 일황이라고 하니 쫄았냐?"

건의 기세에 이미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런다고 내가 살려 줄 것 같아? 어차피 카오가 된 이상, 한 놈 죽이나 너희들 다 죽이나 똑같단 말이지."

유저들은 머더러Murderer를 편의상 카오라 불렀다.

건은 도를 추켜올렸다.

"저, 저기……."

건은 말을 듣기를 거부했다. 그러고는 추켜올린 도를 내리그었다.

"악!"

"병신들! 나 일황 아니야. 그냥 해 본 소리야. 그러니 덤벼."

이미 저들은 싸울 의사가 없는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안 덤비면 나야 편하지."

건이 다시 도를 추켜올렸을 때 그들은 몸을 돌려 도망가고 있었다.

"안 서!"

건은 따라가려다가 소리만 쳤다. 죽일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었다.

"아 씨! 갈 길이 먼데 카오라서 성에도 못 들어가고. 아! 왜 이리 꼬이냐."

건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카오가 풀릴 때까지 사냥을 했다.

카오를 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사냥을 해서 자신의 성향을 내리는 방법과 그냥 접속한 채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건은 사냥을 하기로 하고, 사람들을 피해 자신의 사냥터로 움직였다.

"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나의 사냥터에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지."

건이 지금 잡고 있는 몬스터는 화천 검객이라는 것으로, 레벨이 26이었다.

건은 이들을 잡으면서 레벨을 30까지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건의 사냥터 역시 현수의 사냥터와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는 몬스터 2마리를 교대로 사냥하며 경험치를 올렸다.

"다른 것은 안 바란다. 그냥 무공서 하나만 줘!"

건은 부탁을 하며 사냥하고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는 알림 메시지와 함께 땅에 떨어진 아이템을 발견했다.

"무공서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건은 레벨 업을 하자마자 무공서를 하나 얻었다.

무공서의 표지에는 ≪승천도법≫이라 적혀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카오 수치를 내릴 때까지 무공서만 판다. 상태 창 오픈!"

이름 : 최건 레벨 : 30

직업 : 무사 체력 : 390

기력 : 250 공격력 : 20(+10)

방어력 : 20(+5) 순발력 : 35(+15)

민첩성 : 25(+10) NPC와의 호감도 : 35%

경험치 : 30/100

생활 스킬 : 도축-가죽과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채집-약초를 채집할 수 있다.

건은 자신의 상태 창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왠지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무공 창 오픈!"

깨끗하게 비어 있던 무공 창에 ≪승천도법≫이라는 무공서를 저장했다.

"무공 확인, 승천도법!"

승천도법

-출룡(1성) : 기력을 이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공격력 +100%

-파멸겁(1성) : 기력을 이용해 적에게 타격을 주는 동시에 12미터 밖으로

적을 밀어 낸다.

공격력 +150%

출룡의 단계가 3성이 넘어야 사용할 수 있다.

-낙뢰도(1성) : 기력을 이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하늘에서 2개의 낙뢰가 떨어진다.

공격력 +200%

출룡의 단계가 5성, 파멸겁의 단계가 3성 이상일 때

사용할 수 있다.

-승천도(1성) : 기력을 이용해 적에게 타격을 준다.

기력을 사용해 검을 적에게 날려 원하는 곳을

공격할 수 있다.

공격력 +250%

출룡의 단계가 10성, 파멸겁의 단계가 10성,

낙뢰도의 단계가 5성 이상일 때 사용할 수 있다.

총 4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도법을 본 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 후 건은 수련을 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찾는 장소는 승천도법을 수련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한참을 찾아다니다 조그만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은 곰이 사용했던 곳이라 생각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의 깊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승천도법을 수련하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혹시나 곰이 돌아오더라도 문제는 되지 않았다. 건은 그날부터 동굴에서 승천도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 * *

3달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젠장! 이게 무슨 청승이지? 한때 일마라고 불리던 내가 3달이 지나도록 레벨이 9라니! 하아, 게다가 구미호에게 잡혀 파출부 노릇이나 하고 있고. 인생아, 인생아, 왜 사냐. 건이 그놈은 지금쯤 고레벨에 속하겠지."

현수는 지난 3달 동안 구미호에게 잡혀 있었다.

