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92화
제12장 마지막 독재자(13)
13
경찰 병력이 평양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거대 용병단들은 갑작스러운 경찰의 개입에 당황하였다.
“의원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이들도 그 나름대로 중앙 정부에 인맥이 연결되어 있었다.
용병단장들은 즉각 전화를 걸어서 정부의 권력자들에게 항의했다.
“평양의 자치가 중대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의원님과 저는 평양에 자유가 얼마나 필수적인 사항인지에 관하여 이미 합의점을 찾고 있었다 생각했습니다만, 현재의 사태는 우리의 우정을 의심하게 만드는군요.”
-미안하네, 마철 단장. 이건 거국적인 시야에서 결정된 사항이야. 나 같은 일개 의원이 뭐라 해서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닐세.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대답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용병단장들, 특히 10인 위원회의 좌장인 마철(馬鐵)은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평양의 뒷손들한테 정치가들이 받아 챙긴 ‘구린 돈’이 얼마나 막대했는가.
이럴 때 자신들에게 협조하라고 건네준 뇌물이었다.
그런데 정작 뇌물이 효과를 발휘해야 할 부분에서 정치가들이 버벅거렸다.
먹을 건 먹고 의무는 방치하겠다는 심보일까. 괘씸했다.
“……의원님과 저 사이에 선물이 오간 흔적들이 자료로 남아 있음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만약의 실수로 인해 자료들이 신문사로 흘러들어 간다면, 우리의 우정은 그날로 끝납니다. 이미 의원님은 최소한의 경고조차 전달해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신뢰를 크게 잃었습니다.”
명백한 협박.
정치 생명이 끝장나기 싫으면 당장 경찰 병력을 되돌려라.
그런 의미였다.
-다시 한 번 미안함을 전달하겠네. 이건 결정된 사항이야.
하지만 협박은 통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서둘러 발걸음을 빼야 하는 정치가들이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끄떡하지 않았다. 마철은 눈썹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는 지금 제각기 다른 정치가들과 4번이나 얘기했고 이번이 5번째였다.
그런데 5명 전원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태가 심상치가 않았다. 단순히 경찰이 움직인 것보다 조금 더 거대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중앙 정부가 설마 아무런 생각 없이 벌집 같은 평양을 들쑤셔 놓았겠나?
“……의원님. 지금 평양에서 경찰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정부에서 어떤 트집을 찾았길래 이토록 겁 없이 기세를 올리는 것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어, 마철 단장. 사실 나도 오늘 아침에서야 이게 무슨 사단인지 겨우 알아냈으니까. 다만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우정을 생각해서 한마디만 조언하겠네. 적어도 이제부터 한 달 동안, 자네는 언론을 이용할 수 없을 걸세. 꿈 깨게나.
정치가가 비웃음이 실린 어투로 말했다.
-자료를 풀어도 괜찮네. 하지만 단장이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화려한 효과를 볼 수는 없을 것이야. 절대로. 그리고 한 달 동안 자네의 입이 막혀 있는 동안, 평양에 산책을 떠난 경찰들이 자네의 아지트에서 ‘조금 더 흥미로운 자료’들을 수없이 많이 발견하겠지…….
“의원님, 지금.”
-그렇다네. 협박일세. 우리 둘 모두 뒤가 깨끗한 인간은 아니지 않는가? 바람이 강하게 불 때와 약하게 불 때를 잘 파악하게나, 마철 단장. 그럼 이만.
통화가 끊겼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휴대전화기를 마철은 손으로 가만히 이마를 짚었다.
손끝에서 두터운 주름살이 느껴졌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주름살 너머로 두통이 느껴졌다.
“영문을 모르겠군…….”
현재 10인 위원회의 전력은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두 세력으로 나뉘어서 대판 분쟁을 벌이는 바람에, 어떤 용병단이든 무시하지 못할 피해를 입고 말았다.
요컨대 지금이 10인 용병단의 힘이 가장 허약한 시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들이 지금 순간을 의도적으로 노리고 개입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경찰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만한 병력이 부족했다.
자금력으로 어떻게 해보려 해도 정작 뇌물을 받아야 할 정치가들부터 손을 털었다.
마철은 팔다리가 죄다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뭐냐. 어떤 명분을 쥐고 있는 거냐…….”
마철이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비단 마철뿐만 아니라 이번 분쟁에 끼어든 나머지 6개의 거대 용병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꼼짝도 못하고 경찰들이 평양의 주요 시설들을 확보하는 걸 지켜보아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용병단들 사이에 때 아닌 휴전이 찾아들었다. 평화로운 휴전이 아니라 어딘지 불안하고, 당장에라도 폭탄이 터질 것만 같은 휴전이었다. 10인 위원회는 숨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사흘 뒤.
