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22화
제4장 국민체조 2분 20초(1)
1
하나, 둘, 셋, 허이―
개성 자남동에는 이른 아침부터 우스꽝스러운 음악이 울렸다.
길가를 지나치는 사람들, 창관의 테라스에 나와서 휴식하고 있는 기생들이 신기하다는 듯 음악의 진원지를 쳐다보았다.
“저게 뭐야……?”
“저거 들어본 적 있어. 그거, 무슨 체조인가 하는 건데.”
“남쪽에서 한국인 할아버지들이나 하는 거잖아.”
다름 아니라 국민체조.
이시백은 경쾌하지만 다소 뻣뻣한 동작으로 관절을 풀었다.
이시백의 발치에는 다 낡아 빠져서 당최 음악을 내는 것인지 신음을 꺽꺽거리는 것인지 모를 골동품이 있었다.
만약 백과사전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골동품의 이름이 라디오라는 것조차 모를 뻔했다.
“어머, 어머. 저거 봐. 귀여워라!”
“옷차림이 별로지만 얼굴은 봐줄 만하네.”
“너 저런 남자가 취향이었니? 하여간 보는 눈하고는.”
“뭐래, 지는 뚱보한테 깔리는 게 취향이면서.”
기녀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이시백의 체조를 감상했다.
개성의 자남동과 북안동 사이에는 옅은 개천이 흘렀다.
물이 적게 흘러서 개천 중간 중간에 자갈밭이 섬처럼 드러났는데, 그곳에서 이시백이 운동하고 있었다.
참고로 개성의 창관들은 바로 이 개천을 따라 양옆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다시 말해, 기녀들한테 완전히 노출된 장소.
-등배 운동. 하나, 둘, 셋, 허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 둘, 셋, 허이. 다섯, 여섯, 일곱, 몸통 운동.
라디오에서 구령이 흘러나왔다. 이시백은 창피하지도 않은지 평소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지시에 따라 허리를 위아래로 숙였다가 폈다가 좌우로 흔들었다.
표정이 너무 진지한 나머지 기생들은 그만 웃겨서 까무러쳤다.
“어휴.”
윤시아가 개천 둔덕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한숨을 푹푹 쉬었다.
윤시아는 검은색 치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치맛자락이 갈라진 틈새로 매끄러운 허벅지가 드러났다. 연한 검은색 스타킹마저 소녀의 타고난 곡선을 감추지 못했다.
“왜 운동하는 건 선배인데 부끄러움은 제 몫이냐구요…….”
중국계 창관 향금산(香金山)에 고용된 지 일주일째.
윤시아는 선배와 덩달아서 유곽에 취직해 버렸다.
윤시아 본인의 의견은 눈곱만치도 반영되지 않았다.
창녀가 되기 싫어서 헌터의 부하로 들어간 윤시아로서는 분통이 터지다 못해 머리가 훼까닥 돌아버릴 일이었다. 실제로도 돌았다.
“나 몸 팔기 싫다구요!”
“괜찮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
“문제밖에 없는 거겠죠, 이 선배 자식아!”
일주일 전, 윤시아는 이번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
물론 열여섯 살짜리 여자애가 제아무리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본들 이시백에겐 고양이의 귀여운 재롱잔치에 불과했다. 시위는 단 4초 만에 진압되었다.
“진정해라, 꼬맹아. 언제나 이성을 유지해라.”
“우리는 조금 더 이성을 잃을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요.”
“유곽에 들어간다고 해서 처음부터 영업 보내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어. 그냥 물장사랑 유곽 장사랑 다른 점이 그거다. 괜히 평양 기생이랑 개성 기생들이 창녀가 아니라 기녀라고 불리는 게 아니야.”
“아, 또 설득당할 삘이다…….”
윤시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슬슬 자기가 이시백의 밥이라는 운명을 체감하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경험에서나 지식에서나, 심지어 본능과 직감이라는 측면에서조차 윤시아는 이시백한테 까마득하게 뒤처졌다.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불평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포크 크레인처럼 우악스러운 이시백의 손아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윤시아가 한숨을 쉬었다.
“기생이 그냥 창부랑 다를 바가 뭔데요?”
“월등하게 좋은 수질이다.”
이시백이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그는 언제나 진지했다. 윤시아는 이시백이 모닝똥을 쌀 때도 지금이랑 똑같이 진지한 표정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 좀 좋다는 게 뭐가 대단해요.”
“평양도 그렇지만 개성에선 아무나 기생으로 뽑아주지 않아. 일단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이 가장 이상적인 나이다.”
“히익. 이북은 아동성애자들 천국인가요!?”
“교육 기간이 필요한 거다, 교육 기간이.”
이시백이 손가락으로 후배의 이마에 딱콩을 날렸다.
윤시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파요!”
