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77화 (77/142)

건달의 제국 77화

제11장 코스모스 질 무렵에(3)

4

“소좌 동무, 대동강 이남을 죄 정리했습니다.”

“쪽바리 놈들이 엉덩이에 불난 것처럼 도망친다는 보고입니다.”

“기습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붉은 처녀 용병단의 사령부는 명백히 긴장이 이완되어 있었다.

당초 기습을 가하기 직전에는 용병단의 간부들도 안색이 딱딱했다.

요 근래 10인 위원회 내부에서 항쟁이 벌어진 적은 무척 드물었다.

기껏해야 1년 전, 상권을 두고 충돌하여 서너 명이 죽은 것이 전부였다.

반면에 이번 항쟁은 본격적이었다. 규모가 작다 할 뿐이지 양 용병단이 전력을 기울여서 맞부딪쳤다. 게다가 붉은 처녀 용병단에선 이걸 국제적인 항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인민군인 자신들이 민족의 숙적인 일제국주의자들한테 철퇴를 내린다……. 그런 명분으로 온몸을 무장한 것이었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일전. 붉은 처녀 용병단은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급습이 완전히 성공되자 간부들의 안색도 약간이지만 여유로워졌다.

가끔씩 옅게나마 미소를 짓는 모습도 보였다.

“소좌 동무, 전방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하세가와 노부유키의 친위대가 움직인 모양입니다. 야쿠자들이 차량을 타고 일제히 출발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움직였나. 습격이 개시한 지 이제 삼십 분이 다 되어 가는데. 느리군.”

리을령 소좌가 껌을 질겅질겅 씹었다.

“아무래도 일제 놈들은 평화에 사육된 돼지 무리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 사자는 토끼를 물어뜯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야. 마음껏 총알을 퍼부어주도록.”

“예!”

리을령 소좌는 야전책상에 올려진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에서 전해지는 보고에 따라 부하들은 지도에다 이리저리 경로를 그렸다.

적어도 지금까지 붉은 처녀 용병단은 상대편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었다.

“상황은?”

“일제 놈들은 두 부대로 나뉘어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세가와 노부유키가 탄 차량은 일백 명가량을 이끌고 대성구역으로 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거지를 노리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쪽의 대가리부터 날리겠다는 뜻이겠지. 흐, 아주 멍청이는 아니야.”

리을령 소좌가 미소를 지었다. 새하얀 이빨에 짐승의 살벌함이 감돌았다.

평양 일본계 자본의 우두머리가 대부대를 거느리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쪽도 본거지에 정예병을 집결시켰다.

대단한 전투가 되리라. 리을령 소좌는 전장의 초연을 맡아 흥분하고 있었다.

“괜히 사방에 지핀 불부터 끄겠다고 이쪽 창고 저쪽 창고 정신없이 돌아다녔으면, 내가 직접 아지트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좋아. 아주 좋아. 야쿠자 놈의 내장 냄새가 벌써부터 기대되는걸. 나머지 다른 경로는?”

“중구역입니다. 여긴 서른 명 정도가 향하고 있습니다. 뭘 노리는 것일까요, 소좌 동무? 그쪽 방향에는 창고도 작업장도 없습니다만.”

리을령 소좌가 턱을 쓰다듬었다.

“백산 용병단의 아지트겠지. 우리가 주적이라는 게 밝혀졌다고 해도, 야쿠자들 입장에서 백산은 여전히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둘로 나누었나……. 이거 원, 배짱이 두둑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욕해야 할지.”

리을령 소좌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일제 놈들이 단원을 서른 명이나 파견했으면 백산은 끝장이로군요. 거긴 정규 단원이 열 명도 안 되지 않습니까. 아지트에 틀어박혀서 저항해도 숫자가 그렇게 밀려서야 별다른 도리가 없을 겁니다.”

“글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하지.”

리을령 소좌가 땅바닥에 껌을 뱉었다.

이번 항쟁에서 리을령 소좌는 백산을 조금도 지원하지 않았다. 어제 창고의 경비원을 전부 바꿔치기해 준 것. 그게 리을령 소좌가 건네준 지원의 전부였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리을령이 항쟁을 일으킬 명분 용도에 불과했으니 제대로 된 지원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뭔가 보여줄 것 같다는 말이지. 그놈.”

리을령 소좌가 이시백의 무뚝뚝한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오늘 새벽에 습격이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이시백한테 알려주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과연 이시백이 어디까지 준비했고 어디까지 실력을 보여줄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만약 기대 이상의 성과를 증명해 낸다면, 공화국을 재건하는 혁명역사에 동참시켜도 좋으리라…….

5

“곧 있으면 백산 새끼들의 아지트입니다, 형님.”

“좋다. 전원,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돌격하는 거다.”

