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21화 (121/142)

건달의 제국 121화

제16장 ?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5)

4

―우리나라의 유일한 S급 헌터인 이시영이 쓰러졌습니다!

―현재 이시영의 생사는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이번 원정대의 정신적 지주가 무너졌는데도 여전히 헌터들은…….

텔레비전 화면에 종군기자의 긴장된 얼굴이 비쳤다.

서울시의 총보스, 반도 제일의 용병단장이라 불리는 남자가 포도주를 홀짝거렸다.

김진하. 50대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 남자는, 뜻밖에도 어린 소년처럼 흥미진진하게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철아.”

“예, 형님.”

“저 이시백이가 참 괜찮은 아이야. 안 그렇게 생각하냐?”

김진하의 호위대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째서인지 김진하는 알게 모르게 이시백을 총애했다.

평양과 서울은 각각 반도의 북방과 중앙을 대표하는 대도시였으나, 굳이 격을 따지자면 아무래도 서울이 한 수 위쪽이었다.

그런데도 김진하는 근래에 들어 이시백이 제안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호위대장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저는 그놈이 싫습니다. 생긴 것부터 뻔뻔하게 생겨서는, 애인이라고 데리고 다니는 여자애부터가 완전 얼라 아닙니까. 보나마나 예쁘게 생긴 여자애들을 후려치고 다니는 인간말종일 겁니다. 제 안목은 확실합니다, 형님.”

“어이구야. 우리 대철이가 평양 보스에 불만이 많구나.”

“보나마나 이번 원정에서도 이시영이를 앞에 내세우고 자기는 후방에 처박혀 있겠죠. 뻔합니다. 여자애들 치마폭에 묻혀서 호가호위하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마침 화면에서 카메라가 초점을 이시백한테 맞추었다.

이시백은 새하얀 깃발을 휘두르면서 몸소 위험천만한 전쟁터를 쇄도했다.

그걸 보고 종군기자가 열광적으로 떠들었다.

―보십시오. 지난번 선언으로 국민 여러분을 놀라게 한 이시백 용병단장이 바로 저곳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정대의 총사령관이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헌터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진하가 슬쩍 고개를 돌려 호위대장을 쳐다보았다.

“어쩌냐. 쟤가 제일 앞장서고 있다는데?”

“……우연입니다, 우연. 저거 다 정치적인 그 뭐시냐. 프로파고다. 프로파고다입니다.”

“프로파간다라고 한단다, 무식한 자식아. 아무리 호위대장이 대가리 굴릴 필요 없는 직종이라지만 문자 좀 읽어둬라. 어디 가서 네놈이 내 후계자라고 말할 수나 있겠느냐.”

김진하가 혀를 쯔쯧 찼다.

호위대장은 안색이 무안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헌터 업계에서 호위대장 정도면 사실 매우 준수한 편에 속했다.

지식보다 지혜를 쌓는 것이 중요한 동네였으며, 또한 얼마든지 돈으로 지식을 사들일 수 있는 업계이기도 했다.

타앙! 탕, 타앙…….

어디에선가 총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조직의 아지트에서 총소리가 울리고 있는데도 김진하와 호위대장은 별달리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저 태평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김진하는 총성이 음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로 얘기했다.

“대철아, 사람한테 구린 구석이 두세 개쯤 있을 수 있다. 완벽한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겠고, 설령 있다 해도 거 몇 명이나 되겠느냐? 중요한 건 두세 개의 단점을 뒤덮을 만한 장점이 있느냐 없느냐야. 애인관계가 좀 추잡한 것 정도야 우리 업계에선 단점으로 치기에도 뭣하지.”

“아직 새파랗게 어린놈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거 아닙니까, 형님.”

“새파랗게 어리니까 더더욱 높이 평가하는 거다.”

총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이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울리는 것 같았던 총성은 백 미터, 오십 미터, 바로 아래층, 이윽고 방문 너머의 복도까지 급속하게 접근했다.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소리마저 들렸다.

호위대장이 권총을 품속에서 꺼내어 장전했다.

