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54화
제8장 빌어먹게 아름다운 도시(3)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일행이 돌아왔다.
모험자는 30대 초반의 남성으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일행이 모험자를 지하로 운반한 다음 의자에 단단히 묶었다.
준비가 완료되었다.
“…….”
이시백이 턱짓으로 순우경한테 신호를 보냈다.
순우경이 눈썹을 찡그렸다.
“단장님이 직접 하시지 왜 저한테 시켜요?”
“네가 나보다 훨씬 잘할 거다.”
“내가 사람 조지는 모습 본 적 없잖아요.”
이시백이 고개를 저었다.
“딱 봐도 넌 이쪽 프로야. 해봐.”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마는.”
순우경이 투덜거리며 양동이를 쥐어들었다.
순우경은 물양동이를 뒤집어서 모험자에게 쏟아부었다. 곧이어 어푸, 어푸 하고 모험자가 의식을 차렸다. 순우경이 모험자의 뺨을 장난스럽게 두들겼다.
“아저씨, 정신 들어? 내 손 보여? 이거 몇 개인지 말해봐.”
“뭐, 뭐야……. 너희들 뭐야.”
모험자가 순우경 너머에 서 있는 유현도를 보고 소리쳤다.
“야, 이 멍청한 금발 년아. 이거 뭐야. 뭐냐고!”
“아따. 아저씨, 인제 보니 가정교육을 덜 받았구만. 사람이랑 대화할 때는 그 사람을 쳐다봐야 쓰지 않겠어. 지금 내가 아저씨의 유일한 아군인데 이렇게 섭섭하지.”
“아군……? 너 이 새끼는 또 뭔데?”
“말했잖아. 아군이라고.”
순우경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별안간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는 정확하게 모험자의 새끼발가락을 깨부수고 뭉갰다.
“아저씨가 오늘 밤을 얼마나 고통 없이 우아하게 보내느냐는 전적으로 나한테 달렸거든.”
빌라 지하실이 끔찍한 비명으로 진동했다.
순우경은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껄렁껄렁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웬만하면, 응? 그냥 얌전히 풀어주고 싶어. 사람 비명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은 물건은 아니잖아. 피 냄새도 별로고. 그런데 저쪽에 앉아 계시는.”
순우경이 얼굴로 슬쩍 뒤편의 이시백을 가리켰다.
“우리 보스께서는 말이야. 아, 존나게 살벌해요. 무슨 인간이 용서가 없어. 그래서 사실 나도 오늘 밤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네? 아저씨가 죽을 것 같기도 하고, 뭐 대충 발가락 여섯 개쯤 잘린 다음에 무사히 나갈 것 같기도 하고.”
“브으…… 크으읍…….”
“이게 전부 얼마나 나한테 협조적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여. 이해했어, 아저씨? 이해했으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세요. 다시 한 번 듣고 싶으시면 고개를 두 번 끄덕여 주세요.”
모험자가 재빨리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는 자기가 사지(死地)에 들어오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서로 장난치지 말고 신사적으로 가 봅시다.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아저씨는 누구 지시를 들어줘서 저기 유현도랑 장나래를 물 먹이려고 했어?”
“나, 나는 아니야. 난 아니야. 명령이나 지시 같은 거 받은 적이-”
“그래.”
순우경이 문답무용으로 망치를 내리찍었다.
이번에는 한 번이 아니었다. 약지 발가락과 중지 발가락을 연달아 짓이겼다. 모험자가 요란하게 발광했다.
“다음에는 세 개가 날아갑니다.”
“미친……. 또라이 새끼…….”
“아이고. 이 한심한 양반아, 우리가 동네 짜바리도 아니고 뭐 다짜고짜 아저씨를 이렇게 모셔왔겠어. 에이, 조사할 거 다 조사하고 왔어. 아저씨가 일부러 의용단을 물 먹였느냐 안 먹였느냐. 이건 이미 정답이 나온 문제야. 아저씨가 거기서부터 대답할 필요가 없다니까?”
