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달의 제국-4화 (4/142)

건달의 제국 4화

제1장 다 버린 인생(3)

4

파출소에 끌려가니 이시백은 도리어 머리가 차가워졌다.

용병단에게 경찰이란 동업자이자 원수였다.

동업자든 원수든 ‘얕보이면 끝난다’라는 점에서 똑같았다.

적어도 이시백은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변명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노숙자들한테 가진 걸 전부 털렸어?”

“예, 일어나 보니까 전부 없어졌더군요.”

이시백이 무심하게 말했다.

사실 이시백은 내심 창피했다. 자기가 어디 동네 파출소에 들락날락거릴 군번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젊은이가 사거리에서 웃통을 발가벗어야 쓰겠나.”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경찰이 혀를 쯧쯧 찼다. 말이야 그렇지만 눈동자는 이쪽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시백은 경찰서에 들어오고서 줄곧 어색해서 시선을 피했는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기를 쳐다보기 때문이었다.

‘화상까지 사라졌다. 이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뭔가.

파출소 벽에는 큼직하게 달력이 걸려 있었다.

4월 20일.

이시백이 생포되어 생지옥을 겪은 바로 그 날짜와 얼마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월일이 아니라 연도-자그마치 17년이나 오래된 달력을, 파출소에선 당연하다는 듯 사용했다.

“저기,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도 괜찮겠습니까?”

“어여, 다녀오고 나서 그냥 가도 돼.”

이시백이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들렀다.

창백한 수은등 아래에서 이시백이 거울과 마주 보았다.

이시백은 눈썹을 찡그린 다음, 언제 씻었는지 모를 정도로 거무튀튀하게 때가 낀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리고 재차 거울을 바라보았다.

“……허, 참.”

이시백이 망연자실하게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정말로 낯설었다.

끼니를 제때 못 먹어서 야윈 얼굴.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턱수염.

어리바리하고 나약한 20대의 자화상이 거울에 비추었다.

불길에 그을리기 전, 자신은 이런 얼굴을 가지고 있었던가?

이시백이 중얼거렸다.

“단장님, 저한테 대체 무슨 물건을 주신 겁니까.”

흉악한 외모에 가려 오해를 많이 받았지만, 이시백은 매우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이시백은 ‘불리한 전황을 뒤엎으려면 내가 미끼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하고 냉철하게 판단했다.

만일 이시백이 나서지 않았다면 용병단은 포위당한 채 그대로 전멸했을 것이다.

비록 간부가 배신하는 바람에 용병단장이 죽었지만 그것까지 이시백이 통제할 수는 없었다.

‘S급 몬스터의 심장. 그게 뭔가 저지른 게 분명하다.’

이시백은 적대 세력에게 붙잡히기 직전, 단장이 선물해 준 보물을 꿀꺽 집어삼켰다.

평범하게 품속에 넣어두면 적들한테 약탈당할 것이 뻔했으므로.

아니나 다를까, 헌터들은 이시백을 잡자마자 몸부터 철저하게 수색했다.

하지만 차마 뱃속에 S급짜리 보물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이봐. 화장실에서 뭘 하기에 이리 오래 있어? 무슨 똥을 만들어서 싸냐?”

경찰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이시백은 경찰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이 단순히 기이하거나 신기한 기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 확신 덕분에 이시백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고, 눈빛이 독기를 되찾았다.

“형사님.”

묵직하고 느릿한 어투. 이시백 특유의 음색이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경찰관은 상대방의 시선과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조금 전까지 딴생각에 잠겨 있던 청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 어어?”

“실례합니다만 잠시 면도기와 가위를 빌려 써도 괜찮겠습니까. 수염 밀고. 머리 깎고. 이번 기회에 새롭게 출발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시백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경찰관은 저도 모르게 턱을 끄덕였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서 그저 말이 튀어나오는 대로 나불거렸다.

“어, 그래. 잘 생각했어. 새롭게 출발하겠다는데, 그 뭐시냐. 당연히 도와줘야지.”

“감사합니다, 형사님.”

“아니, 고개까지 숙일 건 없고…….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 내 얼른 다녀올게.”

이시백은 경찰이 가져다준 일회용 면도기로 턱수염을 깨끗하게 밀었다. 머리를 감고 짧게 다듬었다.

샴푸 따위는 필요 없었다. 비누 거품으로 씻으면 그만이었다.

애당초 이시백은 ‘비누가 있는데 샴푸는 왜 쓰는가’ 하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용병단장이 거의 매일 샴푸 좀 쓰고 다니라며 잔소리를 퍼부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제 조금 사람답게 보이는군.’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에는 딱 얼굴만 깔끔해진 청년이 있었다. 목 아래로는 여전히 거지의 옷차림새가 존재감을 자랑했다.

