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16화 (16/142)

건달의 제국 16화

제3장 우리 가게 에이스(6)

“장기밀매……. 처음 봐요.”

“대체로 서울 이북에서 잘 일어나지. 헌터들은 툭하면 불구가 되니까.”

이시백이 비닐팩을 단검으로 찢었다. 비닐팩에 노르스름하게 가득하여 있던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시백이 액체를 만졌다. 끈적끈적한 감촉이 손가락에 들러붙었다.

“만져 봐라.”

“사, 사람 장기를요?”

“아니, 여기 이 물 같은 거. 어때, 끈적거리지.”

윤시아가 머뭇거리면서 점성의 액체를 만졌다. 기분 나쁜 촉감에 윤시아의 얼굴이 급격하게 썩어들었다. 차가운 데다 뻑뻑해서 팔목까지 소름이 돋았다.

평소 세상에 불만이 많던 사람에게 이 액체를 건네주면 너무 불쾌한 나머지 그만 자살해 버릴 게 분명했다.

“으으. 이게 뭐예요, 선배? 꼭 인류에 거대한 악의를 가진 과학자가 창조할 것 같은 액체인데요…….”

“슬라임 사체에다 이런저런 약품을 집어넣은 거다. 일종의 노하우지. 이러면 꽤 오랫동안 장기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아무래도 초짜들이 벌이는 사업은 아닌 모양이군.”

이시백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예나 지금이나 밑바닥 아래에는 더 악취가 고약한 밑바닥이 있었다. 이래서 하나의 지역이 하나의 용병단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필요했다.

세력이 중구난방으로 얽히면 거의 필연적으로 기생충들이 몰려들었다. 마약 사업, 장기 매매업, 인신 매매업.

“장기 밀매는 기생충이다. 짭새랑 검찰이 절대 조용히 넘어가지 않는 사업이지. 만약 어떤 도시가 통나무 장사의 중심지더라 하고 소문이 흐르면 그 도시는 끝나는 거야. 저기 높으신 양반들이 움직여서 아예 용병단들을 통째로 쓸어버려.”

“하아.”

윤시아가 벙쪘다.

아, 하고 이시백이 정신을 차렸다.

‘너무 큰 그림을 얘기했어.’

이시백이 기대한 것보다 윤시아는 담력이 강하고 영리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지금 수준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장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았다.

적어도 동네 하나를 접수한 다음에나 논의해야 할 문제였다.

아직 이시백은 D급 헌터. 작은 용병단조차 세우지 못했다. 지나치게 거대한 그림을 떠벌릴 필요가 없었다.

“그럼 왜 다른 용병단들이 통나무 장사를 내버려 둬요? 가만히 두면 도시 자체가 망해 버릴 텐데. 뭐라고 할까. 조금 멍청한 짓 아닌가요, 선배.”

“…….”

이시백이 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법 괜찮은 걸 질문하지 않는가.

이시백은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트럭을 향해 걸어갔다. 시아도 반사적으로 그를 따라갔다.

“시아야, 운송 트럭이 도시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경비대한테 확인 절차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봐라. 어디 경비대가 통나무 조각들 잔뜩 실은 트럭을 곱게 곱게 보내주겠냐.”

“삥을 겁나게 뜯겠군요.”

“바로 그렇지.”

누가 보면 지음(知音)이라 격찬할 만큼 말귀가 통하는 사제였다.

“용병단과 경비대가 서로 고스톱을 짜고 치면 말이다. 트럭이 들어올 때마다 검사가 들어가는 부분이 따로 정해져. 여기 37이라고 적혀 있지?”

이시백이 트럭 뒤 칸에 실린 상자들 중 하나를 툭툭 건드렸다. 밤이 어두워서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자 겉면에 빨간색 마커펜으로 틀림없이 37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세 번째 줄 일곱째 칸의 상자를 검사하라는 얘기다. 다 암호야. 이 상자를 직접 꺼내 보면…….”

이시백이 꺼낸 상자에는 평범하게 고등어가 냉동되어 들어 있었다.

윤시아가 그걸 보고 신기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세상 어딘가에 있겠다 싶었던 비밀 결사에 가입하는 기분이었다.

“와아.”

“당첨이다.”

이시백이 고등어들 사이에 오른팔을 푹 넣었다. 그러자 이시백의 손에 비닐봉투가 들려 나왔다. 거기에는 몇 겹의 봉투로 꽁꽁 둘러싸인 돈다발이 있었다. 오만 원짜리 지폐 뭉치가 노란색 고무줄로 묶였다.

“오백만 원. 트럭 두 대에 천만 원인가.”

이시백이 돈뭉치를 장난감 다루듯 허공에 던지면서 놀았다.

