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가르드 - [1] 수정본 >
붉은 노을이 깔린 황혼, 모든 사제들은 신탁을 받았다.
주신이 바뀌었노라고. 발두르가 물러나고 다시금 오딘이 아스가르드의 왕좌에 앉았노라고 선언하는 신탁을. 또한 전쟁신마저 바뀌었으니, 이제 공정한 티르가 아닌 광기와 분노의 오딘이 다시금 전쟁을 담당했다.
그 소식에 보어조아는 비프로스트의 군주로서 할 일을 해야 했다. 오딘의 재집권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낡은 신학서에 조심스러운 문체로 적혀있기를, 오딘을 향한 제사는 인신공양으로 이루어지곤 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야 어떻건 보어조아는 그 내용을 따르기로 했다.
보어조아는 그날 바로 오딘을 위한 제단을 꾸렸다. 그러니까 단상 위에 교수대를 올려놓은 것이다.
교수대 앞에 꿇어앉힌 산제물은 전 비프로스트 백작, 비카파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보어조아는 각지에 흩어진 비카파의 재산을 야금야금 빼앗아왔다. 비카파를 컴컴한 지하감옥에 가둬둔 채, 풀어 줄 테니 몸값을 내놓으라느니, 이후로도 백작 신분을 인정해줄 테니 그 대가로 돈을 내놓으라느니 하면서.
그리 회유와 협박을 거듭해온 끝에 비카파의 돈을 거의 모두 흡수했다. 물론 풀어주지 않았고, 사실 백작 신분도 박탈할 예정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관두기로 했다. 산제물의 신분이 고귀할수록 공물로서 더욱 가치 있게 될 테니까.
제사, 그러니까 사실상의 처형식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제단 앞에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구경꾼 중에는 부랑자 출신이 특히 많았다. 비카파가 지금껏 도시 안에 들여보내 주지 않은 탓에 마누라를 팔아먹고 자식을 잡아먹어야 했던 자들. 산제물에 상처 입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보어조아의 으름장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그들은 돌팔매를 즐기느라 손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날아오지 않더라도, 저들의 눈길 앞에서 비카파는 주눅이 들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들려온 까악 거리는 소리. 교수대 위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비카파는 즉시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생겨났던 희망이 사라지고 도로 절망이 자리잡았다.
비카파를 내려다보는 날짐승은 까마귀가 아니라 딱따구리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비카파는 중얼거렸다. 계속, 계속.
“모르가나······ 제발······”
한편 산제물 옆에 선 보어조아의 심경도 편하지는 않았다.
소문으로 듣기에 오딘은 거의 전지(全知)하다고 한다. 한쪽 눈을 대가로 미미르에게서 지혜의 샘물을 마신 덕분이라던가.
과연 소문대로 전지할 것인가? 보어조아는 걱정했다.
혹시 자신이 로키와 손잡은 것을 오딘은 알고 있을까? 제발 모르고 있기를.
당시 보어조아는 어쩔 수 없었다. 아이스피시가 풀려났을 당시, 보어조아는 벼랑 끝에 몰려있었던 데다 사후세계의 희망마저 사라진 때였기 때문이다.
웬 마법사가 예언했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 결국 모든 인간은 여신을 마주한다오. 헬 혹은 발키리를. 그러나 어느 여신과도 편히 마주할 수 없으리. 그대들은 죽기 전 신의 심판을 받으리라. 그 비참한 꼴이 내 눈에는 뻔히 보여.’
부하인 염동력자가 듣고서 전해준 것이었다.
보어조아는 그 말을 자기네는 발할라에 가지 못할 것이며, 가게 되더라도 좋은 대접 받지 못하리라는 말로 해석했다. 왜냐하면 저 예언은 발할라의 마법사 마우그리스가 내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보어조아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왔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헬의 아버지, 로키와 손잡을 수밖에 없었다······.
축 늘어진 비카파를 향해 구경꾼들이 고함질렀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목이 졸려 눈은 툭 튀어나오고, 혀는 쭉 내민 채, 똥오줌을 줄줄 흘리는 전 영주를 모두들 비웃어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빨리 목매달아 죽여!”