텔레비전에서 총리의 대국민담화가 방송되었다.
용병단장들은 담화를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우리 중앙 정부에서는 평양이 과거 북한의 망령들이 돌아다니는 악의 총본산이며, 국가반역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마지막 한 명까지 박멸되는 그 순간까지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담화가 끝난 이후에도 텔레비전에는 어지러이 특보가 돌아다녔다.
「김일성의 후손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반란을 계획.」
「수백 명 단위의 사병조직을 구성하여 평양 전복을 시도해.」
「이틀 전, 과거 북한의 세력이 평양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켜.」
그중 어떤 것도 자극적이지 않은 문장이 없었다.
기자들은 쉴 새 없이 평양 시내의 풍경을 비추면서 이 대형 사건에 대해 보도했다.
때마침 평양은 10인 위원회 내부에서 벌어진 분쟁 때문에 도시 이곳저곳이 처참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화면에 비춘 도시의 풍경은 정말로 무장반란이 휩쓸고 지나간 곳처럼 보였다.
“…….”
마철은 할 말을 잃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10인 위원회의 내부 분쟁이 ‘빨갱이들의 국가 전복 시도’로 바뀌었다.
평양에 돌멩이처럼 흔히 널린 마약 조직, 무기 밀매 조직, 밀주 조직이 순식간에 ‘빨갱이들의 자금을 몰래 비축하기 위한 조직’으로 둔갑했다.
모든 밀무역이 중단되었으며, 작업장이 일시적으로 몰수당했다.
그러나 가장 가관인 것은 따로 있었다.
-이번 무장반란은 근 50년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양의 비밀조직은 철저하게 김일성의 후손을 보호하고 있었으며, 평양을 무력으로 제압한 다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재건을 선포할 계획이었습니다.
화면에 차수현 팀장이 나와 침착하게 발표를 이어나갔다.
차수현 팀장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과거의 북한이 진짜 부활할 것만 같았다.
모든 발언에는 단단한 증거물이 있었고, 붉은 처녀 용병단의 구체적인 강령과 작전서까지 공개되었다.
심지어 마철조차도 저기에 넘어갈 뻔했다.
-이러한 불시의 사태를 빠르게 진압할 수 있었던 것은, 평양 현지의 민간인으로부터 긴밀한 협조를 받은 덕분이었습니다. 이분들은 국가전복 세력의 간교한 음모를 가장 먼저 알아내고 즉시 경찰에 신고해 주었습니다.
-무장반란군은 이 선량한 시민의 존재를 알아차렸습니다. 반란군들은 시민을 협박하고 사살하기 위해 약 100명에 이르는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만일 우리 경찰 병력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반란군의 극악무도한 총탄에 의해 시민은 사살당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시민은,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도리어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반란군의 수괴이자 김일성의 후손을 격살했을 뿐만 아니라 적군의 지휘관을 생포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수사팀을 대표하여 이 시민의 애국심과 용기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환영해 주십시오.
-백산 용병단을 운영하는 민간협력자 이시백 님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이 돌아가고 이시백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차수현 팀장은 허리를 굽혀 가며 이시백에게 악수를 청했다.
완전히 상전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곧이어 이시백은 단상에 올라서서 준비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마철이 눈썹을 곤두세웠다.
“이시백?”
왜 이시백이라는 젊은이가 저곳에 있는가.
마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하게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이시백의 입에서는 정부인사와 경찰이 발표했던 내용이 똑같이, 다만 다른 단어들로 윤색되어 흘러나왔다.
국가를 위협하는 빨갱이 세력. 악의 총본산 평양. 그리하여 짧은 발표가 끝나려 할 때, 심상치 않은 문장이 마철의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설령 당장의 수사가 종결되더라도 이번같이 불미스러운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저희는 민간협력자로서 정부부처와 경찰에 계속해서 아낌없이 협력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시백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평범하게 말을 끝맺는 관용어구들이었으나, 마철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계속해서 협력하다니. 언제까지 협력하겠다는 뜻인가? 한 달인가? 두 달인가? 그것도 아니면 반년인가?
혹은 그 이상인가.
마철은 알 수 없는 꺼림칙함에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평양을 덮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근거와 재료가 지금의 마철에게는 너무나 부족했다.
마철은 10인 위원회의 좌장에 오른 이후,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맛보았다.
14
금수산태양궁전에 10인 위원회가 강제로 소집되었다.
궁전은 고작 며칠 만에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실탄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경비를 섰고, 궁전 꼭대기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그걸 보며 용병단장들은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인제 와서 태극기라니, 농담도 못 되는군…….”
