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8화
제2장 단지 취향의 문제(4)
공무원은 얼굴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이시백의 눈을 찬찬히 살폈다.
“마약 신고요? 저기, 이시백 님. 제가 이런 농담은 많이 서툴러서…….”
“라블린시아로 만든 마약이 뒷골목에 떠돌아다니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저희도 장님이 아니니까 알고는 있죠.”
공무원이 고개를 살짝 틀어서 주위를 확인했다.
청사에는 이시백 말고 다른 헌터가 없었다.
정오 무렵. 헌터 청사가 가장 한가해지는 시간대였다.
공무원은 그제야 항상 꼭두새벽에 출몰하던 이시백이 왜 하필 지금 찾아왔는지 이해했다.
“그렇지만 왜 저희한테 말씀드리는 건가요. 경찰에 신고하시면 될 텐데. 여긴 헌터 업무만으로도 바쁘다구요.”
“저도 눈먼 장님이 아닙니다. 이쪽 동네 경찰들이 진즉에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무릎 하나 걸쳤다는 것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이거 갑자기 제가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로 넘어가는데요.”
공무원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
그녀는 다시 황새처럼 목을 길게 빼내어서 청사 건물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공무원은 안심할 수가 없어서, 이시백에게 자기 쪽으로 건너오라고 손짓했다.
이시백이 불쑥 중얼거렸다.
“업무가 바쁘신 것 아니었습니까?”
“아무렴 데이트보다 더 중요하겠어요.”
공무원이 자기 책상에다 팻말을 올려 두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힌 종이 팻말에는 앙증맞게 단팥빵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공무원이 이시백을 건물의 저 안쪽 구석으로 끌고 들어갔다.
“경찰이라니 무슨 말씀이에요. 아니, 이게 아니지. 커피 좋아하세요? 녹차로 해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좋아요. 이시백 님, 혹시 경찰들이 마약상에게 뒷돈을 받았다는 증거라든지 정황을 갖고 계신 건가요.”
공무원이 소파에 앉아서 맞은편의 이시백을 지그시 응시했다.
안 그래도 의정부 헌터 청사는 마약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하급 헌터들이 마약을 제조해서 몰래 팔아 재끼고 있다는 것, 경찰들이 여기에 암묵적으로 협조해 버리는 바람에 곤란하다는 것, 그렇다고 다른 기관에 협조를 요청하자니 체면이 완전히 망가지게 생겼다는 것.
물밑에서 한창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만약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한판 싸움에 뛰어들 수 있었다.
공무원이 바라는 것은 그런 증거물이었다.
“여러분께서 난감한 처지에 놓인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시백이 다소 느긋하게 뜸을 들였다.
이전 삶에서 이시백은 여러 차례 공무원을 상대했다.
그는 직급이 낮은 공무원에게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블러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답에 끌려가는 대신 먼저 분위기부터 착 깔아둘 필요성이 있었다.
“전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마약상들이 워낙에 물량을 적게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차라리 크게 한판 벌이면 다른 곳에 도움을 구하기도 쉬울 테지만, 고작해야 동네 단위의 문제로 호들갑을 떨어서야 모양새가 나빠집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아…… 네. 그, 감사합니다. 무척 잘 알고 계시네요.”
공무원은 분위기의 주도권이 갑자기 상대편으로 넘어갔음을 느꼈다.
이시백은 당신의 입장을 전부 이해하며, 어쩌면 당신이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이 이해한다는 듯, 진중하게 공무원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마약상이 제게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용하더군요.”
“……!”
“월급으로 삼백을 제시해 왔습니다. 숙식은 제외하고. 솔직히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하급 헌터에게 과분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제안이지요. 저는 승낙했습니다.”
“자, 잠깐만요.”
공무원이 황급히 말했다.
“마약상에게 고용되셨다고요? 유통 업자로요? 아니면 설마…….”
“배달부가 아닙니다. 마약 작업장에 직접 고용됐습니다. 누가 의정부에서 라블린시아를 만들어서 퍼뜨리는 것인지, 작업장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뒤통수가 싸해졌다.
‘이건 내가 장난칠 수준의 일이 아니야!’
만일 이시백이 경찰 비리의 증거물이나 마약 배달부의 신상을 알아왔다면, 공무원은 진지하게 상담에 응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공로로 낚아챌 생각이었다.
