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31화 (131/142)

건달의 제국 131화

제18장 웨딩마치(1)

1

“리을령이 탈옥했다고? 무슨 개소리인가.”

그날 소장(少將)은 일어나자마자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지난해 거대한 파란을 일으켰던 빨갱이 사건, 그 장본인인 리을령 소좌가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얘기였다.

소장이 기억하기로 리을령은 분명히 작년 국가반역죄 혐의로 총살당했다.

텔레비전에 사형식의 전후 장면이 방영되었으니 확실했다.

“그게 사실은 리을령 본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장군님.”

“뭐어?”

“리을령과 얼굴이 비슷한 사형수를 대역으로 구해다가 총살한 것입니다.”

소장의 부하가 난감한 얼굴로 해명했다.

“나중에 북한 지역에서 소요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리을령 본인의 목숨은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고, 높으신 분들께서 판단하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청송에 있는 제5교도소에 특별히 수감해 뒀는데…….”

“이런 미친놈들.”

“그래서 김병태 중장께서 장군님을 호출했습니다. 회선을 통한 연락은 엄금입니다. 빨리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장군님.”

소장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쩌다 탈옥 사건이 발생했는지 대체로 파악되었다.

경북 북부 제5교도소, 통칭 청송 제5교도소는 수용 인원이 500명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참고로 감방의 숫자도 500개. 요컨대 500명 전원이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만큼 악질적인 범죄자들만 모여 있었으며, 사실상 탈출이 불가능하기로 유명했다.

“집어넣었으면 끝까지 콩밥을 먹일 것이지 뭘 어떻게 관리했길래 빨갱이 새끼를 놓치고 지랄이야!”

소장이 씩씩거리면서 건물을 나섰다.

이따금 정부에서 ‘검은 사형수’, 즉 명부에 존재하지 않는 범죄자들을 교도소에 집어넣는다는 소문이 있긴 있었다.

그렇지만 설마 리을령과 같은 거물급 반역자를 가지고 장난질을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부에선 뭐라고 하나? 당장 강철한테 협조 구하고 탈옥수 잡아들여야 할 거 아니냐.”

“일단 이번 사건이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로 번지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상부 의견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지침이 하달되지 않았습니다만, 민간 경찰과 협조하여서…….”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소장은 사건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것을 예감했다.

자신의 사단이 경북 일대를 관할하는 것은 맞았다.

장병을 풀어서 빨갱이를 찾아내거나 총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도 크게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민간 경찰과 협력하라니? 도대체 이번 사건의 권한이 어디로 떨어졌길래 군부대와 경찰 조직이 정답게 빨갱이 수색 작전에 동원되는 것인가.

“장군님께선 국가 헌병대에 비밀리에 협조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 헌병대는 다시 민간 경찰과 협동하여 탈옥범의 수색에 나설 것입니다. 물론 저도 파편적인 정보만 들어서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보니 조직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씩 끼었다? 나는 거기서 징검다리 역할이나 수행하고?”

소장이 코웃음을 쳤다.

“짭새들 뒤치다꺼리해 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예 나보고 짭새 전담이나 맡으라고…… 아니, 되었다. 나머지 얘기는 중장님한테 들어야겠어.”

소장은 군용 차량에 올라탔다.

얼마 전 S급 몬스터를 토벌하는 작전에서 동원된 군부대들 중에서 한 부대는 이 소장의 휘하에 있었다.

아끼고 아끼던 정예 부대가 상부의 삽질로 인하여 날아가게 되자, 소장은 단단히 내장이 뒤틀렸다.

‘중앙의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진급 따먹는 재미로 도박하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이러다 내 아이들이 다 죽어 나가겠어.’

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쉽사리 협력해 주지 않을 심산이었다.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상부와 정부에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이 통솔하는 장병들이 쓰다 버린 이쑤시개처럼 버려져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진급도 좋다만 일단 부하들부터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부르, 부르르릉.

군용 차량이 매연을 내뿜으며 움직였다.

운전병이 소장을 배려하여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평양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첫눈이 내리는 가운데, 이시백 용병단장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벌써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경찰 병력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지만 광장 곳곳에서 웃음꽃이 그치지 않습니다.

소장이 흠 하고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상급자의 표정이 변한 것을 눈치채고 심복이 적절히 끼어들었다.

“결혼식에 축하 인파가 3만 명이나 몰렸다고 합니다. 대단하군요.”

