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5화
제2장 단지 취향의 문제(1)
1
“토벌 의뢰요?”
공무원 여성이 위아래로 이시백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빠르게도 꽝 판정을 내렸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노숙 생활에 시달리는 차림새.
게다가 날붙이와 같은 장비가 전혀 안 보였다. 하다못해 단검조차 없었다.
‘이런 차림새로 몬스터를 사냥하겠다고? 농담이지?’
공무원은 하마터면 ‘의정부에서 자살하기 좋은 명소 베스트 10위’를 차례대로 알려줄 뻔했다.
만약 공무원이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덜 친절했다면, 예컨대 오늘이 생리하는 날이었거나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아직 보름이 덜 지난 시점이었다면, 그녀는 정말로 이시백에게 자살 명소를 추천해 주었을지 몰랐다.
“실례지만, 혹시 혼자서 의뢰를 받을 생각인가요?”
공무원이 도끼눈을 치켜뜨고 삐딱하게 물었다.
“예, 혼자서 가볼 생각입니다.”
“혹시 예전에 몬스터를 토벌해 본 경력이 있나요?”
“으음.”
이때 이시백은 고민에 잠겼다.
자신의 시점에서 생각하자면 당연히 그러하노라고 대답해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과거로 회귀한 지금,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이시백은 슬라임 한 마리조차 잡아보지 못했다.
어느 쪽을 기준으로 삼아야 옳은가?
“일단 토각룡(土角龍)까지는 혼자서 잡아봤습니다만.”
“……헌터님, 혹시 등록증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공무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시백을 쳐다보았다.
토각룡은 머리에 뿔이 달린 구렁이였다.
만약 신장이 10m가 넘지만 않았다면 뱀 애호가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을 이 생명체는 결정적으로 B급 몬스터였다.
“아, 헌터로 아직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등록 수속도 같이 부탁합니다.”
“…….”
이 대답에서 공무원은 눈앞의 남자가 자살 희망자일 뿐만 아니라 정신 병동 예약 환자임을 확신했다.
가끔 이런 부류의 인간이 있었다.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몬스터부터 사냥하겠다는 인간이.
“알겠어요. 시민증부터 줘 보세요.”
여성 공무원은 아직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이, 정신병 낌새가 있는 고객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바로 본인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들어주는 것이었다.
[준(準) 시민권자]
[이름: 이시백(李時白)]
[출신: 서울특별자치시 도봉구 방학1동 시립 우성 고아원]
[전과 기록: 0건]
[신원 보증도: 노랑]
공무원이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신원이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준시민이란 것은, 눈앞의 남자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 본 적 없다는 걸 뜻했다.
한반도에서 몬스터들로부터 안전한 지역이란 적었다.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건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규칙이었다.
다만 지금 시대에는 보다 어투가 과격해졌다.
‘일하지 않은 자한테 먹을거리를 나눠 주면 다 같이 망해 버린다.’
인류는 현재 몬스터와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게으름뱅이 따위는 어디에서도 환영하지 않았다.
“저기, 이시백 님. 의기가 가상한 건 좋지만요.”
“……?”
공무원이 뭐라고 참견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헌터가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죽이고, 몬스터를 또 죽여서, 어떻게든 C급 헌터까지 오르는 것.
요컨대 자기가 사회에서 충분히 써먹을 만한 인재임을 증명하는 것.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름이 참 멋지네요.”
“예? 아, 감사합니다.”
눈앞의 남자도 틀림없이 시민권을 얻으려고 단단히 결심했으리라.
공무원은 그 결심에다 괜히 재를 뿌리기 싫었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이 남자가 사실은 정신병자가 아니라 몬스터 사냥에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난 행운아일지.
“이번이 첫 의뢰니까 제가 다소나마 조언을 해드리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그러니까 공무원은 ‘아주 약간’만 잔소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자고로 공무원이란 잔소리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족속이었다.
“일단 슬라임은 보기와 다르게 상당히 강해요. 아무런 장비도 없이 상대하다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죠. 매년 슬라임에 의해서 사망하는 헌터가 꾸준히 삼천 명 이상 나온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저번 달만 해도 의정부에서 한 명의 헌터가 죽었어요.”
“하아.”
이시백이 멍하게 공무원을 쳐다보았다. 두 눈이 똥그란 점처럼 되었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한 마리. 하루에 한 마리만 잡는다는 느낌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물론 슬라임을 한 마리 잡아봤자 그날 수익은 1만 원밖에 안 돼요. 불만족스럽겠죠. 그래도 성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사냥감을 늘려나가는 걸 추천해 드려요.”
“……알겠습니다.”
“참, 산속에는 강력한 몬스터가 서식하니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요. 어디까지나 도시 근처에 돌아다니는 슬라임만 잡으세요. 한 마리만!”
이시백은 뭐라 대답하기 난감했다.
현재 상황은 초등학생 여자애가 경력 13년 차 소방관에게 달려가서 ‘불조심하세요! 불은 정말로 위험해요!’ 하고 경고하는 것과 비슷했다.
소방관으로서는 ‘원래부터 조심하고 있는데?’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차마 여자아이의 순진한 경고를 무시할 수 없어 이윽고 어른답게 쓴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반드시 한 마리만 잡아오겠습니다.”
이시백이 언어로 표현하기에 무척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말귀를 알아듣는 남자네.’
공무원은 자신의 설득이 먹혔다고 생각해서 적잖게 흐뭇했다.
여기서도 삶의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공무원의 조언이 별로 쓸모없다는 사실을 어째서인지 공무원들 본인만 모른다는 아이러니가.
