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26화
알라의 불꽃 (04)
‘알라의 불꽃’ 160층 라운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갑론을박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공사가 끝나가는 건가?”
압둘이 뒷짐을 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성훈 또한 일 년 반 전의 기억이 나는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
“훗! 갑론을박이라……. 하긴. 엄청났었죠. 그때는.”
개성 강한 디자이너들끼리 부딪쳤으니, 조용할 리가 없었다.
성훈이 미리 공지한 조건, 그것은 간단했다.
장식은 어떻게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코어와 연결되는 부분, 그리고 전체 미관을 해치는 것을 금지한다.
명확한 조건이 있었으니, 그들의 디자인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디자인을 살리려는 자와 그걸 조절하려는 자 사이에 어찌 쉽게 타협이 되겠는가?
매일 디자이너들은 성훈의 사무실을 찾아왔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한동안 성훈의 일과였다.
‘하지만 그들과 싸우면서 얻는 것도 많았지.’
성훈은 그들 또한 KT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던가?
‘덕분에 의 기반이 더 탄탄해졌고.’
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2년의 약속은 지켰네요.”
“그렇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는데, 벌써 끝이 보이다니.”
기간을 맞추기 위해 KT 팀은 가진바 역량을 다했고, 결국 약속을 지켰다.
“아쉽구먼. 아쉬워.”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압둘에게 성훈이 핀잔을 주었다.
“아쉽기는요. 매주 한두 번은 꼭 방문했으면서,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성훈의 말처럼 압둘은 이 공사의 진행에 예상보다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신의 건물이기도 했지만, 이 건물은 쿠웨이트의 미래이기도 했기에.
이에 압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건물 올라가는 걸 보시는 게, 아바마마의 큰 즐거움의 하나셨거든. 물론 내게도 마찬가지였고.”
“국왕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알라의 불꽃’에 관련된 자재 반입이나 운송은 국왕의 승인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압둘 못지않게 국왕도 성훈을 좋아했고, 압둘에 버금가는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라고 전해주세요. 다음 건물 또 지어드릴 테니.”
“그건 궁에서 볼 수 없지 않나?”
성훈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못 미더우시면 매주 진행 상황,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드릴 테니, 아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끼! 이 친구야. 내가 자넬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거 알잖나.”
정색하는 압둘에게 성훈이 웃으며 대꾸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압둘.”
“뭔가?”
“LA의 2차 체인 설계 들어가야 하는데, 부지 확보는 끝났습니까?”
“응. 끝났지.”
“매입과정에서 좀 귀찮은 일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자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 판단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지만, 불협화음이 꽤 있었다고 보고를 들었었다.
성훈의 염려에 압둘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웃어넘겼다.
“훗! 그것도 이미 정리됐어. 성훈 자네가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그 말에 성훈이 피식 웃었다.
‘압도적인 금력으로 해결해 버린 모양이군.’
돈 앞에 장사가 있던가?
“그럼 이제 설계 들어가면 되겠네요.”
“그렇지. 응? 설계라니. 똑같이 만들 거 아니었나?”
똑같이 할 설계를 뭐하러, 시간과 인력을 투자해 도면을 그리겠는가?
체인이라 해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호한 표정으로 성훈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두 번째 알라의 불꽃은 이것보다 더 멋있고 세련되게 지어야죠.”
“오! 정말인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압둘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그건 언제쯤 도면을 볼 수 있는 건가?”
그는 이차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할 모양이었다.
압둘은 재촉했지만, 성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 전에 알리가 제다의 도시계획을 부탁했단 말이지.’
제다(Jeddah)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였고, 알리는 그걸 재정비하려는 의도였다.
‘들어보니 아예 도시계획을 새로 잡는 거더라고.’
적어도 20년은 시공을 해야 하고, 그 금액 또한 어마어마한 공사였다.
‘시간을 좀 벌어야 하는데…….’
물론 성훈보다 도시계획에 정통한 건축가는 많았다. 하지만 확실한 방향이 정해질 때까지는 일머리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건 내가 아니면 어렵다고. 3개월 정도면 가능하겠지? 울산 도시계획 때보다는 규모가 크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일머리 잡겠지.’
원래 2차 ‘알라의 불꽃’은 3개월 정도를 예상했었지만, 고심하는 척 턱을 긁던 성훈이 말했다.
“첫 번째와는 전혀 다른 버전으로 할 생각이니, 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일단 시작하고 나서 적어도 육 개월 정도이지 않을까요?”
“오! 육 개월? 그 정도면 가능한가?”
성훈의 속내를 모르는 압둘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한 그의 반응에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 도면이 완성될 때까지는 아마 쿠웨이트에 들르기 어려울 겁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있어야 하거든!
물론 그동안에도 ‘2차 알라의 불꽃’에 대한 디자인 논의가 격렬하게 진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내가 필요한 건 아니지. 나중에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하면 된다고.’
이미 1차 알라의 불꽃이라는 예제가 있으니, 일머리를 잡는 데 어려움은 없으리라.
“흠. 그렇겠지.”
압둘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공사가 끝나면 한동안 얼굴 보기 어렵겠군.”
“네. 그럴 겁니다.”
분위기를 파악했음인가?
옆에 있던 압둘라가 물었다.
“이제 성훈 삼촌을 못 보는 겁니까?”
압둘라도 이제 12살, 꼬마에서 어엿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매번 압둘을 따라 현장을 방문했었고, 어색해하던 삼촌 호칭이 입에 붙어 있었다.
성훈이 압둘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압둘을 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국왕께 인사드리러 갈게요. 준공식 전에요.”
물론 국왕은 준공식에 참석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협조로 인해 공사가 순조로울 수 있었으니, 그 전에 먼저 인사를 하는 게 도리였다.