물론 이시백에게도 적당히 명예와 상패가 돌아가도록 유도하면서.
‘팀장님한테 직접 알려야 해. 난 신고를 접수한 역할로……. 이시백 헌터가 나를 신뢰해서 비밀스러운 제보를 건네주었다. 딱 그 정도 역할로 만족하고 빠져야겠어. 이거 내가 직접 삼키려 들면 목구멍부터 터질 거야!’
공무원은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데 짐승과 같은 후각을 발휘했다.
“그, 그렇다면 마약상의 신원을 알고 계신 건가요. 제 말은 그러니까 가명이라거나 외모뿐만이 아니라 정확한 신상을…….”
“물론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릴까요?”
“아뇨!”
이런 사건일수록 발을 깊이 담그면 절대로 안 되었다.
마약상이든 뭐든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급자의 역할.
자기는 그저 제보자를 연결시켜 줄 뿐.
그녀는 아직 이십 대 중반에 불과했으나 거친 세상을 살아오며 하나의 유일한 계명을 깨달았다.
판단하지 마라. 판단이 없어야 책임질 것도 없나니! 판단을 유보하면 철밥통도 영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공무원이 건물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어서 급히 상급자한테 연락했다.
자기가 먼저 원해서 상급자한테 전화를 거는 것은 단언컨대 올해 들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잠시 뒤, 막 담배를 피우다 끊었는지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영 씨, 무슨 일이야. 안 그래도 우리가 나영 씨 주려고 연어 덮밥 사 가는데.
“팀장님. 저기 그게요. 라블린시아 신고가 접수되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또?
남자가 질색했다. 마약은 이미 2년 전에 헌터 관리국 차원에서 결정이 난 문제였다.
마약상이 욕심을 부려서 조금이라도 사업을 확대하면 곧바로 부숴 버릴 것.
-거 대충 알겠다고 대답하고 보내. 우리가 뭐 어쩔 수가 없잖아?
문제는 이 마약상이 영악해도 보통 영악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벌써 사업을 시작한 지 몇 년이나 지났으니 슬슬 배때기에 기름기가 좔좔 흐를 만했다.
이때 보통 마약상은 비즈니스를 확장한다는 명목 아래 유통 경로를 천천히 늘렸다.
의정부에서 사업을 확대한다면 다음 타깃은 뻔했다.
십중팔구 서울. 서울의 북변으로 마수를 뻗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 사건은 이제 의정부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얼마든지 명분을 휘어잡고 다른 기관들에 민폐를 끼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약상은 도무지 의정부의 자잘한 뒷골목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 했다.
꼭 머구리처럼 몸을 바싹 숙여서 절묘한 균형을 탔다.
의정부 헌터 청사에서 이 마약상은 ‘처세도 좋은 새끼’라며 이따금 화제가 될 때마다 씹혔다.
-아니면, 뭐. 적당한 증거라도 갖고 있어?
“네에. 그게 문제예요. 외면할 수가 없어서요…….”
-아서라. 웬만큼 큼직한 거 아니면 위에서 꿈쩍도 안 해. 그냥 그 뭐냐, 일단 기록만 해둬. 나영 씨 이름으로.
“마약 작업장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대요.”
남자가 잠시 침묵했다.
-뭐?
“자기가 얼마 전에 마약상한테 직접 고용되었대요. 흐이잉, 팀장님. 이거 어떡해요. 저 엮이기 싫은데 벌써 들어버렸어요!”
-자, 잠깐만. 나영 씨, 진정해 봐. 나 잠깐만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니까.
“밥 다 드셨으면 얼른 청사로 와주세요! 저 제보자분이랑 계속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얘기 다 들어버릴 거 같단 말이에요! 제가 그거 전부 알아버리면, 흐앙, 팀장님이 책임져 주실 거예요?”
-우린 기껏해야 창구 업무 보는 게 전부인데 뭘 책임져!
책임이라는 단어에 남자가 과민하게 반응했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30살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벌인다면, 틀림없이 책임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낱말’ 제1위를 위풍당당하게 거머쥘 것이 분명했으므로.
-나영 씨, 일단 최대한 뻐튕겨. 내가 갈 때까지 잡담 좀 떠들라구. 제보자가 남자야?
“네에.”