순우경이 발가락들을 잡고 흔들었다. 뼈가 바스러지고 살이 뭉개진 곳을 만지면 당연히 고통스러운 법이었다. 모험자가 목청이 찢어지라 비명을 토해냈다.
뒤편에서 백산 용병단의 나머지 일행들은 묵묵하게 고문을 지켜보았다. 얼굴은 다들 무표정하게 유지했지만 마음속으로야 질색하고 있었다.
‘음, 역시 저놈은 타고났다.’
‘으아아, 방식이 완전 구닥다리 쌩양아치.’
‘까불면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발가락보다 손가락을 자르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나.’
각양각색의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순우경이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우리 얕보지 마. 아저씨는 그냥 내가 물어보는 거에만 답하면 돼. 다시 한 번 물어볼게. 누가 시켰어?”
“난 정말로 몰라……. 거짓말하는 거 아냐. 이런 일에 당사자가 나설 리가 없잖아.”
B22
모험자는 벌써 목소리가 쉬어버렸다.
유현도와 장나래가 이를 꾹 깨물었다. 이시백의 추측이 옳았다. 누군지 몰라도 의용단을 작업하려는 작자가 있었다. 자신들은 영문도 모른 채 덫에 들어갔다…….
“하수인을 보내서 나한테 의뢰했어. 하수인이 누군지도 나는 몰라. 2차 보고서가 아니라 1차 보고서를 위조하는 데 육백만 원이나 준다잖아……. 거, 거기서 거절할 병신 같은 모험자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그럼, 그럼. 아저씨가 인생 잘 사는 거지.”
순우경이 담배를 꺼내 들어 한 개비 피웠다. 엽궐련을 선호하는 이시백이나 파이프 담배를 사랑하는 윤시아와 달리, 순우경은 시중에서 쉽게 구하는 궐련 형태의 담배를 애용했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정보를 캐내야 하거든. 배후자가 누군지 모르면 거 하수인인가 뭔가 하는 작자라도 설명해 봐. 처음에 어떻게 접근했어?”
“육백만 원 줄 테니까 절대로 실패할 리 없는 공사 뛰어보지 않겠느냐고…….”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 왜?”
모험자가 두려운 눈빛으로 장나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숙이고 말해 나갔다.
“……의용단이 사채업자한테 잘못 걸렸다는 건 이 바닥 근처에 사는 놈들은 다 알고 있었어. 그래도 의용단을 욕하기보단 사채업자를 비웃었지. 어차피 회수하지 못할 거 뻔히 보이는데 돈이나 날렸다고. 그런데 하수인이 와서는…….”
“원금을 회수할 방법이 있다고 말했구먼.”
“저기 있는 장나래가 부산의 판사댁 따님이라나 뭐라나…….”
모험자가 우물쭈물거렸다.
“B급 몬스터들한테서 살아서 돌아와도 어차피 사채업자한테 꽉 붙들릴 거 아냐. 그럼 장나래를 교섭 재료로 삼아 중앙에 연줄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더라고.”
“만약에 죽으면?”
“죽으면 죽는 대로 유해를 수집해서 쇼부 치면 된다고……. 명색이 부산의 판사집인데 딸 장례식은 제대로 치러주고 싶을 테요, 그럼 뼈 가져가는 데 2억쯤은 간단히 내주지 않겠느냐고…….”
“오호라. 살아 돌아오면 연줄이 생겨서 좋고, 죽어도 본전치기라.”
가만히 얘기를 듣던 장나래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상대편은 장나래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장나래의 집안 자체를 이용해 먹을 계획이었다. 비로소 사태가 완전하게 이해되었다. 장나래 자신만 문제에 걸렸다면 뭐로 협박해도 절대 가문에 도움을 구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유현도까지 위험에 처했다면?
장나래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유현도를 처분하겠다. 예컨대 창관에 팔아넘기겠다라는 식으로 협박하면 어떻게 될까.
장나래는 어쩔 수 없이 상대편 조직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리라.
“보스.”
순우경이 등을 돌려 이시백을 바라보았다.
“얻을 만한 정보는 대충 다 얻은 것 같은데 어찌할깝쇼?”