뭐, 구미호와 지내는 시간이 아주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수 입장에서는 이렇게 무작정 시간을 죽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냥 게임을 즐기기에는 지금 현수의 사정이 급했다.

"뭐 해? 어서 와!"

"네네, 갑니다요, 미호 아가씨."

'젠장!'

현수는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재빨리 목욕물을 받아 놓고 구미호에게 갔다.

"왜 이리 늦었어?"

"목욕물을 데우느라……."

현수는 구미호의 옷을 받아 챙겼다.

이제 면역이 되어 아무런 감정도 안 생겼다.

처음에는 아무 데서나 옷을 벗는 구미호를 보고 당황했지만 3달이라는 시간은 적응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식사 준비해 둬!"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는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욕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구미호의 서재로 발길을 옮겼다.

"어제 어디까지 봤지."

현수는 ≪운중비록≫을 보았다. 그것도 잠시, 원상태로 돌려놓고는 다시 서재를 빠져나가 음식을 장만했다.

"구름 속에 머문 바람이라……. 표현은 괜찮은데 어떤 움직임인지. 정중정인가?"

현수는 방금 보고 나온 한 구절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늘은 식단이 뭐지?"

"네. 아가씨가 좋아하는 간 요리입니다. 재료는……."

"그래."

구미호는 현수가 차려 준 음식을 먹으며 현수에게 말을 건넸다.

"너,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네! 3달이 지났습니다."

"그래? 2달만 더 있어. 그럼 보내 줄게."

현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닙니다.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제발 그런 말은……."

이제껏 고생하고 아무 소득도 없이 나갈 수는 없었다. 적어도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완전히 익히기 전까지는 무조건 있어야 했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무공이라도 건져야 할 것 아닌가.

구미호는 그런 현수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래? 그럼 네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요, 미호 아가씨."

구미호가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자 현수는 바쁘게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구름 속에 머문 바람'이라는 구절을 계속 떠올렸다. 나름대로 생각하고 움직임을 구현해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미치겠네! 예전에는 그냥 무공 창에 저장만 하면 되었는데. 이거 너무 사실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 아냐? 진짜 야의 말대로 재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인가? 그럼 내가 그렇게 머리가 나쁘다는 소린가?"

무공 창에 저장을 함으로써 익혔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무공 창에 저장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무공을 다시 몸으로 수련해야 했던 것이다.

만일 현수가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무공 창에 저장하면 그날로 구미호에게 죽을 게 뻔했다. 그래서 몰래 내용만 훔쳐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장하고 죽어도 익히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운중비록≫과 ≪살황의 일기장≫을 훔쳐 낸다고 해도 그것을 혼자 익힐 수 없으면 헛수고에 불과했다.

현수는 결국 답답함을 풀지 못한 채 접속 종료 시간이 되자 밖으로 나갔다.

"접속 해제."

현수는 야를 불렀다.

'구름 속에 머문 바람'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혼자 익힐 수 없는 것이라면 방법을 달리해야 했다.

"야! 너 혹시 '구름 속에 머문 바람'이라는 게 무엇을 말 하는지 알아?"

-어떤 의미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전적인 의미입니까? 아니면 천에서 말하는 무공의 비급에 적힌 요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무공 비급의 요결이지."

-구름 속에 머문 바람이라… ≪운중비록≫이겠군요.

"어! 너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운중비록≫의 내용은 겉보기에는 그냥 휘령의 감정을 적은 낙서장과 같습니다. 휘령만이 그 속의 비밀을 풀 수 있습니다.

멍해진 현수는 한낱 낙서장 때문에 3개월 동안 고생했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럼 뭐야. 지금 내가 헛수고했단 말이야?"

-빙고!

"야! 너도 지금 나 놀리는 거야? 그리고 제발 사람처럼 말 하지 마! 내가 너 때문에 미친다."

안 그래도 짜증이 나는데 야의 말을 들으니 더 짜증이 나는 현수였다.

-하나 ≪운중비록≫은 진짜 무공 비급이 맞습니다. 천에서 가장 빠른 경공술과 보법이 수록되어 있는 알짜배기 무공 비급입니다.

