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132화
제18장 웨딩마치(2)
2
“아무리 그래도 하객이 너무 적지 않느냐.”
이시백이 분장실의 문을 열어서 슬쩍 결혼식장을 훔쳐보았다.
평양에는 교회가 거의 없었다.
종교를 박해하는 문화가 워낙에 뿌리 깊게 박혀 있기도 했거니와, 독재정권이 붕괴한 이후에는 차마 종교 건물을 성대하게 지을 여력이 부족했다.
덕분에 결혼식은 꽤나 조촐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굳이 서양식 결혼을 올릴 까닭도 없었으나, 신부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라고 강력하게 주장.
이왕 이렇게 된 거 호화 결혼식 논란을 피할 겸해서 평양 외곽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식을 올리게 되었다.
“거의 스무 명도 안 되는 것 같다만.”
“여기서 한 번 올리고 평양 광장에서 한 번 행진해 주면 되잖아요? 뭐 어렵게 생각해요. 서울 시장이든 누구든 광장에서 악수해 주면 다 만족해서 내려갈걸요.”
윤시아가 거울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녀는 유현도에게 분장을 받고 있었다.
“아, 현도 언니. 너무 예쁘게 꾸며주지는 마세요. 부탁할게요.”
“어? 왜? 그래도 여자가 결혼하는 날인데 제일 예쁘게 꾸미고 나가야지.”
“쯔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요, 언니.”
윤시아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오늘 사진을 찍으면 그거 평생 두고두고 볼 거잖아요.”
“응. 뭐,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저도 언젠가 늙어서 못생겨질 게 확실하잖아요.”
“……으응?”
유현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머리가 좇아가지 못한 느낌이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건 말건 윤시아는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막 40살, 50살 먹어서 결혼사진 봐 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어휴, 겨우 몇 년 전에 저렇게 예뻤는데 난 언제 이렇게 늙었나 하고 인생이 우울해질걸요. 단기적으로 보면 사람들한테 나 무진장 예쁘다고 자랑질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거 자기 인생 좀먹는 짓이라구요.”
“그럴…… 까?”
“그렇고말고요.”
윤시아가 단언했다.
평상시 용병단 내부에서 제일가는 4차원 두뇌를 소유했다 평해지는 유현도조차 윤시아의 이런 발언에는 약간 깰 수밖에 없었다.
뭔가 틀렸다고 반론하고 싶은데 정작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아서 난감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화장해 주세요, 적당히. 어차피 제 외모가 어디 가서 욕먹을 수준은 아니잖아요. 아름다워지려는 것도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괜히 욕심 부리다가 자기만 실망해요.”
“으, 으응. 알았어. 자연미를 살리는 느낌으로 가면 되는 거지?”
“넵. 그런 방향성으로 부탁드립니다아.”
사실 여기에는 한때나마 기생 견습생으로 지낸 윤시아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기생, 특히 일패기생들은 젊은 날에 지극히 화려한 나날을 보냈다.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기생들은 나이가 들어서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잦았다.
과거의 아름다움에 자기 자신이 질식하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적당히 탐미할 것.
되도록 거울을 바라보지 않을 것.
윤시아는 향금산 유곽의 선배들한테 그리 배웠으며, 결혼식을 올리게 된 오늘에도 오래된 교훈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윤시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툭 말했다.
“어차피 결혼식 끝나고 나면 선배가 짐승처럼 덮칠 텐데요, 뭐. 화장 정성스럽게 해봤자 다 지워질걸요.”
“…….”
유현도가 화장 작업을 멈추고 슬그머니 이시백을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다가 날벼락을 맞게 된 이시백은 억울하여 강변했다.
“이런 날에 그게 무슨 남사스러운 말이냐.”
“어라. 그럼 선배, 오늘은 얌전히 손만 잡고 잘 거예요?”
윤시아가 히죽 웃었다.
작은 악마처럼 교활한 미소였다.
“저 계속 웨딩드레스 입고 있을 건데요? 엄청나게 예쁜 옷인데요? 제가 듣기로 웨딩드레스는 대낮이 아니라 한밤에, 은은한 조명 속에서 제일 예쁘게 빛난다는데……. 싫어요?”
“…….”
이시백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분장실에 둘 말고 아무도 없었다면 저 얄미운 입술을 틀어막았을 테지만, 지금은 유현도와 함께 있었다.
이시백은 자고로 애정 행각이란 밀실에서 나누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어떻게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빤히 지켜보는 와중에 그런 주제를 입에 담는단 말인가!
“저기, 분장도 대충 끝났는데 제가 나가드릴까요?”
유현도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뭐냐. 만약 립스틱이 번져도 그건 간단히 고칠 수 있으니까요.”
“이제 곧바로 식을 올릴 건데 설마 그런 짓을 하겠는가. 계속 여기 있어라, 현아야.”
“솔직히 단장님이랑 시아가 부비부비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괴로워서…….”
유현도가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참고로.
유현도는 올해 23살로 백산 용병단 간부진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슬슬 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하는 연령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다.
바로 옆에서 이시백을 보고 지냈는데 어디 평범한 남자가 눈에 차기라도 하겠는가.
‘히잉, 단장님 때문에 눈 다 버렸어!’
이 세상에는 20살의 나이로 평양을 제패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런 남자를 목격해 버린 이상, 유현도의 연애 생활은 이미 끝장난 걸지도 몰랐다.
이시백이 다소 어색하게 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드르르르.
이시백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광수대 대장인 차수현한테 연결되는 휴대폰이었다.
이시백이 전화를 받았다.
“차수현 대장님 아닙니까.”
―하하. 축하드립니다, 단장님.
전화기 너머로 너털웃음이 들려왔다.
