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34화 (134/142)

건달의 제국 134화

제18장 웨딩마치(4)

이후, 협력은 세심하게 이루어졌다.

총리는 군사 쿠데타 옹호론자들을 선별했다.

자고로 숙청이란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법.

거의 스무 명에 이르는 군장성을 1시간 안에 모조리 척살하기 위하여 총리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였다.

“작전명은 결혼 행진곡으로 결정되었다네, 이 단장.”

총리가 말했다.

“자네는 음지를 관리하고 나는 양지를 보살피지. 북방과 남방, 음지와 양지, 헌터와 일반 시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단장과 피앙세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작전명이라네.”

“저에게는 과분한 칭찬입니다.”

“이 단장은 참 겸손한 사람이군.”

총리는 첫 번째로 통화했을 때와 비교해서 확실히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그럴 만했다. 두 사람이 그때 교섭에 나섰다면 지금은 협력을 나누고 있었다.

총리는 50년의 세월을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이시백한테 말했다.

“내가 내 손으로 감투를 쓰는 것 같아서 적이 부끄럽네만, 나는 이 땅의 총리일세. 양지를 보살피는 위치에 이르기까지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희생해 왔지. 그러지 않으면 도달하기 불가능한 지위이니 말이네. 하지만 이 단장은 이제 스물한 살이지 않은가.”

총리가 작게 웃었다.

“내가 스물한 살에 뭘 했는지 모르겠군. 글쎄, 클럽에서 여자나 따먹으려고 밤새도록 엉덩이나 흔들었겠지. 보나파르트가 정권을 휘어잡은 것이 31살이야. 자네는 10년이나 일찍 영웅이라는 칭호를 획득했다네. 어디, 겸손은 그만두고 늙은 선배한테 비결 좀 알려주게.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자네만 한 지위를 손에 넣을 수 있는가?”

“…….”

한 번쯤 죽다 살아나면 됩니다라고 이시백은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믿어주지 않겠지.

상대방으로부터 진지한 수긍을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부드러운 농담으로 끝내는 편이 나았다.

“각하,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피앙세를 잘 만나면 됩니다.”

“피앙세? 자네의 그 예쁜 자문사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사실 제 정치적 능력 따위야 보잘것없습니다. 그저 피앙세가 지시하는 것에 얌전히 따르다보니 어느새 대부라 불리고 있더군요. 이건 총리님한테만 알려드리는 비밀입니다만, 사실 저희 용병단의 핵심은 제가 아니라 피앙세입니다.”

총리가 웃었다.

“하긴, 정치에 있어서만큼은 남자가 절대로 여자를 따라가지 못하지. 그렇다면 자네의 피앙세는 20살도 안 되는 나이에 평양과 북방을 거머쥔 여걸 중의 여걸이로군 그래. 애도를 표하겠네, 이 단장. 평생 잡혀 살겠어.”

“여자 엉덩이에 깔린 삶도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총리 각하. 특히 젊은 여자의 엉덩이라면 더더욱 안락하지요.”

“과연, 희대의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어여쁜 처녀이기도 했는가. 이거야 원. 이 단장한테 내가 몇 끗발은 밀릴 수밖에 없군…….”

두 사람이 넉살 좋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서로한테 호의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작전 <결혼 행진곡>은 차근차근 준비되었다.

다름 아니라 군부의 목을 쳐내는 작업인 만큼 계획은 무척이나 세밀하게 이루어졌다.

군대에 알알이 심어둔 민주주의자, 민간 경찰의 특수 부대 정예, 국가헌병에 소속된 충견…….

사실상 반도에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무력 기관이란 무력 기관은 전부 동원되었다.

실제 작전이 시행되기 4시간 전까지, <결혼 행진곡>에 관하여 아는 사람은 반도 전체를 통틀어도 7명이 채 되지 않았다.

군인과 국가 헌병에게 주어진 임무는 장성들을 암살하는 것.

경찰 특수 부대에 내려진 임무는 국회의원을 폭살하는 것이었다.

―타겟이 2층으로 올라갑니다.

