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36화
제5장 일일호화주의(一日豪華主義) (3)
“뱅커 윈.”
“플레이어 윈.”
바카라 게임의 특징이라면 바로 속도.
포커와 같은 게임에 비해서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딜러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카드를 배분했다.
“플레이어 윈.”
“플레이어 윈.”
“뱅커 윈.”
게임이 한 판 진행하는 데 2분이 걸릴까 말까. 규칙도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쪽에 카드가 더 높은 숫자로 나오는가. 순전히 직감으로 알아내서 배팅한다. 오른쪽에 9가 나왔다. 왼쪽에 7이 나왔다. 그러면 오른쪽이 승리했다.
단순.
본질적으로 홀짝 게임과 똑같았다.
보상이 주어지는 법도 알기 쉬웠다. 무조건 두 배였다. 10만 원을 걸어서 승리한다면 20만 원. 1억 원을 걸면 2억 원. 반면에 패배자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월급을 모조리 끌고 와서 쏟아부었다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러 왔다고 해도, 며느리의 통장을 훔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승부수를 걸었다 해도, 패배자에게는 단 한 푼의 위로금이 주어지지 않는다.
지극히 단순했다.
“으아, 또 졌어요.”
애당초 도박은 ‘운’에 불과하다고.
포커와 같은 두뇌 싸움도, 룰렛과 같은 화려함도, 슬롯머신과 같은 잔기술도 전부 부차적이다. 그런 것은 거추장스러운 겉치레에 불과하다. 도박이란 결국 홀짝 게임. 어린애들이 교실에 모여서 단순한 재미로 맞붙는 놀이. ‘단지’ 거기에 거대한 돈이 걸릴 뿐이다.
“꽁! 꽁! 꽁!”
“뱅커 윈.”
“으쌰아아아!”
그뿐이다.
매일 카지노에 모여드는 도박꾼들을 향해, 바카라라는 게임은 그렇게 오연히 선언하고 있었다. 그 오만방자한 태도에 빗대어 도박사들은 경멸과 인정의 의미를 담아 바카라에게 별칭을 붙여주었다.
도박의 꽃.
왕의 게임.
그 거창한 이름에 사람들은 일단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한 시간. 세 시간이라도 바카라 테이블에 앉으면 깨닫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목격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진다.
“…….”
“후우, 제기랄.”
벚꽃이 떨어지듯 사람이 간단하게 져버린다.
홀짝 게임. 치열한 심리전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오직 그것만을 결정한다. 그리고 결정의 순간은 2분마다 몰아친다. 2분이다. 오백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고작 2분이 지나면 증발해 버린다.
도박이 얼마나 위험한지 제일 잘 아는 장본인은 바로 도박사였으며.
그들이 ‘도박의 꽃’이라고 별명을 붙여 준 것은 오히려 비아냥에 가까웠다.
이시백이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잘 안 풀리는군.”
좀처럼 참가자들이 돈을 따지 못하고 있었다. 한 판을 승리하더라도 두 판, 세 판, 그 승기를 연달아 가져가는 사람이 싹 끊겼다. 잘해 봐야 본전만 지키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40분 동안 이어졌다.
‘그림도 난장판이야.’
이시백이 테이블 뒤편에 마련된 전광판을 살펴보았다. 게임의 결과가 자동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도박꾼들은 이걸 그림이라고 불렀다. 그림에 어떤 법칙성 같은 것이 보여야 했는데, 이번 게임판은 그저 난잡하기만 했다. 고수들마저 허우적거렸다.
“…….”
윤시아가 무표정하게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윤시아는 초반에 두 판 연속으로 이긴 걸 제외하고 단 한 판도 승리하지 못했다. 배짱 좋게 50만 원을 걸었다가 날려 먹은 적도 있었다. 그 후, 윤시아는 마치 게임을 구경하러 온 사람마냥 묵묵하게 앉아만 있었다.
“해볼까요.”