보어조아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손수 비카파의 목에 매듭을 걸었다. 그러고는 비카파에게 지시했다.
“이제 일어나시오. 비카파 백작.”
그러나 비카파는 덜덜 떨면서 일어나지 않았다.
보어조아는 자발적으로 처형을 받아들이는 게 존엄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라 속삭였지만, 비카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르가나,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보어조아는 염동력을 발휘했다.
무형의 힘에 붙잡혀, 제 몸이 둥실 떠오르자 비카파는 비명 질렀다.
“모르가나!”
보어조아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어미 이름인가?’
그러면서도 힘을 집중했다. 비카파의 몸은 이제 교수대 끝까지 떠올랐다. 보어조아가 염동력을 풀어내는 순간, 그 목뼈가 부러질 터였다······.
염동력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구경꾼들이 내지르는 죽여, 죽여 하는 함성에 환호성처럼 희열이 담겼다.
보어조아가 입을 열었다.
“모두 정숙, 경건한 시간이오. 지존자 오딘이시여, 이 미천한 것을 보소서. 이 미천한 것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바치는 제물을 받아주소서······”
그리 중얼거린 순간, 하늘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굉음.
거인의 화살을 떠올린 병사들은 얼마 전에 있었던 전투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겁에 질린 병사들은 작게 웅크려 몸을 떨었다.
굉음 이후 흙먼지가 흩날렸다. 이후 어떻게든 정신을 추슬러 몸을 일으킨 병사들은 눈을 크게 떴다.
교수대 옆, 보어조아가 죽어있었다. 붉은 창에 입에서 항문까지 꿰뚫린 채.
그때 제사를 거부한 탓에 감옥에 갇혀있던 주교는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주교의 귀에 웬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궁니르의 맹세를 깬 자는 벌을 받으리라. 거듭 깬 자는 내가 손수 죽이리라. 이 궁니르로 직접. 그 사실을 널리 알려라.’
한편 보어조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비카파의 몸을 띄우고 있던 염동력은 사라졌다.
비카파의 몸이 하강했고, 줄에 걸려있던 목뼈가 부러졌다.
그 상태로도 비카파는 몸을 부들거렸다. 곧 질식할 터였지만, 아직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들 비카파의 시체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익히 예상했던 비카파의 죽음보다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보어조아의 죽음이 더욱 파격적이었으므로.
그 틈을 노리고 딱따구리가 날아들었다.
딱따구리는 비카파의 머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두개골을 마구 쪼았다.
순식간에 구멍이 뚫린 비카파의 두개골 안에는 아직 신선한 뇌가 담겨있었다.
뇌에 포함된 송과체를 딱따구리가 집어삼켰다. 정확히는 송과체 안에 담긴 비카파의 영혼을.
수확물을 챙긴 딱따구리가 날아올랐다. 그 작은 몸이 하늘 위로 높이 치솟았을 때, 딱따구리는 새가 아닌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모르가나 천사는 맹금류의 날개를 활짝 펴고 활공을 시작했다. 두 남자의 영혼을 챙긴 채, 자신의 고향으로.
아발론 섬으로.
라그나뢰크가 다가오고 있었다. 늑대와 창검이 미드가르드 대륙을 휩쓸 것이므로, 바다 너머 섬에 피신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위기가 지나간다면, 모르가나는 두 영혼을 발할라에 가져갈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영혼은 부활할 터였다.
*******
온 아스가르드에 축가가 울려 퍼졌다.
기사 롤랑이 돌아왔다. 자신의 주 오딘을 데리고서. 모든 발할라의 전사들이 그 위대한 귀환을 반겼다.
모두들 롤랑을 둘러싼 채 찬사의 말을 마구 던졌다. 심지어 신들마저 그 무리에 동참했는데, 그 모두의 칭송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업적이었다. 수백 년 동안 실종된 신들의 아버지를 구출해 내다니?
“정말로 해낼 줄이야! 내 보내놓고서도 기대하지 않은 일인데!”
한 명의 신이 와서 롤랑을 끌어안으려 했다.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남신.
프레이 신이 양 팔을 벌린 순간, 롤랑은 칼을 뽑았다. 그리고 프레이를 향해 겨누었다.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뭔가?”
