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23화
제4장 국민체조 2분 20초(2)
2
처음부터 이시백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향금산 창관에서는 사장과 지배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 불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짬밥을 먹은 기생들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그런 상황에서 김태헌 사장이 신입 한 명을 떡하니 고용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구나!’
딱 봐도 지배인을 견제하려는 수작이었다.
기생들 입장에서는 사장보다 지배인이 더 좋았다.
월급이야 사장한테서 나온다지만 기녀들의 불평불만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고, 생활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은 지배인이었다.
“여기 이 친구가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하게 된 새 식구여. 예전에 서울에서 창관일을 해봤다니까 신입이긴 해도 경력생이지. 자아, 다들 따뜻한 박수로 식구를 맞이해 줍시다.”
그렇기에 김태헌 사장이 이시백을 소개시켜 줄 때, 창관의 고급 기녀들은 마음속으로 심드렁했다. 의례적인 손뼉 소리가 터졌다.
‘경력생은 무슨. 실무는 하나도 모르는 따까리겠지.’
‘아무리 나이가 많아봤자 스무 살로 보이는데 쟤가 뭘 알아.’
명백한 무시.
심지어 지배인은 미팅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김태헌 사장이 제멋대로 아가씨의 멱을 따버린 것에 대해 암묵적으로 시위하는 것이었다.
자기 동료를 잃어버리게 된 기생들 또한 사장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이건 그대로 이시백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어졌다.
‘뭐만 잘못하면 대머리 사장한테 꼰지를 거야.’
‘새로 들어온 시아라는 계집애도 수상쩍어. 절대로 말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지.’
첫째 날에는 이시백에게 말을 걸어오는 기생조차 없었다.
이시백은 그저 묵묵하게 로비에서 서 있었다.
묵색 창파오를 입은 이시백은 당장 사극에서 그럴듯한 엑스트라로 기용되어도 좋을 만큼 옷발이 살아났다.
아직 경력이 짧은 기생들-물밑에서 정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걸 알아채지 못한 초짜들-은 얼굴마담을 시키려고 고용된 모양이다,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언니, 왜 저 오빠를 무시하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까라면 까. 그런 게 있어.”
기생들이 수군거렸다.
철저하게 선후배 관계로 이루어진 기녀들은 이시백을 업무에서 제외시켰다.
코앞을 지나칠 때 인사를 주고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고, 어쩌다 같은 자리에 있게 되어도 한국어가 아니라 광둥어로 얘기했다.
혈기왕성한 스무 살이 견디기에는 적이 모욕적인 대접이었다.
“쟤가 다른 표정 짓는 걸 본 적이 없어.”
“속이 음흉해서 그래. 원래 비밀이 많은 남자들이 표정이 없어요.”
“역시 대머리가 심어둔 염탐꾼인가 봐요, 언니.”
이시백의 바로 옆자리에서 뒷담화가 오갔다.
설령 광둥어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기생들이 은근하게 보내는 시선, 목소리의 방향, 뉘앙스 때문에 대충 어떤 쑥덕공론이 벌어지는지 느낄 법했다.
그런데도 이시백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 무덤덤했다. 석상과 같은 얼굴에 더 샘이 나는 기녀들이었다.
“제깟 놈이 헌터라고. 우리들 등쌀에 얼마나 버티나 한번 봐보자.”
예부터 여자들이 체결한 비밀 동맹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이 비밀 동맹은 외적에 맞서 싸우거나 경제적인 이익을 공유하는 데는 별다른 쓸모가 없었지만, 한 가지 분야, 누군가를 따돌리는 일에서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했다.
첫째 날이 지나도, 둘째 날이 되어도, 셋째 날이 흘러도, 이시백은 기녀들과 단 한마디의 말조차 나누지 못했다.
“꺄아악!”
전환점은 넷째 날이었다.
새벽 다섯 시. 웬만한 술자리가 전부 파장이 되어가는 무렵.
“아무나, 잠깐 아무나 좀 와서 어떻게……!”
이 시간대에는 창관의 분위기도 어딘지 소주에 물을 탄 것처럼 눅눅했다.
기생이든 헌터든 피곤했으며, 손님들 또한 잠기운에다 술기운까지 겹쳐 얌전해졌다.
이렇게 제일 힘든 업무 시간은 ‘신입’이 담당하게 마련이었다.
방에서 허겁지겁 달려 나온 기생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기녀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홀에는 며칠 전에 갓 들어온 신입 헌터밖에 없었다. 나머지 헌터들은 죄다 담배를 피우러 간다는 명목으로 자리를 비웠다.
“…….”
이시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생이 뭐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이시백은 그녀를 지나쳐서 방 안에 들어갔다.