윤시아가 불쑥 중얼거렸다. 삼백만 원어치 칩을 플레이어 측에 걸었다.
이시백이 다소 놀랐다. 지금까지 윤시아가 제일 크게 배팅한 금액이 오십만 원이었다. 갑자기 삼백만 원씩이나 걸다니.
“크게 나오는구나.”
“이게 어떤 게임인지 그럭저럭 알 것 같아서요.”
“옆에서 수천만 원을 때려 박으니 기가 죽지?”
“네? 아, 네. 대단해요.”
윤시아가 시선을 테이블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 이시백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입을 다물었다. 집중하고 있는 후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케이?”
참가자들이 배팅을 완료했다. 딜러가 사람들을 쳐다보며 이제 배팅이 끝났냐며 눈짓으로 물었다. 모두가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딜러는 제일 크게 배팅한 사람에게 ‘카드를 뒤집을 권리’를 주었다.
중국인이 카드를 쥐었다. 그는 플레이어 측에 이천만 원을 걸었다.
“꽁! 꽁! 꽁……!”
중국인이 염원이 담긴 주문을 외치며 천천히 카드를 뒤집었다. 결과는 8. 바카라에서 가장 높은 숫자가 9였으니 거의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인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호.’
윤시아도 플레이어에 걸었다. 삼백만 원을 던졌으니 육백만 원으로 돌아올 터. 이번 한 판으로 여태까지 잃어버린 돈을 한참이나 보충하고 남았다. 역시 운이 좋다, 하고 이시백이 슬쩍 윤시아를 쳐다보았다.
“…….”
윤시아는 얼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시백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후배가 저 정도로 무표정해진 모습은 본 기억이 없었다. 언제나 싱글벙글거리는 얼굴이 윤시아의 트레이드마크 아니었던가.
딜러가 뱅커 측의 카드를 뒤집었다.
“아아아!”
중국인이 머리를 쥐어 잡고 한탄했다.
뱅커의 카드는 9. 바카라에서 가장 강력한 숫자였다. 줄초상을 치른 것처럼 사람들의 얼굴이 썩었다. 이번 판에는 참가자 전원이 플레이어에 주로 걸었다. 분산투자해서 피해를 최소화한 참가자도 있었지만 그래도 잃은 건 잃은 것이었다.
“뱅커 윈.”
딜러가 무심하게 수백, 수천만 원의 판돈을 쓸어갔다. 곧바로 다음 판이 이어졌다.
윤시아는 여전히 일관되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
신기하게도 무표정한 얼굴이 어색하진 않았다. 오히려 잘 어울렸다.
어쩌면 당연했다. 언제 어디서든 웃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바꾸어 말해, 언제든 어디서든 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므로.
“선배, 저한테 여유를 가지라고 여기 데려오신 거죠.”
“그래.”
“저는 착한 후배니까요.”
윤시아가 양손으로 칩을 밀었다.
“선배의 요망에 충실히 따르겠습니다.”
우스스 칩이 무너지면서 움직였다.
주변에서 도박꾼들이 눈을 치켜떴다.
올인.
여태까지 납작 엎드리고 있었던 여자아이가 사천오백만 원에 이르는 거금을 내걸었다. 딜러가 떨떠름한 얼굴로 칩들을 색깔별로 정리해 주었다.
그 대부분이 황금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칩. 정중앙에는 1,000,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백만 원짜리 카지노칩.
그것이 플레이어 측에 마흔 개 가까이 쌓였다.
“오케이?”
“네, 오케이.”
딜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윤시아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눈동자가 미동하지도 않았다. 다른 참가자들은 어딘지 불편한 기색으로 칩을 배팅했다. 꼬마애한테 기세가 밀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오.”
방금 이천만 원을 잃은 중국인이 이번에는 뱅커에 이천만 원을 또 걸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남은 참가자들이 곤란하게 되었다. 이미 한참 동안 안 풀리고 있는 판국. 누가 거하게 걸었느냐에 따라 분위기를 보고 따라가야 했는데, 지금은 윤시아와 중국인이 완전히 갈렸다.