“벌써부터 발랑 까져서는. 잘 들어라. 얼굴이 반반하고 싹싹한 여자아이를 뽑아다가 짧으면 1년, 길면 2년 정도 실습을 시킨다. 밤자리 예절뿐만이 아니라 말재변, 일반 상식, 교양을 가르치는 거다. 유곽이 규모가 있으면 악기 한두 개까지 가르치지.”
윤시아가 입을 떡 벌렸다. 그건 말 그대로 예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평균 1년 정도의 수업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시험을 치른다.”
“시, 시험까지 봐요?”
학교를 전혀 다녀보지 않은 고아 출신답게 윤시아는 시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닭살이 돋아나는 고질병이 있었다.
윤시아의 머릿속에서 기생이라는 개념이 매우 공포스러운 무언가로 변해갔다.
“그래. 시험은 기녀 협회에서 주관한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반년에 한 번씩 열리나 그럴 거야. 개성의 온갖 창관에서 후보생들을 보내오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험이 진행되니 꼼수를 부릴 수도 없다. 그런 자리에서 후보생이 꼴사납게 실수를 저지른다고 상상해 봐라. 창관 망신을 제대로 시키는 거다.”
창관들이 기를 쓰고 견습생들을 훈련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다른 창관에서 보낸 아이들보다 성적이 나쁘다니, 불명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게의 평판에 직결되었다. 행여나 불합격자라도 나오면 동종업계 경쟁자들한테 비웃음을 당했다…….
“아니, 창관들이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교육해 줘요?”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지.”
이시백이 짧게 비웃음을 흘렸다.
“수업은 물론이고 숙박, 식대까지 전부 장부에 적어둔다. 일종의 마이킹이지. 애당초 수업료가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1년이고 2년이고 지나면 이자가 눈 더미처럼 불어난다.”
“…….”
윤시아는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눈치 빠르게 화류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알아들었다.
“기껏 고생해서 기생이 되었더니 남아 있는 건 어마어마한 빚더미뿐이군요.”
“창관에서는 여태까지 재워 주고 키워 준 은혜를 잊어버렸냐면서 기생들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가만히 있으면 빚만 늘어나니 기녀들도 필사적으로 일하고.”
“흐응. 창관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고급 성노를 가지게 되어서 좋고요?”
“손님들은 언제나 수질 높은 아가씨한테 봉사받으니 좋지.”
“그거 뭐라고 해야 할까…….”
윤시아가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아직 알아채지 못했지만 이시백이 이따금 짓는 미소와 빼닮았다.
“잘 만들어진 쓰레기네요.”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잠자리와 먹거리가 해결된다. 고아들 입장에서는 달리 선택지가 없겠지. 게다가, 운이 좋아서 창관의 에이스가 되면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 인생을 역전시킬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야.”
“그 좁쌀만 한 희망을 바라보고 화류계에 뛰어든다?”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고통을 정당화하니까.”
이시백이 윤시아를 땅바닥에 내려주었다.
윤시아는 어느새 얌전해져서 선배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창관에 견습생으로 들어가도 몸이 팔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윤시아도 거리낄 게 없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정보통. 눈에 띄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 그저 평범한 후보생처럼 수업을 받고, 악기를 배우고, 아가씨들의 시중을 들어. 기생들에게 귀여운 동생이 되어라.”
“지배인과 관련된 말을 엿듣고 보고하면 되겠네요.”
이시백이 윤시아의 어깨를 두들겼다.
“역할은 간단하다. 나는 출세를 위해서 창관에다 여동생을 팔아재낀 불한당. 너는 순진하게 오빠가 하라는 대로 기생 명부에 이름을 써 버린 열다섯 살 여자애. 우리 두 사람은 친남매는 아니지만 의정부에서 마약 유통을 함께해서 오빠 동생 하는 사이.”
윤시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네?”
“입력되었냐.”
“그런 소꿉장난 같은 짓은 왜 하는데요?”
딱콩.
이시백이 재차 윤시아의 이마를 때렸다.
“원래 이런 작업에서는 설정이 중요한 거다. 너는 그리고 나한테 홀라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짝사랑 여자아이의 역할까지 담당해라.”
“선배, 죄송하지만, 혹시 미쳤어요?”
“아쉽게도 24시간 내내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윤시아가 썩은 동태 눈깔로 이시백을 쳐다보았다.
“너무 순진해서 자기가 창관에 팔아 먹혔는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자기보다 네 살이나 많은 남자한테 반해 버려서 뇌까지 푸딩처럼 말랑말랑해진 소녀라니……. 싫어요! 완전 저랑 성격이 정반대잖아요!”
“걱정하지 마라. 잘해낼 거다.”
걱정하지 마라.
대책이 없을 정도로 당당한 발언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유곽에 들어가서 열심히 살아본 결과, 윤시아는 그러나 선배의 안목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끊겼다.
윤시아는 미리 준비해 둔 물수건을 고이 품고 이시백에게 달려갔다.
“오빠아아아―”
혓바닥에 버터를 네 겹은 바른 목소리.
턱을 45도 각도로 치켜들고. 양팔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 살랑거린 채.
