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67화 (67/142)

건달의 제국 67화

제9장 쓰레기통에 피어난 장미꽃 (7)

7

‘좆집.’

헌터들끼리 낄낄 웃으면서 금수산태양궁전에 붙인 별명이었다.

천박하기 그지없게도 건물의 모양새가 볼록할 철(凸) 자를 닮았다나.

누군가가 수십 년 전에 농담 삼아서 부른 별칭.

그러나 뒷골목에서는 이런 유머 센스를 호평하게 마련이었다.

어느 용감무쌍한 헌터는 아예 건물에 올라가서 궁전의 전면에다 큼직하게 ‘FUCKING GREAT!!’ 하고 빨간색 스프레이를 뿌려 버렸다. 이때부터는 아무도 이 용법이 퍼지는 걸 막지 못했다.

“불쾌한 농담이로군요.”

“어엉? 뭐가.”

“저 스프레이 말입니다.”

이시백이 걸어가면서 궁전의 벽면을 가리켰다.

리을령 용병단장이 고개를 돌려서 그쪽을 쳐다보았다.

“아, 저거? 내가 탯줄 끊고 나오기 전부터 저랬는데. 왜.”

“아무리 그래도 과거에 북방을 다스렸던 가문이 기거하던 곳 아닙니까. 한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이기도 하고요. 조금 더 깨끗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리을령 용병단장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별안간 하하핫 웃었다.

사실 이시백은 금수산태양궁전의 별명에 관심이 없었다. 도시의 환경미화에는 더더욱. 그러나 눈앞의 리을령 소좌(40세·독신)가 뼛속 깊은 공산주의자, 그것도 공화국식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녀가 존경하는 ‘수령 동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줘서 나쁠 게 없었다.

“야아, 너 생긴 것대로 완전 꼴통이구나? 왜? 저거 마음에 안 들어?”

“……죄송합니다. 단지 조금 지나치게 무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라이 새끼.”

리을령 용병단장이 이시백의 등허리를 팡팡 때렸다.

한바탕 욕설을 쏟아냈지만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적어도 기분이 나쁜 기색은 조금도 풍기지 않았다.

이시백은 자신의 아첨이 우회로를 돌아서 적중했음을 알았다. 곧이어 이어진 리을령 용병단장의 첨언은 확신에 더욱더 무게를 실어주었다.

“아, 참. 내가 또라이라고 부르는 건 전부 칭찬이다?”

거참 희한한 칭찬이로군.

하여간 용병단장들 중에 정상인이 없지라고 이시백이 생각했다. 그 용병단장들의 목록에 자기 이름 석 자도 들어간다는 사실은 모른 채.

“요즘 세상에 또라이들이 너무 적어. 이게 심심해 죽겠거든. 진지한 새끼들이 세상을 병들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진지해지지 마라고, 신참 또라이.”

“예. 명심하겠습니다, 소좌님.”

“뭐, 명심? 명심한다고? 프하하핫. 얘가 오늘 나를 웃겨 죽이려 드네.”

웃음소리는 일행이 궁전에 들어갈 때까지 좀처럼 멎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호위대장만을 대동하고 접견실에 들어갔다. 작은 접견실이었다. 리을령 용병단장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아 담배를 피웠다.

“편하게 앉아.”

“예,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무슨. 이거 숨 쉬는 것도 허락받고 쉴 녀석일세. 아.”

리을령 용병단장이 자신의 호위대장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떡대가 벌어진 호위대장이 공손하게 쇼핑봉투를 내밀었다. 덩치에 안 맞게 손놀림이 무척 다소곳했다.

“선물이야. 별건 아니고 대충 비싼 포도주랑 사케나 집어넣었어. 신기하게 대체로 포도주 싫어하는 놈은 사케 좋아하고, 사케 싫어하는 놈은 포도주를 좋아하더라고. 알코올 들어갔으면 알아서 처먹을 것이지 혓바닥 고급스러운 새끼가 많아요.”

“감사합니다.”

이시백이 두 손으로 쇼핑 봉투를 받았다. 꽤 묵직했다. 그것과 동시에 순우경도 미리 준비해 온 선물상자를 조용히 건네었다.

리을령 용병단장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스듬히 올려둔 다음, 한 손으로 상자를 받았다.

“어쭈. 어린 친구가 인사성도 밝네. 그런데 어린애들이 너무 비싼 거 뇌물로 갖다 바치고 그러는 거 아니다. 싸가지 없어 보이니까 적당히 자제…… 응?”