뒤랑달을 겨눈 롤랑의 손이 떨렸다. 롤랑은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프레이, 라그나뢰크의 날 네가 최후의 희망이라고? 너 같은 놈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계속해서 요동치는 롤랑의 어깨에 다른 손이 얹혔다. 롤랑은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손길의 주인을 보고서 그만두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게, 롤랑.”
카를이 그리 말하고서야 롤랑은 겨우 칼을 내렸다. 그러나 프레이를 노려보는 것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 눈길에 질린 프레이는 헛기침하더니, 발할라 궁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이해 못할 불상사가 있었지만 어쨌건 경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들 축하하기를 그만두지 않고 칭송과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 모든 찬사에도 불구하고, 롤랑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보다 못한 카를이 물었다.
“왜 즐겁지 않은 기색인가, 롤랑? 토르마저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거늘. 위대한 모험을 노래해야 할 지금, 웃는 얼굴이어야 할 것 아닌가.”
롤랑이 대답했다.
“그 모험 도중 동료들을 죄 잃었어.”
“눈치를 보아하니 거기 프레이가 얽혔나 보군. 어떤 동료들이었나?”
“나와 함께 싸워준 동료들. 자네들 못지않게 명예롭고 용맹했는데, 그저 허망하게 사라져버렸어.”
“육은 덧없으나 영은 불멸이지. 명예롭게 죽은 자들이라면 발할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텐데?”
“아니, 다시 만날 수 없네.”
롤랑이 그리 말한 순간이었다.
“한 명은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지금 말이에요, 롤랑 경.”
전사들 사이에서 들려온 늙은 목소리.
롤랑의 눈이 번뜩 뜨였다. 모두들 주기적으로 황금사과를 섭취하여 젊음을 유지하는 이곳 아스가르드에서, 늙은이란 보기 드문 존재였다······.
롤랑이 문득 보니, 그곳에 늙은 기사가 어색하게 서있었다.
롤랑은 바로 달려가 알론소를 껴안았다.
노래로 남길 재회가 아닐 수 없었다. 발할라의 전사들이 흐뭇하게 지켜보며 롤랑과 알론소를 연호하던 와중이었다.
“이제는 나 역시 칭송을 바쳐야겠지.”
또 다른 노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그 노인에게 발할라의 전사들은 검을 들어 예를 표했다. 이 노인 또한 존중받을 만한 노인이었다.
늙은 오딘이 말했다.
“롤랑, 내 대전사여. 그대는 나 오딘조차 감히 다 갚지 못할 은혜를 베풀었지. 한없이 큰 공헌에 대한 대가를 약간이나마 치르리라. 내 약속했듯 소원을 들어주리라. 내 방금 간악한 놈 하나를 벌한 마당이라 기분이 좋으니, 어서 말하라. 롤랑.”
그러나 롤랑은 마땅히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이제 와서 뭘 더 바랄 것인가? 애초에 빌고자 했던 소원은 그 수혜를 받아야할 자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마당임에야.
바라는 것이 없노라 대답하려던 롤랑은 이내 생각에 잠겼다. 모두의 앞에서 오딘이 보상하려는 차에, 롤랑이 무욕을 보이는 것은 오딘으로서는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다. 무엇이라도 대답해야 했다.
롤랑의 입이 열렸다.
“저는······”
그 소원은 오딘이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들어주기 너무 쉬운 소원이라 문제로군. 정말 그 정도로 되겠느냐?”
“예, 오딘이시여.”
오딘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금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오딘은 좌중의 전사들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자기 궁으로 걸어가던 오딘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아까 지상에 던졌다가 이제야 돌아온 궁니르가 그 손에 잡혔다. 전쟁신의 궁니르는 던졌다가 스스로 되돌아오는 창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흘러 발할라 궁전에서 연회가 열렸다. 전사들이 돼지고기와 벌꿀술을 먹어치우는 가운데, 롤랑의 주변을 차지한 자들은 생전의 동료들이었다. 카를 대제와 그 성기사들.
롤랑은 자기 옆에 앉은 카를을 흘긋 보았다.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의 친구를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고이기 시작한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고개를 들어올렸다.
생각해 보면 한심한 일이었다. 발할라의 전사가 전우 열 명 남짓 죽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다니.
