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7화 (17/142)

건달의 제국 17화

제3장 우리 가게 에이스 (7)

5

“죽는 줄 알았어요. 진심으로.”

윤시아는 소금기에 절은 영광굴비처럼 핼쑥해졌다.

윤시아가 대놓고 이시백을 째진 동태 눈깔로 노려보았다. 이시백도 평소보다 얼굴이 창백했다.

“세상에, 정말 운전면허 딴 거 맞아요?”

“이상하군. 내가 그래도 차를 제법 잘 몰았는데. 아마 트럭이라서 조금 운전이 안 먹힌 것 같다.”

“조금? 조그으음?”

윤시아의 얼굴이 썩었다.

“지금 이 참사를 보고도 조금이라는 말이 기어 나와요?”

“어찌 되었든 간에 목적지에 도착은 하지 않았느냐.”

“와아, 대단해. 고마워요, 선배. 제가 깜빡하고 저희 목적지가 어디인지 잊었어요. 그만 우리가 개성이 아니라 황천길로 직행하는 줄 알았지 뭐예요.”

“…….”

현재 트럭의 상태는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최악.

5시간 전, 처음에 윤시아는 조수석에 올라탈 때만 해도 짧지만 즐거운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윤시아는 자신에게 물고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시백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선배는 나를 존중해 주고 있어.’

고아인 윤시아가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배려였다. 그리고 기분 좋은 배려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시백이 엔진에 시동을 걸자마자, 갑자기 트럭이 후진하여 소나무에 살짝 부딪혔을 때, 윤시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선배도 실수할 때가 있네요.”

“워낙 오랜만에 차를 몰아봐서 깜빡했군.”

이시백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일랑 전혀 없었다. 길을 걷는데 잠깐 발끝에 돌멩이가 걸렸다. 겨우 그 정도 느낌이었다.

“괜찮아요. 막 달려요, 선배!”

정확히 3분 후에 윤시아는 자신의 발언을 후회하게 되었다.

트럭은 전방과 후방은 물론이요, 측면까지 성한 구석이 없었다.

조폭한테 골고루 두들겨 맞은 체납자처럼 온몸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져 있었다.

윤시아는 트럭이 나무에 부딪힌 횟수를 13번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그녀가 13 이상의 숫자를 세지 못할 정도로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세상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하느님께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기도하느라 바쁜 나머지 차마 숫자를 셀 여유가 없었다.

“저, 개성 들어가자마자 운전 배울게요. 선배는 평생 절대로 핸들 잡을 생각하지 마세요.”

여섯 시간의 운전은 무신론자인 윤시아를 매우 과격한 신앙인으로 탈바꿈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창조주께서는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사랑하신다는 것, 즉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던 이시백도 운전이라는 분야에 한해서는 가히 재앙스러운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송장 두 개 치울 일 있어요? 전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아리까리한데.”

이제 윤시아는 전투적인 신앙인 특유의 거친 눈빛으로 이시백을 쪼았다.

이시백은 지은 죄가 있어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주 예전에 용병단장도 저렇게 반응했다.

용병단장은 이시백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온 직후, 잔뜩 굳은 얼굴로 ‘전속 운전사를 따로 고용해야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용병단장은 이시백을 전적으로 신뢰했지만 다시는 운전을 맡기지 않았다.

쓰라린 추억이었다.

“저게 뭐여?”

경비병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트럭을 발견했다.

그는 개성의 동쪽 성문에 서 있었다.

경비병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시백이 운전하는 트럭이었다.

당연하게도, 경비병도 저게 트럭이라는 것쯤이야 알았다.

그럼에도 경비병은 ‘저건 대체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철학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사지가 전부 잘리고 머리통까지 절단되어 버린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 불러도 좋을까? 그건 단순한 시체이지 않을까.

지금 저 멀리서 동문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는’ 트럭도 트럭이 아니라 무언가 색다른 단어로, 가령 ‘깡통’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저, 정지. 잠시만 정지해 주십쇼.”

깡통이 기어코 동문까지 기어오는 데 성공했다.

경비병은 깡통에도 동력 장치가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경이로웠으나, 일단 자기한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경비병이 이시백에게 물었다.

“저기,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왔느냐. 질문에서 경비병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실 경비병은 하마터면 용케도 안 죽었다고 운전수를 칭찬할 뻔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의정부에서 왔습니다.”

