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21화
제3장 우리 가게 에이스 (11)
“비즈니스는 무슨. 언니 하나 잡아서 꺄꺄 어른들 놀이 즐기는 게 비즈니스면, 창관에서 놀아나는 아저씨들이 전부 사장님이게요. 만날 뭐만 하면 사업이고 비즈니스야.”
“오늘따라 툴툴거리는 강도가 높구나.”
“선배가 한 번 남 떡치는 소리 때문에 철야 해보세요.”
그거 조금 끔찍하긴 끔찍하겠다, 하고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침실에다 기녀까지 딸려 보내준 건 저쪽에서 호의를 베푼 거다. 여기서 발을 빼면 상대방의 배려를 무시해 버리는 꼴이야. 게다가…….”
“게다가?”
이시백이 샤워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침대에 누운 기생이 대화를 엿 들을까 조심하는 것이었다.
윤시아는 별말 없이 이시백을 따라 들어갔다.
“아무렴 돈독 오른 헌터가 괜히 아가씨를 붙여줬겠냐. 하룻밤 놀리는 것도 전부 돈 낭비라고 생각할 양반들인데. 내가 짭새인지 아닌지 적당히 탐색해 보라고 일부러 눈치 좋은 아가씨를 보낸 거야.”
“아항.”
이시백이 창관 측에서 준비해 놓은 1회용 칫솔을 집었다. 쭉 하고 하얀 치약을 짜내면서 이시백은 꼭 ‘그거’ 같다고 생각했다.
“같이 놀아나는 와중에 계속해서 오빠 어디서 뭐 했느냐, 어떻게 여태껏 살아왔느냐, 지겹게 꼬치꼬치 캐묻더군. 적당히 대답해 주었다.”
“헤에. 저 계속 귀를 꽉 막고 있어서 몰랐어요.”
“도저히 질문을 안 멈추지 뭐냐. 그래서 그냥 기절시켰다.”
청년과 소녀가 나란히 세숫대야에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윤시아는 딱 이시백의 가슴팍까지 키가 닿았는데, 꼭 오빠와 여동생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치카치카 양치질하는 소리가 귀엽게 울렸다.
“그렇게 좋아요?”
“뭐가?”
“그거요, 그거. 기절할 정도로 기분 좋냐구요.”
방년 16세.
벚꽃도 기가 죽어서 감히 근처로는 떨어지지 못할 묘령의 나이, 윤시아는 당연하게도 이 미지의 세계에 매우 심오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여태껏 이런저런 고생을 하면서 살아온 윤시아였지만 어떻게든 처녀성만큼은 지켰다.
정조 관념이 투철해서가 아니었다.
창관에 팔려 나가도 처녀는 값을 조금 더 쳐준다.
그 얘기를 듣고 자신의 상품 가치를 사수했다.
윤시아는 시장 경제 원리를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현한 소녀였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군.”
이시백이 상당히 고심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열여섯 살 미경험 여자애한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약 이시백의 근처에 보이지 않는 천사가 날아다녔다면 ‘이런 꼴마초 머저리야! 여자애한테 뭘 말하려는 거야! 당연히 아예 설명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지극히 상식적으로 조언했을지도 몰랐다.
안타깝게도 이시백은 무신론자였으므로 천사가 가까이 다가서기에 썩 달가운 인간이 아니었다.
“으음. 그러니까 보통 남자에게 좋고 여자에겐 별로다.”
결과적으로, 이시백이 매우 심혈을 기울여서 ‘그 짓’에 대하여 설명했다.
“어, 그래요?”
“여자는 모든 걸 아름답게 만들어주지. 일단 남자를 봐라. 주목할 곳이 한 군데밖에 없지 않느냐. 하지만 여자는 한 군데에 더해서 예쁜 살덩어리가 두 개나 더 있어. 어떠냐. 벌써부터 1:3이다.”
이시백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치 매우 말이 된다는 듯 진지하게 얘기했다.
경험이 일천한 윤시아로서는 그게 헛소리인지 참소리인지 분간할 재주가 없었으므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놀이터에 비유할 수 있다. 남자라는 놀이터에는 미끄럼틀 하나밖에 없어. 하지만 여자라는 놀이터에는 미끄럼틀도, 시소도, 그네도 있지. 어느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것이 재밌을까.”
