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133화
제18장 웨딩마치(3)
―예, 대장님. 개 주인을 사살하겠습니다.
―브라보 팀, 서둘러 움직여라.
특수 부대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경찰들은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표적을 확인했다.
망원 조준경 저 너머로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가 보였다.
―목표 대상 육안으로 확인.
―경호원의 숫자는 모두 18명입니다. 20명이 안 됩니다.
―안 보이게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목표는 현역 국회의원.
벌써 조부 때부터 시작해서 3대째 경남을 석권한 명문의 가주(家主)였다.
정치권에서는 대표적인 ‘부산파’, 즉 부산을 제외하고 나머지 북방의 도시는 포기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인사로 분류되었다.
어차피 평양과 서울은 반쯤 버린 도시나 다름없다,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하다고 해서 집착하는 것은 대국적으로 옳지 않다라고.
여러모로 과격한 극론을 밀어붙이는 정치가였다.
‘대충 차차기 총리쯤으로 거론되던 거물이다만.’
차수현 대장이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생각했다.
본래 부산파는 시민들한테 제법 많은 지지를 받았다.
평양-개성-서울로 이어지는 라인이 워낙에 범죄의 온상지이기도 했거니와, 북방과 남방은 애당초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다.
인민공화국이 멸망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방에선 북방 주민들을 가리켜 ‘빨갱이’라거나 ‘조선족’이라면서 경멸했다.
저 국회의원은 그런 대중 심리를 잘 이용했다.
빨갱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강변하면서 시민들의 인기를 끌어 모은 것이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지.’
하지만 그것도 1년 전 이야기.
이시백이라는 영웅이 등장하면서 부산파는 급격히 지지 세력을 잃었다.
굳이 평양-개성-서울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는 자생할 수 있다.
북방은 범죄를 척결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양지(陽地)로 거듭날 수 있다.
이시백은 그렇게 주장했으며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십시오, 파시스트.’
이로써 부산파의 거두는 정치권에서 쓸모가 사라졌다.
이시백이 훨씬 더 매력적인 카드패로 떠오른 이상, 써먹기 곤란한 파시스트 따위는 보다 지체가 높으신 권력자들한테 필요가 없었다.
파시스트는 대중을 영합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여차하면 독재자로 튀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역사가 그걸 증명했다.
굳이 양날의 검을 애용해야 할 이유가 없을 터.
이것이 총리를 비롯한 권력자들의 의견이었다.
―목표 대상, 건물 내부로 진입.
―경호원들도 대부분 건물로 들어갑니다. 외부에는 5명 남습니다.
권력자들의 그런 심리를 파고든 장본인이 바로 이시백이었다.
S급 몬스터들을 토벌한 이후, 이시백은 총리와 직접 담판을 지었다.
조건은 매우 단순했다.
‘자신은 앞으로 절대 정치계에 진출하지 않겠다.’
‘평양 시장으로 출마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총리직을 넘보지도 않겠다.’
요컨대 정부가 평양을 버리지 않는 이상 자신도 정부를 등지지 않겠노라고, 이시백은 엄숙하게 약속한 것이었다.
실로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고 뭔가.
중앙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시백이 독자적인 정치 파벌로 성장하는 사태였다.
북방에서 태동한 정치 세력이 남방을 압도하거나, 혹은 북방과 남방이 정치적으로 대등하게 되어 힘겨루기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에 해당했다.
그런데 3달 전, 이시백이 스스로 협상장으로 나와 주었다.
국민의 지지라는 절대적 권위를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 정부에 대하여 고개를 숙여주었다.
총리가 기뻐하면서 이시백한테 물어보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웬만하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이시백은 그 자리에서 즉답했다.
“원 씨 가문의 목을 따주십시오.”
“원 씨라면……. 김해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는 의원 말인가?”
“예.”
총리가 흐음 하고 말끝을 길게 늘어트렸다.
정치가를 암살하는 것 정도야 이 시대에 아주 드물지만은 않았다.
평양 시장의 경우에는 4번 연속 마피아들한테 암살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그마치 3대째 의원직을 세습하고 있는 명문가라면 난이도가 다소 높았다.
명문가가 백 년이 넘도록 만들어온 인맥. 지역구에 끼치는 영향력.