도천회 용병단의 공격 대장 오타 마사히로(太田政弘)가 차분하게 말했다.

무전기에서는 일본어로 목소리들이 어지러이 얽혔다.

전황을 보아하니 이제 막 본대와 붉은 처녀 용병단이 충돌한 것 같았다.

전세는 호각. 그렇다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빨리 백산을 처리하고 본대를 도와주러 가야겠지.

그것이 오타 마사히로의 판단이었다.

“형님, 아지트가 육안으로 보입니다.”

“음. 차폐물을 확보해 가며 우선 접근한다.”

오타 마사히로는 자신이 있었다.

백산은 창설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애송이 집단이었다.

용병단장이 20살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무심코 코웃음이 흘러나왔으나, 자문사가 고작 16살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웃음조차 안 나왔다.

‘용병단을 소꿉놀이로 취급하는 건가’ 하고 가볍게 경멸마저 들었다.

‘빨갱이들한테 기생하고 짭새들한테 기생하는 벌레들 같으니. 어린 것들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평양에 발을 들인 걸 평생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마.’

오타 마사히로가 소총을 꾹 잡은 순간이었다. 펑 하고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별안간 뜨거운 액체가 자신의 얼굴에 튀었다. 운전석에서 차량을 몰던 용병단원의 얼굴이 1/3 정도 날아갔다.

“뭣……!”

운전수가 쓰러지자 차량의 방향이 급격하게 꺾였다.

오타 마사히로는 뭔가를 생각할 틈새도 없이 손을 뻗어 핸들을 잡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차량은 도로에서 벗어나 애꿎은 건물에 부딪혔다.

“크윽!?”

오타 마사히로가 머리를 감싸며 충돌에 대비했다. 곧이어 충격이 오타 마사히로의 전신을 강타했다.

차량 뒤 칸에 탄 용병단원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개골 안의 뇌수가 요동치는 감각에 오타 마사히로는 눈앞이 하얘졌다.

의식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말초적인 감각과 같은 것만이 남아, 오타 마사히로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었다.

쥐약을 집어 먹은 생쥐가 본능적으로 집 바깥으로 뛰쳐나가듯, 오타 마사히로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차량에서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흐읍…… 크으윽, 하아…….”

갈비뼈가 고통스러웠다. 한두 개쯤 부러진 것이리라.

그렇지만 갈비뼈의 통증에 더해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마시자, 오타 마사히로는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왔다.

머리가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부하들이 다른 차량들에서 내려 허겁지겁 뛰어왔다. 오타 마사히로에게는 그 광경이 어쩐지 흐리멍덩하게 비추었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부하들이 저렇게 뛰쳐나오면 안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왜 뛰어나오면 안 되는가.

오타 마사히로는 충격에 의해 둔탁해진 의식으로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했다.

“오타 형님!”

스무 명이 넘는 단원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때였다. 가장 앞서서 달리던 용병단원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졌다.

빨갛고 하얀 것들이 마치 슬로우 모션 장면처럼 공중에 화악 퍼졌다.

그제야 오타 마사히로는 자신을 괴롭힌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며 오타 마사히로가 울부짖었다.

“……피해라, 멍청이들아! 저격병이다!”

단원들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사람이 말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아주 약간의 공백. 어딘가 숨어 있을 저격병한테는 사냥감을 노리기에 최적의 시간이기도 했다.

단원들이 미처 발길을 돌리기도 전에 재차 한 사람의 머리가 꿰뚫렸다.

“저격수다!”

“건물 아래에 숨어!”

용병단원들이 뿔뿔이 산개했다. 움직임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기습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허둥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지휘관인 오타 마사히로가 탈락해 버린 탓이었다.

“젠장할…….”

오타 마사히로도 힘겹게 몸을 이끌어서 골목에 숨어들었다. 몸 상태를 확인해 보니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 아니었다.

아예 금속 파편이 가슴살을 찢고 박혀 있었다. 새빨간 피가 흐르는 것이 매우 불길했다. 응급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랐다.

‘왜 나를 안 노렸지……?’

오타 마사히로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누구인지 몰라도 저격수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운전석이 유리창으로 가려지지 않아서 굴절이 없었다고는 하나, 제법 빨리 움직이는 대상을 한 번에 쏴 맞추었다. 솜씨에 의문을 가질 여지가 없었다.

‘지휘관인 나를 초장에 죽였다면 더 큰 혼란을 연출할 수 있었어. 그런데 왜 내가 아니라 운전수를 노린 거냐. 빗나갔다? 빗나갔는데 우연히 운전수가 맞은 건가…….’

오타 마사히로는 상의를 벗어서 골목 바깥에 펄럭거려 보았다. 곧바로 총알이 날아들어 상의를 갈가리 찢었다.

귀신같은 실력이었다. 오타 마사히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골목 바깥을 쳐다보았다.