“사실을 확인했으니 충분하다. 그대로 묻어버려라.”
“아, 역시 그렇게 나오는구만.”
불길한 대화에 모험자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 묻으라니. 무슨 소리야 그게. 난 그쪽이 시키는 대로 전부 말했잖아. 이, 이,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응?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이시백과 순우경한테 빌어봤자 소용이 없음을 직감했을까.
모험자가 이번에는 유현도가 있는 쪽을 향해 애걸복걸했다.
“혀, 현도 씨. 미안해.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하지만 겨우 1차 보고서로 진짜 가버릴 줄은 몰랐다고……. 조심성 많은 사람들이니까 알아서 흘려듣겠거니 넘어갔다니까. 정말이야.”
유현도가 눈을 깜빡거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한 얼굴이었다. 유현도는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긁적이다가 멋쩍게 미소 지었다.
“저기,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는 게 맞지 않나요?”
“…….”
모험자가 말문이 막혔다.
마지막 동아줄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모험자가 장나래를 쳐다보았다.
“나래 씨, 정말이야. 정말로 미안해. 하지만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대 나래 씨랑 현도 씨를 피해 입힐 생각으로 그러지 않았어. 나, 난 그냥 용돈벌이라고 생각했다고. 까놓고 말해서 내가 나래 씨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일부러 이랬겠어. 정말이야.”
장나래가 이시백을 바라봤다.
무언가 물어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시백이 가볍게 턱을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하고 장나래가 모험자에게 걸어갔다.
장나래는 한없이 무심한 눈동자로 모험자를 내려다보았다.
“알아. 당신한테 우리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거. 당신 같은 겁쟁이한테 그만한 배짱이 있을 리가 없지.”
“마, 맞아. 나 겁쟁이야. 완전 겁쟁이야!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었겠지.”
장나래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천천히 권총이 장전되는 모습을 보며, 모험자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아악! 안 돼! 제발, 안 돼!”
“나도 똑같아. 당신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어. 하지만 당신이 죽든 말든 상관이 없지. 나는 내 총알이 나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총알이 당신 머리통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사실 당신이 죽든 말든 딱히 신경을 안 쓴다고.”
장나래는 총구를 모험자의 이마에 바싹 붙였다.
장나래의 입술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아, 이제 이게 얼마나 개소리인지 알겠어?”
“살려-”
타앙!
모험자의 뒤통수가 터지면서 핏물이 사방에 튀었다.
확인 사살을 위해서인지 분을 풀기 위해서인지 장나래는 방아쇠를 두 번 더 당겼다.
모험자는 머리의 반절이 날아갔다. 뇌수가 끈적끈적하게 흐르면서 하얗게 덩어리진 것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가짜 지도를 건네준 나머지 모험자 두 명도 끌고 와. 똑같이 복수한다.”
이시백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중앙에 연줄을 만들어보겠다는 발상은 일개 사채업자가 떠올릴 만한 생각이 아니야. 더 윗줄이 개입해 있다. 모험자 세 명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그쪽에서 먼저 접근하겠지. 우리가 기다리고 있기만 해도 배후는 밝혀져. 장나래.”
“예, 단장님.”
“청사에 가서 정식으로 의용단을 해체해라. 모든 권리를 백산으로 넘긴다는 증명서를 떼서 가져와. 순우경.”
“예이, 보스.”
“유현도와 함께 가서 모험자 두 명을 잡아와라. 어렵겠다 싶으면 현장에서 사살해도 좋다. 윤시아.”
“네, 선배.”
“너는 나랑 연기 좀 해야겠다.”
이시백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울였다.
단단한 감촉이 등줄기를 감싸는 걸 만끽하며 이시백이 생각했다. 본래 차근차근 평양을 접수하려고 했다. 도중에 유현도를 만났고, 계획이 순식간에 물살을 타고 빨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림은 이미 그려졌다…….
“현아야, 빚이 이억이라고 했냐.”
“네, 네에.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걱정하지 마라.”
이시백이 두 눈을 감았다.
“네 가치에 비하면 푼돈이야.”
“…….”
유현도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