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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트롤랑-26화 (26/164)

< 일 층 - [2] >

남겨진 사람들이 보기에 그 돌격은 그저 한 마리 빨간 무당벌레의 비행이었다. 늑대들의 존재감에 비하면 정말 그리 보였다.

‘저게 뭔 미친?’

안내인이 기겁하는 가운데 저 돌격에 동참하려는 얼간이가 나왔다.

늙은 기사 알론소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위대한 롤랑 경을 따르라!”

그리고 이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안내인은 기겁하며 늙은 기사를 붙잡았다. 허리를 너무 세게 잡은 나머지 둘은 넘어져 땅을 굴렀다.

“가만히 계십시오!”

“방해하지 마라!”

둘이 몸싸움을 시작했으나 도중에 멈춰야 했다. 갑자기 둘 앞에 푸른 불길이 치솟은 게 아닌가.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비명 지르지 않기 위해서. 눈앞에 웬 거대한 야수가 나타나 있었기에.

푸른 야수가 털 대신 불길을 휘날리며 울부짖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뒤가 터널이었기 때문에 포효는 모두의 귀를 찌르듯 메아리쳤다.

롤랑은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를 듣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소환물 하나 불러낸 모양이니 아마 혼자서 싸워야 하리라고.

광폭화에 의지할 수도 없다. 싸움이 끝난 후 미쳐 있다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끔찍하게 무서운 일이었다.

가속 주문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기에 늑대들의 모습도 급속히 확대되었다. 늑대들의 육중함을 더욱 자세히 실감할수록 롤랑의 두려움도 더욱 커졌다.

저 거대한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 그것도 맨 정신으로.

현실이라면 체장 65cm 도베르만이 쫓아와도 질겁하여 도망칠 터였다. 그런데 저 괴물늑대들은 가장 작은 놈도 체장 3m는 넘어 보인다.

4m쯤 되는 공룡 같은 괴물도 한 마리 보이지만 롤랑은 달아날 수 없다.

강하고 악명 높지만, 어쨌건 쓰러뜨릴 수 있을 괴물들이 무고한 자들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보다 더 좋은 영웅의 데뷔 무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우릴 영웅 본인이라 믿는 건 아니었다. 메디아 궁정에서 몇몇 귀족들은 은근슬쩍 우리를 피했어. 사기꾼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하듯이. 이곳에서도 그런 취급을 받을 수는 없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온 이상 권력이 필요하다. 오스론 따위 협잡꾼에게 휘둘리지 않을 만한 권력이. 그러니 영웅의 이름을 뒤집어 써 그것이 곧 권위가 되게 해야 한다.

스스로가 롤랑임을, 영웅임을 증명해야 한다.

늑대들이 일제히 머리를 돌려 이쪽에 시선을 향했다. 롤랑은 엄청난 거구였으나 늑대들은 롤랑과 눈높이가 같거나 더 높았다.

롤랑과 한 늑대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괴물이 웃었다. 안면근육 구조가 다르니 실제 웃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그리 보였다. 침을 뚝뚝 흘리며.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먹이를 반기는 것처럼.

공포를 걷어내고자 롤랑은 있는 힘껏 포효했다.

“오딘께 내 영혼으을!”

축복의 룬이 그 이마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가속에 축복. 광폭화 빼고는 풀 버프다. 이길 수 있다······.’

롤랑이 돌격하는 가운데 늑대들이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기 위한 포위였다.

마침내 늑대들과의 거리가 지척에 달한 순간 롤랑이 도약했다.

아주 높이 뛰어올라 표적을 위에서 덮쳤다. 롤랑은 늑대의 등에 올라탔다. 당황하여 몸을 흔드는 늑대의 목을 칼끝으로 내리찍었다.

늑대가 비명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 순간 피분수가 치솟아 롤랑의 머리를 붉게 적셨다.

다른 늑대가 서둘러 다가와 동료에게서 롤랑을 떼어내려 했다. 놈이 주둥이를 거세게 들이밀었다.

