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39화
제5장 일일호화주의(一日豪華主義) (6)
직후, 윤시아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올인을 걸었다.
이번에도 무승부에 거는 것일까 기대하는 구경꾼도 있었다. 하지만 윤시아가 배팅한 쪽은 뱅커. 지극히 평범한 왕도(王道)였다.
왕도는 달리 말해 어느 신민이든 추종해서 따라가는 큰길.
“여기에 전 재산을 쏟아붓겠다!”
“내 것도 제발 좀 얹혀줘!”
이제 열여섯 살 소녀의 운을 의심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일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한 하루. 소녀에게는 오늘이 그날인 게 확실했다. 참가자도 구경꾼도 즐거운 광기에 휩싸였다. 그들은 주머니를 털고 가방을 털어서 실탄을 죄다 뱅커에 몰아넣었다.
‘이긴다!’
광기에 합류한 사람들은 단 하나의 생각만 떠올렸다.
‘반드시 이긴다!’
’두 배! 일억을 배팅했으니 이억! 자그마치 두 배!’
‘일주일 동안 죽 쑨 걸 이번에 만회할 테다.’
배팅. 끊임없이 배팅.
테이블이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카지노칩이 들이찼다.
딜러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필사적으로 카지노칩을 가지런히 정렬했다.
서른 명의 인간이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서 전 재산을 반상에 올리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카지노에서 5년 동안 근속한 딜러조차 처음 보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여러분. 자, 잠시만……!”
“웃기지 마! 얼른 정리하라고!”
“우린 이 아가씨한테 목숨을 걸었단 말이다, 애송이!”
딜러의 요청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천만 원은 기본이었다. 이억. 오억. 심지어 물경 이십억을 올려놓은 큰손마저 있었다. 딜러는 옆 테이블의 동료한테 서둘러 여분의 카지노칩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윤시아가 앉은 테이블 이외에 다른 곳은 전부 비어버렸으므로, 동료는 기꺼이 황갈색 카지노칩(100만 원)과 직사각형의 붉은색 카지노칩(1,000만 원)을 배달해 주었다.
딜러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배팅이 지나치게 많은 관계로, 고액의 칩으로 바꾸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손님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딜러가 헐레벌떡 저액의 카지노칩을 고액권으로 교체했다. 그러자 확실히 포화 상태에 이르던 테이블이 조금 널널해졌다.
문제는 딜러가 여유를 만드는 족족 사람들이 배팅을 더 늘려 버리는 것이었다.
“전부 뱅커 자리로 취급하면 되잖아!”
“그래, 아무도 플레이어 따위에 걸지 않는다고!”
“아, 안 됩니다……. 규정에 따라주십시오.”
일정한 영역뿐만 아니라 테이블 전체를 뱅커로 여겨달라는 요청. 아니, 요청보다 협박에 가까웠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요구였으나 서른 명이 한꺼번에 연호하면 쉽게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딜러는 이를 악물고 협박을 이겨내야만 했다.
“융통성이라곤 불알에 묻은 때만큼도 없는 카지노 녀석들.”
“쌓아올려! 안 무너지게 바싹 붙여서 쌓아올리란 말이야.”
“중간 중간에 누가 배팅했는지 종이로 표시해!”
사태는 점입가경에 이르러 이름표까지 동원되었다. 사람의 키에 비등비등할 만큼 카지노칩은 높이 쌓아졌다. 플레이어에 내걸린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반면에 뱅커의 영역에는 칩의 빌딩이 수십 채나 빽빽하게 들어찼다.
그 결과.
“오오, 오오오…….”
“신이시여. 빌어먹을.”
붉은색의 장성이.
뱅커 영역을 따라 카지노칩들이 장성처럼 늘어섰다. 도박꾼과 딜러를 막론하고 평생 목격해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전부 더하면 가뿐히 백억이 넘었다. 희극적이며 비극적인 풍경에 사람들이 압도되었다.
아마도 광란에 지배되지 않은 사람은 기껏해야 두 명.
“어쩌죠, 선배? 저 일이 여기까지 커질 줄은 몰랐는데.”
“음? 자신이 있어서 배팅한 거 아니었냐.”
“초보자가 자신은 무슨 자신이에요. 선배한테 시험만 당하는 게 어쩐지 분해서 냅다 질러버린 거죠.”
윤시아가 긴 담뱃대로 연초를 뻐금거렸다. 두 사제가 귓속말로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는 주변에 들리지 않았다.
“흐으. 여기서 패배하면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 들 거다.”
“제멋대로 기대해서 제멋대로 패배하는 거잖아요. 전 억울해요.”
“원래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억울해지게 마련이지. 약한 소리 내지 마라.”
“저도 선배 말고 다른 사람한테 징징거리지 않거든요?”
이런 얘기를 꺼내면서도 윤시아의 겉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손님 여러분, 배팅이 끝났습니다.”
마침내 폭동을 방불케 했던 배팅이 완료되었다. 딜러는 플레이어 측 카드와 뱅커 측 카드를 뽑아 들었다. 자그마치 이십억을 내건 사람도 있었지만, 딜러는 당연하다는 듯 관습을 어기고 윤시아에게 카드를 건네주었다.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십억을 배팅한 남자조차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먼저 까세요.”
“예, 아가씨.”
딜러가 플레이어 카드를 공개했다.
“…….”
사람들이 헛숨을 흘렸다. 음울한 색채의 탄식이었다.
