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136화
제18장 웨딩마치(6)
이시영이 지적한 그대로였다.
신혼부부가 알콩달콩 깨를 쏟는 소리는 방문을 뛰어넘어 복도에 장절하게 울려 퍼졌으며, 덕분에 평양의 대부한테 눈도장을 찍으러 올라온 하객들은 죄다 뻘쭘해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쭈뼛쭈뼛거리면서.
“이, 이리 뵙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대부님.”
“……그래.”
“부끄럽지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디 두 분이서 좋은 시간을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하고 헐레벌떡 접견실을 뛰쳐나갔다.
그들은 대부와 영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특히 평양 출신의 용병단장들이 제일 난감해했다.
그들은 저 눈앞에 앉아 있는 여자애가 얼마나 잔혹한지 잘 알았다.
그런 소녀가 신부랍시고 온갖 애정을 다 떨어댔으니 제3자 입장에선 고역일 수밖에.
“그, 금슬이 참으로 좋으십니다. 하하하.”
“……고맙네.”
“하하, 하하하. ……저는 얼른 물러나겠습니다.”
용병단장들은 이시백이 미처 답례를 표시하기도 전에 부리나케 달아났다.
분명히 아직 하객이 스무 명은 남았을 텐데 순식간에 대기 줄이 줄어들었다.
이 몹시 뻘쭘한 분위기 속에서 윤시아는 다만 묵묵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귀가 새빨갛게 물든 걸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부끄러운 것이리라.
윤시아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중얼거렸다.
“숙청해 버릴 거예요. 전부 숙청하겠어요. 아까 대화를 엿들은 용병단장들은 모조리 입술을 꿰매고 성대를 절개해서 절대 어디 가도 헛소리를 못하도록 철저하게……!”
“저 사람들이 엿들은 게 아니라 우리가 제멋대로 떠든 거 아니냐. 그런 이유로 숙청을 허가해 줄 수는 없다.”
“으으으. 보나마나 내일 평양일보에 기사가 실릴 거예요. 저 이제 창피해서 못 살아요…….”
그건 아니겠지.
이시백이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둘의 애정 행각을 뉴스로 다룰 틈이 없을 거다.’
지금쯤 반도의 방송사들에는 핵폭탄이 떨어졌을 것이다.
레겐보겐 유람선 사건이 군부의 자작극이었고, 정예 군부대가 국민들 몰래 S급 몬스터를 사냥하러 시도했다가 처절히 실패했으며, 서울 보스였던 김진하를 암살했다는 사실이 한꺼번에 언론사에 뿌려졌다.
백산 용병단-총리-광역수사대가 3달 동안이나 공들여서 준비해 온 폭탄이었다.
‘적어도 석 달은 요란스럽게 난리를 피울 터.’
그런 빅뉴스들에 비해서 이시백과 윤시아가 사실은 대책 없는 잉꼬부부이더라 하는 정보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지금 잠깐 수치심을 참아내면 그만이었다. 이것 또한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갈지어니…….
똑똑.
누군가가 접견실 방문을 두들기고 들어왔다. 이시영이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 이시백을 대신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의 보안을 책임지고 있었다.
본래 순우경이나 원서가 맡아야 할 역할이었지만, 전국에서 쟁쟁한 인물들이 방문했다는 사실이 고려되었다.
아무래도 순우경이나 원서로는 여차한 경우에 거물들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이시백과 함께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는 이시영이야말로 이런 행사의 총책임자로 제격이었다.
“평양댁, 이제 정식으로 접견을 요청한 손님은 없어.”
“다행이로군.”
이시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세 시간 가깝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은 솔직히 힘들었다.
얼른 일정을 끝내고 윤시아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시백이 이시영한테 말했다.
“너도 수고했다. 이제 부하들한테 맡기고 숙소로 돌아가라.”
“아직이야, 평양댁. 정식으로 접견을 요청한 손님이 없을 뿐이야.”
“음?”
이시백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일으키다 말았다.
“하면 비공식적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손님이 있다는 말인가.”
“응, 다짜고짜 나한테 다가와서 평양댁을 만날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어.”
“거물인가.”
“어중이떠중이야. 서울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남자인데 용병단을 창설한 지 아직 반년도 안 됐어. 쫓아낼까?”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평양의 권좌에 오른 뒤로 저런 어중이떠중이가 부쩍 늘어났다.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어떻게든 이시백과 연줄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평양 출신이라면 또 몰랐지만, 서울의 중소 용병단까지 신경을 써줄 만큼 이시백은 한가하지 않았다.
이시백은 접견실에서 떠날 채비를 하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물었다.
“용병단 이름이 뭐라 하나.”
중소규모의 용병단이 여기까지 고생하면서 찾아왔다.
직접 만나줄 의리야 없었지만 적어도 이름 정도는 머리에 담아두는 것이 예의였다.
그러나 이시영이 용병단의 이름을 말해주었을 때, 이시백은 온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나폴리 용병단.”
“…….”
“서울 강남이 본거지래.”
이시백이 동작을 멈추었다.
접견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결혼식에 지쳐 피곤함을 흘려보내던 신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소와 똑같이, 아니, 평소보다 더욱더 차가운 표정으로 상대방을 노려보는 평양의 대부가 드러났다.
이시백은 온도가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폴리 용병단이라.”
“응.”
“단장의 이름은?”
이시백의 분위기가 일변했음을 느꼈겠지.
질문을 받은 이시영도,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윤시아도 표정이 달라졌다.
일순간에 세 사람은 ‘업무’에 들어간 것처럼 기세가 날카롭게 변했다.
“동태상.”
