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00화 (100/142)

건달의 제국 100화

제13장 엘 클라시코(El Cl?sico) (7)

“뭐 하느냐. 얼른 오지 않고.”

“아, 네에!”

기생은 허겁지겁 이시백에게 달려갔다.

이시백이 벌인 학살극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녀는 잠깐 굳어버린 것이었다.

기생이 다가오자, 이시백은 권총에 탄창을 교체하면서 지시를 내렸다.

“저쪽에서 총을 쏘고 있는 여자, 보이냐.”

“단발인 여자애 말하는 건가요?”

“그래. 인천의 이시영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저 여자한테 간다.”

기생이 울상을 지었다. 이시영의 명성은 워낙에 대단하여 한낱 삼패 기생이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왜 이시백이 ‘목숨이 위험하다’라고 미리 경고했는지 알 법했다.

이시백은 그녀가 공포에 떠는 것을 알아채고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기생들에게는 재미난 특징이 하나 있지.”

“예?”

“업소에서 함께 일하는 남자 종업원과는 절대로 사귀지 않는다. 헌터들 중에는 제법 재산이 많은 남자도 있는데 말이다. 종업원이랑 사귀면 일터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뒤범벅되어버려, 결국 기생으로서 이류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지.”

“아, 맞습니다. 확실히 오래된 불문율입니다…….”

기생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과 똑같다. 이른바 제대로 된 헌터들에게는 저마다 불문율이 하나씩 있다. 내 경우에는 20살이 안 된 어린애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저기서 총질을 하고 있는 이시영은 ‘비전투원인 여자는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가 자신만의 불문율이다.”

“아…….”

기생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감탄했다.

이시백은 기둥에 등을 기대어서 슬쩍 이시영의 동태를 살폈다.

이시영은 시종일관 방어적으로 총격전에 임하고 있었다. 오직 자신을 노리는 헌터에게만 총탄을 발사했다.

“몬스터든 인간이든 살아 있는 것들을 썰다 보면 자기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지지. 그렇다면 헌터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대로 괴물이 되어버리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자신만의 인간성을 확보해 두거나. 이시영에겐 비전투원인 여자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인간성이야…….”

“…….”

“이번에는 그 인간성을 이용해 준다.”

이시백이 기생의 옆머리에 권총을 갖다 댔다.

갑작스럽게 머리에 총부리가 닿자 기생이 기겁했다.

이시백은 기생을 인질처럼 다루며 차폐물에서 벗어났다.

그가 몸을 드러내자마자,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라도 사방에 처져 있는 것처럼, 이시영이 휙 하고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았다.

“쏘지 마라. 이시영.”

이시백이 기생의 머리에 총부리를 더 가까이 가져가며 소리쳤다.

“나는 평양특별자치시를 총괄하는 이시백이다. 이름은 들어봤겠지.”

“…….”

이시영이 감정이 거세된 눈동자로 지그시 이시백을 바라봤다.

인형과 같은 얼굴이다 라고 이시백이 무심코 생각했다. 자신도 무표정한 얼굴로 따지면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시백은 감정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뿐이었다.

반면에 이시영은 감정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가만히 이시백을 향해 권총을 겨누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차가워서,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살인기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 살려 주세요.”

눈치 빠르게도, 기생은 인질 역할을 확실히 연기해 주었다.

이시백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감에도 불구하고 이시영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단지 마약에 중독되어 퀭하게 음영이 진 눈동자로 이시백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이시백이 또박또박 말했다.

“보다시피 지금 파티장은 혼란의 극치다. 너한테 죽임을 당한 용병단장도 벌써 서너 명은 되겠지. 설령 네가 무사히 유람선에서 탈출하더라도, 사건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다. 단장을 잃은 용병단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널 적대할 거다.”

“…….”

“이시영. 이건 너에게 있어서 큰 위기이다. 고립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동맹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평양을 총괄하고 있다. 너에게 충분한 조력을 건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이시백이 이시영의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이시영은 권총을 정확히 이시백의 이마에 조준하고 있었다.

만일 상대방이 변덕을 부려서 방아쇠를 당길 경우, 이시백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절명하리라.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이시백은 바닥에 권총을 떨어뜨렸다.