플레이어 측에 주어진 카드의 합계는 8. 바카라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카드패가 등장했다. 8이라는 숫자를 보자 마약에서 깨어난 것처럼 퍼뜩 정신을 차린 도박꾼도 있었다. 자신은 무슨 짓거리를 저질렀는가. 어쩌자고 실탄을 하나도 안 남겨두고 올인을 해버렸는가…….
“거 봐라. 사람은 간단하게 바뀐다.”
이시백이 나지막하게 귓속말로 말했다.
“이쪽이 유리할 때는 사람들이 들러붙지. 대단하다. 행운을 끌고 다니는 것 같다.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쪽이 불리해지면 삽시간에 태도가 바뀐다. 예전에는 대단하다고 칭찬한 부분까지 말을 바꿔서 공격한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선배가 얼마나 인간의 성정에 부정적인지는 익히 알고 있어요.”
윤시아가 카드를 한 장 뒤집었다.
K. 왕의 카드.
포커에서는 무서운 화력을 발휘하는 카드패도 이곳에선 0으로 취급되었다.
사람들이 더더욱 불온한 기색을 풍겼다. 꽁! 꽁! 꽁! 중국인 특유의 구호가 카지노 VIP룸을 요란하게 메웠다.
“덕분에 후배의 세계관도 우중충하게 되어버릴 것 같다구요.”
“배신자를 조심하라는 얘기야. 사람이 실패했을 때 배신당하는 게 아니다. 성공을 거두었다가 실패를 겪을 때, 곤란한 처지에 놓였을 때 배신자가 튀어나오지.”
그렇기에 이시백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가장 배신당하면 안 되는 시기에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솔직히 나는 이번 판에 네가 패배하기를 바란다.”
“아핫.”
윤시아가 카드를 슬그머니 뒤집기 시작했다. 아직 카드의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선배, 저거 13억이에요. 아깝지도 않으세요?”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실패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악의에 찬 목소리로 너를 비난하는지 경험하는 편이 좋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호의보다 악의에 민감해야 하니까.”
지금은 시아를 도박의 여신쯤으로 받들고 있는 떼거지도 패배가 확정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쌍욕에 저주를 깃들여서 소리치겠지. 도저히 여자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악의가 쏟아질 게 분명했다.
그것이 사람들의 본모습.
자기들이 멋대로 윤시아의 배팅에 따라갔을 뿐인데도 마치 그녀가 잘못했다는 것처럼. 윤시아만 아니었으면 돈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비난하리라.
“그러니까 선배는 선배인 거예요.”
윤시아가 뚱딴지같은 발언을 했다.
그녀가 테이블에서 시선을 돌려 이시백을 쳐다보았다. 윤시아는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
“완전 동문서답이잖아요. 13억 아깝지 않냐고 물었는데 악의는 무슨 악의예요. 이거 전부 선배가 저한테 준 자본금으로 쌓아올린 돈이에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그만두고
뿐빠이하자고 제안해도 모자란데, 뭐요? 아예 거하게 망해 버리라구요?”
윤시아가 키득거렸다.
“인간이 욕심이 없는 거에도 정도가 있죠. 바보 같은 선배.”
“……처음부터 네 경험시켜 주려고 카지노에 온 건데, 3억이든 13억이든 알 게 뭐냐?”
“맞아요. 선배는 처음부터 돈에는 관심이 없었죠. 저한테만 관심이 있었고.”
무언가 뉘앙스가 요상했다.
이시백이 눈썹을 찡그린 순간, 윤시아가 마지막 카드 한 장을 뒤집었다.
그녀는 카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단지 선배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래서 저도 돈에 신경 끄고 배팅할 수 있었던 거예요.”
카드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테이블에 모여든 수십 명이 어, 어 하고 카드에 집중했다. 지금 카드의 숫자가 아니라 다른 곳에 눈길을 주는 도박꾼은 어디에도 없었다. 윤시아와 이시백, 오로지 두 사람만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카드가 뒤집혔다.
“우아아아아아!”
“으아, 와, 흐아아악!”
주위에서 열광의 환호성이 터졌으며.
윤시아는 이시백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
아주 잠깐의 입맞춤. 아무도 보지 못한 틈을 노려서 윤시아는 장난스럽게 선배의 입술을 훔쳤다. 키스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옅었지만 이것이 윤시아에게 최선이었다.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용기는 없었다.
그녀의 첫 키스였다.
마지막 카드가 가리키는 숫자는 9.
플레이어 측 카드보다 겨우 하나 많은 숫자.
그리고 동시에, 25억 8천만 원을 의미하는 숫자.
사람들이 저들끼리 얼싸안고 함성을 질렀다. 입을 벌려 괴성을 토해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카지노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적을 목도하고 도박꾼과 종업원은 흥분에 사로잡혀 날뛰었다.
플로어맨이 자기 판단에 따라서 손님들 전원에게 술잔을 돌렸다. 이럴 때일수록 카지노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야 훗날의 이익으로 이어지기에.
그런 광란.
광란의 한복판, 태풍의 눈 속에서 윤시아가 방긋 웃었다. 여태 담담한 기색을 유지해 온 윤시아는 어째서인지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저, 선배의 그런 점을 무척 좋아해요.”
“…….”
“저랑 사귀어주세요. 선배.”
이날 이시백은 처음으로 고백을 받았다.
현생을 기준으로 해서 4살이 어린 소녀.
그리고 전생까지 고려해서 계산하자면, 21살이나 어린 소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