“노.”
“노노.”
서양인과 일본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 판을 쉬겠다는 의미였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여유롭게 쉬는 것이 도박꾼의 역량이었다. 또 다른 중국인은 10초가량 고민하다가 동족을 따라갔다. 배팅액 400만 원.
“…….”
이시백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잃을 돈이라 생각하고 줬다. 윤시아의 판단에 간섭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딜러가 참가자 전원의 의사를 확인한 다음, 플레이어 측의 카드를 윤시아에게 건네주었다.
테이블에 긴장감이 내달렸다.
윤시아가 어느 정도 카드를 얻느냐에 따라 승패가 대략 결정 나는 순간.
“……!”
사람들이 숨을 흘렸다. 윤시아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카드를 받자마자 뒤집은 것이었다. 마치 천천히 뒤집으면서 거기에 승리의 염원을 불어넣는 짓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듯이. ‘이런 건 단순히 도박이다’라고 차갑게 비웃는 것처럼.
카드의 숫자 합계는 6.
‘별로 안 좋다.’
이시백이 속으로 생각했다.
바카라에서 6이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숫자.
나쁘지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쁘지 않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이렇게 배팅액이 불어나 버린 판에서 ‘나쁘지 않다’는 사실상 ‘나쁘다’에 가까웠다.
“흠!”
중국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뱅커 측의 카드를 건네받았다. 그는 윤시아의 도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꽁!’을 연호했다. 같은 편에 배팅한 참가자도 함께 꽁을 연호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중국인이 손끝에 힘을 주며 카드의 끝자락을 뒤집었다.
“헤이이이!”
중국인이 불쾌하게 카드를 던졌다.
K와 3. 그림패는 숫자 0으로 취급하기에 0 더하기 3. 숫자의 합계는 고작 3이었다. 그렇지만 승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쉬익-
딜러가 중국인에게 카드를 한 장 더 건네었다.
두 장의 카드를 합쳐도 합계가 6보다 낮게 나올 경우, 참가자는 카드를 추가로 받았다. 아직 기회는 충분히 남았다. 중국인이 힘이 잔뜩 들어간 손길로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아아!”
중국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카드에 그려진 문양은 여왕. Q였다. 바카라에서는 0으로 취급받는 카드. 이로써 합계는 변함없이 3. 아무런 변화가 없이 3.
“플레이어 윈.”
윤시아의 승리였다.
“으아아!”
중국인이 이마를 짚고 길게 탄식했다. 저번 판과 이번 판을 합쳐서 사천만 원이 날아갔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참가자들은 이 중국인을 배려해서 과장스러운 태도를 자제했다.
그리고 윤시아에게는.
촤르르륵-
구천만 원어치 카지노칩이 되돌아왔다.
황갈색 카지노칩이 열 개씩. 총 여덟 개의 탑을 이루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본금을 두 배로 불려 버린 것이었다. 이시백은 차마 할 말을 잃었다.
지금조차도 윤시아는 차갑게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플레이어 배팅.”
게임이 다음 판으로 넘어가서 딜러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윤시아가 거침없이 칩을 밀어 넣었다.
“왓 더……!”
“하아!?”
참가자들이 얼굴을 찌푸리고 저마다 신음을 내뱉었다.
어린 소녀가 한꺼번에 밀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수의 카지노칩. 윤시아는 두 번, 세 번을 반복해서 겨우 배팅을 끝냈다.
올인.
딜러가 침을 꿀꺽 삼키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무너져 내린 카지노칩을 가지런하게 정돈했다. 카지노칩의 탑이 하나씩 쌓여 갔다. 참가자들이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케이?”
윤시아가 무심하게 턱을 까닥거렸다.
“네.”
구천만 원.
도합 구천만 원의 칩이 테이블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