이 나약함은 어쩌면 현성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 생각한 롤랑은 알론소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알론소 옆에 앉은, 조용히 술을 들이키던 모지가 눈에 들어왔기에.
또 다른 모지의 최후가 떠올랐다. 롤랑에게 얻어맞아 바닥에 널브러져 사라져가던 마법사.
고여 있던 눈물은 기어이 빠져나왔다. 도저히 체면이나 연회의 분위기를 신경 쓸 수 없었다.
*******
연회가 파할 즈음, 롤랑은 모지에게 부탁했다. 연회가 끝난 후 자신과 만나달라고.
심상찮은 일이었다. 모지와 롤랑은 제법 친했지만, 가장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더 절친한 기사들을 제치고 자신과 굳이?
모지로서는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어 만남을 수락하면서도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따로 방에서 독대하게 된 롤랑이 처음 꺼낸 말에 다시금 당혹했다.
“미안해, 모지. 너무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모지의 당혹감이 더욱 커졌다. 롤랑은 끊임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읊조리며 무릎 꿇고 흐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모지는 주문을 써서 진정시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오만한 기사 롤랑이 이토록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사실 아까부터 이상했음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진정하게, 롤랑. 자네의 신께서 돌아오셨네. 그것도 자네의 손으로 이루어낸 일이었지. 기뻐서 울어도 모자랄 마당에 대체 왜? 오딘의 귀환이 기쁘지 않다 이건가?”
오딘 광신도에게 특효약이리라 믿고 그리 말했지만, 약효가 전혀 없었다.
한참 후에 롤랑이 말했다.
“그래, 기쁘지 않아.”
순간 모지는 기겁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롤랑과 자기 둘뿐임을 보고는 윽박질렀다.
“미쳤나? 아니, 자네 정말 롤랑 맞나? 오딘을 구해냈는데 그게 즐거운 일이 아니라고?”
“랑슬로가 카를의 목을 베었는데, 내 추측하기에 그건 오딘께서 그러도록 명하신 거였네. 그리하여 카를이 배신당해 죽었지. 그리고 또 하나의 동료는 내 손으로 죽일 뻔했는데, 이 역시 오딘께서 명하신 바였지. 난 거의 그 명령을 따를 뻔했어······.
그리고 자네, 아니, 자네가 아닌 다른 모지의 최후는 특히 끔찍했지. 기껏 목숨 걸고 뭔가 했더니 동료라 믿던 얼간이 기사가 후려패지 뭔가? 그냥 분통이 터진다고 말이야. 결국 모지는 그리 나가떨어져서는, 그대로 사라졌어. 공허 속으로. 난 그 영혼조차 건지지 못했어.”
“지금 무슨 소리를······ 우리네 그림자들 얘긴가 보군. 그것들을 독자적 인격으로 여기고, 그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가?”
롤랑은 힘겹게 말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네.”
“정신 차리게! 우리는 그 그림자들에 각자의 영혼을 잘라 넣어 인격을 부여했어. 만약 모지의 그림자가 죽었다면 그건 내 죽음이고, 보다시피 지금 나는 멀쩡히 살아있네.”
롤랑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그림자를 만들 때, 자네들 영혼뿐만 아닌 다른 영혼들도 섞어 넣었던 것을 기억해. 영혼의 크기를 부풀려야 했으니까. 사실 다른 영혼들을 더 많이 섞어 넣었지. 그런데도 같은 영혼인가? 정말 그 모지가 자네 본인이었으며 그 죽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멀쩡하게 존재하노라 주장할 수 있나?”
모지는 그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림자 생성에 윤리적 문제가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지적이 저 광전사에게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모지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치면 자네가 미안하다며 내게 사죄한 건 웃기는 일인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전우들이 죽은 슬픔이 주신을 구해낸 기쁨을 능가한다 이거로군.”
“전우들만 죽은 게 아니야. 젊은이들, 끔찍하게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나갔네. 우리 생전과는 시대가 달라져서, 이제 지상에는 인간이 많아. 아주 많아서 수만 명이나 죽었지. 자기넬 해친 적도 없고 해칠 계획도 없는 괴물이며 거인들과 싸우다가 죽었다네.”