“사람들은 다 젊은이한테 열광하게 되어 있어.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유약하다는 게 젊은이들의 단점인데 어디 이시백 단장이 그런 면모를 보이던가. 생각해 봐라. 왜 이시백 단장이 의정부, 개성, 평양을 순서대로 들렸겠느냐.”

“그냥 북쪽으로 올라간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네가 띨빡이 소리를 듣지.”

김진하가 끌끌 웃었다.

“만약 이시백이 개성 한 곳에서만 성공했다고 해봐. 그럼 보나마나 이런 소리가 나오거든. 어쩌다가 운 좋게 성공한 거다, 의정부여서 가능했던 스토리다……. 그런데 이시백 단장은 세 도시에서 연달아 대박을 터뜨렸거든. 국회의원으로 따지면 3번 모두 다른 지역구에 출마해서 전부 당선되어버린 격이야. 이러면 아무도 실력을 의심하지 못해.”

철두철미.

김진하는 무엇보다도 이시백의 정교한 계획성에 감탄했다.

헌터들이 으레 쓰는 단어를 사용하자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정치적 프로파간다이니 뭐니 떠들어봤자 그걸 실제로 이뤄내면 더는 프로파간다가 아니야. 진퉁이지. 시민들이 지금처럼 열광하는 건 저놈이 진퉁이라는 걸 느껴서다.”

“……형님.”

호위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총소리가 마침내 방문 코앞까지 도착해 버린 것이었다.

“이제 작별인사를 드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으음. 미안하게 됐다, 대철아. 설마 군바리들이 이렇게 무식하게 덤벼올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김진하가 코를 긁적거렸다.

“평양에 겨우 부하 백 명 보냈다고 해서 귀신처럼 들이닥치는군.”

“여기까지 와서 구라치지 마십시오, 형님. 제가 형님 성격을 모릅니까.”

호위대장이 짜게 식은 눈동자로 자신의 보스를 쳐다보았다.

“겨우 부하 백 명이 아니라 우리 조직에서 최정예라 불리는 애들을 엄선해서 보내지 않았습니까. 반쯤 일부러 이시백 그놈한테 힘을 실어주려고 그러신 것 맞죠?”

“호오.”

“갑자기 이틀 전에 아지트를 온통 감시카메라로 도배해 둔 것도 그렇고. 형님은 처음부터 군바리들이 쳐들어올 줄 알고 그런 겁니다.”

김진하가 참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호위대장을 바라보았다.

“우리 대철이 많이 컸네. 도박판이 구라로 돌아가는지 안 돌아가는지도 알아채고.”

호위대장의 지적이 옳았다.

서울시를 총괄하는 두목 정도가 되면 경찰이든 군부이든 어디에나 강력한 인맥이 구축되어 있게 마련이었다.

며칠 전, 김진하의 뇌물을 받아온 군장성 중 한 사람이 급하게 김진하한테 알려주었다.

곧 군인들이 당신의 아지트에 들이닥칠 예정이니 어서 대피하라고.

하지만 김진하는 대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지트의 방비를 단단하게 보강해도 모자랄 판국에 평양으로 최정예 헌터 일백 명을 파견했다.

호위대장은 그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러셨습니까? 뭔가 비책이라도 있습니까.”

“비책은 무슨……. 어차피 군바리들이 마음 단단히 먹고 우리 모가지를 비틀려고 하면 대책이 없다. 경찰이야 기껏해야 이쪽 동네나 빨빨거리며 돌아다니지만 군바리는 다르지. 중국에도 열도에도, 심지어 필리핀이랑 인도네시아에도 연락망이 쫘악 깔린 것이 군바리야. 우리가 도망쳐서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냐?”

타앙!

방문 바로 저편에서 총싸움이 오갔다.

아마도 호위부대에 소속된 헌터들이 마지막 저항을 펼치고 있겠지.

저곳만 점령되면 김진하가 머무르는 보스실까지 당해버린다. 헌터들은 필사적으로 군인들한테 총알을 퍼붓고 있었다.

그렇다 한들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 명확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이 넘도록 특수 훈련 및 특수 작전을 펼쳐온 군인들을 당해내기란 문자 그대로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5분을 버티면 잘 버텼다고 평가해야 할 터.

김진하와 호위대장은 이미 최후를 각오하고 있었다.