“당연히 후자죠.”
“그런 거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한 비유까지.
“처음부터 불공정한 거래야. 제대로 된 시장이라 말할 수가 없어.”
“에게.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선배는 남자라서 다행이지만 전 여자잖아요.”
“매우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이시백이 양칫물을 뱉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꺼번에 남자를 세 명 데리고 놀면 된다.”
“……!”
윤시아는 1+1=2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원시인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러건 말건 이시백이 본인의 연애 철학을 절찬리에 전개했다.
“자고로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 세 명도 후려치지 못해서야 제대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왜 손해를 보고 사냐. 돈을 벌어라. 많이 벌어. 그리고 반반하게 생긴 영계놈 네다섯 명쯤 골라잡아서 원할 때마다 갖고 놀아라.”
“원래 그게 정상인 거군요, 선배!”
“그럼. 다만 이 세상이 험악하고 삭막해서 정상인으로 살기 어려울 뿐이다. 시아야. 너는 내 후배가 되었으니 절대로 남자한테 휘둘리고 살지 마라. 내가 그런 꼴은 못 본다.”
참혹한 조기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 친구는 어떻게 해요? 제가 여러 명 사귀는 거 싫어할 텐데.”
“남자 친구를 왜 사귀냐. 그런 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예전에 말이다, 아주 애인을 사랑하던 헌터가 한 명 있었다. A급에다 실력도 좋았는데 적대 조직에서 애인을 납치했어. 그러니까 힘도 못 쓰고 죽어버렸지.”
“으아…….”
“헌터 세계에서 애인은 복덩어리가 아니야. 약점이다. 알면서도 당해 줄 수밖에 없는 약점. 물론 네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만, 웬만하면 남자 친구는 두지 마라. 그거 골치 아파.”
“알겠습니다, 선배.”
윤시아가 몹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즉, 연인 말고 섹파만 만들어라…… 그런 말씀이군요!”
“그래. 훌륭한 헌터라면 모름지기 무미건조한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러브와 엔조이 중에서 마땅히 엔조이를 선택해야지.”
“옙, 명심하겠습니다.”
방년 16세.
사람은 가려서 사귀라는 선인들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한 소녀의 연애관이 결정되어 버린 계절이었다.
어쩌면 가장 큰 비극은 윤시아 본인이 ‘오늘도 선배한테 좋은 수업을 들었어’ 하고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리라.
“자아, 면접이나 보러 가자.”
창관에 유리색 어스름이 깔린 새벽녘.
밤새 격렬하게 운동을 뛴 손님들이 저마다 잠에 들었고, 일찍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남몰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하루 업무가 끝나가기 때문이겠지.
넓은 홀을 돌보는 마담도, 진상 손님을 대비해서 여기저기 앉아 있는 종업원도, 어딘지 나른해진 얼굴로 연초를 피웠다.
그들은 저마다 인생을 후회하고 있었다.
‘담배를 끊어야 사는데, 젠장.’
‘이번에는 또 어디서 돈을 빌려서 술을 마시나?’
‘사내새끼들 거시기를 죄다 잘라버렸으면.’
‘차 실장 그놈을 죽여야 내가 승진해. 어떻게 조질까…….’
타다 남은 담배꽁초와 같은 그곳을, 이시백과 윤시아는 조용하게 지나쳤다.
두 사람이 사장실에 찾아오자 김태헌이 확 밝아진 얼굴로 환영했다.
김태헌은 막 두 시간 전에 이시백의 정보를 입수한 참이었다.
“어이구. 시백 동생, 이리 와! 어서 이리 와. 야아, 하룻밤 보지 못한 사이에 아주 훈남이 되어버렸어야. 사람이 땟국물을 빼니까 영화배우를 해도 먹히겠네. 허허.”
깨끗한 백색!
헌터 협회, 헌터 청사, 검찰, 자그마치 세 군데를 돌려서 검색했다.