여러 가지를 통틀어서 고려해야만 했다.
“왜 굳이 원 씨 가문이 사라지기를 원하는가.”
“저는 북방을 지키는 천리장성입니다. 반면에 원 씨 가문은 북방을 버리자고 주장하는 세력의 중추입니다. 숙청을 요구하는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총리 각하.”
“명문가란 그렇게 쥐 잡듯이 쉽게 없애기란 불가능하다네.”
“구태여 가문 전체를 말살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시백이 차분히 말했다.
“가주 한 사람만 제거해도 충분합니다.”
“음.”
“안 그래도 부산파는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거기에 파벌의 우두머리까지 사고로 죽으면, 나머지 잡졸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총리 각하께서는 북방을 통제할 장기말을 하나 얻게 되시겠지요.”
총리가 침묵했다.
총리는 솔직히 말해 북방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세계인’이라는 정체성이 훨씬 더 강력하게 요구되는 것이 지금 시대였다.
아시아만 보더라도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 수많은 국가가 협력하지 않을 경우, 당장 20년 안에 모든 해로(海路)를 상실할 위험에 처했다.
평양? 북방? 한국?
그런 것은 솔직히 서필리핀 해나 말라카 해협에 비하면 별로 대단하지도 않았다…….
총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시아를 지키는 데 있어 이시백과 원 씨 가문 둘 중 어느 쪽이 더 쓸모 있느냐, 그뿐.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긴 다음에 총리가 입을 열었다.
“좋네. 원 씨의 목으로 자네를 사도록 하지.”
“올바른 결단입니다, 총리 각하.”
“나도 내가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기도하고 있다네. 이 단장.”
그 순간 현역 국회의원 한 명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원석태 의원은 매달 둘째 주 토요일마다 봉림산에 있는 별장에 쉬러 가지. 거기에다 개성 출신의 기생을 두 명 들여놓고 있어. 애인들과 노닥거리는 사이에 별장을 통째로 터트리면 그럭저럭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일세.”
이런 난세에 일국의 권좌를 차지한 정치가답다고 해야 할까.
총리는 협상이 결정되자마자 마치 당연하다는 듯 암살 방법까지 노련하게 늘어놓았다. 그는 주요 국회의원들의 사생활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설령 원 씨 일족이 암살 의혹을 제기하고 싶더라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겠지. 가주가 부인 몰래 기생들을 키우고 있었다는 얘기가 돌아버리면 가문의 수치가 되어버리니 말일세.”
“각하의 용단에 저 이시백, 반드시 결초보은하겠습니다.”
“음, 하지만 이 단장.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만으로는 약간 부족하다네.”
총리가 슬쩍 운을 띄웠다.
이시백의 이름 석 자에는 국회의원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령 이시백이 선거철에 총리를 지지해 준다면, 십중팔구 총리는 재선에 성공할 것이었다.
시민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그러나 이름값 이외에도 모종의 쓸모가 있을까?
파트너로서 서로 의지해도 괜찮을 만한 능력이 이시백한테 과연 있을까.
총리는 그것을 몰래 시험해 보았다.
“어떤 부분이 마뜩잖으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현역 국회의원이 별안간 폭사당하는 것 아닌가. 사건으로 다루자면 얼마든지 사건으로 다룰 수 있다네. 비록 원 씨 일족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할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언론을 동원하여 공격해 올 수도 있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할지 모르겠네만, 이 단장. 정치판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네.”
“과연, 각하께서 충분히 염려하실 만합니다.”
이시백이 말했다.
“그렇다면 원 의원을 암살하는 당일에 제가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
“결혼식?”
총리가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안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예, 결혼식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현재 시민 여러분한테 과한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면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루겠지요. 하물며 제가 결혼하게 될 여성은 개성 기생 출신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제일 잘나가는 용병단장이 기녀를 부인으로 들인다라. 확실히 뉴스가 될 법하군…….”
총리가 약간이지만 흥미를 느꼈다.
요컨대 국회의원 폭사라는 뉴스를 결혼식이라는 뉴스로 덮어버리자는 제안이었다.
형태는 다르긴 했어도, 연예인의 개인사를 동원하여 정치적 파문을 흐지부지 처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았다.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수단이리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다음에는 어떤 제안이 이어질까.