“아, 다, 다른 사람을 불러야!”
“조용히 하십시오. 손님들 전부 깨울 셈입니까.”
이시백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냉정하게 가라앉은 이시백의 눈동자가 자신을 쏘아보자, 기생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알몸으로 뛰쳐나왔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말씀하세요.”
“가, 갑자기 손님이 쓰러졌어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방 안쪽에는 중년 남자가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미 의식을 잃었는지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었는데, 정말로 갑자기 게거품을 물더니…… 저 정말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무도 아가씨를 탓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손님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시백이 남성의 몸을 더듬거리면서 툭 내뱉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기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부터 하고 있었다.
이시백이 사장의 끄나풀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지만, 아무래도 손님을 모셔야 하는 기생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태였다.
“죄,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술을 마시는 도중에 이렇게 되었다고.”
“저기, 구급차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이시백이 묵묵부답으로 근처를 살펴보았다. 구급차를 부르는 것은 논외였다.
웬 난리가 일어났나 싶어서 손님들이 깨어날 테고, 주변의 창관들도 소동에 관심을 기울일 터.
그러다가 저 가게에서 손님이 술 마시다 쓰러졌다더라, 하면 졸지에 가게 평판이 하수구에서 헤엄치는 것이었다.
“이거로군.”
이시백이 술잔 근처에 굴러다니는 유리병을 집었다. 무척 자그마한 유리병이었다. 그는 병마개를 열어서 코끝에 가져가 킁킁거렸다. 레몬처럼 신 냄새가 풍겨왔다.
“손님이 술에다 이걸 타셔 마셨습니까?”
“네? 네에. 제 단골손님인데 항상 오실 때마다 그걸 타서 드세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바늘이나 옷핀이 있으면 좀 건네주십시오.”
이시백이 남자의 웃통을 까 벗기고 손바닥과 발바닥을 열심히 주물렀다. 어찌나 악력이 강했는지, 의식을 희미하게 잃은 가운데서도 남자가 기묘하게 신음했다.
기생이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바늘이요?”
“…….”
“아, 내가 바늘을 어디에 두었더라……!”
이시백이 싸늘하게 흘겨보았다.
기생이 정신을 차리고 서랍장을 뒤적거렸다. 그녀가 헐레벌떡 옷바늘을 가져왔다.
이시백은 탁자에 놓인 촛불에 바늘 끄트머리를 달구었다. 그리고 체한 사람을 다루듯 남자의 엄지를 바늘로 땄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런 거로 괜찮나요……?”
“일종의 물뽕입니다. 조금 질 나쁜 물건을 사용한 것 같군요.”
몬스터 체액을 사용해서 만든 마약이었다.
본래 손가락을 딸 필요조차 없었다. 단지 기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보여 주기 용으로 그러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에 남자의 호흡이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
“다, 다행이다…….”
기생이 옆에서 훌쩍거렸다. 손님이 잘못되면 기생까지 처벌을 받았다.
처벌의 강도야 다양했지만 하다못해 한 달 월급만 박탈당해도 우울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거의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고마워요, 이 주임님. 이 주임님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뻔했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
“일반인이 이런 거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몬스터로 만든 마약은 헌터들이 꽉 잡고 있는데 값 후려치기 딱 좋지요. 이런 건 현장에서 거래하는 편이 낫습니다. 옷 챙겨 입으십시오. 사장님한테 갑시다.”
“…….”
무언가 귀찮은 일에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생은 울상을 지었다.
그날 오전. 손님들이 모두 퇴실하고 난 창관에서 공개 미팅이 열렸다.
조직원과 기생 전원이 넓은 로비에 모여들었다. 홀에는 김태헌 사장이 화가 단단히 난 얼굴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아가들아, 다 모였냐?”
“예, 형님.”
“하루 업무가 끝나서 졸라게 피곤할 텐데 이렇게 불러서 미안하다. 그런데 우리 가게의 평판이랑 관련된 문제라서 이게 내가 나서지 않을 도리가 없구만.”
김태헌 사장이 작은 물병을 들고 보란 듯이 흔들었다.
“누구여?”
“…….”
“어떤 시정잡배 새끼가 우리 작업장에서 이딴 걸 팔았어. 사장인 내가 허락하지도 않은 상품을 누구 마음대로 좌판 깔고 지랄해서 유통했냐고. 여기가 동흥동 시장판도 아니고 뭐 팔고 싶으면 아무나 팔아도 되는 곳이야?”
분위기가 싸해졌다.
조직원들은 사장의 시선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기녀들은 저런 사업을 자기네가 벌일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태헌의 서슬 퍼런 기세에 질겁해서 고개를 숙였다.
김태헌 사장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얼굴 들어, 쌍놈들아!”