“대단하긴 대단하지. 전국의 시장(市長)들이란 시장들은 죄 참석했다고 하는군. 서울 시장에 인천 시장, 특히 의정부 시장이 선물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올라갔다고 들었네.”

“아, 그 정도입니까?”

소장이 전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혹여나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정치인들이나 상관들을 만날 때를 대비하여, 소장은 1년 전부터 전자 담배에 입맛을 길들였다.

“힘 좀 쓴다 싶은 용병단장들도 참석했다는데 어이가 없지. 정치가, 경찰, 마피아가 한자리에 모여서 뭘 하겠다는 건가. 그냥 결혼식에 놀러 온 깡패 자식들 전부 감방에 처넣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닌가. 하여간, 쯔쯧.”

그리고 소장은 심기가 불편하여 두 눈을 꽉 감았다.

3개월 전, S급 몬스터들을 동시에 토벌한 이후로 백산 용병단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했다.

이시백과 이시영은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으며, 특히 이시백에 대한 지지가 어마어마했다.

아마도 이시영이 실질적으로 이시백의 객장(客將)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보스 김진하가 의문의 총격전에 휘말려 사망한 이상, 이제 이시백은 명실상부 반도 제일의 헌터였다.

대부.

북방의 패자.

건드릴 수 없는 이.

그것이 이시백을 표현하는 별명들이었다.

“제 생각입니다만, 장군님. 저 결혼식 때문에 상부에서 더 닦달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무슨 얘기인가?”

“리을령 소좌는 이시백이 철천지원수 아니겠습니까. 이시백 때문에 평양의 권좌에서 쫓겨난 거나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시백이 만인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습니다. 리을령 소좌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결혼식장에 테러를 감행한다고? 재미없는 농담이로군…….”

소장이 코끝을 울렸다.

“지금 평양은 세상에서 제일 경비가 단단한 장소일 거다. 설령 리을령이 경북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한들 혼자서 무슨 수로 결혼식장까지 올라가겠나. 도중에 고라니 새끼처럼 잡히겠지. 상부에서도 이상한 걸 다 걱정하는군.”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음?”

소장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부하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상식적으로 따져 봐서 리을령이 제5교도소를 탈출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경북 제5교가 어떤 곳입니까? 세상에서 제일 흉악한 놈들만 떨어지는 지옥 아닙니까. 그중에서도 리을령은 특별하게 취급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반역자가 우연히도, 하필이면 원수의 결혼 날에 탈출했습니다…….”

“……설마 리을령을 일부러 풀어준 곳이 있다는 말인가.”

“경찰일 수도 있고, 국가 헌병대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국군의 일부가 움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중장님께서 장군을 시급히 불러들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고, 감히 소관은 판단합니다.”

“멍청한 정치꾼들 같으니.”

소장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리을령을 테러리스트로 삼아 이시백을 제거한 다음, 자기들은 관계없다는 양 뒤로 내빼겠다고……? 이독제독에도 정도가 있다. 이건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게 아니야. 이미 독에 물든 땅에다가 또 다른 독을 옴팡 뿌려버리는 짓거리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가능성은 있다. 참 지랄 맞은 일이군.”

소장은 가끔씩 조국이 지나치게 썩었다고 느꼈다.

그는 본래 역사학과 군사학에 관심을 가졌다가 군인이 되었다.

소장이 역사를 통해 배우기로, 정부가 무슨 일이든 정치질로 해결하려 든다면 그 국가는 이미 쇠락해 버린 것이었다.

‘슬슬 쿠데타가 필요한 시점 아닌가?’

소장은 엘리트 군인으로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시백은 한낱 불량배에 지나지 않지만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반도의 시민들은 변화를 바라고 있어. 그야말로 격렬한 변화를. 헌터 따위가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우리 군인들이 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군사 쿠데타.

이 땅의 군인들에게는 금기처럼 여겨지는 단어였다.

하지만 금기 따위에 연연하기에는 지금 시대가 너무나 가혹하지 않을까.

반도에서 S급 몬스터가 두 마리 출현한 지 얼마 지났다고, 며칠 전에는 또 필리핀 해역에서 S급 몬스터가 발견되었다.

참혹한 시대가 아니고 뭔가.

‘구국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장이 생각했다.

‘경북은 내가 장악할 수 있다. 중장님까지 가담해 준다면야 부산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거기에 사단장을 두 명만 더…… 아니, 한 명만 더 끌어와도 어떻게든…… 부산만 점령하면 사실상 반도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다. 중장님한테 의견을 여쭤야겠어.’