리을령 용병단장이 눈썹을 쨍그렸다. 상자가 너무 가볍고 작았다. 이런 크기에 이런 무게여서야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반지일까. 리을령 용병단장은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뭐야. 여기서 풀어봐도 괜찮냐.”

“물론입니다.”

리을령 용병단장이 가볍게 상자를 열었다. 선물은 번거롭게 포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받는 사람이 외팔이라는 걸 고려했는지 최소한의 장식만이 달려 있었다. 리을령 용병단장은 상대의 사소한 배려심을 눈치채며 선물의 정체를 내려다보았다.

“모쪼록 마음에 드시면 좋겠습니다.”

“…….”

그녀는 말없이 선물을 집었다.

상자에 담긴 물건은 한 갑의 평범한 담배였다.

라블린시아처럼 궐련 형태로 제조되는, 특수한 마약이 아니었다. 정말로 단순한 담배였다. 붉은색 담뱃갑에는 황금빛으로 ‘평양’이라 적혔다.

차마 뇌물이라 부르기에도 옹색하겠지. 실제로 리을령 소좌의 호위대장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자신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 감히 누구 앞에서 장난질을 치는 거냐. 새파란 애새끼들이 주제도 모르고 짭새만 믿고 설치더니 어디서 눈깔을…….”

“조용.”

리을령 용병단장이 나지막하게 뇌까렸다. 호위대장이 미간을 좁히고 상관을 쳐다보았다. 왜 자신을 제지한 것이냐. 눈초리에 그런 불만이 담겨 있었다.

“소좌님, 여기는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제가 애송이들한테 분수가 뭔지 똑바로 가르치겠습니다.”

“쪽팔린 새끼 같으니. 네 대갈통 무식한 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그러냐.”

“예, 예에?”

리을령 용병단장이 쓰게 웃었다. 그녀는 담뱃갑을 열어 궐련 한 개비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잘 보란 듯이 궐련을 흔들었다.

“빡통아. 너 이거 무슨 담배인지 모르지.”

“죄, 죄송합니다. 소좌님. 처음 보는 품종입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단종된 지 수십 년도 더 된 물건이니까.”

리을령 용병단장은 한참이나 담배를 바라보았다. 시선에는 어딘지 모르게 그리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구했어?”

“단종된 담배를 수집하는 마니아 수집상들이 더러 있습니다. 평양을 싹 뒤져 보니 두 명이 있더군요. 한 사람은 죽어도 넘겨줄 수 없다고 버텼고, 다른 한 명은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에 넘겨주었습니다.”

이시백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실 저 평범한 담배 한 갑을 오백만 원에 구입했다. 수십 년 동안 진공 포장이며 습기며 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관리했다는데 가격을 깎을 도리가 없었다.

유현도가 밤을 새우며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 이시백은 다름 아니라 저 물건을 찾아다녔다.

“수집상 말로는 향기가 보존되도록 갖은 수단을 다 썼다고 합니다. 피우셔도 안전합니다.”

“글쎄. 어차피 나도 기억하지 못할 맛인데, 뭐. 하지만 감사히 피워 볼까…….”

리을령 용병단장이 궐련을 입에 물었다. 그녀가 코트에 오른손을 집어넣자, 이시백이 얼른 일어서서 라이터를 갖다 댔다.

리을령 용병단장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중지와 약지로 V자를 그리며 담배를 집었다. 그 끄트머리에 이시백이 공손히 불을 지폈다.

치익, 칙.

불꽃이 튀며 궐련이 타올랐다. 이시백이 능숙하게 손을 거두었다.

리을령 용병단장은 담배를 빨아들였다. 마치 엽궐련을 피우듯이 리을령은 폐가 아니라 단지 입안으로만 연기를 굴렸다. 그리운 듯한, 그립지 않은 듯한 양기가 혀를 타고 잔잔하게 퍼졌다.

“……오랜만이군.”

“그때 시절은 어땠습니까, 소좌님.”

“어떻긴 뭐 어때. 개불알 같은 시대였지.”

리을령 용병단장이 천천히. 그야말로 천천히 연초를 만끽했다.

단장들끼리 나누는 넋두리가 무슨 뜻인지, 두 명의 호위대장은 이해하지 못하여 눈꺼풀만 껌뻑였다. 단지 저 담배가 겉모습과 달리 보통 담배가 아니라는 것만은 예측할 수 있었다. 리을령 용병단장이 낄낄 웃으면서 설명했다.

“과거 공화국에서 당간부들한테 배급하던 담배란다. 빡대가리야.”

“……아. 그, 그랬습니까?”

