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118화
제16장 ?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2)
3
괴물의 포효가 대기를 날카롭게 찢어발겼다.
그것은 거꾸로 뒤집어진 우레와 같았다. 천둥이 한참 먼저 울리고 섬광은 나중에야 번쩍거렸다.
울부짖음이 먼저 습기에 눅눅하게 젖어든 산골짜기와 산자락을 흔들어 깨운 것이었다.
―끼야아…….
―키아아아…….
수풀들이 울렁거렸다. 나무들이 요동쳤다.
빗소리와는 명백히 다른 진동들이, 무수한 발소리들이 땅바닥을 울렸다.
두그, 두그다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경련에 지나지 않았던 발소리들이 이윽고 하나의 해일을 이루어서 들이닥쳤다.
―끼야아악……! 끼야악……!
―끼악! 키륵, 키하아아……!
―까아아아악……!
몬스터들.
S급 몬스터는 휘하에 수백 마리의 부하들을 이끌고 다녔다. 그것들이 숲을 요란하게 흔들어 재끼고 있었다.
나무줄기와 나무줄기 사이로, 빗물과 빗물 사이로, 어둑한 그림자들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헌터들은 느낄 수 있었다.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저들이 완벽하게 대열을 이루어냈음을.
“화력을 쏟아부어라!”
“견제 사격에 들어가! 어서!”
헌터들은 침착하게 기관총을 움직였다.
곧이어 총부리에서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적을 사살하기 위한 사격이 아니었다. 화망을 이루어서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것이었다.
성급하게도 벌써 RPG를 날려대는 헌터도 있었다.
탄두는 저 멀리 숲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그 앞의 맨땅에 떨어졌다.
쿠우웅 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에 진흙이 흩날렸다.
흙덩어리가 우스스 떨어지는 가운데, 일제히 몬스터들이 숲 속에서 튀어나왔다.
―끼야아아악!
―키르륵, 키아아아아!
괴물 군단의 선두에 선 것은 진흙 멧돼지들이었다.
온몸이 새까만 오물로 뒤덮인 멧돼지들은 빗속을 질주했다. 그 숫자는 물경 백여 마리.
질척해진 땅바닥이 놈들에게는 도리어 달리기 좋은 경주로라도 된 것 같았다.
코뿔소의 뿔만큼이나 거대한 어금니들을 딱딱거리며 멧돼지들은 돌격했다.
몬스터 선봉대에 맞서 싸우는 헌터들의 선봉장은, 백산 용병단의 원서.
“놈들의 진입로를 한정시키세요!”
군용 우의를 뒤집어쓴 원서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아직 나이가 어렸지만 원서는 지난 반년 동안 백산의 헌터들을 확실하게 지휘해 왔다.
그녀의 차갑고 차분한 목소리에는 혼란을 잠재우는 힘이 있었다.
미리 계획해 둔 바에 따라 헌터들이 총화를 발사했다.
총알과 탄두가 멧돼지들의 양옆으로 쏟아졌다.
몬스터들은 화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일직선의 행렬을 이루었다.
숲 속에서 튀어나올 때만 해도 넓게 펼쳐졌던 대열이 순식간에 좁은 행렬로 바뀌었다.
그걸 보고 한 헌터가 소리 질렀다.
“원서 부대장님!”
“아직.”
원서가 냉정하게 전방을 노려보았다.
약 700m 떨어져 있던 멧돼지들이 빠르게 접근했다.
600m, 500m, 450m…….
마침내 원서는 가장 절묘한 순간을 낚아채서 명령했다.
“지금입니다.”
“당장 폭발시켜!”
멧돼지들이 내디딘 바로 그 대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거대한 폭발음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산줄기까지 흔들었다. 헌터들이 미리 전방에 깔아둔 지뢰들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끼아아아아아악!
괴물들이 끔찍하게 울부짖었다.
인간이 아니라 오직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지뢰는 일종의 파편탄에 속했다.
평범한 파편은 진흙 멧돼지의 외피를 뚫지 못했으나, B급 몬스터의 뼈 따위로 제작된 지뢰 파편은 손쉽게 멧돼지들의 살갗을 찢어버렸다.
값비싼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투자한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어림잡아 수백억이 허공으로 사라졌으리라.
하지만 원서는 물론이요, 일반 헌터들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자신들은 S급 몬스터를 두 마리나 상대하고 있었다!