“그래. 자네가 오면 좋아하실 걸세.”
압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처, 소피아가 온다면 더 좋아하시겠지.”
압둘의 말에 압둘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소피 숙모도 오시는 건가요?”
반기는 표정의 녀석에게 성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도록 노력해 볼게.”
“성훈. 그럼 이제 2차분 계획까지 마무리된 건가?”
“그런 셈이죠.”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던 압둘이 말했다.
“크흠! 압둘라. 아비가 성훈 삼촌과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구나.”
자리를 비우라는 완곡한 표현을 알아챈 압둘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삼촌. 그럼 전 현장 사무소에서 놀고 있을게요.”
무슨 소리를 하려고?
아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하기 힘든 말이니, 압둘라를 내보낸 것이리라.
압둘이 미적거리며 말했다.
“음……. 성훈.”
압둘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귀를 긁적이며 머뭇거리던 압둘이 말했다.
“요즘은 KT팀이 건축 설계의 대세라고 하더군. 라고 했던가?”
압둘은 를 묻고 있었다.
“알고 계셨어요?”
“어찌 모르겠는가? 그렇게 위세를 떨치는데. 곧 시공뿐 아니라, 설계에서도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더군.”
결과만 간단히 말하자면, 1년 반 전에 기획했던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전 세계에 ‘KT의 지점’이 있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성훈이 속으로 미소 지었다.
‘하긴 사람들 꼬시느라 좀 고생하기는 했지.’
그러나 결과는 아주 좋았지.’
시기가 적절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대 설계 사무소의 횡포가 극에 달했을 때!
실력은 있지만, 규모가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던 건축가들에게 성훈은 러브콜을 보냈다.
누가 그런 동아줄을 거부하겠는가?
그리고 응하는 자에게는 KT팀에서 시공을 전담해준다고 했는데!
그렇게 모은 건축가들은 지금 KT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자문으로, 어떤 이는 직접 설계에 참여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제 이름을 내건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압둘의 말에 성훈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야 실력 좋은 디자이너들이 있으니까요.”
압둘이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 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쿠웨이트항의 토목 공사 설계를 부탁했던 거 기억나나?”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히 기억나죠.”
“자네는 매몰차게 거절했었지.”
“그때는 여력이 없었어요.”
“지금 이렇게 디자이너가 많은데? 2,000명이 넘지 않는가?”
그 말에 성훈이 움찔했다.
‘자세히도 알아봤네. 이 양반!’
하지만 성훈이 반박했다.
“정확히 말씀하시죠. 당신은 설계가 아니라, 설계에 필요한 디자이너를 빌려달라고 했었죠. 그것도 팀장급을.”
“그, 그야 물론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원한 것은 항만의 설계였네. 지금은 그렇게 디자이너가 많으니…….”
압둘은 미루고 미루던 말을 공사가 끝난 시점에서야 하고 있었다.
‘많이 답답했던 모양이네.’
KT 팀을 보고 있다가, 자신의 건설 회사를 보고 있자면, 얼마나 속에서 천불이 나겠는가?
성훈이 그의 말을 잘랐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뻔하거든!
“좋아요. 저번에 파견이라도 좋다고 하셨죠?”
시원한 성훈의 답에 압둘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성훈이 이렇게 간단하게 승낙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모습이었다.
“지, 진짜로?”
놀라는 그를 보며,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거든요.’
성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언제든지 도와줄 용의가 있어요. 그때는 제가 곤란해서 그랬던 거고.”
왜 그때는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가능하냐고?
그가 파견 디자이너를 요청했던 것은 가 막 만들어지던 시점의 일이었다.
‘막 들어온 사람들이 내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거든!’
물론 지금도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은 많았다.
그와 반대로 확신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고.’
거대 설계 사무소에 병합될 위기에 처했을 때는 KT라는 우산이 필요했겠지만, 위기에서 벗어난 후에도 그런 생각을 할까?
사람은 편해지면 딴생각을 한다 하지 않던가?
물론 압둘이 파견 디자이너를 상대로 뒷공작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들이 먼저 압둘을 선택한다면, 압둘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압둘도 제 뜻대로 운영하려면, 인재가 많이 필요했으니까! 그게 나라든, 회사든 간에 말이다.
‘그런 사소한 일로 의를 상하고 싶지 않았거든.’
가능하다면 그런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나았다.
아직 완전히 를 성훈의 의지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하지만 지금은 알곡들을 잘 분리했지.’
게다가 압둘의 부탁을 두 번이나 거절하는 것은 성훈에게도 불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대신 파견할 디자이너 선정은 제가 할 겁니다. 물론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당연히 보내지 않습니다.”
압둘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흠흠. 이를 말인가? 누가 보내는 건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주세요.”
“그것도 알겠네.”
압둘의 품속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압둘이 말했다.
“집사로군. 벌써 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군.”
성훈이 말했다.
“필요한 파트를 말씀해 주세요. 제가 추려서 인선하도록 하죠.”
“그래 주겠나. 고마우이. 성훈.”
성훈이 만족한 미소를 짓는 압둘을 배웅했다.
***
열흘 후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국왕과 왕세자의 치하와 쿠웨이트 국민의 환호 속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진 준공식이었다.
수많은 쿠웨이트 신문들은 일면을 준공식 관련 기사로 도배했다.
[알라의 불꽃, 드디어 개장하다.]
[세계 최고의 건물, 쿠웨이트에서 만들다.]
하지만 외신들은 다른 기사를 실었다.
[시공의 최고봉, KT팀! 이번엔 설계의 세계 제패를 꿈꾸는가?]
그리고 그날 역대 최고의 매상을 올린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실었다.
[KT 팀장 김성훈, 그는 과연 누구인가?]