“자기들 의지로 싸우다 죽은 것 아닌가?”
“아니, 싫어도 어쩔 수 없었을걸. 그들이 싸우지 않고 어찌 배겼겠나? 위대한 기사 롤랑 경이 선전깃발을 흔들어댔는데······. 다음은 뭐였던가? 서리거인들과의 싸움, 오딘을 구하기 위한 성전! 카를마저 말렸는데 나 혼자 가만히 있을 수 없답시고 부득불 세계수를 계속 오른 것이었지. 결국 죄다 죽었네. 카를도, 그 동료들과 수많은 젊은이들도!”
그리 외치더니 롤랑은 또 한바탕 울기 시작했다.
그 처량한 모습을 보며 모지는 다시 한 번 이질감을 느꼈다. 롤랑은 병사들의 죽음에 슬퍼할지언정 죄악감을 느낄 인물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전쟁신의 대전사 아닌가. 전쟁하다가 사람이 많이 죽었으면 기뻐할 인물이었다. 오딘이 보기에 전사자란 전쟁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공물이므로.
한참 후에야 롤랑의 울음이 멎었다. 모지는 조용히, 달래듯 말했다.
“위대한 성과를 거두려면 불가피한 희생이었지. 어차피 다 끝난 일 아닌가.”
“다 끝났다니? 이제부터 시작인 것을! 우리가 들쑤셔서 서리거인들이 노했네. 라그나뢰크의 군세가 마침내 다 모였단 말이야. 이제 신들마저 두려워하던 그놈의 라그나뢰크가 시작될 걸세. 바로 나 때문에! 롤랑 경의 심장이 뛰는 모험 때문에!”
“그래서······ 모험은 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오딘 구출은 의미가 없고, 그냥 거기 매달려 있게 내버려둬야 했다? 자네가 하고픈 말이 그건가, 롤랑?”
비로소 롤랑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어.
“사실, 기쁘긴 기쁘지. 그래, 내 손으로 내 주를 구해냈어. 이제 오딘께서 돌아오셨음에 만족하네. 그런데 내가 기뻐해도 되나? 그럴 자격이 있나? 저질러온 모든 죄악과 앞으로 닥쳐올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돼?”
그리고 모지가 말했다.
“돼. 오히려 기뻐할 의무가 있지.”
“어째서?”
“그 모든 희생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누군가는 득을 보아야할 것 아닌가. 적어도 오딘과 자네는 기뻐해야 해. 자네가 그들의 전쟁을 부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세. 그 모든 전쟁이 성스러웠고, 명예로웠노라 주장하게. 그래야 그들의 전쟁은 성전이 되고 그들의 전사는 순교가 될 테니.”
롤랑이 입 다문 가운데 모지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또 뭐랬나. 자네가 라그나뢰크를 일으켰다고? 그거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헛소리로군. 라그나뢰크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네. 자네가 모험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수르트가 자기 임무를 망각했겠나? 서리거인이 가세하지 않는다고 해서 로키가 풀죽은 채 멍하니 있었을 것 같아? 아니야! 만약 자네가 라그나뢰크에 뭔가 했다면, 그저 앞당긴 것에 불과해.”
“앞당긴 것만으로도 끔찍한 트롤링 아닌가.”
모지는 트롤링이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강 문맥상으로 해석해 넘기고는 말했다.
“그 사실에마저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만큼 자네가 활약하면 될 일이지. 라그나뢰크가 오나? 그럼 질질 짜지 말고, 맞서 싸우게. 그리하여 막아내.”
“라그나뢰크를 막으라?”
“그래. 자네 곁에서 싸우다 죽었다는 모든 이들은 자네의 모험에 기여한 게지? 그 모든 희생 덕에 자네가 귀환했고 말일세.”
“그래.”
“그렇담 자네가 라그나뢰크를 막아낸다면, 자네 곁에서 죽었던 이들이 곧 세상의 구원에 기여한 셈이 돼. 그러니 라그나뢰크를 막게. 그리하여 모두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게.”
롤랑은 잠시 입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라그나뢰크를 막으라니?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한국인 현성은 그저 황금사과를 구하고 오딘을 구하는 데만 집중했다.