“……잠시나마 여자를 인질로 삼아서 너한테 접근한 것을 사과하지. 하지만 나에게도 목숨을 보장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대, 대부님?”

“수고가 많았다. 너는 안전한 곳에 숨어 있거라. 사태가 일단락되면 같이 탈출하자꾸나.”

이시백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기생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비켰다.

이제 이시백과 이시영, 두 용병단장만이 남아 대치하게 되었다.

“이시영.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임시적인 협력자가 될 수 있다.”

“이유.”

이시영이 짧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권총을 내려놓지 않고 물끄러미 이시백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협력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것인가.’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지만 이시백은 차분했다. 이시영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여 대는 인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과거, 전생에서 사람들은 인형처럼 무표정한 이시영을 견원시하며 배척했다.

‘살육인형’이라든지, ‘인간의 마음이 제거된 살인기계’라든지. 실제로 이시영을 직접 마주하면 그녀의 섬뜩한 표정에 누구나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반도에서 유일무이한 S급 헌터인 이시영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무리 또한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질투를 뒤덮을 카리스마나 처세술이 이시영에게는 부족했다.

이시영은 몬스터를 학살하는 것 이외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떠들든 내버려 두었다.

결과적으로 처세술의 부족이 이시영의 목을 옥죄었다.

보스 김진하를 사살했다는 의혹이 붙자, 너도나도 가리지 않고 이시영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용병단은 문자 그대로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소나기처럼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이시영은 외로이 쓸쓸하게 전사했다.

S급 헌터치고는 너무도 허망한 최후라고 봐야겠지.

‘이번에는 다른 삶을 보장해 주마, 이시영.’

동태상이 서울의 패자로 부상하는 미래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시백이 말했다.

“방금 말한 대로 너에게는 동맹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네가 필요하다. 인천의 세력이 무너져 내리면 인천뿐만이 아니라 서울도 요동치게 된다. 서울이 혼란스럽게 변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다. 후방이 동요하면 결국 나의 평양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그게 아니야.”

이시영이 단칼같이 이시백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얼굴 표정은 물론이고 목소리에도 감정의 파편이 일절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목소리가 유독 투명하게 울렸다.

“당신, 내 총탄에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도 다가왔어. 죽음이 두렵지 않아?”

이건 이시백으로서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이시백이 눈썹을 찡그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러니까 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접근한 것이다. 인천이 붕괴하면 서울이 흔들리고, 서울이 흔들리면 평양이 불안해진다. 결국 너와 내가 손을 잡고 안정을 꾀하는 편이 현명하다.”

“거짓말.”

이시영이 단언했다.

“자기가 관리하는 도시가 약간 불안해질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목숨을 걸고 나한테 접근해?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야. 하나뿐인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없어. 진짜 이유. 당신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나한테 다가왔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

“…….”

“안 그러면 당신을 신뢰할 수 없어.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당장 등을 돌려서 당신이 왔던 곳으로 걸어가. 그리고 다시는 접근하지 마.”

과연.

이제 20살밖에 안 된 여자라고 가벼이 여겼거늘,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야생적인 본능을 가진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이쪽의 변명을 간파하고 본심을 말하라 요구해 왔다. 이시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본심을 말해도 그게 본심인지 아닌지 어떻게 파악하는가?”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야. 내가 판단할 문제.”

“결국 주관적인 영역이다. 차라리 우리의 협력에 어떤 이익이 발생하는지 계산하는 쪽이 현명하지 않은가. 이익에는 거짓이 없다. 누구나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응.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네.”

이시영이 조금 더, 방아쇠를 당겼다.

손가락에 아주 약간의 힘만 주더라도 총알이 튀어 나갈 수 있도록.

“하지만 나는 아직 어린애라서. 흑색 아니면 백색밖에 몰라. 마지막으로 질문할게. 왜 목숨을 걸고 나한테 접근했어? 나를 어떻게 이용할 속셈이야?”

“…….”

이시백은 어딘지 모르게 납득했다.

이시영은 반도가 유일하게 배출해 낸 S급 헌터였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지만, 무수한 사람들이 그녀를 이용해 먹으려고 접근했겠지.

