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8화 (18/142)

건달의 제국 18화

제3장 우리 가게 에이스 (8)

농밀한 향내.

창관에 들어서자마자 윤시아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

숨이 막혔다. 남중국 특유의 강렬한 향이 가게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희미한 연기와 연기 사이로, 반쯤 헐벗은 여인들이 이쪽을 흘겨보았다.

기생들은 저마다 입에 장죽을 하나씩 물었다. 새빨간 입술 틈새로 연초가 새어 나왔다.

“손님일까. 손님치고는 너무 더러운걸.”

“빡통아, 차 실장이 데리고 온 거 안 보여? 비즈니스 파트너인가 보지.”

“걸레를 화장실이 아니라 입구멍에다 빨았니. 왜 다짜고짜 욕질이야.”

“걸레는 모르지만 대물은 어제 물어봤지. 어휴, 이 빠지는 줄 알았어.”

“변태!”

서너 명의 여인이 소곤소곤 떠들었다. 기생들은 광둥어를 섞어 가며 서로를 욕했다. 이따금씩 기녀들이 꺄르르 웃었다. 그때마다 실구름 같은 담배 연기가 흩날렸다.

저도 모르게 윤시아의 시선이 연기를 쫓았다.

마치 기다란 손가락들이 무언가를 할퀴려는 듯, 집어 끌어내리려는 듯 허공에 머무르는 듯했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연기는 향내에 뒤섞여서 형체를 잃고 허물어졌다.

“어머, 혹시 막내로 들어오는 애일까?”

윤시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시선이 자신을 훑어보고 있었다.

기녀들의 눈초리는 느긋했으나 그건 수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여유였다.

그녀들이 자신의 값어치를 슬쩍 매기고 있음을, 윤시아가 깨달았다.

“열네 살? 열다섯 살? 교육받고 나면 딱 좋을 시기에 출하되겠네.”

“영계가 좋긴 좋아. 보고만 있어도 피부가 펴지는 것 같잖아.”

“조금 더럽긴 해도 꽃단장시키면 예쁘장하겠다, 얘. 누가 사자(師姉)가 되려나.”

윤시아는 어쩔 줄 몰라서 당황했다.

이국적인 미인들이 자기를 마음대로 품평하고 있었다.

그때 우악스러운 손길이 시아의 왼손을 덮었다.

윤시아가 조금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이시백의 오른손이 투박하니 그곳에 있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예, 따라오십쇼.”

이시백이 안내원을 따라서 걸어갔다. 이시백은 본래 걸음걸이가 상당히 느린 편이었다.

윤시아는 선배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아주 약간 더 빠른 것을 느꼈다.

“…….”

윤시아가 얼굴을 푹 숙였다. 이시백이 윤시아의 손을 잡고 반쯤 끌고 가다시피 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기녀들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들이 광둥어로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나, 벌써 임자를 꽁쳐 뒀나 봐.”

“쟤가 우리보다 낫네! 이 나이 될 때까지 너희는 뭐 했니.”

“나한테는 언니들이 있잖아. 다 같이 할망구 되면 그만인걸.”

“끔찍해라!”

이번 웃음은 아까 전처럼 상대방을 깔보거나-혹은 결국에 자기 자신을 깔보거나-하는 음색이 아니었다.

오직 축하해 주고 싶은 웃음이었다. 윤시아는 광둥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이쪽입니다.”

일행이 좁은 복도를 지나쳤다.

복도 끄트머리에는 검은색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경호원이 두 명 서 있었다.

경호원들은 이시백이 다가오든 말든 무뚝뚝한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아마 자신들은 인간이 아니라 바위쯤으로 태어났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용오름입니다.”

안내원이 방문을 두드렸다. 한참 반응이 없었다. 안내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이시백을 뒤돌아보고 난처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다음,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용오름 쪽 사람을 데려왔지 말입니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무런 전조 없이. 방문을 두들긴 안내원조차 섬찟 놀랐다.

“시발탱아, 지금 시간이 무슨 시간인데 손님을 데려오냐.”

절반밖에 열리지 않은 문틈으로 조직원의 얼굴이 보였다.

턱수염이 어설프게 자라났는데 머리카락만은 왁스를 잔뜩 발라 뻣뻣하게 뒤쪽으로 넘겼다. 예의를 차린 것인지 차리지 않은 것인지 어중간한 외모였다.

“크, 큰형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통나무 장사 건 때문에…….”

“따거! 통나무로 사람 부르셨습니까!”

조직원이 고개를 휙 돌리고 소리쳤다.

잠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직원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문짝을 열어젖혔다.

“한창 바쁜데 찾아오셨구먼요. 양해 좀 구합시다?”

조직원이 이시백을 삐딱하게 노려보았다.

“비즈니스인데 제가 당연히 존중해야지요.”

“이 아저씨가 그래도 말이 통하는구먼.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한창 바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윤시아는 곧바로 알았다.

방문이 활짝 열리자, 그동안 윤시아의 콧속에 맴돌고 있던 향냄새가 순식간에 지워졌다. 대신에 혈향(血香)이 밀어닥쳤다.

