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의 제국 1화
프롤로그
세상은 불공평하다.
A급 헌터 박제순에게 이건 진리였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박제순은 이 불공평한 게임에서 항상 ‘유리한 쪽’에 있었으므로.
“살려 주십쇼……. 대부님, 이건 모함입니다. 모함이에요…….”
오늘을 제외하고 말이다.
박제순은 얼굴이 피로 뒤범벅이 되었다.
서러워서 눈물까지 다 흘렀다.
자기가 왜 이렇게 험악한 꼴을 당해야만 하는가.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경쟁 업자들이 대부님을 속인 겁니다……. 미, 믿어주십쇼.”
“박제순 씨, 언제부터 그쪽이 우리 두목을 대부님이라고 불렀어?”
주변에서 사람들이 비웃었다.
“당신이 뒷골목에서 애들한테 마약 파는 거 우리 다 알고 있어. 선수들끼리 추하게 이러지 말자. 서로 바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깔끔하게 인정해. 응? 깔끔한 인정. 깔끔한 세상. 거 얼마나 보기 좋아.”
“아닙니다, 정말로 아닙니다…….”
“어이구. 이 아저씨, 아주 영화배우야, 영화배우. 남우주연상은 껌으로 씹어 드시겠네.”
순탄한 인생이었다.
헌터의 세계에선 재능이 거의 모든 걸 좌우했다.
어떤 사람이 B급에서 멈추느냐 A급까지 올라가느냐, 아니면 아예 밑바닥 D급에서 평생을 낭비하느냐. 전부 타고난 적성에 달렸다.
박제순은 천재였다.
다른 사람들이 몬스터 한 마리를 잡는 데 아등바등할 때, 박제순은 재능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다.
2년도 되지 않아서 A급 헌터에 등극했다.
박제순은 자기 인생이 성공했음을 깨닫고 환희했다.
한 달에 못해도 벌어들이는 금액이 일억!
영원히 바닥에서 아등바등하는 D급이나 C급 따위와 전혀 다른 엘리트.
“아저씨, 울어? 다 큰 어른이 울어서 어떡해.”
겨우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박제순은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마약쟁이 주제에 누가 보면 우리가 나쁜 놈인 줄 알겠어.”
“야아, 눈물 좀 흘리니까 억울해? 자기가 억울한 것 같아? 꼴값을 떨어요.”
한 헌터가 장난스럽게 박제순의 뺨을 후려쳤다.
박제순이 이를 악 물었다.
‘악마 같은 새끼들!’
박제순에게 마약이란 아주 간편한 비즈니스에 불과했다.
손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
일억 원을 육억 원쯤으로 바꿔주는 마법이라고 할까.
그때 선착장에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박제순이.”
헌터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꼭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헌터들이 양옆으로 길을 비켰다.
인의 장막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덩치 큰 남자가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박제순이 침을 꼴깍 삼켰다.
“출신이 강원도 고산(高山)이라고.”
“예, 예에. 대부님! 고산 출신입니다!”
“고산에는 좋은 추억이 있지.”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무릎에 고양이를 앉히고 있었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동네다. 하지만 분위기가 괜찮아.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는 D급 헌터, C급 헌터는 꼭 거기에 모였다. 죽기도 많이 죽었지만, 살기도 많이 살았지. 그런 동네가 가장 좋은 동네야.”
박제순이 희망을 감지했다.
눈앞의 남자는 무뚝뚝하긴 해도 제법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적어도 박제순은 그리 여겼다.
“고산에 얼마나 머물렀나.”
“사, 삼 개월. 아니, 이 개월 정도 머물렀습니다.”
“상당히 빠르게 승급했군. 보통 아무리 빨라도 1년은 고생하는데 말이야. 좋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어.”
“운이 좋았습니다. 감히 대부님께 칭찬을 받을 수준은 되지 못합니다.”
박제순이 필사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굴욕이고 뭐고 느낄 틈이 없었다.
일단 살아야만 했다.
눈앞의 남자는 정말로 위험했다.
저 인간에게 반항해서 생존한 헌터를, 박제순은 여태까지 단 한 명도 들어보지 못했다.
대부 이시백.
일개 무일푼 밑바닥 헌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 굴지의 용병단을 일으킨 남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물어뜯는다……. 이렇게 표현하면 꼭 쉬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많고 많은 수단 중에서 제일 좋은 수단을 골라내는 머리.
수백 가지의 방법 중에서 제일 좋은 방법을 밀어붙이는 과감성.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상대방은 늑대의 머리와 불곰의 심장을 가졌다.
A급 헌터 박제순은 만에 하나라도 눈앞의 괴물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기분 좋았겠군. 다른 사람들은 E급이니 D급이니 저 아래서 바동거리고 있는데, 박제순이 그쪽은 두 달 만에 C급 달고. 다시 일 년 만에 A급 달고. 꼭 하늘이 자네를 도와주는 기분이었을 거다.”