“개성 경비대는 수입이 짭짤해서 좋겠군. 역시 큰물이 다르긴 달라.”

“대박……. 겨우 검사 한 번 넘어가 주는 데 천을 땡기는 거예요?”

“이건 수고비에 불과하지. 경비대장한테 매달 넣어주는 상납금은 또 따로 있어. 왜 헌터들이 기를 쓰고 시민이 되려고 하는지 알겠냐. 시민으로 인정받아서 문지기 쫄따구로 들어가기만 해도 신세계가 열리는 거다.”

이시백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아주 편하게 사는 세상이지.”

“선배, 우리는 어떻게 해요? 오우거한테 전멸당했다 치고 도망칠까요.”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이냐. 천만 원?”

이시백이 지폐 다발을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시아야, 돈보다 먹음직스러운 게 있다. 바로 권력이야.”

“권력이요……?”

“한 발자국 물러서라. 큰 그림을 상상해 봐라.”

큰 그림.

단지 실력 좋은 헌터가 아니라 헌터들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림을 크게 그리는 능력이 필요했다.

중국집개도 삼 년이면 짜장면을 만든다고, 이시백은 과거 용병단장을 모시면서 ‘그림 보는 방법’을 배웠다.

“통나무 장사꾼이 배달 한 번 왔다 가면 경비대만 천만 원을 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게 다 인정(人情)이라, 경비대도 그냥 입만 싹 닦고 있을 수가 없어. 용병단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이나 창관에 가서 돈을 좀 써줘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도박장을 운영하는 용병단이랑, 장기 밀매업을 다루는 용병단이랑, 둘이 사이가 제법 좋겠지.”

“…….”

이시백의 머릿속에는 이미 개성 용병단들의 역학구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옛날에 이시백은 개성에 머무른 적도 있었다.

비록 시대가 약간 다르긴 했지만, 현재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조직들이 서로 사이가 좋아진다. 경비대한테 천만 원 주는 게 혹시 아깝지 않은가? 전혀 아니지. 이 돈이 경비대만 기름칠하는 게 아니라 옆 동네 아저씨들도 기름칠해 준다. 속된 말로 다 같은 식구가 되는 거야.”

“식구…….”

“그래, 벌써 식구가 몇이냐. 운송통, 도시 경비대, 도박장, 창관까지, 적어도 네 곳이다. 이제 장기를 사들이는 애들도 껴야지. 사업 하나 벌이는 데 줄줄이 사탕으로 엮이는 거다.”

아마도 장기를 주기적으로 수출해 주는 용병단 또한 있으리라.

고아원에서 막 나온 아이들을 유혹하여 감금한 뒤,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장기를 빼내 유통 라인에 흘려보낸다. 장기 밀매업자에게 고아는 쏠쏠한 자원이었다.

“이 용병단들이 또 잘 봐달라며 자기네보다 더 큰 조직에 상납금을 바쳐. 이 규모가 큰 용병단 입장에서 이런 쫄다구들이 귀여워. 지들이 알아서 도시 경비대를 잘 닦아주잖아. 그 덕을 자기들도 다 보게 되거든.”

한통속.

상부상조.

윤시아는 그런 단어가 떠올랐다.

“짭새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도시에 막 장기가 돌아다녀. 이걸 잡고 싶지. 그런데 어떻게 잡을 거야? 빵에 처넣으려고 해도 어디 증거를 쫓아서 추격해 봐라.”

경비대, 창관 포주, 카지노바 사장들, 이들을 돌봐 주는 뒷배들. 이들이 상납금을 넣어주는 경찰서와 공무원 집단.

이시백이 일일이 그들을 호명하였다.

“어느 순간이든 짭새는 깨달을 수밖에 없지.”

개성이라는 하나의 도시 전체를 체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쟁이 안 돼. 인간이 도시 하나를 이길 순 없다. 바위에 이마를 박다가 자기 두개골이 깨지든가, 아니면 얌전히 지나쳐야지. 경찰청이나 검찰청에서 얘네를 밀고 싶어도 정확히 어디까지 밀어야 할지 시나리오가 안 잡혀. 못 들어간다.”

지도에서 도시를 지워 버릴 작정이 아니라면.

그러니 중앙 정부의 기관은 ‘정말로 도시를 통째로 쓸어버려야겠다’라는 판단이 설 때까지 기다린다. 기생충들이 거리를 좀먹어 아예 도시 자체가 거대한 벌레 소굴이 될 때까지.

윤시아가 조용히 물었다.

“……선배. 그렇게 해서 헌터들이 싹 다 밀린 도시가 있나요?”