-잘됐네. 일부러 이런 시간 골라서 왔다는 건 그래도 우리한테 민폐 끼치진 않겠다는 거 아니야. 적당히 사정 설명하고. 지금 팀장이 오고 계시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 뭐 그런 거 있잖아.
남자는 공무원이 역경에 부닥쳤을 때 즉시 꺼내 드는 대전략, 요컨대 무엇이든지 상황을 낙관적으로 해석해 내는 비기를 발동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왜 나영 씨한테 말했대? 그 정도 정보를 갖고 있으면 높은 사람 부르라고 깽판 치는 게 보통 아니야? 혹시 나영 씨가 전담하는 헌터야?
“…….”
이때, 여자 공무원은 지금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명줄이 쫀득해지느냐 쫄깃해지느냐가 달려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하여 공무원은 여전히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통곡했다.
“아뇨! 그냥 한두 번 얼굴 본 기억은 있는데 잘 몰라요. 팀장님, 지금 뛰어오시는 거 맞아요? 연어 덮밥이라면 거기 사거리까지 나간 거예요? 뭐 점심을 먹는 데 멀리까지 가셨어요!”
-괜찮아. 내 비곗덩어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뛰어가고 있으니까. 제기랄, 제발 제보자가 잘못된 정보를 들고 온 거면 좋겠는데……!
그러나 의정부 헌터 관리국 의뢰 관리과 창구팀장의 요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팀장은 청사에 헐레벌떡 뛰어들어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시백이 느릿하게 한마디를 이어나갈수록, 팀장은 마치 발꿈치부터 종아리까지 하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감촉에 사로잡혔다.
“그러니까…… 작업장에 고용된 사람이 전부 고아원 출신이라는 말씀입니까?”
“예, 아마도 고아 출신 헌터들의 심리를 이용했겠지요. 공무원 여러분께서 좀처럼 꼬리를 밟지 못한 까닭도, 이 헌터들이 마약상에게 비정상적으로 강한 충성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편, 여자 공무원은 연어 덮밥을 숟가락으로 비벼 먹으면서 행복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아무튼 이제 사건은 자기 손을 떠났다.
자칫 자신의 팀이 덤터기를 씌게 될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팀장을 믿었다.
아무렴 자기한테 처세술을 가르쳐 준 장본인이 팀장 아니었던가.
‘이건 내가 처리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팀장은 30분 전에 부하 직원이 내린 것과 정확히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바로 판단하기를 포기하자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약상의 정체는…….”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공무원의 일처리에 익숙했다.
거대 용병단의 호위대장이란 아무나 해먹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시백은 자그마치 7년이나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용병단장이 남한테 부탁하지 못할 밀명을 직접 처리해 주는 것이 호위대장의 주요한 임무.
그중에는 도시의 공무원들과 이른바 ‘쇼부’를 쳐야 했던 일도 많았다.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어떤 대가를 보장해 줘야 하는지 역시 훤히 알았다.
“친절하게 상담에 응해 주시니 제가 제보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팀장이 상급자에게 전화하기 위해 일어서려 하자, 이시백이 슬쩍 운을 뗐다.
팀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이시백을 맹렬하게 욕하면서.
“하하. 헌터 여러분을 담당하는 것이 저희의 업무입니다. 당연하죠.”
“원래는 신문사에 신고할까 생각했습니다. 악질이지 않습니까. 고아들을 마음대로 부려 먹는 마약상이라니. 그쪽 기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이기도 하고.”
“시, 신문입니까…….”
팀장이 소리 없이 절규했다. 절대로 안 된다!
팀장은 즉각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고아들을 이용해서 마약을 제조하던 악덕 마약상, 체포!」
「고아들이 학대에 시달리는 3년 동안 의정부시는 침묵으로 일관?」
「각종 인권단체에서 규탄……. 의정부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방만한 헌터 관리 “더 이상 용납하기 힘들다.” 시민들의 항의가 잇달아.」
끔찍했다.
주변의 도시들에선 의정부를 비웃겠지.
체면을 구긴 의정부 시장은 헌터 관리국을 집중적으로 질타할 게 분명했다.
그럼 관리국장은 누구를 갈구겠는가. 결과가 너무나도 자명했다.
1 더하기 1은 2이며, 내일 날씨는 화창하고, 내리 갈굼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다…….
‘모가지. 내 소중한 모가지가!’
팀장은 어느새 목덜미가 서늘했다.
무슨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런 재앙만큼은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