“예에, 과찬이십니다. 하하…….”
“그러니까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막 들이대지.”
공기가 바뀌었다.
이시백의 어조 자체는 여전히 덤덤했다.
하지만 왜인지 박제순은 이가 떨렸다.
“대, 대부님?”
“알고 있다. 세상에 무서운 거 하나 없으니 그야 갑질도 하고 싶었을 테지. 어차피 쉽게 성공한 인생, 조금만 더 쉽게 돈을 벌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마약 좀 팔고. 이왕 파는 김에 애들한테도 좀 팔고.”
이시백이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참 장사하기 쉬운 세상이야. 안 그런가?”
“저는 몰랐습니다! 대부님! 저, 정말로 몰랐습니다!”
박제순이 처절하게 애원했다.
“제가 푸는 마약이 어린애들한테까지 흘러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 저 쓰레기 맞습니다. 쓰레기 자식입니다. 그래도 어린애들 코 묻은 돈까지 뺏을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이봐. 사람이 뭘 잘 모르겠으면 조심이라도 해라.”
이시백이 무심하게 말했다.
“왜 마약처럼 위험한 품목을 다루는데 아무한테나 팔아재끼나. 마약이 무슨 애들 사탕도 아니고. 귀한 물건을 함부로 풀어버리니 당연히 옆길로 샐 수밖에.”
“다, 다시는 약 같은 건 팔지 않겠습니다!”
“누가 팔지 말라고 했나. 팔아라. 많이 팔아. 하지만 팔 때 팔더라도 정성을 다해서 팔아야지. 처음부터 믿음직스러운 업자를 찾아내서. 믿음직스러운 방법으로 거래를 해서. 그때 나 같은 인간도 중간에 껴서 서로의 믿음을 보장해 주고.”
냐오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이시백이 한결 부드럽게 고양이의 머리털을 손가락으로 빗질했다. 작은 짐승은 만족스러운 듯 두 눈을 감았다.
“그러면 다 같이 행복한 세상 아닌가.”
이때 처음으로 이시백이 시선을 고양이한테서 돌렸다.
검은색 눈동자가 박제순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시선에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박제순은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박제순, 솔직하게 대답해 봐라.”
“예, 예! 대부!”
“자네는 그저 우리한테 ‘세금’을 떼어주는 게 싫었던 거다. 물론 이해는 가네. 자기가 힘들게 발품 팔아서 돈 벌었는데 왜 엉뚱한 곳에다 세금을 내야 하나. 대충 그런 심정이었겠지.”
“아닙니다, 대부님.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헌터 한 명이 단검을 치켜들어 박제순의 허벅지에 쑤셔 박았다.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헌터가 단검을 빼내면서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건방진 놈, 단장님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말을 끊어.”
그리고 헌터는 이시백을 향해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이시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하가 저지른 무례를 기꺼이 용서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미안하네. 내 동료들이 가끔 다혈질이거든.”
“크으윽! 흐윽, 크흐으읍!”
“세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세금이 필요하다. 특히 자네처럼 뻔뻔하게 돈벌이하는 헌터들을 단속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이시백이 고양이 쓰다듬는 것을 멈추었다.
“자네가 요 두 달 동안 마음껏 물건을 풀어준 덕분에, 14명이나 되는 어린애들이 마약에 중독되었다. 다 아직 중학생 나이야. 인생을 망치기엔 너무 이른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나.”
“대, 대부님! 크흑, 마지막 기회를! 한 번만 더 기회를……!”
“안 된다.”
이시백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선을 넘었어. 잘 가게나.”
그날, 서울에서 A급 헌터 한 명이 지워졌다.
배가 한강을 가로지르면서 드럼통을 떨구었다.
드럼통이 물결을 일으키면서 빠르게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시백이 저 멀리 한강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단장님,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명색에 A급입니다. 적당히 목줄 걸어두고 사냥개로 써먹었으면 본전은 뽑았을 것 같습니다만.”
“실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인격이 덜되면 우리 식구로 안 받아준다.”
이시백이 간부의 의견을 일축했다.
“저런 녀석까지 받아주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배탈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것이 배신이야.”
“하하, 어떤 겁 없는 녀석이 단장님을 배신할까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오래전에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지.”
이시백이 다시금 고양이를 매만졌다. 고양이가 갸르릉 기분 좋게 울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렇습니까.”
간부는 의아스러웠다.
간부가 알기로 이시백이 배신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배신당하기 전에 먼저 배신하는 것이 보스였다.
그렇지만 어쩐지 질문해도 대답해 줄 낌새가 아니었으므로, 간부는 능숙하게 자신의 호기심을 거두었다.
이시백이 고개를 돌려서 간부를 비스듬히 올려다봤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하가 가장 대답하기 싫어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우리 아침밥은 뭐 먹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