돈 따위는 얼마든지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았다.
“제1파, 전멸했습니다.”
“시계는 비교적 양호.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시력이 좋은 헌터들이 저편의 숲을 바라보며 보고했다.
백 마리를 넘어섰던 진흙 멧돼지들은 방금 폭발에 의해 모조리 고기조각으로 변했다.
가히 최강의 일격이었다 해도 손색이 없겠지.
그렇지만 이로써 전방의 지뢰는 소진되었다. 이것이 초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원서는 잘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2파! 출현했습니다!”
선봉대가 쓰러지자 몬스터 군단의 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들은 우듬지를 거꾸러뜨리며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눈앞에서 동료들이 전멸하는 것을 빤히 지켜봤을 텐데도 몬스터들은 거침없이 진격했다.
―키르륵! 키르르륵!
―크라아라아라아!
머릿수는 자그마치 약 이백오십에 이르렀다.
종류도 각양각색이라서, 보잘것없이 생긴 고블린이 있는가 하면 육중한 오우거도 있었다.
E급 몬스터에서 A급 몬스터까지 뒤섞인 혼성 군단이었다.
그들은 빗속을 헤집으면서, 멧돼지들의 사체와 오물로 뒤덮인 대지를 짓밟았다.
“싸구려 몬스터들을 정리합니다. 전군, 일제 사격!”
헌터들의 총부리가 다시금 불꽃을 토해냈다.
고블린과 같은 하급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지금과 같은 대규모 사냥 작전에서는 미리미리 잔챙이들을 정리해 주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총알은 오우거와 같은 몬스터들을 쓰러뜨리기에는 확연하게 역부족이었다.
B급 이상의 몬스터들, 어림잡아 백 마리에 이르는 놈들이 멀쩡히 살아남았다.
녀석들은 총화를 비껴내며 코웃음이라도 치는 것처럼 나지막하게 울었다.
―크라아아아!
물경 백 마리의 고위 몬스터가 헌터들 코앞까지 당도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대참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우거가 한 마리만 등장해도 평범한 헌터들 따위는 간단하게 백 단위로 죽어 나갔다.
그것이 일백 마리나 되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후퇴해야 할 시점.
그때, 원서가 이끄는 제1부대를 지나쳐서 오히려 앞쪽으로 쇄도해 나가는 헌터들이 있었다.
“전부 쓸어버려.”
원정군 제2부대.
보스 이시영이 이끄는 사백이십 명의 헌터였다.
경악스럽게도 이시영과 부하들이 손에 잡은 것은 열병기가 아니라 냉병기.
몬스터의 뼈로 만들어낸 장창, 장검, 도끼 따위의 무기였다.
이들 정예 헌터들은 전원이 몬스터 소재의 무기와 장갑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스 이시영이 쥔 무기는 양손 검.
이시영은 자그마한 몸집이 무색하게 거대한 양손 검을 치켜들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몬스터를 향해 달려 나갔다.
―크륵?
오우거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눈앞의 작은 인간이 우스운 것이겠지.
오우거는 이시영을 향해 양 주먹을 뻗었다.
지극히 단조로운 주먹 공격에 불과했으나 그 위력이 콘크리트를 가뿐하게 깨부술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
그때, 일직선으로 달리던 이시영이 순식간에 진로를 비틀었다.
멀리서 이시영을 지켜보던 몇몇 헌터가 무심코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오우거의 주먹이 정말로 이시영을 후려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우거의 육중한 일격은 아슬아슬하게, 고작 한 뼘의 차이만을 두고 허공을 갈랐다.
괴물의 주먹이 불과 20㎝ 떨어진 곳을 갈랐음에도 불구하고 이시영의 얼굴은 변함없이 고요했다.
이시영은 오른발을 힘차게 내디뎌서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찰나의 순간, 칼날이 회전하면서 오우거의 허리를 깊숙하게 잘랐다.
―카하아아악!
오우거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시영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움직일지 예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시영은 곧바로 양손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양손 검이 이번에 노린 곳은 오우거의 목덜미.
칼날은 매우 가볍게 오우거의 두툼한 목 근육을 절단했다. 툭 하고 몬스터의 머리통이 떨어졌다.
땅바닥에 머리가 착지하면서 흙탕물이 튀었다.
이시영은 온몸으로 고스란히 진흙물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러나 아주 잠깐이었다.