이시백이 밤하늘에 담배 연기를 흘렸다. 멀리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이시백은 새소리가 귓가를 적시도록 내버려 두며 잠시 기억을 돌이켰다.

“있다.”

평양, 원산, 남포.

그리고 개성.

“꽤 있었어.”

오로지 이시백만이 기억하는 과거. 아니, 미래의 이야기였다.

북방의 용병단들이 깡그리 갈려 나가자, 역설적으로, 몬스터가 밀고 내려오는 것을 막을 세력이 사라졌다.

그들은 밑바닥 쓰레기였으나 달리 말해 그들 덕분에 바닥이 존재했다. 바닥조차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한도 끝도 없는 무저갱뿐이었다.

정부가 한강 이북을 포기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다.

‘우리 용병단이 망하게 된 것도 그거 때문이고.’

이시백이 가늘게 눈을 떴다.

과거에 이시백은 이 ‘거대한 도미노’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무도 막아 세우지 못했다.

헌터도, 거대 용병단도, 경찰도, 검찰도, 도시의 관청도, 각자가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문득 깨닫고 나니 이미 모든 것이 넝마쪽으로 변했다. 그렇게 모두가 망해 버렸다…….

단 한 사람.

그런 미래를 예측하고 어떻게든 바꾸기 위해 발버둥 친 여자가 있었다.

‘단장님.’

이시백이 자신의 유일무이한 용병단장을 떠올렸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무언가에 맞서 싸웠다.

작게 보자면 그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몬스터였으며, 크게 보자면 거대한 도미노에 속한 모든 방해물이었다.

어떤 의미로 그녀는 가장 순수한 의미의 헌터였다.

이시백은 그녀처럼 S급 몬스터를 토벌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 새끼들 잡는 건 내 전문 분야지.’

또 다른 의미에서 이시백은 사냥꾼이었다.

더러운 쓰레기 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라 누구보다 후각이 예민했다. 상대가 마약을 하는지, 도박에 빠졌는지, 장기를 사고파는 장사꾼인지, 이시백은 정확하게 알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원서의 사냥개.

용병단장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를 남김없이 물어뜯어 해치우는 들개. 이시백은 헌터들한테 그렇게 불렸다.

‘제가 전부 깨끗하게 청소해 놓겠습니다, 단장님.’

이시백이 연초를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신발 바닥이 꽁초를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짓이겼다.

“시아야, 그러니까 경찰청 애들이 기를 쓰고 프락치를 심는 거다. 빈대 몇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워 먹어야 쓰겠나. 콕 집어서 어느 용병단을 어떻게 조져 버려야 도시가 깨끗해지는지, 이게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져야 편하거든.”

“…….”

윤시아의 눈이 반짝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선배. 우리가 변신할 필요가 있군요.”

“바로 그거다.”

이시백이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시백의 눈동자는 정답을 도출해 낸 후배에게 명백한 칭찬과 믿음을 보내고 있었다.

“이중으로 신분을 위장해야 할까요?”

“경우에 따라서. 하지만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지.”

“장기 장사꾼한테 먼저 접근해야겠네요.”

“그래. ‘작업’은 그렇게 들어가는 거야.”

윤시아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녀는 목 없는 시체, 즉 C급 헌터한테 가서 그 몸뚱어리를 뒤적거렸다.

잠시 뒤에 윤시아는 C급 헌터의 신분증을 가져왔다. 시체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가져온 것이건만 태도에 거리낌이 없었다.

“박대수. 의정부 소속의 용병단 <용오름> 소속이네요.”

“이름만 알면 돼. 어차피 우리도 똑같이 의정부에서 왔으니까.”

“저는 어떡하죠?”

“내가 데리고 다니는 여자애라고 해 둬.”

“헤에.”

윤시아가 능글맞게 아저씨 미소를 지었다.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변태로 오해받을 텐데요. 괜찮으세요, 선배?”

“괜찮아. 그쪽 동네에서 돌아다니려면 약간 변태로 오해받는 편이 좋다.”

이시백이 C급 헌터의 자격증을 살펴보았다.

신분증에 붙은 사진, 그리고 윤시아가 품 안에 안고 있는 머리통. 두 곳에 똑같은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이시백이 신분증 끄트머리로 잘린 머리의 이마를 툭 쳤다.

그리고 이시백이 뒤를 돌아섰다.

“공사 한 판 들어가자.”

“네, 선배!”

두 사람이 트럭에 올라탔다. 곧이어 배기구에서 매연을 뿜어냈다. 1톤짜리 용달 트럭이 덜덜거리며 굴러갔다. 그들이 떠나자 야영지에는 조용한 새소리와 이제는 아무런 말이 없는 시체들만이 남았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개성.

북방의 대도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