어느 곳에서나 이시백이 경찰과 아무런 인연이 없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제 김태헌은 하느님을 믿을지 부처님을 믿을지 알라를 믿을지만 결정하면 되었다. 실로 행복한 고민이었다.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이시백이 허리를 숙였다. 변함없이 멋진 인사였다.
김태헌은 오늘 아끼던 기녀 한 명을 썰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랴,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고? 응? 우리 아가씨는 어땠어.”
“멋졌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아주 제대로 시키셨습니다, 형님. 뼛속까지 보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 흐허허. 우리 아기들이 쫄깃하긴 또 열라게 쫄깃하지.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애들 좀 많이 먹어줘. 음식은 똑같은 거 자꾸 먹으면 질리는데, 아 우리 아가들은 먹으면 먹을수록 때깔이 새롭다니까.”
김태헌이 두꺼비처럼 길게 찢어진 입으로 웃었다.
“동생, 내가 가만히 보니까 우리 동생도 선수야. 의정부에서 마약 단속 떴다고 하자마자 손 털고 이쪽으로 넘어온 거 아냐. 요컨대 동생은 지금 일자리를 구하는 구직자 신세여?”
“예, 맞습니다.”
“그런데 떠억 하니 내 앞에 나타나서 요렇게 귀여운 짓을 해준다 이거지.”
김태헌이 담뱃갑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몇 시간 전, 이시백이 자리를 떠나면서 말없이 남겨둔 라블린시아였다.
“이거뿐만이 아니여. 내가 경비대한테 슬쩍 알아보니까, 시백 동생. 카라반이 오우거한테 전멸당했다는 얘기를 경비대에 보고하지 않았네? 그냥 말없이 넘어갔어. 그거 보고하면 잘했다고 포상도 내려줄 텐데…….”
김태헌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어디 한 번 네 속내를 말해 봐라. 그런 시선이었다.
“왜 그랬어야? 우리 선수끼리 진솔하게 말해 보자고.”
“예, 경비대한테 보고하기 전에 형님한테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우거가 출현했다고 얘기하면 바로 관계자들한테 붙잡혀서 두 시간 정도 제 사정을 청취했을 겁니다.”
“흐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제가 맡은 임무는 형님께 최대한 빨리 화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삼십 분이든 두 시간이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서야 안 되지요. 어차피 형님께서 알아서 경비대에 말씀하실 테니, 저는 조용히 빠져나왔습니다.”
“…….”
김태헌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똑똑하고 책임감이 있어.’
경력까지 깨끗했다.
젊은 데다 떡대가 나쁘지 않으니 얼굴 마담으로 사용하기에도 제격이었다.
더군다나 김태헌에게는 마침 시다바리가 필요했다.
김태헌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월 사백! 성과급은 따로.”
신입에게 월급 사백만 원은 조건치고 아주 괜찮았다.
과연 아가씨 사업에다 통나무 장사까지 겸업하는 조직이라고 해야 할까. 씀씀이가 컸다. 그렇지만 이시백은 곧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승부였다.
“요즘 아가씨들이 말썽이지 않습니까, 형님.”
“어?”
“몇 시간 전에 형님께서 아가씨 하나 잡으셨을 때. 형님은 단순히 다짜고짜 여자애를 썰지 않았습니다. 왜 가게 돈에 손을 댔냐고, 왜 허튼 짓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시백이 엿들은 말은 이러했다.
-링나야, 내가 네 그냥 족치려고 이 사단을 벌였겠냐? 왜 가게 돈에 손을 댔냐고
-에라이, 됐다. 그냥 네가 멍청한 여자인 걸로 퉁치자.
마치 기생이 가게 돈에 손을 댄 것에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 이유를 캐내고 싶지만 미처 캐내지 못한 사람처럼 김태헌은 시종일관 기분이 나빴다.
거기서 이시백은 김태헌 사장이 어떤 사태에 직면했는지 짐작해 냈다.
“어디서 형님 가게에 공사가 들어왔지요?”
“…….”
김태헌의 눈초리가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사람 좋은 미소를 입가에 달고 살던 대머리 중년은 사라졌다.
장난스럽게 호들갑을 떨던 기색도 증발해 버렸다.