라그나뢰크를 대비해 발할라에서 오랜 세월 수련해온 발할라의 전사, 롤랑이라고 해서 별 다를 바는 없었다. 라그나뢰크의 날, 롤랑은 그저 오딘을 지키는 임무에만 열중할 계획이었다. 그 임무가 너무 거룩한 나머지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한 적 없는 일인 만큼 어찌 그리해야 할지, 가능할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
롤랑은 그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노력해보겠네.”
말을 섞다 보니 어느새 눈물은 그쳤다. 뒤늦게 수치심이 찾아왔다. 롤랑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추태를 보였군. 다시금 미안하네. 모지.”
“아니, 두고두고 놀려먹을 거리가 생겨나서 기쁘기 한량없군. 또한 오랜만에 만난 동료가 더욱 괜찮은 말상대가 되었다는 사실도.”
“변해버린 내가 꼴사납지 않나? 정신이 오염된 것 같지 않아?”
모지는 바로 부정했다.
“아니, 전혀. 난 지금 자네가 맘에 들어.”
“이 꼴불견이 왜?”
“발할라에서 매일같이 죽어라 무기 휘두르는 생활만 반복하다 보면, 다들 머리가 굳다 못해 그걸 그저 박치기용 무기라고만 여기게 되지. 내가 보기엔 그게 오히려 정신오염 아닌가 싶군. 그래서 자네가 고민하는 모습이 내게는 그저 신선하고 보기 좋네. 사실 전보다 지금이 더 맘에 드는군. 내 보기에 지금 자네에게는 연민이 가득 찼어. 옛날 롤랑에게는 없었던 것이지.”
“그건······”
“아마도 내 그림자 또한 자네를 아주 좋아했을 거 같은데?”
롤랑은 비로소 웃어보였다.
“그래, 그랬네.”
“그러니까 목숨까지 바쳤겠지. 그 죽음이 슬프다면, 그저 눈물만 흘림으로써 또 다른 나를 개죽음한 셈으로 만들지 말게나. 롤랑.”
********
이제 롤랑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생겼다.
라그나뢰크를 막아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이후로 롤랑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루 종일 칼을 휘둘러 수련하고, 라그나뢰크가 적힌 온갖 예언서를 탐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오딘에게 여신들과의 만남을 부탁했다.
운명의 여신들과의 만남을.
오딘은 자신을 구한 대전사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롤랑이 원한 만남은 이루어졌다.
노른, 운명의 여신들 앞에서 롤랑은 무릎 꿇고 입을 열었다.
“라그나뢰크는 태초부터 정해진 운명입니까?”
과거를 담당하는 울드가 대답했다.
“그렇다. 창조는 곧 파괴를 암시하는 법, 태초의 불꽃 수르트는 세상이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다. 언젠가 생겨날 세상을 모조리 불태우기 위해서.”
“그래서 지금 라그나뢰크가 닥쳐오고 있습니까?”
현재를 담당하는 베르단디가 대답했다.
“예. 헬에서, 요툰헤임에서, 무스펠헤임에서, 심지어 니벨헤임에서도 진군해옵니다. 헬은 지옥의 망자들을 이끌고 미드가르드를 침공합니다. 오랜 세월 신들에게 능멸당한 난쟁이들도 한 몫 하고자 전사들을 내보냅니다. 무스펠헤임과 요툰헤임의 거인들의 진군하는 가운데 로키의 자식들이 앞장섭니다. 토르의 눈을 피해 수천 년 동안 심해에 숨어있던 요르문간드가 비로소 물 밖에 나와 세계수를 기어오릅니다.”
그리 말하기 무섭게 지진이라도 난 듯 성소가 흔들렸다. 롤랑은 그 진동이 바로 요르문간드가 세계수를 오르는 여파임을 알 수 있었다.
롤랑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 소식을 다른 신들도 알고 있습니까? 당신들이 이미 말해주었습니까?”
울드가 대답했다.
“그들이 묻지 않았기에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베르단디가 말을 이었다.
“신들은 라그나뢰크의 예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새로울 것도 없죠.”
롤랑은 마지막 운명의 여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른 여신들이 열심히 운명의 실을 자아내는 가운데, 홀로 묵묵히 그것을 풀어헤치는 작업에 열중 하는 여신.