―떡을 치러 올라가는 게 분명하군요, 대장님.

그리고 이 극비 임무는 광역수사대 대장 차수현한테 주어졌다.

차수현 대장은 평소부터 군부의 간섭에 항의했고, 자신이 얼마나 정부에 충성스러운지 강력하게 어필했다.

이시백 용병단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다는 것도 가산점이었다.

이 땅의 정부는 차수현을 심복으로 임명했다.

차수현이 일부러 목소리를 죽여 가며 말했다.

“알파, 작전이 끝나기 전까지 농담은 자제하도록.”

―죄송합니다, 대장.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목표 대상은 복상사로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만큼 상냥하게 대상을 제거해 주는 사람들도 딱히 없을 겁니다.

통신기 너머로 대원들의 웃음소리가 잡음이 되어 들려왔다.

차수현이 한숨을 쉬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차수현은 본격적으로 총리의 관심을 받게 된다. 어쩌면 총경에서 경무관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하게 될지 몰랐다.

30살 나이에 경무관을 따게 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치안감, 치안정감, 치안총감까지 고속도로가 뚫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총리는 젊다. 시민들의 인기도 나쁘지 않아. 여기에 이시백 단장이 지지해 주면 2선, 3선을 용이하게 노려볼 만하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총리가 정부를 지배하겠지. 그 10년 동안, 나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서 경찰청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일이 그렇게 흘러갈 경우, 이시백은 매우 든든한 조력자를 얻는다.

올바른 형태의 세상을 이룩하는 데 차수현이 조금 더 도와줄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올바른 세상을 위해서.’

차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원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명령을 입 밖으로 내면서.

“폭발물을 작동해라. 반복한다. 폭발물을 작동해라. 아내 몰래 기생들이랑 놀아나는 우리의 국회의원 양반한테 끝내주는 오르가즘을 선물하자.”

―예, 카운트다운에 들어갑니다. 십, 구, 팔, 칠……. 하나.

초읽기가 끝나자마자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봉림산 산자락에 지어진 고급 별장은 단숨에 산산조각이 났다.

화염이 치솟으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웠고, 건물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까지 날려 버렸다.

저런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그런데도 차수현은 신중하게 명령했다.

“이번 작전에서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용납할 수 없다. 용서하지 말고 동정하지도 마라. 아직 목숨이 붙은 놈들을 발견하면 즉시 총알을 때려 박아라.”

대원들이 일제히 엄폐물에서 치고 나갔다.

저격수들은 언제든지 표적을 없애기 위해 망원 조준경에 바싹 눈을 갖다 댔다.

차수현의 준엄한 목소리가 통신망에 울렸다.

“국민이 우리에게 저놈들을 살해하라 명령하고 있다. 작전을 완수해라. 그리고 영광은 국민에게, 치욕은 우리에게 돌리는 것이다.”

―라져!

알파팀에서 델타팀까지 차례대로 명령에 복종했다.

한참 뒤, 화재 신고를 받고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

그곳에서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시체를 여러 구 발견했다.

화재는 건물의 노후화로 인한 가스 폭발로 밝혀졌으며, 여러 증언에 의해 김해시 국회의원이 사고에 휘말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불행한 사고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 이상의 진실이 노출되는 일은 없었다.

4

평양의 허름한 교회에서 결혼 행진곡이 잔잔하게 울렸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양옆으로 천천히 몸을 흔들었다.

그들이 상체를 이리저리 저을 때마다, 바이올린 선율이 잔물결처럼 주변 공기에 퍼졌다.

그런 음악의 한가운데에서.

“…….”

신부인 윤시아가 조금씩 걸어왔다.

어린아이 두 명이 윤시아보다 살짝 앞서 가며 장미 꽃잎을 흩뿌렸다.

붉은색 장미 꽃잎은 결혼식장에 울리는 바이올린 선율을 타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윤시아가 꽃잎들을 사뿐히 밟으면서 나아갔다. 그녀는 장미꽃잎의 감촉을 가늠하는 것 같았다.

“…….”

이시백이 말없이 윤시아를 바라보았다.