“도망치든 도망치지 않든 결과는 똑같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서울에서 뒈지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잃어버리면 아까운 헌터들은 죄다 이시백한테 공짜로 건네주고요?”

“개죽음 당하는 것보다야 낫지.”

호위대장이 한숨을 쉬었다.

결과적으로 김진하는 이시백을 후계자로 지명한 셈이었다.

현재 아지트에 남아 있는 헌터들은 대다수가 오합지졸.

서울에서 정말로 실력이 좋은 헌터들은 이시백의 휘하에 합류하여 S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호위대장이 길게 찢어진 눈으로 텔레비전을 힐끗 노려보았다.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이들의 분투를 봐주십시오. 단장에서 일반 헌터까지, 직위에 높고 낮음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몬스터들에 맞서 싸우는 헌터들을 지켜봐주십시오!

화면에는 이따금 낯익은 헌터들이 나왔다.

서울의 헌터들이었다. 십 수 년에 걸쳐서 정성스레 키워낸 인재들이 저곳으로 빠졌다는 생각이 들자, 호위대장은 또다시 심기가 불편해졌다.

“젠장. 역시 저는 이시백이 마음에 안 듭니다. 후회할 겁니다, 형님. 상식적으로 S급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성공할 리가 없잖습니까! 제가 아니라 이시백을 후계자로 지명한 걸 죽어서도 후회하실 겁니다!”

김진하가 크게 웃었다.

“오오냐. 지옥에서 많이 많이 후회하자꾸나.”

그때, 문 밖에서 총성이 멎었다.

정적은 헌터들의 저항이 끝났다는 것을 암시했다.

동시에 김진하와 호위대장이 영원토록 침묵할 순간이 다가왔음을 예고했다.

호위대장이 방문을 향해 권총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예에, 만수무강하십쇼, 형님. 빡대가리가 형님보다 조금 더 먼저 가겠습니다.”

호위대장이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나무문에 총구멍을 뚫으면서 날아갔다. 문 바깥에서 비명이 터졌다.

호위대장은 군인들이 방 안으로 진입하려는 순간을 정확히 노린 것이었다.

타탕! 탕, 타앙, 탕!

그렇지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총구멍을 세 개 뚫었을 때, 저편에서 이쪽을 향해 수십 발의 총탄이 날아들었다.

나무문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호위대장은 머리통에 두 발의 탄환을 맞고 즉사했다.

군인들이 호위대장의 시체를 짓밟고 방 안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소파에 앉은 김진하를 곧바로 발견했다.

군인들이 소총으로 김진하를 겨누었으며, 반면에 김진하는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으로 군인들을 슬쩍 가리켰다.

“뭐가 그리 급하신가, 군인 양반들.”

“…….”

“댁들도 오래 살아봤자 앞으로 오십 년일세.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부드럽게 해치워 주게나.”

김진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군인들이 발사한 총탄들이 그의 온몸을 난도질했다.

김진하는 총알에 맞으며 한동안 심한 경련에 걸린 것처럼 들썩거렸다.

총성이 멈추자 김진하의 몸도 조용히 가라앉았다. 검은색 소파에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군인이 말했다.

“목표 사살 완료. 작전 성공. 이제부터 귀환한다.”

―수고했다.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 증거는 확실히 인멸해 두도록.

“걱정하지 마라. 뒤처리는 깔끔하게 하고 돌아가겠다.”

군인들이 방 안에서 우르르 빠져나갔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방 안은 한없이 고요해졌다.

호위대장과 김진하, 두 사람의 시체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지만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종군기자는 조금 전과 똑같이 흥분되고 과열된 목소리로 현장을 보고했다.

―시민 여러분! 봐주십시오! 기적과 같은 격전입니다. 이시영이 쓰러졌는데도 헌터들은 여전히 전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단 한 명도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천 명에 가까운 헌터 중에서 탈영병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미 승패와 상관없이 헌터들은 시민 여러분께 증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헌터들은 사회의 밑바닥을 형성하는 악성종자가 아닙니다. 헌터들 또한 도시를 위해서, 시민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시민인 것입니다! 우리의 동포를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응원해주십시오! 여러분의 동료들을…….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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