기생이 도망치면 잡아서 멱줄을 따버리고, 돈 때문에 인간의 장기를 해부해서 팔아 해치우는 헌터.
악인(惡人).
여태까지 수백, 수천의 시체를 만져 본 남자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김태헌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다만 웃음이 입가에 그쳤다. 눈은 표독하게 상대방을 흘겨보고 있었다.
“우리 가게에 침 흘리는 후레자식들이야 언제나 있어 왔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여. 아우가 그걸 구태여 언급하는 이유는 뭐인가.”
“제가 물어뜯겠습니다.”
“으흐흐.”
김태헌이 차갑게 비웃었다.
“시백 동생, 동생이 스무 살 애송이치고 전도가 유망하다는 건 나도 인정해. 아, 그런데 그게 있어.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생사람이고 죽은 사람이고 졸라게 많이 봤거든? 자기 주제를 모르는 애새끼는 항상 시체가 되더라고.”
“…….”
“아우가 뭐 얼마나 대단하기에 누구를 물어뜯겠다는 거야. 응? 우리 가게에 공사치는 새끼들이 누구인지 나도 몰라. 저 건너편에서 아가씨 장사하는 쪽바리 새끼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디 높으신 양반일 수도 있고. 시백 동생이 뭘 어떻게 알고 아가리를 물 건데.”
이시백이 침묵했다.
김태헌이 실실 웃으면서 입술에 연초를 물었다.
그는 이 와중에도 이시백을 평가하고 있었다. 자신이 본모습을 드러냈는데도 이시백은 입을 다물었을 뿐이지, 안색이나 자세가 바뀌지 않았다. 깡이 딴딴했다.
“좋아. 월 사백삼십.”
“…….”
김태헌이 기분 좋게 수급을 올려주었다.
그가 바라보기에 이시백은 흙이 묻은 보석이었다.
흙먼지를 털어내 주면 얼마든지 영리한 사냥개로 클 수 있었다.
삼십만 원은 장난스럽게 얹혀준 돈이 아니었다.
‘조금 어설펐지만 잘 노력했다’라는 의미. 젊은이를 칭찬해 주는 의미에서 붙여 준 것이었다.
“우리 가게 역사상 초짜한테 사백 넘게 불러준 적이 없어요. 자랑스러워해도…….”
“지배인 아닙니까.”
김태헌은 몸동작이 뚝 멈추었다.
두 남자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가라앉았다.
김태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
“형님께서 아가씨 잡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가락을 잘라서 다른 기생들한테 돌리라고. 본보기를 보여 주시겠다는 의미이겠습니다마는.”
이시백이 김태헌을 똑바로 직시했다.
“거기에 이상한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아가씨들 비위가 약하니까 일 전부 끝난 다음에나 보이라고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형님께서 그렇게 아가씨들을 배려할 이유는 없습니다.”
애당초 기녀들의 비위까지 생각해 줄 양반이었다면 문답무용으로 그 기녀의 목을 그어버릴 리 없었다.
잔혹한 헌터답지 않은 배려심이었다. 조금 더 실질적인 이유가 있으리라.
예를 들어서.
“업무 시간 도중에는 절대로 아가씨들한테 참견하지 말라.”
“…….”
“혹시 지배인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김태헌 사장과 지배인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든지.
창관을 소유한 사람은 김태헌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기생들을 관리하는 쪽은 지배인.
두 사람은 사업을 두고 사사건건 부딪혔다.
만에 하나라도 지배인이 아가씨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나, 김태헌 사장의 지위를 흔들어놓기 위해 교묘히 기생들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제가 아가리가 작기는 해도 지배인 한 명을 물어뜯을 정도는 됩니다.”
그것이 B급 헌터 김태헌이 품은 의심이었다.
“…….”
김태헌이 가만히 눈앞의 청년을 노려보았다. 숨 막히도록 적막한 시간이 흘러갔다.
불을 지폈지만 한 번도 들이켜지 않은 연초가 절반쯤 타들었다. 김태헌이 입을 열었다.
“월 육백.”
“지배인을 잡았을 경우에는 어떡할까요.”
“흐으.”
김태헌이 히죽 웃었다.
“삼억. 일시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