음악은 결혼식장 내부의 시간을 한없이 길게 연장하고 있었다.

윤시아는 결코 시간에 쫓기면서 걸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한 발자국을 내밀 때 비로소 1초가 흐르고 1초가 풀렸다.

지금만큼은 신부인 그녀가 시간의 호흡을 결정하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는군.’

이시백이 생각했다.

아직 그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시백에게도 결혼이란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기에.

‘그런가. 내가 결혼하는 것인가…….’

마침내 윤시아가 코앞에 도착했을 때도, 이시백은 여전히 그녀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시백은 윤시아의 눈동자에서 그녀 역시 제법 어색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윤시아는 행복한 미소가 아니라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배, 뭐 해요. 그래도 손은 잡아줘야죠.”

“음.”

이시백이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윤시아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멍 때리면서 하고 있어요?”

“설마 내가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생각을 했다.”

“어라, 저랑 좀 비슷하네요.”

윤시아가 배시시 웃었다.

“솔직히 저는 좀 후회가 들어요.”

“다른 날도 아니고 설마 결혼 당일에 후회된다는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벌써부터 이혼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이시백의 머릿속에 실없는 농담이 떠올랐다.

윤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선배랑 제가 결혼한다고 뭐 사이가 바뀌고 그럴 리도 없잖아요. 굳이 내 남자로 묶어두겠다는 욕심으로 결혼하는 게 맞나 싶고…… 어휴. 하여간 전부 괜한 욕심이라니까요.”

“여자가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더니 사실이었군.”

“참고로 저는 애는 안 낳을 거니까요.”

윤시아가 제법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허니문 베이비니 뭐니 그런 거에 낭만 품고 있었으면 꿈 깨세요.”

“아니, 뭐. 나도 자식 욕심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런데 왜?”

“선배보다 제 아이를 더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요.”

윤시아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몇 명 죽였잖아요. 대충 서른 명.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데 자식새끼 낳으면 어휴우, 어디 원한 가진 사람이 내 자식한테 보복하지 않을까 무서워서 살겠어요? 선배야 죽이려고 해도 안 죽는 사람이니 걱정 없고, 저야 제 몸 하나는 챙길 수 있느니 걱정 없고. 하지만 자식은 다르거든요.”

“……너는 가끔씩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한다.”

“네.”

윤시아가 활짝 웃었다.

“덕분에 의정부에서 선배를 따라갈 수 있었어요.”

“…….”

“그냥 저희끼리 행복하게 살다가 죽죠, 선배.”

사실 더 많은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부모란 존재를 경험하지 못했다.

거의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버려졌다.

그런 자기 자신이 과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살아남기 위해서 수많은 인간을 죽인 자신들한테 과연 자식을 기를 자격이 있을까.

윤시아와 이시백은 둘 다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더군다나 이시백은 정치적으로도 자식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시백의 아이가 생긴다면 틀림없이 시민들은 그 아이까지 지지하게 되어버린다.

이시백이 죽은 이후에는 다시 이시백의 아이가 후계를 이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래서야 다시 독재가 이루어질 뿐이겠지.

이시백은 그런 미래의 가능성을 스스로 엄격히 금지했다.

개인으로서의 두려움, 공인으로서의 책임감, 두 가지가 이시백으로 하여금 자식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저 이시백은.”

삶에 한두 개의 작은 후회를 남겨두는 것에 관하여.

이시백은 누구보다도 너그러워질 자신이 있었다.

“제 신부인 윤시아를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저 윤시아는, 제 신랑인 이시백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주례는 없었다.

이시백도 윤시아도 단둘이서 약속을 나누기를 원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거창한 주례를, 번거로운 의례를 대신하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시백이 말했다.

“제가 늙고 병들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게 되더라도, 그때도 여전히 저를 사랑해 주겠습니까.”

윤시아가 그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단지 희미한 미소만을 입가에 머금은 채 윤시아가 대답했다.

“네. 기꺼이.”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입술을 맞추었다.

스무 명 남짓한 하객들이 손뼉을 두들겼다.

조용하고, 자그마한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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