“예, 그런데…… 자동차 상태가 많이 안 좋네요?”

“교통사고가 조금 있었습니다.”

경비병이 이시백의 헌터 자격증을 살펴보며 실로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교통사고처럼 귀여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시백이 슬그머니 말했다.

“용오름에서 배달하는 화물입니다.”

“아, 용오름 분이셨습니까요!”

경비병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경비병은 이시백과 잡담 몇 마디를 나누더니 곧바로 트럭 뒤 칸에 가서 상자를 꺼내었다.

아이스박스에는 오백만 원어치 돈다발이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

“통과!”

경비병이 기분 좋게 외쳤다. 트럭이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아니면 마침 하늘에서 떨어지던 유성과 충돌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업무가 끝나고 창관에 들릴 수 있겠다 싶어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춤을 추었다.

트럭이 털털거리며 성문을 빠져나왔다.

“아니, 저게 뭐래.”

“용달 트럭 맞지……?”

행인들이 트럭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성문 근처는 항상 사람으로 북적댔다.

외지인을 꽤서 데리고 가려는 여관집 호객꾼, 다른 도시로 출발하려는 카라반, 지친 여행자를 달래 주려고 서성이는 길거리 아가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일제히 트럭을 바라보았다.

“졸지에 유명인이 된 기분이네요.”

윤시아가 심드렁하게 투덜거렸다.

그녀는 오우거가 습격했을 때보다 조수석에 앉았을 때 훨씬 더 실감 나게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난 후 세상만사에 달관해 버렸다.

인간은 몬스터보다 무서웠다. 정말로.

“이제 어떻게 할까요? 작업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요.”

“가만히 기다리면 그쪽 조직원이 접근할 거다. 어젯밤에 연락이 끊겼으니 초조할 거야.”

트럭이 끼익, 하고 멈추었다.

엔진이 꺼지자마자 어디선가 퍼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에서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모락모락 피었다.

성문의 행인들이 깜짝 놀라 트럭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참 빨리도 죽네.”

반면에 윤시아는 조수석에 있음에도 태연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녀는 담력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지금이라면 코앞에 드래곤이 나타나더라도 코웃음 칠 자신이 있었다.

“…….”

유구무언이라. 이시백은 조용히 연초를 피우기만 했다.

거하게 환영식을 치른 트럭으로 조심스레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어깨가 떡 벌어진 덩치였다. 그렇지만 저 트럭에는 웬만한 깡패들조차 가까이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오우라가 있었다…….

“저어. 혹시 용오름에서 오신 분들 맞습니까?”

“통나무 배달하러 왔습니다.”

“아, 맞네요. 고생 참 많으셨습니다.”

남자가 조직원 특유의 어눌한 어투로 말했다.

“하루 늦는다고 전화는 받았는데 거 어젯밤에 아예 연락이 끊겨서요. 그, 원래 트럭이 두 대 오기로 하지 않았나요? 혹시 한 대만 먼저 도착한 건가요? 박대수 씨도 안 보이고.”

“운반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한 대가 터졌습니다.”

“터져 버려요?”

남자는 눈썹이 팔(八) 자로 구겨졌다.

“이렇게 계약을 어기시면 곤란한데. 두 대가 오기로 했으면 두 대가 와야지, 아 무슨 일로 한 대가 터져 버렸대요. 죄송하지만 박대수 씨한테 전화 좀 연결합시다.”

“요즘 전화기는 죽은 사람이랑도 통화가 가능하나 봅니다.”

“예에?”

이시백이 담배를 뻐끔거렸다.

“대수 형님은 물론이고 카라반 전체가 싹 다 전멸했습니다. 운전수고 헌터고 죄다 죽었다 이 말씀입니다. 이 트럭 하나 챙겨 오는 데도 목숨을 걸었어요.”

“예, 예에?”

“책임자 불러주십시오.”

이시백이 곁눈질로 조직원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몸이 경직되었다. 평범한 운전사인가 싶었더니 아니었다. 이쪽 업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만, 그것도 몸을 아주 깊숙이 담은 독종만 품을 법한 눈빛이었다.

“그쪽 형님한테 전달하세요. 사업 쫑나게 생겼다고.”

