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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의 제국-24화 (24/142)

건달의 제국 24화

제4장 국민체조 2분 20초(3)

이시백의 고용이 결정된 그날 밤.

두 남자는 똑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시백을 지배인의 ‘나와바리’에 깊이 침투시킬 것인가.

“지배인, 얘 야바위가 보통이 아니여. 손님들이랑 인맥이 무진장 넓어.”

“그냥 처단해 버리면 후폭풍이 염려되는 수준입니까?”

“처단해도 되긴 되는데, 아무래도 자그마한 증거가 필요하지.”

김태헌이 라가불린 위스키를 홀짝거렸다.

업무실에서 부하들을 모조리 내보낸 다음, 손수 양주를 꺼내 와서 이시백과 술잔을 나누었다.

너는 이제 부하가 아니라 사업의 파트너다.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타이밍이 별로 안 좋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고용되면…….”

“십중팔구 지배인이 의심하겠지. 그래, 우리 아가들도 눈치 깔 테고.”

일패 기녀들은 눈칫밥만으로 수년을 살아남았다.

비록 향금산 창관이 개성에서 최고급 수준의 유곽은 아니었으나, 제2부 리그에서 정상을 달리는 가게였다.

시정(市政)과 관련된 공무원이나 인사들이 종종 들렀다. 기생들은 그런 인물들과 살을 섞으면서 자연스레 후각이 발달했다.

이시백이 김태헌 사장의 따까리라는 사실쯤은 간단하게 알아낼 터.

“어쩔 수 없습니다. 버림패를 만들지요.”

따라서 이시백은 강수를 두자고 제안했다.

“버림패?”

“적당히 가게에서 오래 일한 친구를 잡아주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김태헌 사장이 물끄러미 이시백을 바라보았다.

김태헌은 스무 살 청년의 배짱에 어이가 없었다. 더 나아가, 눈앞의 청년이 절대로 경찰 관계자가 아니라는 것을 재차 확신했다.

“동생, 이딴 짓거리를 한두 번 해보는 게 아니구먼?”

“의정부에서 딱 한 번 해봤습니다. 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데 굳이 경험이 많이 필요하지 않더군요. 뭘 살리고 뭘 죽일 것이냐. 결국 그게 문제 아닙니까.”

“동생이 말하니까 참 쉽게 들리네.”

김태헌 사장이 실없이 웃었다.

마흔 살까지 헌터가 부자로 살아남는 경우는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몬스터를 너무나 잘 썰어서 고위 헌터가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기가 막히게 잘 썰어서 건달의 보스가 되는 것이었다.

김태헌은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대본은 생각해 둔 게 있고?”

부하를 버림패로 태워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정당하게 모가지를 잘라 버리려면 가게에 피해를 끼친다는 명목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손님들이나 아가씨들한테 말썽을 피운 놈 없습니까.”

“천덕꾸러기야 언제나 몇 놈은 있지. 우리 업계는 싸가지 없는 게 종특 아니냐. 조건을 불러봐.”

“아가씨들한테 평판이 특히 나쁜 놈.”

“아서라. 어떤 언니들이 건달을 좋아하겠냐.”

김태헌 사장이 위스키를 머금고 향기를 즐겼다. 독하지만 매력적인 향기. 누군가를 계획적으로 살인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냄새였다.

“다른 조건.”

“손님한테 몰래 마약을 파는 친구.”

“두 명 있지. 허 주임이랑 차 실장.”

이시백이 턱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이 경력이 어떻습니까?”

“차 실장은 나랑 같이 일한 지 4년은 됐지. 머리는 나쁘지만 지가 맡은 일은 꼬박꼬박 잘해. 창관 쪽보다는 통나무 쪽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친구가 운반 지위책이야. 똘마니가 네 명에서 여섯 명 있고. 본래 시백 동생의 상관이 되었을 사람이지.”

“안 좋군요.”

이시백이 술잔을 기울였다. 이시백은 양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즐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막걸리나 사케가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일단 술자리에 어울려 준다는 생각에 한 모금 마셨다.

“직급이 너무 높습니다. 형님 비즈니스에 타격이 될 인물은 제외하지요.”

“그럼 허 주임이 딱이네. 얘는 거의 창관에서만 일해. 떡대가 괜찮아서 보디가드로 쓰는데, 월급이 적어서 그런지 싸구려 물뽕을 손님들한테 팔더라고. 뭐 나야 신경 쓰기 싫어서 가만히 내버려 뒀지.”

“경력은.”

“1년 3개월.”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좋습니다. 허 주임으로 하지요.”

“적당하긴 적당하지.”

김태헌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턱을 까닥거렸다.