놈의 머리를 친들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머리 크기만큼 두개골도 두꺼울 테니. 그렇담 약점은 어디?

코? 그건 곰 약점 아닌가?

모른다. 일단 쳐야한다.

롤랑은 오른손으로 올라탄 늑대의 목을 검으로 쑤시며, 왼손으로는 덮쳐온 늑대의 코를 두들겼다. 연속으로 세게. 빠르게.

게임 캐릭터다운 괴력의 주먹질은 망치질에 비할 만했다. 그 코가 움푹 파이며 두들겨 맞은 늑대가 케겍 하고 나자빠졌다.

한편 목에 칼이 쑤셔진 늑대가 죽었다. 비틀거리더니 그 다리가 꺾였다. 쓰러지는 그 몸에 깔리지 않고자 롤랑은 얼른 늑대의 몸에서 내렸다.

지면에 발이 닫은 동시에 적들을 살피고는 깨달았다.

‘젠장.’

동료를 잃은 늑대들이 이쪽을 먹잇감에서 적으로 격상시켰음을.

두 늑대가 좌우로 달려들었다. 나머지 늑대들은 롤랑의 배후를 노리고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늑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롤랑은 덮쳐온 늑대의 주둥이를 피해 납작 엎드렸다. 놈이 거대한 앞발을 들어 짓밟으려 했기에 롤랑은 그 발바닥에 칼자국을 내주었다.

고통에 겨워하는 늑대의 목 아래에다 칼을 깊이 찔러 넣었다. 피를 뒤집어쓰고 칼을 빼내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당장에는 울부짖는 늑대가 불길했다. 놈부터 해치우고자 롤랑이 달려들었으나 두 늑대가 중간에 끼어 가로막았다.

롤랑은 한 놈의 코를 벤 뒤 얼른 뒤로 빠져야 했다.

늑대는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배후에서 덮쳐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빠르게 몸을 회전해 그 코에다 붉은 선을 그어준 뒤 냅다 달렸다. 아까 코를 두들겨 나자빠져 있던 놈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롤랑은 순식간에 놈에게 당도해 그 눈에 칼을 찔러 넣었다. 뇌 끝까지 닿도록 힘을 주자 녀석은 완전히 쓰러졌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양 옆에서 덮쳐온 공격을 피해내며 롤랑은 생각했다. 토 나올 만치 무섭지만 어쨌건 순조롭다고. 돌격한 보람이 있다고.

흘긋 통로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사람들은 이쪽에 경탄의 시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했다.

그러나 막상 보니 사람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어째서?

롤랑은 공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앞서 예상했듯, 울부짖는 늑대가 그저 목청을 자랑하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거대한 공동은 수십 개 터널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터널마다 몇 마리씩, 늑대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동료의 구원요청에 응하고자.

몇 마리인가? 알 수 없다. 설마 백 마리는 아니기를 빌 뿐이다.

‘살려줘.’

주변에 있던 늑대들이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도망치기 위해서? 그럴 리가 없었다.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 악적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포위하기 위함이리라.

이제 싸움이 끝난 이후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수십 마리 늑대들이 달려오는 가운데 롤랑은 애써 외쳤다.

“이 전쟁을 오딘께 바친다!”

그리고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

거대한 늑대들의 질주에 바닥이 진동하고 흙먼지가 폭풍처럼 휘날렸다.

안내인들은 이제 거의 발광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늑대 군단이 집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꽤나 굶어죽었으리라 생각했더니 저리도 많이 남았을 줄이야.

“얼른 도망치십시오! 이러다 다 죽어요!”

안내인의 고함에 따라 사람들은 허둥지둥 지나온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몇은 남았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여기에 내버려두고 떠나기 매우 곤란한 인사였다.

“예하! 이 자리를 벗어나셔야 합니다!”

안내인의 애원에 오스론은 코웃음 쳤다.

“도망치라고? 난 그러지 않겠다.”

“예하, 제발!”

