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124화
제16장 ?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8)
――시간이 숨을 멈춘 것 같았다.
총알은 저격 총에서 발사되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누구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총환은 앞으로 쇄도했다.
도중에 두세 방울의 비가 충돌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총알은 빗물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 방향성이 흔들리는 일 없이, 총환은 똑바로, 오직 올곧게 괴물의 눈동자로 향했다.
‘맞아.’
아직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은 채 원서가 생각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언어로 표현된 생각조차 아니었다.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다만 가슴에서 터져 나왔을 뿐인 염원.
몬스터들이 본능적으로 울음소리를 내뱉는 것과 비슷하게, 원서는 간절히 바랐다.
‘제발, 맞아……!’
그녀가 몬스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순수하게 기원했다는 것이겠지.
이 지극히 짧은 순간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원서에게 북방의 미래라느니 도시의 안녕이라느니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곳에서 이시백이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살아남기를 원했다.
언젠가 윤시아에게 ‘사랑을 모른다’라는 말을 들었던 원서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사이에, 그녀 본인조차도 깨닫지 못한 순간에, 오직 이시백만을 위하여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하나의 총환이 일념(一念)을 담아 일로(一路)를 그렸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물과 빗물의 틈새를 뚫고, 흙탕물로 뒤덮인 대지를 스쳐서, 몬스터들의 기이하고 신성한 외침을 무시하면서, 사방에서 창칼을 휘두르고 있는 헌터들을 지나쳐서.
원서는.
원서가 쏘아낸 총환은.
피익.
괴물의 왼쪽 눈동자를 꿰뚫었다.
이때, 흑마는 이시백을 짓뭉개기 위해 앞발을 치켜들고 서 있었다.
만일 총환이 한순간이라도 늦었더라면 이시백은 괴물의 말발굽에 치여서 그때야말로 비로소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하지만 괴물이 이시백을 공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앞발을 치켜든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채, 흑마는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끼아아악― 키라, 코―로로―끼이이하아아아아―!
괴물이 다섯 갈래의 목소리로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더 이상 생물의 울음이라고 생각하기가 불가능했다.
고통을 음파로 구현해 낸 듯한 비명에, 전쟁터 전체가 시끄럽게 떨렸다.
“크, 흐으아악!”
“으으읏!?”
헌터들과 몬스터들이 일제히 귀를 틀어막았다.
괴물의 비명은 소리를 이용한 공격이라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종군기자의 카메라를 통해 전투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있던 수백만 명의 시민들까지 기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때 이시영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괴물의 울부짖음에 아랑곳하지 않은 사람이 전쟁터에 두 명 서 있었다.
“공격을 멈추지 마라!”
총대장 이시백.
“…….”
부대장 원서.
두 사람은 무전기를 통해서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사실 이시백이나 원서나 상대방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방금 괴물이 토해낸 비명으로 인하여 두 사람 모두 청각이 망가졌다.
각자 한쪽 귀의 고막이 터져 버렸으며, 다른 하나도 일시적으로 기능이 마비되었다.
전쟁터에서 시각 다음으로 중요한 청각이라는 감각을 두 명은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계속 놈한테 총알을 박아주는 거다!”
“다음에는 녀석의 목을 노리겠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계속 서로에게 명령과 지시를 내렸다.
이시백과 원서는 파트너의 감각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자신만 청각이 망가졌을 뿐이지 상대방은 멀쩡하리라 생각했으므로.
“나는 허리를 치겠다! 원서, 너는 말머리를 노리도록!”
“단장님, 이다음에는 머리를 공격하겠습니다. 오발탄을 조심해 주시길.”
설마 파트너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원서는 ‘이시백이 지시해 준 대로’ 저격 총을 쏘았으며, 이시백은 ‘원서가 예고한 방향을 피하여’ 창날을 휘둘렀다.
이시백이 창대를 크게 내찔러서 빈틈이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 원서가 총알을 날려서 잠깐의 틈새를 막아주었다.
괴물이 총환에 적중당해 아주 잠시 머뭇거리면, 다시 이시백이 트리플 A급 소재로 만들어진 창날을 흑마의 속살에 찔러 넣었다.
절묘한 합공이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가 연습해 온 것처럼.
“어떻게 된 것이냐, 괴물!”
이시백이 포효했다.
보통 무술에서는 공격과 방어의 전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이시백은 오로지 공격.
방어 따위는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은 듯 공세를 퍼부었다.
“덩치는 큰 주제에 느려터지지 않았는가! 느리다! 겨우 그 정도로는 한참 느리다!”
왜냐하면 방어는 원서가 대신해 줄 것이라 확신했기에.
이시백은 전생을 합쳐서 20년 가까이 원서를 보좌했다.
수십, 수백의 전장을 두 사람은 함께 누벼왔다.
원서의 저격에서 특징이 무엇인지.
어느 곳을 노릴 때 제일 실력이 빛나는지.
언제 몸을 비켜줘야 합공이 끊김 없이 이루어지는지.
“그걸로는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 허리가 비었다! 뒷발이 비었다! 머리도, 꼬리도, 모조리 다 비었다! 한심하구나! 차라리 계속 거머리로 있지 그랬느냐!”
이시백은, 전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고 있었다.
두 명의 귀머거리가 펼치는 합공은 일견 기적으로 비추었으나 그 실체는 수없이 많은 시간과 수없이 처절한 희생을 통하여 간신히 만들어진 경험의 산물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과 행운을 통해서 4초의 유예가 생겨났다.
그것을 원서는 자신의 실력으로 명중시켰다.
그렇게 못 박혀 버린 유예의 시간을 이시백은 자신의 경험으로 끝없이 연장시켰다.
따라서.
