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20화 (120/142)

건달의 제국 120화

제16장 ?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4)

“다, 단장님!”

“기다리십쇼!”

이시백이 뛰어나가자 헌터들이 당황했다.

이때, 헌터들은 절망적인 감상에 휩싸여 있었다.

‘이시영 없이 S급 몬스터를 이길 리 없다’

‘장창방진이 허물어졌는데 몬스터 군단의 진격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살아남으려면 어서 도망쳐야 한다.’

수많은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앞서 이시백이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이시영이 위험에 처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녀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가 저곳에 쓰러졌다! 그걸 가만히 두고 지켜볼 속셈인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도망칠 생각인가! 좋다! 사내라면 나를 따르고, 불알이 떨어진 내시 자식이라면 냉큼 도망쳐라!”

바로 이 한 번의 발자국이 모든 생각을 날카롭게 끊어버렸다.

이시백은 헌터들, 특히 남자 헌터들이 무엇에 약한지 잘 알았다. 남성이라기보다 차라리 수컷이라 불러야 올바를 법한 이 인간들은, 다른 어떤 욕설보다도 ‘비겁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이시영은 S급 헌터였으나 동시에 갓 20살이 된 여자애였다.

그런 아이를 눈앞에 두고 꽁무니를 뺄 셈인가.

수컷으로서 긍지도 없다는 말인가.

이시백은 헌터들의 자존심을 일부러 자극했다.

“염병! 단장님을 따르자!”

“뒈져도 폼 나게 뒈져야지!”

“우리가 보스 이시영을 구하는 거다, 씨발놈들아!”

원정군 제3부대가 욕설을 지껄이며 총대장을 뒤따랐다.

먹구름이 빗물을 토해내는 가운데, 백산의 깃발이 펄럭였고, 그걸 이정표로 삼아 백삼십 명의 인간이 우르르 돌격했다.

거기에는 헌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종군기자들도 두 팀이나 섞였다.

이들은 역사적인 특종을 잡아내고자 원정군에 참여했다.

다만 제1부대나 제2부대와 같이 최전선에 설 용기까지는 없어서 이시백과 함께 제3부대에 머물렀는데, 헌터들이 죄다 달려 나가기 시작하자 기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선배. 어쩌지요?”

“우리도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기자들은 강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기자인생에 반드시 두 번은 찾아온다는 기회, 즉 일생일대의 장면을 찍어낼 순간이 코앞에 펼쳐졌다는 것을.

실패하든 성공하든 눈앞의 장면은 틀림없이 ‘역사’가 된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민간인의 첫 번째 S급 몬스터 토벌 시도’라는 이름 아래 이번 사건을 언급할 것이요, 그때마다 자신들이 찍은 영상이 사용될 것이다.

고민은 길지 못했다.

“……빌어먹을, 우리도 간다! 장비 챙겨!”

“알겠습니다!”

기자로서 어떻게 그 욕망을 이겨내랴.

백 년 동안 재활용될 영상을 하나 마련하면 그것만으로도 언론사에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었다.

그렇지만 이익을 뛰어넘어 명예가 약속되어 있었다.

명예가 동반되는 이익.

그것이야말로 기자들의 꿈 아니었던가!

“카메라 돌리고! 많이 흔들려도 상관없으니까 무조건 다 찍어!”

“생방송 팀은 여기에 남겨두겠습니다. 멀리서 찍는 거로…….”

“회사에 전화해서 무조건 시간 따내! 얼른!”

헌터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전선을 향하여, 끊임없이 최전선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 선두에서 이시백이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이시백은 곧바로 최전선에 당도했다. 그러자 전열을 지휘하고 있던 원서의 시야에 이시백이 들어왔다.

원서는 이시백을 알아보고 놀랐다.

“단장님……!?”

현재 그녀는 전열이 무너지지 않도록 힘껏 노력하고 있었다.

이시영이 갑작스레 증발해 버린 상황에서 원서는 제1부대와 제2부대를 모두 지휘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정신이 없었으며, 전선이 붕괴하는 것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달리 말해, 언제 전열이 파괴될지 모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원서가 다급하게 말했다.

“여긴 위험합니다. 어서 뒤로 물러나 주세요!”

“지금 누구한테 뒤로 물러서라 권하는 것인가, 부대장!”