6

개성자치시(開城自治市).

한반도에서 평양과 더불어 가장 물이 좋은 동네였다.

저녁 무렵이 되자, 작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성벽처럼 늘어선 한옥들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였다.

한옥 모양으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 3층짜리 건물, 심지어 6층짜리로 지어진 이 건물들은 모두 유곽.

“좀만 쉬었다 가, 거기 멋지게 생긴 청년!”

“오늘 화요일이라서 싸게 싸게 해줄게.”

이른바 창관의 거리였다.

자남동(子男洞)과 북안동(北安洞)은 옛날부터 한옥 마을로 유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는 특이한 건물 외관을 앞세워서 호화로운 창관들이 들어섰다. 주로 한국인과 화교가 일대를 점령했다.

재미난 점은 화교의 창관은 마치 중국 전통 가옥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끔 일본인 포주가 운영하는 창관까지 섞여 들어, 자남동-북안동 거리는 진기하게도 동양풍의 분위기를 뽐내게 되었다.

“화아아.”

윤시아가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일본식 기모노를 입은 창부, 속이 훤히 비치는 개량식 한복을 입은 창부, 몸에 착 달라붙은 치파오를 입은 창부까지.

여인들은 창관의 2층 테라스에 앉아 긴 곰방대를 빨았다. 손길 하나하나가 야릇하고 고급스러웠다.

“언니들 진짜 예쁘네요. 하룻밤에 얼마예요?”

윤시아는 이렇게 화려한 동네를 처음 보았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졌고, 창관 너머에서 음악이 연하게 흘러나왔다.

길거리 전체가 자신의 사치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했다.

“급수에 따라 다르지. 삼패는 하룻밤에 이십만 원 정도 할 거다.”

“삼패요?”

“가장 급수가 낮은 기생이야.”

이시백이 팔을 들어 오른편의 창관을 가리켰다.

2층 테라스에서 일본인 창부들이 다소곳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은 제각기 다른 색깔의 기모노를 입었다.

“아무 색깔이나 차려입은 기생이 삼패, 연홍색을 입은 기생이 이패, 진홍색을 입은 기생이 일패. 일패가 제일 비싸고 삼패가 제일 싸다.”

“일패는 하룻밤에 얼마 줘야 하는데요?”

“가게마다 다르지만 아무리 적어도 백은 넘지.”

“배, 백…….”

윤시아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최소한 백이라고 한 걸 보아 보통은 백오십만 원을 부르리라.

그렇다면 일주일에 세 탕만 뛰어도 사백오십.

달마다 천오백만 원은 가뿐히 벌어들였다.

윤시아는 기생의 휘황찬란한 삶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시백이 작게 웃었다.

“왜. 갑자기 저쪽 업계가 땡기냐?”

“그건 아닌데요, 선배. 솔직히 눈이 팽팽 도네요.”

“아서라. 보기에만 좋지 속은 썩어 문드러진 경우가 많아. 게다가 일패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작은 창관에는 기껏해야 한 명만 있다. 급수를 정해 주는 게 창관이 아니라 기녀 협회거든.”

“협회요?”

“어디에나 정치 놀이를 하는 양반들이 있는 법이다.”

개성의 기녀 협회는 엄격한 수질 관리로 악명이 높았다.

왜 악명이냐 하면 나이가 조금이라도 차거나 건강이 나빠진 창부를 냉정하게 추방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저 테라스에서 하하 호호 예쁘게 웃는 여인들도 길어봤자 5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품질이 나빠졌다 싶으면 원산이나 사리원으로 팔아버리지.’

이시백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개성의 협회는 평양 기생과 경쟁하기 위해 지나치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평양과 개성이 나란히 망해 버리기 직전까지 경쟁이 멈추지 않았다.

이시백의 눈동자에 이 화려한 거리는 그저 멸망을 향해 내달리는 폭주 열차로 비추었다.

멸망이 예정된 길거리.

이시백은 어쩐지 마음이 평안했다.

“여기입니다.”

그때까지 말없이 이시백과 윤시아를 안내하던 조직원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중국식 유곽이 세워져 있었다. 창관은 3층으로 높이가 대단하진 않았으나, 다른 건물보다 세 배는 길게 양옆으로 뻗었다.

안내인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보스께서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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