‘나는 17년 전으로 돌아왔다.’

용병단장이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S급의 심장을 건네준 것일까.

이시백은 그걸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단지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나는 결국 단장님을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장님은 나를 구했어.’

자신이 그녀에게 보은해야 한다는 것!

아직 이시백은 스무 살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시백이 활동한 시절 날아다닌 A급 헌터들도 지금은 한낱 송사리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거지처럼 살아가는 것은 이시백이나 그들이나 똑같았다.

‘싹수가 있는 놈들을 미리 모은다.’

이시백의 머릿속에 유명한 헌터들이 주르르 떠올랐다.

일기당천이라고 명성이 자자했던 AAA급 헌터 이시영.

겁 없이도 경상도 일대를 주름잡은 거목(巨木) 조헌.

현재는 멸망한 북한 지역에서 마지막까지 몬스터들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철옹성 유현도.

이외에도 뒷세계를 풍미한 헌터가 얼마나 많았던가!

대부분이 몬스터의 손에, 혹은 인간의 손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조금 방심해서, 조금 지나치게 오만해서, 쓸데없이 의리에 집착해서.

모름지기 인간이란 성공하는 비법은 비슷비슷하더라도, 실패하는 경로는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마련이었다.

‘나는 그놈들의 약점을 모조리 꿰고 있다. 이길 수 있어. 적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나만의 세력을 준비한다. 누구한테도 배신당하지 않을 조직을. 아니, 배신당해도 끄떡없을 용병단을 건설한다.’

그리고 복수한다.

감히 단장을 배신한 자에게 철퇴를 내린다.

단장을 살해한 적대 조직의 우두머리도 끝장낸다.

그것과 더불어, 자신을 생포하고 고문한 헌터들까지 처리한다.

“…….”

이시백의 눈빛이 한층 독해졌다. 앞으로 자신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겠지.

이시백은 복수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다. 복수에는 끝이 없었다.

추격하고 또 추격하다 보면 결국 이쪽과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까지 없애 버려야 했다.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일수불퇴!’

이 순간, 이시백은 일생의 좌우명을 세웠다.

이시백의 나이가 37세. 거의 마흔 살을 내다보는 나이였다.

마흔 살이면 불혹(不惑)이었다. 세상의 잡다한 일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간다…….

‘단장님은 단장님의 방식대로 강북 일대를 장악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이 뒷세계를 손에 넣는다.’

스무 살의 몸을 가진 이시백.

불혹의 뜻을 품다.

이시백이 화장실에서 나와 파출소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경찰관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이시백은 딱 한 번, 조용히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다.

“어…….”

경찰들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이시백은 경찰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뜻을 세우게 된 이 장소, 이 시간에 대하여 그 나름대로 경의를 표했다.

이시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파출소를 걸어 나갔다.

경찰관들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쟤 누구냐?”

마치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졌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경찰관들은 이시백이 나간 자리를 뒤늦게 바라보았다.

거기엔 유리문이 의미 없이 덜렁거리고만 있었다.

“왜, 아까 사거리에서 노출했다고 신고 들어온 아이 있지 않습니까.”

“그 정신줄 나간 거지 자식? 아니, 얼굴이 완전히 다르잖아.”

“화장실 들어가서 면도 좀 하고 나오더니 저리 됐습니다.”

경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거 아무래도 사람 좀 썰어본 녀석 같은데.”

“예? 그럴 리가요. 국영 고아원 출신에다 이제 스무 살이던걸요.”

“헌터나 조폭, 뭐 그런 거 아니야? 고아원 애들이 그쪽으로 잘 빠지잖아.”

“일단 기록상으로는 완전히 깨끗합니다만…….”

이시백의 기록은 백지 그 자체였다.

범죄 혐의를 입증할 어떤 물증도, 심지어 심증이라 할 만한 것조차 없었다.

경관은 그날 아침나절 내내 유리문을 자꾸 훔쳐보았다.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스무 살짜리가 가질 눈이 아닌데.”

5

헌터는 사회의 밑바닥을 깔아주는 쓰레기 직업.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널리 공유하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괜찮은 의뢰가 남아 있으려나…….”

“아이고, 일당 6만 원? 이거 헐값에도 정도가 있지.”

헌터, 요컨대 사냥꾼이라 부르면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헌터들 중에서 정말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은 아슬아슬하게 절반이 될까 말까.

지금도 그러했다.

의정부 청사, 헌터들에게 의뢰를 나눠 주는 이곳 접수처에는 서른 명의 헌터가 북적거렸다.

그러나 이들은 몬스터 토벌 의뢰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장암동에서 하수구 청소할 사람이 필요하다는구만. 어때, 같이 안 갈래?”