이시백이 크게 다그쳤다.

의도적으로 주변의 헌터들에게 대화를 들려줄 요량이었다.

“인천의 대표자인 이시영이 저기에 쓰러져 있다. 나는 평양을, 반도의 북방을 대표해서 이곳에 와 있다. 시민은 물러설 수 있을지언정 북방이 물러설 수는 없는 법이다!”

“……!”

이시백의 기백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원서의 눈빛이 한층 차분해져서 깊이 가라앉았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대부님과 한날한시에 죽을 수 있다면 저에게는 오히려 기쁨입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부대장은 제1부대를 계속해서 지휘하도록. 제2부대는 내가 이어받겠다. 제2부대, 총대장인 나의 명령을 들어라.”

이시백이 무전기에 대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대들을 이끌어준 보스 이시영이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여기서 보스를 내버려두고 도망칠 만큼 비겁한 겁쟁이는 없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목적은 명확하다. 보스 이시영의 원수를 갚아라! 저 시꺼먼 말대가리 자식한테 인류의 근성을 맛보여주도록!”

이시백의 호령에 제2부대가 반응했다. 갑자기 부대장을 잃어버려 충격에 빠졌던 제2부대 소속 헌터들은, 이시영의 복수를 부르짖으며 간신히 전의를 되찾았다.

만약 이시백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렸거나 행여나 후퇴했으면 전열은 순식간에 파멸했으리라.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은 본능이 이시백으로 하여금 재빠르게 움직이도록 했다.

이시백은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움직여야 한다. 더 움직여야 한다.’

그때부터 이시백은 전선의 모든 부분을 뛰어다녔다.

총알과 탄두가 휘몰아치는 전장에서, 그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이시백은 백여 명의 헌터를 이끌고 돌아다녔다.

전열에서 어느 한 군데가 무너지려고 하면 이시백은 얼른 그곳에 달려가 병력을 보충시켰다.

직접 깃발을 흔들면서 헌터들의 사기를 올렸다.

“대부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물러서지 마라! 괴물 놈들을 사냥하라!”

원정군의 총대장이자 평양의 지배자인 남자가 앞장선다.

죽어도 다 함께 죽지 결코 억울하게 희생당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헌터들은 조금 더, 아주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었다.

―끼르르르으.

반면에 몬스터 군단의 총대장이라 할 수 있는 흑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괴물은 단지 멀찍이 멈추어 서서 다른 몬스터들이 공격하는 모습을 수수방관했다.

이시영을 처리하는 데 성공한 이상, 구태여 자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

실제로 몬스터 군단은 헌터들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흘러도 헌터들의 전열은 붕괴되지 않았다.

―그르르으.

흑마가 불쾌한 듯이 앞발굽을 굴렀다.

전선은 무너질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헌터들은 온몸이 흙탕물투성이가 되어서 고래고래 악을 썼다.

오우거의 주먹에 헌터 두 명이 죽어나가면 다시 세 명이 들어와서 빈자리를 메웠다.

세 명이 죽으면 네 명이, 네 명이 죽으면 다섯 명이 달려들었다.

이시백의 제3부대가 예비대로서 투입되는 것이었다.

“크아아악! 죽어! 죽어, 새끼들아!”

“대부님을 지켜라!”

아직 토벌 전투가 시작한 지 한 시간조차 흐르지 않았건만, 헌터들의 분투는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

누구 하나 피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 하나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동시에 누구 하나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 또한 없었다.

전원이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따, 뒈져 부리기에 겁나게 시원한 날씨여! 오늘 내가 칼춤 한번 징하게 치는구먼!”

제2부대에서 비(非)장창병을 통솔하는 호위대장 순우경은, 라이칸스로프에게 왼손이 물려서 손가락을 두 개 잃어버렸다.

그러나 순우경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칼을 휘둘렀다.

“개새끼들아! 오늘 너희가 죽든가 내가 죽든가 양자택일이다!”

제3부대에서 특별히 정예 병력을 이끄는 단원 장나래는, 고블린들이 한꺼번에 덮치는 바람에 허벅지살이 물어 뜯겼다.

그러나 장나래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글레이브를 내리쳤다.

“화력을 집중하십시오. 놈들에게 틈을 주면 안 됩니다!”