이시영이 또박또박 발음을 끊어 대답했다.
“동태상이라고 그랬어.”
“…….”
이시백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지난 3달 동안, 이시백은 총리에게 요청하여 동태상이라는 이름의 군인을 추적해 달라 요청했다.
하지만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찾으러들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챈 듯이 동태상은 실종되었다.
광역수사대까지 동원했는데도 행방이 묘연했다.
아마도 군부에서 동태상을 숨겨주었겠지.
동태상은 쿠데타 옹호파에 속했다.
마찬가지로 쿠데타를 옹호하는 장성들이 동태상을 지켜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이시백은 동태상에 대한 일을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오늘 군장성들을 전부 숙청해 버린 다음에 추적을 다시 요청하려 했건만. 과연. 당신이 먼저 찾아왔는가, 동태상.’
이시백이 품속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이시영과 윤시아가 조용히 쳐다보는 가운데, 이시백은 묵묵히 자신의 간부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순우경, 즉각 경비들한테 비상태세를 알리도록. 십중팔구 담벼락을 넘어 침입을 시도하려는 테러리스트가 몇 명 있을 것이다. 물 샐 틈도 없이 보안을 강화하여 사전에 테러리스트를 잡아들여라. 발포도 허락한다.”
발포를 허락한다.
결혼 날에 어울리지 않는 명령에 윤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시백은 개의치 않고 곧바로 다음 간부한테 통화했다.
“유현도, 연회실에 모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한 번 몸수색에 나서라. 군부에 협력해서 테러를 일으키려는 손님이 한 명쯤 있을 거다. 범인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먼저 자연스럽게 손님들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도록.”
이런 사태를 예견한 것처럼 이시백은 자연스럽게 명령을 하달했다.
마지막으로 이시백은 원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삐리리 하고 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원서가 통화를 받았다.
그녀는 윤시아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일부러 궁전의 외곽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예, 단장님. 말씀하세요.
“지금 접견실로 와라.”
이시백이 말했다.
“원서, 네가 봐야 할 사람이 있다.”
―제가 만나야 할 사람…… 인가요?
원서가 아리송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날에 누군가가 원서를 찾아올 리 없었다.
결혼식의 주역은 이시백과 윤시아였으며, 원서는 철저히 방관자로 머물렀다.
그렇게 의문을 표시하는 원서한테 이시백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내가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한 명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너한테 판단을 맡기고 싶다. 이 남자를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만약 죽인다면 어떻게 죽일 것인지, 원서. 네가 판단해다오.”
―…….
단장의 어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했을까.
원서는 그 인간이 누구인지, 왜 이시백이 아니라 자신이 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의문점을 캐물어 보지 않고 즉각 명령에 복종했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4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시백은 통화를 끊고 조용히 기다렸다.
윤시아는 자신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의 허벅지에는 권총이 부착되어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도, 지금처럼 약간 간소한 드레스를 입었을 때도, 윤시아는 결코 몸에서 무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이시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시영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는 것처럼 가볍게 권총을 꺼내었다.
철컥 하고 윤시아와 이시영의 권총이 거의 동시에 장전되었다.
두 여자의 눈동자에서는 이미 살기가 서늘하게 감돌았다.
“평양댁, 내가 당장 죽일 수도 있어.”
“기다려라.”
이시백이 의자에 허리를 기대었다.
“그 인간은 네가 죽여도 되는 사냥감이 아니다. 내가 죽이는 것도 약간이지만 주제에 어긋난다. 오직 원서만이…… 아니면 유현도만이 정당하게 응징을 내릴 수 있다.”
“어떤 사람이길래요, 선배?”
윤시아가 말했다.
아까 전까지 사생활이 들통 나서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윤시아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누군지 몰라도 그 사람은 선배와 제 결혼식을 방해했어요. 오늘은 별로 피를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한테도 응징에 참여할 자격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레겐보겐을 침몰시킨 장본인이다.”
“…….”
윤시아의 눈매가 한층 더 매서워졌다.
이시백은 입에 연초를 물었다.
“동태상. 이 나라의 군부가 헌터들한테 간섭하기 위해 몰래 키워내고 준비한 인물이야. 원래 중령이었지만 지금은 퇴역해서 나폴리 용병단을 창설했지. 군부의 계획은 동태상을 중심으로 서울을 석권한 다음, 반도의 북방과 중부를 모두 통제하는 것이었다.”
“……평양댁, 보스 김진하를 사살한 사람은?”
“아마도 동태상이겠지. 거의 틀림없다.”
이시백이 단언했다.
군부는 직접 헌터 업계에 개입하는 것을 매우 꺼렸다.
손을 더럽히기 싫다. 그런 감정이 담겼을 거라고 이시백은 추측했다.
따라서 본래 군인이었지만 지금은 퇴역한 동태상을 편리한 장기말로 부리는 것이었다.
“동태상은 단순히 군부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 남자는 스스로 기뻐하면서 군부의 명령에 따르고, 군부를 이용해서 자신의 권력욕을 만족시키는 인간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 그 남자야말로 우리 헌터들의 ‘적’이다.”
“…….”
이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언젠가 이시백이 얘기했던 ‘적’이 누구였는지 이제 알았다.
접견실 너머의 복도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는 그 하객이 바로 이시백의 적수였다.
이시영은 보스 김진하의 원한을 자기 손으로 갚아주는 것을 깔끔히 포기하였다.
잠시 뒤, 원서가 접견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서둘러 뛰어왔는지 숨을 약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시백은 그녀를 한 차례 주의 깊게 바라본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다. 우리의 손님을 맞이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