마치 피를 머금은 안개가 깔린 것처럼 방 전체에 쇠 냄새가 진동했다.

조직원이 투덜거렸다.

“아, 존나게 질긴 연놈이 걸려 버렸다니까.”

방 안에는 상의를 발가벗은 사내들이 여덟 명이나 늘어서 있었다.

다들 몸매가 우락부락하기보다 펑퍼짐했다. 배가 불쑥 튀어나온 사내들은 전신에 휘황찬란한 문신을 새겼다.

그들은 이시백을 쓰윽 곁눈질로 훑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사장님……!”

방 한가운데 한 쌍의 남녀가 무릎을 꿇었다. 흠씬 두들겨 맞은 것일까. 남자와 여자 모두 피투성이였다. 여자가 손바닥이 다 닳을 기세로 빌고 있었다.

“저 연놈들이 둘이서 짝짜꿍이 맞아버렸어.”

조직원이 이시백에게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조직원 나름대로 이시백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윤시아는 두 사람이 속닥거리는 대화를 조용히 엿들었다.

“한 놈은 우리 업소 아가씨. 다른 한 놈은 가끔 손님으로 들리던 애송이. 그런데 우라질 것들이 도망칠 때 가게 돈을 훔쳐 간 거 아뇨. 우리 형님께서 제대로 빡 돌아서 애들 다 풀어버렸다니까. 아새끼들이 겁대가리도 없어.”

“아가씨 등급은 어떻게 됩니까?”

“일패.”

일패라면 적어도 하룻밤에 백만 원. 간판 아가씨급의 창부였다.

윤시아는 조금 전에 이시백이 설명해 준 것을 떠올리며 여자를 쳐다보았다.

피딱지가 군데군데 붙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얼굴을 갖추고 있었다.

“알 거 전부 알 만한 여자가 왜 도망을 쳤는지 모르겠군요.”

“내 말이 그 말이요, 썅. 뭐 얘기를 들어보니까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는데, 아이고. 그놈의 사랑 어쩌고 하는 레퍼토리 지겨워서 더는 못 들어주겠네. 아니, 사랑하면 지들끼리 곱게 떡을 칠 것이지, 왜 가게 돈을 훔쳐서 도망가. 미친놈들. 아저씨, 담배 펴요?”

“고맙습니다.”

윤시아는 상황이 완전히 이해되었다.

이른바 사랑의 도피였다.

윤시아는 아가씨 업소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했지만, 조직의 돈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윤시아 본인도 마약 조직의 돈을 뒤로 빼돌려 보지 않았던가.

하루에 한 갑.

윤시아는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하루에 딱 한 갑만 훔쳐서 비밀장소에 파묻었다.

2년이 넘어서 삼천만 원 상당의 현물을 마련했다.

모름지기 조직의 주머니를 털려면 눈에 띄지 않게, 생쥐가 의자 밑동을 갉아먹듯 빼돌려야만 했다.

“바보네요.”

윤시아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조직원이 설명한 어투로 짐작하건대 기생은 아예 거금을 훔쳐서 달아나려고 한 것 같았다. 그래서야 이 무서운 아저씨들이 길길이 날뛸 법했다.

“바보지.”

“여자는 정말 사랑 때문에 눈이 멀어버리나 봐요.”

“글쎄. 약간 이상하기도 하군…….”

이시백이 무심한 눈빛으로 남녀를 바라보았다.

이 와중에도 남녀의 눈물겨운 애걸복걸이 절찬리에 이어졌다.

잠시 돈에 눈이 돌아버렸다느니, 사장님께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하다느니,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은 진짜라느니.

그런 애원을 일일이 들어야 하는 장본인, 즉 방 안에서 유일하게 의자에 앉은 업소 사장은 담배만 뻑뻑 피웠다. 그는 머리가 다 벗겨진 중년이었다.

“아니, 링나야. 내가 네 그냥 족치려고 이 사단을 벌였겠냐? 왜 가게 돈에 손을 댔냐고.”

“정말로 이 남자랑 같이 잘 살고 싶어서 그랬어요…….”

“돌아버리겠네. 가게 돈 탐냈다가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너 정도 되는 애가 몰라? 진짜로 내가 너희들 얌전히 놓쳐 줄 거 같았냐.”

사장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사장은 손수 회칼을 치켜들고 기녀한테 다가갔다.

“에라이, 됐다. 그냥 네가 멍청한 여자인 걸로 퉁치자.”

“사, 사장님! 사장님!”

“어허. 내가 왜 네 사장이야. 난 도둑놈을 키운 적이 없어요.”

사장이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여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사장이 거칠게 머리카락을 쥐었다.

“많이 안타깝다, 야. 너 참 비싼 여자였는데.”

사장이 회칼로 여인의 목을 그었다. 공중에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윤시아는 눈썹을 찡그렸지만 그 광경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바로 어젯밤에 스무 명가량의 인간이 학살당하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윤시아에겐 일종의 면역력이 생겼다.

사장은 상반신이 피에 홀딱 젖어버렸다.

“으이구.”

