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16화 (116/142)

건달의 제국 116화

제15장 ? 하늘과 땅 사이(8)

“마, 말도 안 돼…….”

한참 뒤에야 대령은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향해 내뱉은 말이 아니라 혼자 중얼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S급 몬스터가 두 마리라니……. 이런 사태는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비좁은 북방의 지역에 S급 몬스터가 동시에 출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

“대령. 믿기지 않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먼저 상부에 보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는 가장 먼저 보고를 듣게 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

차장은 이렇게 말하는 동시에 수사과장한테 눈짓을 주었다. 수사과장은 단번에 상관의 의향을 이해하고 휴대전화기를 꺼내었다.

부산 지방경찰 청장한테 연락하려는 것이었다. 잠시 뒤, 수사과장이 S급 몬스터의 동시 출현에 대해 보고하는 목소리가 회의실에 나지막하게 내려앉았다.

군인들도 불안한 눈초리로 대령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대령은 단지 넋이 나간 얼굴로 천천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보고…… 북방의 안보가 붕괴되고 말았다는 것을, 내가 보고하라고……?”

“걱정하지 말게. 동시 출현 따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령의 잘못이 아니야. 만에 하나라도 자네의 상관한테서 책망을 받을 일은 없을 거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신히 정신이 들었으리라.

대령은 떨리는 손으로 부하한테 보고를 명령했다. 부하는 군례를 올리더니 급하게 회의실 바깥으로 뛰어갔다.

각자 상부에 대한 연락을 끝마치고 나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당장에라도 파장할 것처럼 어두워졌다.

차장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여유롭게 회의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군. 우리들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쯤에서 회의를 끝내고 서둘러 본부로 귀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만.”

“……거짓 발표입니다.”

대령이 불쑥 말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차장은 순간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뭐?”

“거짓 발표입니다. 이시백, 그놈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공작했습니다.”

대령이 고개를 치켜들어 강변하기 시작했다.

경찰과 군인, 양편 모두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자 노력한 차장조차 여기에는 얼굴이 찡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인가. 왜 여기서 갑자기 이시백 용병단장이 튀어나오나.”

“S급 몬스터들은 서로 근접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중령이 ‘매복’하고 있었다고 보고했으니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보름 전, 이시백은 한 모험자가 S급 몬스터 바로 근처에서 마력을 측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S급 몬스터가 두 마리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겁니다!”

대령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대령은 말을 이어나갈수록 흥분하여 소리쳤으나 그와 정반대로 회의실의 공기는 싸늘해졌다.

군인들마저 어정쩡한 낯빛을 내보이고 있었다.

“……판단이 너무 비약하지 않았는가. 휴대용 마력 측정기는 그렇게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없다.”

차장이 말했다.

“게다가 S급 몬스터들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설령 가까이 있었다고 해도 언제부터 그랬는지 판단할 근거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이시백 용병단장이 일부러 정보를 은폐했다는 주장은 억측에 지나지 않아.”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묵적으로 동의를 표시한 것이었다.

S급 몬스터의 동시 출현은 인재(人災)가 아니라 자연재해였다.

“대령. 나는 귀관의 행실에 간섭해도 좋을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회의를 진행하는 좌장으로서, 대령이 회의에 참여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령은 회의가 시작했을 때부터 문제의 책임을 다른 조직에 떠넘기는 것만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듯하다.”

“…….”

대령은 분노로 인해 표정이 잔뜩 구겨진 채로 입을 다물었다.

“언론에 대해서는 우리 경찰을 트집 잡고, 이번 참극에 대해서는 또다시 이시백을 트집 잡는다. 원인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걸 책임전가와 헷갈리면 끝이다. 회의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부디 다음 회의에서는 더 건설적인 의견을 개진해 주게.”

“……명심하겠습니다.”

회의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이날, 북방으로 급파한 부대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에 군부는 크게 동요했다.

다소 서두른 감이 있긴 있었지만 군부는 확실하게 S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도록 정예 병력과 최고급 무기를 동원했다.

그 같은 자원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가 자칫 ‘군부는 무능하다’라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

장성들은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11

“---군바리들이 정중하게도 낚싯줄에 걸려준 모양이다.”

백산 용병단의 아지트에는 평소보다 긴장된 공기가 흘렀다.

백산에 소속된 간부들뿐만이 아니라 인천 보스인 이시영까지 끼어든 탓일까.

아니면 이제부터 진정한 의미에서 S급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까.

간부들은 한껏 딱딱해진 얼굴로, 상석에 앉은 이시백을 바라보았다.

이시백이 천천히 말했다.

“S급 몬스터가 한 마리에 불과하다면 군바리들이 독단적으로 작전을 강행할지도 모른다. ……유현도. 네가 예상한 것이 맞아 떨어졌다. 아무래도 이 나라의 군인들은 우리를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것 같군.”

“아하하. 어쩌다가 감이 맞은 건데요, 뭐.”

유현도가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애당초 백산 용병단이 정찰해 낸 S급 몬스터는 두 마리였다.

이건 이시백이 전생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정찰이었다. 전생에서 평양은 두 마리의 S급 몬스터에게 함락 당했다.

본래 만주에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몬스터는, 제각각 수백 마리의 부하들을 이끌고 남하했다.

‘S급 몬스터들이 강남산맥에 숨어 있다. 철저하게 탐색하라.’

다섯 달 전, 이시백은 모험자들한테 그렇게 의뢰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찾으라는 명령에 모험자들은 질색했으나 의뢰금이 워낙 두둑했기에 순응했다.

찾으면 좋고 못 찾으면 그만이었다.

약 150일에 이르는 탐색 끝에 겨우 S급 몬스터가 파악되었다.