차수현은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비록 제가 평양에 직접 가서 축하드리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전화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 이야아, 설마 단장님이 저보다 먼저 결혼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는 뭐 이대로 숫총각으로 늙어야겠습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차대장님이 어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지 하지 못한 것이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짝을 찾을 수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단장님이 위로해 주니 그나마 인생이 덜 외로워지는군요, 하하.
두 사람이 덕담을 주고받았다.
분위기가 화사해졌다가 다시 잠잠히 가라앉을 무렵 차수현은 화제를 돌렸다.
전국에서 시민들이 이시백 용병단장의 결혼에 관해 떠들었지만, 정작 오늘 두 명의 남자가 나누어야 할 본론은 결혼식 따위가 아니었다.
조금 더 큰 무언가였다.
―결혼 선물, 이라고 표현하면 약간 우습겠지요. 아무튼 오늘 같은 날에 제대로 된 선물 하나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쁩니다. <결혼 행진곡>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단장님.
결혼이 두 남녀의 중대한 사건이라면.
지금 이시백과 차수현이 꾸미는 것은 전국을 휘말리게 할 사건이었으므로.
“음, 경과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사냥개’는 이미 다 잡았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주 늙은 사냥개가 한 마리, 늙은 사냥개가 네 마리, 조금 젊은 사냥개가 일곱 마리, 젊은 사냥개가 열일곱 마리입니다. 하하. 오늘 부산에서 늙은이들이 보신탕을 아주 제대로 잡수겠습니다.
이시백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냥개는 군인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소장에서 대령까지 약 서른 명의 장성이 ‘처리’되었다.
“훌륭하군요.”
이것으로 군부는 완전히 이시백에게 무릎을 꿇었다.
레겐보겐 유람선, 김진하 사살, S급 몬스터 사냥.
세 개의 작전을 모조리 망쳐 버린 것에 대하여 책임을 졌다.
“이제 슬슬 언론사에 영상을 뿌려도 괜찮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쪽의 인맥을 사용해서 나눠주었습니다. 지금쯤 검토가 끝나서 부랴부랴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딱 이시백 단장님이 결혼식장에 입장하면 텔레비전이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작전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
경찰은 군대로부터 다시 국내의 수사권을 되찾는다.
다시는 군대에 간섭받지 않고 경찰이 알아서 헌터들을 조율할 것이라고, 이미 정치권 차원에서 약조를 받아두었다.
세력 다툼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군대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참에 쿠데타 의혹이 붙은 암덩어리들을 제거하는 한편,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어떻게든 군부 전체에 망신살이 뻗는 것을 막는다.
전투에서 패배했으나 전쟁에선 승리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이시백이었다.
“최고의 결혼 선물입니다, 차수현 대장.”
이제 군인들은 절대로 이시백한테 손을 댈 수 없었다.
경찰들은 알게 모르게 이시백을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군인과 경찰이 무력해진 이상, 이시백한테 위협이 되는 세력은 오로지 정치권뿐.
그러나 정치권은 시민들의 지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이시백을 함부로 건드리기란 매우 어려웠다.
바야흐로 이시백은 자신만의 제국을 세우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똑똑.
분장실 문이 열리면서 순우경이 고개를 내밀었다.
순우경은 이시백을 쳐다보고 말했다.
“형씨, 이제 나와서 대기 타라고 그러는데.”
결혼식이 시작할 시간이 다 된 것이겠지.
이시백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차 대장. 사냥개는 물론이고 개 주인까지 안전하게 처리되리라 기대합니다. 언제 평양으로 올라오십시오. 예전부터 차 대장님과는 마음을 툭 터놓고 술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평양의 대부께서 불러주시는데 제가 가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모쪼록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십쇼.
통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이시백이 먼저 분장실을 나갔다.
스무 명에 이르는 하객들이 이시백을 바라보았다.
신부 측에는 그래도 하객이 열다섯 명쯤 있는데 반하여, 신랑 측에는 딸랑 이시영과 원서, 두 사람만 의자에 앉았다.
아무리 보육원 출신이라 해도 이건 지나치게 초라했다.
‘쓸데없이 친구가 많아 봤자 소용이 없긴 하다마는.’
이시백은 새삼스레 자신의 교우관계가 대단히 좁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제 와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러려니 납득했다.
사회를 맡은 순우경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아, 그러면 모일 사람도 다 모였고, 신랑도 왔으니까, 싸게 싸게 진행하겠습니다. 신부, 입장.”
평양 대부의 결혼식을 맡은 사회자가 내뱉기에는 적이 가벼운 말투.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누구도 사회자의 태도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만 결혼식장에 초대받은 것이었다.
―바라라라.
결혼식장 한편에 오밀조밀 앉아 있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곡명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
인류가 쇠퇴하고 문명이 몰락했을지라도 수백 년 전에 그러했듯 지금도 결혼식장에서 애호하는 행진곡은 이것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힘차게 현을 긁었고.
그것과 동시에, 윤시아가 유현도의 시중을 받으며 식장에 입장했다.
3
차수현은 통화를 끊고 잠시 동안 휴대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묘한 감상에 젖어 있었다.
‘세상사 참 모를 일이지.’
돌이켜보면 불과 2년이었다.
약 2년 전 차수현이 이시백을 만났을 때, 이시백은 아직 일개 헌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이시백은 나라를 바꿀 위치에 올랐고, 차수현은 거기에 협력하고 있었다…….
“그럼, 일을 시작해 볼까.”
감정을 능숙하게 다스리고 차수현이 무전을 켰다.
무전기를 향해서 차수현은 나직하게 명령했다.
“개 주인을 사살해라. 반복한다. 개 주인을 사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