“형님, 제가 구하러 가겠습니다!”

저 멀리서 부하 한 명이 소리치더니 이쪽을 향해 질주했다. 안 돼, 라고 오타 마사히로가 명령하기도 전에 총알이 부하의 몸통을 헤집었다.

부하가 허무하게도 길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오타 마사히로는 머릿속이 벼락에 맞은 것처럼 찌릿찌릿 울렸다.

‘미끼! 설마, 나를 미끼로 삼아서 부하들을 사냥하겠다는 거냐……!?’

여느 용병단이나 그렇겠지만 도천 용병단의 야쿠자들은 특히나 의리로 끈끈하게 묶여 있었다.

열도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반도의 북방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낯선 타지의 생활은 그들끼리 단결할 것을 강요했다.

상관이 부상을 입어 서서히 죽어나가고 있는데 그걸 내버려 둘 부하는 없었다.

만약 오타 마사히로가 저격에 당해 죽었더라면, 부하들은 분노에 휩싸여서 앞뒤 가리지 않고 아지트를 향해 돌격했겠지. 적들에게 있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위험했다.

반면에 지금 상황은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오타 마사히로는 반죽음이 되어 널브러졌다.

부하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이 묶였다. 저격수의 냉정하다 못해 싸늘한 판단에, 오타 마사히로는 등골이 차가워졌다.

“뭐냐……. 어떤 놈이냐……. 어떤 악귀가, 이런 짓거리를…….”

애당초 평양의 헌터 중에 저격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타 마사히로는 잘 몰랐지만 저격병이란 게 되고 싶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병종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았다.

고도의 훈련. 상당한 자질이 필요했다.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다면 군대나 경찰에서 침을 흘릴 정도로 탐스러운 인재였다. 굳이 헌터 따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잠깐만, 경찰?’

오타 마사히로의 두 눈이 커졌다.

‘광수대……. 부산 광수대 놈들이다! 그놈들이 백산을 도와주고 있는 거야!’

오타 마사히로가 품 안을 뒤적거렸다. 경찰이 이번 항쟁에 개입했다. 이 정보를 어서 오야붕한테 알려주어야만 했다.

붉은 처녀 용병단-백산 용병단-광수대, 세 조직이 모종의 목적을 품고 일본계 야쿠자를 토벌하려 들었다.

“젠장……!”

주머니에 휴대전화기가 없었다. 차량에서 충돌을 당했을 때 잃어버린 것일까.

오타 마사히로는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지금 사태를 타파하여서 오야붕께 연락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광수대의 전력에 밀려 전멸당하고 만다!

“오타 형님!”

저편에서 부하 한 명이 또다시 달려들었다.

오타 마사히로는 부하를 제지하는 대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저격과 저격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저격수가 부하를 처치한다고 해도 곧바로 자신을 노리기란 어려웠다.

불과 수초에 지나지 않겠으나, 죽을힘을 다해 질주하면 단원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도착할지도 몰랐다.

‘해낸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친동생과 같은 부하를 희생하는 전법.

그렇지만 보다 많은 형제를 살리기 위해, 오타 마사히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어차피 나도 곧 죽는다! 저승길에 외롭게 보내지는 않으마!’

필사의 각오.

야쿠자들이 멋을 부리며 사무라이 정신이라 추앙하는 그것을, 오타 마사히로는 심장에 새겨 넣으며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부하가 차폐물에서 벗어나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총알이 날아들어 부하의 신체를 사정없이 뚫었다.

‘지금이다!’

오타 마사히로가 골목에서 뛰쳐나갔다.

한 발자국, 다시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가슴에서 격통이 몰려왔다.

“크으으읏……!”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 마사히로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생명이 초 단위로 깎여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야붕한테 경고를 줄 수만 있다면. 가증스러운 빨갱이들한테 제대로 한방을 먹여줄 수만 있다면, 목숨 따위야 얼마든지.

퍼헉.

아주 짧은 찰나에.

어떤 소리가 오타 마사히로의 몸을 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는 기우뚱거리며 길바닥에 엎어졌다.

숨이 멎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고통스러웠던 숨결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다.

“형님!?”

“오타 형님! 오타 형님!”

저 멀리서 부하들이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속하게 어두워지는 의식의 틈새에서 아 하고 오타 마사히로가 깨달았다.

‘저격수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는가…….’

그런데도 적은 지금까지 한 명인 것처럼 위장해서 저격했다.

즉, 오타 마사히로가 죽음을 각오하고 뛰쳐나올 것까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것이었다.

적은 실로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있었다. 오타 마사히로는 싸늘하게 식어가며 스스로를 저주했다.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었다…….’

아마도 자신은 지옥에 떨어지리라.

그리고 지옥에서 오야붕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감하며, 도천 용병단의 공격 대장 오타 마사히로는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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