더 이상 중앙 정부의 정치질에 순수한 장병들이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헌터들 따위가 설치고 다니지 못하도록.

소장의 생각은 깊어져만 갔다.

끼이익.

차량이 천천히 멈추어 섰다.

속도가 멈추자 소장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상부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곳에서 차가 멈추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무슨 일인가.”

“전방에 차량들이 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장군님.”

부하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전방의 도로를 가리켰다.

과연 콘크리트 도로 한복판을 검은색 자동차 세 대가 나란히 틀어막고 있었다.

어딜 봐도 군용 차량은 아니었다.

소장이 눈을 가늘게 떠서 살펴보자, 차량 측면에 ‘국가 헌병’이라고 흰색 글씨가 코팅되어 있었다.

소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국헌대가 왜 여기에?”

“이상하군요. 제가 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부하가 차 밖으로 나갔다.

소장이 부하에게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게. 경찰한테 붙었다가 우리한테 붙었다가 왔다 갔다 하는 박쥐들이야. 무슨 꼬투리를 잡을지 몰라.”

“아무런 잘못도 없는 국군 중령을 어느 놈이 잡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님.”

부하는 자신에 찬 얼굴로 국가 헌병대 차량들로 접근했다.

부하가 다가가자 검은색 자동차에서도 헌병들이 내렸다.

군대의 헌병과 달리, 국가 현병들은 멋들어진 검은색 정복을 차려입었다.

소장은 저들의 정복이 저 옛날 비밀경찰이나 나치를 떠올리게 해서 불쾌했다.

‘경찰이면 경찰이고 헌병이면 헌병이지. 괜히 국가 헌병대는 따로 만들어서. 저것도 다 정치질이다.’

자칫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중앙 정부가 만들어낸 조직이리라.

그 역사도 이제 겨우 110년밖에 되지 않아, 경찰이나 국군에 비하면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잠시 뒤, 부하가 국가 헌병들이랑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더니 아예 그들과 함께 돌아왔다.

부하의 얼굴색이 밝은 걸 보아하니 별다른 사고는 없는 듯했다.

“장군님, 별일 아닙니다. 저들도 중장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흐음. 그런데 왜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나? 저의가 의심스러운데.”

“중장님을 뵙기 전에 우리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것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소장이 코웃음 쳤다.

“이쪽 동네나 저쪽 동네나 정치질로 연명하기는 매한가지군. 좋다. 함께 가자고 전하라. 다만 내가 아니라 저쪽에서 합승하라고 말해.”

“예, 알겠습니다.”

부하가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되돌아갔다.

소장은 헌병들을 맞이하고자 차에서 나왔다.

아마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나타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조직의 요원들을 맞이하는 데 약간의 예의를 발휘해 줄 생각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국가 헌병들이 다가왔다. 그중 우두머리의 계급장을 살펴보니 중령이었다.

‘한참 낮군. 잔소리 한두 마디쯤 퍼부어도 괜찮겠어.’

소장이 편하게 마음을 먹으며 상대방이 경례하기를 기다릴 때였다.

국가 헌병들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권총을 꺼내었다.

소장이 상대방들의 무기를 확인하고 눈을 큼직하게 뜨기도 전에, 국가 헌병들은 군용 차량의 앞좌석에 탄 운전병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운전병이 본능적으로 양팔을 들어올렸다.

타앙! 타앙, 탕!

총알에는 그러나 자비가 없었다.

탄환들이 운전병의 머리를 관통했다.

운전병은 피를 흩뿌리며 그대로 핸들에 얼굴을 처박았다.

빠아아아앙 하고 경적이 길게 울렸다.

국가 헌병들은 무표정하게 차문을 열어 운전병의 시체를 끄집어냈다.

운전병이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졌다. 경적이 멈추었다. 시골 도로는 다시 조금 전처럼 조용해졌다.

소장이 권총을 꺼내 잡았다.

“너 이 새끼들, 뭐하는 자식들이야!?”

“박명헌 소장, 당신을 반란죄 및 도주 방조죄로 체포한다.”

국가 헌병들이 나란히 총을 겨누었다.

소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 질렀다.

“반란죄? 반란은 네놈들이 저지르고 있다! 나는 국군 소장이다!”

“국가반역자이자 정치범인 리을령의 탈옥을 도운 죄. 리을령을 부추겨서 평양에 대규모 테러를 일으킬 것을 의뢰한 죄. 테러 이후에 군부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키고자 모의한 죄. 이상의 죄를 물어, 지금 시간부로 박명헌의 소장 직위를 박탈한다.”