“일당 8만 원인가……. 그럭저럭 괜찮긴 해도 하수구는 조금 그렇잖아. 내가 예전에 한 번 하수구 들어가 봤는데 냄새가 아주 지독해. 목욕탕에서도 안 받아줘서 이틀 동안 거지꼴로 돌아다녔다니까.”

“거 누구는 잘못해서 죽었다더니만. 그냥 얌전히 경비나 서세.”

이른바 일용직 노동자.

청소, 경비, 때에 따라 막노동에서 짐 나르기까지.

엄밀히 말해서 헌터들은 웬만한 일용직 노동자보다 훨씬 더 환경이 열악했다.

헌터에게는 기본적으로 시민권이 없었다.

법률에서는 이들을 준(準)시민이라고 불렀는데, 이걸 고상하게 번역하면 ‘시민이 아닌 인간들’이었다.

“에라이, 아침부터 운수가 더럽네. 확 그냥 슬라임이라도 잡으러 가?”

“네 주제에 슬라임은 무슨 슬라임. 쟤 말대로 경비나 서.”

헌터들이 낄낄 웃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버는 인생이란 이들을 가리켰다.

‘E급 헌터들은 여전하군.’

이시백이 청사에 들어와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꼬질꼬질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시백은 마음이 편해졌다. 몬스터란 게 생겨나고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버린 이후, 이런 광경은 오래전부터 일상이 되었다.

‘저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한때 이시백도 밑바닥을 경험해서 잘 알았다.

하루에 5만 원, 7만 원을 벌어들인다 해도 식비와 집세를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확 줄어들었다.

더군다나 헌터의 일용직이란 고된 삶. 피로에 지친 인생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담배와 술이 필요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한 달이, 어느새 일 년이 지난다. 손바닥을 내려다봤자 가진 것이 하나 없다. 그저 묵묵하게 일했을 뿐인데도 어째서인지 돈이 모이지 않는다.

‘연옥이지.’

시민권조차 없는 도시의 하층민한테 주어진, 가난의 굴레.

희망이 없다. 내일도 없다. 단지 오늘만이 있다.

처음에는 ‘도시에서 살다 보면 그래도 희망이 있겠지’ 하고 상경한 지방민도, 몬스터의 해일에 떠밀려서 도망쳐 온 피난민도, 어떻게든 돈을 악착스럽게 모아보려 노력한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도시의 뒷골목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하지만 반드시 장애물에 부닥친다.

도둑질.

다른 헌터들이 짜고 쳐서 들어오는 강탈.

자기가 여태까지 필사적으로 모아온 돈을 간단하게 빼앗긴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려고 해도 경찰들은 들어주지 않는다.

어차피 E급 헌터와 D급 헌터는 시민도 아니다.

바로 코앞에서 도둑질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경찰들은 괜히 귀찮게 끼어들 이유가 없다.

이제 그렇다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허망하게 돈을 날려 버리느니 차라리 오늘 다 써버리자 하고.

연옥이다.

내일을 바라보고 참아 본들 남한테 뺏긴다. 따라서 오늘만 바라본다. 오늘만 바라보기 때문에 다시 내일이 없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서 35살, 40살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느 날, 하급 헌터들은 싸구려 여관에서 눈을 뜨고 깨닫는다.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 머리가 무겁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도저히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노화.

서서히 늙어가는 것이다.

“하아. 경비를 서도 이거 새벽까지 순찰 도는 거잖아. 조금 덜 벌어도 일찍 자고 싶은데. 인간이 적어도 잠잘 시간은 제대로 챙겨야지.”

“이 화상아, 네가 무슨 사춘기 애야?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어이고. 그냥 아무거나 받고 얼른 꺼져! 네놈 투정 들어주는 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지.”

“아니, 누구 마음대로 꺼지라 마라 그래! 네가 여기 전세 냈냐!”

청사 건물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37살쯤 되었을까. 슬슬 체력에 부담이 오고 있겠지. 누구보다 본인들 스스로 생생하게 느낄 터였다.

풀리지 않는 피로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렇기에 자꾸만 더 좋은 일이 없을까, 조금이라도 더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눈길을 돌리게 된다.

저 중에서 몇몇은 도박에 빠질 것이다.

이시백은 차분하게 청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네, 다음 분 오세요!”

의뢰 창구를 맡은 공무원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시백이 창구로 걸어갔다.

시민들이 선심 쓰듯이 던져 주는 잡일에 매달려서야 미래가 없었다.

뒷골목 노숙자 생활을 견디며 저금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헌터가 헌터로서 살아남을 방법은 단 한 가지.

“여기 오늘 의뢰 목록이구요. 골라주세요.”

“몬스터 토벌로 부탁합니다.”

이시백이 서류를 보지도 않고 대뜸 말했다.

몬스터를 사냥한다.

이것만이 연옥에서 빠져나갈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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