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란의 트롤랑-22화 (22/164)

< 비프로스트 - [2] >

비프로스트 주변 일대는 온통 움막과 땅굴 천지였다. 보통 야영지하면 연상되는 천막촌은 거의 고급주택가로 보일 지경이었다.

“원래 이랬던가?”

롤랑이 물었다. 게임에서 원래 이 꼴이었느냐는 질문임을 알아듣고 모지가 대답했다.

“안 이랬어.”

“음.”

난민촌만도 못한 이 환경에 모두들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무리를 인솔하는 오스론은 꿋꿋하게도 계속 말을 몰았다.

땅굴에 빠지지 않고자 조심하며 성문에 다가갔다. 성문 앞을 막고 선 용병이 말했다.

“멈추십시오, 사령관. 입도 허가가 나오기까지 기다려주십시오.”

오스론은 구겨진 얼굴로 말을 멈춰세웠다.

잠시 후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려는 순간, 또 다시 그 말이 울려 퍼졌다.

“모두 멈춰라.”

성문 안쪽, 양방향으로 중무장한 용병 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한 가운데에서 웬 남자가 말했다.

“나는 비카파다. 이곳 비프로스트의 백작으로서 방문자들을 환영한다. 이 무리의 대표자인 귀하는?”

오스론이 쏘아붙였다.

“네 전 상관 얼굴도 못 알아보느냐, 은행가?”

“귀하는?”

“뭔 수작질이냐? 네 강도짓을 거론하기 싫어서 그래?”

“귀하는?”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반복하려는 듯했다. 시간낭비하기 싫었는지 결국 오스론이 말했다.

“오스론 메디아.”

“방문 예고가 된 이름이로군. 비프로스트는 귀하를 환영하오, 추기경. 물론 귀하의 용사들도. 그 용사들에게 전할 말이 있소.”

비카파는 언제 성 안에 들여보내주려나 안달복달하고 있는 원정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무나 도시에 들어올 수는 없다.”

원정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소리냐?

비카파는 계속 말했다.

“물론 세계수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나 세계수에 오를 순 없어. 비프로스트는 전사들의 도시다. 신들께서 바라는 자들이 바로 전사들이기에.”

“그게 뭔······”

웅성거림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비카파가 말했다.

“도시에 들어오고 싶나? 그리하여 세계수에 오르고 싶은가? 발할라에 가고 싶어? 그렇다면 스스로가 전사임을 증명하라.”

그리고 비카파의 옆에 서있던 용병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어찌 전사임을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하겠소. 간단해요. 나와 겨루어 이기면 돼. 물론 나 혼자 여러분 모두를 상대하는 건 아니고. 내가 지치면 달리 나설 용병들이 여기 대기하고 있소. 여기 용병들 아무나 붙잡아 겨뤄서 이기시오. 그러면 전사로 인정하고 들여보내 줄 거요.”

용병들은 적당히 거구였고 무기는 붕대로 끝을 감싼 봉이었다.

아예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쉬이 이길 수는 없어보였다.

롤랑은 지금껏 동행해온 원정대의 면면을 생각해보고 결론 내렸다.

‘적어도 이 오합지졸 군대의 절반 이상은 걸러지겠네. 무장집단을 순순히 도시에 넣어줄 리가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조치겠지만······ 걸러지는 당사자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텐데······’

당연히도 저주와 원성의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원정대는 일제히 성문을 뚫고 들어가기라도 하려는 양 각기 쥔 무기에 힘을 주기까지 했다.

그때 비카파가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수두룩한 용병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 쇠뇌를 들었다. 원정대는 움츠러들었다.

칼 경이 앞으로 나와 물었다.

“미치겠군. 저치들 못 이기면 저 밖에서 야영이나 하라 이거요?”

비카파가 흘긋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귀하는?”

“메디아 자작 굴 칼이오.”

“자작이시라. 당연히 입성을 허가하오. 또한 쉰 명의 수행원을 시내에 들일 권리를 인정하리다. 곁에 계신 분들은 기사로 보이는데 맞나? 기사라면 열 명의 수행원을 시에 들일 수 있소. 지금 들어가시겠소?”

적당한 귀족 대우였다. 칼 경은 주변을 흘긋 둘러보고는 대답했다.

“허락해주신다면야.”

“허가하오. 비프로스트는 귀하와 귀하가 이끄는 용사들을 환영하오이다.”

용병 부대가 비켜섰고 칼 경과 그 휘하 무리는 성문을 통과했다. 이어서 다른 귀족들이 차례차례 성문을 통과해 도시에 들어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롤랑은 모지와 제이슨을 향해 속삭였다.

“우리도 무사통과할 수 있겠지? 셋 모두 메디아 궁성에서 서훈 받았으니까, 귀족 예우 받을 수 있는 거지 아마.”

“그렇겠지.”

“근데 그래도 될까?”

모지가 물었다.

“뭔 소리야?”

“저기 남겨진 치들이 보기엔 귀족들만 특권으로 들어가는 거 재수 없을 거잖아. 롤랑 경마저 그래서야 인상이 어찌 되겠느냐 이거지.”

말을 받은 것은 제이슨이었다.

“저 식충이들한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있냐?”

“밉보여야 할 이유도 없어.”

제이슨이 표정을 구겼다.

“마, 새끼야. 마. 그게 말이야 똥이야?”

롤랑이 표정을 찌푸리는 차 모지가 말했다.

“이미지 관리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네. 우리 둘은 그냥 들어갈 테니 너만 남아서 겨루고 들어갈래?”

오래 토론할 틈은 없었다. 용병들이 정확히 이쪽을 지목해왔기 때문에.

“거기 나리들, 통과하시려면 얼른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성내에 메디아 귀빈 분들을 위한 안내인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리고 비카파가 말을 걸어왔다.

“귀하는?”

“모지. 메디아 백작.”

“백작이시라고?”

비카파가 손짓했다. 용병 옆에 있던 문장관이 모지의 가문 문장을 확인하고자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모르는 문장이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즉석해서 제작된 문장이었으므로.

비카파가 물었다.

“못 알아보겠나?”

“예, 일단은······”

비카파가 이쪽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귀하는 몇 명을 대동하셨소?”

모지는 조금 뜸을 들여 대답했다.

“홀몸이올시다.”

비카파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뜩이나 알아볼 수 없는 문장을 가지고 온 놈이 수행원까지 없다니? 백작이긴커녕 귀족이기는 한 것인가?

그러나 이내 별 상관없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하시오. 비프로스트는 귀하를 환영하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분은?”

“메디아 백작 제이슨.”

문장관은 이번에도 모르는 문장이노라 고했고 비카파는 혀를 찼다.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또 백작을 자처하다니.

이번에도 비카파는 뭐라 트집 잡지는 않은 채 말했다.

“통과, 비프로스트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마지막으로······ 붉은 기사께서는?”

롤랑은 말하려 했다. 메디아 후작, 롤랑이라고.

그러나 그 전에 오스론이 외쳤다.

“무릎 꿇어라, 찬탈자! 이 땅의 진정한 군주가 납시었다. 비프로스트 변경백, 롤랑 경을 배알하라!”

< 비프로스트 - [2] > 끝

ⓒ 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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