곧이어 머리를 잃어버린 오우거의 몸뚱어리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
새빨간 피가 이시영의 머리를 적셨다. 가느다란 얼굴선을 따라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이시영을 자연스럽게 씻겨줄 때까지, 이시영은 한동안 피투성이가 되어 전쟁터를 오시했다.
겨우 두 번.
이시영은 겨우 두 번 검을 휘둘러서 A급 몬스터를 죽였다.
인간 세상에서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재앙이라 불리는 오우거를 말이다.
이시영이 나머지 백여 마리의 몬스터를 바라보자, 순전히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틀림없이 ‘몬스터들이 움찔거렸노라고’ 이시영의 부하들은 느꼈다.
이시영이 조용히 외투를 벗어 던졌다.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이 땅에 떨어졌다. 거기에 드러난 것은 평범하게 천 옷을 입은 여자였다.
그녀에게 있어 갑옷은 거추장스러운 껍질에 불과한 것일까.
이시영이 무전기를 향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죽음을.”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
그렇기에, 그녀를 대신하여 감정을 토해내는 것은 나머지 헌터들의 몫이었다.
“우오오오오――!”
“사냥이다, 애새끼들아! 사냥이다!”
“괴물 자식들한테 죽음을!”
이시영이 보여준 신기(神技)에 헌터들이 드높이 함성을 질렀다.
헌터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어서 싸움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는 이시영의 직속부하들이었다.
이들의 숫자는 이백 명으로, 철저하게 장창방진을 이루어서 진지를 보호했다.
두 번째는 이시영의 제2부대에 소속되긴 했지만 직속부하는 아닌 용병들이었다.
이들은 장창이 아니라 양손 검이나 할버드 따위를 들고서 이시영의 직속부대를 보호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원서가 이끄는 사백 명의 헌터였다.
그들은 첫 번째 부류와 두 번째 부류의 뒤에 숨었는데, 틈이 보일 때마다 몬스터들을 향해 총알과 탄두를 발사했다.
요컨대 이중, 삼중으로 이루어진 전열이 몬스터 군단에 맞서기 시작했다.
타앙!
원서가 저격총에서 눈을 뗐다. 그녀가 날린 특제 총알은 정확히 B급 몬스터의 미간을 꿰뚫었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솜씨였으나 원서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군요.”
원서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이시영이 홀로 날뛰고 있었다.
제2부대가 비록 냉병기로 무장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부대 단위로 움직였다.
단독으로 고위 몬스터와 맞붙는 것은 미친 짓거리였다.
장창을 길게 내 빼어서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내고, 그 틈을 노려서 제1부대가 총알을 퍼부었다. 이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시영은 단기로 행동했다.
그녀는 춤을 추듯이 이 빗속의 전장을 헤집었다.
미처 장창방진이 대비하지 못한 경로로 오우거가 달려들 때, 제2부대가 막아내기에는 버거운 A급 몬스터가 다가올 때, 이시영은 어김없이 그곳으로 달려가서 몬스터의 모가지를 베어버렸다.
“저것이 반도 유일의 S급 헌터…….”
원서가 감탄했다.
때때로 몬스터가 전열에 들이닥쳐서 세 명이고 네 명이고 헌터들이 죽어 나갔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단지 그뿐이었다.
이시백이 이끄는 원정군은 놀라울 만큼 효율적으로 몬스터 군단을 도륙하고 있었다.
모든 헌터의 머릿속에 낙관적인 관측이 떠올랐다.
‘이거라면 할 수 있다.’
거의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작전에 희망이 보였다.
오로지 두 사람.
‘언제 나타나는 것이냐.’
‘어서, 와 봐.’
최후방에서 전군을 통솔하는 이시백.
최전방에서 적군을 도륙하는 이시영.
두 명만이 초조한 마음으로 진정한 적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아직도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인가?’
‘그러다가 내가 전부 죽여 버릴 거야.’
‘네놈이 얼른 나오지 않으면…….’
‘등장하기도 전에, 끝날걸.’
두 사람의 눈동자에서 예리한 사냥꾼의 살벌함이 번들거렸다.
거대한 산자락이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쿠웅 하고 땅바닥이 울렸다.
다시금 쿠웅 하고 대지가 진동했다.
이시백이 망원경을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으며.
이시영은 양손 검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산군(山君)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