이 순간, 한 남자의 운명이 당사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대화에서 결정되었다. 죽음이란 게 대체로 그러하듯이.

“어떻게 담글 건데?”

“물뽕 자주 사는 단골손님이 올 때까지 일단 기다립니다. 손님이 쓸 술잔에다 약물을 발라두지요. 잠깐 정신을 잃고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손님 상하게 하지 않을 자신 있나?”

“제가 마약 전문가라는 거 잊으셨습니까.”

김태헌이 머릿속으로 단골손님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너무 지체가 높지 않은 손님. 그러면서도 너무 싸구려가 아닌 손님이 필요했다.

그중에서 물뽕을 수시로 사들이는 고객이 네다섯 명 있었다. 값비싼 일패까진 아니고 이패 기생을 잡아서 노는 손님들이었다.

“좋아. 손님이랑 날짜는 이쪽에서 알아서 뽑아주지. 그런데 술잔에나 약은 어떻게 바르려고?”

“제가 데려온 여동생을 씁니다.”

창관에 기생 견습으로 들어간 윤시아가 나설 차례였다.

견습들은 유곽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서 했다.

매일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설거지거리를 해결해야 했고, 넓은 창관을 일일이 쓸고 닦아야 했다.

수방에서 손님방까지 음식과 술을 나르는 것 또한 견습생한테 주어진 몫.

‘나 몸 팔기 싫다구요!’

‘괜찮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

‘문제밖에 없는 거겠죠, 이 선배 자식아!’

윤시아는 이시백에게 설득당해서 화류계에 입문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선배가 건네준 물약을 품 안에 고이 간직했다.

“흐음, 괜히 정보가 샐 염려는 없겠구먼.”

“예, 저와 일심동체인 여자애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과.”

희생양이 결정되었다.

누가 작전을 실행할 것인지도 결정되었다.

이제 정확한 날짜와 타깃만이 남았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그리하여, 결행 당일.

“오늘 단골손님한테 작업 들어간다. 1층 4번 방. 늦게까지 술 마시는 게 버릇인 손님이야. 안성맞춤이지.”

김태헌 사장이 자정 무렵에 미리 정보를 흘렸다.

이시백은 여느 때처럼 현관 로비에서 무뚝뚝하게 대기했다.

한 시간 정도 흐르자,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견습 기생 두 명이 로비를 지나쳤다.

거기에는 윤시아가 어느새 단짝 친구가 된 다른 여자애와 손을 잡고 있었다.

“…….”

이시백이 슬그머니 팔짱을 꼈다. 오른손으로 검지를 하나 들었고, 왼손으로 손가락 네 개를 들었다. 윤시아는 로비 반대편을 지나치면서 슬쩍 이시백이 서 있는 쪽을 흘겨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1층에 4번 방.’

윤시아가 친구와 대화하면서 활짝 웃었다.

‘기다리다 지칠 뻔했다구요, 선배.’

일부러 윤시아는 이 시간대 화장실에 들를 때 항상 친구와 함께했다.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애당초 여자아이들이 단짝과 같이 화장실에 가는 것은 평범한 습관. 아무에게도 의심받지 않으면서 신호를 주고받기에 제격이었다.

밤이 깊어졌다.

“하아암―”

새벽 네 시가 넘어가자 로비에서 망을 보던 헌터들도, 주방 근처에서 정좌하고 기다리던 견습 기생들도, 서서히 피곤해졌다. 사람들은 언제나 직급이 위아래로 나뉘는 법이었다. 이시백과 윤시아는 각각의 장소에서 제일 막내에 속했다.

“시백아, 우리 담배 좀 피우다 올게. 괜찮지?”

“느긋하게 쉬다 오십시오, 선배님들. 제가 맡고 있겠습니다.”

“그래, 우리 막내가 참해서 좋아.”

다섯 시가 되자, 헌터들은 슬그머니 막내한테 숙직을 떠맡기고 한 시간쯤 선잠이 들었고.

“어휴우, 피곤해. 눈이라도 조금만 붙였으면.”

“잠깐 쉬세요, 언니들. 제가 음식 같은 거 다 나를게요.”

“그래도 괜찮겠니?”

“제가 막내인걸요. 가장 팔팔하니까 가장 열심히 돌아다녀야죠.”

견습 기생들은 윤시아한테 일을 넘겨 버리고 벽에 기대어 약간의 휴식을 즐겼다.

수십 명의 종업원이 바쁘게 일하는 창관.

하지만 새벽 다섯 시가 되었을 때, 로비에서건 주방에서건 실제로 구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단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1층 4번 방에 백주(白酒) 하나 날러라.”

“네! 제가 다녀올게요.”