그 여신에게 롤랑이 물었다.
“스쿨드여, 그래서 그 침략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어찌 됩니까?”
미래를 담당하는 스쿨드가 대답했다.
“운명대로 되겠지요.”
“예언대로 말입니까? 그 운명은 바꿀 수 있습니까?”
“바꿀 수 없기에 운명이겠지요.”
그 대답을 끝으로 롤랑은 성소를 나왔다. 그러고는 모두에게 알리고자 했다. 적들이 지금 진군해오고 있노라고. 바다뱀 요르문간드가 다가오고 있노라고.
그러나 운명의 여신이 말한 대로, 과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아스가르드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스가르드가 생겨난 이후 처음 있는 지진이었으므로, 모두들 그것이 예사로운 징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헤임달 신이 느꼈다. 그리고 보았으며, 본 것을 모두에게 뿔피리를 불어 알렸다.
종말의 피리 걀라르호른이 크고 길게 울렸다. 그리하여 헤임달은 이 천상과 지상 모두에 라그나뢰크를 선언했다.
그러자 그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인 듯, 그저 올 것이 왔다는 듯 신들과 전사들은 자기 할 일에나 몰두했다.
토르는 염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먹어 배를 채웠고, 오딘은 궁니르를 들고서 이미 세워둔 방어 전략을 새삼스레 점검했다. 프레이는 레바테인 대신 쓰고 있는 룬검을 손수 갈기 시작했다.
지금에야 비로소 하는 일들이 아니었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연병장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발할라의 전사들은 늘 그랬듯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며 수련에 힘썼다. 라그나뢰크의 날,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해져있길 바라며.
돌아온 롤랑도 전사들의 무리에 동참했다. 그리고 동료에게 있는 힘껏 칼을 휘두르면서도 생각에 열중했다.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대체 어떻게 종말을 막을 수 있을까?
*******
네 곳 세상에서, 세계수를 통해 종말의 군대가 몰려왔다.
괴물과 거인들, 그리고 망자와 난쟁이들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아스가르드에 원한을 품은 적들.
그들의 선두에 로키가 있었다. 먼 옛날 신들에게 자기 자식들이 유배당하더니, 그 자신마저 오랜 세월 갇혀버린 신.
불의 신의 증오를 대변하듯 그 뒤에는 수르트가 전진해오고 있었다.
*******
며칠 내내 걀라르호른을 불던 헤임달은 적들이 지척까지 다가오고서야 뿔피리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집어던진 뿔피리 대신 칼을 들었다.
헤임달이 가장 앞에서 싸울 작정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신이라면, 도전을 결코 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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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로스트의 주민들과 전사들도 종말의 전조를 느꼈다. 방금 전까지 하늘에서 불길한 뿔피리 소리가 울리고 있었던 데다, 그 전에 바다에서 뱀 한 마리가 뛰쳐나왔던 것이다.
그냥 물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도저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뱀. 가까이서 본다면 뱀이라는 것을 알 수도 없을 크기였다.
산맥보다 거대한 바다뱀 요르문간드는 심해에 이어진 세계수의 뿌리를 타고 세계수를 기어올랐다. 그 장면을 비프로스트의 주민들은 멀리서, 요르문간드의 이동이 일으킨 지진 탓에 온몸이 떨리는 가운데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요르문간드가 이곳 비프로스트에 돋아난 뿌리를 통해 세계수에 오르기로 작정했으면 죄다 죽었을 테니까. 그러나 비프로스트의 주민들은 그 사실에 안도할 수 없었다.
이쪽 뿌리에서도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하고 위험한 무언가가.
역시나 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지금은 죽어버린 비프로스트 영주를 대신해서 제이슨이 모두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다녔다.
“뭔가 나온다! 모두 피해!”
그 외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발키리가 그 위에서 날아다니며 시선을 끄는 가운데, 헤임달이 뿔피리를 계속해서 불어 모두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그리하여 비프로스트의 모두를 뿌리 근처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제이슨은 비프로스트의 모두와 함께 성벽 바깥에서 기다렸다. 초조하게 그저 지켜보던 차, 세계수 뿌리를 중심으로 땅이 아래로 꺼졌다.