“잠자코 꺼져라. 그리고 정 맘이 불안하다 싶으면 네 주인인 돈놀이꾼에게 가서 전해라. 네 천한 용병 부대라도 끌고 오든가 하라고. 널려있을 늑대들의 시체를 회수해야 할 테니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추기경을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도주를 선택했다. 달아나는 안내인과 귀족들을 바라보며 오스론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애썼다.

‘저 늑대들······ 너무 크고 많아.’

아무리 영웅인들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저 늑대들을 몇 명이서 어찌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소름끼치게 불안했지만 오스론은 끝내 달아나기를 거부하고 자리를 지켰다.

이 상황의 귀결을 지켜봐야 했다. 오스론이 생각하기에 달아나 몸뚱이 간수한들 롤랑이 죽으면 그걸로 끝장이었다. 오스론은 저 전설의 영웅을 불러내는 데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재산도, 운명도 전부.

남아있던 또 한 명은 늙은 기사 알론소였다.

아까 롤랑을 따라 돌격하려다 안내인에게 저지당했는데, 이제 와 붙잡을 안내인들은 다 도망치고 없는 마당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머뭇거리는 것을 보니 저 늑대 군단이 두렵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영웅들. 둘은 주문을 걸고, 소환물을 불러내고 있었다.

모지가 욕설을 지껄였다.

“정말, 이 무슨 미친.”

나무늑대가 저렇게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게임 메디아에서는 적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온들 열 마리가 고작이었는데.

필사적으로 주문을 웅얼웅얼 거리자니 저 멀리에서 롤랑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전쟁을 오딘께 바친다!”

‘광폭화······’

게임에서도 트랜스 상태에 빠지면 전투회피는 불가능했다. 이제 도망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좋든 싫든 끝장을 봐야한다.

주문을 다 외우자 모지의 몸이 사라져갔다. 일단은 그리 보였다. 투명화 주문이었으니까.

모지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소환은 다 끝났나?

아니었다. 당장 보이는 소환물은 푸른 야수와 흑기사, 그리고 서리거인이었다.

소환물은 총 네 체 불러낼 수 있다. 남은 것은 한 체.

“이곳 미드가르드에서 그대를 부른다. 간곡히 그대 부르는 소리 있노라, 응하라 천사. 부름에 응하라 천사······.”

제이슨이 연신 중얼거리는 가운데 허공에 빛이 뭉치고 있었다. 이윽고 빛이 거대한 날개의 실루엣을 이룬 순간 마지막 소환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루엣은 한 여자가 되었다. 룬 창을 든 발키리가 말했다.

“암까마귀가 왔다.”

제이슨은 대화를 즐길 여력이 없었다. 얼른 고함질렀다.

“빨리 전진! 돌격!”

서리거인이 무거운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소환물들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푸른 야수는 끼야아아악, 거리면서 먼저 저 멀리 뛰쳐나갔고 나머지는 한 데 뭉쳐 대열을 이룬 채 전진했다.

알론소는 발키리를 보더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겨우 더듬거리며 외쳤다.

“나도, 나도 끼겠소!”

“씹할, 그러든가 말든가······ 씹할 좇 같네 진짜.”

제이슨은 입술을 달싹여 칼 한 자루를 불러냈다. 그것을 움켜쥔 손바닥에 땀이 흘렀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는 동요하면, 무서우면 더욱 욕설을 많이 지껄였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

제이슨은 소환물들, 그리고 늙은 기사 사이에 둘러싸인 채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괴로이 걸으면서 초조하게 롤랑을 지켜보았다.

“내 펜리르의 졸개들을 죽여 내 주를 기쁘게 하리라아아!”

광전사는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늑대들을 베고 찔렀다. 가속 주문까지 걸린 마당인지라 그 속도는 비현실적일 정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덩이 주변에 있던 늑대들이 전부 피를 흘리며 죽거나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더 많은 늑대 군단이 메웠다.

< 일 층 - [2] > 끝

ⓒ 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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