“단지 이 순간만을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 한 번의 창격(槍擊)을 휘두르기 위해서 이시백에겐 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흑마의 질주를 멈춰 세우고 한순간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일천 명의 헌터가 필요했다.
일천 명의 헌터를 집결시키고 전쟁터로 이끌기 위해서, 북방의 도시들을 제패하는 것이 필요했다.
북방의 도시들을 제패하기 위하여 마철을 숙청했고, 리을령을 주살했으며, 정백화를 희생시켰고, 하세가와 노부유키를 패배시켰고, 공손범을 죽였고, 박상현을 사살했고, 김태헌을 배신했으며, 정구를 불태웠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마저 한 번은 필요했다.
“너는 결정적으로 가볍다, 축생!”
수많은 죽음을 자아내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이시백은 지금 ‘한 번의 창격’을 날릴 수 있었다.
본인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는 시간을 거쳐 이시백은 이 순간을 잡았다.
잡아낸 것이었다.
“죽어라!”
이시백이 울부짖었다.
발자국을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까 전의 충격파로 인해 파열된 근육이, 부러진 뼈가 날카롭게 삐꺽거렸다.
당장 활동을 정지하고 땅바닥에 드러누우라고 온 신경이 맹렬히 경고했다.
그렇지만 이시백은 뇌 속에서 분비한 흥분을 진통제로 삼아 모든 경고를 무시했다.
“무릎을 꿇어라!”
이시백이 깃발을 휘저으며 창날을 찔렀다.
원서의 총알에 다른 한쪽 눈동자까지 꿰뚫린 흑마는, 미처 이시백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여 다시 격통에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이시백은 입과 귀에서 피를 토해내며 소리 질렀다.
“우리는, 네놈과, 격이 다르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꼈을까.
괴물이 반격을 포기하고 거세게 온몸을 흔들었다.
애당초 괴물은 그 가공스러운 속도에 힘입어 전선을 휘젓는 것이 특기였다.
측면이 과하게 노출된 흑마의 형태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지극히 불리했다.
―끼에에에엑!
벗어난다.
이 기괴하게 비틀어진 ‘고기’한테서 일단 도망친다.
자존심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고기의 공격은, 사실 대단할 바가 못 되었다.
흑마는 어떻게든 치명적인 부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다.
그 노력이 보답 받았는지, 비록 두 눈동자가 상처 입고 몸통이 도륙 당했으나 정작 제일 중요한 ‘심장’은 아무런 손상 없이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심장이 무사하기만 하면 아무리 심각한 상처라도 어찌 되었든 간에 회복된다.
지금 깊숙한 산맥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신의 동료도 결국 살아남지 않았던가.
―끼르, 크로로로―끼아아아!
그렇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괴물은 끔찍한 고통을 맛보면서도 눈앞의 기괴한 고기를 떨쳐 냈다.
고기는 기세가 대단했으나 발놀림은 결코 빠르지 않았다.
세 발자국, 아니, 두 발자국만 내디뎌서 가속도를 붙인다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고기에게 등을 내보이는 이상, 몸통이 창날에 꿰뚫리는 것은 각오해야만 하겠지.
그래도 좋았다.
심각한 부상을 고려하면서까지 흑마는 다급하게 말머리를 돌렸으며――.
―끼에, 엑?
앞발굽으로 방향을 비튼 바로 그 순간, 흑마는 무언가가 후방을 막아서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온몸이 새까만 오물로 도배된, 한 개의 또 다른 고기였다.
자신을 짜증나게 만든 고기와 다른 점이라면 체구가 훨씬 더 작다는 점일까.
이 자그마한 고기한테서는 이상하게도 ‘자신과 똑같은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뒤늦게, 괴물이 깨달았다.
―끼아아아…….
저 고기는 다름 아니라 괴물이 벗겨낸 ‘껍질’로 몸을 도배했다.
거머리에서 흑마로 변하는 과정에서 괴물은 시꺼먼 체액을 토해냈다.
괴물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신의 살갗이나 마찬가지였다.
괴물은 고기들의 냄새에도, 자기 부하들의 냄새에도 민감했지만,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의 냄새만큼은 예리하게 감지해 내지 못했다.
저 자그마한 고기는 그것을 노리고, 온몸에다 괴물의 체액을 바른 것이었다.
자신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괴물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잘했어, 평양 댁.”
작은 고기가 양손으로 대검을 쥐고 높이 치켜들었다.
괴물은 그 공격을 막아내고자 서둘러 앞발을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괴물의 뒤쪽에는 여전히 이시백이 있었다.
괴물이 등을 노출시킨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시백은 창날을 박았다.
―끼아아아아악!
괴물은 등 쪽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의해 제대로 앞발을 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앞발을 들긴 들었다마는, 어림잡아서 1초의 시간을 잃어버렸겠지.
그리고 설령 부상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이시영은 1초만 있으면 얼마든지 치명적인 일격을 상대한테 선사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끝내줄게.”
이시영이 대검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푸숙 하고 고기가 썰리는 듯한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양손대검은 흑마의 말머리와 허리, 거기에다 본체까지 그대로 일자로 도륙내면서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거대한 칼날이 흑마의 몸뚱어리를 정확히 ‘두 쪽’으로 갈랐다.
―…….
몸통이 양갈래로 나누어지고도.
흑마는 한동안 땅바닥에 쓰러지지 않은 채 가만히 대지에 서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것을 향해 이시영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우리의 승리야, 사냥감.”
―…….
“그대로 쓰러지도록 해.”
이시영이 재차 양손 검을 휘둘렀다.
칼날은, 양쪽으로 갈라진 흑마의 몸 한가운데를.
공중에 멍하게 부유하고 있는 붉은색 마석을 내리쳤다.
째앵 하고.
마석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흑마의 몸뚱어리는 폭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