사람들이 퍼뜩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김태헌은 일렬로 나란히 도열한 조직원들을 일일이 지나치기 시작했다.
김태헌의 손에는 회칼이 들려 있었다. 며칠 전에 일패짜리 기생의 목줄을 그어버린 날붙이였다.
“어떤 연놈이 손님한테 이런 저급스러운 물뽕을 팔았는지, 사실 나는 다 알어. 이거 마시고 황천길 티켓 끊을 뻔한 손님께서 전부 말해주셨거든. 아가들아, 좋은 말로 할 때 자수해서 광명 찾아라. 차 실장. 네 자식이여?”
“아, 아, 아닙니다. 형님.”
조직원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즉답했다.
“제가 형님 모신 지 몇 년인데 그런 애들 장난을 치겠습니까.”
“누가 했는지는 모르고?”
“모릅니다. 정말로 모릅니다.”
“가게 돌아가는 꼬라지를 모르는 게 자랑이다, 빡통 새끼야.”
김태헌 사장이 조직원의 뺨따귀를 후려쳤다.
조직원은 균형을 잃고 그만 자리에서 넘어졌다.
김태헌은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조직원의 배를 발로 깠다.
조직원이 신음을 내는 소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로비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포가 짙어졌다.
“후우.”
김태헌이 다음 순서의 조직원들에게 차례차례 다가섰다.
“우리 자문사, 너는.”
“죽어도 아닙니다요, 따거.”
“허 주임, 아니면 너냐?”
“아닙니다, 사장님.”
김태헌이 네 번째로 이시백과 시선을 마주쳤다.
김태헌 사장은 예의 두꺼비 미소를 지었다.
“우리 신입생 이시백이.”
“…….”
“네가 그러고 보니 여기 오기 전에 의정부에서 마약을 다뤘어. 시백 동생이 오자마자 손님이 한 명 쓰러졌네. 이게 우연인지 아닌지 내가 판단이 살짝 아리까리하거든? 좋은 말로 할 때 불어보는 것은 어떤가.”
이시백이 침묵했다.
김태헌 사장이 히죽거리면서 회칼을 손가락만으로 휙휙 돌렸다.
칼날이 공중을 가르는 소리가 불길하게 울렸다.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이시백이 범인일 리 없다는 것을 아는 기생마저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따악 삼 초 주겠어. 삼 초 부를 때까지 자백하면 손모가지 하나만 받고. 삼 초가 되었는데도 얘가 자백을 안 한다. 그러면 진짜 모가지가 날아가는 거여. 자아, 삼 초.”
“…….”
“이 초.”
김태헌이 회칼을 바로 잡았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지나가고, 김태헌이 칼을 휘둘렀다.
“일 초다. 이 개보다 못한 새끼야.”
기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방에 피가 튀면서 남자의 몸뚱어리가 허물어졌다. 남자는 자신의 양손으로 목을 붙잡은 채 꺽꺽 헛숨을 뱉었다. 칼날이 파놓은 상처를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것처럼. 그러나 핏물은 손가락 틈새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허 주임.”
남자의 정체는 이시백 옆에 서 있던 조직원.
창관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은 부하를 내려다보며, 김태헌 사장이 차갑게 비웃었다.
“이 가게가 내 가게지 네가 뽕 파는 가게냐. 응?”
“꺼헉…… 억, 허억…….”
“주제를 모르는 똥개들이 자꾸 기어요.”
김태헌이 회칼을 세워서 이번에는 조직원의 복부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칼날이 살갗과 내장을 헤집어 놓는 소리가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조직원은 기묘한 신음을 흘렸지만, 네 번째부터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김태헌 사장이 자기 양복으로 회칼에 묻은 피를 닦았다.
“자아, 모두들 주목.”
“…….”
“여기 있는 우리 시백 동생이 이번에 큰일을 하나 해주었어. 내가 이제 나이를 먹었는지 가게에 잡상인이 돌아다녀도 못 알아봐. 시백 동생이 물뽕 때문에 맛이 가버린 손님을 응급처치로다가 구해 주지 않았으면, 우리 가게 평판도 뽕 맞은 복날 강아지처럼 엎어질 뻔했어야.”
김태헌이 주위를 쓰윽 훑어보았다.
“뭣들하고 있어? 박수 쳐야지?”
그러자 종업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손뼉을 열심히 쳤다.
이시백이 예의 바르게 동서남북, 네 방향에 한 번씩 허리를 숙였다.
헌터들과 기생들은 일단 자신이 살았다는 생각에 무조건 박수 세례를 보내었다.
이시백이 슬쩍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바라보았다.
‘두 번째 공사가 끝났다.’
이 조직원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은 희생양.
이른바 버림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