깊은 산맥 한복판에 숨어든 녀석들이라 찾아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시백은 목표했던 바를 달성할 수 있었다.

즉시 기자 회견을 준비하려던 그때.

‘잠깐만요, 단장님!’

선전대장 유현도가 이시백을 제지했다.

‘지금 저희가 S급 몬스터를 두 마리 찾았다고 발표하면 안 돼요.’

‘음? 이유가 무엇이냐.’

‘기자 회견이 끝나면 단장님은 분명히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될 거예요. 진짜 인기인이 되는 거죠. 하지만 단장님이 너무 잘나간다 싶으면, 경찰은 몰라도 군인들이 초강수를 둘지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거예요.’

유현도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혹시라도 군인들이 정예 부대를 보내서 S급 몬스터들을 토벌해 버리면 우리는 완전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리는걸요. 대책이 필요해요.’

‘……그럴듯한 시나리오이다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좋겠느냐?’

‘간단하죠!’

유현도가 눈빛을 반짝거렸다.

‘그냥 몬스터의 숫자를 한 마리로 줄여서 발표해 버리면 전부 괜찮아져요.’

‘한 마리로?’

‘네. 군인들은 S급 몬스터가 설마 두 마리나 같은 장소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할걸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우리의 거짓 발표를 믿어버릴 게 확실합니다. 그러면 설령 정예 부대를 편성해서 출격시키더라도, 딱 「S급 몬스터 한 마리만 잡을 수 있을 정도로만」 파견하겠죠.’

유현도의 엉뚱하지만 천재적인 면모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그녀가 주장한 그대로였다.

자그마한 북방의 땅에 S급 몬스터가 동시에 출현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이시백이 거짓으로 발표한다 해서 그 사실 여부를 의심할 사람 또한 전무했다.

‘그럼 군부의 정신줄을 쏙 빼놓을 수 있어요. 정예 부대가 전멸하고 나면 당분간 군부는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할 거예요. 글쎄, 길어봤자 하루겠지만요! 그래도 하루만 있으면 저희 용병단한테는 충분하고도 넘치죠!’

‘……과연. 하루의 여유인가.’

‘군인들이 어정쩡하게 당황하고 있는 사이, 바로 그때 저희 쪽에서도 토벌단을 출격시키는 거예요. 그럼 완전 체크 메이트라니까요!’

체크 메이트.

그런 이야기가 몇 주일 전에 오갔다.

유현도의 혜안은 적중했다.

군인들은 백산 용병단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섰지만, 신속한 대응이 무색하게도 참패를 맞이했다.

단지 2이라는 숫자를 1로 줄임으로써 백산 용병단은 군부의 계략을 완벽하게 막은 것이었다.

‘우리는 강하다.’

이시백이 회의실에 앉은 간부들을 쳐다보았다.

원서, 유현도, 순우경, 장나래, 이시영.

누구나 전생에서 드높은 명성을 떨친 인재들이었다.

그것이 허명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려는 듯, 백산 용병단은 저 군부와 경찰을 상대하면서 단 한발자국도 밀리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온 지 벌써 2년이 넘었는가.’

몇 번이나 위험을 무릅썼다.

도박에 가까운 작전도 이따금 펼쳤다.

하지만 이시백은 자신의 실력과 행운을 총동원하여 현재와 같은 위용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백산이라면, 역사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이시백이 확신을 품고 입을 열었다.

간부들 전원이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군들. 이제 곧 우리는 S급 몬스터들을 토벌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군바리들이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전멸했다지만 생존자가 한두 명은 있을 터. 반드시 생존자들을 발견해서 우리가 보호한다.”

이시백이 간부들과 일일이 시선을 맞추었다.

전원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S급 몬스터들을 사냥할뿐더러 군장병들을 보살펴 준 셈이 된다. 군인들에게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리어 군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이 뉴스가 되어서 전 국민의 안방에 전달된다고 상상해 보도록.”

군부의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반면에 백산 용병단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더 나아가, 우리가 토벌에 성공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경찰의 협력자가 언론에 정보를 뿌릴 예정이다. 군부가 독단적으로 작전을 실행했다가 처참히 실패를 맛보았노라고. 요컨대 우리 백산 용병단은 ‘국가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어낸 조직’으로 거듭난다.”

그렇다.

국민들은 S급 몬스터가 두 마리씩이나 나타났다는 것에 절망하겠지.

하지만 국민들이 절망할수록, 절망한 만큼이나, 몬스터들을 물리친 백산 용병단에 열광적으로 환호할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절대적인 지지를 손에 넣게 된다.”

사회의 밑바닥을 떠도는 쓰레기 헌터들.

그들이 세운 제국을 향해 압도적인 지지가 쏟아진다.

이시백과 백산 용병단은 이 나라를, 이 반도를 완전히 개혁할 수 있는 힘을 쥐게 된다.

“원서, 너는 제1부대를 이끌어라. 이시영, 자네는 제2부대를 이끌어주게. 나는 제3부대를 통솔하면서 제1부대와 제2부대의 뒤를 받치겠다.”

원서와 이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작전은 진즉에 수립되어 있었다.

방금 이시백의 명령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 것에 불과했다.

이시백이 나직하게 말했다.

“모든 헌터에게 명령하라. 그리고 움직여라.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직접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자 백산의 간부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낮은 화음을 이루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예, 대부.”

대부 이시백.

휘하, 제1부대 헌터 400명. 부대장 원서.

휘하, 제2부대 헌터 420명. 부대장 이시영.

사실상 현재 반도의 총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예들이 카라반 트럭들을 몰고 움직였다.

북방의 명운을 건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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