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09화 (109/142)

건달의 제국 109화

제15장 ? 하늘과 땅 사이(1)

1

회의실의 무리가 웅성거렸다.

군인들은 저마다 미심쩍은 눈길로 차수현 대장을 쳐다보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시백은 이제 21살이 된 애송이인 것 같네만. 그리고 내가 알기로 이시백은 광수대에서 확실히 목줄을 잡고 있는 애완견 아니었나? 평양을 몰락시킬 때도 철저히 그쪽의 꼭두각시로 움직이지 않았나.”

군장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양 몰락.

이 작전은 정부의 고위직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빨갱이를 모조리 때려잡았을 뿐만 아니라 지하경제에 파묻혀 있던 자금을 회수했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완벽한 작전’이었다는 것이 정치가들의 평가였다.

눈앞에서 서류를 읽고 있는 차수현 대장은 다름 아니라 그 작전을 성사시킨 장본인……. 요컨대 반도에서 제일 촉망받은 인재 중의 인재였다.

일각에선 큰 실수가 없는 이상 경찰청장까진 무난히 올라갈 것이라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왔다.

“예,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다릅니다.”

“진실이라고? 제법 거창한 말을 쓰는군.”

그런 차수현 대장이 소문을 부정했다. 군인들은 다소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평양 몰락 작전에 정치가들마저 모르는 뒷사정이 있다는 뜻인가?

반면, 이미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찰들은 다만 묵묵히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군인들 중에서 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무엇이기에 그러는가, 차 대장.”

“평양 몰락 작전은 경찰이 계획하고 실행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실제로는 여기 보이는 이시백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가능한가? 상대는 한낱 소규모 용병단의 헌터에 불과했다. 어쩌다 우연히 김일성의 후손을 발견해서 광수대에 연락한 것이 전부라고 들었네만.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공로이긴 하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만이 아니다?”

차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자료를 봐주십시오. 이시백은 지난해 8월 중순쯤 평양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10인 위원회의 일석을 차지한 공손범 일파를 제거. 미리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반역수괴 리을령의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직후, 김일성의 후손을 발견하여 리을령마저 제거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 뒤로 이시백은 평양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차수현 팀장이 보고서에서 눈을 떼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두세 달입니다.”

“……과연.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군.”

군인들이 서늘한 눈초리로 서류를 살펴보았다.

영세한 소규모 용병단장이 석 달 만에 북방의 대도시를 차지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말이 안 되는 시나리오였다. 증거 자료가 없었다면 군장성들조차 ‘웬 헛소리냐’ 하고 일축했겠지.

“하지만 이건 경찰들이 전적으로 밀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적당한 헌터를 물색하여서 바지사장으로 올려놓은 것 아닌가.”

“경찰 측에서는 김일성의 후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독재자의 핏줄이라는 정치적 카드를 발견하여 써먹은 것은 우리 경찰이 아닙니다. 이시백, 이 남자가 자력으로 일구어낸 결과물입니다.”

차수현 대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무서우리만치 똑똑한 남자입니다. 이시백이라면 우리의 계획을 간파하여 역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시백이 레겐보겐에서 서울 보스와 인천 보스를 포섭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흠.”

거기까지 듣고 준장이 피식 웃었다.

겨우 그런 소리를 하려고 밑밥을 깔아두었나 하고 깔보는 안색이었다.

“이보게, 차수현 대장. 어디 솔직하게 말해보도록 하게. 자네들은 레겐보겐 유람선 작전이 실패한 원인을 억지로 한 명의 헌터한테 갖다 붙이려는 것 아닌가?”

군인들이 수군거렸다.

준장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었다. 21살짜리 애송이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해석보다야 단연 경찰들이 정치적 희생양을 내밀려 한다는 해석이 그럴듯했다.

군인들은 경멸과 비웃음이 섞인 눈초리로 야유했다.

“천하의 광수대도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군. 정치와 무관하게 오직 국내의 치안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원.”

“이래서 국내에 틀어박혀 헌터들만 상대하는 경찰들이 안 된다는 거다. 무엇이든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순수한 마음이 없어, 순수한 마음이. 제대로 국가의 안녕을 꾀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구먼.”

경찰들이 발끈했다.

“군인들이야말로 몬스터만 상대하다보니 머리통까지 몬스터를 닮아버린 것 아닌가?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두개골에 똥만 가득 찬 괴물이 아니라 똑같은 인간이다. 인간은 얼마든지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조금 더 성실하게 생각하게나!”