“오냐아, 네 새끼는 그냥 빨갱이 딱지 떼라. 이제 보니까 할아버지가 찾아와도 알아보지 못하고 문전박대할 놈이 네놈이야.”

“시, 시정하겠습니다!”

호위대장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래 봬도 붉은 처녀 용병단은 옛 공화국의 정신적 후계자를 자칭하고 있었다.

북한 계열 주민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는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용병단에서 최고참이라는 호위대장이 정작 공화국의 상품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행여라도 소문이 퍼지면 제대로 체면을 구기게 생겼다.

“야아, 진짜로 맛없다.”

리을령 용병단장이 그윽한 눈길로 궐련을 이리저리 뒤집어 살폈다.

“옛날에는 뭐 좋다고 이딴 물건을 피웠을까? 하긴 신문지로 말은 담배도 피웠으니 이거면 아주 고급이었지. 나도 아버지 눈 피해서 한두 번 피워 본 게 전부야. 뭐, 그냥 수령 동지께서 하사하신 물품이라기에 몰래 훔친 거지만…….”

자기 아버지가 본래 구라가 심했노라고, 리을령 소좌가 웃으면서 말했다.

“소좌님의 조부께서는 만주에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어,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죽었지. 그게 떼 놈들이랑 마지막으로 합공작전 펼쳤을 때였을걸. 공화국의 마지막 정예가 거기서 다 뒈졌으니 할아버지는 그래도 황천으로 떠날 날짜를 잘 고르신 거야.”

나라는 빨리 멸망해도 군대는 느릿하게 소멸한다.

공화국의 통치 가문이 사라지고서도 군벌들은 각지에 남았다. 리을령 용병단장의 조부는 그중 한 명으로, 공화국 호위사령부에서 부사령관까지 맡았던 최고위 간부였다.

조부-부친-리을령 소좌로 이어지는 핏줄은 적어도 반도의 북방에서는 가장 화려한 혈통에 속했다.

“좋아. 기분이 아주 좋네. 그래, 뇌물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거지.”

“과분한 칭찬입니다.”

“빡통아, 네도 좀 보고 배워라.”

리을령 용병단장이 호위대장의 발을 툭툭 밟았다.

“맨날 생일마다 어디 쓸데도 없는 자동차나 뽑아다 바치고. 시발, 차고에 쌓인 자동차만 열여섯 대야. 선물을 줄 거면 좀 창의적으로 생각하라고. 너보다 열 살은 어린 애새끼가 사회생활에 더 능숙하잖아. 대가리에 경계경보 안 울리냐?”

“시정하겠습니다!”

“오냐, 열심히 자아비판하세요, 동무.”

리을령 용병단장이 혀를 찼다.

졸지에 스무 살짜리 얼라 앞에서 쪽을 당해 버린 호위대장은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 단장님이 저런 허접한 담배를 좋아하실지 어떻게 알았냐는 말이다.

“너희는 좀 나가 봐. 단장끼리 은밀한 얘기를 나눠볼 테니.”

리을령 용병단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두 호위대장이 접견실에서 나갔다. 이제 방 안에는 이시백과 리을령만이 남았다.

인원이 네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드니 공기마저 적막해진 것 같았다. 리을령 용병단장은 오 분이 넘도록 담배만 뻑뻑 피우다가, 한결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까도 말했지만 너희가 짭새들 빨대가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해. 하지만 이런 객관적인 주제는 조금 뒤로 밀어두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생겼는데.”

“무엇이든 대답하겠습니다, 소좌님.”

“평양에는 왜 왔어?”

이시백이 입술을 꾹 닫았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상대방의 믿음을 얻어야 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미 전생에서 유현도가 한 번 성공했던 작전.

저 얼빵한 사차원녀가 성공한 것을 자신이 되풀이하지 못할 리 없었다.

이시백은 일부러 침묵을 길게 끌었다. 대답이란 늦게 튀어나올수록 진심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침묵이 길어질수록 리을령 용병단장의 눈가도 점점 진지해졌다.

“소좌님, 이건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이고, 거창도 해라. 우리 아가가 가슴에 맺힌 한이 많나 봐?”

“만일 마음에 안 드신다면 흘려들으셔도 좋습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고. 그래, 이 더러운 동네에는 뭣 하러 기어왔어.”

이시백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공화국을 재건하고 싶습니다.”

“……뭐?”

“과거에 북방을 호령하던 공화국을. 지금도 가난에 신음하는 인민들을 위하여 다시 세우고 싶습니다, 리을령 소좌님.”

재차 침묵이 접견실에 내려앉았다.

리을령 용병단장의 표정이 극적으로 변하였다.

잠시 뒤, 그녀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야,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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