제1부대에서 전 부대원을 지휘하는 공격대장 원서는, 아군이 쏜 오발탄에 의해서 어깨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원서는 가볍게 붕대로만 상처 부위를 지혈한 다음에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모두가 비에 젖어 있었으며.

모두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 이들을 지켜봐 주십시오!”

종군기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그들은 몬스터들로부터 불과 2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서 있었다.

카메라가 몬스터들의 흉측한 모습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몬스터들에 맞서 싸우는 헌터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종군기자들은 대본이 없었지만 괜찮았다. 지금 현장에서 펼쳐지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뉴스로 완성되었다.

괴물들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며 거기에 대항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더 이상 무슨 말치장이 필요하겠는가.

“이들에겐 군대를 대신해서 싸워야만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피를 흘리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 스스로, 도시를 지키고 북방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입니다!”

전장의 흥분에 기자도 감염된 것이리라.

종군기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시청자들한테 호소했다.

“방금 우리나라의 유일한 S급 헌터인 이시영이 쓰러졌습니다. 현재 이시영의 생사는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이번 원정대의 정신적 지주가 무너졌는데도 여전히 헌터들은 승리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원정대의 총대장에서 시작하여 일반 헌터까지, 어느 한 명이라도 도망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그리고 카메라는 저 멀리에서 뛰고 있는 이시백으로 향했다.

이시백은 깃발을 들고 있었기에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카메라의 포커스가 맞추어지자 백산 용병단의 하얀 깃발이 비추었다.

“지난번 선언으로 국민 여러분을 놀라게 한 이시백 용병단장이 바로 저곳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정대의 총사령관이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헌터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여기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모두가, 원정에 참여한 구백사십이 명의 헌터 전원이, 오직 나라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기자가 열변을 토했다.

사실, 종군기자가 열광적으로 보고한 것과 달리 대다수의 헌터는 그리 숭고한 목적을 품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헌터 대부분은 상당히 높은 토벌보상금에 혹하여 원정에 참여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물러서지 않는 까닭은 이번 원정이 지나치게 유명해졌다는 것.

즉, 자칫 여기서 도망쳤다가는 영원히 비겁한 탈영병으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 도장이 찍혀버리면 어디에서도 고용되지 못했다.

또 어떤 이들은 단순히 자존심 때문에 도망치지 않았다.

원정에 참가한 헌터들은 순수한 의미에서 사냥꾼들이었다.

거의 모든 헌터가 마약업이나 밀주업으로 떼돈을 벌어들일 때, 이들은 몬스터를 잡는 데 열중했다.

이들에겐 사냥꾼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다. 북방의 안녕이니 국가의 미래이니 거창한 것들은 상관없었다. 자기 자신의 긍지가 문제였다.

고로 현실은 결코 이상적이지 못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나 그러했듯 지금 이곳에서도 인간을 부추기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명예욕이었으며, 그것 이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무겁다.’

이시백이 있었다.

비가 쏟아져서 깃발을 눅눅하게 적셨다. 잔뜩 빗물을 먹은 깃발은 평소보다 서너 배나 묵직했다.

물론, 하고 이시백이 생각했다.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까닭은 비단 깃발의 무게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전부 끝난다.’

원정에 참여한 천 명의 헌터들.

간신히 안정과 평화를 되찾은 평양의 시민들.

모든 무게가 압력이 되어 깃발을 한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무너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백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헌터들의 두려움, 공포, 욕망.

아무런 방향성도 없는 그 질척거리는 흙탕물에 발자국을 찍었다. 그러자 흙탕물에도 방향이 생겼다.

헌터들은 한 남자를 뒤따라 함성을 질렀고, 한 남자를 뒤따라 무기를 치켜들었다.

‘나는 강하다.’

전생에서 유현도가 평양사수를 주장했을 때 그녀의 곁에는 고작 삼백 명밖에 없었다.

오늘 이시백은 천 명에 가까운 인간을 이끌고 있었다.

반도 전체를 두고 보자면 천 명은 단지 천 명에 불과했으나, 누군가에게 있어 그것은 세 배의 진보였다. 어제까지 세 발자국을 건너왔다면 지금 이 순간에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는 것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이시백은 그렇게 확신했다.

’우리는 강하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의 걸음을 더 내디뎠다.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고.

자신을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미혹도 내보이지 않으며――.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곳에.

이시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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