“좋아요. 이시백 님, 의정부 헌터 사무소의 승인 아래 E급 헌터로 인정되셨습니다. D급 헌터로 오르기 위해서는 E급 몬스터를 백오십 마리 잡으시거나, 혹은 D급 몬스터를 열 마리 잡으시면 됩니다.”
쾅!
공무원이 서류에 도장을 큼직하게 찍었다.
이시백은 나머지 잡다한 절차들-얼마나 잡다한지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을 끝낸 후, 조금 빠른 걸음으로 청사에서 빠져나갔다.
이시백에게 이토록 잔소리를 퍼부어 댄 인간은 저 공무원이 유일무이했다.
‘내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는다니, 깡이 대단한 여자로군. 아직 젊어 보이는데 제법이야!’
이시백이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단지 그녀가 지독하게 눈치가 없었을 뿐이지만.
2
그날 저녁 무렵, 이시백은 홀로 사냥을 끝내고 돌아왔다.
“아, 어서 오세요.”
여자 공무원이 이시백을 알아보고는 친절하게 미소를 지었다.
퇴근하기 직전의 시간대에 상대방이 찾아왔는데도 그러했다.
여자는 아직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슬라임을 세 마리도 잡지 못했을 사냥꾼에게 모질게 굴 정도로 성격이 삐뚤어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 성과는 어떠셨나요, 이시백 님.”
공무원은 자기가 이런 하급 헌터의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해 주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감동하며 말했다.
이시백이 불만족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별로 일진이 안 좋았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더군요.”
“슬라임을 잡는 게 생각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죠. 모든 헌터가 겪는 과정이에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차근차근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긴 합니다만. 조금 더 느긋하게 계획을 세워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설마 제 몸이 이렇게 허약했을 줄은…….”
“바로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무원이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생각했다.
‘그래도 두 마리는 잡은 모양이네.’
남자가 비록 잔뜩 못마땅한 기색이긴 했어도, 최소한 부끄러워하는 낯빛은 없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딱 그런 분위기였다.
아마도 남자는 슬라임을 두 마리에서 세 마리 정도 잡았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열 마리고 스무 마리고 썰어버리고 싶었겠지.
그렇지만 자신의 한계에 부딪쳤다.
적어도 한 마리보다는 더 잡았어, 하고 자기를 위안하며 쓸쓸하게 돌아왔다…….
‘첫날에 두 마리 잡은 게 어디야. 그럼.’
오히려 매우 준수한 성과였다.
야생의 몬스터와 맞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몬스터는 당연하게도 인간을 죽이려 들었다.
어느 정도 커다란 생명체가 살기를 품은 채 달려온다.
이걸 정면에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수지가 안 맞았다.
공포를 참아내고, 목숨을 내걸어서, 하루 종일 슬라임을 세 마리 잡아봤자 그 대가는 기껏해야 2만 원.
목숨의 값어치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헐값이었다.
차라리 하수구 청소나 도시의 경비를 맡아서 일당을 챙기는 편이 훨씬 나았다.
왜 쓸데없이 아까운 목숨을 걸어가며 몬스터를 사냥하는가.
절대다수의 E급 헌터가 그렇게 생각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난을 참을 수 있는 사람.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미래를 위하여 1년 혹은 2년의 가난을 인내하는 사람.
그게 가능한 사람만이 C급 헌터의 문턱을 밟았다.
당연하지만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강철과 같은 인내심, 공포를 이겨 내는 심장, 거기에다 생명줄을 길게 해주는 행운까지.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 갖추어져야 했다.
“이시백 님, 오늘 채취한 마석(魔石)을 건네주시겠어요?”
눈앞의 남자는 적어도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십중팔구 도중에 포기할 테지만, 여자 공무원은 타인의 소중한 시작점을 솔직하게 축복해 주고 싶었다.
“여기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
이시백이 주머니에서 한 움큼 마석을 꺼내 들었다.
탁한 갈색 구슬들이 탁상에 올려졌다.
자그마치 네 개나 되었다.
여자 공무원은 잠깐 당황했다. 그래도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활짝 웃었다.
“많이 잡으셨네요. 첫날치고 정말로 좋은 성과예요. 대단하세요.”
“아직 조금 더 있습니다.”
“예?”
이시백이 재차 주머니에서 마석들을 꺼냈다.
네 개의 마석에 세 개가 더해져서 일곱 개로 불어났다.
여자 공무원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덧셈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계산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곱 개의 마석을 하나씩 눈으로 세어보았다. 그래도 확실하게 일곱 개였다.
“어라……?”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이시백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구슬 두 개를 더 얹혔다.
졸지에 마석이 아홉 개씩이나 책상을 굴러다녔다.
공무원은 아기자기한 몬스터 핵(核)들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이시백이 다소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산해 주십시오.”
“네? 아, 정산요. 그래요. 당연히 정산해야죠.”
공무원이 허겁지겁 기다란 검사기를 꺼내서 마석들을 쓰윽 훑었다.
아홉 개의 구슬 모두 일정한 마력량을 나타냈다. 의심할 여지없이 진품이었다. 공무원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슬라임 핵 아홉 개……. 확인했습니다. 전부 해서 9만 원 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뇨, 별말씀을…….”
공무원이 어떻게든 평범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오로지 그녀가 지금까지 창구 접수일에 종사하면서 쌓아온 습관 덕분이었다.
구태여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도 능숙하게 대답해 내는 기술 말이다.
이시백은 9만 원을 챙기고 청사에서 나갔다.
걸음걸이에 영 힘이 없었다.
그 뒷모습을 공무원이 여전히 멍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잠시 뒤에 여자가 정신을 차렸다.
“동료 헌터들이 도와줬구나.”
그렇다. 남자가 자기한테 동료가 없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공무원은 제 딴에 가장 합리적인 해답을 찾은 다음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헌터는 죄다 거짓말쟁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