사장이 회칼을 던졌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것과 동시에 기생의 몸뚱어리도 풀썩 하고 힘없이 쓰러졌다.

코앞에서 애인의 목이 따인 탓일까. 남자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뭐 하냐, 치우지 않고. 이 애송이는 일단 지하에 가둬 놔.”

“예, 형님!”

사장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는 담배 한 대를 꼬박 다 피울 때까지 삼십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제3자가 봤더라면 영락없이 사업장 운영을 걱정하는 중소기업 사장의 얼굴 그 자체였다.

“아, 그래.”

사장이 눈을 크게 뜨면서 이시백이 서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이거 내 정신 좀 봐. 손님을 모셔 두고 내 일만 해버렸네. 앉으쇼, 앉아.”

“아닙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시백이 정확한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윤시아는 이시백에게 미리 배운 대로 양손을 배에 가지런히 올리고 인사했다.

흠잡을 구석이 없는 예의에 사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리는 무슨…… 사람 써는 곳을 어떻게 자리라고 할 수 있나. 아, 동생이라고 불러도 괜찮소?”

“이시백이라고 합니다, 형님.”

“그래, 그래. 시백 동생, 누추한 곳까지 잘 찾아왔어. 내가 자그맣지만 사업을 하고 있는 김태헌이여. 아니, 너희는 거기서 멀뚱멀뚱 뭐 하냐. 너는 의자 갖고 오고. 너는 커피 좀 타와.”

김태헌 사장이 피곤한 얼굴로 부하들을 가리켰다.

“예, 형님!”

“대답은 졸라 잘해요. 내가 없으면 너희들 똥은 스스로 닦을 수 있냐.”

김태헌이 쯔쯔 혀를 차며 부하들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어디론가 끌려갔고, 여자의 시체가 포대에 담겨서 운반되었다. 어설프게나마 대걸레로 핏물도 닦였다.

시체 포대가 막 문밖으로 실려 가는 참에 김태헌이 말했다.

“아, 참. 거시기 뭐냐. 은향이 손가락 잘라서 다른 아가들한테 한 접시씩 돌려라? 애들이 본보기를 한 번 봐야 딴마음을 먹지 않지.”

“알겠습니다, 형님.”

“그래. 그리고, 뭐냐. 우리 애들 비위 약하니까 일 다 끝나고…… 내일 아침 여덟 시쯤에나 보여 줘. 일 들어가기 전에 보면 그거 손님들 제대로 상대하겠냐. 그리고…….”

김태헌 사장이 눈썹을 모았다. 또 무언가 지시할 게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아니, 됐다. 그렇게만 해. 손님들 방해 안 되게 조심혀라.”

“예, 형님.”

“진짜 조심해!”

김태헌이 부하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소리치고 이시백을 바라보았다.

이때 처음으로 두 사람이 눈길이 똑바로 마주쳤다.

이시백은 상대방이 격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쉽게 눈치챘다.

“시백 동생, 내 많이 실례했어. 트럭 두 대 중에서 한 대가 나가리 됐다고?”

“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카라반 도중에 오우거와 만났습니다.”

“……뭐, 오우거?”

이시백이 차분하게 오우거의 습격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김태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몬스터는 천재지변과 다를 바 없었다. 한마디로 운이 나빠서 천금만금 같은 운송 트럭을 잃게 되었으니, 김태헌 입장에서는 입맛이 상당히 썼다.

“그래, 시백 동생이 잘못한 건 하나 없구만. 오히려 한 대라도 끌고 와줘서 고마워. 내가 애들한테 말해서 웃돈도 넉넉하게 얹혀 줄게.”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휴우. 박대수 걔가 뒈져 버렸다 이거지. 젠장, 어쩐다…….”

김태헌이 또 담배를 피웠다. 그는 남한테 말하지 못할 고민에 잠겼다.

툭 하고 이시백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

김태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이시백을 봤다.

“무슨 걱정?”

“산속에 내버려 두고 온 트럭이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오우거가 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시 당국에서 조사가 나갈 텐데, 그때 행여라도 트럭에 실린 통나무 조각들이 발견되면 일이 꼬이니 말입니다.”

“어어…….”

김태헌 사장이 입을 벌렸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야?”

“제가 운전해 올 수 있는 트럭이 한 대뿐이긴 했지만, 다른 트럭도 일단 처리는 해두었습니다. 상자들 전부 뜯어서 비닐팩째로 숲에 던졌습니다. 고블린들이 피 냄새를 맡고 알아서 파먹어줄 것입니다. 형님 사업이 적발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

“그리고.”

이시백이 품 안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오만 원 지폐로 두둑하게 묶인 돈다발.

본래 도시의 경비대한테 먹일 용도로 준비된 그 뇌물이었다.

“기름칠용 돈도 챙겨왔습니다. 형님 돈이니 가지십시오.”

“…….”

김태헌이 멍하게 돈다발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손에 들린 담배가 전부 타버리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30초, 1분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김태헌이 이시백을 쳐다보았다. 꼭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인을 목격한 얼굴이었다.

김태헌이 말했다.

“야, 너 내 밑에서 일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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