“뭐? 지금 우리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회의에 임한다는 얘기인가!”

“자료를 다시 봐라.”

부산지방경찰청 차장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이시백은 공손범 일파를 숙청하는 데 ‘우연히’ 부장판사의 독녀를 이용했다. 게다가 북한계 주민들이 가장 증오하는 일본계 마피아를 무너뜨려 또 ‘우연히’ 리을령의 신임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우연히’ 김일성의 후손을 찾아내서 리을령을 숙청했다.”

차장이 탁자를 쿵 하고 내리쳤다.

“두 번까지는 우연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 번이나 반복된다면 그건 우연 따위가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목적성이 있다!”

“그래서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군인들 중에서 한 대령이 입가를 비틀었다.

“이시백이라는 그 헌터가 길동무 프로젝트를 간파했다는 증거 말입니다. 지금 경찰에서 주장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소관이 듣기로는, 전부 추론으로 이루어졌을 뿐인 것 같습니다만.”

“강력한 심증이 있다는 것일세.”

“심증…… 이른바 형사들의 ‘감’이군요.”

군인이 명백히 비아냥거렸다.

“차장님. 몹시 실례되는 말씀입니다만, 지금 우리는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고 있습니다. 겨우 한 명의 헌터를 감옥에 집어넣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고작 심증만으로 나랏일을 정하자는 것입니까?”

“경찰을 얕보지 마라.”

차장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대령을 노려보았다.

“현장에는 현장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자네들은 몬스터 군단을 때려잡는 데엔 프로일지 몰라도, 헌터들을 상대하는 데엔 초보자에 지나지 않는다.

애당초 우리 경찰은 레겐보겐을 침몰시키는 작전에 회의적이었어!”

“현장이라. 말씀 잘하셨습니다.”

대령이 슬그머니 차수현을 쳐다보았다.

“거기 있는 차수현 대장이 ‘현장’에서 이시백을 관리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정말로 이시백이 그만한 거물이었다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차수현 대장한테 책임이 있는 것 아닌지?”

“뭐…….”

“일개 헌터에 불과했던 이시백을 어엿한 용병단장으로 만들어준 것도 광수대. 다시 용병단장에서 평양의 패권자로 만들어준 것도 광수대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시백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회의에서 토로하다니요?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옳은 소리라며 맞장구를 쳤다.

곳곳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차수현 광수대장은 좌중의 비웃음을 한 몸으로 받아내며 침묵했다.

“외람되지만 소관이 조금 더 상식적인 견해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차수현 대장은 평소처럼 이시백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화 도중에 그만 길동무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흘려버린 것입니다.”

부산지방경찰청 차장이 벌떡 일어섰다.

“지금 우리 경찰이 정보를 누출했다는 것인가!”

“굳이 정보 누출처럼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주 약간의 힌트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가령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인근 해역에 고속정을 한두 척 준비해 두라든지…….”

대령이 여유롭게 차장의 분노를 받아넘겼다.

엘리트 군인 입장에서 경찰의 분노는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군인들은 지금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지의 몬스터 군단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뿐더러, 역시 각국의 군대와 협력하고 반목하며 함께 피를 흘렸다.

기껏해야 반도를, 그것도 사실상 반도의 일부분만을 관리하는 경찰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전해 듣고 이시백은 고속정을 준비했을 겁니다. 유람선이 침몰하기 시작하자, 이시백은 당연히 주위의 보스들과 함께 탈출하고자 했겠지요. 이 기회에 서울 보스와 인천 보스에게 눈도장을 찍어두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우리는 서울 보스와 인천 보스, 두 명의 거물을 죄다 놓쳐 버린 것입니다. 물론 차수현 대장의 심정도 이해합니다. 이시백은 경찰에서 귀중하게 키워낸 프락치이니 말입니다. 함부로 잃어버리기 아까웠겠죠. 안 그렇습니까, 차수현 대장?”

차수현이 가까스로 한숨이 나오는 걸 인내했다.

이래서 군인들과 같이 일하는 게 싫었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인생에서 경험해 온 것이 달랐고, 추구하는 목표도 달랐으며, 특기 분야마저 달랐다. 높으신 분들의 정치놀음 때문에 괜히 두 조직이 합동 작전을 펼치게 되어 이런 희극이 벌어졌다…….

“저는 길동무 프로젝트에 관하여 단 한마디도 이시백한테 암시를 주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까? 단 한마디라도 암시를 주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차수현 대장이 초고속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이시백을 이용한 덕분입니다. 이제 와서 이시백을 버리기엔 아깝다. 그런 감정이 행여라도 끼어든 것은 아닙니까.”