정치가, 군대, 경찰, 용병단.

뱃속에 능구렁이를 키우는 작자들은 죄다 그녀의 명성을 써먹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시영은 극도로 방어적인 성격이 되어버렸다.

자신한테 다가오는 인간이란 인간은 모두 사기꾼으로 비추었다.

사람을 불신하게 되었고, 거짓말이란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다.

이시백은 이시영이 어떤 종류의 성격을 지녔는지 이해했다…….

하면, 이야기는 간단.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적이 한 명 있다.”

정말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주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이시영과 같은 성격의 인간을 설득하는 지름길이었으므로.

“적?”

“그래. 적이다. 서울 강남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작자인데, 현재 살아 있는 어느 헌터보다 똑똑하고 음흉하다. 만일 서울이 혼란기에 돌입한다면 그 작자가 패권자로 부상할 것이다. 나는 바로 그런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고 싶다.”

이시영이 뚫어지라 이시백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그녀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부족해.”

“뭐?”

이시영이 고개를 도리질 쳤다.

“거짓말은 아니야. 하지만 조금 부족해. 왜 평양을 사수하고 싶은데? 왜 서울이 어떤 사람한테 독점 당하는 게 두려운데? 당신의 지위가 흔들릴까 봐? 아니면 당신의 목숨이 위협받을까 봐?”

“그건…….”

이시백이 주저했다.

이시영은 지금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캐묻고 있었다. 이시백의 경우, 자신의 지위나 목숨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원서 아가씨와 윤시아의 안녕이 중대할 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이 이시백의 약점.

원서와 윤시아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시백을 잡고 흔들 수 있는 약점이었다.

이시영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진짜 이유를 말해달라고 요구했어.”

이시백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한테 그걸 알려주는 것은 자기 스스로 목줄을 건네주는 일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시영의 눈동자를 다시 살펴본 순간, 이시백은 모종의 확신이 들었다.

이 여자는 누군가의 약점을 쥐고 흔들어댈 인간이 아니었다. 그럴 성격이 안 되었고, 그럴 재주도 갖추지 못했다.

이시백이 각오를 정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두 명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평양의 안정이, 서울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다른 사람을 지키고 싶어? 그게 진짜 이유?”

“그래.”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이유다.”

“…….”

이시영이 빤히 이시백을 응시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시영은 상대에게 겨눈 권총을 스르륵 아래로 내렸다. 총부리가 사라지자 이시백이 마음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S급 헌터한테 맨손으로 다가가서 설득을 시도하다니. 목숨이 두 개 있어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이시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특이한 사람.”

“음?”

“특이한 사람이라고 했어.”

이시영이 권총을 허리춤에 집어넣고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니코틴 패치였다.

이시영은 팔뚝을 걷어붙이더니 니코틴 패치를 한 장 붙였다. 그걸 지켜보던 이시백이 눈썹을 찡그렸는데, 그녀의 팔뚝에는 이미 살색 니코틴 패치가 4장이나 달라붙은 것이었다.

다섯 번째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서 이시영이 이시백을 쳐다보았다.

“금연 중.”

“…….”

아무리 니코틴 패치가 금연 보조제라고 해봤자 몸에 5장이나 붙이면 진짜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더 해로웠다.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역시 최상급 헌터들은 다 머리에 나사가 하나씩 풀린 것인가 하고 이시백이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이시영이 말했다.

“배에서 탈출할 때까지는 당신 지시에 따를게. 명령해 봐. 내가 뭘 하면 돼?”

“우선 감사를 표하마. 내 말을 믿어줘서 고맙다.”

이시백이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이걸로 일시적이나마 반도에서 제일 뛰어난 헌터와 손을 잡았다.

보스 김진하를 유람선에서 탈출시킨다는 목적은, 이로써 절반 이상 달성된 것과 같았다.

이시영이 머리를 저었다.

“공짜가 아니야. 고용비, 시간당 2천만 원.”

“……뭐?”

“정말로 싸게 해주는 거야.”

이시영이 매우 진지한 얼굴로 강조했다.

이시백이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최상급 헌터는 이상한 녀석들밖에 없노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