현수는 야의 말을 듣는 중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예전에 자신이 일마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놈 야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근데 너 천에 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 아니야? 너 혹시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와 조금 아는 사이야?"

-현수 님도 구미호와 함께 생활하더니 슬슬 맛이 가는 모양입니다. 인공지능 컴퓨터들에게 무슨 아는 사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있다면 하위 컴퓨터와 상위 컴퓨터의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전 천의 인공지능 컴퓨터의 상판을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현수는 갈수록 도가 심해지는 야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야! 너 제발 바른말, 고운 말! 너 혹시 엄마한테도 그런 말 쓰는 것 아니야?"

-아닙니다. 어머님께서는 현수 님과 레벨이 다르십니다. 이런 말씀을 드렸다간 그날로 절 분해시킬 분이신데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관두자. 그러니까 내가 본 건 휘령의 낙서에 불과하지만 ≪운중비록≫은 천에서 알짜배기 무공 비급이라는 뜻인데, 그럼 ≪살황의 일기장≫은?"

-살황의 일기장은 살황이 살수행을 어떻게 했는지 자세하게 적혀 있는 책으로, 비급이라 하기보다는 살수들의 교본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 살수들은 ≪살황의 일기장≫을 천에서 가장 강한 무공 비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무인들은 흔하디흔한 삼재검법이나 무당의 면장과 같은 취급을 합니다.

"어렵다. 쉽게 설명해 봐!"

-쉽게 말을 하면 필요한 놈한테는 보물이요, 필요 없는 놈한테는 쓰레기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10명의 고수들 중에 살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은 ≪운중비록≫을 목표로 해야겠군. 좋아. 야!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지?"

-지난 1달 동안 들어온 돈은 400만 원이며 나간 돈은 690만 원. 그래서 지금 통장에 남은 돈은 총 2,910만 원이며, 현수 님의 대출 한도는 1,200만 원입니다.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는 나에게 들어올 돈이 없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현수 님께서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은, 또한 천에서 이렇게 빈둥거릴 때에는…….

현수는 야를 보았다.

"야! 알지? 내가 무슨 말을 할지를."

-지금 중국집에서 사천 볶음밥을 시켜 놓았습니다. 그럼 저는 일이 바빠서 그만.

현수는 멍해졌다.

"이제는 나를 놀리는 경지에 들어섰단 말이지. 에휴, 내 팔자야! 필요한 놈이 참아야지."

시켜 놓은 밥을 먹은 현수는 시간에 맞추어 다시 접속을 했다.

* * *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갔다. 현수는 ≪운중비록≫의 숨겨진 진짜 요결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현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자!

비록 현실에서는 아니지만 가상현실에서 질리도록 봤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보다 더 예쁜 구미호의 벗은 모습을!

"현수야!"

"네, 아가씨."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구나. 오늘은 나와 함께 저잣거리에 나가자꾸나."

현수는 아무 생각 없이 구미호를 따라나섰다. 저잣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구미호와 현수가 저잣거리로 들어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구미호에게로 향했다.

"와!"

휘이익!

곳곳에서 구미호를 보며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미호의 미모는 인간의 미모가 아니었다. 하긴 사람이 아니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구미호는 은근히 이런 것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현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3명의 남정네가 앞을 막아섰다.

"흐흐흐!"

말없이 웃는 그들의 모습에서, 현수는 결코 좋게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년! 남정네를 많이 잡아먹게 생겼구나."

현수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뭘 봐! 꼴에 주인 아가씨라 이건가?"

쿠당탕!

현수는 사내의 주먹에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구미호는 모른 척하며 현수에게 다가와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왜들 이러는 거예요."

영락없이 힘없는 아낙의 모습이었다.

"흐흐! 고년, 목소리도 아름답구나. 우리는 낙양 삼걸이라고 한다."

이들은 낙양에서 낙양 삼걸이란 이름으로 제법 알려진 건달 몬스터 NPC였다.

낙양 삼걸 중에 첫째인 사내가 구미호의 팔을 잡아챘다.

"놓으세요. 왜들 이러세요."

현수는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구미호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갑자기 뭔가 울컥했다.

현수는 그대로 낙양 삼걸에게 달려들었다.

"놔! 아가씨의 손을 놓으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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