그리하여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나더니, 그 구덩이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왔다.
잠시 후, 그 무언가의 정체가 드러났다.
구덩이 속에서 한 척의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발톱을 얽어 만든 저승의 배, 나글파르. 그 배는 세계수 밑, 지하세계 헬헤임에서 왔다. 저승의 여왕 헬의 아비, 로키가 아스가르드를 침공할 동안 지상에서 방해하지 못하도록.
인간 원정대는 라그나뢰크에 동참할 예정이던 트롤들을 몰살하고, 서리거인들의 왕을 살해함으로써 그 위험성을 증명해보였다. 로키로서는 자기 딸의 병력을 할애하여 상대할 필요를 충분히 느꼈다······.
“모두 무기 들어!”
제이슨이 고함질렀고, 모두들 그 말을 따랐다.
도시 바깥에 모인 인간들을 향해서, 나글파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날아서. 마치 유령처럼 하늘하늘하게.
나글파르 위에 올라탄 혼령 전사들을 보며 제이슨은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놈들과 흡사한 놈이었다.
저놈들과의 전투에서 그 동료들은 너무 많이, 맥없이 죽었다.
그 동료들의 유품은 지금 제이슨의 손에 들려있었다.
불러낸 흑기사의 손에 란슬롯의 아론다이트를, 헤임달의 손에 아스톨포의 뿔피리를 들려주었다.
제이슨 본인은 롤랑에게서 받은 검을 차고는 성벽 위에 우뚝 섰다.
비프로스트의 성벽 위였다. 성벽 안에서 성벽을 향해 다가오는 적들을, 성벽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셈이었다.
과연 날아오는 군함을 상대로 성벽이 얼마나 효용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곳 비프로스트는 인류의 최전선. 당장 그 뒤에는 메디아가 있었다. 제이슨에게는 어쩐지 그리운 이름이었다.
제이슨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 성벽 바깥에 서있는 전사들에게 외쳤다.
“저 끔찍한 것들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저 끔찍한 것들은 온 세상으로 퍼진다! 모든 고향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이곳에서 막아!”
제이슨은 스스로 썩 괜찮게 부르짖었노라 느끼지 못했다. 사실, 실제로 별로였다. 지금 제이슨의 목소리에는 당황과 두려움이 섞였다. 게다가 제대로 된 웅변투도 아니었으며 그저 크기만 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호응이 있었다. 제이슨과 마찬가지로 당황했고, 두려운 자들의 호응이.
성벽 바깥에 선 수만 명의 병력이 부르짖었다.
“미드가르드 만세!”
“발할라의 전사, 제이슨 경 만세!”
제이슨에게 다가온 지휘관들이 말했다.
“경께서는 비프로스트의 영주를 대신해주시지요. 비카파의 용병들과 보어조아의 병사들을 통솔해주시면 되겠군요.”
이제 비프로스트의 용병들이, 일만 병사들이 제이슨의 휘하였다. 또한 제이슨은 각지에서 모여든 원정대의 맹주이기도 했다. 지휘관들이 이 발할라의 전사에게 자기네 군기를 주어 그 통수권을 인정해주었기에.
얼떨결에 막중한 짐을 지게 되었다. 그러나 겸손을 내보일 겨를 따위는 없었다.
이곳 성벽을 향해서, 망자의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전에 승천한 동료를 흉내 내어, 제이슨은 외쳤다.
“다들 겁먹었겠지만, 어차피 물러설 데도 없다! 이 도시뿐만 아니라 미드가르드 전체를 휩쓸 적들이니까! 고향으로 도망치면, 가족마저 죽을 뿐이다! 그나마 우리가 뭉쳐서, 함께여서 강할 때 맞서야 한다!”
이번에도 썩 훌륭하게 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끔찍한 적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정면을 노려보며, 한 남자가 맨 앞에서 외치고 있었다. 그 사실이면 모두의 맹주로서 충분했다.
인류 원정대의 맹주가 외쳤다.
“그러니 모두 도망칠 생각 말고 싸워라! 이 땅 미드가르드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싸워라!”
*******
< 아스가르드 - [1] 수정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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