당신에게 달려가는 지금이야말로 저는 인생의 의미를 만끽합니다 하고 만면에 활짝 웃음꽃을 피우고 윤시아는 이시백의 팔뚝에 덥석 들러붙었다.
“오늘도 너무 멋졌어, 오빠아! 오빠는 어떻게 새벽마다 운동을 해? 너무 성실해. 게다가 그냥 체조하는 모습까지 그림이 된다니까. 후후, 나 오빠한테 또 반해 버렸어요!”
그러했다.
놀랍게도 윤시아는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그야말로 개천을 쳐다보고 있던 스무 명의 행인들 전원이 식도에서 토악질이 올라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껴야 할 만큼, 짝사랑 소녀를 흉내 내는 데 있어 천재적인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래, 고맙다.”
이시백이 식은땀을 흘리며 물수건을 받았다.
윤시아에게 연기의 재능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과거에도 몇 번이나 다른 헌터와 함께 깨 쏟아지는 커플을 연기했으나, 윤시아처럼 자연스럽게 구역질을 유발하는 파트너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오빠는 어쩜 팔뚝이 이렇게 굵어? 무서운 아저씨들이 시아한테 다가오면 오빠가 지켜주려고 이렇게 팔뚝까지 굵은 거야? 헤헤. 오빠도 차암. 완전 구제불능 주책바가지라니까―”
“…….”
이시백은 강렬한 살인충동을 느꼈다.
그는 윤시아가 왜 필요 이상으로 배역에 몰입하는지 잘 알았다.
‘꼭 이렇게 복수해야겠느냐, 후배야.’
‘아무리 임무를 위해서라지만 후배를 창관에 입적시키고 팔자에도 없는 짝사랑 소녀까지 연기하게 만들었는데, 선배 혼자서 멋지고 고독한 불한당처럼 지내겠다고요?’
두 사람이 모기 날갯짓처럼 작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멀리서 보기에는 청년과 소녀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만약 이곳에 몽골인이 있었다면 그 뛰어난 시력으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절대로 웃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리라.
‘그 꼬라지는 제가 못 보겠는데요, 선배.’
‘동네 사람들이 전부 보고 있다.’
‘잘됐네요. 그만큼 선배랑 제 사이를 멋대로 오해할 테니까요.’
‘독한 녀석. 너는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냐.’
‘어떤 훌륭한 선배께서 절대 당하고 살지 말라고 가르쳐 줬습니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이시백이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탄식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더니, 이미 이시백은 윤시아에게 가르칠 것이 더 없음을 깨달았다.
원석을 발견해 낸 자신의 안목에 뿌듯해야 할까.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
“자아, 오빠아. 시아가 오빠한테 드리려고 도시락을 싸왔어요!”
아직 끝나기는 멀었다.
마치 최종 보스가 용사한테 선언하듯, 윤시아는 작은 가방에서 도시락 통을 꺼냈다.
도시락 통에는 멸치 주먹밥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었다. 윤시아가 주먹밥 하나를 들어서 이시백한테 건네주었다.
“아아앙―”
“…….”
이시백. 올해로 실제 나이가 37세.
쌍문동의 미친개라 불리며 수많은 헌터를 사냥해 온 이 남자는, 단언하건대 지금만큼 심각하게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한 적이 없었다.
그는 안면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참았다.
“정말……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으응? 오빠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윤시아가 샤방샤방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시백은, 이 고양이처럼 교활한 소녀가 입꼬리를 히죽 기울인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시아는 그저 우리 오빠를 정말 정말 좋아할 뿐인걸요!”
“…….”
신은 죽었다.
이시백은 자신이 더욱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될 수 있으면 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 심정으로 느릿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윤시아는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주먹밥을 이시백의 입구멍에 쏙 넣었다.
주먹밥은 무척이나 맛있었다.
하지만 이시백은 독극물을 삼켜도 이것보다는 편하리라 생각했다.
“꺄아아아! 저것 좀 봐, 저것 좀 봐!”
“어휴. 우리는 언제 저런 애인을 사귀나!”
“우리 막내, 잘한다! 남자는 그렇게 꼬시는 거야!”
창관 테라스에 앉은 기녀들이 두 남녀의 애정 행각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향금산 창관의 기생들에게 윤시아는 이미 ‘사랑스러운 막내’로 취급받았다.
매일 아침 이런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는데 귀엽지 않을 리 만무했다.
이시백은 윤시아가 기대 이상으로 임무를 수행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 주먹밥은 아직 많아요!”
“…….”
“시아의 사랑이 듬뿍 담겼으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해요.”
윤시아가 두 번째 주먹밥을 꺼내 들었다.
이시백이 절감했다. 저건 주먹밥이 아니라 어떤 사악한 과학자 집단이 제작해 낸 초소형 핵탄두였다.
그리고 자신은 방사능이 위장에서 퍼지는 감각을 몇 번이고 맛봐야만 했다…….
꼭두새벽. 개성에서는 기녀들이 꺄악거리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