“어처구니없는 폭론이로군, 대령!”

더 이상 듣기 힘들었는지 부산지방경찰청 차장이 노호를 터뜨렸다.

관할이 다른 조직에서 감히 경찰의 유망주를 책망하고 있었다.

이건 경찰의 권위와 체면을 제멋대로 뭉개버리는 짓거리였다.

차장은 당장에라도 대령의 머리통에 총알을 날릴 기세로 소리쳤다.

“차수현 광수대장은 개성의 인신매매조직들을 소탕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훈을 세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도대체 무슨 증거가 있다고 차수현 광수대장의 인격을 의심하고 모욕하는가!”

“예, 말이 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증거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슬쩍 고개를 숙이고서 대령이 머리를 들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달리 대령의 입가에는 여전히 비웃음이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심증은 있습니다. 차수현 대장이 아까 펼쳤던 주장도 증거는 없고 심증만이 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

“우리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광수대장을 비난하는 것이 공분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경찰에서 아무런 물적 증거도 없이 이시백 한 명에게 모든 사태의 원인을 돌리는 것 역시 적잖게 분노와 실망감을 안겨줍니다.”

차장은 말문이 막혔다. 뭐라 반론하고 싶었으나 논리적으로 논파 당했다.

군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상관들이 보내오는 지지를 피부로 느끼게 되자, 대령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현장에서 일해 온 전문가의 감을 무시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감이란 것에 진짜 증거가 없으면 말이 안 됩니다. 회의, 특히 경찰과 군부 양 조직의 간부들이 모인 회의에서 심증만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려 들다니요? 언어도단입니다.”

“…….”

“경찰에선 우리를 불성실하다 비난했습니다만, 똑같은 말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조금 더 성실하게 회의에 임해 주십시오. 이래서야 정치가들한테 제대로 된 회의 보고서조차 올리지 못할 겁니다.”

경찰들이 분한 얼굴로 이에 힘을 주었다.

회의는 결국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끝났다.

이번 작전의 실패는 어떤 한 조직의 과오가 아니라 그저 ‘불운한 사고’로 결론이 나버렸다.

앞으로 경찰과 군인은 보다 긴밀하게 연계할 것을 다짐했는데, 이건 상투적인 말에 불과했다.

전형적으로 ‘시간만 많이 쏟아부었지 결과물이 없는 회의’였다.

회의가 끝나고 경찰청 복도의 한쪽 구석.

“……안 되겠어. 군인들은 헌터를 너무 얕보고 있다.”

차장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차수현 광수대장과 함께 연초를 피웠다.

“이시백은 만만한 헌터가 아니야. 21살짜리 애송이가 평양을 차지했다면 그건 오히려 대단히 경계해야 할 사태이지, 절대 얕보면 안 된다. 그걸 군인들은 이해해 주지 못하고 있어…….”

“그렇지요.”

“하지만, 수현아. 아무래도 이시백을 건드리는 건 위험해 보인다.”

차장이 한숨을 쉬었다.

“군바리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저건 자칫 일이 잘못되면 수현이 너한테 덤터기를 씌울 요량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시백은 본래 너의 담당에 놓여 있었으니까.”

“거 참,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제 모가지는 잘 관리하고 싶은데 말이지요. 하하.”

“웃을 일이 아니다.”

차장이 진지하게 차수현을 바라보았다.

“이시백이 정말로 너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 같더냐?”

“……글쎄요. 아직은 그런 움직임이 없긴 합니다. 잘 협조해 주고 있고. 하지만 제 감이 불길하다고 계속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무 잘 협조해 주는 것이 도리어 의심스럽다고 할까요.”

“흐음.”

차장이 담배 연기를 공중에 천천히 흘렸다.

“만약 그놈이 통제에서 벗어나려 든다면? 차수현. 네가 그놈을 제어할 수 있겠냐?”

“제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차수현은 말을 꺼내고서 대답이 다소 미진하다는 것을 느꼈다.

제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어해야만 했다.

차수현은 평소의 게으른 눈매를 지우고, 한없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상관에게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아니, 반드시 제어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수현은 의심스러웠다.

과연 자신이 이시백을 통제할 수 있을까? 이미 이시백은 경찰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만 것 아닐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경찰의 통제 따위는 없었던 것 아닌가.

“…….”

차수현이 깊이 생각에 잠겼다. 경찰의 감이 맹렬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수현은 마땅한 대책을 떠올리지 못한 채, 그저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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