주방에서 서빙을 명령하자 윤시아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나무쟁반에는 멋들어진 도자기와 생강구이 꼬치가 다소곳하게 담겨 있었다.

윤시아는 복도에 나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재빨리 약물을 꺼내었다. 서예로 쓸 법한 붓에 약물을 푹 묻히고 조심스럽게 술잔에 발랐다.

‘술병에 가까이 있는 게 손님잔, 멀리 있는 게 아가씨잔.’

주방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쑤셔 넣은 내용을 떠올리며 윤시아가 술잔을 후후 불었다. 무색무취의 약물은 금세 휘발되었다. 오우거인지 트롤인지 어떤 몬스터로부터 추출했다고 들었지만 윤시아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

“손님, 실례하겠습니다.”

윤시아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 채 손님방에 쟁반을 서빙했다. 그녀는 이번 대본에 대해 이시백한테 상세하게 전해 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럴 가능성은 적었지만, 손님이 약물에 이상 반응을 일으켜서 죽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윤시아는 담담했다.

‘선배가 하는 일인데 완벽하겠지.’

이시백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기에.

윤시아가 방을 빠져나오자, 손님은 평소처럼 물뽕을 자기 술잔에 섞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강력한 두 개의 약물이 중첩되었다. 갑자기 지나치게 독한 약물이 들어오자, 중년 남자의 신체는 버티지 못하고 얼마 못 가서 경련을 일으켰다.

“꺄아아악!”

기생이 비명을 지른 시점이 바로 이때.

로비에서 그 목소리를 들은 헌터는 우연치 않게도 이시백밖에 없었다.

“아무나, 잠깐 아무나 좀 와서 어떻게…… 다, 다른 사람을 불러야!”

“조용히 하십시오. 손님들 전부 깨울 셈입니까.”

이시백이 기생을 진정시켰다.

다른 방에서 일하던 기녀들도 언뜻 비명을 듣긴 들었다. 다만 금방 비명이 잦아들자 별일 아니려니 싶어서 각자의 손님들에게 집중했다.

어차피 예외적인 상황에서 해결사로 나서 줘야 할 종업원은 기생이 아니라 헌터였다. 이럴 때 쓰라고 창관에서 경호원을 고용하는 것 아닌가.

“손님이 술에다 이걸 타셔 마셨습니까.”

“네? 네에. 제 단골손님인데 항상 오실 때마다 그걸 타서 드세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늘이나 옷핀이 있으면 좀 건네주십시오.”

기생이 헐레벌떡 옷 바늘을 찾으려고 서랍을 뒤지는 사이.

“…….”

이시백은 옷 속에서 중화제를 꺼내 손님의 입에 흘려 넣었다. 마사지만 해도 증세를 치료할 수 있었지만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것이었다. 이시백은 사건이 실패할 가능성을 눈곱만큼도 남겨두지 않고자 했다.

손님의 안색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런 거로 괜찮나요……?”

“일종의 물뽕입니다. 조금 질 나쁜 물건을 사용한 것 같군요.”

대본에서 제일 어려운 고비가 간단하게 넘어갔다.

“다, 다행이다…….”

기생은 이시백이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생각에 감사를 느꼈다. 이제 기생은 동료들한테 이시백이 얼마나 능숙하고 침착하게 사건을 무마했는지 떠들겠지. 기녀들 사이에서 이시백의 평판이 단번에 높아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마무리.

마무리는 이시백이 아니라 김태헌 사장이 담당했다.

종업원이 전원 모인 자리에서 김태헌은 인정사정없이 회칼을 휘둘렀다.

“일 초다. 이 개보다 못한 새끼야.”

칼날은 정확히 허 주임의 목줄기를 그었다.

단순히 잔인하기만 한 일격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멱을 따버린 것이었다.

“허 주임, 이 가게가 내 가게지 네가 뽕 파는 가게냐.”

“꺼헉…… 억, 허억…….”

남자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왜 칼침을 맞아야 했는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싶었지만, 신음 이외에 아무것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결국 남자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완전무결한 희생자로서.

“뭣들하고 있어? 박수 쳐야지?”

그 죽음이 무색하게도, 향금산 창관의 종업원들은 박수 세례를 퍼부었다.

이시백이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시백의 시야에 시체가 들어왔다. 시체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이시백의 구두를 가볍게 적셨다.

이시백은 눈동자가 차가웠다.

‘사람 장기 팔아먹던 놈이니 지옥에서 변명할 말도 없을 거다.’

김태헌이 웃으면서 이시백한테 악수를 청했다.

두 남자는 서로의 손을 잡으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어, 시백 동생.”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어느 쪽이나 살인자의 눈매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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