“여기를 버리고 떠난 지 반백 년도 더 지났거늘.”
수십 년 동안 금수산태양궁전의 게양대에는 깃발이 달린 적이 없었다.
국기가 부재한 게양대는 그 자체로 평양의 무법성을 상징했다.
이것은 궁전 정면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그려진 ‘FUCKING GREAT!!’라는 문구와 함께 이 도시의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용병단장들은 마치 자신들이 직접 모욕당한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경찰들의 안내에 따라 단장들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기묘한 침묵이 회의실을 짓눌렀다. 10인 위원회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참석자의 숫자는 7명으로 줄어들었다.
공손범, 하세가와 노부유키, 리을령, 세 명의 거두가 죽임을 당하거나 숙청되었다.
먼저 마철이 말문을 텄다.
“이번 사태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가진 사람, 혹시 있는가.”
“……미안하지만 우리도 거의 아무것도 몰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정보만 주워 먹고 있지. 똥통에서 기르는 돼지들처럼 말이야.”
러시아 마피아의 여두목, 라라 안티포바가 불쾌해하며 투덜거렸다.
“이 나라의 정부는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이봐, 어글리 코리안들. 내가 러시아 사람이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어차피 반도의 북방을 지킬 의지도 없는 주제에 왜 지들이 터줏대감인 것처럼 난동을 부리는 건데.”
“정치다, 안티포바. 반도의 남쪽에서 사는 놈들은 빨갱이라는 말만 들어도 DNA 단위에서 치를 떨어댄다. 서커스용 사자를 죽이는 검투사한테 박수를 보내는 것과 똑같아.”
조선족 계열의 용병단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만약 저들이 말하는 대로 리을령이 김일성의 후손을 여태껏 숨기고 있었다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해가 돼. 마지막 빨갱이의 우두머리를 처치한 검투사한테 모두가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보내겠지. 단단한 권력의 탄생이란 거다.”
“그리고 우리는 웃기지도 않은 서커스에서 광대 노릇을 해줘야 하고? 하. 누가 이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적어서 제출했어? 그 새끼의 면상에 RPG를 한 대 처넣어주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리겠는걸.”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보여드리게 되어 미안하군.”
라라 안티포바가 바닥에 침을 뱉은 순간이었다.
회의실의 정문을 통해서 이시백이 걸어 들어왔다.
소총을 든 경찰들이 이시백을 좌우로 호위했다
이시백이 경찰들을 대동하고 입장하자, 용병단장들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었다.
이시백이 그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회의실 복도에 깔린 경찰이 스무 명이고 궁전 전체에 배치된 경찰까지 헤아리면 이백 명이다. 자네들이 여기서 총격을 벌이고 생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을 추천하지.”
“자네들?”
상석에 앉아 있던 마철이 이시백을 노려보았다.
“며칠 보지 못한 사이에 말이 상당히 짧아졌군, 이시백 단장. 게다가 입에 아주 자연스럽지 않나. 경찰들이 칭찬 몇 마디 던져 주니 이마에 주름살이라도 늘어난 기분인가. 여기 모인 단장들 중에 네놈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말을 조심해라.”
이시백이 슬쩍 마철을 흘겨보았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면서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마철. 현명하지 못하군.”
“……방금 말한 걸 듣지 못했나. 애송이.”
“잠깐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어릴 적에 항상 나를 패고 다니던 동네 한량이 있었다. 나는 뭣도 모르고 얻어맞았다. 철없는 고아였으니까 말이다. 반항할 방법도 모른 채 세월을 보냈지.”
이시백이 천천히 마철을 향해 걸어갔다.
둔중하고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였다.
“그러다가 나는 이 세상에 총이라는 도구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어쩌다 우연히 그 물건을 손에 넣었다. 어느 날, 동네 한량이 여느 때처럼 건들거리며 다가와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나는 조용히 총을 꺼내서 그 남자에게 겨누었다……. 마철, 한량이 뭐라고 말했는지 예상이 되는가.”
이윽고 이시백이 마철의 코앞에 멈추어 섰다.
“살려 주십시오, 였다.”
“…….”
“서른 살도 더 먹은 남자가 열 살짜리 꼬마한테 목숨을 구걸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손에 총자루가 들렸느냐이지, 누가 더 먼저 이 지상에 얼굴을 들이 내밀었느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자네는 내가 열 살에 얻었던 교훈을 50살이 되도록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모양이군.”
이시백이 차가운 눈동자로 마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건조하게 메마른 입술이 열렸다.
“내게 목숨을 구걸하게, 마철. 회의는 그다음에 진행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