“뭐…….”

소장이 입을 멍하게 벌렸다.

쿠데타라는 단어에는 찔끔했지만 나머지 혐의는 도무지 황당하여 뭐라 반론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리을령의 탈옥을 도왔다? 하물며 테러를 의뢰했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그때 소장의 시야에 자기 부하가 들어왔다.

부하는 마땅히 소장을 도와서 국가 헌병들한테 저항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전부터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이 서 있었다.

소장은 그제야 누가 자신을 모함했는지 깨달았다.

“이 새끼……!”

소장이 치를 떨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워줬는데……!”

“죄송합니다, 장군. 하지만 장군의 사상은 지나치게 위험합니다.”

부하가 차갑게 대꾸했다.

“자고로 군인은 눈으로 정치를 보되 마음으로 정치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조국이 바라는 군인이고, 그것이 시민에게 필요한 군인입니다. 장군은 심장에 정치라는 이름의 독을 품었습니다.”

“이건 모함이다!”

소장이 소리쳤다.

“난 리을령의 탈옥을 도운 적이 없어! 아니, 리을령이 살아 있다는 얘기조차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쿠데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번 건에 대해서 나는 엄중히 항의할 것이다!”

그러자 국가 헌병들을 비롯하여 소장의 부하까지 조용히 소장을 쳐다보았다.

“리을령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장군.”

“뭐라고?”

“이 나라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빨갱이 두령을 살려 줄 만큼 미치진 않았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리을령은 작년에 틀림없이 처형되었습니다.”

“…….”

권총을 쥔 소장의 팔이 경련했다.

“나를 꾀어내려고…… 그딴 거짓말을 지껄인 것이냐…….”

“정반대입니다. 장군, 정반대이지요.”

중령이 고개를 저었다.

“리을령을 닮은 사형수가 처형된 것이 아닙니다. 리을령을 닮은 죄수를 찾아내서 오늘 일부러 탈옥시킨 것입니다. 가짜 탈옥수는 정말로 평양에서 테러를 시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은 이번 테러를 명분으로 삼아 감히 심장에 쿠데타를 품은 ‘악성 종양’들을 일거에 처단할 계획입니다.”

“…….”

“장군은 지난 S급 몬스터 기습 작전에 동원되었던 부대의 책임자입니다. 그 작전과 관련된 장성들은 모두 한꺼번에 처리될 것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장군.”

“기뻐하라고……?”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국에선 장군한테 마지막 기회를 선물했습니다. 기습 작전의 실패는 본래 국군 전체가 짊어져야 할 과오. 그러나 장군이 희생함으로써 국군은 명예를 잃어버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우리 국군은, 쿠데타 용의자들을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다시 한 번 국민의 신뢰에 대답할 것입니다.”

“결국에 희생양이라는 얘기 아닌가……!”

소장이 격노했다.

“내 휘하 부대를 빼낸 것도 네놈들이다! 내 장병들을 무의미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전부 무능한 정치가들이야! 진정 처단당해야 할 인간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다! 국가의 암세포 같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곗덩어리들이 감히 국민들을 우롱하여―”

타앙.

총성이 짧게 울려 퍼졌다.

소장은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나버린 채, 비틀비틀거리며 길바닥에 거꾸러졌다.

“…….”

중령이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국가 헌병들을 바라보았다.

“차수현 광수대장한테 연락해 주십시오. 제가 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말해주는 게 사정이 좋겠지요.”

“이 중령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부대로 복귀하여 장병들을 다독이겠습니다. 여차할 경우에 혼란에 빠지면 안 되니 말입니다.”

국가 헌병들이 턱을 끄덕였다.

“예, 그럼 일이 해결되고 뵙겠습니다. 조국에 무궁한 영광을.”

“조국에 무궁한 영광을.”

이날.

전국의 서른 곳에서 제각기 다른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명의 소장과 네 명의 준장이 즉석에서 사살 당했으며, 이밖에도 대령 일곱 명, 중령 열일곱 명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그들 전원이 부패한 중앙 정부에 불만을 품고 군인들에 의한 개혁을 꿈꾸던 자들이었다.

길 한복판에 버려진 군용 차량.

운전석의 라디오에서 희미한 잡음이 새어나왔다.

―신랑 신부, 마침내 입장합니다!

―시민 여러분,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첫눈에 맺어지는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십시오.

피로 얼룩진 결혼 행진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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