총리가 기대하면서 되물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총리의 예상마저 뛰어넘었다.
“군부에서 독단적으로 S급 몬스터를 토벌하려 시도했다는 증거가 저희한테 있습니다. 부상병을 수습하는 와중에 증언을 녹취했습니다. 거기에다 군인들이 김진하를 사살하는 영상도 입수해 두었습니다. 이 두 가지 영상을, 제 결혼 날에 맞추어서 언론에 뿌리겠습니다.”
“…….”
총리는 숨소리가 일순간 멈추었다.
군인들이 제멋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총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시백이 증거물을 갖고 있다니, 금시초문이었다.
만일 녹취록과 영상이 유출된다면 전국이 경악에 빠지겠지.
이건 국회의원 한 명이 애인 집에서 죽었다는 뉴스 따위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국군에서 가장 저열한 실패를 일으키고 말았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분노할 것이다.
“……이제 보니 원 의원의 목 하나만 요구하는 게 아니었군, 이 단장.”
“이것은 요구 사항이 아닙니다. 각하. 단순한 제안에 불과합니다. 각하께서 거절하신다면 저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납득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의원 한 명을 처리하는 것과 군부를 징벌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네. 이 단장의 값어치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군부의 값어치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네.”
총리가 확고한 어조로 단언했다.
현재 세계에 절실히 필요한 인적자원은, 열 명의 비무장 시민이 아니라 한 명의 잘 훈련된 병사였다.
여기에 관련해서만큼은 총리도 물러설 의사가 없었다.
“하지만 궁금하군. 요구 사항이 아니라면 왜 그런 것을 나에게 제안하는가? 어디 속마음을 시원하게 말해보게나, 이 단장.”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입니다.”
이시백이 대답했다.
변함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정치계에 파시스트가 있듯이 군부에도 쿠데타를 꾸미는 파벌이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이 나라를 좀먹는 악성 종양입니다. 사회의 질서와 시민의 안전을 도외시한 채,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움직일 겁니다.”
이시백이 한 박자 휴지(休止)를 두고 말을 이어나갔다.
“본래 그들은 제거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파시스트는 시민의 지지를 받습니다. 군부의 종양은 책 잡힐 증거물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와서, 지금 파시스트를 지지하던 시민들은 저에게 열광하고 있으며, 군부는 S급 몬스터 사냥 실패와 김진하 주살이라는 두 가지 증거물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
“각하, 이 나라의 종양을 제거할 기회입니다.”
이시백이 묵직하게 말했다.
“종양이 제거된다면 이 나라는 원래 주어진 수명보다 100년 더. 어쩌면 200년, 어쩌면 300년 더 버틸지도 모릅니다. 시민들이 하나로 뭉치면 북방에 영구한 안전을 이룩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
“저는 단순히 각하의 정치적인 파트너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각하의 믿음직스러운 동지가 되고자 합니다. 각하께서는 남방에서 시민들을 이끌어주십시오. 저는 북방에서 시민들을 보호하겠습니다.”
동지라니.
그 단어를 이런 어조로 들어본 지 대체 얼마가 지났는지, 총리는 가늠할 수 없었다.
30년 전인가. 40년 전인가. 그때는 그런 낱말을 진지하게 얘기하고 진지하게 들어본 것 같았다.
총리가 한참이나 오랜 옛날에 버리고 온 단어였다.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겠나, 이 단장.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심사숙고하고 싶군.”
“물론입니다. 언제든 각하의 전화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총리는 전화를 끊었다.
관저의 집무실에 앉아서 총리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이 반도는 어차피 150년 안에 멸망하리라 여겼다.
평양, 개성, 서울이 차례대로 함락되어 마침내 부산까지 밀리겠지.
그리고 부산에 총력을 집중하여 마지막 결사항전을 벌인 다음 반도는 포기될 것이다. 이것이 총리의 예상이었다…….
‘백 년을 더 버틴다고? 이백 년을?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얼마나 고민이 길어졌을까.
창밖이 어두컴컴해진 시간에, 총리는 전화기에 손을 뻗었다.
비서한테 연락을 부탁하자 잠시 뒤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이 단장.”
총리가 말했다.
“자네의 말대로 함께 악성 종양을 제거해 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